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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패랭이꽃

패랭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종류는 많다. 흰패랭이, 수염패랭이, 갯패랭이, 난쟁이패랭이, 좀패랭이, 구름패랭이, 각시패랭이, 술패랭이.... 패랭이꽃과 함께 우리 산야에서 자주 만나는 꽃이 바로 이 술패랭이꽃이다. 술패랭이꽃은 패랭이보다 키도 크고, 꽃도 크다. 가장 큰 특징은 꽃잎 끝이 갈라져 있는 모양에 있다. 그래선지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느낌이 든다.술패랭이라는 이름도 이런 모양에서 연유하여붙여졌을 것이다.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이 더 힘들어 어떤 때는 자꾸만 패랭이꽃을 쳐다본다 한때는 많은 결심을 했었다 타인에 대해 또 나 자신에 대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그런 결심들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삶이란 것은 자꾸만 눈에 밟히는 패랭이꽃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남길 바라 한편으론 잊혀지지 않는게 두..

꽃들의향기 2006.01.20

사람의 일 / 천양희

고독 때문에 뼈아프게 살더라도 사랑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고통 때문에 속 아프게 살더라도 이별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이 사람을 다칩니다 사람과 헤어지면 우린 늘 허기지고 사람과 만나면 우린 또 허기집니다 언제까지 우린 사람의 일과 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사람 때문에 하루는 살 만하고 사람 때문에 하루는 막막합니다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고 우린 또 사람을 기다립니다 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 또한 사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 사람의 일 / 천양희 그렇다. 모두가 다 사람의 일이다. 사람 때문에 아파하고, 그 사람으로 인하여 희망이 생긴다. 사람 때문에 하루는 살 만하고, 사람 때문에 하루는 막막해진다. 오늘이 그렇고, 내일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과 헤어지면 우린 늘 허기지고,..

시읽는기쁨 2006.01.18

수레바퀴 아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중요성은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연초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사람들의 새해 소망을 조사했더니 1위가 대박을 터뜨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땅에서, 주식에서, 또는 로또 대박이 새해 소망 수위를 차지했다. 돈이 많다는 것, 또는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이젠 개인의 전인적인 능력과 동일시되어 버렸다. 결혼 적령기의 여성이 남성을 선택할 때 제일 조건 또한 경제적 능력이라고 한다. 이것은 후손을 잘 기르기 위한 본능적 이끌림일 테니 비난할 수도 없다. 그만큼 사회가 돈 중심의 사회로 변하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성격이라든가 사람 됨됨이가 우선 순위에 올랐었다. 가난해도 성격만 좋다면 결혼 후보로 당당히 설 수 있었다. 얼마 전에 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길위의단상 2006.01.17

한탄강 지질 답사

연수 과정 중 하나로 연천의 한탄강 지역을 중심으로 지질 답사를 다녀왔다. 우리나라에서 경기 북부인 연천, 철원 지방은 신생대 제 4기인 약 27만 년 전의 화산 활동에 의해 지표에는 화성암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흔히 보는 현무암을 이 지역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또 이 지역에는 선캄브리아시대에 만들어진 지층(연천복합체)과 중생대 백악기와 쥬라기 때의 화산 활동에 의한 지층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 맨 처음찾은 곳은 양원리 고인돌이었다. 고인돌은 전 세계적으로 약 6만 기 정도가 있다는데, 그 중 우리나라에만 3만 기가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는 고인돌의 나라라고 부를 만도 하겠다. 이 양원리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때 만들어진 것으로 북방식 계열이다. 덮개돌은 중생대 쥬라기 때 만들어진 ..

사진속일상 2006.01.16

요즘 사람들은 욕망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인간의 욕망이란 게 뭔지 잘 모르게 된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한 가치관의 붕괴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더 이상 기름진 것을 즐기려 하지 않고, 집에 많은 물건을 쌓아두는 것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사람들의 소비 관념이 달라지면서 이제껏 유행했던 많은 상품들이 더 이상 팔리지 않게 되자 기업들이 망하는 사태가 속출했습니다. 상품시장 붕괴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나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동안 인기를 누려왔던 소비를 부추기는 직업군들이 사라졌습니다. 소비시장 붕괴는 생산 패러다임이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인간 욕망의 변화는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효과를 발휘하여 소비와 생산에 관한 근본적인 ..

참살이의꿈 2006.01.15

중랑천을 걷다

젊었을 때는 나이 든 사람을 보면서 내가 늙으면 저런 처지가되지는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든 지금, 예전에 못마땅했던 그 선배들과 똑 같이 되어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특별하고 예외적일 것이라고 자부했던 자신이 그냥 보통의 한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신이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중랑천을 걸었다. 한강에서부터 시작해 중랑천 서편 둔치길을 따라 올라가며 상계동 끝까지 걸었다[걸은 거리; 20km, 12:00-16:30]. 중랑천은 나와 인연이 깊다. 1970년대 초부터 근 15년간 중랑천 옆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중랑천 둑방길이 출퇴근로가 되기도 했다...

사진속일상 2006.01.14

무지개를 사랑한 걸 / 허영자

무지개를 사랑한 걸 후회하지 말자 풀잎에 맺힌 이슬, 땅바닥을 기는 개미 그런 미물을 사랑한 걸 결코 부끄러워하지 말자 그 덧없음 그 사소함 그 하잘것없음이 그때 사랑하던 때에 순금보다 값지고 영원보다 길었던 걸 새겨두자 눈 멀었던 그 시간 이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기쁨이며 어여쁨이었던 걸 길이길이 마음에 새겨두자 - 무지개를 사랑한 걸 / 허영자 집을 떠나 무지개를 따라 나섰지. 어느 날 무지개는 사라지고, 나는 저녁 빈 들판에 홀로 남게 되었네. 사람들의 마을은 멀고, 빈 들의 바람은 차갑기만 하네. 그러나 먼 땅 위로 외로운 별 하나 떠오르고, 어두운 길에서는 낯 선친구를 만날지도 모르리. 무지개를 사랑한 걸 결코 후회하지는 않으리....

시읽는기쁨 2006.01.13

감천면 석송령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를 뽑는다면 아마 이 석송령도 강력한 후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이 나무의 단아한 자태를 보면 첫 눈에 반하게 될 것이다. 아주 곱게 나이 들어가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연상된다. 수령이 600 년 가까이되지만 남성적인 기상 보다는 여성적인 아담함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그리고 외모만이 아니라 정신적 아름다움과 깊이까지 느껴지는 기품이 있다. 현장에 세워져 있는 안내문에 보면, 이 나무는 약 600여년 전 풍기 지방에 큰 홍수가 졌을 때 석관천을 따라 떠내려 오던 것을 지나가던 과객이 건져 이 자리에 심었다고 한다. 그 후 1930년 경에는 당시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이란 사람이 영험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石松靈)이라는 이름을 짓고, 자기 소유의 토지..

천년의나무 2006.01.12

탄천을 걷다

탄천은 경기도 용인에서 발원해서성남을 지나 한강에합류하는 길이 35km의 한강 지천이다. 탄천(炭川)이라는 이름은 옛날에 숯을 많이 구워서 물이 검게 되었기 때문이라는데, 지금은 오염원은 다르지만 물색이 검은 것은 마찬가지다. 하수처리장이 있다지만 아직 용량 부족인지 도시에서 쏟아지는 생활 하수는 천을 온통 시꺼멓게 물들이고 있다. 가까이 가면 썩는 냄새가 얼굴을 찌푸리게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대부분의 강들이 이렇게 몸살을 앓고 있을 것이다. 특히 대도시 주변을 흐르는 강들은 이미 생명력을 상실했다. 마치 인공호흡기로 살아가는 중환자실의 환자 같이 보여 마음이 아팠다. 위의 사진은 서울공항 인근의 탄천과 산책로이다. 공항을 닮아선지 천도 길도 활주로 마냥 직선으로 끝없이 뻗어있다. 붉은색 길은 자전거로이..

사진속일상 2006.01.11

해가 바뀌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인사말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다. 그러나 이런 인사를 받을 때마다 사실 조금은 곤혹스러워진다. '복'이라는 말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일까를 되짚어보게 되기 때문이다. 또 복 받을 짓은 하지 않으면서 복 받기만 바라는 것은 염치 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한자인 복[福]을 파자해 보면 보일 시[示], 한 일[一], 입 구[口], 밭 전[田]자로 되어 있다. 이것은 한 사람이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인 것 같다. 한 사람이 일 할 정도의 밭이라면 작은 규모의 땅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자를 작은 땀의 의미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싶다. '복'이란 하늘에서 공으로 떨어지는 무엇이 아니고, 일상의 작은 땀에서 얻는 기쁨이고 보람인..

길위의단상 2006.01.10

고향 냄새

어머님이 방 한 켠에 메주를 쑤어서 달아놓았다. 방안에 들어서면 구수한 메주 냄새가 온 몸을 적신다. 또 하나의 고향 냄새다. 어릴 때는 드나들며 저 메주콩을 뜯어먹기도 했다.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고향이 가지고 있는 냄새 때문이 아닌가 싶다. 유년 시절에 함께 했던 냄새들 - 고향의 공기, 고향의 땅, 고향의 집에서 풍기는 냄새가 아마도 우리의 뇌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고향땅을 밟을 때 편안해지는 것은 아마도 직접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냄새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어머니의 젖냄새는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인간의 후각이 퇴화되었다 하더라도 시각보다는 후각이 도리어 더 옛 향수를 자극한다. 가끔씩 찾아가는 고향은 이미 쇠락하고 시들어가지..

사진속일상 2006.01.09

에버렛 루에스

에버렛 루에스(Everett Ruess)는 1914년 미국 오클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재주가 뛰어났는데,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을 들어가지만 거짓으로 가득 찬 인간 세상에 환멸만을 느낍니다. ‘영원한 자유의 영혼이 되어 세상을 떠돌고 싶었던 내가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철창이 없는 감옥, 나는 이곳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주위엔 온통 길들여진 사람들뿐이다. 거짓말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뻔뻔스런 얼굴이다. 어쩌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자체를 깨닫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도시가 싫다. 거짓말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는 문명 세계 대신에 자연의 품을 택합니다. 자연 속에서의 여행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던 그는 결국 19..

읽고본느낌 2006.01.08

그리움 /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 그리움 / 유치환 '그리움'은 허기진 땅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이다. 그 무엇을 그리워 하는 마음은 아름답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그리워 하고, 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워 하고, 가고 싶은 저 피안의 땅을 그리워 한다. 모든 그리움의 대상은 존재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의 표상이다. 그리움을 아름답다고 했지만 동시에 그리움은 한없이 아프기도 하다. 욕망이 충족되어도 그리움은 남는다. 올해는 나에게 그리움의 한 해가 될 것 같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누구든, 마음 속으로 아름답게 아프게 그리워 해야 할 것 같다.

시읽는기쁨 2006.01.05

금산 송악

지난 겨울 남해도의 금산에 올랐을 때 이 송악을 만났다. 보리암 부근의 장군봉이라는 바위였는데, 송악임을 가리키는 안내 간판이 없었더라면 아마 그냥 지나쳐 버렸을 것이다. 송악은 이름만 들어보면 소나무 종류인 것 같지만 실제는 두릅나무과의 늘푸른 덩굴나무이다. 줄기에는 부착근(附着根)이 있어서 돌이나 다른 나무에 붙어서 타고 올라가며 자란다. 남쪽 지방에서는 돌담장에 이 나무를 심는다는데, 그래서 별명이 담장나무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오래 되면 담장을 감싸서 강풍에 담장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영어 이름은 Ivy인데 잎이 꼭 집에서 관상용으로 기르는 아이비 잎처럼 생겼다. 이 금산의 송악은 얼마나 오랜 세월 바위와 동고동락하며 살았던지 나무 줄기의 색깔이 바위와 구별하기가 힘들다. 오래 함께..

천년의나무 2006.01.04

두루미를 만나다

두루미를 만나러 아내와 함께 철원에 찾아갔다. 마침 두루미 축제 기간이어서 사파리 버스를 타고 민통선 안쪽에 들어가 두루미를 볼 수 있었다. 어제 밤은 두루미를 만날 생각에 소풍을 앞둔 어린 아이 마냥 마음이 설레었다. 전에는 새해의 연례 행사가 두루미를 보는 것이었는데, 최근에는 어디에 마음을 앗겼는지 몇 년간 잊고 지냈었다. 이래저래 감회가 새로웠다. 오전 11시에 출발하는 버스는 아쉽게도 자리가 반도 채워지지 않았다. 행사장에는 간이 음식점들이 즐비하고 공연장도 크게 마련되어 있지만, 정작 주인공인 두루미를 보는 데는 인색한 것 같다. 논에는 무리를 지어 쉬고 있는 쇠기러기들이 자주 보였다. 먼저 토교저수지에 들렀는데 독수리들이 엄청 많이 모여 있었다. 저수지 둑에 독수리들이 앉아서 쉬고 있다. 거..

사진속일상 2006.01.03

한강을 걷다[선유-뚝섬]

오늘은 선유도에서 출발했다. 선유도에서 여의도까지 간 후, 서강대교를 건너 강 북단으로 건너가서 뚝섬까지 걸었다. 걸은 거리는 22km였다(12:00-17:00). 선유도공원은 깔끔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원래 이 섬에는 선유봉이라는 절경의 봉우리가 있었다는데 60년대 개발 열풍에 사라져 버렸다니 안타깝기만 하다. 서강대교에서 바라본 여의도. 쌍둥이빌딩과 63빌딩의 단순한 조형미가 아름답게 보였다. 서강대교에서 내려다 본 밤섬의 전경. 철새의 낙원이라는데 오늘은 철새 그림자 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람 발길이 끊긴 밤섬은 덩굴식물의 천국이 되었다. 나무를 뒤덮은 모양이 마치 이불을 뒤짚어 쓴 듯 기묘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나무는 얼마나 답답할까? 한강 고수부지는 온통 시멘트로 도배를 했는데 ..

사진속일상 2006.01.02

새해 첫 기적 / 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새해 첫 기적 / 반칠환 다시 새해 첫날이 열렸다. 어제의 아쉬움이 오늘은 기대와 설레임으로 변했다. 날든, 뛰든, 아님 앉은 채 그대로든 모든 존재들에게 새해 첫날은 기적처럼 똑 같이 주어졌다. 여기엔 잘난 이, 못난 이의 차별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매일매일이 첫날처럼 설레임과 경이로 가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의 축복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잔뜩 흐린 날씨처럼 오늘 우리 집엔 무겁게 저기압이 드리워져 있다. 새벽 꿈자리마저 뒤숭숭하더니 아침 밥상 자리 작은 데서 일이 터졌다. 하필 새해 첫날에..... (그런데 이 시에서 재미있는 점은 가만히 ..

시읽는기쁨 2006.01.01

2005년의 끝 날

한해의 끝 날이어선지 마음이 허전하다. 지난 한해 특별히 잘못 산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래도 왠지 아쉽고 쓸쓸하다. 해가 바뀌고 나이가 한 살 더 많아지는 것을 우리말로는 나이를 ‘먹는다’고 한다. 보통 먹는다는 것은 허기가 채워진다는 뜻인데,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도리어 더 허기지고 갈증에 시달리게 되는 것 같다. 오늘 아침 신문에 ‘먹는다’는 표현에 대한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는다. 그리고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 같은 동양문화권인데도 중국 사람들은 나이를 첨(添)한다고 하고, 일본 사람들은 도루(取)한다고 하는데 유독 우리말이 먹는다고 한다. 이 지구상에는 3000종 이상의 언어가 있다고 하지만 나이를 밥처럼 먹는다고 하는 민족은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것 같다..

사진속일상 2005.12.31

청초호의 철새

직원들과 함께 1박으로 속초에 여행을 다녀왔다. 그동안 내내 추웠던 날씨가 풀리고 바람도 잦아들어 바깥 나들이길에는 아주 좋았다. 여러 군데 다녔지만 속초 시내에 있는 청초호의 철새들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청초호 주변이 깨끗하게 정비되고 수질이맑아보여서 무척 반가웠다. 호수에는 갈대 같은 수초들도 잘 자라고 있어서 새들이 지내기에 적당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다. 청초호는 도시 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바다와 통하는 입구를 제외하고는 사방이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도 도시와 잘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철새들이 찾아오는 아름다운 호수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지방의 소도시여서 그런지 호수 주변의 소음이 적고 조용해서 좋았다. 문득 서울의 석촌호수를 떠올..

사진속일상 2005.12.30

슬로 라이프(4)

- 땅에서 나고 땅으로 돌아가는 인생을 닮은 집. 슬로 하우스(slow house) 개념으로 요사이 주목받는 것이 스트로베일 하우스(straw-bale house)다. 이 집은 짚으로 만든 블록을 쌓아서 짓는다.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최근 몇 년 사이 북미나 호주 등지에서 궁극의 친환경 주택으로 불리며 크게 각광받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발군의 단열성이다. - 맛도 좋고, 영양도 좋고, 환경에도 좋다는데.... 잡(雜)이야말로 21세기의 중요한 키워드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잡초, 잡목림, 잡곡, 잡종.... 이 모든 것들은 앞으로의 1차산업에서 재인식되어야 할 말들이다. 특히 미래의 음식문화에서는 잡곡을 빼 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 먹어야 한다면 줄이기라도 하자. 육식 예찬의 이데올로기에서 ..

읽고본느낌 2005.12.28

품위 있는 죽음

동료의 부친 되시는 분이 암 진단을 받았는데 수술을 마다시고 5개월여 생존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일흔이 넘으신 연세에 그분은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신 것이다. 아마 수술을 했다면 몇 년은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자식들이야 수술 하시기를 강권했지만 본인이 극구 반대하셨다고 한다. 암 말기의 고통은 진통제로 완화시키며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셨다. 어느 집 어머니가 역시 암에 걸리셨다. 역시 많은 연세 탓에 수술 여부로 말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자식들이 수술을 시켰고, 어머니는 지금 두 해째 계속 항암 치료를 받고 있지만 거동도 못할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간병 문제로 자식간에 알력이 생겨 지금은 형제간의 의에 금이 가버렸다. 수술을 강력히 희망했던 딸들도 이젠 나 몰라라 하고, 어머니는 본..

길위의단상 2005.12.27

너도 그렇다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은 자세히 볼 수록 예쁘다. 꽃에 얼굴을 갖다댈 수록 향기는 진해기고, 숨어있는 작은 아름다움도 발견하게 된다. 풀꽃은 멀리서 보아도 예쁘고, 가까이서 보면 더 예쁘다. 사람을 꽃에 비유하지만, 솔직히 사람은 적당히 떨어져 있을 때가 제일 아름답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거나 오랫동안 옆에 있으면 첫 아름다움마저 잃어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어떨 때는 악취가 나기도 한다. 그것은 그 사람에 원인이 있기 보다는 그 사람에 대해 품었던 내 환상 탓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풀꽃은 인간의 환상에 대해서 조차 배반하지는 않는다. 다가갈 수록 향기가 나는 사람, 오래 옆에 있어도 물리지 않고 점점 더 사랑스러워지는 사람 - 야생의 풀꽃..

시읽는기쁨 2005.12.26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성탄 전야, 고향에 계신 어머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배론 성지에 들러 신부님을 만나 뵙다. 오래 뵙지 못해 인사를 드리러 간 것이건만 도리어 많은 것을 받기만 했다. 그리고 조용한 산 속에 있는 도미니꼬 수녀원에서 성탄 밤 미사를 드렸다. 봉쇄 수도원이라 작은 성당을 두 부분으로 나눠 수녀님들과 신자들이 울타리로 서로 격리된 채 마주보며 앉고 사제는 가운데서 미사를 집전하는 형식이 특이했다. 수녀님들, 마을 주민과 함께한 미사는 조용하고 경건하고 아름다웠다. 결코 대도시의 큰 성당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은혜로운 밤이었다. 자정이 넘어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감사와 고마움으로 마음이 환했다. 2천년 전, 시공을 초월하신 분이 스스로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오신 날. 스스로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고 주위를 따스..

사진속일상 2005.12.25

슬로 라이프(3)

- 인간 중심의 사고야말로 폭력적이다. 이제까지의 민주주의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이고, 자연을 수단으로밖에는 생각하지 않는 공리주의에 발목 잡혀 있었다. 우리들은 인간으로 구성된 커뮤니티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규칙인 ‘생명의 민주주의’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비폭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인 것이다. - 속전속결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보통 그럴 여유가 있으면 돈벌이나 다른 경제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자신과 자기 자손들이 살아가야 할 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 정치에, 어째서 우리들은 시간을 좀더 할애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들은 자신의..

읽고본느낌 2005.12.23

짚신나물

짚신나물은 여름이면 길가에서자주 볼 수 있는 풀이다. 길게 뻗어올라 피는 노란 꽃은 귀엽고 소담하다. 이름이 짚신나물인 것은 짚신처럼 흔해서일까, 아니면 길가에서 주로 피어나 짚신에 잘 밟히기 때문일까,그도 아니면 갈고리 달린 씨앗이 짚신에 잘 달라붙기 때문일까 궁금해진다. 내 생각으로는 이 모든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선조들이 이 이름을 붙인 것은 그만큼 친근하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대장금에 보면 이런 대화가 나온다. '궂은 날씨 속에서 음울하게 젖어 있던 나무들이 허물을 벗은 듯 파래졌다. 모처럼 햇빛을 본 꽃들이 진한 향기를 피워대는 통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층층이 핀 짚신나물 노란 꽃이 걸음마다 밟힐 정도로 주면에 흔했다. "흔하디 흔한 것이 짚신나물인데, 용아초(龍..

꽃들의향기 2005.12.22

한강이 얼다

두 주일가까이 계속되는 강추위에 한강이 얼었다. 기상청 발표로는 12월의 한강 결빙은 26년 만이라고 한다. 그만큼 올 12월은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매서운 추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어떤 사람은 삼한사냉(三寒四冷)이라고 농담을 한다. 잠실대교 부근 한강에 나가보니 기슭을 따라 강폭의 약 사분의 일 정도까지 얼음으로 덮여 있다. 한강 결빙이라지만 한강이 완전히 언 것은 아니고 어떤 곳은 전혀 얼음을 찾아볼 수 없는 곳도 있다. 한강 결빙은 한강대교 남단에서 둘째와 넷째 교각 사이의 상류 100m 부근에 얼음이 생긴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한다. 기록상으로 나타난 한강 결빙일수는 40년대에는 평균 69일, 50년대는 43일, 60년대는 35일, 70년대는 32일, 80년대는 21일, 90년대는 8일로 ..

사진속일상 2005.12.21

슬로 라이프(2)

-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지출 총액일 뿐. 현재와 같은 국민경제 계산법으로는 국가의 광물 자원이 고갈되고 산림이 소멸되며, 토양이 유실되고 수질이 오염된다. 또한 야생 생물과 물고기가 멸종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원이 소멸되더라도 소득 통계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하니 소득은 결국 겉보기의 이익에 불과한 것으로, 진정한 국가의 부는 잃게 되는 것이다. - 왜곡된 경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돈’이 필요하다. 본래 지역 공동체에서는 화폐 경제와는 전혀 다른 이론이 기반이 된 경제활동이 활발했는데, 그 대부분은 이미 화폐 경제 안에서 와해되거나 공동화되고 말았다. 지금 세계의 여러 다양한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지역 통화는 바로 이러한 영역의 재활성화를 꾀한 시도라 ..

읽고본느낌 2005.12.21

박달재 아이들 / 김시천

성배는 흔히 하는 말로 지진아다 성배의 평균 점수는 대개 20점 미만이다 그래도 성배는 제 답안지에 번호 이름을 꼬박꼬박 적어서 내고 0점을 받아도 남의 걸 훔쳐 쓰진 않는다 가끔, 보다 못한 감독선생님이 슬그머니 답을 알려 주어도 성배는 결코 그 답을 받아 쓰는 일이 없다 그냥 틀리고 만다 그런 성배 녀석이 좋다 공부 못한다고 아무도 성배를 나무라지 않는다 애시당초 시험 점수하고 성배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두들 성배의 착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일 말고 우리가 그렇게 기를 쓰며 배워야 할 게 또 무어란 말인가 성배의 웃는 얼굴을 볼 때마다 착하고 정직한 성배의 눈을 볼 때마다 세상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일 말고 진정 우리에게 중요..

시읽는기쁨 2005.12.20

슬로 라이프(1)

노인: "훌륭한 젊은이란 게 뭐겠어. 어서 벌떡 일어나서 얼른 일을 하라구, 일을!" 젊은이: "일을 하면 어찌 되는데요?" 노인: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지." 젊은이: "돈을 벌면 어찌 되나요?" 노인: "부자가 되지!" 젊은이: "부자가 되면 어찌 되는데요?" 노인: "부자가 되면 놀면서 지낼 수 있지." 젊은이: "저는 벌써 놀면서 지내는 걸요!" 쓰지 신이찌가 쓴 '슬로 라이프(Slow Life)'를 읽고 있습니다.위의 예화는 이 책이 말하려는 내용의 일단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책의 목차에 나오는 제목들이 슬로 라이프를 위한 키워드이면서 동시에 성찰의 소재로도 적당할 것 같습니다. 본문의 중심 내용을 발췌해서옮겨 봅니다. - 느리고 단순한 삶은 우리의 마지막 선택이다. 은퇴 후의 느긋한 삶을..

읽고본느낌 2005.12.19

눈먼 자들의 도시

한 남자가 신호를 기다리는 차 안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눈이 먼다. 병원에 찾아가지만 그를 진료한 의사도 눈이 멀고, 눈 앞이 하얗게 변하는 백색실명증은 이렇게 도미노처럼 전 도시로 퍼져 나간다. 정부 당국은눈먼 사람들을 모아 수용소에 격리시킨다. 장님들만으로 살아야 하는 수용소 안은 식량 약탈이나 강간 등 인간의 어두운 본성이 드러나는 지옥으로 변한다. 힘 센 깡패 무리까지 생겨나 식량을 미끼로 금품을 착취하고 여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다. 그 와중에 오직 한 사람, 눈이 멀지 않은 의사 아내가 있다. 남편을 돌보기 위해눈이 먼 것으로 위장하고들어와서 이 모든 현상들을 지켜보며 눈먼 사람들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는다. 결국 수용소를 탈출하게 되는데 바깥 세상 또한 마찬가지로 변해 있었다. 모든 사람..

읽고본느낌 2005.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