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7639

마르코복음[45]

요한이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 이름으로 귀신 쫓아내는 것을 보고 저희가 막았습니다. 그가 우리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말씀드리자 예수께서 이르셨다. "막지 마시오.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나서 곧 나를 욕할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대들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서 그대들에게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사람은, 진실히 말하거니와, 보상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 마르코 9,38-41 이 당시에 갈릴래아 지방에서는 예수의 이름을 사칭하며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예수의 명성이 높았음을 보여주는 사실이다. 제자 요한이 그들을 비난하자 예수는 다른 말씀을 하신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입..

삶의나침반 2022.05.06

어제 꾼 꿈

어젯밤에는 평상시와 다른 꿈을 꿨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이 핵전쟁을 위협해서인지 꿈에 핵전쟁이 벌어지고 세상의 종말이 오는 광경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송과 통신이 끊어지고 어떤 일이 벌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아파트에 갇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서는 전략폭격기들이 거대한 몸집을 끌고 동쪽으로 날아갔다. 근방에서는 핵폭탄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방사능에 오염된 공기가 몰려온다는 소문에 창문을 꼭 닫는 방법 외에는 대처할 수가 없었다. 공포 속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다가 꿈이 끝났다. 이어서 꾼 꿈은 앞의 것과 반대였다. 화창한 봄날 온갖 꽃이 만발한 어느 전원 가운데였다. 탐조를 온 외국인 몇 명이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필드스코프를 건네며 산 꼭대기에 있는 새들을 보라고 했다. 둥..

길위의단상 2022.05.05

이제 행복할 시간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불행과 행복의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아마 숱한 불행과 드문 행복이 불규칙하게 섞여 있을 것이다. 삶의 과정에서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가.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믿었던 친구의 배신, 타인에 대한 집착, 서로에 대한 오해 등 관계에서 오는 불행. 아픈 몸, 경제적 어려움, 불규칙한 생활, 밥벌이의 고단함, 일상의 권태 등 상황이 주는 불행. 걱정, 불안, 질투, 증오, 두려움, 죄책감, 자기 연민 등 온갖 감정이 일으키는 불행. 하다못해 날씨가 더워도, 길이 막혀도, 주위가 시끄러워도 삶은 괴롭다. 불행할 조건이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아서 인생의 기본값이 불행일 것 같은 때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불행 때문일까? 불행에서 벗어나면 행복해질 거라는..

참살이의꿈 2022.05.04

부용산길을 걷다

새로 개통한 경의중앙선 전철을 타 볼 겸 부용산을 찾은 것이 13년 전이었다. 그때는 국수역에서 출발해서 형제봉과 부용산을 거쳐 양수역까지 걸었다. 한여름이라 무척 힘들었다고 옛날 일기장에 적혀 있다. 이번에는 짧은 거리인 신원역에서 시작한다. 차는 양수역 주차장에 세워두고 전철로 신원역까지 이동했다. 이곳은 독립운동가였던 몽양 여운형(呂運亨, 1886~1947) 선생의 고향이다. 선생을 낳을 때 어머니가 꾼 태몽이 커다란 해를 품에 안는 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호가 '태양을 꿈꾼다'는 뜻의 몽양(夢陽)이 되었다. 당시 지명은 경기도 양근군 서시면 묘곡리(묘골)이고, 현재 지명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다. 부용산으로 가자면 묘골애오와공원과 몽양기념관을 지나야 한다. '묘골'은 지명이고 '애오와(愛..

사진속일상 2022.05.03

오래된 생각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2009년 5월에 고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유서다. 대통령이기 이전에 고뇌 속 한 인간이 남긴 마지막 말에 가슴이 짠해진다. 이 책은 대통령을 옆에서 모신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소설 형식을 빌려 쓴 노 대통령에 대한 회고 기록이다. 은 기득권 세력만 아니라 여권으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한 고독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말대로 육백 년 기회주의 역사를 청산하겠다고 대통령..

읽고본느낌 2022.05.02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멋진 경치를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속에 그리움 하나를 품고 있는 것일 게다. 그리움은 그가 내 옆에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결핍의 감정이다. 어쩌면 소유욕의 일종인지 모른다. 사전에서는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그리움 중에는 짝사랑 같은 일방통행식 그리움도 있고, 사람이 아닌 추상적인 대상에 대한..

시읽는기쁨 2022.05.01

전라감영 회화나무

전라감영(全羅監營)은 조선시대 전라도의 행정, 사법을 담당하던 관찰사가 근무하던 곳이다. 조선왕조 초부터 전주에 설치되어 약 500년간 존속하였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전북도청이 들어섰다가 2011년에 효자동으로 옮기면서 감영의 옛 모습을 복원중이다. 수령이 150년 정도인 이 회화나무는 남아 있는 감영의 유일한 흔적이다. 구 도청사 건물 철거 전에는 이 회화나무가 의회동 건물에 둘러싸여 있었다고 한다. 복원된 선화당(宣化堂)은 전라감사가 집무를 보던 곳이다. '선화(宣化)'는 임금의 높은 덕을 받들어 백성을 교화한다는 뜻이다. 1894년에는 전주성을 점령한 동학군이 이곳에 지휘본부를 설치했다. 이 회화나무는 역사의 격변 과정을 모두 지켜봤을 것이다.

천년의나무 2022.04.30

꽃지 튤립

매년 4월이면 태안 꽃지 해변에서 튤립 잔치가 열린다. 튤립 전시회로는 우리나라에서 최대 규모가 아닐까 싶다. 해가 갈수록 꽃으로 꾸미는 디자인이 발전해가는 느낌이다. 올해는 튤립으로 단장한 대형 양탄자가 눈길을 끌었다. 1시간 30분 정도 둘러보면서 꽃향기에 흠뻑 빠졌다. 산을 헤매며 숨어 피는 야생화를 찾는 재미도 있지만, 이렇듯 거대 풍경에 압도당하는 맛도 좋다. 입장료는 12,000원이다. 전주에서 집으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원래는 꽃지에서 일몰을 보려 했으나 미세먼지가 심해 대기가 뿌옇고 하늘이 밋밋해서 포기했다. 간월도를 지나면서 지는 해와 잠시 인사를 했다.

꽃들의향기 2022.04.30

저녁 산책

저녁을 먹고 주택가 골목길을 산책하다. 여기는 구시가지라 허름한 단독주택과 연립 형태의 집이 많다. 도로와 면한 곳은 정비가 되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6, 70년대의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정감이 가서 자꾸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게 된다. 초저녁인데도 벌써 인적이 끊어지고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눈에 띈다. 멀리서 웅웅거리는 자동차 소음 외에는 조용하다. 저 불빛이 환한 창은 어느 집 부엌인가 보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음식 냄새가 골목으로 흘러나온다. 잠시 발을 멈추고 음악을 감상하듯 눈을 감는다. 고시원 작은 방들에도 불이 들어와 있다. '청운의 꿈'이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푸른색의 구름이라는 청운(靑雲)은 젊은이의 야망을 표현한 아름다운 말이다. 우리 때는 많이 썼는데 요사이는 잘 ..

사진속일상 2022.04.29

수성당 유채꽃

부안의 수성당에 유채꽃밭이 있다. 바다를 옆에 끼고 있어서 노란색 유채꽃이 주변 풍광과 잘 어울리는 곳이다. 장모님을 모시고 바다 구경을 나온 길에 잠시 들렀다. 비가 오고 난 뒤에 잔뜩 흐린 날씨였다. 그래선지 유명세에 비해 찾은 사람이 별로 없어 한산했다. 수성당(水聖堂/水城堂)은 바다를 지키는 수성할머니라는 해신을 받들어 모시는 곳이다. 주민들은 매년 정월 초사흘에 수성당에 모여서 뱃길의 안녕을 위하여 치성을 드린다고 한다.

꽃들의향기 2022.04.29

완산칠봉 겹벚꽃

전주 완산칠봉에는 겹벚꽃 동산이 있다. 나뭇잎이 돋아나서 철이 살짝 지나긴 했지만 붉은색 영산홍과 어우러져 눈호강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벚꽃보다 늦게 피는 겹벚꽃은 꽃 모양이나 색깔이 풍성하고 화려하다. 벚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겹벚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냥 벚꽃이 훨씬 낫다. 겹벚꽃은 벚꽃이 지고 난 뒤에 아쉬움을 달래려고 한 바탕 잔치를 펼쳐주는 것 같다.

꽃들의향기 2022.04.28

성지(33) - 치명자 성지

성지 48. 치명자 성지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치명자산(致命者山)은 1801년에 순교한 유항검 일가의 합장묘가 있는 성지다. 원래 산 이름이 승암산(僧岩山, 중바위산)이었는데 김제에 가매장되어 있던 시신을 1914년에 이곳으로 옮겨 모시면서 치명자산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치명자는 순교자란 뜻이다. 산 정상부에 유항검(柳恒儉) 아우구스티노와 부인 신희(申喜), 둘째 아들 유문석(柳文碩), 조카 유중성(柳重誠), 제수 이육희(李六喜), 동정부부인 유중철(柳重哲)과 이순이(李順伊)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1801년 신유박해가 터지자 전라도에서 제일 먼저 체포돼 서울로 압송된 유항검은 대역부도죄로 능지처참형을 받고 전주감영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1801년 10월 24일 남문 밖에서 45세의 나이로 참수되었다...

사진속일상 2022.04.28

넌 누구니?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고양이를 가끔 만난다. 지하 주차장은 어둡고 따스하니까 고양이의 쉼터로 적당한 조건을 갖추었다. 차 보닛과 앞 유리창에 자주 찍히는 고양이 발자국이 이곳이 고양이 놀이터임을 잘 보여준다. 특히 보닛 위를 좋아하는 건 차 엔진의 온기 탓인 것 같다. 오늘은 무심코 운전석에 앉은 뒤 앞을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시커먼 놈이 날 노려보고 있어서였다. 처음에는 부엉이인 줄 알았는데 고양이였다. 갑자기 등장한 인간에 저도 놀랐음이 틀림없었다. "저놈은 뭐야?"라는 듯 째려본다. 눈싸움이 한동안 이어졌다. "야 인마, 이건 내 차야. 빨리 안 비킬래?" "누구 차든 여기는 내 구역이야. 방해하지 말고 니가 꺼져라." 녀석은 도무지 물러날 기미가 없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여러 장 찍..

사진속일상 2022.04.25

한 장의 사진(33)

대학생 때 사진이 별로 없다. 앨범에서 스캔해 둔 파일이 열 장이 채 안 된다. 그마저 앨범은 없어지고 해상도 낮은 파일로만 남아 있다. 이 사진은 대학생 때 내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 중 하나다. 저 때는 1972년, 대학 2학년 때가 아닌가 싶다. 서 있는 친구와는 대학 4년 동안 거의 붙어 있다 할 정도로 가까이 지냈다. 둘은 서로의 집을 번갈아 왔다갔다 했지만 친구가 우리집에 찾아오는 빈도가 더 높았다. 입은 옷을 봤을 때 늦겨울쯤 될까, 장소는 면목동 우리집이다. 내가 대학교에 들어가고 동생들이 모두 서울로 올라오면서 아버지는 면목동에 단독주택을 하나 마련했다. 주택 사업을 하던 아버지 친구분이 지은 집이었다. 우리 다섯 형제는 저 집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10년 넘게 살았다. 내 20대와 함께 한..

길위의단상 2022.04.24

마르코복음[44]

일행은 가파르나움으로 갔다. 집에 이르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그러나 그들은 잠자코 있었다. 길에서 자기네 가운데 누가 제일 큰 사람이냐를 두고 서로 다투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앉으신 다음 열두 제자를 불러놓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모든 이 가운데 말째가 되어 모든 이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어린이를 데려다 그들 가운데 세우고 껴안으며 말씀하셨다.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가운데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 마르코 9,33-37 공자에게는 안회가 있었고, 붓다에게는 가섭이 있었다. 무릇 스..

삶의나침반 2022.04.23

꽃 향기에 취해도 보고

이맘때 숲에 들면 꽃향기가 가득하다. 벚꽃이나 진달래 꽃잎은 떨어졌지만 향기의 여운은 아직 숲에 배어 있다. 아니면 새싹이 뿜어내는 향기인지 모른다. 나는 궁금해서 새로 돋아난 잎에 코를 바투 대 본다. 순한 뒷산길을 따라 느리게 걸었다. 이런 길을 걸으면 내 마음도 따라서 순해진다. 세상의 각박한 다툼이 사라지는 길이다. 길가에 있는 돌탑에는 지나갔던 사람의 소박한 염원이 담겨 있다. 사는 게 뭐 별 것 있겠는가. 돋아나는 초록잎, 그 사이로 살랑거리며 스치는 바람, 바람 따라 흘러가는 구름, 자연은 그렇게 살아가라고 하지 않는가. 고개를 들고 나무와 나무 사이의 빈 공간을 본다. 나무들은 무슨 신호를 보내면서 타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걸까. 숲은 조화의 세계다. 깔개가 있다면 나무 아래 오래 누워..

사진속일상 2022.04.22

레고로 만든 집

윤성희 작가는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레고로 만든 집'이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이 책은 그 이후에 쓴 소설을 모아서 펴낸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레고로 만든 집'을 포함해 아홉 편이 실려 있다. 그중에서 역시 가장 눈길을 끄는 소설은 '레고로 만든 집'이었다. 작가의 첫 작품이라 더욱 꼼꼼하게 읽어 보았다. 사지마비가 된 아버지와 장애인 오빠를 돌봐야 하는 주인공은 대학교 앞 복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게 살아간다.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해서 집을 날린 뒤 쓰러지고, 어머니는 전세금을 빼서 도망가버렸다. 낡고 작은 아파트에서 그녀는 부엌에서 잠을 자며 아무 희망 없이 살아간다. 그녀는 너무 가난하고 쓸쓸하다. 작가의 소설에는 이런 주인공들이 자주 나온다. 주인공은 사람이..

읽고본느낌 2022.04.21

예빈산 소나무

예빈산 직녀봉으로 가다가 만난 소나무다. 모습이 범상치 않아 눈이 휘둥그레졌다. 산에서 이런 소나무를 만나는 일은 드물다. 나무는 몸통에서 줄기가 셋으로 갈라져서 지면과 나란히 퍼졌다. 땅 경사와 비슷한 게 흥미롭다. 나무에 대한 설명이 없어 수령은 알 길이 없으나 최소 100년은 넘어 보인다. 보호수로 지정해도 마땅할 것 같다. 소나무 주변에는 남산제비꽃이 군데군데 피어 있다.

천년의나무 2022.04.20

예빈산에 오르다

팔당의 예빈산(禮賓山)은 예봉산과 마주 보고 있다. 직녀봉과 견우봉의 두 봉으로 되어 있는데, 주봉인 직녀봉의 높이가 590m다. 예전 같으면 예봉산과 예빈산을 연계해서 걸었을 텐데 이젠 하나만 고른다. 일흔이 넘으니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 분수를 알아야지 욕심 내고 무리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래도 이만한 게 어딘데, 하며 스스로 대견해한다. 와부제4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곡을 따라 산에 든다. 계곡은 예봉산과 예빈산을 가르는 경계다. 입구에서부터 여러 봄꽃들이 반겨준다. 예봉산은 꽃이 많이 피는 산이다. 꽃을 살피느라 발걸음은 느리다. 예빈산 정상부에는 아직 진달래가 한창이다. 북쪽으로 예봉산의 강우 관측 레이더가 보인다. 디지털 30배로 레이더를 당겨 보았다. 화면 가득 담기지만 ..

사진속일상 2022.04.20

어서 빛으로 일어나 / 이해인

주님 일어나십시오 돌무덤에 갇혀 있던 어둠을 밀어내고 어서 빛으로 일어나 우리에게 오십시오 죽음의 깊은 잠을 떨치고 일어나신 당신의 기침소리에 온 우주는 춤추기 시작하고 우리는 비로소 나태의 깊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힘으로 온 인류를 일으켜 세우신 그리스도여 죄를 뉘우쳐 눈이 맑아진 기쁨으로 오늘은 부활하신 당신의 흰 옷자락을 붙들고 산을 넘고 싶습니다 절망의 벼랑 끝에서도 끝내는 아름답게 피워 올린 자목련 빛 사랑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추어 둔 향기를 아낌없이 쏟아내는 4월의 꽃나무들처럼 기쁨을 쏟아내며 우리는 모두 부활하신 당신을 닮고 싶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생명의 수액을 뿜어올리는 생명나무이고 싶습니다 어서 빛으로 일어나 우리에게 오십시오 - 어서 빛으로 일어나 / 이해인 그저께 ..

시읽는기쁨 2022.04.19

한 장의 사진(32)

살다 보면 누구나 삶의 분기점을 통과한다. 짧은 인생이지만 몇 번의 고비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험난한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그것이 어떤 봉우리인지는 넘을 때는 잘 알지 못한다. 세월이 흐르고 지나온 길을 멀리서 조망하게 될 때 삶의 매듭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긴 능선길을 걷고 나서 뒤를 돌아볼 때 지나온 산봉우리들의 모양과 높이를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에게도 몇 차례 파고가 밀려왔는데 그중 하나가 30대 중반에 경험했던 디스크 수술이었다. 아마 1986년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디스크 수술이 간단하지만 -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라 불릴 만큼 - 그 시절에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허리를 절개하고 칼로 디스크를 잘라내는 재래식 방법밖에 없던 때였다. 수술 후 재발하는 경우도..

길위의단상 2022.04.18

행복한 외톨이

외톨이는 어감이 좋지 않다. 왕따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사랑스러운 말이다. 타인이야 뭐라고 생각하든 말든 혼자의 자족을 즐긴다면 그 또한 멋진 인생이 아니겠는가.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외톨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오히려 외톨이가 되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른다.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고 좋다면 굳이 밖에서 찾으려고 쏘다닐 필요가 없다. 무리를 짓고 어울리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도 있다. 인생에서 친구와 돈이 중요하다고 믿는 부류다. 그런 사람에게는 외톨이가 된다는 것은 비극일지 모른다. 시간 낭비일 망정 마시고 떠들어야 사는 맛이 난다. 지나고 나서 뭔가 허전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순간의 쾌락이지 내면의 참 행복은 아니다. 일과 인간관계를 무시하자..

참살이의꿈 2022.04.17

뒷산과 시내 야경

며칠간 바람 불고 비 흩뿌리며 봄날이 궂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개였다. 아침을 먹고 상쾌하게 뒷산에 오르다. 식사를 하고 바로 나와선지 오르막 산길에서 몸이 무겁다. 한창 초록색 옷으로 단장 중인 뒷산은 봄 향기로 가득하다. 여기저기에 아직 산벚꽃이 남아 있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네요." 산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다. 코로나 시절이 되면서 산길 인사가 줄어들었는데 오늘은 아니다. 이런 날의 산길 걷기는 마냥 설레고 행복하다. 저녁에는 시내에 나간 길에 S22의 야경 테스트를 해 보았다. S22 카메라의 특장 중 하나가 야경 사진이라고 해서 기대가 컸다. 장면에 따라 노이즈가 눈에 거슬리는 사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ISO가 굉장히 올라가고 셔터 타임이 느려질 텐데 이 정도..

사진속일상 2022.04.16

텃밭 울타리를 보수하다

아내는 텃밭 얘기를 할 때면 눈에 이채(異彩)가 돈다. 그만큼 텃밭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텃밭보다 더한 애정의 대상은 손주다. 손주한테서 전화가 오면 아내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는 더 올라간다. 텃밭 울타리를 보수했다. 전에는 대충 둘러쳐 놓아서 보기에 좋지 않았는데, 이번에 밭 전체를 사람 키 높이로 둘러쌌다. 굳이 경계를 지을 필요가 있는지 물었지만, 사람들이 밭 안으로 들어와 밟고 다녀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볼 때 영역 표시는 동물의 기본 본능이 아닌가 싶다. 씨를 뿌린 땅에는 상추만 작은 초록잎을 내밀었을 뿐 아직 뚜렷한 소식이 없다. 파가 자라는 이랑에는 주인공보다 풀이 더 무성하다. 짐짓 모른 체 해찰하다가 곧 풀 뽑는 아내 일을 도와주었다. 지저분한 걸 못 보는 성미라 이러다가..

사진속일상 2022.04.15

구경꾼들

도서관에서 윤성희 소설가의 책을 세 권 빌려 왔다. 구할 수 있는 작가의 책은 모두 읽어볼 예정이다. 작가의 작품을 연속으로 읽어 볼 생각을 갖게 한 것은 얼마 전에 만났던 이었다. 그때 느낌이 강렬하여 윤성희 소설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윤성희 소설가의 작품은 짧은 에피소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게 특징이다. 그러면서 이야기들이 통일된 구도 아래 부드럽게 이어져 나간다. 이번에 읽은 은 장편소설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구경꾼들인지 모른다. 소설가 또한 진지한 세상의 구경꾼일 것이다. 책 제목대로 작가는 구경꾼의 시선으로 애틋한 한 가족의 삶을 그려낸다. 은 '나'의 성장소설이면서 '나'의 관점에서 바라본 가족 서사다. 이 가족은 외조모를 포함해서 9명이다. 조부모, 부모, 삼촌 ..

읽고본느낌 2022.04.14

마르코복음[43]

일행은 거기서 떠나 갈릴래아를 지나갔는데, 예수께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셨다. 실은 제자들을 가르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자는 사람들 손에 넘겨지고 사람들이 그를 죽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자는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 뒤에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고 묻기조차 두려워했다. - 마르코 9,30-32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다. 이 부분은 예수의 말씀이 아니라 마르코복음의 기자가 포함된 초대교회의 케리그마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수의 생애와 전체 말씀의 맥락을 살펴볼 때 예수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내다보았다고 볼 근거가 없다. 복음서에 삽입된 부활 예고 장면은 생뚱맞게 등장한다. 제자들조차 이 말씀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했다고 마르코는 적는다. 그렇다면 예..

삶의나침반 2022.04.13

아내와 봄길 드라이브

아내와 봄길 드라이브에 나섰다. 우선 벚꽃을 보기 위해 집에서 멀지 않은 남종면의 한강변 벚꽃길로 향했다. 그러나 초입인 분원리로 진입하는 길이 막혔다. 우리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가 보다. 대타로 경안천습지생태공원으로 방향을 돌렸다. 낮 기온이 30도 가까이 올라가는 초여름 날씨였다. 서울은 벚꽃이 지지만 여기는 이제 한창이다. 서울 사람들이 올해의 마지막 벚꽃을 보기 위해 이곳으로 찾아온다. 점심은 천서리에서 막국수로 맛나게 먹었다. 수육을 첨가했다. 외식은 꼭 두 달만이다. 이젠 코로나의 기세가 꺾였으니 조금은 자유롭게 행동해도 될 것 같다. 식당은 평일인데도 사람으로 가득하고 대기표를 뽑아야 했다. 식당 안에서도 술 마시고 떠들며 거침이 없다. 나는 자꾸 몸이 움츠러들었다. 식사 후에..

사진속일상 2022.04.12

성내천 벚꽃(22/4/11)

성내천 벚꽃을 보러 가기 위해 강변역에서 버스를 내려 잠실철교를 따라 난 보도를 걸어서 건넌다. 이쪽 동네는 전에 살았기 때문에 어느 길이나 익숙하고 정겹다. 잠실철교 보도도 자주 건너다닌 길이다. 낮 기온이 25도까지 올랐다. 젊은이들 중에서는 반팔 옷차림도 가끔 눈에 띈다. 20년 전에 성내천 옆에 직장이 있었다. 성내천은 내 출퇴근길이었고, 일과 중에도 시간이 비면 즐겨 산책하던 곳이었다. 그때 벚나무를 심기 시작했는데, "얘들이 언제 커서 제대로 벚꽃 구경을 할까"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은 벚꽃 터널을 이루었다. 벚꽃은 이미 많이 떨어졌고, 나무에는 꽃들 사이로 초록잎이 보인다. 성내천은 올림픽공원과 연결된다. 몽촌정(夢村亭) 주위의 벚꽃이 제일 화사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손님이 몇 ..

꽃들의향기 2022.04.11

외출 / 허향숙

먼지처럼 쌓이는 말들을 털어내고 싶었다 시부모 때문에, 남편 때문에 불쑥불쑥, 시루 속 콩나물처럼 올라오는 말들을 거미줄 치듯 집 안 곳곳에 걸어두곤 하였다 하고 싶은 말 혀 안쪽으로 밀어 넣고 이빨과 이빨 사이 틈을 야물게 단도리하곤 하였다 이말산 근처 산자락 근방 카페 창가에 앉아 나만을 위하여 브런치 세트를 주문한다 해종일 하늘을 보다가 빽빽이 들어찬 허공의 고요를 보다가 인체 혈관 3D 사진 같은 한 그루 나무를 보다가 우듬지로 올라간 빈 둥지를 보다가 빈 둥지 같다는 생각을 들여다보다가 카페에 여자를 벗어놓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어머니로 갈아입는다 - 외출 / 허향숙 요사이 윤성희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다. 소설과 이 시의 분위기가 닮은 데가 많다. 인생에서 상심(傷心)은 늘 함께 하는 것이 ..

시읽는기쁨 2022.04.10

사도세자 회화나무

영조 38년(1762년) 5월에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8일 동안이나 뒤주 속에 가둬 죽게 했다. 창경궁 문정전(文政殿) 뜰에서였다. 그때 비극의 현장을 지켜보았던 두 그루의 회화나무가 있다. 그중 하나는 줄기가 뒤틀리는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도세자의 비명을 들은 나무가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이런 모양을 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일명 '사도세자 회화나무'다. 이 나무는 문정전에서 100여m 쯤 떨어진 선인문 앞 금천 옆에 있다. 실제로 사도세자가 갇힌 뒤주는 문정전에서 이곳으로 옮겨졌고, 사도세자는 이 나무 부근에서 절명했다고 한다. 문정전에 더 가까이 있는 또 다른 회화나무 역시 온전한 모양은 아니다. 둘 다 궁궐에서 자라는 나무의 형태로는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인다. 사람들이 사도세자의 비..

천년의나무 2022.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