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향기 825

자주달개비

자주달개비는 미국 원산으로 대개 화단에서 관상용으로 기르고 있다. 지금 교정에도 군데군데 자주달개비가 무리 지어 피어 있다. 야생화와 달리 이런 원예종 꽃들은 몇 주 동안 피고 지고 하기 때문에 오래 동안 감상하기에 좋다. 이 꽃의 이름이 자주달개비이지만 어떤 사람은줄여서 달개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닭의장풀을 달개비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그냥 달개비라고하면 자주달개비를 말하는 것인지, 닭의장풀을 말하는 것인지 자주 헷갈린다. 얼마 전에도 어떤 사람이 이 꽃 이름을 묻길래 달개비라고 했더니, 달개비는 이게 아닌데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도 그 사람은 닭의장풀을 연상했을게 틀림 없다. 이렇게 헷갈리는 것이 어디 달개비 뿐이겠는가? 사물을 가리키는 이름은 하나지만 그 의미는 사용하는 사..

꽃들의향기 2005.06.15

열대수련

터에 가는 길에 세미원(洗美苑)이 있어 가끔씩 들린다. 세미원은 온실 안과 바깥 연못에 여러 종류의 연꽃을 기르고 있는데, 세미원이라는 이름은 '觀水洗心 觀花美心'(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한다)이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번에는 어리연꽃이 피었을까 기대를 했지만 수련 몇 송이만 피어 있어서 썰렁했다. 대신 산책로를 따라 붓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다. 수련과에 속하는 연꽃과 수련은 물에 대한 꽃의 위치로 구분한다. 연꽃은 꽃이 크고 물 위로 높게 올라와서 꽃이 핀다. 반면에 수련은 꽃이 작으며 대개 수면에 붙어있다. 세미원의 온실 안에는 기온 탓인지 주로 열대수련을 기르고있다. 아무래도 색깔이 진해 연꽃의 분위기가 잘 전해오지 않는다. 마치 서양난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

꽃들의향기 2005.06.08

바위취

바위취는 그늘에서 잘 자라는데번식력이 아주 좋다. 꽃잎 모양이 특이한데 위에 달린 석 장은 크기가 작고, 아래에 있는 두 장은 길게 뻗어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모양이 한자의 큰 대[大]자를 닮았다. 그래서 '대문자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바위취를 보고 큰 대자를 모른다'는 속담도 생겨날 법 하다. 또 잎의 생김새에서 유래된 듯한 '범의귀'라는 이름도 있다. 터의 집 뒤에 수녀님이 주신 바위취를 10여 포기 심어 놓았는데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아선지 아직은 처음 심은 그대로이다. 아마 내년이면 화사한 바위취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한다.

꽃들의향기 2005.06.03

천남성

요사이 산에 오르면 심심치 않게 천남성을 만날 수 있다. 천남성은 꽃이 특이하다. 색깔이나 모양이 보통의꽃과는 다르다. 생긴 모양이 꼭 코브라가 고개를 치켜들고 서 있는 것 같다. 그런 느낌 그대로 천남성은 독성이 있다고 한다. 가을에 열리는 열매 또한 특이하다. 빨간 열매들이 뭉쳐있는 모양에서는 예쁘다기 보다는 뭔가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듯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왜 이름이 천남성(天南星)일까? '하늘 남쪽의 별' - 그러나 아무리 바라보아도 별과는 별 연관이 없어 보인다. 천남성은 나무 아래 그늘진 곳을 좋아하는데, 아무리 고개를 쳐들어도 보이지 않는 하늘의 별이 그리워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이름을 가르쳐주던 친구가 천남성을 '첫남성'으로 기억한다면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

꽃들의향기 2005.05.25

모란

모란을 보면 중국이 연상된다. 원산지가 중국이기도 하거니와 꽃의 모양이나 색깔이 왠지 중국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옛부터 화중왕(花中王)이라고 꽃 중의 제일로 쳤다지만, 활짝 핀 모란은 그 풍성한 자태가 도리어 부담이 될 정도로 나로서는 예쁘다는 느낌은 별로 갖지 못했다. 선덕여왕이 아직 어렸을 때의 얘기다. 중국에서 얻어 온 모란꽃 그림을 보여주니 "꽃은 아름다우나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웃으며 물으니 "그림에 벌, 나비가 없으니 이는 반드시 향기가 없는 꽃입니다."라고 답했다. 그 종자를 심어보니 과연 말대로였다. 선덕여왕의 총명함을 말해주는 일화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내용이다. 그러나 이 얘기도 조금 비틀어보면 그림에 나비가 없다고 해서 향기가 없다고 단정..

꽃들의향기 2005.05.20

피나물

우리 야생화가 좋아서 산으로 들로 꽃을 찾아 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밖에만 나가면 처음 보는 꽃들을 몇 개씩 만나곤 했다. 도감을 찾아보며 이름을 확인하고, 예쁜 모습을 눈에 새길 때의 기쁨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손때 묻은 옛 도감을 펼쳐보니 피나물 설명이 나오는 페이지에 이렇게 적어놓은 것이 보인다. '1996/4/28 청평사', 그 날은 피나물을 처음 만난 날이다. 눈을 감으니 9년 전 그때의 정경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맑은 봄날이었다. 아내와 같이 멀리 춘천에 있는 청평사로 나들이를 떠났다. 봄나들이 겸꽃을 보기 위해서였다. 소양호를 배를 타고 건너서 청평사로 가는 길 옆에서 환하게 피어 있는 이 꽃을 처음 만났다. '와-' 하며 뛰어 가서 도감을 통해 피나물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즐겁고..

꽃들의향기 2005.05.12

꽃사과나무

이사 온 이곳 동네에는 주변에 꽃사과나무가 많다. 둘레의 화단이나 인근 공원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의 주종이 꽃사과나무이다. 가을에는 빨간 열매가 보기 좋더니, 봄이 되니 하얀 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처음에는 분홍색 봉오리가 맺히더니 꽃이 피면서 하얀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온 나무가 하얗게 덮인다. 이름이 예쁜 꽃사과나무는 관상수로서 아주 좋을 것 같다. 또한 열매는 새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찾아오는 새들이 없어 그대로 땅에 떨어지는데, 나무밑에 주차해 있는 차들이 떨어진 열매의 진액으로 지저분해진 것을 자주 보았다. 봄의 하얀 꽃, 여름의 녹음, 가을의 빨간 열매, 마당의 여유가 있는 집이라면 꽃사과나무 한 그루 쯤 키워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꽃들의향기 2005.05.05

자주괴불주머니

괴불주머니는 현호색과 꽃 모양이 비슷하다. 대개 괴불주머니는 노란색이고 현호색은 자주색 비슷해서 구별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자주괴불주머니는 색깔 마저 현호색과 같아서 멀리서 보면 둘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크기나 꽃대에 꽃이 달린 모양을 보고 판단한다. 괴불주머니 쪽이 현호색 보다는 꽃이 크고 꽃대를 따라 총총이 달려있다. 사실 비슷한 종류 사이에는 잎의 모양으로 구별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지만 왠일인지 잎의 모양은 잘 입력이 되지 않는다. 주로 도감을 찾아보며 꽃의 이름을 익힌 터라 어떤 경우에는 착각이 생기기도 한다. 자주괴불주머니는 군락을 이루며 자라길 좋아하는 것 같다. 봄날 산기슭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자주괴불주머니 꽃밭은 봄 분위기를 한층 더 밝고 환하게 해 준다.

꽃들의향기 2005.04.28

미선나무

미선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생지가 발견된 우리의 특산식물이다. 개나리의 친척뻘 되는 나무로 이른 봄에 하얀 꽃을 피운다. 그래서 '흰개나리'로 불리기도 한다. 꽃은 한 자리에 서너개씩 포개서 달리는데 화사하고 아름다우면서 품격이 높게 보이고 향기도 진해 관상용으로는 최고의 꽃이기도 하다. 미선나무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지금은 멸종위기식물로 지정이 되어 있다. 한 때는 자생지에 사람들이 몰려와 마구잡이로 남획하는 바람에 멸종의 위기까지 갔으나 다행히도 지금은 많이 번식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이젠 묘목상에서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을 정도까지 되었다니 말이다. 교정의 화단에 미선나무 세 그루가 자라고 있다. 키는 1 m 안팎으로 아직 어린 나무들이지만 이른 봄에 피어난 순백의 하얀 꽃은 봄의..

꽃들의향기 2005.04.21

작은 풀꽃

교정에 있는 나무 중에서는 가장 먼저 산수유와 목련이 꽃을 피웠다. 매화나무도 한 그루 있지만 이곳 기후에 적응을 못해선지 꽃을 제대로 피워내지 못한다. 목련도 자라는 위치에 따라 피는 순서가 다르다. 양지 쪽에 있는 것은 벌써 꽃이 떨어졌는데 음지 쪽에서 자라는 것은 이제야 꽃잎을 열었다. 지금은 진달래, 개나리가 한창이다. 그 사이에서 하얀 앵두나무 꽃도 화사하고 명자나무도 바알간 색깔로 물들고 있다. 살구나무는 이미 꽃이 졌다. 한창일 때는 살구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얗게 피어난 살구꽃은 모든 사람들의 눈을 홀리게 할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풀꽃들이다. 늘 손질을 하는 탓에 꽃이 자라날 여건이 되지 못하지만 ..

꽃들의향기 2005.04.19

수선화

두 조각의 빵을 가진 자는 그 하나는 수선화와 바꾸라. 빵은 육체의 양식이나, 수선화는 마음의 양식이다. 수선화를 바라볼 때면 마호메트가 했다는이 말이 늘 연상된다. 이슬람교의 창시자가 사랑한 꽃이라는데, 그래선지 이 꽃에서는 탈속적이고 종교적인 향기가 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미소년 나르시스가 죽어서 변한 꽃이라고 한다. 어느 날 밖에 나간 나르시스는 목이 말라 샘물을 마시다가 물에 비친 얼굴을 보고 그 모습에 사랑을 느낀다. 마침내는 너무나 연모하게 되어 물에 빠져 죽게 되는데, 죽은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 수선화라고 한다. 아마 나르시스는 지금 식으로 얘기하면 꽃미남이었는가 보다. 왕자병에 걸린 꽃미남을 말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을 것 같다.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 사랑' 또는 '자아 도취'..

꽃들의향기 2005.04.14

산수유

산수유는 봄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꽃나무이다. 남쪽 지방으로부터는 매화의 개화 소식이 가장 먼저 들려오지만, 중부 지방에서 매화는 흔하게 볼 수 있지 않고 산수유가 그나마 가장 먼저 만나는 꽃나무가 아닌가 싶다. 산수유에 이어서는 목련이 화사한 꽃을 피운다. 산수유는 좁쌀만한 노란 꽃들이 둥글게 모여 있다. 자세히 보면 가운데에 수술이 솟아있다. 대부분의 꽃들이 그러하듯 멀리서 보다는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그 아름다움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산수유는 이른 봄의 꽃뿐만 아니라 가을의 빨간 열매도 보기에 좋다. 겨울이 되면 색깔이 퇴색되고 쪼글쪼글해지지만,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산수유 열매는 멋진 가을 풍경을 만들어 준다. 산수유로 유명한 곳은 경남 산동에 있다는 산수유 마을이다. 아직 한 번도 가보..

꽃들의향기 2005.04.07

복수초

복수초는 봄의 전령사이다. 제주도에서는 2월 초순이면 눈 사이에서 피어나 가장 먼저 봄 소식을 알려 준다. 그러나 서울 지방에서는 3월 하순이 되어야 산에서 피어나는 이 꽃을 볼 수 있다. 처음 이 꽃 이름을 들었을 때는 '복수'를 앙갚음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서 꽃 이름에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그 뒤에 한자로는 福壽草라고 쓰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름 그대로 이 꽃은 복과 장수를 상징한다.꽃말도 '영원한 행복' 또는 '봄의 미소'라고 한다. 이른 봄이 되면 신문에는 의례 눈 속에서 피어나는 복수초 사진이 실린다. 그래서사람들에게는 눈 속에서 피는 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내 경우는 불운하게도 눈 속에서 핀 복수초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키가 작은..

꽃들의향기 2005.03.31

천마산의 너도바람꽃

봄꽃을 보러 천마산을 찾다. 산 속에 드니 봄은 아직 멀리 있다. 계곡은 얼음으로 덮여 있고, 산길도 녹지 않은 눈으로 미끄럽다. 작년보다도 봄이 늦게 찾아오고 있음을 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맘때 쯤 천마산에서 만날 수 있는 봄꽃은 너도바람꽃, 노루귀, 복수초이다. 나는 이들을 3월의 천마산 3총사라고 부른다. 그 중에서 너도바람꽃이 가장 먼저 핀다. 아마 예년 같으면 지금쯤 너도바람꽃은 졌을 때인데 올해는 지금이 한창이다. 대신에 노루귀는 하나도 만나지 못했다. 복수초는 이제 갓 피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천마산 '꽃의 계곡'의 너도바람꽃 군락지는 정말 대단하다. 너도바람꽃이 쉽사리 볼 수 있는 꽃이 아닌데 유독 여기서는 엄청나게 많이 피어난다. 맑은 눈요기를 마음껏 할 수 있다. 천마산에 오르는 ..

꽃들의향기 2005.03.28

앉은부채

산 속 그늘진 골짜기에는 아직 눈이 남아있다. 눈을 뚫고 피어나는 봄꽃들 중에서 특이한 것이 앉은부채이다. 다른 꽃들과 마찬가지로 잎이 나기 전에 먼저 꽃을 피우는데 그꽃의 생김새도 특이하거니와 나중에 돋아난 잎은 마치 열대 식물을 연상시킬 정도로 넓고도 싱싱하다. 펼쳐진 잎이 마치 부채와 같다고 해서 이름도 앉은부채라고 한다. 그런데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꼭 감실 안에 애기부처가 앉아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름이 '앉은부처'에서 '앉은부채'로 변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놈은 주책없이 등산길에도 마구 자라나 애꿎은 등산객들의 발길에 밟히기도 한다. 아직 대부분의 식물이 싹을 틔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을 때 앉은부채는 독야청청 왕성한 생명력을 뽐내며 자라고 있다. 특히 앉은부채는 ..

꽃들의향기 2005.03.23

큰개불알풀

이름이 재미있는 이 꽃은 이른 봄에 피어나는데 군락을 지어 살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꽃의 크기는 아주 작은데 무더기로 모여서 피면 화사한 봄 분위기를 잘 자아낸다. 가까이 가서 바라보면 통통 튀는 명랑함도 느껴진다. 가만히 '개불알풀' 하고 불러보면 절로 미소가 도는 귀여운 봄꽃이다. 몇해 전 이맘때 선운사에 갔더니 절 앞 밭에 이 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한 개면 겨우 보일듯 말듯한 꽃이 무리를 지어서 피어있으니 그것도 장관이었다. 카메라를 꺼냈지만 꽃이 너무나 많아서 허둥대기만 했었다. 선운사는 나에게 절 보다도 주변의 풍광이 훨씬 좋다. 언제 가도 야생화들이 반겨주기 때문이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직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 상태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있어 맘에 든다. 다음 주말에는 선운사에 다..

꽃들의향기 2005.03.16

동백

내일부터 여수 오동도에서 등백꽃 축제가 시작된다고 한다. 지금쯤은 오동도 동백꽃이 활짝 폈을까? 지난 달에 찾아갔을 때는 때가 아니어서인지만개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러던 것이 돌산도 향일암에서 이 동백을 만났다. 바다를 마주한 곳에 백 년은 넘어보이는 아주 오래된 동백나무에 아름다운 자태의 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다. 수 천 그루씩 자라고 있는 오동도나 거제도에서는 보지 못 한 것을 여행의 마지막 날 향일암에 있는 한 그루 동백나무에서 만난 것이다. 그때의 들뜬 기분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설렌다. 우리나라 중부 지방에서만 생활한 나로서 동백은멀리 떨어진 상상 속의 나무나 꽃이었다. 겨울에 남해안으로 여행할 기회도 그리 많지 않았다. 동백나무의 육지쪽 북방한계선이 된다는 선운사에는 자주 갔지만 늘..

꽃들의향기 2005.03.11

개불알꽃

개불알꽃. 이름이 민망하다해서 종종 복주머니난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왠일인지 개불알꽃이 더 정감이 가고 또 생긴 모양과도 잘 어울린다. 비슷한 이름의 꽃으로 개불알풀이 있는데 둘 다 이름이 특이해서 쉽게 기억되는 꽃들이다. 몇 해 전 여름, 금대봉에 올랐을 때 그곳은 야생화들의 천국이었다. 그 때 이 꽃을 처음으로 만났는데 군계일학이라고 할까, 여러 꽃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멸종 위기에 있는 꽃이라고 알고 있어서 더욱 반갑고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꽃 모양이 재미있고 예뻐서 사람들이 마구 남획한 결과라고 하니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더구나 어떤 사람은 사진을 찍고난 후 뒤에 오는 사람이 같은 장면을 찍을까봐 꽃대를 꺾어버린다고 한다. 믿기지 않는 얘기지만 인간의 이기심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답..

꽃들의향기 2005.02.07

올들어 처음 만난 꽃

남녘 지방에 내려갔다가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다. 작은 농촌 마을 앞 밭둑에 개불알풀꽃 무리가 환하게 피어서 반겨주었기 때문이다. 개불알풀은 이른 봄에 꽃이 피는데 자줏빛이 나는 작은 꽃잎이 무척 귀엽고 예쁘다. 이렇게 한겨울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모습은 나에게는 이색적이다. 눈이라도 내렸다면 더욱 색다른 풍경이 되었을 텐데 하고 욕심을 부려본다. 하여튼 올해에 자연 상태에서 만나는 첫 꽃이어서 무척 반가웠다. 이 귀여운 꽃 이름이 왜 하필 개불알풀일까 하고 궁금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꽃이 지고나서 맺히는 열매 두 개의 모양이 개불알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이름을 지은 사람의 짖궂은 장난끼가 느껴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봄까치꽃으로 부르자고도 한다. 예부터 그런 이름으로도 불린 모양..

꽃들의향기 2005.01.30

수련

기회가 된다면 수련을 키워보고 싶다. 작은 연못을 하나 만들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입이 넓은 그릇에 물을 담고 수련을 띄워 거기에 작은 꽃이 피어난대도 좋겠다. 한여름의 물 위에 넓고도 여유롭게 떠있는 잎사귀는 거울처럼 윤기가 있고, 그 사이에 한두 송이 청초하게 피어있는 수련을 보면 온갖 마음의 시름이 다 잠들 것 같다. 그래선지 수련은 한자로 水蓮이 아니라 잠잘 수자로 된 睡蓮이다. 마음의 걱정과 시름을 잠재워 준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수련을 키워본 사람의 얘기로는 수련의 지는 모습이 무척 예쁘다고 한다. 처음 꽃봉우리였을 때처럼 꽃잎을 여미고 나서는 소리도 없이 물 밑으로 자취를 감추는데, 그 마지막 모습이 그렇게 단아하고 우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상으로만 그려 보는 것이지만 수련이..

꽃들의향기 2005.01.06

구슬봉이

봄 햇살은 따스하지만 산에는 아직 새싹들이 돋아나기 전이다. 땅은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낙엽들로 덮여있다. 이때 봄꽃들이 얼굴을 내미는데 그 중의 하나가 '구슬봉이'다. 뒷산을 오르다 보면 길을 따라 곱게 피어난 이 꽃을 만날 수 있다. 어떤 것은 길 가운데에서도 자라나 잘못하면 무심결에 밟을 수도 있다. 꽃을 정면에서 보면 별 모양으로 생겼다. 별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꽃이 있지만, 실제 별 모양에 더 가까운 것은 별꽃이 아니라 구슬봉이다.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하늘의 별이 땅에 내려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니면 낮에도 별이 그리워 누군가가 하늘의 별을 따다가 산과 들에 뿌려놓았을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면 이 귀여운 보랏빛 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꽃들의향기 2004.12.13

타래난초

타래난초는 작고 귀여운 꽃이다. 꽃은 꽃대를 따라 피어올라 가는데 이름 그대로 실타래에 감긴 실처럼 나선 모양을 하며 달려있다. 꽃이 너무 작아서 그냥 지나치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눈을 낮추고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면 꽃의 색깔이나 모양이 너무 예뻐서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 봄이 한창 무르익으면 양지 바른 곳에서 피어나는데, 나는 햇볕이 잘 드는 산소의 잔디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할미꽃과 생육 환경이 비슷하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작으면 작은 대로, 눈에 띄지 않으면 또 그대로, 자신의 주어진 몫을 다해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저 작은 꽃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꽃들의향기 2004.12.08

처녀치마

처녀치마는 수줍은 듯 숨어서 피어나는 꽃이다. 이른 봄, 아직 산에는 잔설이 남아있는데 처녀치마는 어두운 산골짜기에서 외롭게 꽃을 피운다. 이 꽃은 모양도, 이름도 특이하다. 굵은 꽃대 위에 다닥다닥 보라색 꽃이 달려있고, 크고 긴 잎은 땅에 붙어서 펼쳐져 있다. 그러고 보니 꽃이나 잎이 여성의 치마 모습을 닮은 것도 같다. 꽃은 주름이 많아 부풀어오른 풍성한 스커트가 연상이 되고, 잎이 땅에 펼쳐진 모습은 늘씬한 롱스커트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처녀치마'라는 이름은 이 꽃의 일본명을 잘못 옮긴 것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이 꽃의 일본 이름이 猩猩袴(쇼우조우바카마, 성성이치마)인데, '쇼우조우'라는 발음이 소녀(少女)의 '쇼우조'와 비슷해서 그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처녀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

꽃들의향기 2004.12.01

쥐오줌풀

새벽 4시에 일어나 배낭을 챙겨서 출발한다. 소백산 아래에 도착해서 어두운 산길을 따라 두 시간 정도 오르면 연화봉에 이른다. 오르는 도중에 해가 떠오르는 장관도 볼 수 있다.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고는 어머니와 만날 시간 약속을 하고 헤어진다. 어머니는 산나물을 뜯으러 가고, 나는 소백산 능선의 봄꽃을 보기 위해서이다. 5월 초순이 되면 소백산 연화봉 부근 능선은 아름다운 야생화 꽃밭으로 변한다. 바람 세고, 나무도 자라지 못하는 산꼭대기 벌판에 봄이 되면 온갖 야생화들의 잔치판이 벌어지는 것이다. 처음 이 광경을 보고는 가슴이 울렁거리고 넋이 나갈 정도여서 이리저리 허둥대기만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제 정신을 차리고 차분해질 수 있었다. 언제나 꽃들에 취해 있으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사실..

꽃들의향기 2004.11.25

말채나무

바람이 차다. 지난 밤에 분 바람으로 나뭇잎들이 많이 떨어졌다. 느티나무, 느릎나무에 마지막까지 달려있던잎들도 이젠 대부분으로 땅으로 돌아갔다. 말채나무의 노오란 잎들만이 가는 가을이 아쉬운 듯 끝까지 남아 '아듀-'의 인사를 보내고 있다. 11월이 되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간다. 그래도 지나가는 시간들이 아쉽게 느껴질 때가 좋은 때이다. 삶이 힘들고 고달플지라도 머리 위의 저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를 잃어서는 안 되겠다. 언제나 아름답고 맑은 하루하루가 되길 소망해 본다. 같은 말채나무이다. 그런데 이놈은 색깔이 붉다. 이웃해 있는 같은 두 나무가 하나는 노란 잎을, 다른 하나는 붉은 잎을 달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꽃들의향기 2004.11.13

산국

이젠 산과 들에서 야생화를 보기 힘든 계절이 되었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것이 노란 산국이 아닌가 싶다. 산국(山菊)과 감국(甘菊)은 구별하기가 무척 힘들다. 둘의 차이점을 설명 듣기는 했으나 막상 실전에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둘은 너무 비슷해서 정확히 구별하는 것은 포기하고, 산에서 자주 눈에 띄는 노란 꽃은 그냥 산국이라고 부른다. 감국은 흔하지 않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화주나 국화차로 이용하는 것은 감국이라고 한다. 산국은 독성이 있다니 조심해야 되겠다. 이 조락의 계절에 저 산 아래 어딘가에는 노란빛의 산국 한 무더기가 아직 남아있어 지나는 나그네의 발길을 붙들고 있을 것이다.

꽃들의향기 2004.11.01

토평의 코스모스 꽃밭

서울에서 가까운 토평의 한강변에는 넓은 코스모스 꽃밭이 있다. 마침 오늘은 구리 시민의 날과 겹쳐서 강변북로와 한강 둔치에는 차와 사람들로 넘쳐났다. 철 지난 코스모스 꽃밭에는 기념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들어가서 다니는 바람에 꽃들이 밟혀 죽고 엉망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주차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사람들의 발길을 덜 타서 온전한 꽃밭을 모양을 갖추고 있는데 늦게 씨를 뿌렸는지 싱싱한 꽃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코스모스는 남미 원산의 외래종이지만 이미 한국의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 된지 오래다. 포플러나무가 도열한 신작로 양편으로 코스모스 꽃길이 환했던 옛날 고향 가을 풍경도 아련하다. 지금은 중부 지방 산들의 단풍이 절정을 향하고 있다는데 가을이익어가고 있는 우리 산하는 어딜 가도 아름다운 풍..

꽃들의향기 2004.10.10

미국쑥부쟁이

암사동 한강 둔치에는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된 자연 생태 보전 지역이 있다.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고 출입 금지된지가 1년이 되는데 지금은 억새, 갈대를 비롯해서 온갖 식물들이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땅이 되었다. 여기에 가 보면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면 땅은 금방 생명으로 가득차서 생태계가 회복되는 현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 가장자리를 따라 전에는 보지 못했던 흰 꽃이 군락을 지어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꽃 모양은 개망초와 비슷한데 크기는 훨씬 작았으며, 올망졸망 무더기로 피어있는 모양이 가을 분위기를 더해 주고 있었다. 이름을 확인해 보니 이 꽃은 '미국쑥부쟁이'였다. 70년대에 꽃다발을 만들기 위한 용도로 들여왔는데 지금은 온 나라 산야에 두루 퍼져있다고 한다. 꽃이름에 '미국'이나 '서..

꽃들의향기 2004.10.09

고마리

오늘도 비가 지나갔다. 올 가을은 유난히 비가 잦은 편이다. 고향에서 가을걷이 하시는 어머님이 비 때문에 더욱 힘드시지나 않으실까 걱정이다. 고향 마을 앞 개울가에는 지금쯤이면 고마리가 무리지어 엄청 많이 피어있을 것이다. 고마리는 멀리서 보면 메밀꽃밭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까이 가보면아직 덜 핀 것은 윤기나는 쌀알같은 꽃이 탐스럽다. 워낙 작은 꽃이라서 활짝 피어도 조그만하지만 무척 귀엽고 이쁘다. 다가오는 추석에 귀향하면 이 고마리 꽃밭에 찾아가 보고 싶다.

꽃들의향기 2004.09.21

구절초

가을 분위기를 더해주는 꽃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시골의 작은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며 익어가고 있는 해바라기가 있고, 길을 따라가며 청초하게 피어나서 가을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코스모스도 있다. 산에서는 노란 마타리가 파란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리고, 들판 어디에서나 자라서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쑥부쟁이도 있다. 도시의 베란다에 내놓은 노란 국화 또한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 준다. 이런 가을꽃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구절초이다. 구절초의 하얀 꽃잎만큼 신비감을 주는 색깔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사진은 공원에서 군락으로 키워놓은 구절초를 찍은 것이지만 실제 야생 상태에서는 이렇게 조밀하게 피지는 않는다. 가을 산야에 외로이 피어있는 구절초의 모습은 고독하지만 순결함을 잃지 않은 ..

꽃들의향기 2004.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