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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안천 으악새

경안천에 나가면 백로와 왜가리는 꼭 만난다. 왜가리보다는 백로가 두세 배는 더 자주 눈에 띈다. 백로 중에서는 쇠백로가 제일 많다. 백로나 왜가리는 몸집이 큰 데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하지 않아 사진 찍기에 좋다. 어제 만난 왜가리는 한참 사진 모델이 되어 주더니 내가 조금씩 접근하자 귀찮다는 듯 건너편으로 날아갔다.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라는 유행가가 있다. 여기서 '으악새'가 무엇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새가 아니라 억새라는 해석이 유력했는데 작사자가 남긴 말이 밝혀지면서 지금은 왜가리로 보는 게 통설이다. 작사자인 박영호 씨가 어느 날 뒷산에 올라갔는데 멀리서 "으악 으악" 하는 새 소리가 들리길래 그냥 으악새라고 부르면서 가사를 썼다고 한다. 이런 소리를 내며 우는 새는 왜가리..

사진속일상 2022.05.31

13년 만에 예봉산에 가다

예봉산은 집에서 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데, 어쩌다 보니 다시 오르는 데 13년이 걸렸다. 왜 그렇게 잊어버렸는지 나도 모르겠다. 10년이 넘으니 예전에 걸었던 산길은 까마득히 멀어져 갔고, 주위를 둘러보지만 처음 찾아온 길인 것 같다. 와부제4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 들머리로 향했다. 날은 맑았지만 시야는 뿌옇게 흐렸다. 중턱을 넘었을 때 시야가 트인 곳이 나왔다. 밑에 팔당역과 팔당대교가 보이고, 강 건너편은 하남시다. 산 정상에는 강우 관측 레이더가 설치되어 있다. 산 아래와 관측소를 연결하는 궤도가 깔려 있어 차량이 운행한다. 인접한 관악산에도 기상 레이더가 있는데 서로 기능이 다른가 보다. 어쨌든 환경 훼손은 피할 수 없다. 북쪽으로 보이는 서울은 흐릿했다. 재미로 셀카를 찍어보았다. 새..

사진속일상 2022.04.04

겨울옷 벗은 강물을 바라보다

요 며칠 동안 감정 소비가 컸다. 지난주에 실시한 대통령 선거 후유증이다. 동기 단톡방에서 논쟁이 일었고, 결국 방에서 나와 버렸다. 더 이상 조롱과 비아냥을 보고 있기 어려웠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문재인 머저리는 노무현처럼 뛰어내리지도 못할 거야." "윤석열 대통령이 좌파 연놈들을 조지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통쾌하다." 몇 차례 자제를 부탁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이 나라를 공산주의로 몰고가려 한 죄과는 받아야 한단다. 무릎 꿇고 반성부터 하란다. 다른 동기들은 침묵하고 나만 반대 목소리를 내다가 그만 뛰쳐나와 버렸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였다. 원래는 수리산 변산아씨를 만나려 했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수난을 겪는다는 보도를 보고 마음을 돌렸다. 대신 넓고 유장한 강물이 보고 싶었다. 날..

사진속일상 2022.03.17

불암산 바위종다리

바위종다리를 만나기 위해 불암산에 올랐다. 산행 들머리는 불암사였다. 불암사(佛岩寺)는 남양주에 위치하고 있어 서울 쪽에 비하면 찾는 사람이 적어 조용하고 주차 공간이 넉넉했다. 낮 기온이 10도까지 올라 겨울 점퍼는 일찍부터 벗어야 했다. 불암사에서 20분 정도 오르면 석천암(石泉庵)을 지난다. 이름으로 볼 때 바위에서 석간수가 솟아나는가 보다. 수직으로 선 너른 바위에는 푸근한 느낌의 미륵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겨울이 지나가는 한낮의 따스한 햇살에 절집의 개 두 마리가 오수중이시다. 가까이 다가가니 귀찮다는 듯 무거운 눈을 겨우 뜨고 쳐다보더니 이내 무시해 버린다. 절집에서는 개들도 순해진다. 불암사에서 정상까지는 1.6km 정도밖에 안 된다. 한 시간 정도면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불암산 등산 길..

사진속일상 2022.03.03

길 떠날 준비하는 고니

경안천의 고니들 숫자가 줄면서 행동도 달라졌다. 일부는 이미 북쪽으로 떠난 것 같다. 남아 있는 고니들도 먹이 활동보다는 움직임을 자제하면서 대기 모드로 들어가 있다. 다수는 사람을 피해 강 맞은편에 몰려 있다. 가만히 있으면서 체력을 비축하는가 보다. 아마 자기들끼리 인간이 모르는 신호를 주고받고 있으리라. 그래서 때가 되면 힘차게 날아올라 북쪽의 번식지로 떠날 것이다. 계절 변화에 연동하여 움직이는 철새들의 루틴이 신기한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이 갖지 못한 초감각이 저들한테는 있는 게 틀림없다. 고니는 일부일처제를 지키면서 가족 단위로 생활을 한다. 여기서 같이 모여서 움직이는 고니들 역시 한 가족이 아닌가 싶다. 고니 다섯 마리가 상류 쪽으로 이동한다. 한 켠에는 민물가마우지가 모여 있..

사진속일상 2022.03.01

신륵사와 흰죽지

수녀님을 만나러 이천에 갔다가 여주를 지나는 길에 신륵사에 잠시 들리다. 신륵사는 '신륵(神勒)' - 신령의 힘으로 굴복시킴 - 이라는 이름과 함께 풍광 좋은 남한강변에 위치한 것도 다른 절과 달리 특이하다. 남한강의 옛날 이름은 여강(驪江)이었다. 강월헌(江月軒)에서 바라보는 여강의 경치는 일품이다. 눈맛이 제일 시원한 곳이 강월헌과 불탑이 있는 이곳이다. 해 지는 이곳에서 속울음 삼키며 하염없이 앉아 있던 때가 있었다. 높이 9.4m의 신륵사다층전탑(神勒寺多層塼塔),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려 시대의 벽돌 탑이라고 한다. 은행나무 관세음보살. 신륵사 경내에는 옛 조포(潮浦) 나루터가 있다. 조포나루는 삼국시대부터 한양의 마포나루와 광나루, 여주 이포나루와 함께 4대 나루 중 하나였다. 이곳에는 통행자의..

사진속일상 2022.02.24

경안천 오포 구간을 걷다

햇볕이 좋아 밖에 나왔더니 낮 기온이 겨우 0도에 걸치는 싸늘한 날씨다. 바람이 약간만 세게 불어도 한기가 느껴진다. 아내와 함께 오포대교를 중심으로 해서 상하류를 오가는 길을 걷다. 경안천 풍경. 이 구간에는 십여 마리의 고니를 언제나 볼 수 있다. 이 가족은 좋은 데 터를 잡은 것 같다. 왜가리는 만사가 귀찮다는 듯 한데 모여서 쉬고 있다. 민물가마우지 흰뺨검둥오리 물닭 강 모래톱 갈대밭에 고라니가 보인다. 이곳 경안천은 주택가에 둘러싸여 있어 산에서 멀다. 얘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내려왔는지 불가사의하다. 여기서 사는 걸까, 아니면 인적이 드문 한밤중을 틈타 산으로 왕래를 하는 걸까. 경안천에 나오면 다양한 생명붙이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다들 하늘로부터 받은 소명대로 조화롭게 살아간다. 종마다 자신..

사진속일상 2022.02.23

전주 가는 길

이번에 전주 가는 길은 서산과 안면도를 지나는 우회로를 택했다. 두 달 전에 개통한 보령해저터널이 궁금해서였다. 원산도와 대천항을 연결하는 보령해저터널은 길이가 6.9km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긴 해저터널이다. 10년의 공사 기간에 5천 억이 투입되었다. 안면도 영목항과 대천항 사이에는 원산도라는 섬이 있는데, 영목항과 원산도는 교량으로, 원산도와 대천항은 해저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서산을 지나면서 시내에 있는 서산호수공원에 들렀다. 노랑부리저어새가 겨울을 나기 위해 이 호수에 찾아왔다는 보도를 봤기 때문이다. 호수공원은 과거에는 농업 용수로 이용되던 저수지였는데 지금은 시민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호수공원에는 철새 탐조대가 있다. 천연기념물 206-2호인 노랑부리저어새가 날아왔다는 안내..

사진속일상 2022.02.12

경안천의 고니와 기러기

이맘 때면 경안천에 고니와 기러기가 모여든다. 여기서 충분히 에너지를 보충한 뒤 한 달 뒤면 북쪽으로 날아간다. 고니와 기러기는 종이 다르지만 함께 모여 지낸다. 한 해의 이동 동선이 서로 비슷한 것 같다. 경안천에서 볼 수 있는 고니와 기러기의 정확한 이름은 큰고니와 큰부리큰기러기다. 그러나 나는 세세히 구별하기보다 그냥 고니, 기러기로 부른다. 그런들 얘들이 날 나무랄 것 같지는 않다. 오전의 먹이 섭취를 마치고 낮이 되니 천 한가운데서 낮잠을 즐기고 있다. 오후가 되면 또 분주해질 것이다. 불침번을 서는 듯 고니 몇 마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의 신호를 보낸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기러기들이 제일 두려워 한다. "너 조금만 더 오면 날아가 버릴 거야." 나는 조심스러워 더 접근하지 못한다. 고..

사진속일상 2022.02.05

철원 두루미 탐조 투어

두루미 탐조 투어가 재개되어 아내와 같이 참가했다. 철원에 있는 DMZ두루미평화타운에서 매일 10시와 14시에 버스로 출발한다. 화요일은 쉬는 날이다. 느긋하게 14시 투어를 염두에 두고 토교저수지 주변을 돌아보다가 찾아갔더니 우리가 접수 1번과 2번이었다. 한 회에 32명으로 인원 제한이 있어 혹시 일찍 마감하면 어쩌나 여겼는데 기우였다. 총 19명이 함께 했다. 타운 앞에는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7종의 두루미 모형이 있다. 각 두루미의 특징을 잘 나타냈다. 왼쪽부터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 시베리아흰두루미, 캐나다두루미, 검은목두루미, 쇠재두루미다. 지난 여러 차례의 경험으로는 철원에서도 두루미를 보는 게 만만치 않았다. 눈에 보이는 두루미가 많지 않았고, 또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

사진속일상 2022.01.25

경안천-칠사산을 걷다

겨울이 되면 아무래도 집 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다른 계절에 비해 걷는 운동량이 1/3은 떨어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몸은 둔해지고 바깥에 나가는 일이 귀찮아진다. 어제는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서 작심하고 경안천에 나갔다. 큰 마음을 먹은 김에 칠사산까지 연계해서 걸었다. 이 코스는 강변과 산길을 함께 걸을 수 있어 좋다. 응달에는 사흘 전에 내린 눈이 아직 남아 있다. 겨울 경안천의 단골인 고니가 청둥오리와 함께 유유히 노닐고, 고독한 철학자인 해오라기는 미동도 없이, 가마우지는 따스한 햇볕에 날개를 말리고, 붉은부리갈매기는 물고기를 사냥해서 식사에 열중인데, 고양이 한 마리가 붉은부리갈매기를 잔뜩 노려보다가 바투 다가가더니 흥미를 잃은 듯 등 돌리고 강물만 핥는, 평화로운 겨울 오후의 경안..

사진속일상 2022.01.23

고니와 놀다

날씨가 눅어지고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서 경안천으로 고니를 만나러 갔다. 서하리로 찾아갔는데 청석공원에서 놀던 고니가 이쪽으로 이동해 온 것 같았다. 무리의 규모가 대체로 비슷했다. 추위 탓에 경안천도 많은 부분이 얼었다. 고니가 놀 만한 곳이 흔치 않은데 서하리의 경안천은 조건이 좋다. 한적해서 사람 경계를 안 해도 괜찮고 천도 깊지 않다. 먹이를 얻는 최적의 장소다. 고니 옆에는 오리가 붙어 다닌다. 고니가 캐낸 수초 조각을 얻어먹기 위해서다. 귀찮을 법도 하련만 고니가 오리를 쫓아내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늘 사이좋게 같이 나누어 먹는다. 깃털 색깔이 회색인 고니는 유조(幼鳥)다. 덩치는 어미만큼 자랐지만 어미 따라 나란히 다닌다. 고니들은 느긋하게 돌아다니다가 물속에 부리를 박고 먹이..

사진속일상 2022.01.15

파주에게 / 공광규

파주, 너를 생각하니까 임진강변 군대 간 아들 면회하고 오던 길이 생각나는군 논바닥에서 모이를 줍던 철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나를 비웃듯 철책선을 훌쩍 넘어가 버리던 그러더니 나를 놀리듯 철책선을 훌쩍 넘어오던 새떼들이 새떼들은 파주에서 일산도 와보고 개성도 가보겠지 거기만 가겠어 전라도 경상도를 거쳐 일본과 지나반도까지 가겠지 거기만 가겠어 황해도 평안도를 거쳐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도 가겠지 그러면서 비웃겠지 놀리겠지 저 한심한 바보들 자기 국토에 수십 년 가시 철책을 두르고 있는 바보들 얼마나 아픈지 자기 허리에 가시 철책을 두르고 있어 보라지 이러면서 새떼들은 세계만방에 소문내겠지 한반도에는 바보 정말 바보들이 모여 산다고 파주, 너를 생각하니까 철책선 주변 들판에 철새들이 유난히 많은 이유를..

시읽는기쁨 2022.01.12

경안천에 찾아온 고니

집 앞 경안천에도 고니가 찾아왔다. 대략 스무 마리 정도다. 작년에는 먼 걸음을 해야 만날 수 있었는데, 올해는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여기는 왕래하는 사람이 많고 서식 환경이 좋지 않아 계속 여기서 머물 것 같지는 않다. 사진에 보이는 고니 한 쌍은 연애 중이다. 일행과 떨어진 채 둘이 꼭 붙어서 서로 목을 비비며 애정 표시를 과하게 한다. 내년에는 새끼를 데리고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 먹이를 찾는 청둥오리들이 고니 주위를 맴돈다. 고니나 청둥오리나 물 속 수초를 먹이로 하는데, 고니가 건져 올린 수초 조각을 얻어먹으려는 전략 같다. 목이 짧으니 깊은 물에서는 고니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 청둥오리에 개의치 않고 둘 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염려스러운 건 경안천 물이 그다지 깨끗하지 ..

사진속일상 2022.01.08

팔당에 찾아온 고니

팔당에서 열 달만에 다시 큰고니와 만난다. 지난봄에 시베리아로 가서 번식을 하고 겨울이 되면서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온 고니들이다. 고니는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데 약간 잿빛을 띄는 게 작년에 태어난 유조다. 얘들은 한국의 산천을 새롭게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고니의 평화로운 몸짓을 보다가 하남 당정뜰을 짧게 산책하다. 낮이 되니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며 추위가 풀리는 것 같다. 얼굴을 간지리는 따스한 햇살이 반갑다.

사진속일상 2022.01.03

새 / 정유경

새는 길을 외어 두지 않아요 새는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하늘을 날고 그래서 새가 가는 길은 늘 새 길 - 새 / 정유경 새는 늘 '새' 길을 날아서 이름이 '새'인가 보다. 반면에 더위가 계속된다고 짜증 내고, 매일이 그저 그렇고 그런 날이라고 불평하는 나는 '헌'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게다. 기억의 찌꺼기를 걷어내면 오늘은 얼마나 찬란한 하루인가. 마침 창 밖으로 물까치 한 마리가 짧은 선을 긋고 지나간다. 저 상쾌한 가벼움에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 그 흔적을 바라본다.

시읽는기쁨 2021.07.29

개똥지빠귀도 "덥다 더워"

여름 한낮, 나뭇가지에 개똥지빠귀 한 마리가 입을 벌린 채 힘겹게 앉아 있다. 가까이 다가가도 만사가 귀찮다는 듯 거들떠보지 않는다. 보통 때 같으면 작은 인기척에도 훌쩍 도망갔을 테다. 개똥지빠귀가 내쉬는 가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름 더위가 힘든 것은 새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너무 집안에만 있는 것 같아 일부러 한낮을 골라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돌아올 때는 버스를 탈까 했지만 좀 힘겹더라도 걷는 쪽을 택했다. 돌아와 샤워를 하니 개운하고 좋다. 덥다고 불평하지만 이것이 여름다운 날씨가 아닌가. 미세먼지 없이 맑은 데다 하늘은 본래 색깔대로 파랗다. 거기에 흰 구름의 장난질 치는 모습이 볼 만하다. 이 또한 멋진 계절이 아닌가!

사진속일상 2021.07.27

화가 난 물까치

길을 걷다가 나무에 앉아 있는 물까치 유조를 보았다. 이제 막 둥지에서 나온 듯 날개를 파닥이지만 날지는 못했다. 고개를 들고 지켜보고 있는데 주변에서 물까치 우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새끼를 낳고 길렀을 암수 두 마리가 나에게 보내는 경고 신호임이 틀림없었다. "빨리 지나가지 않을래? 가만 두지 않는다." "그래, 알겠다. 네 새끼 해칠 생각이 없는데 왜 이러냐?" 새끼 때문에 애타는 물까치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 사진 몇 장만 찍고 자리를 떴다. 그런데 그중 한 놈이 나를 따라오며 계속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나무라는 소리가 요란했다. "깍~ 깍~, 더 멀리 안 갈래? 앞으로는 이곳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약 50m는 따라왔으리라. 집요한 녀석이었다. 아마 외곽 경비를 책임지는 수컷이 아니었을까..

사진속일상 2021.07.04

뻐꾸기를 따라간 뒷산

뻐꾸기가 뒷산을 호령하는 계절이다. 이때가 되면 뻐꾸기와 검은등뻐꾸기 노랫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루 종일 집안을 채운다. 뻐꾸기는 자신이 뒷산의 주인이라는 듯 소리도 우렁차다. 오래전부터 검은등뻐꾸기를 만나보고 싶었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오늘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고 뒷산을 오른다. 다행히 검은등뻐꾸기는 먼 곳이 아니라 산길 주변을 맴돌며 노래한다. 내 머리 바로 위에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소리만 들릴 뿐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여름이 되면 나뭇잎이 무성해서 새와 만나는 데 방해가 된다. 새들은 은폐하기 좋겠지만 탐조가는 애간장을 태워야 한다. 들리는 소리를 짐작해 검은등뻐꾸기가 있을 나무를 지목하고 샅샅이 훑어도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중..

사진속일상 2021.06.13

작은 것을 위하여 / 이기철

굴뚝새들은 조그맣게 산다 강아지풀 속이나 탱자나무 숲 속에 살면서도 그들은 즐겁고 물여뀌 잎새 위에서도 그들은 깃을 묻고 잠들 줄 안다 작은 빗방울 일부러 피하지 않고 숯더미 같은 것도 부리로 쪼으며 발톱으로 어루만진다 인가에서 울려오는 차임벨 소리에 놀란 눈을 뜨고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에 가슴은 떨리지만 밤과 느릅나무 잎새와 어둠 속의 별빛을 바라보며 그들은 조용한 화해와 순응의 하룻밤을 새우고 짧은 꿈속에 저들의 생애의 몇 토막 이야기를 묻는다 아카시아꽃을 떨어뜨리고 불어온 바람이 깃털 속에 박히고 박하꽃 피운 바람이 부리 끝에 와 머무는 밤에도 그들의 하루는 어둠 속에서 깨어나 또 다른 날빛을 맞으며 가을로 간다 여름이 아무도 돌봐 주지 않는 들녘 끝에 개비름꽃 한 점 피웠다 지우듯이 가을은 아무도..

시읽는기쁨 2021.06.11

돌아오는 길 / 박두진

비비새가 혼자서 앉아 있었다 마을에서도 숲에서도 멀리 떨어진 논벌로 지나간 전봇줄 위에 혼자서 동그마니 앉아 있었다 한참을 걸어오다 뒤돌아봐도 그때까지 혼자서 앉아 있었다 - 돌아오는 길 / 박두진 '붉은머리오목눈이'를 알게 된 게 불과 몇 달 전이다. 나이 일흔이 되어서야 이름을 불러주게 되다니, 그동안 뭘 하며 살았는지 자책이 되었다. 이 동시에 나오는 '비비새'가 붉은머리오목눈이다. 또는 '뱁새'라고도 한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에 나오는 바로 그 뱁새다. 살펴보니 비비새, 즉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자주 눈에 띈다. 얼굴이 통통한 게 무척 귀엽게 생겼다. 대체로 갈대 덤불 속에서 무리를 지어 지낸다. 그런데 여기 묘사된 비비새는 특이하다. 혼자서 그것도 전봇줄 위에 있는 경..

시읽는기쁨 2021.05.02

문버드

몸무게가 100g 남짓하지만 평생 523,000km를 넘게 날았다. 지구에서 달까지 갔다가 다시 반쯤 돌아오는 거리다. 그래서 별명이 '문버드(Moon Bird)다. 이 새는 붉은가슴도요의 아종인 루파로 발에 찬 플랙에 적힌 이름은 'B95'다. B95는 산꼭대기만큼 높은 상공에서 먼 옛날부터 쓰였던 하늘길을 날아 번식지를 오간다. 매연 2월이면 B95는 남아메리카의 끝 파타고니아에서 캐나다 북극권으로 날아가 번식한 뒤 늦여름에 다시 남쪽으로 돌아온다. 는 20년을 살면서 50만 km를 넘게 비행한 B95라는 한 작은 새에 대한 관찰 기록이다. 이렇게 작고 연약한 생명이 어쩌면 그렇게 강할 수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 절로 경외감이 인다. 얘들은 무엇 때문에 매년 지구의 끝에서 끝까지 긴 여행을 할까? ..

읽고본느낌 2021.04.20

몸무게는 설탕 두 숟갈 / 임복순

설탕 두 숟갈처럼 몸무게가 25그램밖에 나가지 않는 작은 북방사막딱새는 남아프리카에서 북극까지 삼만 킬로미터, 지구 한 바퀴를 난다고 한다. 살다가 가끔 내 몸무게보다 마음의 무게가 몇 백 배 더 무겁고 힘들고 괴로울 때 나는, 설탕 두 숟갈의 몸무게로 지구 한 바퀴를 날고 있을 아주 작은 새 한 마리 떠올리겠다. - 몸무게는 설탕 두 숟갈 / 임복순 언젠가 길을 가다가 건물 옆에 쓰러져 있는 작은 새 한 마리를 보았다. 어딘가 부딪쳐서 잠시 기절한 것 같았다. 다치지 않도록 옆 화단으로 옮길 때 내 손바닥 위에 올려진 새의 무게에 깜짝 놀랐다. 깃털 하나 놓인 듯 전혀 무게감이 없었다. 이렇게 가벼운 생명체도 있구나, 경탄스러웠다. 북방사막딱새는 25그램, 설탕 두 숟갈의 가벼운 몸무게로 거센 바람과 ..

시읽는기쁨 2021.04.12

새의 노래, 새의 눈물

새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새에 관한 책도 이것저것 찾아보게 된다. 이번에 본 책은 이다.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연구관으로 일하는 박진영 선생이 썼다. 어릴 때부터 새를 좋아했고, 그래서 대학도 새를 공부할 수 있는 생물학과로 진학했다는 지은이는 평생을 새와 함께 살아가는 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살아가길 누구나 소망할 것이다. 이해득실을 따지기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지은이 같은 분이 부럽다. 책에는 지은이가 전국 방방곡곡으로 새를 찾아다니며 경험한 얘기가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실제 탐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다. 갯벌에서 도요새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만조 두세 시간 전에 도착해서 기다리라고 말한다. 바닷물에 밀려서 점차 육지 쪽으로 다가오는 도요..

읽고본느낌 2021.04.11

관곡지에서 저어새를 보다

시흥 관곡지에서 처음으로 저어새를 보았다. 저어새는 멸종위기종으로 천연기념물로 보호하는 새다. 한때는 전 세계에서 수백 마리밖에 남지 않아 거의 멸종 단계까지 갔으나, 다행히 지금은 수천 마리대까지 증가했다. 귀한 새를 수도권 저수지에서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관곡지에 찾아온 저어새는 이상하게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원래 저어새는 경계심이 많아 사람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다. 전문 탐조가도 저어새를 관찰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관곡지의 저어새는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어서 너무 놀랐다. 이런 새는 처음 본다. 저어새는 주걱 같이 생긴 부리가 특징이다. 부리를 물속에 넣고 좌우로 저으면서 먹이를 잡는다. 그래서 이름이 저어새다. 재미있게 지은 이름이다. 영어 이름을 찾아보니 'black-fa..

사진속일상 2021.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