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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청계천

내가 청계천을 처음 본 것은 복개 공사를 하고 있던 60 년대 후반이었다. 그 당시 청계천 위쪽은 복개가 되었고 하류 쪽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당시 청계천 풍경은 수도 서울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지저분했다. 오물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의 탁한 물이 흐르는 양 편으로는 검은 색의 판자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도대체 저기서 어떻게 사람이 살까 싶어 어떤 날은 그 안에 들어가 보았는데 몇 걸음 걷지 못하고 나왔던 기억도 난다. 천변이 보이는 보도 옆과 다리 난간에는 큰 가림막을 해 놓아 그 부끄러운 풍경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그 이후로 청계천은 어두운 지하 세계로 사라져 버렸다. 그때로부터 40 년 가까이 지나서 복개 구조물을 뜯어낸 청계천 복원 사업 덕분에 다시 청계천을 볼 수 있게 되었다. ..

사진속일상 2005.10.12

계란 한 판 / 고영민

대낮, 골방에 처박혀 시를 쓰다가 문 밖 확성기 소리를 엿듣는다 계란.....(짧은 침묵) 계란 한 판.....(긴 침묵) 계란 한 판이, 삼처너언계란.....(침묵).....계란 한 판 이게 전부인데 여백의 미가 장난이 아니다 계란, 한 번 치고 침묵하는 동안 듣는 이에게 쫑긋, 귀를 세우게 한다 다시 계란 한 판, 또 침묵 아주 무뚝뚝하게 계란 한 판이 삼천 원 이라 말하자마자 동시에 계란, 하고 친다 듣고 있으니 내공이 만만치 않다 귀를 잡아당긴다 저 소리, 마르고 닳도록 외친다 인이 박여 생긴 생계의 운율 계란 한 판의 리듬 쓰던 시를 내려놓고 덜컥, 삼천 원을 들고 나선다 - 계란 한판 / 고영민 장일순 선생님의 일화에 이런 게 있다. 선생님의 글씨도 탈속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인정을 받고 있는데..

시읽는기쁨 2005.10.11

식인(食人)의 교육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아버지는 말하셨지 그것을 가져라” 요즘 뜨고 있다는 광고에 나오는 노래 가사이다. 비행기 안에서 젊은 여자들의 시중을 받으며 희희낙락하고 있는 한 젊은이가 나오는 무슨 카드 광고인데 내가 가진 선입견인지는 모르지만 가진 자들의 이기적이고 향락적인 풍조를 그대로 보여주고 부추기는 것 같아 TV로 이 광고를 볼 때마다 영 떨떠름하다. 전에 유행했던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느꼈던 거북스러움이 여기서도 느껴진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똑 같은 세상을 보더라도 천양지차가 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모양새나 지향하는 방향, 사람들의 의식구조에 대해서 심각하게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있고, 잘 나가는 사회의 역동성의 한 측면이라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길위의단상 2005.10.10

네팔에서 살고 싶다

해외에서의 노후생활을 주제로 한 기사가 지난달에 동아일보에 연재되었습니다. 정년퇴직한 연금생활자들이 가서 살만한 태국, 필리핀 등 몇나라가 소개되었는데 대개 비슷했지만 그 중에서도 네팔에서의 생활에 대한 내용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들 나라들의 공통점은 생각을 바꾸면 적은 돈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팔, 티베트, 부탄 등의 지역은 평상시에도 관심이 많은 곳입니다. 그곳은 제가 해외여행을 간다면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히말라야산맥을 끼고 있는 원시의 대자연과 함께 아직 문명에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으로 얼마간은 낭만적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얼마 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책을 읽어보고 부탄이라는 나라를 새롭게 알게도 되었습니다..

참살이의꿈 2005.10.08

풍경(2)

문정희 시인은 '효자동 길'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은행잎들 우수수 밀려와 가을이 되면 나는 효자동에 가고 싶어라 효자동 골목길은 오래된 향내가 묻어 있는 길이다. 거기에는 새로 개발된 주택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전적이며 낭만적인 분위기가 있다. 이런 효자동 골목길을 매일 지나다닐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축복받은 일이다. 효자동 골목길을 지나갈 때면 늘 눈길을 끄는 집이 있다. 밝고 화려하게 칠해진 빨간 대문집인데 저 집에는 왠지 작고 예쁜 사람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나도 저런 빨간 대문이 달린 집에 살고 싶어진다. 예전에 단독주택에 살 때 우리 집 대문 색깔은 어두운 녹색이었다. 2. 3 년에 한 번씩 새로 칠을 하면서 페인트 가게에 가서 꼭그 어두침침했던 색깔만 고집했다. 10..

사진속일상 2005.10.07

종덕리 왕버들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들은 물을 좋아한다. 호숫가나 물이 많은 개울가에서 잘 자라는데 어떤 나무는 물 속에서 크기도 한다. 왕버들은 이름 그대로 버드나무 중에서도 가장 크게 자라고 오래 사는 나무이다. 주산지에 가면 호수 주변에서오래된 왕버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고 하는데 아직 가보지는 못했다. 왕버들 한 그루를 보러 김제에 들어서니 너른 평야지대여서 시야가 확 트인다. 지나간 지평선축제를 알리는 안내 깃발도 보인다. 봉남면 종덕리라는 마을은 너른 들판 가운데에 있다. 마을이라면 의례 뒤에 야산을 등지고 있는 풍경에 익숙한데 이런 모습은 이국적이기까지 하다. 왕버들은 마을에 이웃한 앞쪽에 당당하게 서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왕버들이라고 한다. 바로 옆으로 개울이 흐르고 있는데 아마 이 물이 나무를..

천년의나무 2005.10.06

Job 뉴스 / 장정일

봄날 나무벤치 위에 우두커니 앉아 를 본다 왜 푸른하늘 흰구름을 보며 휘파람 부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호수의 비단잉어에게 도시락을 덜어 주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소풍온 어린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듣고 놀라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비둘기떼의 종종걸음을 가만히 따라가 보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나뭇잎 사이로 저며드는 햇빛에 눈을 상하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나무벤치에 길게 다리 뻗고 누워 수염을 기르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이런 것들이 40억 인류의 Job이 될 수는 없을까? - Job 뉴스 / 장정일 개미나 꿀벌을 찬양하던 시대가 있었다. 사실 지금도 인간의 고군분투란 Job을 얻기 위한, 또는 더 나은 Job을 차지하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시읽는기쁨 2005.10.05

재산세 6만원

어느 날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번 가을에 나온 부동산에 관한 재산세가 화제가 되었다. 대부분이 오른 재산세 때문에 현 정권과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여과없이 털어놓았다. 세금이 올랐지만 우리 사회가 공평하게 나아가는 방향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열 명중에서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각자 나온 재산세가 얼마나 되는지 묻기 시작했다. 제일 적은 사람이 10만 원대였고 대개는 20에서 40만 원대였다. 몇 사람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웃음으로 넘겼고, 제일 많은 사람은 100만 원 가까이 되었다. 거기에 모인 동료들의 나이는 대부분 4, 50대였다. 그런데 나에게 나온 재산세는 이번에 6만원이었다. 물론 거기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적은 액수였다. 나이 50이 넘어서 재산세를 고작..

길위의단상 2005.10.04

[펌] 거미의 일기장

내가 사는 곳은 여섯 평가량 되는 방이다. 이곳에는 20여 마리의 거미들이 집을 지어 살고 있으며, 개미들의 나라가 3개국이 있다. 남쪽 모서리에 있는 개미 제국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왕국이며, 북쪽 부엌 쪽으로 통하는 벽면에 있는 개미 제국은 최근에 건국되었다. 나는 이곳에서 6개월가량 살고 있으며, 다른 종류의 거미들과는 왕래를 하지 않는다. 발로 바닥을 딛고 다니는 우리와 달리 공중을 날아다니는 생명체들도 여럿이다. 여름에는 모기와 나방들이 수도 없이 날아 들어왔고, 요즘엔 파리들이 주로 날아다닌다. 우리는 서로 먹기 위해 싸우기도 하고, 덫을 놓기도 하지만, 먹지 않을 것을 죽이지는 않는다.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방문이 열리고, 암컷 사람 한 마리가 난데없이 나타났다. 나를 비롯한 우리 거미들..

참살이의꿈 2005.10.02

신대리 백송

너무 단 맛은 입맛을 잃게 하고, 너무 화려한 구경거리는 뒤의 경치를 시시하게 만든다. 로마 구경은 맨 나중에 하라는 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처음 만난 백송이 헌법재판소 구내에 있는 재동 백송이었는데 지금 보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나무였다. 그것이 나무에 관심을 갖게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눈맛을 버려놓기도 한 셈이다. 그 뒤에 만나는 백송들이 기대에 못 미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천 신대리에 있는 백송은 마을 뒤쪽 경사진 언덕에서 자라고 있다. 높이는 16 m 가량으로 키도 크고 모양새도 좋다. 그러나 백송의 가장 큰 특징이 줄기 색깔인데 이 나무는 흰색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나무의 큰 줄기는 재동 백송과 마찬가지로V자 모양으로 갈라져 있다. 안내문에 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210..

천년의나무 2005.10.01

어머니 날 낳으시고 / 정일근

오줌 마려워 잠 깼는데 아버지 어머니 열심히 사랑 나누고 계신다. 나는 큰 죄 지은 것처럼 가슴이 뛰고 쿵쾅쿵쾅 피가 끓어 벽으로 돌아누워 쿨쿨 잠든 척한다. 태어나 나의 첫 거짓말은 깊이 잠든 것처럼 들숨 날숨 고른 숨소리 유지하는 것, 하지만 오줌 마려워 빳빳해진 일곱 살 미운 내 고추 감출 수가 없다. 어머니 내가 잠 깬 것 처음부터 알고 계신다. 사랑이 끝나고 밤꽃 내음 나는 어머니 내 고추 꺼내 요강에 오줌 누인다. 나는 귀찮은 듯 잠투정을 부린다. 태어나 나의 첫 연기는 잠자다 깨어난 것처럼 잠투정 부리는 것, 하지만 어머니 다 아신다. 어머니 몸에서 내 몸 만들어졌으니 어머니 부엌살림처럼 내 몸 낱낱이 알고 계신다. - 어머니 날 낳으시고 / 정일근 겨울이 되면 온 식구들이 한 방에 모여 잠..

시읽는기쁨 2005.09.30

소립자

오랜만에 소설을 한 권 읽었다. 미셀 우엘벡(Michel Houellebecq)이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소립자(Les Particules)'라는 책이다.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물리적 내용을 소재로 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은 20세기 서구 사회의 변화와 그 와중에 희생된 개인의 일생과 문명의 전환을 다룬 스케일이 큰 소설이다. 특이한 점은 포르노 수준의 적나라한 성 묘사가 가득해서 읽는 사람을 나른하고 어둡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책을 읽고나니 ‘소립자’라는 제목이 전혀 엉뚱한 것만도 아니었다. 사회 시스템 안에서 각 개인은 마치 소립자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소립자는 외부의 물리적 장(場)에 의해 영향을 받고 서로 간에 상호작용을 하는 독립적인 존재이다. 이 책..

읽고본느낌 2005.09.29

평화, 그 먼 길 간다

가수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평화를 기원하는 거리 공연이 매주 화요일 저녁에 광화문 교보빌딩 옆에서 열리고 있다. 어제 친구와 만나서 이 공연에 동참하기로 했는데 저녁 식사 후 술 한 잔 하는 자리에서 쓸데없는 종교 논쟁을 하는 바람에 늦어져서 공연이 끝날 때쯤 되어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평화, 그 먼 길 간다'라고 적힌 무대는 생각보다 간소했고, 사람들은 보도에 앉거나 서서 두 분의 뜻에 동참하며 열띤 호응을 보냈다. 두 분은 이 땅과 생명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환경과 반전, 소외계층을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계시지만, 이번 거리 공연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직접 시민들과 만나며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정태춘 음악과의 인연은 10여 년 전 독일 연수를 갔을 때 맺어졌다. 우리..

사진속일상 2005.09.28

예초기로 잔디를 깎으며

지난달에 예초기를 샀습니다. 잔디를 깎기 위해서입니다. 집 주변에 심어놓은 잔디가 넓지도 않은데 낫으로 깎자면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걸립니다. 지난 초여름에는 일주일이 걸려도 다 깎지를 못했습니다. 물론 작업이 서툰 탓입니다. 그래도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고집으로 힘들지만 그럭저럭 견뎌냈습니다. 어느 날 이웃집에 놀러갔다가 예초기로 마당의 잔디를 깎는 것을 보고는 그만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낫으로 깎는 것에 비하면 순간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쉽고 빨리 일이 끝났습니다. 그분은 미련하게 살지 말라며 예초기를 사서 쓸 것을 권했습니다. 그래서 부탄가스로 작동되는 신형 예초기를 산 것입니다. 저는 기계치(機械痴)라고 할 정도로 기계나 도구를 만지는데 서투릅니다. 어쩌다 기계를 다루게 되면 꼭 무슨 ..

참살이의꿈 2005.09.27

도립리 반룡송

올라오는 길에 이천을 지나다가 백사면 도립리에 있는 반룡송을 찾아갔다. 넓은 벌판 가운데에 있는 이 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크기가 예상보다 작다는 것이었다. 지난 번에 본 운문사 처진소나무의 웅장함이 연상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역시 이름값을 하는나무였다. 이 나무를 찾아오는 길에 지나가는 촌로에게 위치를 물으니 방향을 가르켜 주면서 "그 나무 볼 만 할거요."라고한 말이 역시 빈말이 아니었다. 땅에서 큰 줄기가 올라가면서 옆으로 퍼져 있는데 뱀이 똬리를 틀듯 꼬여있는 모습이 무척 특이하다. 그래서'뱀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반룡송(蟠龍松)이란 이름은 이 소나무가 하늘로 오르기 위해 꿈틀거리는 형상을 닮았다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그래선지 줄기의 ..

천년의나무 2005.09.26

어느 저녁의 단상

어제는 저녁 하늘을 보러 한 사람과 같이 산에 올랐다. 며칠간 내리던 비가 멈추고 아침에는 맑은 가을 하늘이 나타났는데, 오후가 되면서 다시 구름이 덮이며 기대했던 노을은 보여주지 않는다. 짧은 시간 연한 붉은 기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진다. 잠시 서울의 야경을 구경하다가 내려왔다. 한 사람과 만나며 사람의 아름다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사람마다 아름다움을 보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대체로 젊었을 때는 육체적 미에 눈이 쏠리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정신적인 내면의 아름다움 쪽이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것 같다. 육체적 기준으로 본다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름다움의 상실이면서 슬프고 아쉬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 면에서 바라본다면 나이듦은 도리어 내적 새로움과 원숙을 의미한다. 그것은 몸의 노쇠에..

사진속일상 2005.09.24

저녁은 짧아서 아름답다 / 김종해

사라져 가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안녕히라고 인사하고 떠나는 저녁은 짧아서 아름답다 그가 돌아가는 하늘이 회중전등처럼 내 발밑을 비춘다 내가 밟고 있는 세상은 작아서 아름답다 - 저녁은 짧아서 아름답다 / 김종해 이 시를 읽으면 죽음도 노을처럼 아름다워진다. 안녕히라고 두 손 흔들며 나도 노을 타고 가벼이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소멸과 쓸쓸함 뒤에는 아름다움이 숨어있다. 그리고 우리네 인생도 짧아서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저녁 노을을 보러 앞산에 올라봐야겠다.

시읽는기쁨 2005.09.23

땅의 옹호

'땅의 옹호'는 몇 해 전에 '녹색평론'에 실렸던 김종철님이 쓴 글입니다. 모니터로 이 글의 일부분을 본 옆의 동료가 글쓴이가 과격한 환경주의자인 모양이라고 말합니다. 환경을 대하는 각자의 태도에는 환경낙관론자에서부터 환경비관론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합니다. 마침 최근에 '환경 위기의 진실'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은 환경낙관론자가 쓴 것어어서 색달랐습니다. 그것은 환경 문제에 대한 경고의 소리는 쉼없이 듣고 있지만, 지구 환경을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자주 접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환경비관론자에 속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문명이나 과학 기술의 발전에 의해 환경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참살이의꿈 2005.09.22

코스모스(2)

오늘 같은 날은 가을 햇살 화사한 코스모스 꽃길을 걷고 싶다. 눈을 감으면 내 초등학교 시절 마을 앞 신작로에 활짝 핀 그 꽃길이 보인다. 거기에는 우리들 키보다 더 컸던 코스모스가 가을 바람에 하늘거리며 눈 시리게 피어 있었다. 그 꽃들 사이에서 내보고 싶은 사람이 눈웃음 지으며 나올 것만 같다. 꽃길은 멀리 있는 읍까지 끝없이 이어지고, 꽃 사이로 숨었다 나왔다 장난치며 걷다 보면 벌써 집이 보였다. 학교에 오가는 길은 그렇게 꽃길이었다. 코스모스는 한참 동안 내가 가장 좋아했던 꽃이었다. 코스모스(cosmos)에 '질서 있는 우주'라는 뜻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안 뒤에는 이 꽃이 더욱 신비하게 느껴졌다. 조형미로 따진다면 더 완벽한 꽃들도 많은데 말이다. 하나의 꽃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잠재의..

꽃들의향기 2005.09.21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대화’는 말 그대로 대화 형식을 빌린 리영희 선생님의 인생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봄, 이 책의 출간을 기념해서 선생님의 강연회가 열렸을 때 직접 찾아가서 선생님을 가까이서 뵙고 말씀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책을 읽은 것은 한참이 지나 최근이 되어서였다. 700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한 번 손에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빨려드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은 더욱 깊어졌고, 무지몽매했던 과거의 내 부끄러운 현실의식과 역사의식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한 시대의 구성원인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해준다. 진실을 알고, 그 진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며, 또 진실대로 살기를 염원하는 한..

읽고본느낌 2005.09.20

물방울 삼형제

차례상에 올릴 나물을 끓이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다른 집도 사는게 다 똑 같더라." 그리고는 옆집의 누구는 형수와 틀어졌고, 또 누구네 집은 형제간의 불화가 아직껏 계속돼 서로 남보듯 한다면서 지나가는 소리처럼 하셨다. 그러나 '다른 집도'에서 '도'를 강조하시는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에 내 마음도 슬퍼졌다. 이번 추석에는 찾아온다던 막내를 잊지 못하시기 때문일 것이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고, 어려운 자식에 눈길이 더 가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리라. 추석날 아침에는 비가 내렸다. 반짝 나온 햇빛에 고향집 토란 잎 위 물방울 세 개가 보석처럼 빛났다.

사진속일상 2005.09.19

개들은 말한다 / 정현종

개들은 말한다 나쁜 개를 보면 말한다 저런 사람 같은 놈 이리들은 여우들은 뱀들은 말한다 지네 종족이 나쁘면 저런 사람 같으니라구 한국산 호랑이가 멸종된 건 개와 이리와 여우들 탓이 아니지 않은가 한국산 호랑이의 멸종은 전설의 멸종 깨끗한 힘의 멸종 용기의 멸종과 더불어 진행된 게 아닌가 날(生) 기운의 감소 착한 의지의 감소 제 정신의 감소와 더불어 진행된 게 아닌가 한국산 호랑이의 멸종은 하여간 개와 이리와 여우들 탓은 아니지 않은가 - 개들은 말한다 / 정현종 지난 여름 피서철에도 해수욕장의 무질서와 쓰레기가 문제가 되었다. 그때 어느 라디오 프로에서 진행자가 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사람이 짐승처럼 보여요." 말이 바른 말이지 어느 짐승이 남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뒤를 지저분..

시읽는기쁨 2005.09.16

해바라기

집 앞에 해바라기가 피었다. 해바라기는 북미 원산의 한해살이풀인데 집과 들에 피어서 우리나라 초가을 정취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빨간 고추를 말리는 마당 둘레의 돌담을 따라 피어있는 노란색 해바라기나,곡식이 익어가는 밭둑을 따라 피어있는 해바라기는 전형적인 한국의 가을 풍경이다.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고 핀다 하여 향일화(向日花)라고 했다. 어릴 때는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움직인다고 해서 그대로 믿었으나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살핀다면 그렇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꽃이 서쪽이나 북쪽을 향하고 있기도 하고, 해를 바라보기는 커녕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해바라기 / 해님 따라 / 동동 / 하늘 한 바퀴 / 파아란 / 강물 위에 / 물수레 되어 / 빙빙 /온종일 / 돌고만 있다' 아무리 동요의..

꽃들의향기 2005.09.15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

어제는 비가 많이 내렸다. 중국으로 들어갔던 태풍 '카눈'이 서해로 빠져나오며 소멸되었으나 남아있던 비구름이 한반도를 지나간 탓이다. 시내에 볼일을 보러 나갔는데 우산을 썼지만 비로 흠뻑 젖었다. 마침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키아로스타미 사진전 를 보았다. 키아로스타니는이번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이란의 영화감독인데 예술성 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신문 기사를 보고 전시회에 가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이번 사진전의 주제가 '길'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황량해 보이는 산야를 배경으로 날아가는 철새들의 흑백사진이 시선을 끌었다. 인생을 나타낼 때 '길'만큼 적당한 이미지도 없는 것 같다. 길은 설레임이기도 하고 덧없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꼬불꼬불 구부러지며 끝없..

읽고본느낌 2005.09.14

웰컴 투 동막골

며칠 전에 극장에서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을 보았습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한국영화를 영화관에서 본 것은 군대 있을 때 외출 나가 본 ‘겨울여자’ 이후 거의 30 년만입니다. 두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게 집중하며 볼 수 있었으니 한국영화도 이제 많이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군데군데 어색하고 어설픈 장면들도 있었지만 크게 트집 잡을 일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무엇이었느냐고 같이 영화를 보았던 아내에게 물었더니 ‘꽃을 꽂은 소녀’가 총에 맞아 숨을 거두는 장면이었다고 합니다. 그 소녀를 안고 한 동막골 주민이 “이 아이를 어찌 할까요?”하는 말이 애절하고 감동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역시 그 장면에서 눈물이 어렸습니다. ‘꽃을 꽂은 소녀’는 “아파, 아파”라고 하면서 둘러싸고..

읽고본느낌 2005.09.13

블로그 2년

오늘로 블로그를 시작한지 2년이 되었다. 블로그란 ‘웹(Web)에 쓰는 개인 일기’라는 정의를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의미라면 나는 블로그의 충실한 고객인 셈이다. 전부터 일기를 써오던 습관 그대로가 일기장에서 블로그로 바뀐 채 계속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로그는 고립적인 기록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한 네트워크 역할이 더 큰 것 같다. 거기에는 정보의 공유, 상호 대화 같은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중요시되는데 그런 의미라면 나는 아직 자격 미달이다. 글쓰기 외에 다른 기능을 활용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블로그에 들어가서 글을 읽어보고 코멘트를 남기고 할 여유가 아직은 없다. 컴퓨터를 켜고 블로그에 연결하는 것이 일상이 되긴 했지만 사실 내 글만 써 넣는데도 동작이 느려서 ..

길위의단상 2005.09.12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 문정희

학창 시절 공부도 잘하고 특별 활동에도 뛰어나던 그녀 여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도 무난히 합격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감자국을 끓이고 있을까 사골을 넣고 세 시간 동안 가스불 옆에서 더운 김을 쏘이며 감자국을 끓여 퇴근한 남편이 그 감자국을 15분 동안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설거지를 끝내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입사 원서를 들고 추운 거리를 헤매고 있을까 당 후보를 뽑는 체육관에서 한복을 입고 리본을 달아주고 있을까 꽃다발 증정을 하고 있을까 다행히 취직해 큰 사무실 한 켠에 의자를 두고 친절하게 전화를 받고 가끔 찻잔을 나르겠지 의사 부인 교수 부인 간호원도 됐을 거야 문화 센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고는 남편이 귀가하기 전 허겁지겁..

시읽는기쁨 2005.09.10

'나비'의 일생

태풍 '나비'가 우리나라 남동해안과 울릉도, 그리고 일본에 큰 피해를 주고 어제 북해도 위쪽에서 소멸했다. '나비'는 올해 발생한 열네 번째 태풍으로 초대형급이어서 무척 걱정스러웠는데 다행히(?) 일본으로 방향을 틀어 우리나라 전역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다. '나비'는 가을 태풍의 전형적인 경로인 활 모양으로 휘어지며 비켜간 것이다. '나비'는 지난 달 29일에 북위 15도상 아열대 해상에서 생겨나 세력이 점점 강해졌는데 한 때는 비슷한 시기에 미국 뉴오리온즈를 쑥대밭으로 만든 초특급 허리케인인 '카트리나'에 비견될 정도였다. 중심기압이나 최대풍속은 떨어졌으나 폭풍반경은 '카트리나'보다 더 컸다. 특히 태풍의 눈이 아주 발달해 그 크기가 100km에 이르렀다. 만약 우리나라를 관통했다면 엄청난 피해..

사진속일상 2005.09.09

안심리 포플러나무

어릴 적 고향 마을 앞에는 신작로가 있었다. 그 길은 비포장의 좁고 울퉁불퉁한 길이었는데 가끔씩 자동차가 나타나 뽀얀 먼지를 날리며 지나갈 뿐 늘 한적한 길이었다. 차 보다는 걷는 사람이 훨씬 많았고, ‘구루마’라고 불렀던 소달구지가 도리어 눈에 익었다. 지금 기준으로는 형편없는 도로였겠지만 당시로서는 대도시로 통하는 간선도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신작로에는 키다리 포플러나무가 길 양쪽으로 끝없이 길게 서 있었다. 어린 우리들 둘이서 팔을 벌려도 잡히지 않을 만큼 큰 나무들이 남에서부터 북으로 약 10km에 걸쳐서 초록의 띠를 만들며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은 우리들의 통학로였으며, 포플러나무들은 우리들의 친구이기도 했다. 여름에 포플러나무는 매미들의 집이었다. 바람이 불면 이파리들이 찰랑찰랑 흔..

천년의나무 2005.09.08

고운 하늘에 취하다

태풍이 지나간 하늘이 참 곱다.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하늘에 취한 하루였다. 낮에는 짬을 내어 인왕산에 올랐다. 중턱 소나무 그늘 아래 앉으니 맑게 세수를 한 서울의 초가을 풍경이 맑고 아름답다. 왼쪽이 북악산이고 가운데 멀리에 남산과 남산 타워가 보인다. 오늘은 땅도 하늘색을 닮아 날아갈 듯 가볍고 밝다. 이런 날은 모든 것을 가진 듯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그저 고맙고 감사하기만 하다. 저녁에는 토평의 한강변에 나갔다. 해가 지면서 하늘은 순간 순간 색채의 마술을 보여준다. 그 노을마저 사라지고 난 뒤 무채색으로 변한 하늘은 더욱 아름답다. 금성과 초생달이 나란히 서쪽 하늘에 나타났다. 아쉽게도 도시의 야경을 배경으로 찍으려던 계획은 위치를 잘못 잡아서 어긋나 버렸다. 그래도 마냥 기분이..

사진속일상 2005.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