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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43]

일행은 거기서 떠나 갈릴래아를 지나갔는데, 예수께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셨다. 실은 제자들을 가르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자는 사람들 손에 넘겨지고 사람들이 그를 죽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자는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 뒤에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고 묻기조차 두려워했다. - 마르코 9,30-32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다. 이 부분은 예수의 말씀이 아니라 마르코복음의 기자가 포함된 초대교회의 케리그마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수의 생애와 전체 말씀의 맥락을 살펴볼 때 예수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내다보았다고 볼 근거가 없다. 복음서에 삽입된 부활 예고 장면은 생뚱맞게 등장한다. 제자들조차 이 말씀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했다고 마르코는 적는다. 그렇다면 예..

삶의나침반 2022.04.13

아내와 봄길 드라이브

아내와 봄길 드라이브에 나섰다. 우선 벚꽃을 보기 위해 집에서 멀지 않은 남종면의 한강변 벚꽃길로 향했다. 그러나 초입인 분원리로 진입하는 길이 막혔다. 우리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가 보다. 대타로 경안천습지생태공원으로 방향을 돌렸다. 낮 기온이 30도 가까이 올라가는 초여름 날씨였다. 서울은 벚꽃이 지지만 여기는 이제 한창이다. 서울 사람들이 올해의 마지막 벚꽃을 보기 위해 이곳으로 찾아온다. 점심은 천서리에서 막국수로 맛나게 먹었다. 수육을 첨가했다. 외식은 꼭 두 달만이다. 이젠 코로나의 기세가 꺾였으니 조금은 자유롭게 행동해도 될 것 같다. 식당은 평일인데도 사람으로 가득하고 대기표를 뽑아야 했다. 식당 안에서도 술 마시고 떠들며 거침이 없다. 나는 자꾸 몸이 움츠러들었다. 식사 후에..

사진속일상 2022.04.12

성내천 벚꽃(22/4/11)

성내천 벚꽃을 보러 가기 위해 강변역에서 버스를 내려 잠실철교를 따라 난 보도를 걸어서 건넌다. 이쪽 동네는 전에 살았기 때문에 어느 길이나 익숙하고 정겹다. 잠실철교 보도도 자주 건너다닌 길이다. 낮 기온이 25도까지 올랐다. 젊은이들 중에서는 반팔 옷차림도 가끔 눈에 띈다. 20년 전에 성내천 옆에 직장이 있었다. 성내천은 내 출퇴근길이었고, 일과 중에도 시간이 비면 즐겨 산책하던 곳이었다. 그때 벚나무를 심기 시작했는데, "얘들이 언제 커서 제대로 벚꽃 구경을 할까"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은 벚꽃 터널을 이루었다. 벚꽃은 이미 많이 떨어졌고, 나무에는 꽃들 사이로 초록잎이 보인다. 성내천은 올림픽공원과 연결된다. 몽촌정(夢村亭) 주위의 벚꽃이 제일 화사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손님이 몇 ..

꽃들의향기 2022.04.11

외출 / 허향숙

먼지처럼 쌓이는 말들을 털어내고 싶었다 시부모 때문에, 남편 때문에 불쑥불쑥, 시루 속 콩나물처럼 올라오는 말들을 거미줄 치듯 집 안 곳곳에 걸어두곤 하였다 하고 싶은 말 혀 안쪽으로 밀어 넣고 이빨과 이빨 사이 틈을 야물게 단도리하곤 하였다 이말산 근처 산자락 근방 카페 창가에 앉아 나만을 위하여 브런치 세트를 주문한다 해종일 하늘을 보다가 빽빽이 들어찬 허공의 고요를 보다가 인체 혈관 3D 사진 같은 한 그루 나무를 보다가 우듬지로 올라간 빈 둥지를 보다가 빈 둥지 같다는 생각을 들여다보다가 카페에 여자를 벗어놓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어머니로 갈아입는다 - 외출 / 허향숙 요사이 윤성희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다. 소설과 이 시의 분위기가 닮은 데가 많다. 인생에서 상심(傷心)은 늘 함께 하는 것이 ..

시읽는기쁨 2022.04.10

사도세자 회화나무

영조 38년(1762년) 5월에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8일 동안이나 뒤주 속에 가둬 죽게 했다. 창경궁 문정전(文政殿) 뜰에서였다. 그때 비극의 현장을 지켜보았던 두 그루의 회화나무가 있다. 그중 하나는 줄기가 뒤틀리는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도세자의 비명을 들은 나무가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이런 모양을 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일명 '사도세자 회화나무'다. 이 나무는 문정전에서 100여m 쯤 떨어진 선인문 앞 금천 옆에 있다. 실제로 사도세자가 갇힌 뒤주는 문정전에서 이곳으로 옮겨졌고, 사도세자는 이 나무 부근에서 절명했다고 한다. 문정전에 더 가까이 있는 또 다른 회화나무 역시 온전한 모양은 아니다. 둘 다 궁궐에서 자라는 나무의 형태로는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인다. 사람들이 사도세자의 비..

천년의나무 2022.04.09

창경궁의 봄

전 직장 동료들이 창경궁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 내심 벚꽃을 구경할 수 있겠다고 좋아했다.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바꾸면서 벚꽃을 없애긴 했으나 춘당지 부근에는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과 이삼 년 전에 춘당지에서 화려한 벚꽃을 본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직접 가 보니 착각이었다. 창경궁에는 벚나무가 드물 정도로 없다. 춘당지의 기억은 벚꽃이 아니라 가을 단풍이었다. 벚꽃은 귀해도 창경궁의 봄은 따스했다. 열 달만에 만난 동료들의 얼굴도 반가웠다. 나는 사진을 찍는답시고 동선이 다르게 움직였다. 이번에는 봄을 즐기는 사람들을 넣어 보았다. 한 분은 코로나 자가격리 중이라 못 나오고 여섯이 모였다. 다음주에 고향 어머니를 찾아갈 예정이라 나는 점심도 같이 못 하고 헤어졌다. S22 자랑을 하면서 ..

사진속일상 2022.04.09

시드는 창덕궁 홍매

아직까지 창덕궁 홍매가 절정인 때는 보지 못했다. 늘 조금씩 시기가 틀어졌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름은 홍매(紅梅)인데 지금은 때가 지나 탁해진 살구색이다. 밑에 있는 화사한 연분홍 진달래 색깔에 치인다. 그래도 나름의 기품이 있다. 꼭 절정만 고집할 필요가 있겠는가. 빠르면 빠른대로, 늦으면 늦은대로 그 시기의 매력이 있는 법이다. 사람 또한 다르지 않으리라. 창덕궁 삼삼와(三三窩) 앞에 있는 이 매화는 겹꽃이다. 그래서 별칭이 만첩홍매(萬疊紅梅)다. 내년이 될지,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너의 가장 화려한 반짝임을 볼 수 있는 때가.

꽃들의향기 2022.04.08

날마다 만우절

윤성희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날마다 만우절'을 비롯해 11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날마다 만우절'은 소설가가 뽑은 '올해의 소설'에 선정된 작품이다. 다른 작품들도 그에 못지않게 뛰어나다. 윤성희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왜 이제야 읽게 되었을까, 아쉽게 생각될 정도로 소설은 흡인력이 강하면서 잔잔한 울림을 준다. 주인공은 주로 여성들인데 이들이 펼치는 인간사가 애잔하고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걸 담아내는 소설가의 담백한 시선이 인상적이다. 속도 빠른 짧은 장면에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다. 나는 11편의 소설 중에서 '어느 밤'이 제일 인상 깊었다. 한밤중에 킥보드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쓰러진 여성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내용이다. 칠순을 앞둔 주인공은 남편이나 딸로부터 소..

읽고본느낌 2022.04.07

한 장의 사진(31)

내가 형님으로 부르는 박용도 선생님은 면목중학교에서 만났다. 그때 면목중학교는 막 개설된 학교였는데 형님은 개설요원으로 미리 발령받아 새 학교가 문을 여는 준비를 맡았고, 나는 3월의 정규 발령으로 갔다. 개설 학교의 첫 해는 학생이 1학년밖에 없으니 선생이라야 30명 남짓이어서 가족 같은 분위기다. 그래서 개설 학교에서 맺은 인연은 오래가는 편이다. 40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동료들은 아직까지도 만나고 있다. 지금은 다들 70대의 할아버지가 되어 있다. 면목중학교는 첫해에 신입생이 입학했지만 교사(校舍)가 완성되지 않아 청량중학교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가을이 되어서 장안동의 새 건물로 이사를 갔다. 면목동에 없는 면목중학교여서 면목이 없다고 우리는 농담을 했다. 형님은 체육을 전공했고 학교 업무에서도 중..

길위의단상 2022.04.06

원미산 진달래(22/4/5)

소문으로만 들었던 부천의 원미산 진달래 구경을 갔다. 꽃친구 Y와 함께였다. 원미산 진달래는 이제 만개 상태에 들어갔다. 이번 주말과 다음주까지는 절정을 이룰 것 같다. 두 시간 정도 눈 호강을 실컷 했다. 분홍 물결을 너무 타서 멀미가 날 정도였다. 진달래는 역시 군락을 이루어야 더 아름답다. 여러 가지로 심란한 2022년의 봄이지만 꽃 속에 묻혀 있는 동안에는 행복했다.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더라고, 연초록 잎사귀들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가만히 있어도 연초록 물이 들 것 같더라고, 남편은 원미산을 다녀와서 한껏, 봄소식을 전하는 중이었다. 원미동 어디서나 쳐다볼 수 있는 길다란 능선들 모두가 원미산이었다. 창으로 내다보아도 얼룩진 붉은 꽃무더기가 금방 눈에 띄었다." 을 쓴 양귀자의 소설에 나오는..

꽃들의향기 2022.04.05

예봉산 노루귀

산길을 걷다가 우연히 노루귀를 발견했다. 이런 걸 횡재라고 해야 하겠지. 지금 시기에 예봉산에서 노루귀를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다행히 똑딱이가 있어서 부족하나마 고운 자태를 담아 보았다. 친구에게 예봉산에서 노루귀를 만난 얘기를 했더니 이런 시를 보내 주었다. 유년 시절의 고향 동무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지리산 형제봉이 또렷이 보이는 강 언덕에 앉아 눈시울에 방울방울 맺힌 추억을 양지바른 언덕에 두고 왔더니 겨울을 잘 견딘 청노루귀가 보송보송 그리움의 솜털 꽃대를 올려 자줏빛 울음을 운다네 자줏빛 울음을 운다네 - 청노루귀 / 정순영

꽃들의향기 2022.04.04

13년 만에 예봉산에 가다

예봉산은 집에서 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데, 어쩌다 보니 다시 오르는 데 13년이 걸렸다. 왜 그렇게 잊어버렸는지 나도 모르겠다. 10년이 넘으니 예전에 걸었던 산길은 까마득히 멀어져 갔고, 주위를 둘러보지만 처음 찾아온 길인 것 같다. 와부제4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 들머리로 향했다. 날은 맑았지만 시야는 뿌옇게 흐렸다. 중턱을 넘었을 때 시야가 트인 곳이 나왔다. 밑에 팔당역과 팔당대교가 보이고, 강 건너편은 하남시다. 산 정상에는 강우 관측 레이더가 설치되어 있다. 산 아래와 관측소를 연결하는 궤도가 깔려 있어 차량이 운행한다. 인접한 관악산에도 기상 레이더가 있는데 서로 기능이 다른가 보다. 어쨌든 환경 훼손은 피할 수 없다. 북쪽으로 보이는 서울은 흐릿했다. 재미로 셀카를 찍어보았다. 새..

사진속일상 2022.04.04

봄날은 온다

벚꽃을 기준해서 봄의 절정을 삼는다면 중부지방은 봄이 오고 있는 중이다. 아직 새벽 기온은 0도에 이를 정도로 차다. 올해는 예년보다 꽃 피는 시기가 일주일 정도 늦어서 중부지방 벚꽃은 이제 꽃봉오리가 벌어지고 있다. 잠실에 나간 길에 짬을 내 석촌호수에 들렀다. 벚꽃은 성질 급한 몇 그루에서만 보일 뿐이었다. 그래도 휴일이어선지 산책로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꽃 핀 나무를 힘들게 찾아서 롯데타워를 배경으로 몇 장 찍어 보았다. 둘씩 셋씩 동무해서 나온 젊은이들이 대다수였다. 평일이 되면 산책 나오는 연령대가 달라질지 모른다. 새로 산 휴대폰의 하이퍼랩스를 사용해 보았다. 코로나 시대라서일까, 사람들은 꽃에 더욱 굶주린 것 같다.

꽃들의향기 2022.04.03

흔들리며 흔들거리며

탁현민 씨가 쓴 여행 수상집이다. 글을 쓴 시점이 문재인이 대선에 패배했던 직후인 2013년이다. 문재인 캠프에서 일한 탁현민 씨는 패배의 충격으로 파리에서 석 달간 자발적 유폐 생활을 한다. 이때의 감상을 글로 적어서 책으로 냈다. 탁현민 씨는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이 당선된 후 이름을 알게 되었다. 뛰어난 공연 연출가로 중요한 대통령 행사를 지휘했다. 대표적인 게 남북 정상이 만난 판문점 회동이다. 고식적인 형식을 탈피한 파격적인 연출이었다. 금방 남북 화해가 이루어질 듯 가슴을 뛰게 했으나 지나고 보니 결과는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당시 야권에서 보여주기식 쇼는 그만두라고 했는데 일부 맞는 말이기도 했다. 에는 선거 결과에 상심한 한 사람의 솔직한 심정이 담겨 있다. 나도 그때 허탈한 기분을 달..

읽고본느낌 2022.04.02

새 이랑을 만들고 비닐을 씌우다

옥수수를 심을 새 이랑을 만들었다. 돌밭이라 작년에는 놀리던 땅이었는데 올해는 울타리를 겸할 양으로 옥수수를 심으려고 아내는 욕심을 낸다. 머슴인 나야 마나님 하라는 대로 따를 뿐이다. 고민을 하지 않으니 심간이 편하긴 하다. 몸만 움직여주면 된다. 어설프긴 하나 비닐까지 다 씌웠다. 아내를 살펴보니 여자에게는 경작 본능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여자의 쇼핑 욕구도 경작 본능의 일부분이지 싶다. 경작 본능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대인은 쇼핑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식물을 가꾸는 일이 자식을 키우는 것과 여러 모로 닮아 있다. 며칠 전에는 길을 가다가 밭 옆에서 두 할머니가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밭일을 하는 게 너무 재미지다는 것이다. 나는 밭에 억지로 끌려 나가는 편이지만 할머니의 말에..

사진속일상 2022.04.01

버릇 / 박성우

눈깔사탕 빨아먹다 흘릴 때면 주위부터 두리번거렸습니다 물론, 지켜보는 사람 없으면 혀끝으로 대충 닦아 입 속에 다시 넣었구요 그 촌뜨기인 제가 출세하여 호텔 커피숍에서 첨으로 선을 봤더랬습니다 제목도 야릇한 첼로 음악을 신청할 줄 아는 우아한 숙녀와 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그만 손등에 커피를 흘리고 말았습니다 손이 무지하게 떨렸거든요 그녀가 얼른 내민 냅킨이 코앞까지 왔지만서도 그보다 빠른 것은 제 혓바닥이었습니다 - 버릇 / 박성우 위층에 사는 올빼미 덕분에 깜짝 놀라며 잠이 깼다. 자정이 갓 넘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되면 잠잠해지는 2시까지는 쉬이 잠들지 못한다. 라디오를 틀었더니 진행자가 이 시를 소개해 주었다. 그래, 이런 재미있는 시를 만났으니 오늘밤은 올빼미도 용서해주마. 궁금한 건 첼로 아가씨..

시읽는기쁨 2022.03.31

그 시절의 상춘

서울에서 6, 70년대 상춘(賞春) 장소는 창경원이 유일했다. 해마다 벚꽃 철이 되면 창경원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밑의 사진 같은 모습은 그나마 질서가 잘 잡힌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서울에 올라왔고, 그래서 60년대 후반의 창경원의 봄을 기억한다. 그때 살던 곳이 돈암동이어서 걸어서 창경원까지 갔다. 어느 해 봄에는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가 올라오셔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함께 창경원 벚꽃놀이에 간 기억이 난다. 얼마나 상춘객이 많았는지 꽃구경이 아니라 사람 구경이었다. 당시 창경원 안에는 동물원과 놀이기구가 있는 유원지도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종합 놀이공원이었던 셈이다. 당시 사진을 보면서 옛 추억에 잠겨본다. 청춘남녀들에게는 창경원 밤 벚꽃놀이가 더 인기였다. 아마 나이 지긋하신 분들..

길위의단상 2022.03.30

히어리

흥미로운 이름을 가진 꽃이다. 순수한 우리말이라는데 무슨 뜻인지는 검색해 봤지만 분명하지 않다. 귀한 꽃이었지만 요사이는 관상용으로 많이 심어선지 이른 봄이면 흔하게 볼 수 있다. 더 일찍 피는 납매와 많이 닮았다. 해여림 빌리지에서 봤다. 올괴불나무꽃.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린 수변공원에는 산수유가 한창이었다. 매화는 이제 막 개화를 시작하고 있다.

꽃들의향기 2022.03.29

남한산성 성곽 한 바퀴

남한산성 성곽을 한 바퀴 돌았다. 걷는 겸해서 새로 산 갤럭시 S22U 카메라의 성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다른 카메라 없이 휴대폰만 달랑 들고 걸으니 단출해서 좋았다. 출발은 남한산성 동문이었다. 언제나 쉼터가 되어 준 동장대터였는데 벤치는 모두 철거했다. 집에서 기른 고양이로 보이는데 누군가 버리고 간 걸까,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애절하게 쳐다보며 운다. 산길에서 10배 망원으로 서울과 북한산을 당겨 보았다. 셀카도 찍어 보았다. 이발 안 한지 석 달이 지났고, 수염 안 깎은지도 보름이 넘어 몰골이 말이 아니다. 남한산성 성곽은 전체 길이가 12km에 이른다. 뱀이 기어가듯 산허리를 따라 꿈틀대며 나아간다. 산 아래 마을은 하남시 춘궁동이다. 북문을 지나면서 대로가 나오고 사람들도 많아졌다. 서문 ..

사진속일상 2022.03.28

다읽(16) - 과학혁명의 구조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책은 대학생이었을 때 필독서였다. 그때 번역서가 나왔는지, 아니면 원서로 도전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완전히 읽어내지는 못했다. 읽어야 한다는 책이지만 읽지는 못하고 뒤로 남겨진 책이었다. 토머스 쿤(T. S. Kuhn)의 는 워낙 자주 인용되는 책이라 내용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다. 읽지 않고도 무얼 말하는지 한 마디쯤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 책으로 인해 유명해진 단어가 '패러다임(paradigm)'이다. 과학의 한 분야는 패러다임이라고 불리는 뛰어난 성취를 통해 정상과학에 진입한다. 일단 정상과학이 되면 이 패러다임을 확장하고 명료화하는 방향으로 과학은 발전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거나 해결할 수 없는 변칙현상이 일어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읽고본느낌 2022.03.27

지금 내 손에 있는 카메라가 가장 좋은 카메라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일지라도 장롱 안에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 내 손에 있어 언제라도 들고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가장 좋은 카메라다. 휴대폰 카메라의 최대 장점이다. 일반 카메라 중에서 휴대성이 좋은 것은 일명 똑딱이로 불리는 하이엔드 카메라다. 주머니에 들어갈 크기지만 이 역시 항상 휴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휴대폰 카메라의 성능이 향상하면서 똑딱이가 설 자리는 점점 축소되고 있다. 최근에는 카메라 제조사에서 하이엔드 신제품은 아예 출시를 안 하고 있다. 휴대폰 카메라의 사진 품질은 아직 똑딱이에 미치지 못하지만 부족한 부분은 소프트웨어로 상당 부분 카버하고 있다. 화장발이기는 하지만 색감은 똑딱이보다 휴대폰 카메라가 훨씬 낫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장점은 카메라가 언제나 내 옆에 있다..

사진속일상 2022.03.26

마르코복음[42]

일행이 제자들에게 돌아와서 보니, 많은 군중이 둘레에 모여 있고 율사들이 그들과 시비를 벌이고 있었다. 군중이 모두 예수를 보고 몹시 놀라 달려와서 인사드렸다. 예수께서 "저들과 무슨 시비를 벌이고 있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군중 가운데서 한 사람이 대답했다. "선생님, 벙어리 영이 붙은 제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습니다. 어디서고 이 영이 아이를 사로잡으면 거꾸로뜨리는데, 아이가 거품을 내뿜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선생님 제자들에게 그놈을 쫓아내 달라고 했으나 그들은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아, 믿음이 없는 세대로다. 내가 언제까지 당신들과 함께 있어야 한단 말이오? 언제까지 당신들에게 시달려야 한단 말이오? 아이를 데려오시오." 사람들이 아이를 데려왔다. 영이 ..

삶의나침반 2022.03.25

임사선(臨死船) / 다니카와 슌타로

모르는 사이에 저승행 연락선을 타고 있었다 제법 붐비고 있다 늙은이가 많지만 젊은 사람도 있다 놀랍게도 아기의 모습도 드문드문 보인다 혼자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겁에 질린 것처럼 서로 붙어 있는 남녀도 있다 저승에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이대로 이 배 위에서 흔들리고 있기만 하면 된다면 너무 편하다 하고 생각했으나 왠지 허전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는지 잘 모른다 죽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마음이란 원래 그런 것이었는지 문득 위를 올려다봤더니 여기에도 하늘이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한 초가을의 늦은 오후의 빛이다 바랜 청색을 아련한 주황색이 베일처럼 덮어 있다 깰 것 같으면서도 깨지 않는 꿈 같다 배는 낮고 고풍스러운 기관음을 내고 달린다 저승이 아직 멀었나 옆에서 노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시읽는기쁨 2022.03.24

16년 만에 만난 동강할미꽃

2006년에 처음 동강할미꽃을 만났으니 16년 만에 다시 보게 된 귀한 꽃이다. 동강은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건만 물경 16년이나 걸렸다. 전에는 꽃친구와 함께 광하리 동강변을 갔었는데, 이번에는 운치리 동강변을 찾았다. 광하리는 도로 옆이라 접근하기 쉬웠는데, 운치리는 강변 돌길을 따라 한참 동안 걸어가야 했다. 그 또한 즐거운 과정이었다. 동강할미꽃은 여러 색깔이 있지만 이번에는 보라색과 홍자색을 볼 수 있었다. 동강할미꽃은 생김새나 색깔이 다양하다. 역시 제일 큰 특징은 허리를 구부리지 않고 꼿꼿이 서 있다는 점이다.

꽃들의향기 2022.03.23

봄 오는 동강

코로나에 답답한 시국이 더해져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정선 동강으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아내와 함께 했다. 동강을 선택한 것은 이맘때 피어나는 동강할미꽃을 보기 위해서였다. 영월을 경유하여 찾아간 정선 동강은 맨 먼저 나리소전망대의 풍경이 반겨주었다. 강변에는 그저께 내린 잔설이 아직 남아 있었다. 강가에 내려가니 괴불주머니와 냉이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버들강아지의 뽀얀 솜털도 반짝였다. 강변길에는 바람에 날려온 비닐조각이 나무에 걸려 있어 볼성사나웠다. 농사짓는데 쓰이는 비닐을 제대로 수거하지 않아 어디를 가나 이렇듯 비닐 공해다. 농민의 의식이 우선이지만 안 될 때는 국가에서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것 같다. 멀리서 보는 것과 달리 가물어서인지 강물도 이끼가 많고 탁했다. 동강할미꽃을 보자면 저..

사진속일상 2022.03.23

손주와 산책

코로나에서 벗어난 손주한테 찾아가서 집 주변을 함께 산책하다. 두 주 전에 제 어미가 밖에 나갔다가 코로나에 걸리고 손주도 따라서 감염되었다. 둘은 열흘 정도 격리 생활을 했다. 이제 회복되었지만 맛 감각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코로나에 걸려서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손주는 반대로 싱글벙글이다. 학교와 학원에 안 가고 엄마와 종일 함께 있으면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니 신이 날 만도 하다. 내일부터 학교에 가야 한다니까 시무룩해진다. 손주는 동네에 사는 고양이들과 친구가 되어 있다. 먹이가 든 봉지를 들고가니 서너 마리가 다가온다. 얘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는 걸 보니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들 같다. 먹이가 탐나서인지 산길까지 따라온다. 손주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난다. 할아버지한테는 손주에..

사진속일상 2022.03.21

막달라 마리아: 부활의 증인

막달라 마리아를 보는 시각이 신선한 기독교 영화다. 부제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다. 신약성서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죽음을 지킨 여인으로 나온다. 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또 여자들도 먼 데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 마르코 15,40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를 모신 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 마르코 15,47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의 몸에 발라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 마르코 16,1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뒤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는데, 그는 예수..

읽고본느낌 2022.03.20

의좋은 형제

비록 사진이지만 1960년도 초반에 사용된 국민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를 봤다. 시기를 맞춰 보니 내가 썼었을 교과서여서 감회가 깊었다. 책 내용 중에 '의좋은 형제'가 있었다. 60년 전이라 가물하지만 이 이야기를 국민학생일 때 접했던 기억은 난다. 그런데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렸었다는 건 새롭게 알았다. 철부지 시절에 이 일화가 주는 의미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했을까. 그 옛날의 나를 떠올리며 다시 읽어본다. 옛날 어느 시골에 형제가 의좋게 살고 있었습니다. 형제는 같은 논에 벼를 심어서 부지런히 김을 매고 거름을 주어 잘 가꾸었습니다. 벼는 무럭무럭 자라서 가을이 되자 곧 벼를 들이게 되었습니다. "형님. 벼가 잘 되었지요. 이렇게 잘 여물었어요." "참 잘 되었다. 언제 곧 베어야 할 거야." 누..

참살이의꿈 2022.03.19

술과 바닐라

작년에 나온 정한아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술과 바닐라'를 포함해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작가는 이제 막 40대에 들어섰는데 이런 젊은 여성 작가의 글에서는 신선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좋다.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인생의 스산한 면을 드러내어 쓸쓸하다. 특히 일과 육아의 무게에 짓눌린 결혼한 여자의 삶을 사실 그대로 잘 그려낸다. 작가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 같다. 거실에 걸린 화사한 가족사진은 빙산의 드러난 부분일 뿐, 수면 밑의 차가운 진짜 세계를 작가는 가차 없이 재현해 낸다. 일곱 편 중에서 눈에 띈 것은 '기진의 마음'이었다. 기진은 남편과 어린 두 아들을 둔 유방암 투병을 하는 주부다. 이 세상에서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암 환자의 마음이 잘 드러난 소설이다. 남편이나 자식, 친구..

읽고본느낌 2022.03.18

겨울옷 벗은 강물을 바라보다

요 며칠 동안 감정 소비가 컸다. 지난주에 실시한 대통령 선거 후유증이다. 동기 단톡방에서 논쟁이 일었고, 결국 방에서 나와 버렸다. 더 이상 조롱과 비아냥을 보고 있기 어려웠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문재인 머저리는 노무현처럼 뛰어내리지도 못할 거야." "윤석열 대통령이 좌파 연놈들을 조지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통쾌하다." 몇 차례 자제를 부탁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이 나라를 공산주의로 몰고가려 한 죄과는 받아야 한단다. 무릎 꿇고 반성부터 하란다. 다른 동기들은 침묵하고 나만 반대 목소리를 내다가 그만 뛰쳐나와 버렸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였다. 원래는 수리산 변산아씨를 만나려 했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수난을 겪는다는 보도를 보고 마음을 돌렸다. 대신 넓고 유장한 강물이 보고 싶었다. 날..

사진속일상 2022.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