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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꽃을 보러 가자 / 최성현

다섯,혹은 열 번에 한 번쯤이라도꽃이 아니라꽃잎이 지는 것을 보러 가자 뽐내지 마라교만하지 말라죽은 날이 있다는 걸 알라고떨어지는 꽃잎이 그대에게 말하리라 내려갈 때가 있다고떨어질 때가 있다고잃을 때가 있다고꽃잎은 지며 그대에게 말하리라 있을 때 잘하라고,건강할 때 조심하라고,잃기 전에 베풀라고,땅에 떨어진 꽃잎이 그대에게 말하리라 사는 재미가 없을 때는피는 꽃이 아니라지는 꽃을 보러 가자 죽음이 언제 그대를 데려갈지 모르니즐겁게 살고감사하며 살라고지는 꽃잎이 그대에게 말하리라 - 지는 꽃을 보러 가자 / 최성현  자연농 농부인 선생은 30대 초반에 귀농해서 30년 이상 자연농법으로 자급자족 규모의 논밭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청년 시절에 자연농법을 만나 인류가 갇혀 있는 거대한 우물을 보는 경험을 ..

시읽는기쁨 2024.08.16

땅에 쓰는 시

우리나라 제1세대 조경가인 정영선 선생이 직접 나오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는 선생이 만든 정원과 자택을 중심으로 사계절에 걸친 풍경을 통해 선생의 조경 철학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선생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영화에 나오는 장소를 통해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가를 알게 되었다. '땅에 쓰는 시'에서 제일 긴 시간 동안 소개되는 장소가 선유도공원이다. 아마 선생의 대표작인 것 같다. 선유도공원은 근처에 위치한 직장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앞마당처럼 드나들었던 곳이다. 옛날 정수 시설을 그대로 활용해서 만든 공원이라 특이하다 여겼는데 정영선 선생의 작품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선유도공원만 봐도 선생의 조경에 대한 생각이 어떠한지를 감잡을 수 있다. 또 하나는 여의도샛강생태공원이..

읽고본느낌 2024.06.07

맑고 바람 좋은 날

노동절 연휴의 끝, 맑고 바람 좋은 5월의 첫날이었다. 오랜만에 뒷산에 오르지만 발걸음이 가벼웠다. 지금은 신록(新綠)을 지나 성록(盛綠)의 계절을 앞두고 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도 여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런 날은 내 마음도 하늘 높이 올라가는 풍선이 된다. 하늘 높은 데서 지상을 내려다보면 그저 아름답기만 한 지구별이 아닐까. 안녕, 하고 손을 흔들며 끝없이 끝없이 올라가보고 싶다. 꽃들은 서로 화내지 않겠지 향기로 말하니까 꽃들은 서로 싸우지 않겠지 예쁘게 말하니까 꽃들은 서로 미워하지 않겠지 사랑만 하니까 비가 오면 함께 젖고 바람 불면 함께 흔들리며 어울려 피는 기쁨으로 웃기만 하네 다불어 사는 행복으로 즐겁기만 하네 꽃을 보고도 못 보는 사람이여 한철 피었다 지는 꽃들도 그렇..

사진속일상 2023.05.02

마지막 변산바람꽃

수리산에 핀 변산바람꽃을 처음 본 건 15년 전이었다. 병목안 계곡을 따라 작은 꽃밭이 펼쳐진 광경은 넋을 잃을 정도로 황홀했다. 바람 따라 살랑거리는 가녀린 변산아씨는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 뒤로 3월 초순이면 수리산을 찾아 변산바람꽃과 만났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소문이 나고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변산바람꽃은 사람의 발길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나중에는 눈을 부릅떠야 겨우 몇 송이를 만날 수 있었다. 너무 안타까워 더는 찾아갈 수가 없었다. 지금은 어떤 상태일까 궁금증이 일어 어제 수리산 그 장소를 찾아갔다. 찾는 사람 없이 입구가 조용한 걸 보니 예상대로 변산아씨가 사라진 게 분명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들어가 봤지만 역시 변산바람꽃은 없었다...

꽃들의향기 2021.03.04

꽃으로 세상을 보는 법

구성이 재미있는 책이다. 꽃을 주제로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인 두 친구가 얘기하듯 이야기를 풀어낸다. 전공이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이 같지 않으니 같은 꽃이라도 보는 관점이 다른 건 당연하다. 두 사람의 글을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이 흥미롭다. 을 쓴 사람은 이명희와 정영란 선생이다. 한 분은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다른 분은 약학을 공부했다.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는데 성인이 되어서 이런 공통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부럽다. 함께 책을 만들면서 둘은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두 분이다.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세상 만물이 스승 아닌 것이 없다. 거기에 애정이 더해진다면 친구면서 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두 분에게 꽃과 나무는 그러한 존재일 것 같다. 부제가 ..

읽고본느낌 2021.02.09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우리 땅에 있는 식물은 19세기 후반부터 서양과 일본 학자들에 의해 채집, 정리되기 시작했다. 우리 손으로 우리 식물을 연구할 기회가 없었고, 외국인들 손에 의해 조사된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했다. 그중에서도 일본 제국주의의 흔적이 제일 많이 남아 있다. 우리 고유 식물 527종의 학명에 나카이(Nakai)를 비롯한 일본인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 327종이나 된다. 무려 62%에 달한다. 슬픈 역사의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지금 부르는 식물 이름도 일본 이름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많다. 그래서 우리 정서와 동떨이진 이름이 되었다. 예를 들면, 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같은 이름은 일본말에 더럽혀진 대표적인 경우다. 식민지 시대의 한계라고 하기에는 너무 슬픈 일이다. 만약 우리 식물학자에 의해 주체적으..

읽고본느낌 2019.05.05

꽃을 보는 법 / 복효근

꽃이 지고 나면 그뿐인 시절이 있었다 꽃이 시들면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던 시절 나는 그렇게 무례했다 모란이 지고 나서 꽃 진 자리를 보다가 알았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다섯 개의 씨앗이 솟아오르더니 왕관 모양이 되었다 화중왕花中王이라는 말은 꽃잎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란꽃은 그렇게 지고 난 다음까지가 꽃이었다 백합이 지고 나서 보았다 나팔 모양의 꽃잎이 지고 수술도 말라 떨어지고 나서 암술 하나가 길게 뻗어 달려있다 꽃가루가 씨방에 도달할 때까지 암술 혼자서 긴긴 날을 매달려 꽃의 생을 살고 있었다 꽃은 그러니까 진 다음까지 꽃이다 꽃은 모양과 빛깔과 향기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랑이 그러하지 않다면 어찌 사람과 사랑을 꽃이라 하랴 생도 사랑도 지고 난 다음까지가 꽃이다 - 꽃을 보는..

시읽는기쁨 2018.10.28

가난한 꽃 / 서지월

금빛 햇살 나려드는 산모롱이에 산모롱이 양지짝 애기풀밭에 꽃구름 흘러서 개울물 흘러서 가난한 꽃 한 송이 피어납니다 나그네가 숨이 차서 보고 가다가 동네 처녀 산보 나와 보고 가다가 가난한 꽃 그대로 지고 맙니다 꽃샘바람 불어오는 산고갯길에 고개 들면 수줍은 각시풀밭에 산바람 불어서 솔바람 불어서 가난한 꽃 한 송이 피어납니다 행상 가는 낮달이 보고 가다가 동네 총각 풀짐 놓고 보고 가다가 가난한 꽃 그대로 지고 맙니다 - 가난한 꽃 / 서지월 가난은 결핍이 아니라 충만이다. 더 바랄 것이 없으니 자족의 기쁨이다. 누가 봐주든 말든 상관 없다. "복되어라,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라 말한 예수의 뜻도 비슷하지 않을까. 인간 세상에서는 욕망의 꽃밭이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다. 뭇 사..

시읽는기쁨 2018.09.23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하는가 / 예창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 세상 환하게 밝히고 사람 살맛나게 하는 것이 살뜰한 인정말고 또 있던가 그러나 말 좋아하는 사람들이여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말하지 말라 꽃이 꽃을 속이던가 꽃이 꽃의 것을 빼앗던가 꽃이 꽃을 죽이던가 장미가 되겠다는 풀꽃이 있던가 모란이 호박꽃을 깔보던가 아침에 피는 나팔꽃이 밤에 피는 박꽃을 비웃던가 꽃은 저마다 꽃답고 꽃답게 사느니 그러므로 모든 꽃은 진실로 아름다운 것 사람 세상에 꽃처럼 사는 이가 얼마나 된다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하는가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하는가 / 예창해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들으면 거북하다. 뇌는, 그렇지 않아, 라고 계속 중얼거리기 때문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역설적인 절규처럼 들리는 건 나만의..

시읽는기쁨 2018.07.22

꽃피는, 삼천리금수강산 / 황지우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미아리 점쟁이집 고갯길에 피었습니다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파주 인천 서부전선 능선마다 피었습니다 백목련꽃이 피었습니다 방배동 부잣집 철책담 위로 피었습니다 철쭉꽃이 피었습니다 지리산 노고단 상상봉 구름 밑에 피었습니다 라일락꽃이 피었습니다 이화여자대학 후문 뒤에 피었습니다. 유채꽃이 피었습니다 서귀포 앞 남마라도 산록에 피었습니다 안개풀꽃이 피었습니다 망월리 무덤 무덤에 피었습니다 망초꽃이 피었습니다 동두천 생연리 봉순이네 집 시궁창에 피었습니다 수국꽃이 피었습니다 순천 송광사 명부전 그늘에 피었습니다 칸나꽃이 피었습니다 수도육군통합병원 화단에 피었습니다 백일홍꽃이 피었습니다 태백산 탄광 간이역 침목가에 피었습니다 해바라기꽃이 피었습니다 봉천동 판자촌 공중변소 문짝 앞에 피었습니다 ..

시읽는기쁨 2018.04.14

봄바람난 년들 / 권나현

보소! 자네도 들었는가? 기어이 아랫마을 매화년이 바람이 났다네 고추당초보다 매운 겨우살이를 잘 견딘다 싶더만 남녘에서 온 수상한 바람넘이 귓가에 속삭댕께 안 넘어갈 재주가 있당가? 아이고~ 말도 마소! 어디 매화년 뿐이것소 봄에 피는 꽃년들은 모조리 궁딩이를 들썩이는디 아랫마을은 난리가 났당께요 키만 삐쩍 큰 목련부터 대그빡 피도 안 마른 제비꽃 년들까정 난리도 아닌갑소 워매 워매~ 쩌그 진달래 년 주딩이 좀 보소 뻘겋게 루즈꺼정 칠했네 워째야 쓰까이~ 참말로 수상한 시절이여 여그 저그 온 천지가 난리도 아니구먼 그려~ 워쩔 수 없제 잡는다고 되것어 말린다고 되것어 암만 고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안 혀라 보소 시방 이라고 있을 때가 아니랑게 바람난 꽃년들 밴질밴질한 낯짝이라도 귀경할라믄 우리도 싸게 나가..

시읽는기쁨 2018.03.24

민지의 꽃 / 정희성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 살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 비비고 일어나 말없이 손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 민지의 꽃 / 정희성 순백의 지순한 마음을 생각한다. 그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걸 다, 꽃이야, 라고 부르게 될까. '아이는 어른의 ..

시읽는기쁨 2018.01.03

돌아가는 꽃 / 도종환

간밤 비에 꽃 피더니 그 봄비에 꽃 지누나 그대로 인하여 온 것들은 그대로 인하여 돌아가리 그대 곁에 있는 것들은 언제나 잠시 아침 햇빛에 아름답던 것들 저녁 햇살로 그늘지리 - 돌아가는 꽃 / 도종환 부활절인 오늘은 세월호 3주기가 되는 날이기도 하다. 세월호를 기억하며 드리는 미사에서 옆자리 아주머니는 세월호 영상을 보며 하염없이 흐느끼신다. 그 슬픔의 깊이가 어떠한지 나는 잘 헤아리지 못한다. 다만 먹먹할 뿐이다. 경안천에 나가 꽃을 보며 이 시를 읊조린다. "그대 곁에 있는 것들은 / 언제나 잠시 // 아침 햇빛에 아름답던 것들 / 저녁 햇살로 돌아가리". 생명 사이의 인연이 그런 것이리, 찡 해진 가슴으로 뿌연 봄하늘을 바라본다.

시읽는기쁨 2017.04.16

큰 꽃 / 이문재

꽃을 내려놓고 죽을 힘 다해 피워놓은 꽃들을 발치에 내려놓고 봄나무들은 짐짓 연초록이다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는 맑은 노래가 있지만 꽃 지고 나면 봄나무들 제 이름까지 내려놓는다 산수유 진달래 철쭉 라일락 산벚... 꽃 내려놓은 나무들은 신록일 따름 푸른 숲일 따름 꽃이 피면 같이 웃어도 꽃이 지면 같이 울지 못한다 꽃이 지면 우리는 너를 잊는 것이다 꽃 떨군 봄나무들이 저마다 다시 꽃이라는 사실을 저마다 더 큰 꽃으로 피어나는 사태를 눈 뜨고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꽃은 지지 않는다 나무는 꽃을 떨어뜨리고 더 큰 꽃을 피워낸다 나무는 꽃이다 나무는 온몸으로 꽃이다 - 큰 꽃 / 이문재 지난가을 등산할 때 Y가 산길 따라 많이 자라고 있는 나무를 보고 이름을 아느냐고 물었다. 눈에 익은 나무가 아..

시읽는기쁨 2015.12.18

식물의 인문학

지은이인 박중환 씨의 경력을 보면 50세까지 언론계에서 일하다 늦게야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IMF로 직장을 잃은 게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식물을 공부하며 그들의 삶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숲이 인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은 그런 지은이가 들려주는 식물 이야기다. 책은 꽃, 잎, 열매, 뿌리의 네 단원으로 되어 있다. 물론 딱딱한 학술서가 아니고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여럿 알게 되었다. 계절이 꽃을 피우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가 꽃을 피운다는 설명은 재미있다. '스트레스 개화 이론'이다. 고사 위기에 있는 소나무일수록 작은 솔방울이 많이 맺히는 걸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식물이 지구의 산소 공..

읽고본느낌 2015.10.21

소를 웃긴 꽃 / 윤희상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 밑에서 마침 꽃이 핀 것이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 소를 웃긴 꽃 / 윤희상 시를 처음 읽는 순간 뭔가 번쩍 하고 뇌리를 친다. 그러면서 느낌은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저 얼떨떨하다. 좋은 시는 대부분 그렇다. 이 시가 그랬다.

시읽는기쁨 2015.08.29

한국의 제비꽃

이태 전에 신문 보도로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반갑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다. 10여 년 전 야생화에 빠졌을 때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제비꽃을 모두 찾아보는 게 내 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능력이 된다면 우리나라 제비꽃을 찍은 화보집을 내고 싶었다. 단지 꿈으로 그치고 말았지만 내가 상상한 책이 바로 이 이다. 이 책을 낸 박승천 씨는 아마추어 야생화 애호가다. 전공이나 직장이 식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오직 꽃이 좋아 10년 넘게 제비꽃을 찾아다녔다. 제비꽃이라는 단일종으로 이렇게 책이 나온 경우는 처음이다. 님의 열정과 노력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제비꽃이 피는 시기가 봄이기 때문에 이 시기에 맞춰 집중적으로 전국을 찾아다니다 보면 발이 부르트고 체중도 5kg 넘게 빠진다고 ..

읽고본느낌 2015.06.05

우리꽃 전시회

목현천변에서 우리꽃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광주시 우리꽃 연구회 주최로 매년 봄이면 열리는 행사다. 정성들여 가꾼 우리꽃과 꽃사진을 전시하면서 분화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고 꽃도 판매한다. 소규모지만 의미 있는 행사다. 매년 봄이면 어떤 꽃이 나올까 궁금하면서 기다려진다. 우리꽃에 대해서 꽤 안다고 자부하지만 이런 데 와서 보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꽃들이 많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꽃이 있었는가, 하는 게 여럿 있었다. 꽃 향기에 흠뻑 빠진 즐거운 시간이었다. 등대진달래 백사초롱 설란 주름제비란 당조팝 큰천남성 고려자귀 백두애기초롱 팔각연 장미매발톱 방울철쭉 등대꽃 나도제비란 은방울꽃 삼지구엽초 말발도리 실목련 매화말발도리 바람꽃

꽃들의향기 2015.04.17

꽃의 어원

'꽃'의 어원을 알고 싶어 국어 샘에게 물어보았더니 꽃의 고어는 '곶'이었다고 한다. '곶'이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된소리로 변해 '꽃'으로 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용비어천가에서 '곶 됴코 여름 하나니'라는 구절을 공부한 게 기억났다. 그리고 '곶'의 의미는 바다 쪽으로 길게 튀어나온 땅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꽃이 '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것이 국어 샘과의 대화였다. 사전을 찾아보니 곶의 뜻이 딱 하나밖에 없다. 한자로는 '串'이라고 쓰는, 바다 쪽으로 좁고 길게 나온 땅이다. 식물에서 꽃은 가지에서 솟아나온 형상을 하고 있다. 이것이 '곶'의 의미와 상통하기 때문에 꽃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된 건 아닐까, 억지로 추측해 본다. 아니면 한자의 '串'이 꽃의 모양을 닮아서 ..

길위의단상 2014.08.22

절화행(折花行) / 이규보

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을 미인이 꺾어들고 창 앞을 지나며 살짝 웃음띠고 낭군에게 물었다 "꽃이 예뻐요, 제가 예뻐요?" 낭군이 짐짓 장난을 섞어서 말했다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미인은 그 말 듣고 토라져서 꽃을 밟아 뭉개며 말했다 "꽃이 저보다 더 예쁘시거든 오늘밤은 꽃을 안고 주무세요." - 꽃을 꺾어들고 / 이규보 牧丹含露眞珠顆 美人折得窓前過 含笑問檀郞 花强妾貌强 檀郞故相戱 强道花枝好 美人妬花勝 踏破花枝道 花若勝於妾 今宵花同宿 - 折花行 / 李奎報 즐겨보는 프로인 '개콘'에 '두근두근'이라는 코너가 있다. 좋아한다는 걸 대놓고 고백하지 못하는 두 청춘남녀의 수줍고도 풋풋한 사랑을 보노라면 절로 미소가 인다. 은은한 60년대식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규보의 시 '절화행(折花行)'에서 받는..

시읽는기쁨 2013.11.06

순간의 꽃 / 고은

오늘도 누구의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돌아오는 길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 * 봄비 촉촉 내리는 날 누가 오시나 한두 번 내다보았네 *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 사진관 진열장 아이 못 낳는 아낙이 남의 아이 돌사진 눈웃음지며 들여다본다 * 부들 끝에 앉은 새끼 잠자리 온 세상이 삥 둘러섰네 * 이 세상이란 여기 나비 노니는데 저기 거미집 있네 * 어린 토끼 주둥이 봐 개꼬리 봐 이런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니 * 위뜸 아래뜸 개가 짖는다 밤 손님의 성(姓) 김가인가 박가인가 * 내려갈 때 보았네 올가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한번 더 살고 싶은 때가 왜 없겠는가 죽은 붕어의 뜬 눈 * 설날 늙은 거지 마을 한 바퀴 돌다 태평성대 별것이던가 * 방금 도끼에 쪼개어진 장..

시읽는기쁨 2013.06.21

틈이 난 벽에 핀 꽃 / 알프레드 테니슨

틈이 난 벽에 핀 꽃 그 갈라진 틈에서 널 뽑았다 여기, 뿌리째, 내 손에 들고 있다 작은 꽃 - 하지만 너는 무엇인지 뿌리째, 전부, 내가 이해할 수 있다면 신(神)과 인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련만 - 틈이 난 벽에 핀 꽃 / 알프레드 테니슨 Flower in the crannied wall I pluck you out of the crannies I hold you here, root and all, in my hand Little flower - but if I could understand What you are, root and all, all in all I should know what God and man is - Flower in the Crannied Wall / Alfred Tenn..

시읽는기쁨 2012.11.24

나룻물 강생원의 배삯 / 곽재구

나룻물 강생원 젊어서 제월리 나루터의 뱃사공이었지요 남원 장 보러 옥과 입면 사람들 강생원 배를 타고 섬진강을 건넜는데요 배가 남원 땅에 다 닿으면 장꾼들에게 꼭 이렇게 말하지요 어 참 봄볕도 좋다 돌아올 때 꽃 한 짐 꺾어 오시오 이를테면 그 말이 곧 뱃삯이었는데 장 보고 오는 동네 사람들 돌아오는 길에 진달래꽃 꺾고 살구꽃도 꺾고 수선화꽃이랑 조팝꽃도 실컷 꺾어서는 한아름씩 강생원에게 주었겠지요 한 배 가득 장 보따리와 꽃다발을 싣고 다시 강을 건너며 나룻물 강생원 꼭 이렇게 말하지요 어 참 꽃 좋다 어 참 세상 이쁘다 - 나룻물 강생원의 배삯 / 곽재구 사람에게 '일'이란 무엇일까? 삶이 축제가 될 수는 없을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바라기 때문에 삶의 핵심을 도리어 놓치는지도 모른다. 나룻..

시읽는기쁨 2012.10.28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도종환 시인이 국회의원이 된 후 작은 소동이 있었다. 교육과정평가원에서 도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빼라고 출판사에 통보한 것이다. 결국은 없었던 일로 되었지만 경직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 해프닝이었다. 그 뒤에 국회 본회의에서 시인은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발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존경하는 박병석 부의장님,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도종환입니다. 저는 오늘 착잡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저는 국회의원이면서 시인입니다. 제가 쓴 시는 10년 전부터 국정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고, 학생들이 배우고 공부해 왔습니다. 공문에 의하면 수정보완 이행 결과가 미진하면 검정이 취소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과서 수정보완은 띄어쓰기, 맞춤법, 어휘 ..

읽고본느낌 2012.08.05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선운사에서 / 최영미 시인은 한 사랑을 떠나보내고 선운사를 찾았는지 모른다. 아마 그때가 4월쯤 되었을까, 뚝뚝 떨어진 선운사 동백꽃을 보았을 것이다. 사랑은 아름답게 꽃을 피웠다가어느 날 떠나갔다. 꽃이 피면 지는 게 자연의 섭리이듯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다. 그걸 모를 리 없건만 서운하고 아쉬운 건 어찌할 수 없다. 그대가 어찌 꽃이 지듯 쉽게 잊히겠는가. 이 시를 읽으면 왜 그런지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떠오른다. 소월의..

시읽는기쁨 2012.03.07

강우근의 들꽃 이야기

는 꽃을 주제로 한 여느 책과는 다르다. 이분이 소개하는 꽃은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는 천덕꾸러기들이다. 꽃 자체는 볼 품이 없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보잘것 없는 잡초에서 세상을 바꾸는 희망을 읽는다. 들꽃에서 배우는 지혜가 책 가득 담겨있다. 짓밟혀도 굴복하지 않는 잡초에서 민중의 저항과 생명력을 읽는다. 본인은 어줍지 않게 들꽃 이야기를 썼다고 했지만 글을 읽다보면 내공이 대단한 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식물에 대한 지식만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에 대한 애정을 함께 느끼고 공유할 수 있다. 들꽃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추출해 내는 지은이의 혜안이 부럽다.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 주변에서 흔하지만 하찮게 취급하는 풀과 나무를 통해 사람과 사람의 삶을 본다. 귀화식물에서는 이주..

읽고본느낌 2011.10.19

상처에 대하여 / 복효근

오래 전 입은 누이의 화상은 아무래도 꽃을 닮아간다 젊은 날 내내 속썩어쌓더니 누이의 눈매에선 꽃향기가 난다 요즈음 보니 모든 상처는 꽃을 꽃의 빛깔을 닮았다 하다못해 상처라면 아이들의 여드름마저도 초여름 고마리꽃을 닮았다 오래 피가 멎지 않던 상처일수록 꽃향기가 괸다 오래된 누이의 화상을 보니 알겠다 향기가 배어나는 사람의 가슴속엔 커다란 상처 하나 있다는 것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 상처에 대하여 / 복효근 상처를 얘기하는 복 시인의 시 중에 ‘탱자’가 있다. 밖으로만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난 가시로 인해 찔리고 상처받으며 살아내고 있는 탱자를 그리고 있는 시다. 탱자의 살갗은 제 가시로 저를 찔러대고 할퀸 수많은 상처투성이다. 스스로를 찌르는 자해의 가시로 인해 노랗게 익은 탱자는 더 향기..

시읽는기쁨 2010.06.15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고향으로 내려가는 설날 귀향길에 올해는 톨게이트에서시낭송 CD를 나누어주었다. 솔직히 4대강이나 세종시 홍보물을 받으면 어쩌나 했는데 의외였다. 덕분에 시와 함께 하는 고향길이 되었다. 아는 시가 나오면 반가웠고, 더구나 시인의 육성으로 들으니 더욱 좋았다. 가슴이 울컥해지는 시가 몇 편 있었는데 이 시도 그중의 하나였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

시읽는기쁨 2010.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