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 42

율봄식물원 향나무

집 인근에 아담한 율봄식물원이 있다. 식물이 다양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다. 유치원 아이들이 현장 학습으로 많이 찾는다. 율봄식물원 안에 300년 된 향나무가 있다. 고난의 몸짓이라고 할까, 누적된 세월이 줄기에 그대로 보인다. 외피가 벗겨진 부분은 흰 속살이 드러났다. 몸체가 45도로 기울어져 있어 몸무게를 버티기에 힘겨워 보인다. 균형을 잡아줄 반대편 줄기는 부러졌다. 설명에 보면 수형이 '현애(懸崖)'라는데, 현애란 분재에서 줄기가 분 아래로 늘어져 있는 형태를 말한다. 현재의 모양은 그 정도로까지 휘어지지는 않았다.

천년의나무 2018.06.29

논어[295]

선생님 말씀하시다. "길이 다르면 서로 의논할 것도 없다." 子曰 道不同 不相爲謨 - 衛靈公 33 인생에는 수없이 많은 길이 있다. 타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모든 길은 옳다. 어느 길로 가느냐는 각자의 선택이며, 다만 선택에 따른 과보는 감내해야 한다. 개인의 가치관이나 집단의 이데올로기 차이가 서로 다른 길이라고 볼 수 있다.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면서 공동체를 이루는 게 민주사회다. 내 생각만이 바르고 내 길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파쇼적 폭력일 뿐이다. "길이 다르면 서로 의논할 것도 없다"는 공자의 말씀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가능하다. 우리는 각자 제 길을 가면서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삶의나침반 2018.06.28

팽나무가 쓰러지셨다 / 이재무

우리 마을의 제일 오래된 어른 쓰러지셨다 고집스럽게 생가 지켜주던 이 입적하셨다 단 한 장의 수의, 만장, 서러운 곡哭도 없이 불로 가시고 흙으로 돌아, 가시었다 잘 늙는 일이 결국 비우는 일이라는 것을 내부의 텅 빈 몸으로 보여주시던 당신 당신의 그늘 안에서 나는 하모니카를 불었고 이웃마을 숙이를 기다렸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아이스케키 장수가 다녀갔고 방물장수가 다녀갔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부은 발들이 들어와 오래 머물다 갔다 우리 마을의 제일 두꺼운 그늘이 사라졌다 내 생애의 한 토막이 그렇게 부러졌다 - 팽나무가 쓰러지셨다 / 이재무 장마가 시작된 어제였다. 수원 영통의 500년 느티나무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불과 한 달 전에 이 나무를 찾아갔었다. 우람하고 멋진 모습에 반했는데 무슨 변고..

시읽는기쁨 2018.06.27

나는 혼자 스페인을 걷고 싶다

최근에 지인이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걷고 왔다. 생장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800km를 40일 동안 걸은 대장정이었다. 산티아고 길은 10년 전만 해도 내 버킷 리스트 순위 3번 안에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이 없다. 그렇지만 지인이 다녀온 얘기를 들으니 불씨가 다시 살아난다. 는 내 바람과 같은 제목의 책으로, 일본 여성 오노 미유키가 산티아고를 걸은 이야기다. 그녀는 공황장애를 앓을 정도로 직장 생활에 어려움을 겪다가 산티아고 길을 찾았다. 부제가 '먹고 마시며 걷는 36일간의 자유'다. 평범한 여행과는 차원이 다른 카미노 데 산티아고만의 매력을 그녀는 일곱 가지로 정리한다. - 숙박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 밥이 맛있고 저렴하다. - 전 세계 사람들의 다양한 인생관을 접할 수 있다. ..

읽고본느낌 2018.06.26

장마가 찾아오다

어제는 땡볕 속을 걸었는데 밤이 지나고 나니 날씨가 일변했다. 장마전선이 성큼 중부지방까지 올라왔다. 천둥과 번개까지 데리고 장마의 시작을 알린다. 여름의 열기를 식혀주는 비가 우선은 반갑다. 그러나 좀 지나면 쨍쨍한 햇빛을 다시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그러하다. 장마철이 되면 할아버지는 "아이고, 허리야" 하시며 바닥에 엎드리시는 빈도가 높아졌다. 나는 재미나서 허리를 밟아드렸지만 날씨와 신체의 감응이 얼마나 신기한지 그때는 몰랐다. 오늘 아침 일어나는데 허리에 이상 신호가 왔다. 디스크 수술을 받은 이후로 가끔 찾아오는 증상이다. 하필 장마의 시작과 맞춘 듯 나타나니 타이밍이 절묘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오후 당구 모임에는 못 나간다는 연락을 넣었다. 인생의 앞길에 무엇이 기다리고 ..

사진속일상 2018.06.26

덕수2리 느티나무

양평군 단월면 덕수리로 같은 지명이지만 덕수교회 옆에 있는 느티나무와는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수령이 500년으로 이쪽이 형님 느티나무다. 나무줄기가 긴 세월을 대변해 준다. 나무 둘레로 데크를 해 놓아 주민이 쉴 수 있게 했다. 시골 마을은 텅 비어 인적이 없다. 그렇다고 들판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마을을 지키는 여름 한낮이다.

천년의나무 2018.06.25

덕수리 느티나무

단정한 모습에서 품격이 느껴지는 느티나무다. 균형미가 아름답다. 나무 아래 정자도 아담하게 잘 놓여 있다. 두 개의 줄기가 합체되어 V자 형으로 갈라졌다가 여러 개의 가지로 나뉘었다. 높이는 16m, 줄기 둘레는 6.2m, 수령은 300년이다.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덕수리에 있다. 마침 정자 아래 쉬고 있던 주민분이 나무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 주신다. 나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시다. 나무 옆에는 시골 마을치고는 꽤 큰 교회가 있다. 느티나무의 기운을 받아 교세도 왕성한 것 같다. 주변 풍경과도 잘 어울리는 느티나무다.

천년의나무 2018.06.25

쇼팽의 야상곡

클래식을 다시 듣게 된 건 순전히 윗집 덕분이다. 이음치음(以音治音)이라고 할까, 한밤중 윗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잊기 위해서 음악을 더 크게 튼다. 처음에는 교향곡 같은 데시벨 높은 음악에 의지하지만, 천장의 소음이 잔잔해지면 잔잔한 피아노곡으로 바꾼다. 그러다가 슬며시 잠이 드는 날은 대성공이다. 그중에서 제일 자주 듣는 곡이 쇼팽의 야상곡(夜想曲)이다. 녹턴이라고 부르는 야상곡은 피아노 소품인데 밤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음악이다. 수면제 역할로 이만한 게 없다. 쇼팽의 야상곡 전곡은 1시간 30분 가량 되는데, 대개 30분 정도만 듣고 있으면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쇼팽은 예민하고 수줍은 성격이었던 것 같다. 예술가들한테는 늘 여자들이 따라 다니는데 쇼팽은 수동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길위의단상 2018.06.24

보룡리 느티나무

10여 그루의 느티나무 고목이 마을 길을 따라 도열해 있다. 그중 한 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고, 수령이 600년이 넘는다. 옆에 보산정과 박씨 문중 비각이 있어 느티나무 군락과 연관이 있음을 짐작케 한다. 보산정(寶山亭)은 고려말 공민왕 때 무안 박씨의 선조인 간의대부 송림공(松林公)이 당시 왕궁의 혼란을 피해 낙향해서 시회장(詩會場)으로 건립했다. 정자는 야트막한 언덕에 있는데, 주위에는 연못도 조성되어 있다. 나무의 연령과 보산정을 세운 시기가 얼추 비슷하다. 이 정도의 느티나무 군락이라면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만하다. 아름드리 거목들인데 관리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다. 나무에 딱 붙여서 집을 지어놓기도 했다. 다행히 나무를 훼손한 것 같지는 않다. 양평군 단월면 보룡리에 있다.

천년의나무 2018.06.23

경복궁에서 만난 날

전 직장 동료 다섯이 경복궁에서 만났다. 장길산이 산티아고를 40일 동안 걷고 돌아온 핑계로 모인 만남이었다. 퇴직하고 나니 각자 생활에 바빠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얼굴을 볼 뿐이다. 산티아고는 거의 포기 상태지만 다녀온 얘기를 듣다 보니 언젠가 나도 그 길에 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꿈에 젖어 보았다. 실행 여부를 떠나 꿈꿀 수 있다는 것만도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닌가. 오랜만에 가 본 경복궁에는 한복을 입은 외국인이 엄청 많아졌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이런 현상도 한류 드라마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동료를 기다리느라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옆에 있는 50대 정도 되는 필리핀 남자가 말을 붙인다. 아내, 딸과 가족여행을 온 사람이다. 10일 간의 일정을 보여주는데 우리가 ..

사진속일상 2018.06.22

행복은 이슬비다

행복은 이슬비다. 작은 것이 쌓여 촉촉이 젖어드는 것이 행복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사람은 천차만별이지만 행복을 향유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졌다. 만약 행복을 부자나 스타만 독차지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잿빛이 될 것인가. 크고 거창한 것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로또에 당첨되면 행복할까. 로또 당첨은 일시적인 충격요법일 뿐 기쁨의 강도는 급속하게 감소한다. 이런저런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서 불행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행복은 잔잔하면서 오래 지속하는 감정이다. 오르내리는 진폭이 크면 평온을 유지하기 힘들다. 많은 소유는 욕망을 크게 하므로 내적 만족을 얻지 못한다. 오히려 적게 가진 사람이 자족할 줄 안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권리다. 이혼한 사람이나, 쫄딱 망한 ..

참살이의꿈 2018.06.22

광교저수지 한 바퀴

수원에 다녀오는 길에 광교저수지를 한 바퀴 돌았다. 광교산 기슭에 있는 광교저수지는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1943년에 건설되었다. 지금은 아래가 전부 주택가로 변했으니 아마 수원시의 상수원으로 사용되지 않나 싶다. 제방 아래는 광교공원이 잘 꾸며져 있다. 광교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좋다. 제방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은 나무 데크로 된 길이다. 벚나무가 있어 한여름에도 그늘이 진다. 한 바퀴 도는 데 3.4km다. 개망초도 꽃밭이 된다. 금계국, 코스모스와 어우러진 모습이 자연스럽다. 저수지 왼편은 산길로 녹음 사이를 걷는다. 흙으로 되어 있고 적당한 오르내림이 있어 나무 데크 길과는 다른 맛이다. 가볍과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는 광교저수지 둘레길이다. 한 바퀴 도는 데 50분 정도 걸렸다.

사진속일상 2018.06.20

논어[294]

선생님 말씀하시다. "교육하면 차별은 없다." 子曰 有敎無類 - 衛靈公 32 전에 근무했던 학교 현관에 들어서면 '有敎無類'라 적힌 액자가 제일 먼저 맞았다. 그때는 이 말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공자님이 학생을 들일 때 신분이나 빈부의 차별을 하지 않았다는 정도로 이해했다. 그런 면에서 현대의 보통교육은 유(類)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공자 시대보다는 확실히 진일보했다. 그러나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현 체제의 교육은 차별을 심화시키는 측면도 있다.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사이는 물론이고, 배운 사람 또한 줄 세우기 하는 현실이니 말이다. 부와 권력의 세습에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본다. 약육강식의 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하지나 않는지.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노력이 공..

삶의나침반 2018.06.20

공세리성당 팽나무와 느티나무

10년 만에 다시 만난 공세리성당의 팽나무와 느티나무다. 단아하고 정갈한 자태의 두 나무는 성당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성당이 나무를 돋보이게 하고, 나무가 성당을 살린다. 성당과 나무가 만드는 조화와 아름다움을 내 사진 실력으로는 나타낼 수 없다. 다시 찾아와야 할 과제를 안았다. 성당으로 올라갈 때 먼저 팽나무를 만난다. 공세리성당 '문지기 나무'라 불리는 이유를 알겠다. 3백 년 세월의 흔적은 뿌리에 온전히 드러나 있다. 고난과 박해 위에 활짝 꽃을 피운 신앙의 열매를 보는 것 같다. 성당 옆 뜰에는 수령 380년의 느티나무가 있다. 1600년대에는 세곡을 하역하는 사람들의 휴식을 위해 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이 나무도 그중 하나로 보인다. 고종 31년(1894)에 옛 성전을 건립할 때 성당 옆으로 ..

천년의나무 2018.06.19

성지(8) - 배나드리, 여사울, 남방제, 공세리성당

11. 배나드리 예산군 삽교읍에 있는 마을 이름으로 '배를 타고 건너다녔다'는 뜻이다. 도리(島里)라고도 하는데 옛날에는 여기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마을은 야트막한 구릉 지대에 있는데 물이 차면 섬으로 될 수 있는 지형이다. 배나드리는 인언민 마르티노의 순교 사적지다. 인언민은 1737년 삽교에서 태어나 황사영 알렉시오에게서 천주교 신앙을 접하고, 주문모 야고보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는 신앙생활을 위해 집과 재산을 버리고 공주로 이주하였다가 1797년에 시작된 정사박해 때 체포되어 1800년에 순교했다. 1817년 병인박해 때도 이 마을 신자들은 많은 고난을 받았다. 성지는 마을 가운데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성지 순례자를 위한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다. 12. 여사울..

사진속일상 2018.06.19

홍성군청 버드나무

홍성군청 앞에 있는 버드나무 두 그루다. 이곳은 홍주성 안으로 홍주관아가 있던 자리다. 군청 뒤에는 더 오래된 버드나무가 있다. 버드나무가 있다는 것은 옛날에는 개울이나 연못이 있었다는 증거다. 지금은 흙으로 메워져서 버드나무 입장에서는 생육 환경이 열악해졌다. 작으나마 연못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설명이 없어 나무에 대한 정보는 알 수 없다. 눈짐작컨대 수령이 200년은 족히 되어 보인다. 두 버드나무는 왠지 생기가 없어 보인다. 물 떠난 고기처럼 물 떠난 버드나무도 제 생명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다.

천년의나무 2018.06.18

성지(7) - 홍주순교성지

10. 홍주순교성지 홍성 시내에 들어가 전화를 하고 찾아가니 홍주성지성당 관계자 분이 나와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신다. 홍주성지성당은 홍성군청 앞에 있는 건물 한 켠에 세 들어 있다. 새 성당을 건축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홍주는 충청도 지방의 신앙 중심지였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홍주성 안으로 끌려온 천주교 신자들이 죽임을 당했고, 일부는 산 채로 구덩이에 묻히기도 했다. 1866년 병인박해 때는 80명의 명단이 전해지지만실제로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이 있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홍주순교성지는 홍주 동헌과 진영, 홍주 생매장터와 안장터, 홍주옥터, 홍주 조양문과 저잣거리, 홍주 형장터 등을 아우르는 넓은 지역이다. '홍주순교성지' 비는 참수터와 생매..

사진속일상 2018.06.18

그날, 바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밝히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객관적인 자료를 통한 과학적 분석이 돋보인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월호 침몰은 왼쪽 앵커 때문에 일어났다. 무슨 이유에선지 출항한 뒤부터 왼쪽 앵커가 아래로 늘어졌고, 수심이 얕은 곳을 지날 때 앵커가 땅과 충돌하며 항로가 변했다. 이런 현상은 여러 차례 일어나며 누적되다가 사고 지점에서 결정적인 충격을 받았다. 영화를 만든 사고 조사팀은 사고 시간과 항로 기록 데이터가 수정되고 조작되었음을 밝힌다. 은폐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AIS 항적도는 가짜다. 실제 항로는 남서 방향, 병풍도 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그곳은 수심이 얕아 앵커가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굳이 이 사실을 감추려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

읽고본느낌 2018.06.17

상중리 느티나무

수령이 1,100년 가까이 되는, 충청남도에서 제일 연세가 많으신 나무다.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에 있다. 전설에 의하면 소정방이 이끄는 나당연합군이 백제 부흥군의 마지막 거점인 임존성을 공격할 때 이 나무에 배를 맸다고 한다. 의자왕이 항복하고 난 뒤 3년여 동안 결사 항전을 벌였던 곳이 임존성이다. 마을 뒤에 있는 봉수산(483m)에 임존성이 있었다. 663년 11월에 임존성은 함락되고 백제는 종말을 맞았다. 전설이 맞다면 나무 나이는 최소한 1,500살이 넘어야 한다. 백제 시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나무에 배를 맸다는 것은 사실일지 모른다. 지금도 샘을 파면 시커먼 갯벌의 흙과 짠물이 섞여 나온다고 한다. 이 나무의 별명이 '배 맨 나무'다. 나무는 한눈에 봐도 연륜이 오래되고 범상치 않음을 알 수 ..

천년의나무 2018.06.17

전원락(田園樂) / 왕유

桃紅復含宿雨 柳綠更帶朝煙 花落家童未掃 鶯啼山客猶眠 붉은 복사꽃은 간밤 비 머금어 더 곱고 버들은 새벽 안개 속에 더욱 푸르나니 꽃잎 떨어지는데 아이는 쓸 생각을 않고 꾀꼬리 우는데도 손님은 그저 잠만 자네 - 전원에 사는 즐거움 / 왕유(王維) 김홍도의 '낮잠' 그림 중 하나를 본다. 나무 아래에 누워 낮잠을 자는 노인의 모습이 유유자적이다. 이 그림에 적힌 시가 왕유(王維, 701~761)의 '전원락(田園樂)' 연작시 7수 중 여섯 번째 작품이다. 시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라면 앞의 나무는 버드나무, 뒤는 복사꽃이리라. 그림 속 노인이 부럽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시동 하나 데리고 자연에 묻혀 속세를 잊고 살아가는 모습이 선경이 따로 없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현대인의 로망이 이 그림에 담겨 있다. 나는 ..

시읽는기쁨 2018.06.16

교촌리 은행나무

예산군 대흥면 교촌리에 있는 은행나무다. 가까이에 대흥향교가 있다. 옛날에는 이 은행나무도 향교 터에 속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은행나무가 특이한 점은 은행나무 몸통에서 느티나무가 함께 자란다는 것이다. 형태가 다른 두 잎을 확연히 볼 수 있다. 아마 은행나무 고목에 느티나무 씨앗이 날아와 자라기 시작했으리라. 가을에 단풍이 들면 둘의 차이가 더 드러날 것이다. 은행나무 둘레에는 평상을 깔아놓아 주민이 넉넉히 쉴 수 있게 했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 초순이면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성황제를 여기서 올린다고 한다. 은행나무 옆에는 마을회관과 예쁘게 꾸며 놓은 시골집이 두 채 있다. 차분하고 안온한 느낌이 드는 마을이다. 은행나무의 수령은 약 600년이다.

천년의나무 2018.06.15

대흥향교 느티나무

충남 예산군 대흥면에 있는 대흥향교(大興鄕校)는 조선 태종 5년(1405)에 설립되었다.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명륜당과 대성전을 갖춘 전형적인 향교라는 설명이다. 대흥향교 입구에 300년 정도 된 느티나무가 있다. 나무가 자라는 위치가 상당히 불안하다. 아마 도로를 내면서 터가 많이 깎여나가지 않았나 싶다. 나무 높이는 14m, 줄기 둘레는 4.2m인 느티나무다.

천년의나무 2018.06.15

내현리 느티나무

충남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는 '거북이마을'로 알려져 있다. 구항(龜項)에도 '거북 구' 자가 들어있는데 이 고장 지형이 거북이처럼 생겼다고 한다. 내현리는 약천 남구만(南九萬, 1629~1711)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선생은 당시 서인의 중심 인물이었고 문장과 시화에 뛰어났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이 시조가 선생의 작품이다. 선생은 말년에 이곳에서 집필 활동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역사성 있는 내현리는 여러 문화 사업을 하는 것 같다. 여는 농촌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이 마을에 수령 4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있다. 연륜이 오래되었음을 나무 밑둥이 말해준다. 찾아간 날은 주변이 공사중이라 어수선했다. 마을에서 아..

천년의나무 2018.06.14

누비길: 이배재~영장산

용두회의 누비길 걷기 네 번째로 이배재에서 영장산까지 걸었다. 누비길 3구간은 이배재에서 영장산을 거쳐 태재까지 12km 거리인데, 우리는 반으로 나누어 걸었다. 나도 발에 생긴 티눈 때문에 오래 걷지를 못한다. 영장산에서 새마을연수원으로 내려오는 7km 길이였다. 싱가포르에서 북미회담이 열리는 날이었는데 산길에서도 그쪽 소식이 궁금했다. 어찌 됐든 회담이 잘 돼서 전쟁 걱정을 안 해도 되는 나라가 되기를 비는 마음은 모두가 같았다. 통일 전까지는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1국가 2체제가 정착되면 좋겠다. 직접 차를 몰고 북쪽 땅에도 들어갈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산길에 있는 연리지 소나무다. 나이가 어리지만 이 정도로 완벽한 H 형상의 연리지는 드물다. 한 친구는 인위적으로 만들었을 수도..

사진속일상 2018.06.14

궁리 소나무(2)

안면도에 가는 길에 다시 본 궁리 소나무다. 12년 전에 처음 본 모습 그대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수백 년을 살아가는 나무에게는 호들갑스러운 말이다. 묵묵히 변치 않음이 천 년 나무의 특징이다. 마치 큰 바위 같다. 멋진 구름이 있을 때 하늘을 배경으로 찍으면 나무의 생김새가 더욱 살아날 것 같다. 붉게 노을 든 하늘이라면 더욱 좋겠다. 한 마리 단정학이 내려앉아 있는 듯한 궁리 소나무다.

천년의나무 2018.06.13

안면도 모임

지난 토요일에 장모님 생신을 맞아 처가집 형제 가족이 안면도에서 만났다. 황도펜션에서 일박한 뒤 꽃지, 안면암, 간월도를 둘러봤다. 3년 전 속리산 모임 때보다 장모님 보행이 나아져서 다행이었다. 그때는 휠체어를 이용했었다. 왠일로 일찍 눈이 떠져 숙소를 가만히 빠져 나와 황도를 한 바퀴 돌았다. 썰물로 물이 빠진 갯벌에는 바지락을 캐는 주민들이 손길이 분주했다. 안면암은 처음 가봤는데 바다 위에 떠 있는 부상탑(浮上塔)이 유명했다. 섬 외진 곳에 있는 데도 찾는 사람이 많았다. 마침 밀물이 들어와서 길이 끊어지고 우리가 마지막 관람객이 되었다. 세월이 야속하게도 흘러갔다. 눈 깜짝할 사이다. 인연이 처음 맺어진 것이 다들 20대 때였는데 어느덧 환갑이 지난 나이까지 되었다. 부축을 받고 계단을 내려가는..

사진속일상 2018.06.13

향소리 느티나무

양평군 단월면 향소리에 있는 느티나무다. 도로변에 있어 쉽게 눈에 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특이한 모양의 나무다. 느티나무 두 그루와 음나무가 한데 붙어 있는 연리목이다. 세 그루가 합체된 경우는 처음 본다. 그런데 아쉽게도 음나무는 줄기가 베어졌다. 안내문이 아직 남아 있는 거로 봐서 근래 죽은 것으로 보인다. 느티나무와 음나무 수령이 500년으로 적혀 있다. 무슨 사연으로 음나무가 죽음을 맞았는지 주변에는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옆에는 좀 더 어린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제단이 차려져 있다. '소망'이라는 제목의 표석도 있다. 마을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장소인 것 같다. 총 다섯 그루가 있었는데 음나무는 사라지고 지금은 느티나무 네 그루만 남았다. 몇 년 더 일찍 찾아왔더라면 살아 있는 음나무를..

천년의나무 2018.06.08

산림청 선정 100 보호수

우리나라에는 14,000그루 가량의 보호수가 있다. 산림청에서 '이야기가 있는 보호수'라는 주제로 그중 100그루를 골랐다. 전설이나 설화가 전해지는 대표적인 나무들이다. 오래 되었거나 아름답다기보다 사연 중심으로 선정했다. 그래도 많은 보호수 중에서 고른 참고할 만한 자료라고 하겠다. 산림청이 선정한 100그루는 다음과 같다. 01 은행나무 서울 도봉구 방학동 546 02 회화나무 서울 중구 정동길 21 03 측백나무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13-175 04 느티나무 서울 강남구 도곡동 산177 05 향나무 서울 서초구 1748-7 06 은행나무 인천 강화군 교동면 무학리 542 07 느티나무 인천 강화군 교동면 교동서로 257번길 42-1 08 소나무 인천 강화군 선원면 강화동로 924 ..

길위의단상 2018.06.08

논어[293]

선생님 말씀하시다. "군왕을 섬길 때는 제 직분에 충실하고 봉급 문제는 뒤로 미룬다." 子曰 事君 敬其事 而後其食 - 衛靈公 31 8천 명이 넘는 후보자가 출마한 6.13 지방선거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왕조시대와 비교할 때 섬기는 대상은 다르지만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파의 이익이나 개인의 욕심을 떠나 내 고장과 이웃을 위해 조용히 진정으로 일해 줄 사람이 많이 뽑혔으면 좋겠다.

삶의나침반 2018.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