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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들

가을걷이가 끝난 농촌의 빈 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쓸쓸합니다. 논과 밭의 결실을 끝냈는데도 농촌에는 무기력과 한숨만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만나는 농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지치고 피곤한 모습입니다. 이것은 작금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런 농업 정책이 세계화의 흐름에서 어쩔 수 없다고도 하고, 이 방법이 농민을 위하는 유일한 거라면서 나라 살림 맡은 이들은 달래지만 살림살이는 해가 갈수록 어려워져만 갑니다. 몸이 부서져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우 받고 살 수 있는 세상은 점점 멀어집니다. 농사에 뜻을 두고 투자를 한 사람이라면 빚만 늘어나기 십상입니다. 농민들은 이것을 농업을 포기한 농정 정책 탓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반도체를 수출하는 대..

참살이의꿈 2005.11.14

경복궁 은행나무

경복궁 서쪽 사람이 별로 찾지 않는 한적한 곳에 시골 마을의 정자나무 역할을 하는 이 은행나무가 있다. 별로 크지도 않고 눈에 띄는 특징도 없으나 아담한 것이 도리어 더 친근감이 드는 나무이다. 특히 나무 밑에는 줄기를 중심으로 둥글게 벤치가 마련돼 있어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에는 아주 좋다. 나도 자주 이 앞을 지나가면서한가할 때는 가끔씩 나무 아래에 앉았다 가곤 한다. 지금 뒤쪽은 경복궁 복원 공사로 어수선하지만 아직은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지 않어선지 조용한 편이다. 가을이 되면서 이 나무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어머니들의 모습이 자주 보이고, 노란 은행잎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에 발길이 멈추게 된다. 그리고는 나무와 사람들의 어울림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

천년의나무 2005.11.12

난 발바닥으로 / 문익환

하느님 이 눈을 후벼 빼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볼 겁니다 이 고막을 뚫어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들을 겁니다 이 코를 틀어막아 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숨을 쉴 겁니다 이 입을 봉해 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소리칠 겁니다 단칼에 이 목을 날려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당신 생각을 할 겁니다 도끼로 이 손목을 찍어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풍물을 울릴겁니다 창을 들어 이 심장을 찔러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피를 철철 쏟으며 사랑을 할 겁니다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발바닥에 불질러보시라구요 젠장 난 발바닥 자죽만으로 남아 길가의 풀포기들하고나 사랑을 속삭일 겁니다 - 난 발바닥으로 / 문익환 늦봄 문익환 목사님(1918-1994). 목사님은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셨다.목사님은 장준하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민주화 운..

시읽는기쁨 2005.11.11

짝사랑과 엑스레이

대학교 때 내가 짝사랑한 여학생이 있었다. 다른 과의 여학생이었는데 일주일에 몇 시간은 공통과목 강의를 같이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가까이서 얘기 한 번 나누어볼 기회는 없었다. 어떤 계기로 그녀가 눈에 들어오고 끌리게 되었는지는 너무 오래 되어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어느 순간 사랑의 화살을 맞았다는 것이고, 그 화살이 그녀가 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별로 공부에 취미가 없었던 나는 늘 강의실 뒤쪽에 앉았는데 어느 날부터는 강의실 앞문으로 들어오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항상 앞 줄 가운데에 앉았는데 긴 생머리의 뒷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기도 했다. 몇 달 동안은 자나 깨나 눈에 아른거리며 상대를 못 잊는 사랑의 병을 앓았다. 불면의 밤이 나를 괴롭..

길위의단상 2005.11.10

가을앓이

늦가을 풍경이 눈이 시리게 아름답다. 이런 가을을 펼친조물주는 아무래도 심술쟁이인가 보다. 가을을 앓는 사람을 더욱 서럽게 만드니 말이다. 그래도 나로서는 가을의 우울이 이번에는 덜 한 편이다. 한 때는 가을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기도 했는데, 다행히 올해는 미열 수준으로 통과할 것 같다. 축 늘어져 있는게 안돼 보였는지 옆의 동료가 농담을 한다. "이런 날은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나눌 애인 하나 있어야 한다니까요. 아직 그런 애인 없어요?" "그러니까 평소에 신경을 쓰고 투자를 해 놓았어야 하는데 말이예요." 아플 때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귀찮고 싫지만 사랑스런 애인이라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애인이 상처를 낫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을의 우울은 근본적으로 우리 삶의 덧없음과 관련이 있다. ..

사진속일상 2005.11.09

自歎 / 田萬種

聞古仁無敵 看今義亦嗤 富榮貪益顯 貧賤是爲非 天意豈能度 人精未易知 山深水綠處 早晩不如歸 - 自歎 / 田萬種 예부터 인자무적(仁者無敵) 들어왔건만 요즘 보니 의로워도 비웃음 당해 부유하고 영화로우면 탐욕 더욱 드러나고 가난하고 천하면 옳은 것도 그르게 되네 하늘의 뜻 어찌 헤아리랴마는 사람의 마음 쉽게 알기 어려워라 산 깊고 물 푸른 곳으로 조만간 돌아가는 게 낫겠네 예로부터 사람 마음을 일촌심(一寸心)이라고 불렀다. 한 치 작은 마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한 치밖에 안되는 마음 알기가 천의(天意)를 터득하기만큼이나 어렵다. 마음 속 휘몰아치는 폭풍에 비틀대기도 하고, 음침한 기운에 질식 당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마음 속에서 돋아난 바늘이 나를 찌르고, 상대방을 향해 무수히 날아가기도 한다. 이럴 때는..

시읽는기쁨 2005.11.08

명륜당 은행나무

명륜당(明倫堂) 앞마당에 있는 이 은행나무는 조선 중중 14년(1519)에 대사성을 지낸 윤탁(尹倬)이 심었다고 한다. 이 말이 맞다면 수령이 500년 가까이 되는 셈이다. 두 그루가 있는데 동쪽에 있는 나무가 더 크다. 그런데 이 나무는 전쟁 중에 피해를 입어 가지가 일곱으로 갈아졌는데도 각각이 모두 굵게 잘 자랐다.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 59 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예로부터 은행나무는향교나 문묘 등에 널리 심어 온 나무로 우리나라 보호수 가운데 느티나무 다음으로 많다고 한다. 유교와 관련된 기관에 은행나무를 많이 심은 이유는 공자가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친 곳이 '행단(杏壇)'이라고불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행단은 일종의 야외학습장인 셈인데, 나무를 뜻하는 '행(杏)'을 은행나무로..

천년의나무 2005.11.07

봉화산과 황사

생활관에 들어가는 둘째의 짐을 실어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봉화산에 들렀다. 봉화산은 서울의 북동쪽에 있는 높이 131m의 자그마한 야산이다. 그러나 지금은 도시가 팽창하면서 사방으로 아파트가 들어서 도심의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고립된 녹색 섬이 되었다. 약 20여 분 정도만 걸으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데 정상에는 '아차산 봉수대'라고 부르는 봉화대를 복원해 놓았다. 원래 이 산 이름이 아차산이었다는데 조선시대 함경도 경흥에서 시작하여 강원도를 거쳐온 제1봉수로의 마지막 지점이 이곳 아차산 봉수대였다고 한다. 여기서 바로 남산으로 연결된 것이다. 전에 서울을 떠날 생각을 하면서그 해 여름에 서울과 서울 근교에 있는 모든 산들을 다녀 본 적이 있었다. 산 이름이 붙은 곳은 아마 거의 다 찾아보았을 것이다. ..

사진속일상 2005.11.06

한 장의 사진(3)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발령받은 학교가 K여중이었다. 당시에는 대학 4년 동안의 성적순으로 발령을 냈는데 성적이 좋지 않았던 나는 정식교사로 발령을 받지 못하고 우선 임시교사로 이 학교에 근무하게 되었다. 지금으로 치면 기간제교사였던 셈이다. 그해 12월에 다른 학교로 정식 발령을 받았으니까 여기서는 약 6개월 정도 근무했었던 것 같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첫 직장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기억에 남는 학교이다. 부임하던 첫 날 교무회의 시간에 선생님들께 인사하던 내 모습이 선연히 떠오르는데 어느덧 벌써 30년이 흘렀다. 돌아보면 그때와 지금과의 거리가 한 호흡 간격만큼이나 짧게 느껴진다. 그때 내 자리는 시청각실이었다. 선배 선생님 한 분과 같이 있었는데 시청각기자재를 선생님들께 빌려주고 관리하는 일..

길위의단상 2005.11.05

행복 / 박세현

오늘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뉴스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국영방송의 초창기 일화다 나는 그 시대에 감히 행복이란 말을 적어넣는다 - 행복 / 박세현 정말 이런 시절이 있었을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만큼이나 지금은 황당하게 들린다. 그러나 요사이 쉴새없이 쏟아지는 뉴스의 내용이란 걸 살펴보면 왜 시인이 그 시대를 행복이라고 말했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이 시는 노장사상의 '무위(無爲)'를 떠올린다. 세상은 점점 유위(有爲)로넘쳐나고, 그 속에서 무위의 삶이란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도 생각해 보게 한다.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 결코 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개인의 행복은 사회 체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뉴스가 없는 세상은 불가능할까? 뉴스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사..

시읽는기쁨 2005.11.04

똥과 땅

모양이 닮은 글자는 필시 서로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사람’과 ‘사랑’, ‘님’과 ‘남’, ‘배우다’와 ‘비우다’ 같은 글자가 그렇습니다. 그런 글자 중에 ‘똥’과 ‘땅’이 있습니다. 우연히 닮았을 수도 있지만 똥이란 땅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서로가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자연 듭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밥 먹고 똥 싸는 일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왕후장상도 하루 세 끼 밥을 먹어야 하고, 똥 싸고 뒤를 닦아야 하는 것은 시골 무지렁이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집어삼키기만 하고 내보내지를 못한다면 며칠을 못가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종내는 죽음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점에서는 탐욕스런 현대 문명을 닮았습니다. 끊임없이 먹어치우기만 하고 나눌 줄은 모르는 문명은 ..

참살이의꿈 2005.11.03

창 밖의 가을

사무실 창 밖으로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여기는 북악산과 잇닿아 있어서 비록 산 속에 들지 않더라도 계절의 변화를 온 몸으로 느낄 수가 있다. 지금은 온갖 나무들이 차례로 가을물이 들면서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풍경을 가까이서 접한다. 봄이 생명의 축제며 존재의 기쁨을 노래하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반대로 소멸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주는 계절이다. 사람들은 가을 속에서 생각이 깊어지고 다들 철학자가 된다. 가을 산길을 홀로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다워 보이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쓸쓸함에는 분명 우리영혼을 울리는 아름다움이 있다. 뭐니뭐니해도 최고의 구경거리는 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구별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더 그러하다. 시각에 주는 즐거움은 말 할 필요..

사진속일상 2005.11.02

반계리 은행나무(2)

반계리 은행나무는 터에 가까이 있어서 앞으로 지나다니며 멀리서나마 자주 보게 된다. 가끔 마을로 들어가 가까이서 만나기도 한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 나무가 주는 인상이 무척 부드럽고 단아하다는 것이다. 마치 외딴 산골에 살고 있는 고운 처자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가까이서 나무 밑동을 보면 800년으로 추정되는 나이가 허튼 세월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800년 전이면 조선 왕조가 생겨나기도 훨씬 전이니긴세월의 연륜 앞에서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나이에 비해서는 지금도 무척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는 편이다. 안내문에 보면 이 나무는 예전에 이곳에 많이 살던 성주 이씨 가문에서 심었다고도 하고, 어떤 도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신 후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꽂아 놓고 간 것..

천년의나무 2005.11.01

민중의 세계사

누가 일곱 개의 성문이 있는 테베를 세웠는가? 책에서 그대는 왕들의 이름을 발견한다네. 왕들이 바위 덩어리를 끌어 날랐는가? 그리고 몇 번이고 파괴된 바빌론, 누가 바빌론을 몇 번이고 일으켜 세웠는가? 건설 노동자들은 금으로 번쩍이는 리마의 어느 집에 살았는가? 만리장성이 완성되던 날 밤에 석공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위대한 로마는 개선문으로 가득 차 있다네. 누가 그것들을 세웠는가? 시저는 누구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는가? 수많은 찬양을 받은 비잔티움, 그곳에 있던 것은 궁전뿐이었는가? 전설의 아트란티스에서조차 대양이 도시를 삼켜버린 날 밤에 사람들은 물에 빠져서도 자기 노예들한테 고함치고 있었다네. 청년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네. 그는 혼자였는가? 시저는 갈리아 사람들을 무찔렀다네. 그의 옆에는 요..

읽고본느낌 2005.10.31

무지개 모자

친구와 함께 올림픽공원을 산책했다. 동기의 딸 결혼식에 다녀온 길이었다. 가을꽃 전시장에도 들어가 보고,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며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이럴 때 친구에게서 옛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친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서로가 무척 반갑다. 오랜 친구는 손때 묻은 물건과 같다. 별로 실용적이지는 못해도 곁에 있으면 든든하고 흐뭇하다. 공원 내 호수의 분수가 무지개 모자를 썼다. 인간이 만든 여느 왕관보다 더 멋져 보였다. 마음 따뜻했던 가을 오후였다(10/23).

사진속일상 2005.10.31

요강나물

수도 없이 자주 만나게 되는 꽃도 있지만, 어떤 꽃은 한 번 본 뒤로 다시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꽃이 귀하거나 아니면 내가 부지런하지 못한 때문이겠지만 이 요강나물이 그러하다. 약 10년 전 광덕산에서 처음 보았는데 그 뒤로는 전혀 만나지 못했다. 그때 찍은 이 사진이 남아있지 않다면 꽃을 본 기억조차 사라졌을지 모른다. 요강나물은 색깔이 특이하다. 검은 색의 꽃은 이놈이 유일할 것 같다. 물론 완전한 검은색은 아니고 진한 갈색에 가깝지만 그래도 거의 검게 보인다. 다들 화려한 몸짓으로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데 요강나물은 왜 이런 어두운 색깔을 택했는지 궁금해진다. 이름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먹는 나물에 하필 요강이라는말을 갖다 붙이다니. 그런데 이 요강나물은 유독성 식물로 식용으로 하기에..

꽃들의향기 2005.10.29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난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

시읽는기쁨 2005.10.28

세월이 빠르다

한 해의 끝이 다가오니 시간은 어지러울 정도로 빨리 흘러간다.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 어느덧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함께 하는 시간이 짧아서 아쉽다. 우리들 인생도 분명 그러할 것이다. 놀이터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 모습이 어제의 나인데 벌써 머리에 서리가 내렸다. 인생의 나이도 가을이 되면 시간축의 기울기가 훨씬 가팔라진다. 한 해를 지나는 것이 한 달처럼 짧게 느껴진다.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 어린 시절 뛰어놀던 봄꿈이 아직 깨지도 않았는데 뜰 앞의 오동잎이 이미 가을소리를 전하는구나 주희(朱熹)의 권학문(勸學文)에 나오는 끝 구절이 입술에서 저절로 흘러나온다. 봄날 뜰에서 놀다가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벌써 가을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는 쓸쓸함이 지금의 내 심정..

길위의단상 2005.10.27

우리들의 호들갑

중국산 납 김치에 이어 이번에는 기생충 김치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얼마나 불안했으면 약국의 구충제가 다 동이 났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양식 어류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어 또 한 바탕 소동을 치루기도 했습니다. 어류건 가축이건 우리나라의 항생제 사용량은 위험 수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바로보는 세상에서 갈수록 제대로 된 먹을거리가 없어진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사실 이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공기와 물과 음식, 인간의 몸으로 출입하며 우리 몸을 구성하는이런 것들이 오염된다는 것은 인간 생존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무엇을 얻더라도 이것을 잃으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그러나 늘 이런 문제가 터지고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흥분하고 호들갑을 떨지만 진지하게 대..

참살이의꿈 2005.10.26

고마리(2)

가을이 되면 고향의 개울가와 들에는 고마리가 지천으로 피어났다. 고마리는 물을 좋아하는지 특히 물가에서 많이 자랐다. 동네에서 나오는 물이 흐르는 도랑은 이 고마리로 뒤덮였다. 얼마나 번식력이 좋았으면 '이젠 고만 자라거라'는 의미에서 고마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 풀을 잡초 취급하면서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흔하디 흔한 고마리가 가을이 되면 작은 꽃을 피운다. 한 송이에 많은 꽃송이가 다닥 다닥 달려있다. 꽃 색깔은 흰 색도 있고, 연한 분홍색도 있다. 군락으로 자라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작은 점들로 뒤덮인 꽃밭을 이룬다. 흰색 고마리 군락을 멀리서 보면 마치 메밀밭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고마리의 아름다움은 가까이 다가가서 봐야 한다. 꽃은 마치 보석을 깎아놓은 듯 맑고도 깔..

꽃들의향기 2005.10.25

아버지 / 윤재철

뇌졸증으로 쓰러져 의식이 점차 혼미해지면서 아버지는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기셨다 거기서 아버지는 몸부림치며 집으로 가자고 소리쳤다 링거 주삿바늘이 뽑히고 오줌주머니가 떨어졌다 남자 보조원이 아버지의 사지를 침대 네 귀퉁이에 묶어버렸다 나중에는 의식이 없어 아무 말도 못하면서 짐승처럼 몸부림만 쳤다 팔목이며 발목이 벗겨지도록 집으로 가자고 고향도 아니었다 집이나마나 창신동 골목길 셋방이었다 - 아버지 / 윤재철 작년 가을, 장인 어른이 돌아가셨다. 병원을 오가며 암 치료를 받으시다가 생의 마지막 날들은 집에서 보내셨다. 당신의 소원대로 당신의 방, 당신의 침대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셨다. 임종을 지켜본 모두들 평안한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만약 병원에 있었더라면 목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꽂..

시읽는기쁨 2005.10.24

검단산과 용마산을 종주하다

검단산과 용마산을 종주하다. 창우동-호국사-검단산-용마산-거문다리(10/22, 10:30-15:30) 하남에 있는 검단산(黔丹山, 657m)과 용마산(龍馬山, 596m)은 서로 이웃해 있는 산이다. 천천히 걸어서 1 시간 반 정도면 닿을 수 있는 두 산 사이의 능선길이 팔당호를 옆에 끼고 있어 아주 좋다. 나무들 때문에 전망이 열려 있지는 않으나 가끔씩나타나는 아랫 마을의 풍경이 시원하다. 검단산은 그 이름으로 봐서 백제 시대의 검단선사(黔丹禪師)와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추정된다고 하는데, 만약에 그런 유적이라도 나온다면 대단한 발견이 될 것 같다. 특히 검단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남한강과 북한강과 만나는 양수리 일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데 팔당댐으로 인해 거대한 호수로 변해 있다. 강을 따..

사진속일상 2005.10.23

인간은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가?

인간은 왜 환경을 파괴할까? 최근에 읽은 ‘이타적 유전자’라는 책에서는 그 이유를 인간 본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이라는 한 생물학자에 의해 명명된 ‘공동 소유의 비극’ 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예를 들면 원시인들이 매머드를 거의 멸종시키게 되었을 때 올바르게 행동하는 바보가 있었다고 합시다. 그는 ‘아니야, 나는 새끼를 밴 매머드는 죽이지 않겠어. 임신한 짐승을 해치는 것은 나쁜 일이야.’ 하고 생각하겠지만 그 어미 매머드를 발견한 다른 원시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살려준 매머드를 다른 원시인이 잡아 포식하는 마당에, 배를 곯며 기다리고 있는 가족에게 빈손으로 돌아가는 그는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입니까? 어느 한쪽의 자제가 다른 ..

참살이의꿈 2005.10.21

[펌] 세 이야기

구속 수사 이후 (도종환) 그 해 유월, 여름 햇살처럼 여론도 따갑게 끓어오르던 날 나는 교무실에서 성적표를 쓰고 있다가 다섯 명의 건장한 경찰들에 의해 끌려가 구속되었다. 벌레가 기어다니는 마룻장 날바닥에 앉아 밥을 먹었고, 변이 직접 내려다보이는 변기통 위에 앉아 하루 세 번 식기를 닦았으며, 사회적 이름을 빼앗긴 채 가슴에는 수인번호 376번이 달려 있었다. 검찰에 불려갈 때마다 거미줄에 날개를 묶인 곤충처럼 포승줄로 결박당하였다. 검찰 조사를 받는 시간보다 조사를 받기 위해 아침부터 하루 종일 결박당해 있는 것이 더 힘들었다. 반말로 이름을 부르고 내 시집 제목을 거론하며 비웃어대고 내가 무슨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특정집단의 사주를 받은 것처럼 몰아부칠 때면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길위의단상 2005.10.20

삼각산에 오르다

어제는 삼각산에 올랐다. 구기동-대남문-대동문-위문-우이산장-도선사-우이동, 10:00-16:00. 삼각산(三角山)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서로 이웃하며 삼각형을 이루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예부터 이 이름이 널리 쓰였으나 일제 시대 이후로 주로 북한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 다시 원래 이름인 삼각산으로 부르자고 산림청에서 정부지명위원회에 요청해 놓은 상태이다. 삼각산은 서울 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산이다. 연간 500만 명이 찾는다고 하니까 휴일이면 사람들로 포화 상태가 된다. 어제는 평일인데도 일부 구간에서는 잠시 기다려야 서로 교행을 할 수 있었다. 대남문에서 위문까지는 산성을 따라가며 걸었다. 길은 산성에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데 비슷한 고도라 힘들지 않으면서도 산길을 걷..

사진속일상 2005.10.19

사기리 탱자나무

강화도에는 두 그루의 천연기념물 탱자나무가 있다. 하나는 갑곶돈대 안에 있고, 또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 79호로 지정된 이 사기리 탱자나무이다. 마리산 등산로 입구이기도 한 함허동천에 조금 못 미처 도로 옆에 이 나무가 있다. 강화도는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라는데, 강화도 기후는 연평균기온 11도, 강우량 1000 mm 정도로 기온의 연교차가 작고 비교적 따뜻한 날씨여서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다고 한다. 강화도 탱자나무는 역사적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같이 간 동료의 얘기로는 약 400 년 전 봉림대군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을 쌓고 바깥쪽에 탱자나무를 심어 적의 접근을 막았다고 한다. 날카롭고 단단한 탱자나무 가시는 귀신도 물리친다고 하니 적병들 쯤이야 쉽사리 막아줄 수 있으리라는 믿..

천년의나무 2005.10.18

할머니는 마당에 붉은 고추를 / 채호기

할머니는 마당에 붉은 고추를 넌다 베지 않은 키 큰 옥수수나무가 서 있고 누렁 빛 들판에는 풍성한 예감이 있다 먼데 산이 선명하다 형은 펌프 옆에서 양말을 빨고 하, 참 이 가을엔 햇빛의 뼛속까지 보이는구나 - 할머니는 마당에 붉은 고추를 / 채호기 사무실 앞 가을 햇살 따스한 곳에서 동료들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뭘 하고 있느냐며 짐짓 물으니 광합성을 하고 있는 중이란다. 그 대답이 일품이다. 가을은 이 햇살과 하늘만으로도 더없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계절이다. 햇살은 투명하고, 하늘은 맑고, 대기는 청명하다. 이런 날은 인공 조명의 사무실을 벗어나 맑은 햇살 아래서 식물성 광합성이라도 하고 싶다. 모든 동물성 욕망은 잠재우고 저 맑고 투명한 햇살로 내 몸과 마음을 씻어내고 싶다. 표현 하나 때문에 특별..

시읽는기쁨 2005.10.17

가을걷이가 끝나다

고추, 피망, 꽈리고추, 토마토, 방울토마토, 아욱, 근대, 목화, 상추, 케일, 콩, 강낭콩, 서리태, 큰콩, 완두콩, 오이, 호박, 감자, 자주감자, 고구마, 옥수수, 머위, 취, 배추, 무우, 열무, 들깨, 더덕, 쑥갓, 가지, 파, 쪽파, 딸기.... 이것들은 올해 텃밭에 심었던 작물들입니다. 그 종류가 서른 가지가 넘습니다. 정말 농사라고 해야 할 정도로 종류로는 많이 심었습니다. 뭘 심어 놓고는 그렇게 열심히 다니느냐고 누가 묻길래 모든 것을 다 심어놓았다고 자신있게 대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것이나 이름을 대 보라고 했더니 정말 그 친구가 말하는 작물은 전부 제 밭에 있었습니다. 사실 이것들을 가꾸느라고 아내와 저는 주말이면 여기에 붙잡혀서 지냈습니다. 옆의 사람들이 너무 일만 ..

참살이의꿈 2005.10.16

한국인의 가치관

어제 중앙일보에는 한국인의 가치관을 조사한 결과가 실렸다. 특히 물질주의적 가치관과 탈물질주의적 가치관 중 어느 쪽에 속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를 조사하고 다른 나라의 결과와 비교한 것이다. 여기서 물질주의란 나라의 정책을 부국강병에 둬야 한다는 경제 우선주의적 태도를 말하고, 탈물질주의란 경제보다는 인간적 가치, 환경 등 탈인습적이며 문화주의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태도이다. 조사 결과는 응답자의 37%가 물질주의자로, 6%가 탈물질주의자로, 나머지 57%가 혼합주의자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이 결과는 비교 대상이 된 국가 중 중국 다음으로 물질주의자의 비율이 높은 것이었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는 거의 3 배 정도의 비율로 물질주의자들이 많았다. 스웨덴은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속한 사람이 6%밖에..

길위의단상 2005.10.15

남한산성의 가을꽃

명성산으로 억새 산행을 가는 동료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혼자 남한산성 길을 걷다. 가을산은 한 달쯤 계절이 빨리 오는 것 같다. 산길에는 벌써 낙엽이 땅을 덮고 있다. 지나가는 바람에 마른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금속이 닿은 것처럼 서늘하다. 산 위에서 고추를 안주로 막걸리 한 잔을 사 마신다. 가을 산길은 역시 혼자 걸어야 제 맛이 난다. 전에 남한산성 밑에서 살 때는 거의 매주 한 번씩 이 산을 찾았다. 크지 않은 산이지만 산의 구석 구석 모든 길이 발길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오랜 만에 찾으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나서 더욱 쓸쓸해진다. 여기는 현호색 군락이었고, 저기는 양지꽃이 예쁘게 피어있었었지. 또 산에 오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강제로 데리고오면 처음에는 투덜대다가 나중에는 얼굴이 밝아지곤 했었다. ..

꽃들의향기 2005.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