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54

늑대가 없는 숲은 없다

서울 성동구에 응봉산이 있다. 봄이면 온통 개나리꽃으로 뒤덮이는 산이다. 산 위에서 노란 물감을 부은 듯 개나리가 만개하면 장관이다. 응봉산에는 개나리만 산다. 저절로 그리되었을 리는 없고, 인위적으로 가꾼 탓이다. 색다른 풍경이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자꾸 보면 뭔가 어색하다.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나무와 풀이 어울려 자라고 동물이 뛰놀아야 숲이다. '늑대가 없는 숲은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숲에는 토끼도 살지만 늑대도 산다. 그래야 숲이다.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잊는다. 인간의 기준으로 호불호가 엇갈리고, 어떤 것은 배척하려 한다. 늑대는 인간에게 득보다는 실이 많은 동물이다. 밤에는 인가에 내려와 가축도 죽인다. 차라리 늑대가 없었으면 하고 바랄 수 있다. 그러나 늑대가 사라지면..

참살이의꿈 2013.03.20

맘과 허공 / 류영모

마음이 속에 있다고 좇아 들어 못 봤거늘 허공이 밖에 있대서 찾아 나가 만날 손가 제 안팎 모르는 임자 아릿다운 주인인가 온갖 일에 별별 짓을 다 봐주는 맘이요 모든 것의 가진 꼴을 받아주는 허공인데 아마도 이 두 가지가 하나인 법 싶구먼 제 맘이건 쉽게 알고 못되게 안 쓸 것이 없이 보고 빈탕이라 망발을랑 마를 것이 님께서 나드시는 길 가까움직 하구먼 - 맘과 허공 / 류영모 다석 류영모 선생은 56세 때인 1946년부터 30년 가까이 일기를 썼다. 일기에는 3천 수 가까운 한시와 시조가 들어있다. 이 시조도 그중 한 편이다. 선생은 공(空)을 만물의 근본이며 존재의 바탕으로 보았다. 이 우주의 참된 실재는 물질이 아니라 공, 즉 빔이다. 마음이 공과 하나되어 공색일여(空色一如)의 자유에 이르는 게 깨..

시읽는기쁨 2013.02.01

감탄과 감동

감탄; 마음속 깊이 느끼어 탄복함, 감동; 깊이 느껴 마음이 움직임. 감탄과 감동은 사전적으로 비슷하지만, 마음이 움직인다는데 차이가 있다. 깊이 느끼는 게 감탄이라면 더 나아가 마음마저 움직이는 게 감동이다. 감탄은 감탄사가 나오지만, 감동은 아무 소리가 없다. 예를 들면,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며 감탄한다. 또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에도 감탄할 수 있다. 그러나 감동을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대규모 블록버스터보다는 사소한 일상을 다룬 저예산 영화에서 오히려 감동을 할 때가 더 많다. 멋지고 웅장한 풍경 앞에서는 감탄을 한다. 반면에 산길을 걷다가 발견한 작은 꽃 하나에는 감동을 받는다. 물론 이 둘이 꼭 구분되는 건 아니다. 감탄과 감동은 뒤섞여 있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

참살이의꿈 2013.01.20

남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새해에는 우리가 모두 선한 마음 짓기를 소망한다. 사람이 낼 수 있는 마음 중에 제일 아름다운 건 남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경쟁과 시기, 질투만이 인간의 본성은 아니다. 워낙 생존경쟁 시스템에 물들어 있다 보니 한쪽 측면만 강조되고 있을 뿐이다. 복을 짓고 싶다면 우선 마음을 잘 써야 한다. 숨어 있는 선한 본성을 살려내자. 내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듯 남이 잘되기를 바란다면 천국은 멀리 있지 않다. 지도자나 제도나 법이 좋은 세상을 가져다줄까? 아니다. 사람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내 복보다 남의 복을 먼저 빌어준다면 하느님의 나라, 부처님의 나라는 우리가 만들 수 있다. 남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맹자의 사단(四端) 중 사양지심(辭讓之心)에 가까울 것 같다. 현대 ..

참살이의꿈 2013.01.01

타이어의 못을 뽑고 / 복효근

사랑했었노라고 그땐 또 어쩔 수 없었노라고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를 너를 찾아 고백하고도 싶었다 - 그것은 너나 나나의 가슴에서 못을 뽑아버리고자 하는 일 그러나 타이어에 박힌 못을 함부로 잡아 뽑아버리고서 알았다 빼는 그 순간 피식피식 바람이 새어나가 차는 주저앉고 만다 사는 일이 더러 그렇다 가슴팍에 대못 몇 개 박아둔 채 정비소로 가든지 폐차장으로 가든지 갈 데까지는 가야 하는 것 치유를 꿈꾸지 않는 것 꿈꾼대로 결국 치유되지 않을 것이므로 대못이 살이 되도록 대못을 끌어안는 것 때론 대못이 대못 같은 것이 생이 새어나가지 않게 그러쥐고 있기도 하는 것이다 - 타이어의 못을 뽑고 / 복효근 마음이 보이는 거울이 있다면 어떨까? 상처투성이의 마음을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어떨까? 마음이 보이..

시읽는기쁨 2012.12.10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시원한 공기를 맞을 때 등교하는 초등학생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 컴퓨터를 열고 밤에 떠오른 생각을 글로 적을 때 "아, 잘 잤다!"라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릴 때 베란다에 새가 찾아와 노래할 때 달콤한 커피향이 코 끝을 간지릴 때 밥을 먹으며 하늘에 감사한 마음이 들 때 설거지를 하고 나서 깨끗해진 부엌을 바라볼 때 버스나 지하철에서 젊은이 앞에 서지 않을 때 따스한 햇볕이 비치는 거실에 무료하게 앉아 있을 때 고독한 은자의 삶에 대한 글을 읽을 때 홀로 산길을 걸을 때 전화기 화면에 다정한 친구 이름이 찍혀 있을 때 특별한 이유 없이 미소가 떠오를 때 주변 소음이 사라지고 사방이 고요해질 때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걸 바라볼 때 윗집 아이들의 뛰는 소리에 "크는..

참살이의꿈 2012.11.16

화엄 세계 읽다 / 김정원

초가집 그을음 새까만 설거지통 옆에는 항시 큰항아리 하나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설거지 끝낸 물 죄다 항아리에 쏟아 부었다 하룻밤 잠재운 뒤 맑게 우러난 물은 하수구에 흘려보내고 텁텁하게 가라앉은 음식물 찌꺼기는 돼지에게 주었다 가끔은 닭과 쥐와 도둑고양이가 몰래 훔쳐 먹기도 하였다 하찮은 모음이 거룩한 살림이었다 어머니는 뜨거운 물도 곧장 항아리에 쏟아 부었다 그냥 하수구에 쏟아 붓는 일은 없었다 반드시 하룻밤 열 내린 뒤 다시 만나자는 듯 곱게 온 곳으로 돌려 보냈다 하수구와 도랑에 육안 벗어난 존재들 자기 생명처럼 여긴 배려였으니, 집시랑물 받아 빨래하던 우리 어머니들 마음 經도 典도 들여다본 적 없는 - 화엄 세계 읽다 / 김정원 터의 문제가 아니라 먼저 마음의 문제란 걸 단임골 다녀온 후 새롭게 ..

시읽는기쁨 2012.05.04

마음의 사진세계를 없애기

병원에 다녀오다가 길거리에서 '마음수련'을 안내하는 작은 책자를 보았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세상은 있는 대로가 진짜이고 참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실제 세상을 그대로 복사한 가짜이고 허상인 내 마음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을 눈 코 귀 입 촉감으로 사진을 찍어놓으니, 사람의 마음은 이 사진들이나 비디오테이프와 같습니다. 자기가 만든 마음세계는 눈을 떠보면 실제 세상과 너무나 똑같이 겹쳐져 있어, 사람들은 세상에 사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만든 허상의 사진세계입니다. 자기만의 마음세계를 만들어 각자가 그 속에서 살아가니 서로 부딪히고, 갈등하며 고통 짐을 집니다. 가짜인 사진세계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나를 벗어..

참살이의꿈 2009.10.05

마음의 보약

퇴계 이황 선생은 재미있는 비유를 써서 사람을 살리는 마음 다스리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모든 병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마음을 잘 다스려 맑게 하면 병도 사라진다며 활인심방(活人心方)을 소개한다. 그중의 하나에 중화탕(中和湯)이라는 약이 있다. 중화탕은 30 가지 약재를 버무린 탕약이다. 물론 이 약재는 한약방에서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다. 이 약재들을 ‘신장의 물’[腎水]에 넣고 ‘심장의 불’[心火]로 끓이면 된다. 중화탕을 꾸준히 복용하면 정신이 맑아지고 의사가 치료하지 못하는 병도 고친다. 또한 원기(元氣)를 지켜 질병을 일으키는 사기(邪氣)가 침범하지 못하므로 병이 생기지 않고 평안히 지낼 수 있다고 한다. 중화탕에 들어가는 30 가지 약재는 다음과 ..

참살이의꿈 2009.06.04

마음 고치려다 / 이명수

널다리 건너 개심사(開心寺)에 갔습니다 산속으로 난 찻길 버리고 세심동(洗心洞) 개심사(開心寺) 입구에서부터 돌계단 108개쯤 밟고 갔습니다 세심(洗心), 개심(開心) 하는 일이 어디 쉬운 노릇입니까 외나무 널다리 건너는 일만큼만 된다면야 밤새 건너고 또 건너겠지만 나이 들면 마음에도 겹겹의 기름때가 들어차 뜻대로 씻어낼 수 없으니 씻을 마음, 고칠 마음 그냥 챙겨 안고 돌아가는 하산길 골 너머 마애삼존불 왜, 날 보고 웃음 흘리십니까 - 마음 고치려다 / 이명수 고향 마을 뒷산에 안심사(安心寺)라는 절이 있었다. 사월 초파일이면 깨끗한 흰 옷으로 갈아입으신 할머니, 일 년에 한 번절에 가셨다. 할머니 따라가던 산길, 잔칫날 같던 절집의 북적거림,우리 꼬마들은 덩달아 신이 나서동무들과 어울리며 하루 종일..

시읽는기쁨 2009.04.30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농부가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나그네가 다가와 물었다. “저 마을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나요?” 농부는 일손을 멈추지 않고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떠나온 마을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소?” “말 마시오. 모두가 저만 알고 솔직하지도 않고 남을 배려할 줄도 모르는 자들이었어요.” 농부가 그를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오. 저 마을에도 그런 사람들일 뿐일 게요.” 조금 있다가 다른 나그네가 다가오며 농부에게 물었다. “저 마을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나요?” 역시 농부는 일손을 멈추지 않고 그에게 되물었다. “당신이 떠나온 마을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소?” 나그네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생각이 깊고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이었어요.” 농부가 괭이를 놓고 웃었다. “저..

참살이의꿈 2009.03.17

눈은 너무 작으니까 / 유안진

물고기의 눈에는 물이 안 보이고 새의 눈에는 공기가 안 보이고 용의 눈에는 돌이 안 보인다지 꽃이 피면 꽃나무는 안 보이고 열매가 열리면 가지는 안 보이고 아기를 안으면 엄마 아빠는 안 보이지 젊은 가장을 대신하여 독가스실로 들어가 준 막시밀리언 콜베 신부도 나치의 눈에는 유태인으로만 보였지 마음은 공기는 우주는 神은 안 보이니까 눈은 너무 작으니까 눈이라고 다 눈은 아니니까 - 눈은 너무 작으니까 / 유안진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것을 본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보는 것을 전부인 줄 착각한다. 물리적으로도 인간의 눈이 보는 것은 전자기 스펙트럼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얼마나 넓게 펼쳐져 있는지 우리는 잊고 산다. 생각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이 믿는 것..

시읽는기쁨 2008.12.09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해와 오해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오해해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 보았느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랑과 신앙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큰 두 거짓말. 사랑이라는 단어와 신앙이라는 단어는 묵음으로 발음되어야 옳다. 허사(虛辭)로 통용되어야 맞다. 기의를 완전하고도 정밀하게 소외시키고 있는 이 기표들.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전혀 연관 없음. 사랑이라는 해묵은 단어는, 일찍이 그리스도 이후, 이천 년 전에 유명무실해졌다. 신앙이라는 오래도록 포르말린에 절여놓은 단어 역시 마찬가지다. 바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폭풍 ..

읽고본느낌 2008.02.14

마음사전

사람을 지성적인 사람과 감성적인 사람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면난 지성적인 쪽에 속한다고 해야겠다. 이제껏 살아온 길이 그러했다. 감성은 애써 무시했고, 오직 이성만이 믿고 따를 만하다고 생각했다. 애초 감성이 발달하지도 않았지만,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감성의 감촉은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나 자신이 점점 감성적인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감성의 미묘한 촉감을 즐길 수도 있게 되었고, 불분명하긴 하지만 감성이 가리키는 길에서 빛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도 생긴다. 사람에게 존재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양면성이 바로 지성과 감성을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하나는 얼음처럼 차갑고, 하나는 섬세하며 따스하다. 하나가 부성적이라면, 하나는 모성적이다. 지성이 산문이라면, 감성은 시다. 지..

읽고본느낌 2008.01.26

내 안의 짐승 소리

내 안에는 짐승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어떤 때는 조용하지만, 어떤 때는 사납게 날뛰며 울부짖는다. 짐승은 때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달 밝은 교교한 밤의 늑대 울음소리가 되었다가, 초원을 헤매는 허기진 하이에나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함정을 파놓고 먹이가 걸려들기는 기다리는 독거미의 음흉함이기도 하다. 그러나 짐승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 짐승은 내 피 속에 흐르는 야성의 에너지다. 이젠 다시 숲을 불태우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짐승을 잡기 위해....

참살이의꿈 2007.11.24

나를 위로하며 / 함민복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 나를 위로하며 / 함민복 그곳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누구나 다 비틀거리며 그곳으로 간다. 그러니 마음아, 상심하지 말아라. 먼 훗날 언젠가, 그리운 그곳에 앉게 될 때 알게 될지 모른다. 우리가 걸어간 길이 빛나는 길이었음을, 외롭고 힘들었어도 영광의 길이었음을....

시읽는기쁨 2007.10.17

깃털처럼 살기

마음공부란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아가는 공부입니다. 자신을 얽어매는 집착과 애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공부이지요. 잘 산다는 것은 제대로 자신을 알아가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종교를 갖고, 수도생활을 하는 목적이 여기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공부를 멀리 특별한 장소에 가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 여기가 바로 그런 수행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어느 분의 글에서 본 내용인데, 이분은 자신의 마음공부를 ‘깃털처럼 살기’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이분은 이걸 수첩에 적어두고 적어도 하루에 두서너 개씩은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

참살이의꿈 2006.09.12

맑고 따스한

지난 겨울에 언 수도관이 아직 녹지 않았습니다. 수도 펌프에 전원을 넣으니 해소병 환자의 가래 끓는 소리가 납니다. 중간 어딘가에 관이 막혀 있어 물이 소통되지 못하니 펌프도 힘이 드는가 봅니다. 누런 황토물이 펌프의 이음새 사이로 줄줄 새나옵니다. 이것도 이젠 연례 행사가 되어 그런가 보다 싶습니다. 그러나 내주까지 이 지경이 될까 걱정입니다. 생활하는 것은 둘째치고 내주에는 꽃과 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물이 없으면 일에 지장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옆의 동료와 웃으며 얘기를 나누었지만 정말 '무자식이 상팔자'입니다. 뭔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터를 통해 실감하고 있습니다. 동료도 지리산 자락에 터가 있는데 이번 겨울에 상수도관이 터져서 그로 인한 누수로 수도비가 20..

참살이의꿈 2005.03.29

백점 인생의 조건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100점 인생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먼저 영어 알파벳에 차례로 점수를 부여합니다. A에 1점, B에 2점, C에 3점. D에는 4점, 이런 식으로 해서 Z에 26점까지 붙여주면 됩니다. 그런 다음 영어 단어를 점수로 환산해 봅니다. 돈이 많으면 될까요? MONEY는 72점이군요. 건강은 어떨까요? HEALTH는 54점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LOVE도 54점이네요. 세상 사는 것은 사랑 만으로는 되지 않나 봅니다. 행운이면 어떨까요? LUCK은 겨우 47점입니다. 지식이 많으면? KNOWLEDGE는 96점까지 되는군요. 열심히 일하면 될까요? HARD WORK은 98점입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합니다. 그럼 100점짜리는 무엇일까요? 정답은..

참살이의꿈 2005.03.19

마음 / 유안진

그릇아 세상을 담아낼 만치 커질 수도 있고 자살밖에 도리없어 작을 수도 있는 마음아 눈꼴시어 못 보겠던 남의 인생도 내 것처럼 우는 이와 같이 울고 웃는 이와 같이 웃자 대문에 이마에 앞가슴에 '헌 나는 없어졌음' 이런 문패 하나 내걸고 싶어 빈 그릇처럼 나머지가 없는 찌꺼기도 없는 - 마음 / 유안진 마음은 요술쟁이다. 전 우주를 품을 만큼 넉넉해지기도 하고, 바늘 하나 꽂을 수 없을 만큼 옹졸해지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이런 변덕을 겪는다. 점수(漸修) 뒤에 돈오(頓悟)는 과연 찾아오는 것일까? 짧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과연 얼마 만큼의 영적인 진보를 할 수 있을까? 같은 돌부리에 반복해서 똑 같이 넘어지며 나는 늘 제자리 걸음만 하는 것 같다. 인생 학교에서 나는 우둔한 학생임을 고백하지..

시읽는기쁨 2005.01.10

모든 것은 지나간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현상계(現象界)는 무상(無常)의 세계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이 말만큼 우리 우주의 실상을 적절히 표현한 말도 없을 것이다. 우주는 변화하는 세계다. 삼라만상은 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 없다. 사실 과학자들이 하는 일이란 사물의 변화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알고 있는 원리마저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생성, 변화, 소멸을 되풀이하는 것이 물질계만은 아니다. 머리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온갖 생각들을 관찰해 보면 명멸하는 변화에 넋이 나갈 정도이다. 작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너무나 많은 변화를 겪는다. 기쁨이 지나가면 슬픔이 찾아오고, 희열 뒤에는 고통이 따른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던 절망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져간다. 불시에 찾아온 화(禍)가 어느새 복(福)으로 변하기..

길위의단상 2004.11.19

고요히 쉬기

길 아닌 길을 가면 마음도 몸도 고단하기 마련 쉬시기를 길이어도 쉬고 길 아니라도 쉬시기를 - from 이철수 님 판화 나이가 들수록 세상살이는 갈수록 힘들고 바람도 자꾸 거세집니다. 그래도 길은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一切唯心造. 힘들수록 더 자주 마음을 챙기고 살아야 겠지요. 이 세상에서 저 그림처럼 가장 편한 자세로 마음을 쉬게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흐르는 물에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하지만 움직이는 씨는 싹을 틔우지 못하는 법입니다, 오늘 하루도 얼마나 고요한 쉼에 머물렀는지요?

길위의단상 2004.09.24

무릉도원은 어디에

`소백산의 어느 계곡에서 봄꽃을 구경하다가 길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안개까지 끼기 시작해 동서남북의 방향도 헷갈리면서 헤매게 되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복숭아꽃이 만발하고 향기가 진동하는 곳에 절벽이 나타났고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작은 동굴이있었다. 그 동굴을 지나가니 시야가 훤하게 트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들판에는 집들이 늘어서 있었고 기름진 논밭이며 아름다운 호수, 뽕나무나 대나무 숲이 눈에 들어왔다. 개와 닭소리도 한가로이 들리고 사람들은 들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평화롭고 이국적이었다. 장식은 없었지만 깨끗하고 소박한 흰 옷을 입은사람들은 한결같이 즐겁고 만족스런 미소를 띠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더니 크게 놀라 어디서 왔느냐며 물었다.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했더..

참살이의꿈 2004.02.09

따스함이 그립다

날씨가 싸늘해졌다. 따스한 온기가 그리운 때가 왔다. 그러나 물리적 온기보다는 마음의 온기, 인정의 따스함이 더욱 그리운 때이다. 인사동 찻집에서 저 등불을 보았다. 가스등 모양을 한 작은 등이었는데 참 따스하게 느껴졌다. 우리속에도 저런 마음의 등불이 들어 있을까? 때가 낀 유리문도닦고 주위도 깨끗하게 청소한 뒤에 기름도 알맞게 채워서 내 마음의 등불도 저렇게 따스한 불 밝히고 싶다. 우리 모두 욕심과 미움과 다툼을 버리고 마음 속에작은 빛 하나씩 밝히고 산다면 그래서 각자의 불빛이 밖으로 피어나와 서로를 비추어 준다면 이 세상이 훨씬 더 밝아지고 따스해 질 것 같다. ----------------------------------------------------- 다와는 무엇이 즐거운지 계속 콧노래를 ..

사진속일상 2003.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