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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뀌

고향 마을의 뒷 산 너머에 있는 과수원에는 봄이면 여뀌로 보이는 풀이 발갛게 피어났다. 멀리서 보면 붉은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보였다.옆을 지나갈 때 그냥 무관심하게 지나칠 때가 많았겠지만 어떤 때는 아름답다고 느꼈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마을 분들은 이 풀을 '여꾸'라고 불렀던 것 같다. 여뀌는 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도랑이나 물가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밭이나메말라 보이는 산기슭에서도 잘 자란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잡초에 속하는 대표적인 풀이다. 그러나 잡초라는 명칭은 너무나 인간중심적인 냄새가 나서 싫다. 오직 인간적 유용성의 관점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여뀌는종류가 20여가지가 된다는데 사진으로 찍은 이 여뀌는 실제 이름이 무슨 여뀌인지 잘 구분하지 못하겠다. 도감을 찾아보니 ..

꽃들의향기 2005.12.17

어릴 때 내 꿈은 / 도종환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 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 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님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 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 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 듯하게 아이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시읽는기쁨 2005.12.16

장갑과 귀마개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가 일주일여 계속되고 있다. 겨울의 삼한사온도 이젠 사라진 것 같다. 삼한사온만이 아니라 기상에 관한 옛 속담들도 이젠 잘 들어맞지 않는다. 날씨도 시대를 닮아가는지 기상 변화도 극단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서해안 지역은 몇십 년만의 폭설과 추위로 피해가 엄청나다고 한다. 이 장갑과 귀마개는 지금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는 내 방한 도구이다. 장갑은 지하철 행상에게서 천원에 산 것이고, 귀마개는 노점상으로부터 이천원에 산 것이다. 둘 다 값에 비해서는 품질도 괜찮고 보온 효과도 좋다. 특히 귀마개는 오랜만에 써 본다. 옛날 귀마개에 비해 디자인도 새로워졌고 사용하기에도 아주 간편해졌다. 초, 중학교 시절 겨울이면 소백산에서 불어내려오는 차가운 북풍이 걸어가기도 힘들 정도로 세차게 ..

사진속일상 2005.12.14

벌새의 우화

'초원에 불이 났다. 짐승들은 일제히 도망쳤다. 그런데 벌새 한 마리가 겁도 없이 진화에 나섰다.벌새는 그 조그만 입으로 강물을 물어 와 초원을 태우는 불길 위에 끼얹었다. 밑도 끝도 없이 그 짓을 했다. 큰 짐승들, 가령 사자나 코끼리나 얼룩말 같은 짐승들이 벌새를 비웃었다. "야, 그런다고 네가 불길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니?" 그러자 벌새가 대답했다. "불길을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그건 해보기 전에는 모르지. 나로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어느 글에서 본 우화입니다. 이 우화에 나오는 불길은 지구 환경의 위기를 비유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짐승들도 불이 난 사실을 알지만 벌새와 다른 점은 그들은 방관자였다는 것입니다. 모두 도망쳤습니다. 아마 강을 건너면 다른 초원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었..

참살이의꿈 2005.12.13

어떤 날은

어떤 날은, 밤길이라도 달려 동해 바다에 가고 싶다. 인적 끊긴 바닷가에 앉아 잠들지 못하는 파도의 속삭임을 듣고 싶다. 옛날 어느 때처럼 오징어와 소주 한 병 옆에 두고 한없이 슬픈 생각에 잠기고도 싶다. 어떤 날은, 한 사나흘 폭설에 갇혀 세상과 끊어지고도 싶다. 몇 해전이었던가 강원도에 폭설에 내렸던 때, 미시령 휴게소에 갇힌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그렇게 키를 넘는 눈 속에서 굴을 뚫어 화장실까지 길을 내고, 눈 녹기를 기다리며 고립되고 싶다. 어떤 날은, 몸과 몸으로 뜨거운 사랑을 해보고 싶다. 플라토닉 러브 같은 피곤한 사랑 대신 원초적 사랑에 젖어보고 싶다. 단 하루 밤이라도 좋으니 오직 몸과 몸이 부딪치는 예민하고 부드러운 감각에 나를 맡기고 싶다. 어떤 날은, 한 열흘쯤 단식을 하고 몸과..

길위의단상 2005.12.12

성가족 / 임영조

어디서 쫓겨온 일가족일까 아파트 단지 높다란 굴뚝 꼭대기 피뢰침 바로 아래 짓다버린 까치집 언제부턴가 올망졸망 새끼들 딸린 가난한 까치부부가 세들어 산다 비바람치고 천둥소리 거친 날이면 보채는 새끼들을 품고 잠든 부부는 스스로 집이 된다 요람이 된다 남루도 때때로 행복이 되는 하늘 가장 가까운 성가족(聖家族)이 산다 - 성가족 / 임영조 '남루도 때때로 행복이 되는' - 이 구절을 읽으면 가슴이 찡해진다. 요즈음 같은 풍요의 시대에, 그리고 그것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시대에, '남루'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보게 된다. 대림 3주일이다. 가장 낮은, 가장 남루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의 진정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다시 서울 시청 앞에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휘황찬란하게 번쩍이고,세종..

시읽는기쁨 2005.12.11

초롱꽃

도감을 들고서 산과 들로 꽃을 찾아 다니던 때, 한강변 분원마을 부근 야산에서 초롱꽃을 처음 보았다. 그러나 첫 인상은 사진에서 본 것과는 달리 예쁘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꽃의 크기가 생각보다 컸고, 모양이나 색깔 또한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화단이나 정원같은 데서 이 초롱꽃을 가끔씩 만나지만 첫 인상이 결코 바꿔지지는 않는다. 초롱은 옛날에 밤길을 갈 때나 밖을 비출 때 등불을 넣어두던 것이다. 생김새에서 필히 이 꽃이름이 유래되었겠지만 그러나 초롱같이 생겼다기보다는 내 눈에는 종을 연상시킨다. 마치 딸랑딸랑하는 소리가 날 것도 같다. 실제 이 꽃에 얽힌 전설도 종과 연관되어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초롱꽃에는 자주초롱꽃, 섬초롱꽃, 금강초롱꽃 등이 있다는데앞으로 내가 꼭 만나고 싶은..

꽃들의향기 2005.12.10

테니스를 구경하다

지금 직장에서는 1년에 네 차례씩 자체적으로 친선 테니스 대회를 열고 있다.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대회였는데 아쉽게도 동료들의 경기를 구경만 하고 있다. 지난 주말에 무리하게 테니스를 한 탓에 아직도 오른팔에 통증이 가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팔을 들어올리자면 절로 인상이 구겨진다. 무엇이든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지나침은 꼭 뒤탈을 남긴다. 테니스를 배운지는 오래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발령이 난 첫 직장에 마침 테니스장이 있어서 테니스를 시작했다. 동료들의 조언을 들으며 따라 한 것인데 벌써 30년이 되었다. 그러나 실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정식으로 레슨을 받지 않아서인지 자세도 시원찮고, 그래서 발전이 없는 것 같다. 한 때는 디스크 수술을 받아서 조심하느라 10여 년..

사진속일상 2005.12.09

[펌] 두 생명공학자의 명암

지금 우리나라에는 전 국민이 나서서 전대미문의 물질적·정신적 지지를 아낌없이 퍼붓는 황우석 박사와, 농민 집회의 와중에 목숨을 잃고 그렇게 거리에서 죽어간 앞선 수많은 이름들 중의 하나로 잊혀져 가는 전용철씨라는 두 사람의 ‘생명 공학자’들이 있다. 돌아간 전용철씨를 ‘생명 공학자’라고 부른 의도는 아이러니를 노린 것이 아니다. 인간이 죽은 물질로서 자연이 아니라 식물과 동물 등의 생명체를 자신의 기호와 욕망에 적절한 형태로 변형시켜 전유하기 시작한 것이 농업의 기원이라면, 농업도 첨단 장비와 초고급 인력이 투입되는 현대의 그것과 다름없는 ‘가장 오래된 생명공학’이라고 볼 필요가 있다. 농업은 결코 씨앗이라는 투입물에다 물리적 노동을 투하하여 일정 배수의 산출을 끌어내는 기계적인 행위가 아니다. 하늘과 ..

참살이의꿈 2005.12.08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여러 해 전에 한 친구가 베트남 한인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 친구와 많은 메일을 주고받았는데 한 번은 본인이 교지에 쓴 글이라며 보내주었습니다. 제목이 '아침에'라는 글인데 시를 중간중간에 넣으며 주변의 몇 사람들 인상을 그린 것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편지보관함에서 다시 읽어보는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창 밖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문득 잠이 깹니다. 커튼이 드리워진 창 위로 야자수 잎의 그림자가 물결처럼 일렁거립니다. "아. 오늘은 일요일이지" 그냥 누운 채로 움직이지 않고 모처럼의 여유를 느껴봅니다. 「이곳이 어딜까? 물론 베트남이지.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모르지. 꿈일지도 몰라. 내가 지금 베트남에 있다는 것이.. 꿈을 깨면 아마 잠실의 아파트에서 예전처럼..

참살이의꿈 2005.12.08

장선리 / 양문규

마당 한가운데 너럭바위 있다 댓돌 위 검정 고무신 있다 마루 한쪽 맷돌 확독 있다 뒤뜰 크고 작은 독 있다 외양간 코뚜레한 소 있다 사랑채 흙벽 종다래끼 뒤웅박 키 호돌이 삼태기 있다 뒷간 똥장군 똥바가지 있다 정짓간 쇠솥 있다 조왕신 절구통 절굿공이 있다 헛간 벽 쇠스랑 갱이 갈쿠리 걸려 있다 도리깨 홀태 족답식 탈곡기 있다 쟁기 지게에 얹혀 있다 닭장 닭둥우리 있다 개울 나무다리 놓여 있다 뒷산 서낭당 있다 상엿집 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흑백사진 속의 풍경처럼 천태산 남고개 너머 더 깊은 골짝 장선리 - 장선리 / 양문규 30년 전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처음 읽었을 때 정보, 지식 혁명에 대한 개념들은 무척 낯설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제3의 물결이 단순한 물결이 아니라 쓰나미가 ..

시읽는기쁨 2005.12.07

글 뒤에 숨은 글

‘글 뒤에 숨은 글’은 최근에 읽은 김병익 산문집이다. 평론가, 출판인으로 살아온 저자의 자서전적인 글모음인데 내용이 진솔하고 담백해 잔잔한 감동을 받으며 읽었다. 내용 중에서 부러웠던 것은 저자의 독서 편력에 대한 고백인데 초등학생 시절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 책밖에 없었고, 그래서 많은 독서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5남매의 막내였다 보니 집에는 형들이 읽던 책들이 많았고 여러 분야의 책들을 접하며 지적으로 조숙해졌고 고등학교 때는 ‘사상계’나 ‘현대문학’, 실존철학서들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 내 경우를 보면 저자와는 정반대였다. 나는 5남매의 장남으로 형이 있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집에는 교과서 외에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것이 5, 60년대 농촌의..

읽고본느낌 2005.12.06

패랭이꽃

남한의 국화는 무궁화이고, 북한의 국화는 함박꽃이다. 둘 다 나무꽃인데 만약 풀꽃 중에서 우리나라 국화로 적당한 것을 고르라면 개인적으로는 이 패랭이꽃을 추천하고 싶다. 우선 패랭이꽃은 제주도로부터 백두산까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친근한 꽃이다. 산이나 들, 길가 등 어떤 곳에서도 잘 자란다. 메마르고 척박한 땅도 가리지 않을 정도로 생명력도 강하다. 키가 작아 사람들 발길에 짓밟혀도 바로 줄기를 곧세운다. 작지만 강인한 꽃이다. 패랭이꽃은 수줍은듯 볼을 붉히고 있는 청순한 소녀를 연상시킨다. 꽃잎은 다섯장이고 끝은 톱니마냥 갈라져 있다. 그러나 작고 가녀린 모습 뒤에는 어떤 역경도 헤쳐나갈 것 같은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패랭이는 옛날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쓰던 모자였다. 양..

꽃들의향기 2005.12.05

눈 내린 한강과 청계천을 걷다

밤 사이에 첫눈이 내렸다. 올해 서울 지방의 첫눈은 기록상으로는 11월 28일이지만 그때는 가는 눈발이 잠깐 비치며 땅에 쌓이지도 않고 지나가서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아이들이 눈장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내렸다. 그러나 기온도 많이 떨어지고 바람도 세차게 불어서밖에는 종종걸음을 치는 사람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강길을 걷기 위해 아내와 같이 다시 밖으로 나섰다. 지난 번에는 아내가 발이 부르터 고생을 한 탓에 이번에는 신발을 런닝화로 바꿔 신고, 또 추운 날씨에 대비해서 중무장을 하고 출발했다. 11:30에 집을 나서 올림픽대교에서 시작해 한강 북쪽 길을 따라 걸었다. 휴일인데도 날씨 탓인지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잠실철교, 잠실대교, 청담대교, 영동대교, 성수대교를 거치며 중랑천과 합류하는..

사진속일상 2005.12.04

지구의 밤

이것은 인공위성에서 지구의 밤을 찍은사진입니다. 잘 사는 나라들의 밤은 인공 불빛으로 환하고, 그렇지 않은 나라들은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깜깜합니다. 북아메리카와 서유럽,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이 눈에 띄게 환합니다. 부와 문명의 편중 현상이 한 눈에 드러나는 사진입니다. 아마 백 년 전이었다면 전 지구가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캄캄했을 것입니다. 지구 40여억 년의 역사동안 내내 그랬을 겁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전기 문명이 시작되면서 지구의 밤 풍경은 이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백 년 뒤에는 대륙 전체가 온통 빛으로 덮일 것 같습니다. 지구의 이름이 그때는 광구(光球)로 바뀔지 모릅니다. 이 사진은 한반도 주변을 찍은 것입니다. 남한과 북한이 극단적으로 대비되어 보입니다. 북쪽에..

참살이의꿈 2005.12.03

우리도 쿠바의 새들처럼 / 서정홍

쿠바에는 새들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더라 쿠바에는 개들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더라 해치지 않을 줄 알기 때문이다 길가에 서 있는 옥수수도 골목마다 핀 노란 해바라기도 잔디밭에 누워서 까닭 없이 하늘을 쳐다보는 학생들도 훤한 대낮, 길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애인을 안고 있는 젊은 경찰도 모두 자유롭고 행복하게 보이더라 '저렇게 살갗이 검을 수가 있을까' 싶은 아가씨와 '저렇게 살갗이 하얄 수가 있을까' 싶은 사내가 팔짱을 끼고 걸어가더라 아무렇지도 않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허름한 집을 보고 그들이 입고 다니는 낡은 옷을 보고 가난하다고 말한다. 못 산다고 한다 이 세상에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도 불행한 사람이 있고 아무런 조건도 갖추지 않았는데도 행복한 사람이 있..

시읽는기쁨 2005.12.01

국익과 진실

'맹자가 양(梁) 혜왕(惠王)을 만났다. "어르신께서 천리를 멀다 않고 오셨으니 우리나라에 이익이 되겠군요."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익을 말하십니까?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에 이익이 될까?' 하시면 대부(大夫)들도 '어떻게 하면 우리 가(家)에 이익이 될까?' 하고, 사(士)와 서인(庶人)들도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 하게 됩니다. 이렇게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이익을 다툰다면 국가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만일 정의를 나중에 생각하고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면 서로를 빼앗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인의만을 말씀하셔야 합니다. 어찌 이익을 말씀하시겠습니까?"' 황우석 교수의 난자 취득 과정에 대한 최근..

길위의단상 2005.11.30

서양등골나물

초겨울에 접어든 이맘때에는 들이나 산에서 볼 수 있는 꽃은 거의 없다. 그런데 얼마 전 남산에 갔을 때 산책로를 따라 무리지어 피어있는서양등골나물을 보았다. 대부분의 풀들은 시들고 나무들도 잎을 떨어뜨려 겨울 준비를 하는 이 때, 홀로 환하게 하얀 꽃을 피우고 있는 이 풀의 강인한 생명력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양등골나물은 북아메리카 원산의 외래종이다.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도 이 풀은 우리 고유의 생태계를 파괴할 정도로 번식력이 좋아 환경부에서는 위해 식물로 분류를 해놓고 있다. 식물계의 황소개구리인 셈이다. 전에 자주 다녔던 대모산에서도 이 풀을많이 보았다. 어떤 곳에서는 계곡 전체가 서양등골나물에 점령되어 있었다. 그러나 흰색의 작은 송이들이 모여 피는 꽃은 밝고도 환하다...

꽃들의향기 2005.11.29

도시의 저녁

빌딩 사이로 해가 넘어간다. 도시의 저녁은 다른 곳에서 보는 석양에 비해 왠지 더 쓸쓸해 보인다. 도시에서의 삶은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유랑민과 비슷하기 때문일까, 그래서 도시인들은 저 빌딩들 사이를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는가 보다. 여유있는 퇴근 시간이 된 날이면 일부러 지하철 서너 정거장에서 내려 한강변으로 나가 걸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이런 저녁 풍경을 가끔씩 만난다. 어떤 날은 인공의구조물들과 어울린 석양이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똑 같은 풍경이건만 그때그때의 느낌이란 내 감정의 반영에 다름 아닌 것 같다. 투영된 내 마음을 풍경을 통해 내가 다시 만나는 것이다. 쓸쓸함이든,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이든, 일상의 작은 것에도가슴 떨릴 수 있는 예민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좋겠다. 무미건조..

사진속일상 2005.11.28

철수

밭의 비닐을 걷어내서 정리하고, 모아두었던 콩대를 불태우고, 추위에 약한 나무 줄기에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보일러와 수도 배관에 있던 물을 모두 빼냈습니다. 이것으로 올 한 해 터에서의 생활이 마감되었습니다. 특히 보일러와 수도관의 물을 빼내는 작업은 콤프레셔를 사용해서 인부 두 명이 거의 세 시간 가까이 일해야 할 정도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내년 봄에 다시 물을 채워주는 것까지 해서26만 원이 들었습니다. 지난 두 해는 내려가 있지 않더라도 보일러을 겨울 내내 가동시키며 동파를 방지했지만 마당에 노출되어 있는 수도 폄프는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보온을 해도 두 번 다 얼어터져서 봄에는 고생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아예 물을 모두 빼버린 것입니다. 이번 겨울은 완전히 터에서 철수를 하려..

참살이의꿈 2005.11.27

다시 남자를 위하여 / 문정희

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가 힘들지 싱싱하게 몸부림치는 가물치처럼 온 몸을 던져오는 거대한 파도를 몰래 숨어 해치우는 누우렇고 나약한 잡 것들 뿐 눈에 띌까 어슬렁거리는 초라한 잡종들 뿐 눈부신 야생마는 만나기가 어렵지 여권 운동가들이 저지른 일 중에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세상에서 멋진 잡놈들을 추방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핑계 대기 쉬운 말로 산업사회 탓인가 그들의 빛나는 이빨을 뽑아 내고 그들의 거친 머리칼을 솎아 내고 그들의 발에 제지의 쇠고리를 채워버린 것은 누구인가 그건 너무 슬픈 일이야 여자들은 누구나 마음 속 깊이 야성의 사나이를 만나고 싶어하는 걸 갈증처럼 바람둥이에 휘말려 한 평생을 던져버리고 싶은 걸 안토니우스 시저 그리고 안록산에게 무너진 현종을 봐 그뿐인가 나폴레옹 너는 뭐며 심지어 돈..

시읽는기쁨 2005.11.25

조심스레 살기

사람들이 좀 조심스레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즈음 들어 자주 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행동하는데 대체로 서툰 것 같다. 한국 사회가 다이나믹하고 에너지가 넘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돌진성은 뛰어나지만 옆을 돌아보는데는 소홀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늘 부딪치는 현상들이다. 사무실이나 도로에서의 몰염치한 태도들, 또는 쟁점이 되는 사회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에게 얼마나 관용이나 배려의 정신이 부족한지를알 수 있다. 물론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지나서 되돌아 보면 내 안하무인격인 이기적 태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는지 낯이..

길위의단상 2005.11.24

유토피아의 농업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가 1516년에 발표한 인간의 이상향을 그린 공상소설입니다. 유토피아가 당시 영국의 부조리한 현실에 바탕을두고 쓰여진오래 된 소설이지만, 지금도 이상적인 사회 모델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 영향을 미치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정치 권력이나 교회 같은 당시의 사회 지배층에게 억누리고 착취 당하던 일반 민중들의 삶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서려 있는 작품으로사유재산이 없는 평등사회,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고민과 염원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토피아에서는 농업을 어떻게 다루었을까요? 유토피아에는 농민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국민이 다 농민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유토피아는 54개의 도시로 되어 있는데 각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안..

읽고본느낌 2005.11.22

한강길 30km를 걷다

어제는 오랜 시간 한강 둔치길을 걸었다. 배낭에 가벼운 간식거리를 챙긴 후 아내와 같이 10시 30분에 집을 나섰다.집이 한강에서 가까운 관계로 10여분이면 한강에 닿을 수가 있다. 걸어서 잠실대교를 건너 남쪽 잠실지구 둔치로 갔다. 사람들은 대개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려고 하지 않지만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을 견딜 마음만 있다면 다리를 건너보는 맛도 색다르다. 여기서 한강 둔치의 남쪽 길을 따라 선유도까지 걸을 예정이었다. 거리로는 약 25km, 7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어제는 맑고 바람도 잠잠한 좋은 날씨였다. 그러나 한강공원에는 늦가을의 조금은 쌀쌀한 날씨 탓인지 놀러나온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행렬이 가끔씩 바람을 가르며 지나갔다. 두 시간 정..

사진속일상 2005.11.21

차 없는 남산순환로

마침 남산 아래서 열린 친지의 결혼식에 참석한 길에 시간 여유가 있어서 남산 순환로 길을 걸어보다. 국립극장 입구에서 시작된 북쪽 순환로인데 이 길은 10여 년 전에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보행로로 시민들에게 개방된 길이다. 금년 봄에 다시 남쪽 순환로까지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이제 남산 둘레를 따라 온전한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무척 반가운 일이다. 사실 서울 시민이 일부러 남산을 찾기는 드물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차량이 아니면 접근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남산 식물원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지만 다른 길은 보도가 없는 차도 뿐이라 매연을 마시며 차를 피해 위험하게 걷기는 어려웠다. 옛날에 잠깐 걸어보며 이 좋은 길을 보행자 전용으로 만든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는데 이제 실현이 된 것이다. ..

사진속일상 2005.11.20

북관대첩비

지난달에 일본에서 반환된 북관대첩비가 경복궁 뜰에서 공개되고 있다.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는 임진왜란 때 북평사(北評事) 정문부(鄭文孚) 선생이 의병을 일으켜 함경도 길주, 백탑교 등지에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끄는 왜병들을 격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길주에 세워졌던 승전비이다.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5년 이 지역에 주둔한 일본군 이케다 마사스케(池田正介) 소장이 이 비석을 읽어보고 자기네 조상들의 패전 기록을 알게 되자 이 비석을 뽑아 일본으로 보내버렸다. 그 후 이 비석은 일본 황실에서 보관하다 야스쿠니 신사로 옮겨졌다. 한참동안 잊혀졌던 이 비석은 뜻있는 개인들에 의해서 반환운동이 일어나고, 유배생활 100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비가 인천공항에 도착하던 날, 눈물을 흘리며 ..

사진속일상 2005.11.19

익모초

익모초는 높이 1m 정도로 자라는 두해살이풀로 여름이면 작은 붉은색 꽃이 층층으로 핀다. 그런데 꽃 보다는 두 갈래로 길게 갈라진 잎에 더 눈길이 간다. 활짝 양 팔을 뻗은 자태가 멋지다. 익모초(益母草)는 이름 그대로 부인들에게 유용한 약초로 알려져 있다. 한방보다는 민간요법으로 부인병을 다스리는데 이용된다고 한다. 풀 전체를 찧어서 즙을 낸 후 불에 달여서 엿처럼 만들어 먹거나, 환(丸)을 만들어 먹는다. 특히 유둣날(음력 6월 6일)에 익모초를 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다. 또 더위에 입맛이 떨어졌을 때 쓴 익모초 생즙을 마시면 효과가 있다는 말도 있다. 익모초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중국에 있는 대고산 아래에 수랑이라는 마음씨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수랑은 나이가 ..

꽃들의향기 2005.11.18

神은 망했다 / 이갑수

神은 시골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회를 건설했다 神은 망했다 - 神은 망했다 / 이갑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이런 말씀을 내린 神은 아마 지금쯤은 크게 후회하고 있으실지 모른다. 神의 명령에 충실한 아담의 후예들이 번성하고(60년대에 30억이던 인구가 지금은 60억을 넘었고 50년 뒤에는 100억이 될 거라고 한다), 정복하고(남북극 어떤 극한지에도 인간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다스리면서(다른 종에게 인간은 무자비한 폭군이며 인간에 의한 멸종이 자연 멸종률의 근 1천배에 달한다), 지구마을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되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넜는지 神도 침묵만 하신다. '神은 ..

시읽는기쁨 2005.11.17

저항권포기죄

'오마이뉴스'에 초등학교를 정년 퇴임하신 어느 분의 이야기가 실렸다. 이 분의 소신있는 생각과 삶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부끄럽게 만든다.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촌지를 받아 처먹었으니 뇌물수수죄요. 내 고향 광주가 전두환 일당에게 칼질 당할 때 멀리서 보고만 있었으니 군부 학살행위 방조죄요…" 지난 8월말 초등학교 평교사로 정년퇴임한 노형근(64·전 안산성포초등학교 교사)씨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수여하는 녹조근정훈장을 받을 자격이 됐지만 거부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죄인이 무슨 포상이랍니까?" 그가 훈장을 거부한 이유다. 최근 12·12 사태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과 관련, 유죄판결을 받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81명 전원에 대해 훈·포장을 치탈하는 작업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

길위의단상 2005.11.16

김장을 하다

김장을 했습니다. 터에 심은 배추가 백 포기가 넘어서 지지난 주에 반 정도를 하고 이번에 남아있던 배추를 마저 뽑아 김장을 끝냈습니다. 올해는 온전히 직접 가꾼 배추, 무, 파로 김장을 했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접이나 되는 배추로 김장을 담근 것도 아마 처음일 것입니다. 미리 했던 것은 이웃에 많이 나누어 주었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것이 김치냉장고로 하나 가득 찼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올해 산 김치냉장고 덕을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날씨 때문에 아직 김장을 못했을 것입니다. 또 어느 해는 땅에 묻었다가 늦게 꺼내는 바람에 너무 시어져서 제 맛을 즐기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김치냉장고는 그럴 걱정이 없어서 좋습니다. 문명의 이기의 편리함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작년까지는 고향에 내려가 ..

참살이의꿈 2005.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