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89

마음의 상처

"그땐 니가 어찌나 골을 내든지...." 지나가며 하는 어머니의 말이 아프다. 그 옛날 부모님은 억척스레 일을 하셨다. 자식 다섯을 모두 서울로 보내 공부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밤에 고향집에 도착하면 집은 늘 캄캄한 채 텅 비어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논에서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자식을 위해 고생하신다는 걸 알면서도 오랜만에 보는 자식을 집에서 맞아주지 않는 부모님이 미웠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아마 그때 심통을 부렸던 것 같다. 뭔 일을 밤낮없이 하느냐고 투덜거렸을 것이다. 부모님은 묵묵히 듣기만 했음에 틀림 없다. 그게 마음의 흔적으로 남아 40년이 지난 지금 조심스레 꺼내보이는 게 아닐까. 그때 철이 들고 속이 깊었다면 논으로 나가 부모님의 일을 도..

참살이의꿈 2014.08.09

특이점이 온다

8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다. 담고 있는 내용도 그만큼 충격적이다. 인류의 미래에 대해 이만큼 과학적이고 구체적으로 분석한 책도 드물 것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진화가 인류를 어떻게 변모시킬지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해 준다. 특이점이란 미래에 기술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그 영향이 깊어서 인간의 생활이 되돌릴 수 없도록 변화되는 시기를 말한다. 블랙홀에서 사건의 지평선이 물질과 에너지를 끌어당기며 그 패턴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유사하다. 특이점은 생물학적 사고 및 존재와 기술이 융합해 이룬 절정으로서, 생물학적 근원을 훌쩍 뛰어넘은 세계를 탄생시킬 것이다. 특이점 이후에는 인간과 기계 사이에, 물리적 현실과 가상현실 사이에 구분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특이점이 임박한 시기에 ..

읽고본느낌 2014.07.28

100조분의 1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사람으로 태어날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남자는 1회 사정할 때 약 2억 마리의 정자를 방출한다. 평생으로 따지면 2,000억은 된다. 반면 여자는 평생 500개의 난자를 생산한다. 그러므로 부모에 의해서 태어날 수 있는 인간의 수는 100조가량 된다. 내가 이 세상에 나올 확률은 100조분의 1이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해주는 불교 설화가 있다. 어떤 사람이 구멍이 하나 있는 판자를 바다에 던졌다. 바다에는 눈먼 거북이가 살고 있는데 백 년에 한 번씩 물 위로 고개를 내민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거북 머리가 우연히 판자 구멍에 들어가게 될까?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그만큼 어려운 확률이라는 설명이다. 이 확률도 계산해 보자. 지구 표면적..

길위의단상 2014.06.22

타인의 고통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다. 남의 심장에 대못 박힌 것보다 내 손톱 밑에 든 가시가 더 아프다. 만약 타인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느낀다면 비탄과 절망으로 무너지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비극적 참상이 반복될 리가 없다. 인간의 고통은 철저히 개별적이고 실존적이다.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함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겉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척할 뿐이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과 동일시할 수 있는 건 신(神)의 영역이다. 예수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고 한 것에서 예수의 신성이 빛난다. 인간은 결코 타인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없다. 당신의 슬픔을 이해한다고, 당신 심정을 안다고 하는 건 오만이다. 진정으로 타인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건 값싼 눈물이 아..

참살이의꿈 2014.04.23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

얼마 전에 서울 광화문 거리를 지나다가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리포터가 마이크를 갖다 대며 이렇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행복은 어떤 것인가요?" 그런데 갑자기 행복에 대해 물으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방송용 카메라가 노려보고 있으니 더 그랬는지 모른다. 결국 머뭇거리다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행복에 대한 책도 많이 읽었고 행복에 관해 나름의 견해를 갖고 있다고 여겼는데 막상 질문을 받으니 난감했다. 인터뷰 자리를 떠나서도,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명확한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남이 한 행복 이야기는 전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과거에 행복하다고 느꼈던 때, 또는 불행하다고 느꼈던 때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행..

참살이의꿈 2014.04.03

에밀

루소의 을 이제야 읽었다. 전에는 처음 몇 장을 보다가 포기한 게 몇 번이었다. 아이를 기르는 교육이 나에게는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탓이었다. 이제는 꼭 한 번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 출판사 '돋을새김'에서 펴낸 책으로 편역으로 되어 있어 읽기에 부담이 덜했다. 250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의 교육서라고 해도 될 정도로 현대적이라는데 우선 놀랐다. 당시 분위기에서 이런 내용은 분명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 지도층은 격렬히 반발했고, 은 금서로 지정되었다.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루소는 다른 나라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 용기 있는 지성이 겪어야 하는 운명이었다. 아마 신앙에 관한 부분이 제일 논란이 되었을 것이다. 신의 존재를 의심하면서 성서의 권위를 부..

읽고본느낌 2014.02.16

고슴도치의 가시

"어느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은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서로 바싹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들의 가시가 서로를 찌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떨어졌다. 그러자 그들은 추위에 견딜 수 없어 다시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러자 가시가 서로를 찔러 그들은 다시 떨어졌다. 이와 같이 그들은 두 악(惡) 사이를 오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상대방의 가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발견했다." 쇼펜하우어가 쓴 우화인데, 인간의 외로움과 공허함으로부터 생겨나는 사교의 욕구는 서로를 한 덩어리가 되게 한다. 그러나 너무 가까워지면 불쾌감과 반발심이 일어 다시 떨어진다. 서로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간격이 인간 세상에서 지켜야 하는 정중함과 예의다. 일종의 중용인 셈이다. ..

참살이의꿈 2013.11.12

병아리 던지기 / 김순일

누우떼가 아프리카 대륙이 꺼지게 달려간다 건기를 맞은 수천 마리 누우떼가 싱싱한 풀밭을 찾아 먼지 자욱한 들판을 지나 강을 건너간다 도룡농 도마뱀 물고기 따위나 잡아먹으며 늘 배가 안차서 걸근거리던 악어들이 때를 만나 강목을 지키고 있다가 모처럼 포식을 하고 비단잠 속으로 들어가려는 참인데 뒤따라 강을 건너던 누우란 놈 겁도 없이 악어의 등때기며 머리통을 밟고 건너가는구나 요녀석 봐라 선잠을 깬 악어가 누우의 허벅지를 물고 짓이겨 댔는데 이거 어쩐 일인가 요단강 건너는 줄 알았던 누우의 허벅지엔 이빨자국 하나 없이 멀쩡하구나 오금아 날 살려라 혼 나간 누우란 놈 허둥지둥 강을 건너갈 때 악어녀석 벙긋벙긋 꽃잠 속으로 드는구나 아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다 갓깬 병아리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다 사층 아파트 창..

시읽는기쁨 2013.10.17

창백한 푸른 점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은 칼 세이건이 지구에 붙인 이름이다. 1990년에 태양계 밖으로 날아간 보이저 1호가 60억km 떨어진 곳에서 지구를 촬영했는데, 희미하게 빛나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명명했다. 이번에 토성 탐사선 카시니(Cassini)가 지구를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지난 19일에 지구에서 15억km 떨어진 곳에서 촬영한 것이다. 토성의 고리 밑에 화살표로 표시된 점이 지구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구를 보면 태양에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사진 찍기가 힘들다고 한다. 다행히 이 경우는 토성 뒤에 태양이 가려져 있어 지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NASA 홈페이지 설명을 보면 지금까지 외계에서 지구 사진을 찍은 경우는 세 번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귀한 사진이다. 우리가 사는 ..

길위의단상 2013.07.28

가장 사나운 짐승 / 구상

내가 다섯 해나 살다가 온 하와이 호놀룰루 시의 동물원, 철책과 철망 속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과 새들이 길러지고 있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 대문짝만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하는데 오늘날 우리도 때마다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 가장 사나운 짐승 / 구상 지난번 중국에 다녀올 때 공항에서 안내자가 흉기가 될 만한 물건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뒤에 있던 누군가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사람이 제일 무서운 흉기가 아닌가?" 어렸을 때 사랑방에 모인 우리를 보고 할아버지가 물었다. "산..

시읽는기쁨 2012.08.10

인간, 우리는 누구인가?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7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41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370만 년 ~ 29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300만 년 ~ 24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에티오피쿠스(260만 년 ~ 230만 년 전) 호모 루돌펜시스(250만 년 ~ 18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210만 년 ~ 15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190만 년 ~ 12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180만 년 ~ 3만 년 전) 호모 하이델메르겐시스(60만 년 ~ 20만 년 전)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20만 년 ~ 3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20만 년 전 ~ 오늘) 원시적인 인류의 형태는 약 2백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나타났다. 180만 년 전에 호..

읽고본느낌 2012.06.17

염소 / 맹문재

벚꽃이 어지럽게 떨어진 길을 어미 염소가 타달거리며 가고 있다 그 뒤에는 새끼 두 마리가 아니 열 마리 스무 마리가 총총 따른다 우스꽝스러운 몇 가닥의 턱수염 같은 기침을 가끔씩 내뱉으며 간다 어디를 보더라도 새끼를 데리고 갈 힘이 어미 염소에게는 없다 그리하여 가던 걸음 멈추고 구치소의 아들을 면회하는 아버지 같은 얼굴빛으로 하늘을 쳐다본 뒤 다시 길을 간다 그림자가 그 어떤 길도 마다하지 않고 주인을 따르듯 옛날의 어미가 갔던 길을 따라 간다 어미 염소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른다 단지 새끼 두 마리가 아니 열 마리 스무 마리가 뒤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 새끼들이 힘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 - 염소 / 맹문재 인간이 가는 길도 염소의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읽는기쁨 2012.04.25

장자[171]

남백자기는 아들 여덟을 앞에 세워놓고 구방인을 불러 말했다. “나를 위해 자식들의 관상을 보아주시오! 누가 상서롭소?” 구방인이 말했다. “곤이 상서롭습니다.” 남백자기는 의심스러운 듯 좌우를 둘러보고 기뻐하며 말했다. “어찌 그렇소?” 구방인이 말했다. “곤은 장차 군주와 더불어 밥을 같이 먹으면서 몸을 마칠 것입니다.” 이에 남백자기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다. “우리 자식이 왜 이런 악운에 이른단 말인가!” 子기有八子陳諸前 召九方인曰 爲我相吾子 孰爲祥 九方인曰 梱也爲祥 子기瞿然喜曰 奚若 曰 梱也將與國君同食 以終其身 子기索然出涕曰 吾子何爲以至於是極也 - 徐无鬼 9 초식성의 인간과 육식성의 인간이 있다. 식성만이 아니라 인간의 성품도 그렇게 나눌 수 있다. 아마 장자학파는 초식성의 극단에 위치하지 ..

삶의나침반 2011.07.03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섬이다. 고독하고 쓸쓸한 작은 섬이다. 섬은 혼자로는 온전한 대륙이다. 그러나 사람들 속에 있으면고립된 섬이 된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친다. 그 섬에 가고 싶지만 멀고 험하다. 네트워크는 지상에서 보내는 비상 신호다. 섬이 섬을 찾는 한 외로운 섬으로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섬은 스스로 충만한 존재, 바다 밑은 땅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몸이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

길위의단상 2011.01.26

삼류들 / 이재무

삼류는 자신이 삼류인 줄 모른다 삼류는 간택해준 일류에게, 그것을 영예로 알고 기꺼이 자발적 헌신과 복종을 실천한다 내용 없는 완장 차고 설치는 삼류는 알고 보면 지독하게 열등의식을 앓아온 자이다 삼류가 가방끈에 끝없이 유난 떨며 집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이 성희롱인 줄도 모르고 일류가 몸에 대해 던지는 칭찬 곧이곧대로 알아듣고 우쭐대는 삼류 삼류는 모임을 좋아한다 그곳에서 얻을 게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류와 어울려 사진을 박고 일류와 더불어 밥을 먹고 일류와 섞여 농을 주고받으며 스스로 일류가 되어간다고 착각하는 삼류 자신이 소모품인 줄도 모르고 까닭 없이 자만에 빠지는 불쌍한 삼류 사교의 지진아 아 그러나, 껍질 없는 알맹이가 없듯 위대하게 천박한 삼류 없이 어찌 일류의 광휘가 있으랴 노래를..

시읽는기쁨 2009.10.06

생명의 본능

‘21세기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라는 책은 새로운 여성의 세기가 다가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 책 내용 중에 동물세계에서는 암컷의 바람기가 보편적인 현상임을 보여주는 예들이 나온다. 새들 새끼의 유전자를 검사했더니 반 이상이 자신의 짝이 아닌 다른 수컷과의 관계로 태어난 것이 밝혀졌다. 일부일처제를 지킨다고 알려진 원앙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현상은 진화생물학적으로 볼 때 당연한 일이다. 다양하고 질 좋은 유전자를 확보하는 것이 생명의 목적일진대 평생을 한 파트너와 관계한다는 것이 도리어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자식이 훨씬 더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생존할 확률이 높다. 인간세상도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남자의 바람기가 쉽게 드러나는 것에 비해 여자의 바람기는 은폐되어 있고 또..

읽고본느낌 2009.06.29

사람 풍경

'사람 풍경'은 김형경의 심리 여행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수 년간 정신분석을 받은 뒤, 자신을 찾기 위해집을 팔고 해외여행을 떠났다. 이 책은 여행에서 만난 풍경이나 사람들 얘기면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한 기록이다. 이 책을 들면 저자의 여행 얘기를 들으면서 심리학 용어나 심리학의 기초 개념들을 쉽게 익힐 수 있다.사람들의 마음이나 그런 행동을 하는 배경에 대해 솔직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할 때는 거북하기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다. 저자는 특히 유년 시절에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인성을 중요시하고, 그 시절의 억압이나 왜곡된 콤플렉스가 무의식의 세계를 만든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인간의 감정과 의식을 해석하는데 프로이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첵은 3 장으..

읽고본느낌 2008.09.17

VIP

아무렇지도 않게 듣고 사용했던 말들이 어느 때부터 생경맞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쓸모 있는' 인간이 되라는 말도 그에 해당된다. 쓸모 있는 인간이 되라는 말은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듣고 자란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을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쓸모 있는 인간이 있다면 당연히 쓸모 없는 인간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과연 쓸모 없는 인간이 있을까? 그리고 '쓸모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말 속에는 인간을 도구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들어있음이 분명하다. 그런 말 중에 VIP도 있다. VIP는 말 그대로 Very Important Person,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사람이면 다 같은 사람이지, 세상에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길위의단상 2008.01.16

대답해 보아라 / 이현주

사람이 없어도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무가 없으면 사람은 숨도 못 쉰다 그래도 사람이 나무보다 크냐? 사람이 없어도 강은 유유히 흐른다 강물이 없으면 사람은 목말라 죽는다 그래도 사람이 강보다 크냐? - 대답해 보아라 / 이현주 가을이 어느 순간에 불쑥 찾아왔다. 그리고 올 여름도 예년 같지 않은 기상 때문에 말이 많았다. 8월에 장마보다 더 많은 비가 내리고, 8월 하순에야 더위가 기승을 부린 이상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젠 아열대기후에 포함된다느니, 장마 대신에 우기라는 말을 써야 한다느니 논란도 있었다. 사람이 감각적으로 느낄 정도의 기상 변화라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파국의 징조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금의 지구 온난화 속도는 기후 평형을 뒤흔들..

시읽는기쁨 2007.09.01

인간이 사라진다면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미국의 한 교수가 뉴욕을 중심으로 예상을 했다. 인간이 사라지면 맨하튼 땅 밑으로 흐르는 엄청난 양의 지하수가 흘러나와 이틀 만에 뉴욕의 지하철은 물에 잠긴다. 이어서 하수 오물이 땅 위로 떠오르고 부패하면서 1년 뒤에는 도로 포장이 마멸된다. 4년이 지나면 빌딩이 붕괴하기 시작하고, 5년 뒤에는 자연발화에 의해 불이 나 엄청난 화재가 발생해 모든 것을 태워 버린다. 그리고 20년이 지나면 폐허가 된 맨허튼 거리에는 개울과 늪이 생기고, 건물이 서 있던 자리에는 온갖 초목이 자라면서 뉴욕 특유의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결국 500년 뒤가 되면 뉴욕은 거대한 수풀 지대가 된다. 15000년이 지나면 빙하기가 찾아오는데, 맨해튼에 남아 있던 거대 건물들의..

길위의단상 2007.07.31

시장 사람과 마트형 인간

시장과 마트야말로 우리 시대를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일 것입니다. 재래시장이 사라지면서 대형 마트로 대체되는 현상은 도시화와 개인주의화 되는 우리 문명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외형적인 변화는 당연히 인간 생활을 변화시키고 의식을 지배하게 됩니다. 어느 분의 글에서 사람을 시장 사람과 마트형 인간으로 나눈 것에 공감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과거와 현대의 인간상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물건과 물건이 거래되는 장소가 시장이지만 그곳에는 인간의 체취가 묻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장터는 물건이 모이는 장소라기보다는 사람이 모이는, 특히 어른들에게는 사람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물건을 사고팔 때의 흥정이 그렇고,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축제 마당과 닮았습니다. 예를 들어 우시장에서 소를..

참살이의꿈 2007.03.14

교육인적자원부와 교육문제

참으로 어이없는 명칭 중의 하나가 '교육인적자원부'라는 이름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이 이름만 들으면 화가 난다. 지하자원이나 물적자원이라는 말은 익숙하게 써왔지만, 사람을 그와 같은 자원으로 취급하는 인적자원이라는 용어는 아직 낯설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용어에는 인간을 생명의 가치보다는 노동력으로만 생각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짙게 들어있다. 인간이 말이나 개념을 만들지만, 반대로 말이나 개념이 인간 의식을 결정하기도 한다. 교육인적자원부라고 당당하게 내건 저 이름이 무의식중에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을 생산 수단이나 도구로 여기게끔 작용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교육이란 쉽게 말해 인간을 인간답게 길러내는 것이다. 사실 길러낸다는 표현도 마땅하지 않다. 한 인간은 그 자체..

길위의단상 2006.11.21

나의 나 / 이시영

여기에 앉아 있는 나를 나의 전부로 보지 마 나는 저녁이면 돌아가 단란한 밥상머리에 앉을 수 있는 나일 수도 있고 여름이면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날아가 몇 날 며칠을 광포한 모래바람과 싸울 수 있는 나일 수도 있고 비 내리면 가야산 해인사 뒤쪽 납작바위에 붙어앉아 밤새 사랑을 나누다가 새벽녘 솔바람 소리 속으로 나 아닌 내가 되어 허청허청 돌아올 수도 있어 여기에 이렇듯 얌전히 앉아 있는 나를 나의 전부로 보지 마 - 나의 나 / 이시영 내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나'가 들어있다. 하늘을 닮은 나, 땅을 닮은 나, 늑대 같은 나, 양 같은 나, 어느 날은 군자가 되고, 어느 날은 소인이 된다. 가정과 직장의 안온한 울타리에 만족하지만 때로는 일탈을 꿈꾼다. 내 속에는 성인도 들어있고, 창부도 들어있다...

시읽는기쁨 2006.09.02

사람의 일 / 천양희

고독 때문에 뼈아프게 살더라도 사랑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고통 때문에 속 아프게 살더라도 이별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이 사람을 다칩니다 사람과 헤어지면 우린 늘 허기지고 사람과 만나면 우린 또 허기집니다 언제까지 우린 사람의 일과 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사람 때문에 하루는 살 만하고 사람 때문에 하루는 막막합니다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고 우린 또 사람을 기다립니다 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 또한 사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 사람의 일 / 천양희 그렇다. 모두가 다 사람의 일이다. 사람 때문에 아파하고, 그 사람으로 인하여 희망이 생긴다. 사람 때문에 하루는 살 만하고, 사람 때문에 하루는 막막해진다. 오늘이 그렇고, 내일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과 헤어지면 우린 늘 허기지고,..

시읽는기쁨 2006.01.18

神은 망했다 / 이갑수

神은 시골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회를 건설했다 神은 망했다 - 神은 망했다 / 이갑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이런 말씀을 내린 神은 아마 지금쯤은 크게 후회하고 있으실지 모른다. 神의 명령에 충실한 아담의 후예들이 번성하고(60년대에 30억이던 인구가 지금은 60억을 넘었고 50년 뒤에는 100억이 될 거라고 한다), 정복하고(남북극 어떤 극한지에도 인간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다스리면서(다른 종에게 인간은 무자비한 폭군이며 인간에 의한 멸종이 자연 멸종률의 근 1천배에 달한다), 지구마을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되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넜는지 神도 침묵만 하신다. '神은 ..

시읽는기쁨 2005.11.17

개들은 말한다 / 정현종

개들은 말한다 나쁜 개를 보면 말한다 저런 사람 같은 놈 이리들은 여우들은 뱀들은 말한다 지네 종족이 나쁘면 저런 사람 같으니라구 한국산 호랑이가 멸종된 건 개와 이리와 여우들 탓이 아니지 않은가 한국산 호랑이의 멸종은 전설의 멸종 깨끗한 힘의 멸종 용기의 멸종과 더불어 진행된 게 아닌가 날(生) 기운의 감소 착한 의지의 감소 제 정신의 감소와 더불어 진행된 게 아닌가 한국산 호랑이의 멸종은 하여간 개와 이리와 여우들 탓은 아니지 않은가 - 개들은 말한다 / 정현종 지난 여름 피서철에도 해수욕장의 무질서와 쓰레기가 문제가 되었다. 그때 어느 라디오 프로에서 진행자가 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사람이 짐승처럼 보여요." 말이 바른 말이지 어느 짐승이 남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뒤를 지저분..

시읽는기쁨 2005.09.16

원판 불변의 법칙

첫 직장에서 같이 근무했던 분을 25년 만에 처음 만났다. 이런 만남에서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이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는 건 별로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물론 그간의 세월 흔적은 얼굴과 몸에 눈에 띄게 드러나 있었다. 머리는 이미 반백이 넘어섰고 이마와 목에는 겹쳐진 주름살이 그 동안에 흘러간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말투나 웃는 모습, 또 그 뒤에 숨어있는 그 분의 성품이나 분위기는 25년 전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똑 같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대화를 계속하다보면 다음 말이 어떻게 나올지도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 분이 세상을 보는 눈이나 가치관이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가끔씩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옛 학교 동창들에서도 늘 똑 같은 사실을..

길위의단상 2004.02.25

의식 혁명

데이비드 호킨스가 쓴 `의식혁명`(원제; Power vs Force)이 있다. 그는 인간 정신의 진화를 설명하고 우리가 왜 자기 실현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밝히는데, 운동역학이라는 단순하고 어찌 보면 황당해 보이는 방법으로 인간이나 사회 의식을 수치화해서 나타내었다. 우주에는 보이지 않는 잠재의식의 에너지 장이 있고 그것이 각 개인의 의식 수준에 따라 여러 가지 감정이나 인식, 태도, 세계관 등에 상응하여 나타난다고 한다. 그가 제시한 의식의 지도는 다음과 같다.(IQ나 EQ가 유행하듯 CQ라는 의식 지수를 사용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잠재의식에너지→ 700 ~ 1000 --- 깨달음, 언어 이전 600 ------- 평화, 축복 540 ------- 기쁨, 고요함 500 ------- 사랑, 존경..

읽고본느낌 2004.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