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52

가천대에서 이매까지 걷다

성남에 있는 가천대학교에서 사진전을 구경하고 탄천으로 나가 이매까지 걸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편하게 자가용으로 다녀오려 했으나,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봄날씨가 좋아 탄천을 걸어보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이런 유혹에는 모른 척 넘어가주는 게 심신에 유익한 법이다. 가천대학교 캠퍼스는 처음 들어가 보았다. 오가는 20대의 청춘들이 봄(spring)처럼 밝고 싱그러웠다. 캠퍼스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이 조형물은 가천대의 상징인 것 같다. 바다 사진을 찍는 김정식 작가의 사진전이었다. '파도 소리'라는 대형 작품 앞에 오늘 만난 셋이 섰다. 사진들은 전체적으로 강렬한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요사이는 AI가 사진만 아니라 영상도 만들어 준다. 상황만 제시해 주면 그에 맞는 분위기의 그림을 알아서 생산한다. 앞으로 ..

사진속일상 2024.03.21

북극곰의 불안한 휴식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작은 해빙(海氷) 위에서 북극곰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린 채 쪽잠을 자고 있다. 런던자연사박물관에서 주관하는 사진전에서 '올해의 야생 사진상'을 받은 작품으로 제목은 '얼음 침대(Ice Bed)'다. 영국의 아마추어 사진가인 니마 사리카니가 찍었다. 사리카니는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에서 3일간의 기다림 끝에 얼음덩이를 팔로 긁어내 기댈 곳을 마련한 뒤 잠이 든 북극곰을 담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사진이 시선을 사로잡는 이유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생태계 파괴와 기후 위기 상황을 한눈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북극의 얼음이 사라지면서 북극곰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바다 얼음 위에서 생활하며 바다표범 같은 동물을 잡아먹고 사는 북극곰에게 해빙이 줄어든다는 것은 삶의 터전이 사라진다는 것과..

길위의단상 2024.02.28

영정사진과 장수사진

4년 동안 여권 없이 지내다가 이번에 다시 신청했다. 겨울에 손주와 앙코르와트에 갈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아내도 여권을 새로 만들어야 했기에 같이 사진관에 들렀다. 처음에는 집에서 사진을 찍어 인터넷으로 신청해 봤으나 두 번이나 반려를 당했다. 내 실력으로는 여권 사진 기준에 맞추기가 어려워서 헛심만 쓰다가 포기했다. 사진을 찍은 뒤 젊은 사장이 컴퓨터 앞에서 클릭 몇 번을 하니 금방 깔끔한 사진이 나왔다. 옛날에는 필름 현상과 인화 과정을 거친 뒤 사진을 찾자면 며칠이 걸렸다. 사진을 다루는 데는 정교한 기술이 필요했다. 디지털 처리를 하는 지금은 모든 것을 프로그램이 처리해 준다. 5분 만에 보정까지 마친 따끈따끈한 사진을 받아볼 수 있다. 좋은(?) 세상이 되었다. 사진에 만족한 아내는 뜬금없이..

길위의단상 2023.11.25

사진기로 상상을 그리다

이젠 AI가 사진까지 창작하는 시대가 되었다. AI가 만든 사진이 현실보다 더 현실 같고, 인간이 찍은 것과 구별이 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더 뛰어나다면 사진가의 영역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앞으로 AI의 사진 기술은 상상할 수 없는 경지까지 발전할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 인공지능이 상상을 찍을 미래가 바로 코 앞에 닥쳐왔음을 예감한다. 책 내용은 AI나 미래와는 관계가 없다. 는 김석은 사진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중심으로 사진가가 된 과정과 본인의 사진관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김 작가는 우리 고장에 거주하고 있어서 관심이 가던 차에 읽게 되었다. 작가는 미술을 전공한 후 애니메이션 회사를 경영하다가 늦게 사진가의 길에 들어섰다. 미술에 대한 기본 소양과 재능이 있어선지 사진 분야에서도 금방 두각을 드러낸..

읽고본느낌 2023.03.07

제임스 웹이 보는 우주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 James Webb Space Telescope]이 드디어 활동을 시작해서 첫 사진이 공개되었다. JWST는 지구에서 150만 km 떨어진 지점(지구와 달 사이의 약 4배 거리)에 떠서 우주를 관측하는 망원경이다. 허블보다 100배 정도 성능이 향상되었다고 한다. '제임스 웹'은 나사의 2대 국장을 지낸 분의 이름이다. 허블은 가시광선 영역을 촬영했지만 제임스 웹은 근적외선 영역이어서 심우주를 관측하는데 더 유리하다. 팽창하는 우주에서는 먼 천체일수록 더 빨리 멀어지는데 적색편이 현상 때문에 빛은 파장이 긴 적외선으로 변한다. 먼 우주의 천체를 관측하자면 적외선 파장이 필요하다. 이번에 처음 공개한 사진은 지구에서 46억 광년 떨어진 SMACS 0723 은하단이다. 은하들..

길위의단상 2022.07.17

말할 수 없어 찍은 사진, 보여줄 수 없어 쓴 글

최필조 선생의 사진 에세이로 부제가 '힘껏 굴러가며 사는 이웃들의 삶'이다. 124편의 작품이 우리 이웃의 애틋한 사연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사진과 글이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감동의 화음을 만들어 낸다. '뒷모습', '손', '밤골', '길 위에서' 등 4개의 파트로 되어 있다. 작가는 교사 생활을 하며 틈틈이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우리는 가볍게 책장을 넘기지만 사진 한 장에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이 담겨 있을지를 생각한다. 다른 동네의 낯선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듣고, 친해지면서 카메라에 담기까지 발품은 또 얼마나 될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내는 일입니다. 둘은 다르지 않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사진은 테크닉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마음이..

읽고본느낌 2021.02.11

우주정거장에서 본 지구

국제우주정거장 ISS(International Space Station)는 16개국이 참여하는 하늘에 떠 있는 다국적 우주 기지다. 크기는 축구 경기장만 하며 지상 400km 높이에서 하루에 지구를 15바퀴 정도 돈다. 400km라면 대략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다. 지구를 사과 정도 크기로 축소하면 우주정거장은 사과 껍질에서 2m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맨눈으로도 쉽게 보이고, 성능 좋은 망원경이면 형체까지 뚜렷이 볼 수 있다. 승무원은 여섯 명인데 평균 6개월 정도 체류한다. NASA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우주정거장에서 찍은 지구 사진을 봤다. 우리는 중력에 의해 지구 표면에 갇혀 있다. 지구 전체를 조망하는 넓은 시각을 갖고 있지 못하다. 숲을 보자면 숲 밖으로 나가야 한다. ..

길위의단상 2021.01.25

문도선행록

김미루 작가의 치열한 예술혼과 도전 정신을 존경한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예술이란 "사람되기를 배우기(Learning to be human)"라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작가의 작업 과정을 보면 인간의 길을 물으며 정진하는 수도자의 모습이 연상된다. 이라는 책 제목 그대로다. 이 책은 2012년부터 3년 동안 사하라 사막, 아라비아 사막, 타르 사막, 고비 사막을 헤매며 문명이 내팽개친 정신을 찾아 나선 고독한 모험의 발자취를 그리고 있다. 자신의 누드로 이미지를 전달하는 작가는 여기서는 사막의 낙타를 통해 자연과의 교감 및 상생의 길을 보여준다. 도시의 버려진 풍경이나 돼지, 애벌레를 소재로 한 작품과는 달리 낙타 시리즈에서는 인간의 손에 때 묻지 않은 원초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마치 에덴동..

읽고본느낌 2021.01.08

흔들리지 마

주말에 집에 찾아온 손주의 웃음소리를 뒤에 두고 뒷산에 올랐다. 낮에도 영하의 날씨였지만 산길은 따스하고 포근했다. 집에서 탈출하기는 힘들어도 산에 들면 기분이 환해진다. 이 좋은 길을 거의 한 달 만에 걷는다. 겨울옷은 주머니가 커서 좋다. 똑딱이 카메라는 주머니에 넣으면 딱 알맞다. 요사이는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내던지고 휴대폰을 사용한다. 휴대폰 카메라 성능이 좋아지다 보니 굳이 다른 카메라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휴대폰 카메라에는 적응이 안 된다. 사진을 잘 찍고 못 찍고를 떠나 사진 찍는 맛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밖에 나갈 때는 똑딱이라도 들고 가야 마음이 편하다. "사진이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 주는 수단이다." 어느 사진가의 말이다. 사진은..

사진속일상 2020.12.20

공휴일 / 김사인

중랑교 난간에 비슬막히 식구들 세워놓고 사내 하나 사진을 찍는다 햇볕에 절어 얼굴 검고 히쭉히쭉 신바람 나 가족사진 찍는데 아이 들쳐업은 촌스러운 여편네는 생전 처음 일이 쑥스럽고 좋아서 발그란 얼굴을 어쩔 줄 모르는데 큰애는 엄마 곁에 붙어서 학교에서 배운 대로 차렷을 하고 눈만 때굴때굴 숨죽이고 섰는데 그 곁 난간 틈으로는 웬 코스모스도 하나 고개 뽑고 내다보는데 짐을 맡아들고 장모인지 시어미인지 오가는 사람들 저리 좀 비키라고 부산도 한데 - 공휴일 / 김사인 저 시절 중랑교가 무슨 볼품이 있었을까? 밑으로는 시커먼 중랑천이 흐르던, 높은 빌딩 하나 없는 서울 변두리였다. 그래도 서울 구경이라고 시골에서 올라온 한 가족이 기념사진을 찍는가 보다. 사진천국이 된 지금는 누구나 주머니에 카메라를 넣고 ..

시읽는기쁨 2020.12.17

사진 직설

사진에 젬병이지만 관심은 많다. 평생 사진을 업으로 삼고 일가견을 이룬 사람 얘기 듣는 걸 좋아한다. 물론 직접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다. 이 책은 최건수 사진 평론가가 풀어놓는 사진 세상 이야기다. 따분한 사진 이론이 아니라 술자리에서 얼굴을 맞대고 사진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사진계의 현실을 드러내는 직설(直說)이 따끔하다. 이 책 은 아마추어가 아니라 예술 사진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읽으면 좋다. 나와는 관계가 없지만 사진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되는 것만으로도 읽은 효과는 있다. 사진은 찍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다. 사진은 사물과 나와의 대화다. 선생은 사진을 배우려는 한 스님에게 이렇게 충고했다고 한다. "스님, 찍지 말고 관조(觀照)하세요. 그러면 보여요. 스님들이 왜 면벽을..

읽고본느낌 2020.12.16

2020 천체사진

영국 그리니치천문대에서는 매년 천체사진을 공모한다. 전 세계에서 출품한 우수한 사진을 많이 볼 수 있기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다. 올해 수상작 중에서 눈에 띄는 몇 작품을 골라 보았다. 1. 오로라 부문 - Lone Tree under a Scandinavian Aurora(Nikon D850, 15mm, ISO 1000, 13s) - Hamnoy Lights(Nikon Z7, 17mm, ISO 800, 10s) 요사이 사진에 푹 빠진 친구가 아이슬란드로 오로라 사진을 찍으로 간다고 한다. 원래는 올 겨울이었는데 코로라 때문에 내년으로 미루어질 것 같다. 나도 그 팀에 끼워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2. 태양 부문 - Total Solar Eclipse, Venus and the Red Giant Betel..

길위의단상 2020.12.06

승리의 키스

1945년 8월 14일, 일본이 항복하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뉴욕 메디슨 스퀘어 광장에는 축하하는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서로 환호하고 키스하며 기쁨을 나눌 때 한 커플의 열정적인 키스가 사진기자인 에이젠슈테트(A. Eisenstaedt)의 렌즈에 담겼다. 에 실려서 유명하게 된 '승리의 키스'다. 해군 복장을 한 군인과 그의 연인이 재회하며 뜨겁게 키스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상은 다르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둘은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애인과 술을 마신 뒤 거리로 나온 남자는 무조건 지나가는 여자를 붙들고 키스를 했다. 이 모습이 기자의 눈에 포착되었고, 마침내 하얀 복장을 한 간호사와 키스하는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피사체의 옷 색깔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고 한다. 만약 여자의 복장이 어두..

길위의단상 2020.11.25

지구 - 창백한 푸른 점

인간이 만든 물체 중 가장 멀리 나아가고 있는 것이 보이저 1호다. 보이저 1호(Voyager 1)는 1977년 9월에 발사되어 1990년에 명왕성을 지났고, 지금은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공간을 여행 중이다. 현재 위치는 지구에서 약 150AU(220억km) 떨어져 있다. 태양계 지름의 두 배에 해당하는 거리다. 보이저 1호는 명왕성을 지날 때 태양계 끝에서 본 지구 사진을 찍었다. 1990년 2월이었으니 꼭 30년 전이다. 지구에서 60억km 밖에서 본 우리 지구 사진인데, 이 희미하게 빛나는 영상을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고 명명했다. 촬영 30주년을 맞아 이 사진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NASA에서는 옛 사진을 더 선명하게 보이도록 보정하여 다시 발표했다. 보일..

길위의단상 2020.02.22

2019 왕립학회 과학사진

영국 왕립학회에서 2019년 과학사진 입상작을 발표했다. 왕립학회는 매년 마이크로 이미지, 천문, 기후, 동물 행동, 생태와 환경 등 다섯 개 부문의 사진을 공모한다. 그중에서 올해의 수상작 일곱 작품을 골라 보았다. 1. 마이크로이미지 부문, '양자 물방울' 마이크로이미지 부문 수상작이면서 전체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15Hz로 진동하는 실리콘에서 실리콘 오일 방울이 튀어오르는 모습이다.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나타내는 현상이라는데,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 잘 모르겠다. 2. 천문 부문, '달무리' 벨라루스의 사진작가가 찍은 밤의 달무리다. 숲 속 호수 위에 생긴 달무리가 거대한 우주의 눈동자 같다. 3. 기후 부문, '유콘의 트위스터' 토네이도가 생기기 직전에 하늘에는 이런 형태의 구름이 나타난다고 한..

길위의단상 2019.12.18

2019 기상사진 작품

연말이 되니 여러 사진 공모전의 수상 작품이 발표되고 있다. 그중 영국 기상학회가 주최하는 2019년 기상사진 공모전에서 입상한 작품을 소개한다. 기상사진의 단골 소재는 구름이다. 이번에도 재미있는 모양의 구름 사진이 여럿 올라왔다. 아이슬란드에서 찍은 유빙 위에 떠 있는 원반 모양의 구름이다.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 같다. [Canon EOS 5D, 24-70mm, f/11, 1/13] 알프스 산맥 위에 떠 있는 구름으로 고산 지대에서 생기는 전형적인 모양이다. 곧 눈 폭풍이 몰려올 것이다. 개을 데리고 산책할 때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있어야 이런 행운도 잡을 수 있다. [Nikon D610, Tamron 28-75, f/10, 1/500] 새벽 운해. 촬영 데이터를 보니 30..

길위의단상 2019.12.05

권혁재의 핸드폰 사진관

누구나 사진을 찍는 시대가 되었다. 어제 집에 들어오는데 아파트 현관에서 유치원 아이 둘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핸드폰 앞에 선 아이의 포즈가 모델 뺨쳤다. '사진 인류'라는 말이 실감 난다. 이 모두가 핸드폰 카메라 때문이다. 그러나 핸드폰 카메라 기능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 대개 비슷하다. 고민하지 않고 그냥 보이는 대로 누른 결과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핸드폰 카메라로도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다. 권혁재 사진기자의 은 핸드폰 카메라로 좋은 사진을 찍는 비법을 보여준다. 이 책에 나온 사진은 LG V30 핸드폰으로 찍었다. 사진만 보면 정말 핸드폰 사진 맞아, 라고 놀라게 된다. DSLR에 못지 않다. 일반인이 찍은 DSLR 사진보..

읽고본느낌 2019.08.29

뒷모습

"뒷모습은 정직하다. 눈과 입이 달려 있는 얼굴처럼 표정을 억지로 만들어 보이지 않는다. 마음과 의지에 따라 꾸미거나 속이거나 감추지 않는다. 뒷모습은 나타내 보이려는 의도의 세계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세계다. 뒷모습은 단순 소박하다. 복잡한 디테일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한 판의 공간, 한 자락의 옷, 하나의 전체일 뿐이다. 뒷모습은 골똘하다. 골똘함을 얼굴보다 더 잘 나타내는 것이 등이다. 뒷모습은 너그럽다. 그 든든함과 너그러운 등에 의지하고 기댈 수 없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외로웠겠는가. 어머니의 등이 있어서 우리는 업혀서 안심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뒷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나와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동지다. 서로 마주 보는 두 사람은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있지만 서로를 공격하려는 ..

읽고본느낌 2019.07.17

봉은사 가는 길

사진작가 김희중 선생의 부음에 잠시 생각이 멎는다. 작가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두 번의 개인전을 열 정도로 사진에 특출한 재능을 드러냈다. 그뒤 미국으로 건너가 동양인 최초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사의 편집장을 지냈다. 우리나라 사진가 중 세계적으로 가장 큰 명성을 가진 분이다. 오래전에 작가의 자서전을 겸한 에세이인 를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김희중 작가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봉은사 가는 길'이라는 작품이다. 바로 이 사진이다. 이 사진에 대해서는 작가가 촬영 당시 상황을 설명한 적이 있다. 1955년 7월에 뚝섬에서 야외 촬영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그때 고등학생이었던 작가는 유일하게 교복을 입고 참가했단다. 모델 촬영이 싱거워 작가는 나룻배를 타고 한강 건너 봉은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

길위의단상 2019.03.15

문명: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명: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사진전을 관람하다. 32개국, 130여 명의 작가들이 300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선보인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인간이 만든 문명을 바라보면서, 우리 삶의 모습을 확인해 보는 사진전이다. 작품은 8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다. 벌집(Hive) 따로 또 같이(Alone Together) 흐름(Flow) 설득(Persuasion) 통제(Control) 파열(Rupture) 탈출(Escape) 다음(Next) 다양한 사진이 모여 있어서 문명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다. 인간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또한 문명의 그늘에 어두워진다. 인간의 획일화나 탈개성화에 대한 경고를 자주 볼 수 있다. 자연 파괴를 고발하는 사진은 거의 안 보인다. 너무 디스..

사진속일상 2019.02.12

로이터 선정 올해의 사진

로이터통신이 올해를 대표하는 사진 100장을 선정했다. 로이터통신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다. 밝은 뉴스보다는 어두운 뉴스가 많지만 보도사진의 특성상 어찌할 수 없는 것 같다. 어느 해나 그렇지만 내전이나 테러, 자연재해 사진이 주를 이룬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사진을 골라보았다. 우리나라 관련 사진도 5장이나 된다. 하와이 킬라우에아 화산에서 흘러내리는 용암(5월). 내전중인 시리아의 한 마을에서 아이가 가방 안에서 자고 있다(3월). 그린랜드에서 녹고 있는 빙산(6월). 미투 운동이 활발한 한 해였다. 우리나라도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갔다. 뉴욕 재판소에 들어가는 하비 웨인스타인(5월). 미국은 더 힘이 세지고 있다. 미 육군 훈련을 참관하는 트럼프 대통령(8월). 나치의 망령은 아직 살아 있..

길위의단상 2018.12.16

2018 그리니치 천체사진

매년 천체사진을 공모하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올해의 수상작을 발표했다. 11개 분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중에서 '사람과 우주(People & Space)' 부문 수상작만 소개한다. 1등, Transport the Soul Nikon D810, 14mm, ISO 2500, 20 sec 2등, Living Space Sony ILCE-7S, 28mm, ISO 6400, 15 sec 3등, Me versus the Galaxy Nikon D810, 20mm, ISO 5000, 10 sec 입선, Catching the Moment of Owe Sony ILCE-7S, 24mm, ISO 6400, 1/160 sec 입선, Expedition to Infinity Canon EOS 6D, 24mm, ISO..

길위의단상 2018.10.29

스마트폰으로 찍은 나무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이 있다. 꽃, 동물, 건축, 풍경 등 18개 분야로 나누어 시상을 한다. 스마트폰 사진 하면 뭔가 부족할 것 같지만 입선작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해가 갈수록 화질이 좋아지고 수준이 올라가는 것은 기술력이 그만큼 진보하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내 관심을 끄는 분야는 나무다. 나무를 잘 찍고 싶어 새 카메라를 사야 할까, 고민중이었다. 그런데 스마트폰으로 찍은 나무 사진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좋은 사진이 안 나오는 것은 카메라가 아니라 나무를 보는 내 눈 탓이었다. 똑딱일지라도 스마트폰보다는 낫다. 어설픈 목수에게 아무리 좋은 연장을 쥐어준들 솜씨가 모자라는데 무얼 할까. 기계 욕심만 내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 아이폰 사진 공모전에서 올해(2017) 나무 분야 ..

길위의단상 2017.09.10

우주에서 본 개기일식

지난 21일에 미국에서 개기일식이 일어났다. 99년 만의 개기일식에 전 미국이 떠들썩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기일식을 보기 위한 여행단이 꾸려지기도 했다. 지갑만 두툼하다면 나도 욕심을 내봤을 것이다. 부분일식은 몇 차례 보았지만, 개기일식은 일생에 한 번 만나기 어려운 진귀한 현상이다. NASA 홈페이지에 우주정거장에서 본 달그림자 사진이 나와 있어 흥미롭다. 저 그림자 가운데 있는 사람은 개기일식을 보고 있을 것이다. 지상에서 해가 사라지는 광경도 신기하지만, 우주에서 보는 달그림자도 그에 못지않을 것 같다. 아래 지도는 2021년부터 2040년까지 지구에서 생길 일식 지역을 보여준다. 파란색이 개기일식, 붉은색이 금환일식이 일어날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8년 뒤인 2035년이 되어야 개기일식을 볼..

길위의단상 2017.08.28

세계의 나무

표지를 펼치면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나무 사진이 시선을 확 끈다. 이 책은 나무를 사랑하는 영국의 토머스 파켄엄이 세계에서 크고 아름답고 진귀한 나무 60그루를 골라 소개한 사진집이다. 나무를 설명하는 글이 현장 분위기와 나무에 대한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어 좋다. 틀에 박힌 식물 해석이 아니다. 나무를 나눌 때 종류가 아니라 '자이언트(Giants)' '난쟁이(Dwarfs)' '므두셀라(Methuselahs)' '꿈(Dreams)' '위기에 처한 나무(Trees in Peril)'로 단원 제목을 정한 것도 특이하다. 지은이는 출판사의 지원으로 4년 동안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나무 사진을 찍었다. 자태가 우아하고 개성이 강한 나무들이었다. 지은이의 열정도 그렇지만 마음 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지원해..

읽고본느낌 2017.08.19

기억의 그늘

'디카시'라는 영역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사진에 짧은 글을 붙인 작품은 가끔 봤지만, 디카시로 명명되고 창작의 한 분야로 인정되고 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에 디카시가 새로운 문학 장르로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디카시는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로 표현한 시다. 기존 시의 범주를 확장하여 영상과 5행 이내의 문자를 하나의 텍스트로 결합한 멀티 언어예술이다. 여기서 '5행 이내'라는 제한이 특이하다. 일본의 하이쿠처럼 간결한 형식에 방점을 두는 것 같다. 디카시를 알고 싶어 강미옥 시인의 를 구입했다. 시인은 블로그를 통해 작품을 접하고 있던 터였다. 아름다운 사진과 그 순간의 느낌을 풀어낸 솜씨가 좋았다. 디카시가 무엇이고, 독..

읽고본느낌 2017.08.07

2016 그리니치 천체사진

매년 그리니치 천문대에서는 천체사진을 공모하여 시상한다. 얼마 전에 올해의 수상작이 발표되었다. 대상은 개기일식을 연속 촬영한 '베일리의 목걸이(Baily's Beads)'가 차지했다. 아이디어가 참신한 작품이다. 언제 보아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하는 우주의 풍경을 소개한다. (1) 태양 부문 1등, Baily's Beads * Yu Jun(China) * Canon 5D Mark2 + Sigma DG OS HSM 150-600mm f/5-f/6.3 lens, 600mm f/10 at ISO 100 with multifle 1/1600 second * '베일리의 목걸이(Baily's Beads)'란 개기일식이 일어나서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기 직전에 좁은 초승달 모양의 태양빛이 달 가장자리의 불규칙한 ..

길위의단상 2016.10.05

2015년 과학사진

미국과학진흥협회에서 펴내는 에서 2015년의 과학 사진을 발표했다. 올해 잡지에 실린 사진 중에서 주목을 받은 10장을 골랐다. 어지러운 세상사 뉴스보다는 이런 소식이 더 반갑고 담박하다. 과학은 인간의 호기심에서 출발해서 탐구와 연구를 통한 결과물은 자연에 대해 경외감을 품게 한다. 안다는 것은 겸손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은 아름답다. 1. 토성에 내리는 헬륨 비 다이아몬드에 레이저를 발사해 토성 내부에서 생기는 헬륨 비를 재현하고 있다. 2. 이상한 날개를 가진 익룡 중국에서 발견된 익룡 '이치'의 상상도로 현생 조류의 조상이다. 박쥐처럼 깃털이 없는 날개를 가졌으며, 비둘기 정도의 크기다. 3. 먹이 경쟁에서 밀려나는 북극곰 지구온난화로 북극곰의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회색곰과 먹이를 놓고 경쟁하는..

길위의단상 2015.12.31

WR124

우주에는 온갖 종류의 별들이 모여 산다. 그중에서 울프-레이예(Wolf-Rayet) 별이라 불리는 매우 극적인 삶을 사는 별이 있다. 울프-레이예는 태양 질량의 20배가 넘는 거성으로 뜨겁고 격렬하게 에너지를 방출한다. 표면 온도가 수만 도에 이르는데 거센 항성풍이 별의 물질을 우주로 흩날린다. 손실량이 태양의 10억 배나 된다. 그래서 별의 수명은 수백만 년에 불과하다. 보통 별 수명의 천분의 일밖에 안 된다. 사람으로 치면 한 달도 못 사는 셈이다. 울프-레이예는 별 중에서 가장 굵고 짧게 산다. 최후는 장렬한 초신성 폭발로 막을 내릴 것이다. WR124는 울프-레이예 별에 속한다. 별에서 날아간 물질들이 별 주위에 성운을 이루고 있다. 지금도 초속 수천 km의 속도로 팽창 중이다. 성운의 지름은 6..

길위의단상 201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