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31

가천대에서 이매까지 걷다

성남에 있는 가천대학교에서 사진전을 구경하고 탄천으로 나가 이매까지 걸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편하게 자가용으로 다녀오려 했으나,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봄날씨가 좋아 탄천을 걸어보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이런 유혹에는 모른 척 넘어가주는 게 심신에 유익한 법이다. 가천대학교 캠퍼스는 처음 들어가 보았다. 오가는 20대의 청춘들이 봄(spring)처럼 밝고 싱그러웠다. 캠퍼스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이 조형물은 가천대의 상징인 것 같다. 바다 사진을 찍는 김정식 작가의 사진전이었다. '파도 소리'라는 대형 작품 앞에 오늘 만난 셋이 섰다. 사진들은 전체적으로 강렬한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요사이는 AI가 사진만 아니라 영상도 만들어 준다. 상황만 제시해 주면 그에 맞는 분위기의 그림을 알아서 생산한다. 앞으로 ..

사진속일상 2024.03.21

파란에서 부활로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소마미술관에서 류인 작가의 조각전이 열리고 있다[2020.5.19 ~ 10.4]. 전시 주제가 '파란에서 부활로'이다. '파란'은 한자로 '破卵'으로, '알을 깨고 나온다'는 뜻이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주는 말인 듯하다. 류인(柳仁, 1956~1999)은 요절한 천재 조각가다. 40대 초반에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고작 10여 년간 활동을 하면서 7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전통적 방법으로 인체를 다루면서도 현대적인 표현을 구사하여 한국 현대 구상조각의 독보적 자취를 남겼다고 한다. 입방체 속에 갇힌 인간이 굴레를 깨고 나오려는 몸부림을 표현한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작품 제목에 '입산(入山)'이나 '파란(破卵)'이 들어간 연작이 여럿 있다. 무척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사진속일상 2020.08.13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전이 열리고 있다. 부제가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이다. 창령사(蒼嶺寺)는 고려시대에 세워졌지만 조선조에 들어서 폐사된 절이다. 2001년에 창령사 절터에서 땅에 묻혀 있던 나한상들이 발굴되었다.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로 산스크리터어 'arhat(아르핫)'을 한자로 음역한 것이다.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불교의 성자를 가리킨다. 부처님 입멸 뒤 그의 말씀을 경전으로 편찬하기 위해 모인 가섭을 비롯한 500명의 제자들이 오백나한이다. 본격적인 나한 신앙은 당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번에 창령사터에서 발굴된 나한상은 친근한 우리의 모습이어서 더 마음을 끈다. 인간의 다양한 희로애락 감정을 담고 있는데 특히 천진한 미소가 일품이다. 우리 내면에 잠자고..

사진속일상 2019.05.10

대고려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고려전(大高麗展)'을 보다. 고려는 918년에 태조 왕건이 개국해서 1392년에 멸망하기까지 475년간 지속된 나라다. 작년이 개국 1100년이 된 해다. 고려는 조선 왕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고 있다. 그러나 고려는 굉장히 개방적인 국가였고, 나름의 문화를 꽃피운 나라였다. 13세기 개경은 50만 명이 거주한 대도시였고, 30리 떨어진 예성강변의 벽란도에는 장사를 하는 외국 배들이 쉼없이 드나들었다 한다. 이번 전시에는 5개국에 모은 450여 점의 고려 문화재가 선보인다. 불교 유물이 많아선지 스님들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포스터에 대표 유물로 소개된 표주박 모양이 병. 실제는 아주 작다. 정교한 무늬 장식이 일품이다. 고려청자. 기교가 대단하다. 일본에서 ..

사진속일상 2019.02.21

문명: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명: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사진전을 관람하다. 32개국, 130여 명의 작가들이 300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선보인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인간이 만든 문명을 바라보면서, 우리 삶의 모습을 확인해 보는 사진전이다. 작품은 8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다. 벌집(Hive) 따로 또 같이(Alone Together) 흐름(Flow) 설득(Persuasion) 통제(Control) 파열(Rupture) 탈출(Escape) 다음(Next) 다양한 사진이 모여 있어서 문명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다. 인간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또한 문명의 그늘에 어두워진다. 인간의 획일화나 탈개성화에 대한 경고를 자주 볼 수 있다. 자연 파괴를 고발하는 사진은 거의 안 보인다. 너무 디스..

사진속일상 2019.02.12

우리꽃 전시회

목현천변에서 우리꽃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광주시 우리꽃 연구회 주최로 매년 봄이면 열리는 행사다. 정성들여 가꾼 우리꽃과 꽃사진을 전시하면서 분화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고 꽃도 판매한다. 소규모지만 의미 있는 행사다. 매년 봄이면 어떤 꽃이 나올까 궁금하면서 기다려진다. 우리꽃에 대해서 꽤 안다고 자부하지만 이런 데 와서 보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꽃들이 많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꽃이 있었는가, 하는 게 여럿 있었다. 꽃 향기에 흠뻑 빠진 즐거운 시간이었다. 등대진달래 백사초롱 설란 주름제비란 당조팝 큰천남성 고려자귀 백두애기초롱 팔각연 장미매발톱 방울철쭉 등대꽃 나도제비란 은방울꽃 삼지구엽초 말발도리 실목련 매화말발도리 바람꽃

꽃들의향기 2015.04.17

다른 길

그의 프로필에는 혁명가, 시인, 사진작가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혁명가이면서 동시에 시인이 된다는 건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진정한 혁명가는 시인이 되어야 하고, 진정한 시인 역시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에 대한 설명은 이렇게 이어진다. '80년대 권위주의 시대에는 민주 투사이자 저항 시인이었고,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수가 되어 7년여를 감옥에 갇혀 있었다. 자유의 몸이 되고 나서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과 정치의 길을 거부하고 묵묵히 잊혀지는 길을 택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박노해 사진전에 다녀왔다. 두 가지에 놀랐다. 하나는, 사진전을 찾아온 관람객이 매우 많았던 점이었다. 사람에 걸려서 제대로 작품을 감상할 수 없었다. 대중적이지 않는 내용의 ..

읽고본느낌 2014.03.02

순례의 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리처드 기어(R. T. Gere)의 사진전 ‘순례의 길’을 보았다. 그가 티베트 불교에 심취해 있고 티베트인들의 인권과 문화 보존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작가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최근에 알았다. 지난달에는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사찰을 둘러보기도 했다. 티베트 불교와 비교해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순례의 길’은 그가 티베트, 네팔, 몽고 등 불교 사찰과 유적지를 순례하며 찍은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전부 흑백사진이다. 그러나 흔들리고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들은 눈에 설다. 불교적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했겠지만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다. 단조로운 티베트인들의 삶에서 불교가 주는 생기와 활력을 보고 싶었..

읽고본느낌 2011.07.18

2011 기상사진전

꽃사진과 함께 기상사진이 개인적으로 제일 관심이 간다. 특히 하늘의 멋진 구름사진을 찍고 싶다. 그래서 기상사진전은 늘 관심 깊게 지켜본다. 올해 입상작이 발표되었다. 언젠가는 저기에 내 이름도 올라가길 희망한다. 얼음종 / 노주현 / 경남 합천 밭에 고여 있던 물이 강한 바람에 흩날려 깻대에 붙어 얼면서 나타난 희귀한 현상. 구름 모자 / 정상호 / 경남 합천 오도산 렌즈운 / 윤태수 / 설악산 중청봉 얼음에 갇힌 공기방울 / 오도연 / 경기도 성남 탄천 기포가 수면 위로 올라오다가 얼면서 얼음에 막히고 계속해서 올라오는 물방울이 얼게 되어 생기는 현상. 도심에 나타난 버섯구름 / 이덕신 / 대구 수성구 수성못 하늘 아래 뫼이로다 / 이승건 / 제주도 금악오름 해무의 습격 / 강동균 / 해운대 역고드름..

읽고본느낌 2011.03.21

철학자의 나무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영국 사진작가인 마이클 케냐(Michel Kenna)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전 제목이 '철학자의 나무'[Philosopher's Tree]인데 나무를 주제로 한 사진 작품 52점이 전시되고 있다. 지난 30여년 동안 작가가 전세계에서 찍은 나무 사진인데 일본에서 찍은 게 가장 많고 한국에서 찍은 것은 두 작품이다. 그중에서 강원도 솔섬을 찍은 유명한 사진이 있다. 작품들은 모두 흑백의 소품이다. 촬영에서 인화까지 직접 손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가 주는따스함과 서정성을 느낄 수 있다. 여백이 많은 동양의 수묵화를 보는 것 같다. 눈과 마음이 담백해진다. 전시회장 입구에는 작가의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겸허함과 존경심을 불러 일으키는, 위엄 있고 ..

읽고본느낌 2011.02.23

방황하는 영혼

임의진님이 '갤러리 아이'에서 그림 전시회를 연다고 해서 다녀왔다. 그동안 글을 통해서 만난 선생의 자유인으로서의 삶이 늘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현대의 노마드 이미지다. 안내 팸플릿에는 다종예술가[total artist]로 소개되고 있다. 목사, 시인, 수필가, 가수, 화가, 여행가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어느 하나에 매이지 않는 삶을 사는 분이다. 그림은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현대미술에서 더 그렇다. 콜라병을 그린 앤디 워홀의 작품이 몇 백 억인가에 거래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나 같은 문외한은 팝아트가 왜 그렇게 높은 가치를 지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이번 임의진님의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생소한 양식에 내 감정이 따라가지를 못했다. 편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이 아니다. 아마 ..

읽고본느낌 2010.11.17

2010 기상사진전

카메라를 가진 이래로 제일 관심이컸던 피사체는 하늘이었다. 낮의 구름과 밤하늘의 별을 찍기 위해 나름대로는 많이 노력했다. 특히 과학적 입장에서 하늘에 나타나는 모든 구름들과 기상 현상을 필름에 담고 싶었다. 물론 진기한 모양의 구름을 포함한 예술적인 사진을 남기고싶었던 욕심도 있었다. 그 당시에 슬라이드로 찍었던 필름들이 아직 남아있지만 지금 보면 남에게 보여주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시원찮다. 특히 다름 사람의 아름다운 작품과 비교할 때면 더욱 주눅이 든다. 그래도 하늘을 찍은 사진을 보면 다른 것에 비해더 눈길과 애정이 간다. 아직도 기상사진이나 천체사진에 관심이 많다. 아래 사진들은 올해의 기상사진전 수상작품 중에서 몇 개를 고른 것이다. 이런 사진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하늘 사진에 다시 한 번 도..

읽고본느낌 2010.06.01

르누아르

밝고 화사한 세계를 만나고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르누아르전을 찾았다.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서 처음 접했던 르누아르 작품은 밝은 색감과 명랑한 분위기, 곱고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들로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뒤로 르누아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서양화가가 되었다. 얼마 전에도 뱃놀이하는 즐거운 풍경을 담은 그의 그림의 복제본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삶의 밝은 면만 부각시키는 귀족풍의 화려한 그림은 현실 인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가 그린 것은 비현실적인 이상향일 뿐이다. 이런 것이 그의 그림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꿈, 특히 여성들의 로망을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인정을 해 주어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것 역시 우리 내면 모습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르누아르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

읽고본느낌 2009.08.18

2009 기상사진전

올해의 기상사진전은 과천 국립과학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해에는 경복궁 지하철역에 있는 메트로 전시실에서 본 기억이 난다. 이 전시회를 보러 일부러 국립과학관까지 찾아갔지만 사정상 직접 보지는 못하고 대신 서울대공원 뒤의 청계산길을 산책했다. 아쉽지만 기상청 자료실에 올라있는 사진으로 대신한다. 렌즈운 / 김완기 / 울산광역시 태화강 청명한 아침에 태화강 위로 형성된 렌즈운으로 볼록렌즈 세 개를 겹쳐 놓은 듯 하다. 번개를 잡다 / 인경호 / 전남 영광군 영광군 녹사리 덕유산의 브로켄 / 유지훈 / 덕유산 브로켄; 태양을 등지고 설 때 앞에 있는 안개입자가 반사되어 그림자 주위에 생기는 광륜 현상. 구름폭포 / 한인자 / 설악산 하늘이 열리고(채운) / 이상우 / 필리핀 세부 역고드름 ..

읽고본느낌 2009.03.22

지구의 밤

종로에 나간 길에 '청계창작스튜디오'에서 열리고 있는 천체 사진전을 보았다. 올해가 세계 천문의 해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한지 400 년이 되는 것을 기념해서 2 년 전에 유엔 총회에서 결정되었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지구의 밤'(The World at Night)인데 지상의 아름다운 배경과 함께 별, 달 등의 천체를 찍은 42 점의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주로 밤하늘의 별사진이 많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천체사진가들의 뛰어난 작품들이잊고 지낸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한때 별사진을 찍는다고 동분서주해 본 사람으로서 이런 사진들을 보니 옛날의 열정이 되살아나는 듯 감회가 새로웠다. 다른 사진과 달리 별사진은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아무리 준비를 해도 기상 조건이 맞지 ..

읽고본느낌 2009.03.20

강익중의 <멀티플/다이얼로그> 전시회

서울대공원 산림욕장 길을 걸은 뒤에 국립현대미술관에 들렀다. 마침 어제부터 강익중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미술관 램프코어에 있는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多多益善)' 주위의 나선형 벽을 따라 60,000여 개의 소형 타일작품들과 오브제, 영상물이 가득 붙어 있었다. 전에는 '다다익선'만 가운데 달랑 놓여 있어 썰렁했는데 강익중의 작품이 더해지니 '다다익선'이 다시 생명을 얻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적인 비디오 영상과 정적인 강익중의 작품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유쾌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작은 소품들로 이루어진 규모의 거대함이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 이 전시회는 작가 강익중이 1980 년대부터 진행하고 있는 '3 인치' 연작들이 총망라된 회고전이라고 한다. 또한 자신의 스승인 백남준의 작고 3 ..

읽고본느낌 2009.02.07

내 안에 나무 이야기

서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상벽 님의 사진전 '내 안에 나무 이야기'에 다녀왔다. 우선 TV를 통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상벽이라는 사람이 사진전을 열었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그리고 사진전의 소재가 내 관심 분야인 나무에 대한 것이라서 더욱 기대가 컸다. 방송에서 여러 프로그램의 진행자로만 알고 있던 분이 갑자기 사진전을 열었다고 하니 처음에는 무척 놀랐다. 참 재주가 많은 분이구나 싶기도 했지만, 2년 남짓 되는 기간 동안 아무리 열심히 찍는다고 한들 과연 전시회를 할 정도의 작품 수준이 나올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러나 알고보니 님은 예전에 사진을 부전공으로 하고 늘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탄탄한 바탕에서 이번과 같은 좋은 전시회가 열리지 않았나 싶다. 노력 없이 하루 아침에 ..

읽고본느낌 2007.06.14

쉬운 하루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는 ‘메트로갤러리’라는 전시장이 있어 오가며 공짜 구경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개방된 전시장이다보니 대체로 아마추어들의 작품이 전시되는데 유명 전시회에서 느낄 수 없는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어 좋다. 이번에는 한국민족서예인협회에서 ‘먹빛 통해 내 마음터 찾아가는 체험전’이 열렸다. 장애인들이 서예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장애시설을 찾아가서 붓글씨를 체험하게 하고, 처음 붓을 잡아본 아이들의 삐뚤삐뚤한 솜씨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 어설픈 그림과 글씨들이 왠지 미소를 짓게 하고 감동을 준다. 도리어 나에게는 추사의 글씨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그런 작품들 중에서 ‘쉬운 하루’라는 이 글씨에 시선이 끌렸다. 보통 ‘보람찬 하루’ ‘좋은 하루’라는 진부한 말들이 많지만, ..

읽고본느낌 2006.10.22

루오

100여 km를 달려 대전까지 간 것은 루오(G. Rouault)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였다. 현재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조르주 루오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루오는 예수를 비롯한 종교화와 사회 밑바닥 계층의 사람들을 많이 그렸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미제레레’ 연작 등 종교성 짙은 그림들과 루오가 사랑한 광대, 매춘부, 가난한 사람들의 그림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정물화와 풍경화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루오는 가난하고 천대 받는 사람들에서 영혼의 빛을 발견했다. 대신에 부자들과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멸시했다. 판사들, 오페라 극장의 귀빈석에 앉아있는 부르주아들의 얼굴은 탐욕스럽고 기괴하게 일그러진 채 그려져 있다. 대신에 곡마단 소녀의 얼굴은 예수의 얼굴을 닮아있다.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

읽고본느낌 2006.08.17

물오르다

교보문고에 가는 길에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서 열리고 있는 '물오르다'라는 사진전을 스치며 보았다. 이 야외 사진전에는 물을 소재로 한 국내외 사진작가 30여 명의 작품 90 점이 전시되고 있는데, 지구의 소중한 자원인 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사진전이라고 느꼈다. 우리가 만나는 물은 대개 상수도의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계량화된 표정 없는 물질이지만,사실 물 만큼 다양한 얼굴과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번 사진전은 그것을 여러 각도에서 잘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아쉬운 것은 좀더 시간 여유를 갖고 찬찬히 둘러보지 못한 것이다. 여러 작품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마리 폴 네그르의 '물공포증 환자들'인데, 물을 통해 물공포증을 이겨내는 훈련을 받는 장면이 찍혀있다..

읽고본느낌 2006.05.09

마티스와 숭례문

어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 화가들'이라는 전시회를 관람했다. 야수주의 탄생 100 주년을 기념해서 열리는 전시회였는데 마티스를 비롯해서 대표적인 야수주의 작가들의 유화 작품이 100여 점 이상 전시되고 있었다. 야수파들은 자연의 색을 보이는 대로 표현하는 대신 감성에 의해 보고 싶은 대로 또는 보여주고 싶은 대로 현실과 다소 무관한 색채를 이용하는 새로운 회화세계를 열었다고 한다. 전시회에 갔지만 미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므로 미술사적으로 야수파가 가지는 의의를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 전의 경향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고 독특한 것인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을 색채의 마술사라는데 그런 특징 또한 내 눈에는 다른 작가의 작품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아서 답답했다. 사람들..

읽고본느낌 2006.03.06

생명 - 그 아름다움

어제 오후에는 중림동 가톨릭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김선규 기자의 사진전을 보았다. 사진전의 타이틀은 '생명 - 그 아름다움'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생명들을 따스한 시각으로 포착한 작품들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좋은 작품이란 이렇게 작가의 마음을 읽으며 같이 공감하게 만든다. 특히 각 사진마다 제목과 함께 설명이 적혀 있어 좋았다. 그 글에서 또한 작가의 생명 사랑이 진하게 느껴졌다. 이번에 전시된 몇 작품을 여기에 옮겨본다[www. ufokim.com]. ″김형 팔뚝만한 잉어가 하늘로 뛰어올라″ 지루한 장맛비가 그친 금요일 아침 중계동에 사는 친구로 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간밤에 사납게 퍼붓던 비로 인해 중랑천 물은 무서운 기세로 흘러 내리고 있었습니다. 2시간의 기다림. 마침내 팔뚝만한 잉어가 수중보..

읽고본느낌 2006.02.03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

어제는 비가 많이 내렸다. 중국으로 들어갔던 태풍 '카눈'이 서해로 빠져나오며 소멸되었으나 남아있던 비구름이 한반도를 지나간 탓이다. 시내에 볼일을 보러 나갔는데 우산을 썼지만 비로 흠뻑 젖었다. 마침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키아로스타미 사진전 를 보았다. 키아로스타니는이번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이란의 영화감독인데 예술성 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신문 기사를 보고 전시회에 가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이번 사진전의 주제가 '길'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황량해 보이는 산야를 배경으로 날아가는 철새들의 흑백사진이 시선을 끌었다. 인생을 나타낼 때 '길'만큼 적당한 이미지도 없는 것 같다. 길은 설레임이기도 하고 덧없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꼬불꼬불 구부러지며 끝없..

읽고본느낌 2005.09.14

달항아리

비 오는 날, 고궁박물관으로 달항아리를 보러 갔다. 지난 15일에 개관한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특별전으로 달항아리 9점을 전시하고 있다. 달항아리는 둥그런 몸체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대형의 조선 백자 항아리를 일컫는 이름이다. 이 이름은 백자 항아리의 희고 깨끗한 살결과 둥글둥글한 생김새가 보름달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달항아리는 17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백 년 정도 되는 기간에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높이가 40cm 이상으로 지름과 높이가 거의 같은 비례를 이루는 큰 항아리로 워낙 크기 때문에 하나의 모양을 짓지 못하고, 위쪽과 아래쪽 부분을 따로 지어 접붙여 만들었다. 그래서 허리께에 이음 부분이 보이면서 조금씩 비뚤어져 있다. 그래서달항아리의 매력은 깔끔한 정형이 아니라 어딘가..

읽고본느낌 2005.08.26

2005 보도사진전

현재 서울갤러리에서 2005 세계 보도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한때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로 논란이 있었고, 사진 경향이 점점 사실에서 추상으로 변해가는 느낌이 있지만 아무래도 사진의 특징은 현실의 충실한 재현이 아닌가 싶다. 보도사진전에서 한 장의 사실적인 사진이 주는 감동을 접하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사진 속에는 사진을 찍은 사람의 생각이나 의도가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것은 현실 고발일 수도 있고, 인간에 대한 연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일 수도 있다. 한 장의 사진이 전해주는 지구촌의현실에 마음이 아프다. 이번 보도사진전에 나온 작품 중에서 몇 개를 골라보다. - Arko Datta (India) - 쓰나니메 희생된 친지를 보며 한 인도 여인이 오열하고 있다. 작년 12월 26일 수..

읽고본느낌 2005.06.30

존재하지 않는 세계

대림미술관에서 장 보드리야르 사진전을 보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이며 현대성에 대한 가장 뛰어난 해석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 사상가가 사진전을 연다고 하는 것이 우선 흥미로웠다. 장 보드리야르는 지난달에 열린 서울국제문화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았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그의 독창적 이론인 ‘시뮬라시옹(Simualtion)'을 통해 현대 사회의 본질을 설명하는데, 시뮬라시옹은 실재가 가상실재로 전환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실재의 인위적인 대체물을 ’시뮬라크르(Simulacra)‘라고 부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은 가상실재의 세계, 즉 시뮬라크르의 환상 속인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는 걸프전이 한창일 때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

읽고본느낌 2005.06.02

나무, 그 품에 안기다

세종문화회관 앞 보도에서 '나무, 그 품에 안기다'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환경재단과 그린페스티발이 주관해서 매년 열고 있는 환경사진전인데, 올해는 나무와 숲을 주제로 해서 세계의 사진 작가 16명이 참여하여 84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자연의 소중함, 안타까움, 또 생명에 대한 깨우침을 주는 인상 깊은 사진들이 많다. 그 중에서 몇 가지 작품을 모아 보다. [미국 뉴욕시 점심시간 / Thomas Hoepker] 한 남자가 발가벗은 채 바닥에 누워 있다. 빨리 점심을 먹어치우고 다시 숨가쁘게 일에 매달려야 할 텐데, 남자는 바쁜 세상을 잠시 접어두고 한가롭게 오후의 휴식에 빠져 있다. 나무와 남자가 이 거대한 문명의 도시에서 알몸으로 마주한다. 서로간에 대화는 없지만, 미풍의 달콤함을 맛..

읽고본느낌 2005.04.22

톨스토이와 만나다

톨스토이의 생애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그의 나이 50대 초반에 겪었던 정신적 격변이다. 어쩌면 종교적 회심(回心)과 비슷한 경험이었을 텐데, 그는 이때 깨달은 진리를 평생을 통해 삶으로써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금주, 금욕, 육식 거부 같은 생활상의 변화도 이때부터 나타난다. 톨스토이가 위대한 점은 명문 귀족이며 유명 작가라는 자신의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실천을 통해 구도자적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했고, 가족의 몰이해라는 아픔도 겪는다. 열성적 추종자들에게 둘러싸이기는 했지만 그가 걸은 길은 좁고 외로운 길이었다. 톨스토이에게 기존 종교의 모습은 신(神)에게 가까이 가기에는 너무나 위선적이었으며, 정신적 방황 뒤에 그를 구원한 것은 민중의 소박한 신앙과 사랑이었다. 그들과 함..

읽고본느낌 2005.01.27

사람만이 희망이다

일민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최민식 사진 전시회에 다녀오다. 다큐멘타리 사진작가로서 최민식 님은 흑백사진을 통해서 5, 60년대의 가난하고 소외된 우리 이웃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상이 너무나 변했지만 사진 속의 모습들은 사실 우리들 어제의 모습이었다. 거기에는 궁핍과 삶의 무게에 찌들었던 우리의 모습이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면 왠지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을 받는다. 사진 속에서 따스한 인간애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가난하지만 천진한 아이들의 얼굴, 자갈치 시장 아줌마의 건강한 웃음, 아이를 꼭 껴안고 국수를 먹이는 야윈 엄마의 행복한 미소 등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워도 결코 절망에 무너지지 않을 희망과 사랑이 사진에는 있다. 사진을 보며 나는 역설적..

읽고본느낌 2004.11.15

작은 전시회

저녁부터 가을비가 내리다. 그림을 그리는 동료의 작품 전시회에 가다. 찻집의 한쪽 벽면을 이용한 작은 전시회이다. 전시된 작품은 다섯 점인데 모두 생소한 기법으로 제작되어 있다. 액자의 유리 표면에도 물감을 칠해서 효과를 낸 것이 인상적이다. 소재는 전원 풍경과 현대 도시의 구조물들이다. 그러나 가장 좋았던 것은 간소하고 작은 전시회인 것이다. 보통 생각하는 미술 전시회라면 입구에 화환이 늘어서 있고, 부담을 주는 큰 방명록도 펼쳐져 있고, 그리고 관람객의 기를 죽이는 넓은 홀과 환한 조명이 연상된다. 그런 곳에서 나 같은 사람은 괜히 의기소침해진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는 작은 찻집의 벽면을 이용했다. 작품 밑에서 차를 마시며 부담 없이 얘기를 나눈다.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른다. 작가가 아닌 보통 사..

사진속일상 2004.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