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땅 뚫고 나온 냉이로
된장 풀어 국 끓인 날
삼동 끝 흙빛 풀어진 국물에는
풋것의 향기가 떠 있는데
모든 것 당신에게 바친다는 냉이의 꽃말에
찬 없이도 환해지는 밥상머리
국그릇에 둘러 피는 냉이의 꽃말은
허기진 지아비 앞에
더 떠서 밀어놓는 한 그릇 국 같아서
국 끓는 저녁마다 봄, 땅심이 선다
퍼주고도 다시 우러나는 국물 같은
냉이의 꽃말에
바람도 슬쩍 비켜가는 들,
온 들에 냉이가 돋아야 봄이다
봄이라도
냉이가 물어 주는 밥상머리 안부를 듣고서야
온전히 봄이다
냉이꽃, 환한 꽃말이 밥상머리에 돋았다
- 냉이의 꽃말 / 김승해
이 시를 읽고 시장에서 냉이를 사와 국을 끓였다. 시장에서 사온 봄은 비닐봉지 속에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그래선지 냉이의 향기가 조금은 허전했다. 따스한 햇볕 아래 호미를 가지고 직접 캔 냉이가 아니어선지 몰랐다. 그런 과정이 생략된 냉이로는 뭔가 부족한 봄이었다.
그나저나 냉이의 꽃말이 '모든 것 당신에게 바친다'인 것은 이 시를 통해 알았다. 냉이꽃은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작다. 아무도 하잘 것 없어 보이는 꽃의 꽃말에는 관심이 없다. 이제 조금 있으면 하얀 냉이꽃이 온 들을 덮을 것이다. 그때가 되어야 온전한 봄이다. 온 들에 냉이가 돋아야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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