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28

겨울밤 / 박용래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 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 집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 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 겨울밤 / 박용래 절제의 미학을 보여주는 시다. 단 네 줄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애절하게 담아냈다. 고향을 떠나온 지 긴 세월이 흘렀고,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자주 찾아오는 나이가 되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유년의 고향 집 겨울은 따스하다. 시인의 시대로부터 그리 많은 세월이 흐른 것도 아니다. 이제 그런 고향은 없다. 누군가에게는 찾아가지 못하는 고향이고, 누군가에게는 찾아가더라도 이미 사라진 고향이 되었다. 기억 속 고향과 현실의 고향은 괴리가 너무 깊다. 그런 불협화음이 우리를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하는 건 아닐까. 고향을..

시읽는기쁨 2024.02.17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멋진 경치를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속에 그리움 하나를 품고 있는 것일 게다. 그리움은 그가 내 옆에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결핍의 감정이다. 어쩌면 소유욕의 일종인지 모른다. 사전에서는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그리움 중에는 짝사랑 같은 일방통행식 그리움도 있고, 사람이 아닌 추상적인 대상에 대한..

시읽는기쁨 2022.05.01

사라진 요리책 / 신수옥

배추 세 포기 절이려고 소금 항아리 열고 망설이다 전화기를 든다 익숙한 번호를 누르자 신호 한 번 가지 않고 들리는 말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낯선 목소리에 가슴이 덜컹 힘이 빠진다 뜨거운 덩어리가 울컥 올라온다 큰언니의 번호를 눌러본다 소금 몇 공기 퍼야 하는지 모른다고 울먹이자 이 바보야, 네 나이가 몇인데 말끝을 흐린다 내 요리책이었던 엄마 음식 만들다 말고 전화기만 들면 몇십 년 한결같이 초판 내용을 유지했었다 몇 번을 물어도 반갑게 말해주던 엄마 음성 그리워 배추를 절이다 말고 무릎 사이로 고개를 묻는다 눈물로 푹 절여진 얼굴 간이 밴 표정이 엄마를 닮았다 - 사라진 요리책 / 신수옥 "감사할 일 투성이네." 얼마 전에 지인과 통화를 하다가 들은 말이다. 아흔 노모가 시골에서 건강하게..

시읽는기쁨 2021.12.20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장마처럼 눅눅하고 우울한 기분이 이어지는 날들이다. 도서관 서가의 책을 훑어보다가 제목에 끌려서 꺼낸 책이다.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접하면서 위안을 받는 어찌할 수 없는 동물이다. 그런 연민이나 안도감이라도 없다면 세상을 살아내기가 훨씬 더 뻑뻑할 것이리라. 는 카툰 작가인 박광수 씨가 그리고 썼다. 짧은 글에 그림이 어우러져 있어 책장이 쉽게 넘어갈 듯하지만 문득 멈추어야 되는 순간이 잦다. 그래 맞아, 이건 내 이야기이기도 해, 라는 독백이 절로 나온다. 지은이가 자주 지적하는 대로 삶은 버텨내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볼 때는 즐겁고 재미나게 사는 것 같지만, 자신은 '버티기'가 삶의 기조였다고 한다. 그런 산을 무수히 넘어서 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

읽고본느낌 2018.07.13

그리운 나무 / 정희성

사람은 지가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그 사람 가까이 가서 서성대기도 하지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을 가지로 벋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저리도 속절없이 꽃이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고 바람 불어 그 향기 실어 날려 보내는 기라 - 그리운 나무 / 정희성 누군가가 우주를 '색(色)과 욕(欲)'으로 정의한 걸 본 적 있다. '욕(欲)'이라는 단어에서 부정적인 느낌이 든다면, '그리움'으로 바꿔 불러도 좋겠다. 표현 방식이 다를 뿐 모든 존재는 그리움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나무가 인간을 본다면 얼마나 수선스럽게 보일까? 한 자리에 가만있지 못하고 쉼 없이 돌아..

시읽는기쁨 2013.06.14

배꽃

배꽃은 수수하다. 다섯 장의 하얀 꽃잎에 까만 수술이 달린 모습을 보면 주근깨가 난 하얀 얼굴의 소녀가 연상된다. 그리 잘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그래선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도 못한다. 배꽃에 대한 관심은 다른 꽃에 비해 덜한 것 같다. 배꽃을 한자로 이화(梨花)라 한다. 배꽃을 학교명으로 삼은 곳으로 이화여자대학교가 있다. 여학교에 꽃 이름이 많이 쓰일 것 같은데 막상 찾기 어렵다. 배화나 선화 같은 이름은 '꽃 화[花]'만 들어갔지 꽃 이름은 아니다. 이화여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1887년에 스크랜튼 부인이 운영하던 여학교에 고종이 내려준 이름이 '이화학당'이었다고 한다. 당시 정동에 있던 학당 근처에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기 때문이었거나, '이화정'이라는 정자 이름에서 땄을 것이라는 두 가..

꽃들의향기 2013.05.09

저 벚꽃의 그리움으로 / 김영남

벚꽃 소리 없이 피어 몸이 몹시 시끄러운 이런 봄날에는 문 닫아걸고 아침도 안 먹고 누워있겠네 한 그리움이 더 큰 그리움을 낳게 되고... 그런 그리움을 누워서 낳아보고 앉아서 낳아보다가 마침내는 울어버리겠네 소식 끊어진 H를 생각하며 그러다가 오늘의 그리움을 어제의 그리움으로 바꾸어보고 어제의 그리움을 땅이 일어나도록 꺼내겠네 저 벚꽃처럼 아름답게 꺼낼 수 없다면 머리를 쥐어뜯어 꽃잎처럼 바람에 흩뿌리겠네 뿌리다가 창가로 보내겠네 꽃이 소리 없이 사라질까 봐 세상이 몹시 성가신 이런 봄날에는 냉장고라도 보듬고 난 그녀에게 편지를 쓰겠네 저 벚나무의 그리움으로 - 저 벚꽃의 그리움으로 / 김영남 여의도 벚꽃길에 200만이 모였다고 한다. 옛날에는 창경원 벚꽃구경이 유행이었는데 이젠 여의도로 옮겨갔다. 소..

시읽는기쁨 2011.04.17

그리움 / 이용악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 그리움 / 이용악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하얀 설원을 기차가 달리는 영화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것은 '백무선'(白茂線)이라는 이국적인 철길 이름에다 함박눈 속을 느릿느릿 달리는 화물차의 영상이 낭만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시인의 그리움은 간절하긴 하지만 구차하진 않다. 비록 한밤중에 잠이 깨어 잠 못 들지만 고향에 내리는 함박눈을 연..

시읽는기쁨 2010.01.20

너를 찾는다 / 오세영

바람이라 이름한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들, 무엇이라 호명(呼名)해도 다시는 대답하지 않을 것들을 향해 이제 바람이라 불러본다. 바람이여, 내 귀를 멀게 했던 그 가녀린 음성, 격정의 회오리로 몰아쳐와 내 가슴을 울게 했던 그 젖은 목소리는 지금 어디 있는가. 때로는 산들바람에, 때로는 돌개바람에, 아니 때로는 거친 폭풍에 실려 아득히 지평선을 타고 넘던 너의 적막한 뒷모습 그리고 애잔한 범종(梵鐘)소리, 낙엽소리, 내 귀를 난타하던 피아노 건반, 그 광상곡(狂想曲)의 긴 여운, 어느 먼 변경 척박한 들녘에 뿌리내려 민들레, 쑥부쟁이, 개망초 아니면 씀바귀꽃으로 피어났는가. 말해다오. 강물이라 이름한다. 이미 잊혀진 것들, 그래서 무엇이라 아예 호명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을 향해 이제 강물이라 불러본다...

시읽는기쁨 2009.11.21

그녀가 보고 싶다 / 홍해리

크고 동그란 쌍꺼풀의 눈 살짝 가선이 지는 눈가 초롱초롱 빛나는 까만 눈빛 반듯한 이마와 오똑한 콧날 도톰하니 붉은 입술과 잘 익은 볼 단단하고 새하얀 치아 칠흑의 긴 머리결과 두 귀 작은 턱과 가는 허리 탄력 있는 원추형 유방 연한 적색의 유두 긴 목선과 날씬한 다리 언뜻 드러나는 이쁜 배꼽 밝은 빛 감도는 튼실한 엉덩이 주렁주렁 보석 장신구 없으면 어때 홍분 백분 바르지 않은 민낯으로 나풀나풀 가벼운 걸음걸이 깊은 속내 보이지 않는 또깡또깡 단단한 뼈대 건강한 오장육부와 맑은 피부 한번 보면 또 한번 보고 싶은 하박하박하든 차란차란하든 품안에 포옥 안기는 한 편의 詩 - 그녀가 보고 싶다 / 홍해리 마흔 중반에 접어들면서 삶에 대한 의문이 여름 하늘의 뭉게구름처럼 일어났다. 삶은 고단하고 남루했으며,..

시읽는기쁨 2009.09.17

약탕관에 흐르는 눈물 / 고정희

섬이라면 주야로 배 저어가고 산이라면 봉이마다 오르는 길 있으련만 사랑의 길눈 어두운 나는 그대에게 가는 길 아직 찾지 못하였습니다. 천하 명금 이마지가 거문고를 타고 허오가 자지러지게 피리를 분들 노심초사 그대 생각뿐인 내 마음 즐겁지 않으니 영명한 한의사는 내게 사랑의 묘약 한 재 지어주며 사랑의 길눈 밝아지랍니다. 지은 정성 달이는 정성 마시는 정성으루다 사랑의 길눈 밝아져서 그대 나라에 잘 들어가랍니다. 용한 한의사의 처방대로 햇빛 쨍쨍하고 산들바람 부는 날 받아 사랑의 묘약 달이기를 합니다. 진흙으로 빚은 약탕관에 천년설봉 얼음 녹여 사랑의 묘약 털어넣은 후 하루 스물네 시간에 돋은 그리움 썰어넣고 스무 날 우거진 오매불망 구엽초도 비벼넣고 석 달 열흘 무성한 그리움 잘라넣고 삼 년 묵은 섭섭함..

시읽는기쁨 2009.03.31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 정희성

어느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 정희성 '그립다'는 말만큼 정겨우면서 가슴을 울리게 하는 말도 드물다. 그리움은 우리 마음 속의 깊고 심원한 그 무엇에 닿아 있는 정서다. 그리움은 우리가 떠나온 영혼의 고향에 연원을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리움은 거기에 이를 수도 없고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동경이므로 슬픔이라고 부..

시읽는기쁨 2008.12.26

세상에! 보고픈 당신 / 성기완

세상에! 보고픈 당신 당신이 날 보고프시다면 나는 늘 세상 밖으로 달려가요 당신이 계신 곳은 어디든 세상 밖 세상이 모르도록 깊이 잠든 당신 나는 세상 밖의 남자이므로 세상이 몰라도 당신 곁에 있어요 바로 곁에 꿈이라면 꿈속에 삶이라면 그 속에 보고픈 당신 당신이 날 보고프시다면 언제나 세상이 깊이 잠들죠 세상에나! - 세상에! 보고픈 당신 / 성기완 특정한 어조로 인하여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옛날의 그녀는 깜짝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늘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독백하듯 내뱉던 그녀의 '세상에'는 리드미컬하면서 맑고 귀여웠다. 시가 인상적인 것은 시의 내용만이 아니라 이런 개인적인 경험도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이 시는 '세상에'라는 말 때문에 옛날의 그녀를 생각나게 한다. 그녀에게 보고 싶다고..

시읽는기쁨 2008.11.24

그녀네 집이 멀어서 / 신경림

그녀네 집이 멀어서 북적대는 시게전을 지나야 한다 골목을 벗어나면 언덕이 있고 싸리울 하얀 꽃 속에 그녀는 산다 방은 늘 비어 있어 어른대는 살구꽃에 취해 잠이 들었다 눈을 뜨면 꽃 그림자가 방문을 덮는다 그녀네 집이 멀어서 물 머금은 보름달을 등에 지고 내려오는 길은 더욱 멀다 골목을 벗어나고 시게전을 지나서 외진 모퉁이 들여다보면 꼬치집에도 그녀는 없다 기다리며 구석에 앉아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나는 잊는다 그녀의 얼굴을 체취를 잊고 이름을 잊는다 그녀네 집이 멀어서 시게전을 잊고 유행가가 자욱한 골목을 잊고 싸리울 하얀 빈 방을 잊고 비릿한 이불자락을 잊고 달빛을 가리는 살구꽃과 과묵한 꼬치집 주인을 잊고.... 당초부터 이 세상에 없는지도 모를 그녀네 집이 멀어서 너무 멀어서 - 그녀네 집이 멀어..

시읽는기쁨 2008.07.14

사무치다

사무친다는 게 뭐지? 아마 내가 너의 가슴속에 맺히고 싶다는 뜻일 거야. 무엇으로 맺힌다는 거지? 흔적... 지워지지 않는 흔적. - 안도현의 '연어' 그대가 사무친다고 할 때마다 내 가슴은 두려움으로 떨립니다. 그것은 한 사람을 사무치게 그리워한다는 일이 얼마나 큰 고통과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사무친다는 것은 그대를 향한 간절함이 뻣속까지 스며들어 대책없이 흐느끼게 되는 일입니다. 그대 가슴속에 맺히고 싶은 나의 그리움은 오늘도 그대를 향해 날아갑니다. 그대 가슴에 닿는 거기까지가 바로 나입니다.

길위의단상 2008.03.06

무언가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

루이스에 심취해 있는 H가 '영광의 무게(The Weight of Glory)'라는 10여 쪽 되는 글을 보내주었다. 이 글은 1941년에 루이스가 어느 교회에서 한 설교라고 한다. 이 글에서 루이스는 인간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어떤 갈망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일생동안 우리를 따라다니는 노스탤지어(nostalgia), 즉 우주의 무언가로부터 자신이 떨어져 나왔다고 느끼고 그것과 다시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갈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볼 때 그것은 근원적인 쓸쓸함이고 외로움이며 그리움이다. 모든 인간 활동이나 예술의 근저에는 이 갈망이 주된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갈망의 정체에 대하여 무수한 종교적, 철학적 논의가 있어 왔고 예술적 해석 또한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루이스는 기독교적..

참살이의꿈 2007.09.04

아득한 그리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사람 속에서 샘솟아 나오는 그리움으로 산다. 이그리움은 시원도 모르고 깊이 또한 측량할 길 없어, '아득한 그리움'이라 나는 부른다. 사막으로산속으로 세상을 피해 참살이를 찾아가는 발걸음도 이 그리움 때문이다. 무대에서 춤추는 광대의 신바람도 이 그리움 때문이다. 때가 되면 짝을 찾고,이성의 향기를 연모하는 것도 이 그리움 때문이다. 직장에 나가고, 돈을 벌고, 가족을 지키고 부양하는 것도 이 그리움 때문이다. 이 그리움이 없으면 사람은 죽는다. 모든 생명의 힘과 에너지의 근원이야말로 이 그리움이다. 모든 존재들은 이 그리움으로 인하여 살아간다. 저 작은 풀꽃도 그리움으로 인하여 싹이 트고 잎을 내고 열매를 맺는다. 밤하늘의 달도 그리움으로 인하여 지구 둘레를 떠나지 못하..

참살이의꿈 2007.06.10

알 수 없어요

당신이 날 좋아하는지, 아니면 아무 관심도 없는지 난 아직 알 수 없어요. 당신의 미소는 봄볕처럼 따스하다가 어느 때는 얼음장같이 차가워집니다. 당신은 나에게 다가와 연인처럼 속삭이지만, 어느새 다른 사람 뒤를 따라갑니다. 그 남자는 달콤한 말과 노래로 속삭일 줄 알죠. 당신을 처음 본 순간, 나는 내 마음 속의 여인과 만났답니다. 꼭꼭 숨어있던 그녀가 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뒤로 내 눈을 늘 당신 뒤를 따라다닙니다. 당신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색깔인가요? 5월의 신록은 당신 마음에 어떻게 자리잡고 있나요? 그리고 저 파란 하늘의 흰구름을 보며 당신은 무슨 꿈을 꾸시나요? 당신과 마주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해 지는 바닷가 갯바위에서 저녁 노을을 함께 바라보고 싶어요. 비 내리..

길위의단상 2007.05.09

그 사람에게 / 신동엽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의 마주친 그 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그 사람에게 / 신동엽 사람 때문에 기뻐하고 사람 때문에 아파한다.사람은 늘 누군가를 그리워하도록 사람 속에는 심연 깊은 갈증의 샘이 들어있다. 그 사람을 만남으로써 우리는 한 걸음 더 완성된 인간으로 나아가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한다 말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그 사람은 나를 봐주지 않고, 저 멀리서 미소 짓는 여인의 얼굴을 나도 무심코 외면해 버린다. 우리는 그렇게 서걱거리며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것이 인생....

시읽는기쁨 2007.05.03

그리움 / 김초혜

천둥소리 내 안에서 머뭇거리는 것을 보니 오랫동안 구름으로 살다 보면 그대 이마를 적시는 비가 되어 내릴 수도 있으리라 - 그리움 / 김초혜 내 안에서도 천둥소리 들린다. 그저 몇 번 쿵쾅거리다 말지, 아니면 번개 되고 소나기 되어 그대와 하나가 될지 나는 모른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지금 그대를 그리워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고맙고 소중한 일이다. 대상이 무엇이든, 그리움은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을 지향하는 기도며 흐느낌이다. 모든 존재가 마찬가지다. 새떼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도 그리움 때문이고, 종소리가 아프게 퍼져나가는 것도 그리움 때문이다. 그대를 품에 안아도 내 갈증 채워지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나는 그대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비가 되어 그대 이마를 적시고 그대의 속으..

시읽는기쁨 2006.11.17

선재도의 저녁

당신이 그리운 날은 길을 떠납니다. 떠나는 것은 당신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욱 당신을 그리워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더욱 가까이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은 서해 바닷가에 앉았습니다. 당신을 향한 내 그리움처럼 밀물은 발밑까지 밀려와 있습니다. 바다에는 작은 섬 하나가 고요히 누워있네요. 바다 내음, 찰랑거리는 물결 소리, 그리고 눈 앞의 풍경이 편안합니다. 당신을 향한 마음도 폭풍이 아니라 이렇게 향기 머금은 미풍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화려한 꽃보다는 소박한 풀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저녁 노을을 보기 위해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러나 연분홍 빛깔이 생기는 듯 싶더니 금방 암회색구름 뒤에 숨어버리네요. 그래도 나는 저 구름 뒤에서 당신의 웃는 얼굴을 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당신과..

사진속일상 2006.10.26

가을 색깔

가을비가 지나고난 뒤 성큼 가을이 다가왔네요. 오늘은 시선이 몇 번이나 창 밖을 향했는지 몰라요. 그 눈길따라 내 마음도 가을을 찾아 떠나요. 그리고 그리운 당신에게로.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아마 가을에는 우리들 마음도 노랗고 빨갛게 물들 거예요. 가을은 내가 좋아하는 서해바다 노을 색깔을 닮았죠. 그것은 모든 사라지는 것들이 내는 색깔이죠. 그래서 가장 아름답고 고운 색깔.... 창 밖에는 담쟁이덩굴이 외롭게 매달려 있네요. 올해는 너무 가물어서 담쟁이도 제 색깔을 못낸 채 시들고 있답니다. 그에게도 이 가을은 시련의 계절일까요? 나는 혼자서 '가을' 하고 가만히 속삭여 봅니다. 그리고 작은 것들, 사라지는 것들, 쓸쓸함, 낮아짐을 생각합니다. 가련하고 연약한 존재들을 더욱 사랑하는 것에..

사진속일상 2006.10.24

그리운 사람은

꽃은 산 속에 있을 때, 넓은 들판에 피어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홀로 피어있어도 무리를 지어 피어있어도, 비 내리면 비를 맞고 바람 불면 흔들리며 자신의 자리에서 자라는 모습이 아름답다. 내 곁에 두고 싶어 손을 대는 순간 꽃은 시든다. 그리운 사람은 그냥 가슴 속에 담아두자. 아름다운 사람, 예쁜 당신은 그저 멀리서 바라보자. 소롯이 그리워하며 애틋이 아껴보며 그냥 옆에서 지켜보자.

길위의단상 2006.10.13

나도 그리울 때가 있다 / 정미숙

살다 보면 그런 날 있지 않은가 문득 떠나고 싶고 문득 만나고 싶은 가슴에 피어오르는 사연 하나 숨 죽여 누르며 태연한 척 그렇게 침묵하던 날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고독이 밀려와 사람의 향기가 몹시 그리운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차 한 잔 나누며 외로운 가슴을 채워 줄 향기 가득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바람이 대지를 흔들어 깨우고 나뭇가지에 살포시 입맞춤하는 그 계절에 몹시도 그리운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살다 보면 가끔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 나도 그리울 때가 있다 / 정미숙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가끔씩 찾아오는 이 공허함과 허기짐, 사람으로 인하여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사람이 고플 때가 있다. 고운 사람의 향..

시읽는기쁨 2006.05.19

그리움 /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 그리움 / 유치환 '그리움'은 허기진 땅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이다. 그 무엇을 그리워 하는 마음은 아름답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그리워 하고, 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워 하고, 가고 싶은 저 피안의 땅을 그리워 한다. 모든 그리움의 대상은 존재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의 표상이다. 그리움을 아름답다고 했지만 동시에 그리움은 한없이 아프기도 하다. 욕망이 충족되어도 그리움은 남는다. 올해는 나에게 그리움의 한 해가 될 것 같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누구든, 마음 속으로 아름답게 아프게 그리워 해야 할 것 같다.

시읽는기쁨 2006.01.05

그리운 강 / 도종환

사람들은 늘 바다로 나갈 일을 꿈꾸지만 나는 아무래도 강으로 가야겠다 가없이 넓고 크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작고 따뜻한 물소리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해일이 되어 가까운 마을부터 휩쓸어버리거나 이 세상을 차갑고 거대한 물로 덮어버린 뒤 물보라를 날리며 배 한 척을 저어나가는 일이 한 번쯤 있었으면 하지만 너무 크고 넓어서 많은 것을 가졌어도 아무 것도 손에 쥐지 못한 것처럼 공허한 바다가 아니라 쏘가리 치리 동자개 몇 마리만으로도 넉넉할 수 있는 강으로 가고 싶다 급하게 달려가는 사나운 물살이 아니라 여유 있게 흐르면서도 온 들을 적시며 가는 물줄기와 물살에 유연하게 다듬어졌어도 속으론 참 단단한 자갈밭을 지나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욕심을 버려서 편안한 물빛을 따라 흐르..

시읽는기쁨 2005.08.27

그리움

무엇이 그리운지 풀은 갈 수 없는 땅 위로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여기는 인간의 땅이야, 너희들은 오지 마. 너와 나의 경계를 가르는 백색의 선 - 그 너머도 예전에는 풀들의 고향이었다. 변방으로 내몰린 인디언들처럼 나중에는 풀들도 쫓겨나 야생풀 보호구역에서나 볼 수 있게 될지도 몰라. 그리움에 몸을 흔들며 자꾸만 키가 크고픈 고요한 한낮.

사진속일상 2005.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