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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과 당구로 놀다

서울에 나가 오후 시간을 바둑과 당구로 놀았다. 기원 바둑은 3년 만, 당구는 5개월 만이었다. 길게 뜸했던 것은 코로나가 주원인이지만 다른 사연도 있었다. '勝固欣然 敗亦可喜' - 바둑 친구를 기다리면서 기원 벽에 걸린 글씨를 오래 바라보았다. 소동파의 '관기(觀棋)'라는 시에 나오는 문구인데 '이기면 응당 즐겁지만 져도 또한 기쁜 일이다'라는 뜻이겠다. 인생은 한 판의 바둑과 같다는 말이 있다. 바둑을 대하는 태도는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저런 마음가짐이라면 한탄하거나 서러워할 일이 많이 줄어들 것 같다. 오랜만의 바둑과 당구였지만 즐거운 줄은 모르겠다. 집에서 혼자서 노는 버릇이 되어선지 사람 북적이는 곳에 있는 게 피곤하다. 별 영양가치 없는 말을 들어줘야 하고 또 그런 말을 만들어내야..

사진속일상 2022.07.08

이젠 칠십인 걸

언제부턴가 집안에 파리랑 벌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작은 날벌레도 들어왔다. 파리채를 열심히 휘두르지만 감당하기 어려웠다. 텃밭을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러려니 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베란다의 방충망이 열려 있는 게 눈에 띄었다. 헐~, 그동안 한여름에 방충망 없이 산 것이었다. 둘 중 누군가가 방충망을 열고 난 뒤 닫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그런데 아무리 더듬어봐도 방충망을 연 기억이 안 났다. 나는 아니라고 서로 부정하면서 상대를 의심하는 티격태격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결론은 늘 같았다. "우리 나이가 얼마지?" "이젠 칠십인 걸!" 나이 70이 넘고 보니 삶의 패턴이 달라지고 있다. 심리적으로도 노인이라는 사실에 위축이 된다. 공식적인 노인의 기준은 65세지만 장수시대라서인지 그 나이에 노인은..

길위의단상 2022.07.06

마르코복음[50]

일행이 길을 걸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데 예수께서 앞장을 서시니 사람들은 놀라고 뒤따르던 이들은 두려워했다. 예수께서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고 당신께 닥칠 일들을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거기서 인자는 대제관들과 율사들에게 넘겨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인자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이방인들에게 넘겨줄 것입니다. 저들은 인자를 조롱하고 침을 뱉으며 채찍질을 한 다음 죽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자는 사흘 뒤에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 마르코 10,32-34 예수 운동은 예수의 예루살렘행 결단으로 대전환을 맞는다. 평화롭던 갈릴래아 시절이 끝나고 무대는 격동의 예루살렘으로 옮겨간다. 앞장선 예수를 따라가던 사람들이 놀라고 두려워했다는 기록에서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할..

삶의나침반 2022.07.05

횡성에 다녀오다

H가 소개해 준 집을 보기 위해 아내와 횡성에 다녀오다. 전원의 삶에 대한 꿈은 내면에 잠복하고 있다가 계기가 되면 활활 불타 오른다. 사그라지다가 바람을 만나서 살아나는 불꽃과 같다. 식겁을 한 쓰라린 경험이 있건만 전원에 대한 로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 현장에서 확인해 보니 터는 괜찮은데 주택은 미비한 점이 있었다. 전세를 얻어 주말 전원주택 개념으로 쓸 수 있다면 고려해 볼 수 있는 집이었다. 횡성을 오가면서 이젠 큰 판을 벌이기에는 내 나이도 한계에 이른 느낌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양평에서 새 집을 짓고 있는 지인에게 들렀다. 시골길에서는 멋진 전원주택들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저런 집을 갖고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사람살이의 행불행이 단지 집으로 결정되는 것은 ..

사진속일상 2022.07.04

여름밤 / 김용화

견우직녀 만난다는 칠석날 밤 감나무 아래 모깃불 올리고 떠꺼머리 총각들 모여 앉아 말미 받아 돌아온 머슴살이 성배 형 연애담을 듣노라면 별자리 돌아 밤은 깊어 산골짝 옹달샘 마을 처녀들 목욕하며 쫑알대는 소리 꺼벙이 노총각을 앞세워 조심조심 오리걸음으로 다가갈 때 자발없는 어느 놈, 킬킬대 판을 깨면 앙칼진 처녀들 목청은 밤하늘로 날아가 별이 되어 반짝이고 - 여름밤 / 김용화 마당에 멍석을 펴고 온 식구가 저녁 밥상을 마주한다. 매캐하면서 구수하기도 한 모깃불 연기가 바람 따라 식구들을 순서대로 만나고 지나간다. 엄마는 큰 양푼이에 보리밥과 푸성귀를 섞은 비빔밥을 만든다. 상 가운데는 된장찌개가 뽀글뽀글 끓고 있다. 풀벌레들은 하루를 마감하는 노랫소리로 요란하다. 저녁을 먹고 나면 남자들은 어디론가 흩..

시읽는기쁨 2022.07.03

서운한 감정에 관하여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고 한다. 천진난만해진다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좁은 세계에 갇혀 잘 삐진다는 걸 꼬집는 말이기도 하다. 삐진다는 건 서운한 감정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내 경우에도 전보다는 서운한 감정에 자주 휘말린다. 별 것 아닌 일인데 서운하게 느껴지고 새초롬해진다. 가만히 살펴보면 서운한 감정의 근저에는 상대에 대한 과한 기대가 있다. 상대의 탓이기보다 내 기대심이 자초한 것이다. 상대는 내 서운한 감정을 눈치채지 못할 가능성이 십중팔구다. 괜히 혼자서 안달하는 경우가 서운한 감정이다. 며칠 전에 영화를 보다가 모녀의 대화가 귀에 쏙 들어왔다. 어머니가 간암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딸은 돈이 없어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상태다. 딸이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아무것도 못 해 줘서 미안..

참살이의꿈 2022.07.02

탁구를 재개하다

탁구를 마지막으로 친 게 2019년 12월이었다. 그 뒤로는 코로나 때문에 탁구장에서 모일 수가 없었다. 꼭 2년 반 만에 탁구 모임이 재개되었다. 오랜만에 서울로 향하는 길이 설렜다. 장맛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이 열린 날이었다. 다들 2년 넘게 지나서 탁구 라켓을 잡았지만 곧 예전 실력이 나왔다. 운동 리듬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오전에 탁구를 치고 점심은 메밀국수를 먹고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햇빛이 눈부셨지만 자꾸만 하늘을 쳐다보게 된 날씨였다. 운동으로 땀을 흘리니 몸에 생기가 돈다. 오늘 만난 회원들한테서 사람들 만나고 몸을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는 충고를 들었다. 동네 탁구장에라도 등록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탁구 모임이 ..

사진속일상 2022.07.01

후배 집에 오가는 길

도시에 본 집을 두고 교외에 세컨드 하우스를 갖고 있는 사람이 부럽다. 후배 H가 그런 사람이다. 본인이 하는 일에 딱 맞는 전원주택을 양평에 갖고 있다. 약속 시간이 어긋나는 바람에 오가는 길에 시간 여유가 많이 생겼다. 집에서는 성당 반 모임이 있어서 일찍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덕분에 팔당호를 따라 난 342번 도로를 돌며 장맛비 속 드라이브를 즐겼다. 수청(水靑)나루터는 내가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다. 팔당댐이 생겨 수몰되기 전 강 건너편은 넓은 백사장과 갈대밭이 있었고, 수청나루터 부근은 바위 절벽으로 이루어져 경치가 아주 좋았다고 한다. 갈수기 때는 강을 걸어서 건너기도 했다니, 물이 가득 차서 호수가 된 지금은 옛날의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하기 힘들다. 안내문에는 수청리에 있는 예쁜 지명들이 ..

사진속일상 2022.06.30

천지가 다함이 있어도 시름은 다하지 않으니

"세계 평화를 위하여!" 젊었을 때 술자리에서 술잔을 부딪치며 자주 외쳤던 말이다. 젊은 날의 치기였을 망정 그 시절에는 세계와 평화를 언급할 정도로 스케일이 컸다. 요즈음 젊은이들과는 달랐다는 말이다. 물론 이 시대의 젊은이를 비난하고 싶은 심정은 조금도 없다. 도리어 각박한 생존 경쟁의 장에 어쩔 수 없이 내몰린 그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고담준론이 먹여 살려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마저 공개적으로 '교육부가 경제부처이며 대학은 산업 인재 양성을 해야 한다'라고 말할 정도이니 누구를 나무라겠는가. 7, 80년대에는 지금과는 성질이 다른 울분과 저항이 있었다. 그때는 대의(大義)를 논하고 이상을 좇던 시절이었다. 그럴수록 현실과의 괴리는 심해지고 지식인의 우울과 시름은 짙어졌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

참살이의꿈 2022.06.28

마르코복음[49]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 무릎을 꿇고 물었다. "선하신 선생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물려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왜 나를 선하다고 합니까? 하느님 한 분말고는 아무도 선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계명을 알고 있겠지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손해를 끼치지 말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가 말했다. "선생님, 그런 것은 소년 시절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눈여겨 보고 대견히 여기며 말씀하셨다. "한 가지가 모자랍니다. 가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시오.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터이니, 그렇게 하고 와서 나를 따르시오."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슬..

삶의나침반 2022.06.27

남원 가는 길 / 양애경

임실을 지나 남원 가는 길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면 조그만 동네에도 있을 건 다 있지 여기 살 수 있을 것 같지 북부농협에서 예금을 찾고 농협 상점에서 식료품을 사고 오수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며 당장 오늘부터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지 나는 넝쿨장미인지도 몰라 철사로 엮은 길가 담장에서 이제 막 무더기 무더기 피어나기 시작하는, 붉은 꽃 한 송이 송이로는 보이지 않고 초록으로 무성한 이파리들 사이에 중간 크기 붓으로 몇 군데 문질러 놓은 것 같은 사실 꽃 피어도 그다지 보는 사람은 없는 넝쿨장미로 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여기서 내려서 논두렁 옆 둑길 하나로 걸어들어가서 방 한 칸 얻고 편지를 쓰고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고 농협에 구좌를 트고 그리고 농협 상점에서 쌀 한 봉지 비름나물 한 묶음 ..

시읽는기쁨 2022.06.26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어쩌다 보니 연속으로 80세 넘은 작가의 에세이를 읽게 되었다. 나에게도 곧 다가올 80세 이후의 삶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크다고 하겠다. 이 책은 미국의 SF 작가인 어슐러 르 귄이 말년에 쓴 에세이다. 인생의 막바지에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올린 글을 모은 책이다. 이 분은 블로그에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블로그는 쌍방향성을 특징으로 하는데 자기는 내향적인 사람이라 낯선 사람들과 댓글로 대화를 나누는 게 너무 이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든여섯에 블로그에 글을 쓰는 사마라구 작가를 보고 생각을 바꿔 블로그를 하게 되었다. 작가는 블로그 글쓰기의 장점으로 자유로움을 든다. 사마라구처럼 독자들과 소통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 블로그 글쓰기다. 지난번 도널도 홀의 수필처럼 어슐러의 글에서도 노년의 지혜와..

읽고본느낌 2022.06.25

달무지개

자연/기상 현상에 관심이 많아서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자주 관찰하고 사진으로 찍고 했지만 '달무지개(moonbow)' 현상은 이번에 처음 들었다. 달무지개는 달무리와는 다른 현상이다. 일반적인 무지개는 아침이나 저녁에 비스듬히 기운 햇빛에 의해 생긴다. 대기 중에 떠 있는 물방울에 햇빛이 굴절하면서 분산되어 무지개 호가 나타난다. 여러 조건이 일치해야 하므로 흔히 보기는 어렵다. 달무지개는 말 그대로 달빛에 의해 생기는 무지개다. 달빛은 약하기 때문에 무지개가 생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폭포 주변 같이 물보라가 생기는 곳에서는 달빛으로도 무지개를 만들 여건이 되는 모양이다. 다만 달빛이 강한 맑은 날의 보름달이어야 하고 폭포에서 날리는 물보라가 많아야 한다. 그래도 사람 눈에는 흐릿한 회색의 ..

길위의단상 2022.06.24

3년 만의 모임

코로나로 못 만난지 3년 만에 한강회 모임을 송추에서 가졌다. 북한산 둘레길에 들어섰는데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하여 잠깐만 걷다가 돌아섰다. 등산로 입구에는 호우주의보가 내렸다며 입산 통제 입간판이 세워졌다. 사람은 처음과 마지막을 각별히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첫 발령을 받은 직장과 마지막에 명퇴를 한 직장에 유독 애정이 간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처음은 처음이라서, 끝은 끝이라서 그렇다. 한강회는 내 마지막 직장에서 만난 비슷한 또래의 동료들이다. 넷 중에 셋은 코로나를 피했고, 한 사람은 두 차례나 걸렸다고 한다. 그나마 쉽게 지나갔다니 다행이다. 점심 식사 후에 카페에 들렀는데 넓은 실내가 사람으로 바글바글했다. 나는 자꾸만 움츠러들었는데 이젠 코로나를 아무도..

사진속일상 2022.06.23

구성동 느티나무B

용인시 구성동행정복지센터 앞 도로변에 있는 느티나무다. 구내에 있는 싱싱한 느티나무와 달리 이 나무는 처참할 정도로 모양이 일그러지고 속살이 깎여 나갔다. 온갖 풍상을 견디고 이만큼 살아내는 모습이 대견하다. 이 정도 되면 나무 보호 차원에서 보형재를 채워주는데 이 나무는 그대로 두었다. 어쩌면 이게 더 자연스러운 모습일지 모르겠다. 가까이 다가가서 안을 들여다보니 줄기에 뚫린 구멍으로 하늘이 훤히 보인다. 90도로 꺾인 줄기가 언제 부러질지 불안하다. 도로 때문에 지지대를 못 세우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그냥 두는 건지 모르겠다. 나무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도로 등 나무의 생육 환경은 열악하다. 그러함에도 버텨내고 살아내는 생명력에 경탄하게 되는 나무다.

천년의나무 2022.06.22

구성동 느티나무A

용인시 구성동행정복지센터 구내에 있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다. 느티나무 주변은 주민들의 쉼터로 이용되면서 나무는 잘 관리되고 있다. 설명문에는 이 나무에 얽힌 전설이 적혀 있다. "옛날에 금실 좋은 부부가 살았는데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자 아내는 마을 어귀인 이곳에서 날마다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이 죽어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는데도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다 끝내 세상을 떴다. 마을 사람들은 아내의 사랑을 기려 이 자리에 느티나무를 심었다. 나무는 자라면서 한쪽 가지가 유난히 길어져 아내가 발돋움한 채 남편을 기다리는 모습과 닮아갔다." 나란히 선 두 나무를 보면서 전설을 보노라면 부부가 나무로 변해서 함께 백년 해로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무의 수령은 약 200년 정도다.

천년의나무 2022.06.22

스님이 선택한 죽음

며칠 전 연관(然觀) 스님의 영결식이 열렸다는 기사가 나왔다. 연관 스님은 불교계의 큰 어른이셨고, 특히 한문에 조예가 깊으셨다. 스님은 독거 수행승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1년에 8개월 정도는 선 수행을 하신 분이시다. 또한 도법, 수경 스님과 지구 환경과 생명 살리기 운동에 앞장서 참여하셨다. 스님이 화제가 된 것은 돌아가신 방식 때문이다. 돌아가실 때가 되었음을 인지하신 뒤에는 항암치료 대신 곡기를 끊고 물도 마시지 않으면서 마지막을 맞으셨다고 한다. 마지막 일주일 전쯤부터 곡기를 끊고 물과 차만 마시다가, 마지막 사흘간은 아예 물도 끊으셨다. 여느 사람들이 마지막에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과 달리 스님은 평생 수행을 해 온 분답게 입적 하루 전까지도 의식이 또렷했고, 찾아온 사람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고..

참살이의꿈 2022.06.21

꽃쥐손이

덕유산 향적봉에서 만난 꽃쥐손이다. 초여름 향적봉에는 여러 꽃들이 피어 있었는데 그중에서 꽃쥐손이가 개체수로나 모양으로나 제일 눈에 띄었다.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꽃쥐손이는 1,600m 고지인 여기가 최적의 환경이리라. 꽃쥐손이는 쥐손이풀과 중에서도 꽃이 크고 예뻐 특별히 이름 앞에 '꽃'이 붙은 것 같다. 덕유산에는 꽃쥐손이 외에도 다른 꽃이 많았다. 같은 꽃이라도 환경에 따라 조금씩의 변이가 생기는지 고산지대에서 만나는 꽃은 느낌이 달랐다.

꽃들의향기 2022.06.20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미국의 시인인 도널드 홀(Donald Hall)이 여든 이후에 쓴 에세이집이다. 처음 들어보는 시인이지만 나이에서 오는 노숙한 시인의 풍모가 글에서 느껴진다. 글은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면서 재미있다. 세상을 관조하는 마음의 여유가 부럽다. 지은이는 12세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70년 넘게 40권의 책을 출간했고 2006년에는 미국 계관시인의 칭호를 얻었다고 한다. 2010년에는 예술가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인 국가예술훈장을 받았다. 상을 받게 된 사연이며 에피소드가 책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시인은 2018년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는데 이 책에 실린 글은 그가 말년에 쓴 에세이다. 사망하기 직전까지 책을 읽고 펜을 놓지 않았다. 책 제목으로 쓰인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은 노년에 든 누구나 느끼는 감..

읽고본느낌 2022.06.19

녹음 속을 걷다

사람의 감정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맑은 날과 흐린 날의 상태는 완연히 다르다. 특히 비라도 오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멜랑콜리해진다. 당기는 음식이 달라지면서 소화 기능도 연동되어 있는 것 같다. 지난 며칠간은 날씨에 따라 희비의 진동폭이 컸다. 흐렸다 개였다를 반복하는 날, 뒷산에 올라 짙은 녹음 속을 걸었다. 습도가 높아 땀을 상당히 흘렸다. 그래도 바람이 시원했고 고개를 들면 환한 녹색의 나뭇잎이 살랑이며 반겼다. 뒷산의 털중나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피어났다. 청딱다구리 암수 한 쌍이 열심히 모이를 찾고 있다. 청딱다구리는 개미를 잘 잡아먹는다는데 소문대로 땅을 열심히 쪼고 있었다. 가까이 있는 나를 별로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이번에는 영상 위주로 뒷산을 기록해 봤다. 재미는 ..

사진속일상 2022.06.18

비 온 뒤 텃밭

그동안 가뭄이 길었다. 텃밭 작물의 잎 끝이 노랗게 변하면서 말라갔다. 페트병에 물을 담아 몇 차례 날랐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소꿉장난 텃밭이지만 비를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했다. 이번에 내린 비는 말 그대로 단비였다. 한자로는 '감우(甘雨)', 영어로는 'welcome rain'이다. 밭은 생기가 확 살아난 듯했다. 아내와 밭에 나가 즐겁게 몸을 놀렸다. 내 몫은 고랑에 난 풀을 뽑아주는 일이다. 가물어서 수확물이 시원찮지만 그래도 몇 가지를 거두어 왔다. 감자와 콩은 한 끼 먹을 정도만 가져와 저녁 반찬으로 맛있게 먹었다. 아삭, 하고 씹히는 금방 따온 싱싱한 오이도 달았다. 저녁 식탁은 텃밭에서 얻은 푸성귀로만 차려졌다.

사진속일상 2022.06.17

꽃 또는 절벽 / 박시교

누군들 바라잖으리, 그 삶이 꽃이기를 더러는 눈부시게 활짝 핀 감탄사기를 아, 하고 가슴을 때리는 순간의 절벽이기를 - 꽃 또는 절벽 / 박시교 멀리 있는 신기루에 홀려 발 밑의 꽃밭은 보지 못한 채 허덕이며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 내 삶이 꽃이고, 감탄사인 것은 아닐까. 나는 장님이어서 보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면 너무 많이 소유하고 지식이 넘쳐서 모든 것이 시시해진지도. '아, 하고 가슴을 때리는 순간의 절벽'에 서면 세상살이의 온갖 근심조차 꽃으로 알게 될까. 기쁨과 환희와 함께 근심과 시련의 꽃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진 아름다운 인생의 꽃밭을 보게 될까.

시읽는기쁨 2022.06.16

마르코복음[48]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려와서 어루만지시게 하려 하자 제자들이 나무랐다. 예수께서 보고 언짢아하며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도록 그냥 두시오. 막지 마시오. 하느님 나라는 이런 이들의 것입니다. 진실히 말하거니와 어린이처럼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코 거기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고는 어린이들을 껴안고 손을 얹어 축복하셨다. - 마르코 10,13-16 성경에 나오는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다. 이 어린이들 역시 몸이 성치 못한 아픈 아이들이었는지 모른다. 예수와 닿으면 병이 낫겠다는 부모의 바람으로 데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막았다. 그만큼 당시에는 어린이들이 존중은커녕 인간적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예수는 제자들의 행동을 언짢아하며 하느님의 나라는 어린이의..

삶의나침반 2022.06.15

바람 좋은 날에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쏟아져 들어온다. 하늘도 맑고 파랗다. 이런 날 집에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날씨의 유혹에 저항할 수가 없다. 작은 배낭을 메고 가벼운 걷기에 나선다.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는 기초 공사가 끝나고 1층이 올라가고 있다. 산길로 들어선다. 이쁜 산길이어서 뒤돌아 다시 갔다가 온다. 쉼터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해가 다르게 변한다. 모두가 근래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들이다. 내가 이사왔을 때 전부 공터였던 곳이다. 집을 저렇게 지어대는데도 집이 모자란다고 난리다. 세상 일은 참 불가사의하다. 산에서 내려와 경안천으로 향한다. 천 건너편의 아파트 역시 신축된 단지다. 이젠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아파트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내 일생은 우리 국토가 아파트로 뒤덮이는 걸 ..

사진속일상 2022.06.14

과학인문학

직장에 있을 때 후배 P가 있었다. 역사를 전공한 지적 호기심이 대단했던 후배였다. 수시로 나를 찾아와서 양자론에 대해 질문하는 통에 혼줄이 났다. 딴에는 물리를 공부했으니 시원한 대답을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도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하면 말이 길어지고 어려운 용어를 쓸 수밖에 없다. '시인과 함께 하는 물리학 산책'이라는 부제를 가진 은 드물게 시인이 물리학에 관해 쓴 책이다. 시인이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싶었는데 지은이인 김병호 선생은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시인이 된 분이었다. 물리학의 소양에 문학의 감성이 더해져서 '과학인문학'이라는 생소한 이름이 만들어졌다. "문학과 과학은 같은 곳에서 출발한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며 그 호기심을 밀고 나..

읽고본느낌 2022.06.13

삼공리 반송

전북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반송이다. 천연기념물이라는 영예에 어울리게 멋진 나무다.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언덕 위에 있는데 아름다우면서도 우람한 풍채가 대단하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서는 살짝 마을쪽으로 기울어져 보인다. 구천동을 상징하는 나무라서 구천송(九千松), 또는 만지송(萬指松)으로도 불린다. 이 반송의 나이는 약 200년쯤 되었고, 높이는 17m, 줄기 둘레는 5.3m다.

천년의나무 2022.06.12

무주 모임

무주에서 장모님의 구순 기념을 겸해 처갓집 형제들이 모였다. 불가피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두 가족이 빠져 단출해진 모임이 되었다. 숙소는 무주리조트 내 진달래동이었다. 둘째 날 오전에는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1,520m)에 올랐다. 걸음이 되는 사람은 내친김에 향적봉으로 향했다.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1,614m)은 설천봉에서 20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고산지대 날씨는 먹구름이 몰려왔다가 햇볕이 났다가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원래는 나 혼자 덕유산 등산을 하려고 했으나 궂은 날씨 예보 때문에 포기했다. 막상 비는 오후가 되어서야 내렸으니 일찍 나섰으면 지장이 없을 뻔했다. 향적봉에는 여러 꽃들이 있었지만 그중 함박꽃이 제일 눈에 띄었다. 오래된 주목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오후에는 무..

사진속일상 2022.06.11

하늘 좋은 날에

하늘 좋은 날이었다. 원래는 등산을 계획했지만 맘껏 하늘을 보고 싶어 시야가 넓게 트이는 물안개공원에 갔다. 청화한 초여름이 눈부셨다. 누가 말해줬지~ "비 좀 맞으면 어때. 햇볕에 옷 말리면 되지. 살아가는 게 슬프면 어때. 눈물 좀 흘리면 되지." 살다 보면 활짝 개이기도 하는 것을, 저 하늘처럼. 그때는 다 잊은 듯 껄껄 웃어주면 되는 것을. 넓은 물안개공원은 기이할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Que Sera Sera! 공원을 한 바퀴 돌고나니 마음이 조금은 가든해졌다. 건너편은 두물머리다. 당겨보니 두물머리 느티나무 주변으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저쪽은 볼거리 놀거리가 많겠지만 난 심심한 이쪽이 좋다. 근심 걱정은 어디서 오는가? 세상살이가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아무리 선한 바람..

사진속일상 2022.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