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골 71

다읽(5) - 조화로운 삶

내 밤골 생활의 모델이 되었던 책이다.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 부부는 1932년에 뉴욕을 떠나 버몬트 산골에서 20년 동안 현대 문명을 벗어난 대안적 삶을 살았다. 이 책 은 그들의 꿈과 이상을 실천해 나간 삶에 대한 성실한 기록이다. 단순함, 고요한 생활, 가치 있는 일, 조화로움이 그들이 추구한 삶의 기본 가치였다. 화폐에 의존하지 않는 자급자족의 삶을 도시에서 이룰 수 없다는 것은 자명했고, 해답은 자연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버려진 농장에서 새로운 삶을 실험했고, 생각과 생활이 일치하는 조화로운 삶을 살았다. 두 사람은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한 원칙을 세운다. -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은 적어도 절반 넘게 자급자족한다. - 스스로 땀 흘려 집을 짓고, 땅을 일구어 양식을 장만..

읽고본느낌 2020.09.20

밤골과의 인연

나에게는 세 가지 마음의 짐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밤골이다. 끝맺음을 잘하고 나오지 못해서 밤골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꿈에 밤골이 나타나면 대개가 악몽인데, 늘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면서 비명을 지르게 된다. 그곳을 떠난 지 12년이 되었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는 옛말이 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지만, 쉽사리 버리기 어려운 인연도 있다. '유연천리래상회(有緣千里來相會), 무연대면불상봉(無緣對面不相逢)' - 인연이 있으면 천 리를 떨어져도 서로 만나고, 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맞대고 있어도 만나지 못한다. 오늘, 언젠가는 매듭을 풀어야 할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아니,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지 모른다. 우연이 무수히 겹쳐지면 필연이 된다. 그래서 언젠가는 만나야 할 사람이다...

사진속일상 2019.04.27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 복효근

6월 저녁 해 어스름 어둠이 사물의 경계를 지워나갈 때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어두워지는 일이 이리 좋은 것인 줄 이제 알게 되네 흐릿해져서 흐릿해져서 산도 나무도 무엇보다 죽도록 사랑하고 죽도록 싸웠던 일들도 흐릿 흐릿해져서 개망초 떼로 피어선 저것들이 안개꽃이댜 찔레꽃이댜 안개꽃이면 어떻고 찔레꽃이면 어뗘 개망초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뗘 꽃다워서 좋더니만 이제 꽃답지 아니해서 좋네 이녁 화장을 해서 좋더니 화장하지 않아서 좋을 때가 이렇게 왔네 저녁 이맘때의 공기 속엔 누가 진정제라도 뿌려놓은 듯 내 안에 날뛰던 짐승도 순하게 엎드리네 이녁이라고 어디 다를라고 뭐 죽도록 억울하지는 않아서 세상 다 용납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듯 어둠 속에 둥글어진 어깨를 보네 이대로 한 이십 년 한꺼번에 더 늙어지면 더..

시읽는기쁨 2018.09.12

긴 싸움이 끝나다

국세청과 벌인 긴 송사가 끝났다. 재작년 여름에 세무서에서 밤골 생활에 대해 중과세를 한다는 통고가 왔으니, 그때로부터 2년이 넘게 걸린 다툼이었다. 세무서에 과세적부심 심사를 요청하였으나 거부당했고, 이어서 국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했으나 역시 기각당했다. 어쩔 수 없이 법원에 소송을 냈고, 1심에서 이겼으나 피고가 항소를 해서 2심까지 갔다. 고등법원에서도 이겨서 끝나는가 했더니 끈질긴 국세청은 대법원에까지 상고를 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가지고 이렇게 악착같이 달라붙을 줄은 예상을 못 했다. 그런데 최종 판결을 기다리는 중에 부과한 세금을 반환하겠다는 연락이 왔고, 빼앗겼던 돈을 되찾을 수 있었다. 졌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그동안 국세심판원과 행정법원, 고등법원을 거치며 여러 번 법정에 출석했..

참살이의꿈 2012.09.25

이포보

드라이브를 나간 길에 여주 이포보에 들렀다. 이 며칠 마음이 울적했던 차였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았지만 연일 비 내리는 궂은 날씨 탓이기도 했다. 거기에 옛 밤골 생활의 기록을 정리하면서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우울에 우울이 겹쳤다. 기어코 4대강 사업도 끝났고 보도 완성되었다. 공사 중일 때 몇 차례 이 옆을 지날 때는 눈길도 주기 싫었다. 환경운동가들이 여기에서 시위를 하기도 했지만 공사에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 놓았을까, 궁금했다. 보 위에 건설된 다리를 따라 반대편까지 갔다 왔다. 이곳에 보가 왜 필요한 건지 현장에서 봐도 의문이 든다. 단순히 물을 막기 위해 이런 거대한 시설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홍보 자료를 보면, 첫째, 물 부족과 홍수 예방. 둘째, 수질 개선..

사진속일상 2012.08.16

인연

쉽게 체념하게 된다. 좋게 말하면 너그러워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생기는 변화다. 오래 살게 되면 궂은일들을 많이 겪어서인지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다. 감각이 무뎌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과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 때문에 애간장을 태우는 일도 줄어든다.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예전에는 어떤 식으로든 맺어지려고 안절부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편하게 생각한다.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인연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고민하고 애 쓴다고 안 될 일이 되는 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만사의 변화를 인연으로 읽으려 한다. 살면서 경험하는 사건들이 우연으로 일어나는 것인지, 인연으로 생기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연으로 생각하..

참살이의꿈 2010.10.01

걷다

여주 밤골에서 떠나온지 3년이 넘었다. 그런데 당시 세금 계산이 잘못 되었다며 추가분 2천여만 원을 더 내라는 연락이 지난 달에 세무서에서 왔다. 농지를 자경한 것 같지 않으니 고세율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경작했다는 증빙서류를 붙여 청구서를 제출했는데 인정할 수 없다는 통지를 어제 받았다.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배낭에 물 한 병 넣고 길을 나섰다. 지하철 선바위역에서 내려 양재천을 걸었다. 잔뜩 흐린 날씨에 비가 오락가락했다. 가는 비는 맞았고 굵은 비는 다리 밑에서 피했다. 10년 전 밤골 땅을 구입할 때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방학과 주말을 이용해 경작하겠다고 신청해서 여주군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곳 세무서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답답한 일이 아닐 수 ..

사진속일상 2010.08.28

짐을 정리하다

터에 내려가서 짐을 정리했습니다. 내외가 서로 안과 밖에서 말없이 일을 했지요. 예상 외로 일은 쉽게 끝났습니다. 살림살이가 그렇게 단촐했던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해서 어디 하나에 눈을 두지 못했습니다. 눈길 닿는 모든 것에 내 꿈과 땀과 눈물이 들어있으니까요.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옛 기억들이 마구 쏟아져나올 것 같았습니다. 지금 돌이키면 많은 기억들 중에서도 힘들고 어려운 것들만 떠오를 게 틀림없습니다. 이웃 아줌마가 찾아와서 "허전하겠네요"라며 말을 건넵니다.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리고 비 오는 날도 있고, 길을 걷다보면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듯 우리 인생길에도 영고성쇄의 부침이 반복됩니다. 다만 사람마다 주기와 진폭이 다를 뿐이지요. 그러니 일이 뜻대로 잘 풀린다고 지..

참살이의꿈 2007.01.19

길을 잃어야 새로운 풍경을 만난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무언가를 상실한다는 것은 고통이며 아픔이다. 그러나, 길을 잃지 않으면 낯선 풍경을 만나지 못한다. 무언가를 떠나보내지 않으면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내꿈이었고 내 모든 것이었던 너! 나는 이제 너에게 미련없이 안녕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길 위의, 낯 설고 새로운 풍경과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참살이의꿈 2006.12.03

터의 새 임자가 결정되다

터의 임자는 제일 가까이에 있었다. 땅이나 집 임자는 따로 정해져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여러 사람들이 찾아와 보고 인연을 맺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가까운 이웃이 임자로 결정되었다. 이 분들은 우리가 처음시작할 때부터지금까지 어떻게 지냈는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다. 내 가슴 속에 들어있는 사연이 너무나 많아 지금은 아무 생각도 말도 나오지 않는다. 기쁨이나 슬픔이 한도를 넘으면 그것은 더 이상 기쁨이나 슬픔이 되지 못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한참 시간이 지나야 찬찬히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결정이 잘 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도 훗날이 되어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수 년간은 내 인생에서 거대한 쓰나미가 마음터와 생활을 뒤흔들어 놓았던 시기였다. 그 한 매듭이 이제 지어졌다.... 지금은..

참살이의꿈 2006.11.27

쓸쓸하고 허전한

가을이 쓸쓸하다지만 터의 가을은 더욱 쓸쓸하고 허전하다. 일을 해도 신명이 나지 않는 것은 이미 마음이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가을이야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느낌이 이렇게 달라지는 것은내 마음이 변한 탓이리라. 마치 영혼이 떠난 육체처럼 터는 낯설게 누워있다. 이곳에 들어온지 7년 째, 내 인생에서 새로운 길을 걸어가며 세상이 주는 온갖 희노애락을 다 맛보았다. 지난 40여 년의 삶을 하나로 농축시키더라도 이 7년 간의 농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동안 잃은 것도 많았고 배운 것도 많았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에 한 발을 내디딘 순간 화들짝 알아 버렸다. 놀란 개구리는 흠찟 놀라 다시 발을 들여 놓는다. 잠시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그리고 ..

참살이의꿈 2006.09.18

반달과 반딧불이

반달이 떠있는 밤이다. 전깃불을 끄니 달빛이 살아나 방안으로 스며든다. 달빛에 온몸이 젖도록 자리를 잡고 눕는다. 창문 한 구석에 달이 걸려있다. 맑은 밤하늘에 떠있는 달은 밝지만 바로 쳐다보아도 눈부시지 않다. 같은 태양빛이건만 달에 머물다 온 빛은 달의 마술에라도 걸린 듯 은은하고 요염하다. 오늘 밤은 달도 무척 외롭게 보인다. 달은 무엇이 그리워서 저렇게 남의 빛을 빌려서까지 자신을 환하게 불 밝히고 있을까? 달이 서산으로 질 때까지 잠을 들지 못하다. 이곳에서의 생활도 이젠 안녕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방안으로 반딧불이 한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선지 방충망에 붙어 계속 깜박거린다. 그러나 나가는 길 찾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들어오기는 쉽지만 나가기는..

참살이의꿈 2006.09.04

혼자 있는 즐거움

이곳에 내려와 혼자 생활한지 일주일째입니다. 혼자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우선 불편하지 않느냐고 걱정합니다.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상이 남자가 하기에 귀찮고 힘들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내 한 몸 살아가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은 사실 그다지 힘들지도 귀찮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주부가 하는 일과는 비교가 될 수가 없지요. 그것도 어쩌다가 하는 일이니까요. 사람들이 걱정해 주는 말에 그냥 괜찮다고 답해주지만 사실 내 마음은 얼마나 좋고 흡족한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좋은 마음을 드러내놓고 자랑할 수는 없지요. 내가 여기서 즐거운 이유는 일상적인 삶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누구의 간섭도 없이 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습니다. 출근시간을 알리는 벨소리도 없고, 싫어도 해야만..

참살이의꿈 2006.08.10

아름다운 저녁 시간

늦은 감자를 캐고 옥수수의 첫 수확을 했다. 감자고 옥수수고 올해는 결실이 영 시원찮다. 수 년 중 최악의 결과다. 이것은 주인장의 마음 탓이고, 중간 관리를 제대로 안해 준 탓이다. 초라한 수확물을 들여다보니 주인을 잘못 만나 제대로 영글지도 못했는가 싶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얘들아, 잘 돌봐주지 못해서 미안해!" 두 주 전에 밭고랑의 풀을 뽑고,뽑은 풀로 고랑을 덮어 두었다. 다른 풀들이 자라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풀들이 다시 뿌리를 내리며 살아나고 있다. 지난 번 막바지 장맛비에 힘을 얻었는가 보다. 그래서 다시 뒤집어 주어야 했다. 다행히 아직은 뿌리가 깊지 않아 땅에서 잘 떨어진다. 어찌 보면 잔인한 노릇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작물 가꾸기란 인간의 필요에..

참살이의꿈 2006.08.07

회심

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7 년 전 겨울이었다. 그때는 40대 중반부터 시작된 정신적 방황이 절정에 달했었다. 왜 사는가에 대한 의문,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질문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제 2의 사춘기라고 불러도 좋을 시기였다. 가톨릭 신자였지만 종교의 틀에서는 안식을 얻지 못했고, 머릿속은 온갖 상념들로 복잡했다. 그해 겨울, 세상을 떠나 그저 푹 쉬고 싶은 마음밖에는 없었다. 산 속 절이든 어디든 인적이 끊긴 곳에 들어가 있고 싶었다. 마침 아내가 S 수녀원의 피정을 소개해 주었다. 개인 피정이어서 아무런 간섭 없이 지낼 수 있다는 말에 책 몇 권을 싸들고 집을 나섰다. 주소만 들고 물어 물어 찾아간 곳이 지금의 터였다. 그런데 피정 기간 중에 예상치 않게 종교적 회심의 체험을 하게 되..

참살이의꿈 2006.07.15

독백

내가있는 이곳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내가 왜 여기 있지? 마치 혈관 속에 모래가 들어간 듯 마음은 온통 서걱거린다. 내가 터를 정하고, 손수 집을 짓고, 땅과 혼이 들어간 곳인데, 사방을 둘러보면 내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없는데 마치 못 올 곳에 온 것처럼 서먹서먹하다. 밖은 장맛비가 내리는 저녁이다. 철수를 생각하니 더욱 허전해진다. 그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나에게는 내 전부를 걸었던 이상의 포기와 마찬가지다. 선전포고한 전쟁에서 항복의 의미이기도 하다. 단지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두려운 것이다. 슬픔에 빠지게 하는감정에는 집착이 들어있다. 애착, 비애, 고독, 쓸쓸함과 같은 진한 감정들도 마찬가지다. 인정하기 싫지만 버린다고 하면서 또 다른 집착에 매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상승할 때보다..

참살이의꿈 2006.07.03

밤꽃 향기에 젖다

여기는 밤꽃 향기에 젖어 있습니다. 산에서도 들에서도 어디서나 밤나무를 볼 수 있고, 마을의 정자나무도 밤나무입니다. 밤꽃 향기는 산과 들을 채우고는 넘쳐 흘러 마을로 밀려옵니다. 마을은 온통 야릇한 밤꽃 향기의 바다에 잠깁니다. 거실에 가만 누워 있으면 그 눅눅한 향기에 마취가 될 정도입니다. 향기를 무게로 잴 수 있다면 밤꽃 향기는 쇳덩이 마냥 무거운 것 같습니다. 그 향기에 취한 사람들의 발걸음 또한 무거워집니다. 그것은 뭔가 호기심을 일으키면서 무언가가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듯한 냄새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오전에 밭일을 하러 나갔지만 1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들어와 버렸습니다. 머리가몽롱해져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생겼습니다. 방에 들어와 피곤한 몸을 누이며 ..

참살이의꿈 2006.06.25

뱀은 여전히 두렵다

풀을 베러 현관을 나서는데 바로 앞에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여기가 뱀이 많긴 하지만 한낮에 이렇게 집 앞에까지 나와있는 것은 처음이다. 갑자기 뱀을 맞닥뜨려서 깜짝 놀랐다. 뱀도 놀랐는지 처음에는 꼼짝도 안 하다가 소리를 지르니 스르르 도망을 간다. 길이가 거의 1 m나 되는 큰 뱀이다. 뒤따라가며 위협을 해서 쫓아내었다. 뱀은 생긴 모양 자체가 징그럽고 섬뜩하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괜히 기분이 좋지 않고 적대적인 느낌이 든다. 특히 길을 가다가 갑자기 발 밑에서 뱀을 만나게 되면 공포심은 극에 달한다. 아마 우리들 유전자에는 뱀에 대한 경계를 위해 공포심이 각인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선천적 본능이 아닐 수도 있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밭일을 하러 나간 여자가 있었다. 아이를 ..

참살이의꿈 2006.06.19

우리 텃밭

올해 텃밭 크기는 작년의 반으로 줄였습니다. 노동력을 줄이기 위해서였지만 그러나 일이 반으로 수월해지지는 않았습니다. 내려가면 해야 할 일이 언제나 잔뜩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어떨 때는 귀찮고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밭에 나가 땀을 흘리며 흙을 만지고 풀을 뽑고 작물을 거두는 기쁨은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습니다. 일 하는 동안은 세상의 시름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무엇엔가 몰두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 중에서도 흙을 만지고 생명을 돌보는 일만큼 가치 있는 일도 없다고 봅니다. 밭에 나가 땀을 흘리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 집니다. 다른 노동과는 또 다릅니다. 땅에서 나오는 생명의 기운이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앞의 네 줄은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두 주일 간격으로 ..

참살이의꿈 2006.06.11

뒷산 산책

두 주일 간격으로 옥수수를 심기로 했는데 어제 두 번째 고랑에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6월 말까지 계속 심을 계획입니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연속으로 옥수수 맛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그리고 부족한 채소 모종도 더 심고 부추씨도 뿌렸습니다. 꽃씨를 뿌린 꽃밭에서는 새싹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씨앗 모양이 다르듯 잎의 모양도 나오는 때도 다 각각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반 정도는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지난 주에 다시 심었던 고구마 모종은 다행히 착근이 잘 되어 싱싱하게 싹을 세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내와 같이 뒷산에 올랐습니다. 꼭 1년 만입니다. 작년에는 땅 일에 휘둘리느라 거의 여가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여유를 찾으려 합니다. 좀더 생활을 즐기도록 하겠습니다. 산길을 걷다..

참살이의꿈 2006.05.14

연초록 향연

일 년 중에 이런 날을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 어제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 후 오늘은 말 그대로 청명한 날씨가 나타났다. 오월의 신록이 햇빛 가운데 눈부시게 빛났다. 눈이 부시다는 표현이 실감나는 하루였다. 터에 다녀오는 길에 이 신록의 잔치를 구경하느라 몇 번이나 차를 세워야 했다. 한 해 중에서 신록의이 색깔은 단 며칠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신록예찬에서 찬탄한 색깔이 바로 이것이리라. 오늘은 눈을 어디에 두어도 오월의 푸른 하늘과 연초록 숲의 조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풍경 속이었다. 터에는 고구마 100 포기와 고추, 가지, 오이등을 심었다. 고구마 모종을 다른 작물처럼 똑 바로 세워서 심었다가 이웃분의 지적으로 다시 심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마디가 충분히 땅에 묻히도록 옆으로 뉘어서 꽂아야 고..

사진속일상 2006.05.07

신록예찬

산색(山色)이 일 년 중 가장 고울 때가 이즈음이다. 그래, 아름답다기 보다는 곱다고 해야 어울리는 색깔이다. 해맑은 아기의 미소 같은 색깔, 금방이라도 간지럼이 일어날 것 같은 색깔이다. 터의 풍광 역시 지금이 제일 곱다. 아침 시간에 들길을 걷다.폭신폭신한 논둑길을 일부러 찾아서 걸어본다. 모내기를 준비하는 논으로 물 들어가는 소리가 찰랑거리고 발 밑에서는 냉이, 꽃다지, 민들레가 환하게 웃는다. 눈을 들면 둘레는 온통 연초록 잔치다. 가을의 화려한 단풍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여기에는 생명의 푸른 기운과 약동이 있다. 이 기운은 우리의 눈을 씻고 마음을 정결케 해준다. 비록 흐린 날씨지만 이 초록의 밝음을 가리지는 못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四時)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

사진속일상 2006.04.30

꽃씨를 뿌리다

올해는 텃밭의 크기를 줄였습니다. 그리고 골과 골 사이도 넓게 해서심는 작물의 양도 작년의 절반 이하로 줄일 계획입니다.골을 만들고 비닐을 씌우는 작업도 이제는 숙달되어 혼자 해도모양이 멋지게 나옵니다. 작년에 밭으로 썼던 곳의 일부는 꽃밭으로 바꾸고 꽃씨를 심었습니다. 봉숭아, 채송화 등 꽃가게에서 사온 꽃씨가 열 종류 가까이 됩니다. 봉지에 들어있는 씨앗의 생김새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꽃의 모습에는 익숙하지만 씨앗은 오랜만에 서로 비교하며 만져볼 수 있었습니다. 이놈들이 제대로만 꽃을 피워준다면 예전 시골집 마당의 화단처럼 고전적인 화단으로 변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꽃잔디 씨를 많이 보내 주어서 둘레에 뿌렸습니다. 아무래도 봄의 마력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땅에서 초록 기운이 돋아나고, 나..

참살이의꿈 2006.04.23

물을 넣다

동파를 막기 위해 보일러의 물을 빼고 겨우내 비워두었던 터에 다시 물을 넣었다. 물 빼는 작업과 마찬가지로 물을 넣는 작업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해체한 보일러를 다시 연결하고 에어를 빼내기 위해 보일러관에 물이 꽉 차게 하는 일에거의 두 시간 정도걸렸다. 넉 달이 넘어서 다시 보일러가 돌고 바닥에 온기가 돌아오니 마치 냉동인간이 깨어나 몸에 따뜻한 피가 흐르게 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집도 정이 들면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아껴 주고 잘 관리해 주면 활기에 차 보이지만, 무관심하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왠지 쓸쓸해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보일러를 통해 물이 돌아가고 그래서 발바닥으로 따뜻한 기운이느껴질 때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드는 것이었다. 이젠 터에서 정을..

참살이의꿈 2006.04.05

사랑의 유효기간 3년

사랑의 유효기간은 생리적으로 볼 때 길어야 3년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에 대해서호감과 애정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이 3년이 되면 거의 사라진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사랑에 빠진 애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 호르몬이 펑펑 솟아났는데시간이 지나고 항체가 생기면서 사랑의 화학물질이 끊어져 더 이상 시각적인 또는 후각적인 자극으로는 가슴 뛰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작심3일이라는 말도 있듯 이 3이라는 숫자에는 인간 마음의 변화를 나타내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일상의 작은 일들도 3일이 지나면 대개 시들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새해의 굳었던 결심도 사흘이 지나면 도루아미타불이 되고, 살면서 만나게 되는 기쁜 일, 슬픈 일도 사흘이 지나면 어느 정도 평상심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큰..

참살이의꿈 2006.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