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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뒤 경안천이 만든 백조의 호수

눈 내린 다음 날 경안천에 나가 보았다. 그동안 날이 풀어져서 경안천의 얼음이 많이 녹았다. 호수 같은 수면에 고니가 노니는 모습이 북쪽 지방에서 볼 법한 '백조의 호수'를 만들었다. 고니는 한자로 '곡(鵠)'이고, 백조(白鳥)로도 불린다. 우아한 이름과 달리 성격이 거칠고 몸집도 크다. "꿔억 꿔억" 하는 요란한 울음소리도 이미지와는 다르다. 그러나 무리에서 떠나 한둘씩 물 위를 유유히 헤엄 치는 광경은 평화롭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고니는 고니, 큰고니, 혹고니 정도다. 대부분이 큰고니이고 고니나 혹고니는 드물다. 고니와 큰고니의 차이는 덩치가 아니라 부리의 노란색 부분이다. 노란색이 넓게 콧구멍 앞까지 나와 있으면 큰고니다. 사진의 고니는 큰고니다. 고니가 모여 있는 곳은 시끄럽다. 아마 짝을..

사진속일상 2023.01.17

겨울비 내리는 날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에 자다 깨다를 여러 차례 했다. 한겨울 새벽인데도 눈이 아닌 비가 내릴 정도로 날이 눅었다. 비는 낮까지 이어져 오다 그치다를 계속했다. 예보로는 앞으로 이틀 더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한다. 내리는 겨울비를 바라보다가 따끈한 수제비가 먹고 싶어졌다. 아내와 같이 드라이브 겸 하남에 있는 수제비집을 찾아갔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오랜만에 맛집의 맛을 보고 싶었다. 옛날 자주 찾아갔던 안국동의 수제비 맛이 떠올라서였다. 벌써 10여 년이 되었는데 그 뒤로는 제대로 된 수제비를 맛보지 못했다. 잔뜩 흐린 채 안개비가 보얗게 낀 날씨였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먼저 팔당 한강변에 나가 보았다. 고니를 보기 위해서였다. 고니는 70마리 정도가 있었는데 두 무리로 나누어 모래톱에서 쉬고 있었다...

사진속일상 2023.01.14

물빛공원을 걷고 달콤짜장을 먹다

날이 많이 풀어졌다. 오전 10시가 되니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갔다. 아내와 물빛공원에 나가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았다. 포근한 날씨가 사람의 마음도 따스하게 만든다. 내딛는 발걸음이 가볍다. 천천히 산책하려 하지만 누가 앞에서 끄는 듯 자꾸 속도가 붙는다. 저수지는 꽁꽁 얼어 있고 눈이 덮여 있다. 머지않아 남에서 봄바람이 불어오면 고요한 이곳도 생명의 활기로 가득해지리라. 저수지로 물이 흘러들어오는 입구에는 물닭들이 모여 있다. 쇠딱따구리 한 마리가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도 전혀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 딱따구리를 이렇게 바로 옆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우리 동네에 서식하는 새들을 조사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 같다. 저수지를 배경으로 아내와 한 컷을 남겼다. 며칠 전에 산..

사진속일상 2023.01.07

새해 첫날 경안천을 걷다

2023년이 열렸다. 새해 첫날 창밖에서 우짖는 까치들의 노랫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왠지 좋은 일이 여럿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드는 2023년이다. 떡국으로 아침을 먹고 경안천에 나갔다. 자글거리는 겨울 햇살이 따스했다. 산책로의 눈은 어느새 말끔히 사라졌고, 경안천의 얼음도 풀리기 시작했다. 요 며칠 낮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 효과다. 천변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경안천의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즐겼다. 햇빛으로 반짝이는 윤슬에 눈이 부셨다. 이것만 보면 벌써 봄이 온 것 같다. 산 능선과 높이를 맞추며 가지런히 자라는 나무를 보라. 나 혼자 튀어나가지 않고 옆 나무와 보조를 맞추며 사이좋게 나란히 자란다. 머리 위로 비행기가 지나간다. 우리 지역을 통과하는 이 길은 일본과 미주로 오가는 비행기 노선이..

사진속일상 2023.01.01

습지생태공원의 고니

강추위에 바깥의 경안천은 꽁꽁 얼었는데 습지생태공원의 물은 얼지 않았다. 고여 있는 물이라 쉽게 얼 것 같은데 따스한 작용을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고니 30마리 정도가 이곳에 모여들었다. 한 무리는 열심히 먹이 활동을 하고, 일부는 휴식을 취하고 있다. 물닭과 청둥오리도 사이좋게 어울려 있다. 덩치가 작은 물닭은 고니 주변을 맴돌다가 고니가 바닥에서 건져 올린 먹이의 일부를 취하는 것 같다. 공생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고니는 지상에 있을 때보다 비행하는 자태가 훨씬 더 멋지다. 마침 경안천 상류에서 날아온 고니가 내 머리 위를 지나갔다. 잠시 황홀경에 젖었다.

사진속일상 2022.12.29

경안천에 찾아온 재두루미

경안천에 귀한 손님인 재두루미가 찾아왔다. 모두 11마리다. 우리 동네에서 두루미를 볼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횡재를 한 기분이다. 실은 고니를 보러 나갔는데 뜻밖에 재두루미를 만났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두루미를 만난 것은 처음이다. 요사이 날씨가 너무 추워서였나, 철원에 있던 두루미 중 일부가 잠시 남쪽으로 내려온 모양이다. 여기는 두루미가 상주할 여건이 못 된다. 주변에 논이 없으니 먹이인 낙곡을 찾을 수 없을 게다. 아마 며칠 지나면 떠날 게 분명하다. 두루미도 가족 단위 생활을 하는데 새끼는 확실히 구분되어 보인다. 11마리 중 4마리가 날아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며칠 전에는 고니가 수백 마리 모여 있었다는데 오늘은 찾아보기 힘들다. 경안천 물은 추위로 거의 다 얼어붙었다..

사진속일상 2022.12.27

경안천의 고니 가족

바깥바람을 쐴 겸 고니를 보러 경안천에 나갔다. 매산동을 지나는 경안천에서는 10여 마리의 고니 가족을 볼 수 있다. 작년의 고니 가족이 다시 찾아온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매해 비슷한 숫자의 고니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고니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 더 친근감이 든다. 두루미의 빼어난 외모에 비할 바 못 되지만 하는 행동은 너그럽고 우아하다. 내가 천변에 서 있어도 겁내지 않고 도리어 내 쪽으로 다가온다. 그러다가 움직이는 기척을 느끼면 슬며시 방향만 틀뿐이다. 까칠한 성격이 아니다. 고니가 노니는 평화로운 광경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일주일 동안 맹위를 떨치던 추위가 잠시 누그러지고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갔다. 얼지 않은 천의 물길을 따라 오리들도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사그락거리며 눈 밟히..

사진속일상 2022.12.21

겨울 맞는 경안천에 나가다

오랜만에 망원렌즈를 챙겨서 경안천에 나갔다. 혹시 황새나 고니를 볼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겨울철새들을 만나기에는 아직 때가 이르다. 여기서는 대체로 1월은 되어야 한다. 초겨울 추위가 물러가고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 날이었다. 천변길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이 늘었다. 파크골프장에서는 동호인들의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파크골프는 공을 굴려서 홀에 넣는다는 점이 골프와 다르다. 공을 치는 사람들이 화기애애하면서 상당히 재미있어한다. 은근히 관심이 가는 운동이다. 새들이 겨울 햇살을 쬐며 옹기종기 모여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늘 눈에 띄는 놈은 청둥이와 흰뺨검둥이다. 배가 하얗고 머리는 까만 오리가 몇 마리 섞여 있는데 이름은 모르겠다. 돌아오면서 고향순대집에 들러 뜨끈한 순댓국으로 배를 채웠다. 전 같으..

사진속일상 2022.12.08

고향에서 3박4일

어머니를 뵈러 고향에 가서 나흘을 머물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장마철이라 하늘은 잔뜩 흐렸다. 단양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죽령을 지나는 국도를 오랜만에 탔다.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죽령터널이 뚫린 뒤로는 거의 다닐 일이 없는 죽령길이었다. 이렇게 우회하는 것은 마음을 달래고자 해서였다. 죽령을 넘어서 희방폭포에도 들렀다. 희방계곡은 어릴 적 가족의 여름 피서지였다. 다섯 남매에게는 부모님과 함께 하는 일 년에 한 번뿐인 소풍날이었다. 50여 년이 지나 그 자리에 서니 이런저런 상념이 찾아와 어지러웠다. 어머니의 들깨 심는 일을 도우러 내려왔지만 일은 이미 끝나 있었다. 어머니는 부지런하기로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실 분이다. 아흔둘 연세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이 ..

사진속일상 2022.07.16

녹음 속을 걷다

사람의 감정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맑은 날과 흐린 날의 상태는 완연히 다르다. 특히 비라도 오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멜랑콜리해진다. 당기는 음식이 달라지면서 소화 기능도 연동되어 있는 것 같다. 지난 며칠간은 날씨에 따라 희비의 진동폭이 컸다. 흐렸다 개였다를 반복하는 날, 뒷산에 올라 짙은 녹음 속을 걸었다. 습도가 높아 땀을 상당히 흘렸다. 그래도 바람이 시원했고 고개를 들면 환한 녹색의 나뭇잎이 살랑이며 반겼다. 뒷산의 털중나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피어났다. 청딱다구리 암수 한 쌍이 열심히 모이를 찾고 있다. 청딱다구리는 개미를 잘 잡아먹는다는데 소문대로 땅을 열심히 쪼고 있었다. 가까이 있는 나를 별로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이번에는 영상 위주로 뒷산을 기록해 봤다. 재미는 ..

사진속일상 2022.06.18

경안천 으악새

경안천에 나가면 백로와 왜가리는 꼭 만난다. 왜가리보다는 백로가 두세 배는 더 자주 눈에 띈다. 백로 중에서는 쇠백로가 제일 많다. 백로나 왜가리는 몸집이 큰 데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하지 않아 사진 찍기에 좋다. 어제 만난 왜가리는 한참 사진 모델이 되어 주더니 내가 조금씩 접근하자 귀찮다는 듯 건너편으로 날아갔다.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라는 유행가가 있다. 여기서 '으악새'가 무엇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새가 아니라 억새라는 해석이 유력했는데 작사자가 남긴 말이 밝혀지면서 지금은 왜가리로 보는 게 통설이다. 작사자인 박영호 씨가 어느 날 뒷산에 올라갔는데 멀리서 "으악 으악" 하는 새 소리가 들리길래 그냥 으악새라고 부르면서 가사를 썼다고 한다. 이런 소리를 내며 우는 새는 왜가리..

사진속일상 2022.05.31

13년 만에 예봉산에 가다

예봉산은 집에서 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데, 어쩌다 보니 다시 오르는 데 13년이 걸렸다. 왜 그렇게 잊어버렸는지 나도 모르겠다. 10년이 넘으니 예전에 걸었던 산길은 까마득히 멀어져 갔고, 주위를 둘러보지만 처음 찾아온 길인 것 같다. 와부제4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 들머리로 향했다. 날은 맑았지만 시야는 뿌옇게 흐렸다. 중턱을 넘었을 때 시야가 트인 곳이 나왔다. 밑에 팔당역과 팔당대교가 보이고, 강 건너편은 하남시다. 산 정상에는 강우 관측 레이더가 설치되어 있다. 산 아래와 관측소를 연결하는 궤도가 깔려 있어 차량이 운행한다. 인접한 관악산에도 기상 레이더가 있는데 서로 기능이 다른가 보다. 어쨌든 환경 훼손은 피할 수 없다. 북쪽으로 보이는 서울은 흐릿했다. 재미로 셀카를 찍어보았다. 새..

사진속일상 2022.04.04

겨울옷 벗은 강물을 바라보다

요 며칠 동안 감정 소비가 컸다. 지난주에 실시한 대통령 선거 후유증이다. 동기 단톡방에서 논쟁이 일었고, 결국 방에서 나와 버렸다. 더 이상 조롱과 비아냥을 보고 있기 어려웠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문재인 머저리는 노무현처럼 뛰어내리지도 못할 거야." "윤석열 대통령이 좌파 연놈들을 조지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통쾌하다." 몇 차례 자제를 부탁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이 나라를 공산주의로 몰고가려 한 죄과는 받아야 한단다. 무릎 꿇고 반성부터 하란다. 다른 동기들은 침묵하고 나만 반대 목소리를 내다가 그만 뛰쳐나와 버렸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였다. 원래는 수리산 변산아씨를 만나려 했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수난을 겪는다는 보도를 보고 마음을 돌렸다. 대신 넓고 유장한 강물이 보고 싶었다. 날..

사진속일상 2022.03.17

불암산 바위종다리

바위종다리를 만나기 위해 불암산에 올랐다. 산행 들머리는 불암사였다. 불암사(佛岩寺)는 남양주에 위치하고 있어 서울 쪽에 비하면 찾는 사람이 적어 조용하고 주차 공간이 넉넉했다. 낮 기온이 10도까지 올라 겨울 점퍼는 일찍부터 벗어야 했다. 불암사에서 20분 정도 오르면 석천암(石泉庵)을 지난다. 이름으로 볼 때 바위에서 석간수가 솟아나는가 보다. 수직으로 선 너른 바위에는 푸근한 느낌의 미륵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겨울이 지나가는 한낮의 따스한 햇살에 절집의 개 두 마리가 오수중이시다. 가까이 다가가니 귀찮다는 듯 무거운 눈을 겨우 뜨고 쳐다보더니 이내 무시해 버린다. 절집에서는 개들도 순해진다. 불암사에서 정상까지는 1.6km 정도밖에 안 된다. 한 시간 정도면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불암산 등산 길..

사진속일상 2022.03.03

길 떠날 준비하는 고니

경안천의 고니들 숫자가 줄면서 행동도 달라졌다. 일부는 이미 북쪽으로 떠난 것 같다. 남아 있는 고니들도 먹이 활동보다는 움직임을 자제하면서 대기 모드로 들어가 있다. 다수는 사람을 피해 강 맞은편에 몰려 있다. 가만히 있으면서 체력을 비축하는가 보다. 아마 자기들끼리 인간이 모르는 신호를 주고받고 있으리라. 그래서 때가 되면 힘차게 날아올라 북쪽의 번식지로 떠날 것이다. 계절 변화에 연동하여 움직이는 철새들의 루틴이 신기한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이 갖지 못한 초감각이 저들한테는 있는 게 틀림없다. 고니는 일부일처제를 지키면서 가족 단위로 생활을 한다. 여기서 같이 모여서 움직이는 고니들 역시 한 가족이 아닌가 싶다. 고니 다섯 마리가 상류 쪽으로 이동한다. 한 켠에는 민물가마우지가 모여 있..

사진속일상 2022.03.01

신륵사와 흰죽지

수녀님을 만나러 이천에 갔다가 여주를 지나는 길에 신륵사에 잠시 들리다. 신륵사는 '신륵(神勒)' - 신령의 힘으로 굴복시킴 - 이라는 이름과 함께 풍광 좋은 남한강변에 위치한 것도 다른 절과 달리 특이하다. 남한강의 옛날 이름은 여강(驪江)이었다. 강월헌(江月軒)에서 바라보는 여강의 경치는 일품이다. 눈맛이 제일 시원한 곳이 강월헌과 불탑이 있는 이곳이다. 해 지는 이곳에서 속울음 삼키며 하염없이 앉아 있던 때가 있었다. 높이 9.4m의 신륵사다층전탑(神勒寺多層塼塔),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려 시대의 벽돌 탑이라고 한다. 은행나무 관세음보살. 신륵사 경내에는 옛 조포(潮浦) 나루터가 있다. 조포나루는 삼국시대부터 한양의 마포나루와 광나루, 여주 이포나루와 함께 4대 나루 중 하나였다. 이곳에는 통행자의..

사진속일상 2022.02.24

경안천 오포 구간을 걷다

햇볕이 좋아 밖에 나왔더니 낮 기온이 겨우 0도에 걸치는 싸늘한 날씨다. 바람이 약간만 세게 불어도 한기가 느껴진다. 아내와 함께 오포대교를 중심으로 해서 상하류를 오가는 길을 걷다. 경안천 풍경. 이 구간에는 십여 마리의 고니를 언제나 볼 수 있다. 이 가족은 좋은 데 터를 잡은 것 같다. 왜가리는 만사가 귀찮다는 듯 한데 모여서 쉬고 있다. 민물가마우지 흰뺨검둥오리 물닭 강 모래톱 갈대밭에 고라니가 보인다. 이곳 경안천은 주택가에 둘러싸여 있어 산에서 멀다. 얘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내려왔는지 불가사의하다. 여기서 사는 걸까, 아니면 인적이 드문 한밤중을 틈타 산으로 왕래를 하는 걸까. 경안천에 나오면 다양한 생명붙이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다들 하늘로부터 받은 소명대로 조화롭게 살아간다. 종마다 자신..

사진속일상 2022.02.23

전주 가는 길

이번에 전주 가는 길은 서산과 안면도를 지나는 우회로를 택했다. 두 달 전에 개통한 보령해저터널이 궁금해서였다. 원산도와 대천항을 연결하는 보령해저터널은 길이가 6.9km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긴 해저터널이다. 10년의 공사 기간에 5천 억이 투입되었다. 안면도 영목항과 대천항 사이에는 원산도라는 섬이 있는데, 영목항과 원산도는 교량으로, 원산도와 대천항은 해저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서산을 지나면서 시내에 있는 서산호수공원에 들렀다. 노랑부리저어새가 겨울을 나기 위해 이 호수에 찾아왔다는 보도를 봤기 때문이다. 호수공원은 과거에는 농업 용수로 이용되던 저수지였는데 지금은 시민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호수공원에는 철새 탐조대가 있다. 천연기념물 206-2호인 노랑부리저어새가 날아왔다는 안내..

사진속일상 2022.02.12

경안천의 고니와 기러기

이맘 때면 경안천에 고니와 기러기가 모여든다. 여기서 충분히 에너지를 보충한 뒤 한 달 뒤면 북쪽으로 날아간다. 고니와 기러기는 종이 다르지만 함께 모여 지낸다. 한 해의 이동 동선이 서로 비슷한 것 같다. 경안천에서 볼 수 있는 고니와 기러기의 정확한 이름은 큰고니와 큰부리큰기러기다. 그러나 나는 세세히 구별하기보다 그냥 고니, 기러기로 부른다. 그런들 얘들이 날 나무랄 것 같지는 않다. 오전의 먹이 섭취를 마치고 낮이 되니 천 한가운데서 낮잠을 즐기고 있다. 오후가 되면 또 분주해질 것이다. 불침번을 서는 듯 고니 몇 마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의 신호를 보낸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기러기들이 제일 두려워 한다. "너 조금만 더 오면 날아가 버릴 거야." 나는 조심스러워 더 접근하지 못한다. 고..

사진속일상 2022.02.05

철원 두루미 탐조 투어

두루미 탐조 투어가 재개되어 아내와 같이 참가했다. 철원에 있는 DMZ두루미평화타운에서 매일 10시와 14시에 버스로 출발한다. 화요일은 쉬는 날이다. 느긋하게 14시 투어를 염두에 두고 토교저수지 주변을 돌아보다가 찾아갔더니 우리가 접수 1번과 2번이었다. 한 회에 32명으로 인원 제한이 있어 혹시 일찍 마감하면 어쩌나 여겼는데 기우였다. 총 19명이 함께 했다. 타운 앞에는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7종의 두루미 모형이 있다. 각 두루미의 특징을 잘 나타냈다. 왼쪽부터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 시베리아흰두루미, 캐나다두루미, 검은목두루미, 쇠재두루미다. 지난 여러 차례의 경험으로는 철원에서도 두루미를 보는 게 만만치 않았다. 눈에 보이는 두루미가 많지 않았고, 또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

사진속일상 2022.01.25

경안천-칠사산을 걷다

겨울이 되면 아무래도 집 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다른 계절에 비해 걷는 운동량이 1/3은 떨어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몸은 둔해지고 바깥에 나가는 일이 귀찮아진다. 어제는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서 작심하고 경안천에 나갔다. 큰 마음을 먹은 김에 칠사산까지 연계해서 걸었다. 이 코스는 강변과 산길을 함께 걸을 수 있어 좋다. 응달에는 사흘 전에 내린 눈이 아직 남아 있다. 겨울 경안천의 단골인 고니가 청둥오리와 함께 유유히 노닐고, 고독한 철학자인 해오라기는 미동도 없이, 가마우지는 따스한 햇볕에 날개를 말리고, 붉은부리갈매기는 물고기를 사냥해서 식사에 열중인데, 고양이 한 마리가 붉은부리갈매기를 잔뜩 노려보다가 바투 다가가더니 흥미를 잃은 듯 등 돌리고 강물만 핥는, 평화로운 겨울 오후의 경안..

사진속일상 2022.01.23

고니와 놀다

날씨가 눅어지고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서 경안천으로 고니를 만나러 갔다. 서하리로 찾아갔는데 청석공원에서 놀던 고니가 이쪽으로 이동해 온 것 같았다. 무리의 규모가 대체로 비슷했다. 추위 탓에 경안천도 많은 부분이 얼었다. 고니가 놀 만한 곳이 흔치 않은데 서하리의 경안천은 조건이 좋다. 한적해서 사람 경계를 안 해도 괜찮고 천도 깊지 않다. 먹이를 얻는 최적의 장소다. 고니 옆에는 오리가 붙어 다닌다. 고니가 캐낸 수초 조각을 얻어먹기 위해서다. 귀찮을 법도 하련만 고니가 오리를 쫓아내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늘 사이좋게 같이 나누어 먹는다. 깃털 색깔이 회색인 고니는 유조(幼鳥)다. 덩치는 어미만큼 자랐지만 어미 따라 나란히 다닌다. 고니들은 느긋하게 돌아다니다가 물속에 부리를 박고 먹이..

사진속일상 2022.01.15

파주에게 / 공광규

파주, 너를 생각하니까 임진강변 군대 간 아들 면회하고 오던 길이 생각나는군 논바닥에서 모이를 줍던 철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나를 비웃듯 철책선을 훌쩍 넘어가 버리던 그러더니 나를 놀리듯 철책선을 훌쩍 넘어오던 새떼들이 새떼들은 파주에서 일산도 와보고 개성도 가보겠지 거기만 가겠어 전라도 경상도를 거쳐 일본과 지나반도까지 가겠지 거기만 가겠어 황해도 평안도를 거쳐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도 가겠지 그러면서 비웃겠지 놀리겠지 저 한심한 바보들 자기 국토에 수십 년 가시 철책을 두르고 있는 바보들 얼마나 아픈지 자기 허리에 가시 철책을 두르고 있어 보라지 이러면서 새떼들은 세계만방에 소문내겠지 한반도에는 바보 정말 바보들이 모여 산다고 파주, 너를 생각하니까 철책선 주변 들판에 철새들이 유난히 많은 이유를..

시읽는기쁨 2022.01.12

경안천에 찾아온 고니

집 앞 경안천에도 고니가 찾아왔다. 대략 스무 마리 정도다. 작년에는 먼 걸음을 해야 만날 수 있었는데, 올해는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여기는 왕래하는 사람이 많고 서식 환경이 좋지 않아 계속 여기서 머물 것 같지는 않다. 사진에 보이는 고니 한 쌍은 연애 중이다. 일행과 떨어진 채 둘이 꼭 붙어서 서로 목을 비비며 애정 표시를 과하게 한다. 내년에는 새끼를 데리고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 먹이를 찾는 청둥오리들이 고니 주위를 맴돈다. 고니나 청둥오리나 물 속 수초를 먹이로 하는데, 고니가 건져 올린 수초 조각을 얻어먹으려는 전략 같다. 목이 짧으니 깊은 물에서는 고니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 청둥오리에 개의치 않고 둘 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염려스러운 건 경안천 물이 그다지 깨끗하지 ..

사진속일상 2022.01.08

팔당에 찾아온 고니

팔당에서 열 달만에 다시 큰고니와 만난다. 지난봄에 시베리아로 가서 번식을 하고 겨울이 되면서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온 고니들이다. 고니는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데 약간 잿빛을 띄는 게 작년에 태어난 유조다. 얘들은 한국의 산천을 새롭게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고니의 평화로운 몸짓을 보다가 하남 당정뜰을 짧게 산책하다. 낮이 되니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며 추위가 풀리는 것 같다. 얼굴을 간지리는 따스한 햇살이 반갑다.

사진속일상 2022.01.03

새 / 정유경

새는 길을 외어 두지 않아요 새는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하늘을 날고 그래서 새가 가는 길은 늘 새 길 - 새 / 정유경 새는 늘 '새' 길을 날아서 이름이 '새'인가 보다. 반면에 더위가 계속된다고 짜증 내고, 매일이 그저 그렇고 그런 날이라고 불평하는 나는 '헌'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게다. 기억의 찌꺼기를 걷어내면 오늘은 얼마나 찬란한 하루인가. 마침 창 밖으로 물까치 한 마리가 짧은 선을 긋고 지나간다. 저 상쾌한 가벼움에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 그 흔적을 바라본다.

시읽는기쁨 2021.07.29

개똥지빠귀도 "덥다 더워"

여름 한낮, 나뭇가지에 개똥지빠귀 한 마리가 입을 벌린 채 힘겹게 앉아 있다. 가까이 다가가도 만사가 귀찮다는 듯 거들떠보지 않는다. 보통 때 같으면 작은 인기척에도 훌쩍 도망갔을 테다. 개똥지빠귀가 내쉬는 가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름 더위가 힘든 것은 새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너무 집안에만 있는 것 같아 일부러 한낮을 골라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돌아올 때는 버스를 탈까 했지만 좀 힘겹더라도 걷는 쪽을 택했다. 돌아와 샤워를 하니 개운하고 좋다. 덥다고 불평하지만 이것이 여름다운 날씨가 아닌가. 미세먼지 없이 맑은 데다 하늘은 본래 색깔대로 파랗다. 거기에 흰 구름의 장난질 치는 모습이 볼 만하다. 이 또한 멋진 계절이 아닌가!

사진속일상 2021.07.27

화가 난 물까치

길을 걷다가 나무에 앉아 있는 물까치 유조를 보았다. 이제 막 둥지에서 나온 듯 날개를 파닥이지만 날지는 못했다. 고개를 들고 지켜보고 있는데 주변에서 물까치 우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새끼를 낳고 길렀을 암수 두 마리가 나에게 보내는 경고 신호임이 틀림없었다. "빨리 지나가지 않을래? 가만 두지 않는다." "그래, 알겠다. 네 새끼 해칠 생각이 없는데 왜 이러냐?" 새끼 때문에 애타는 물까치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 사진 몇 장만 찍고 자리를 떴다. 그런데 그중 한 놈이 나를 따라오며 계속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나무라는 소리가 요란했다. "깍~ 깍~, 더 멀리 안 갈래? 앞으로는 이곳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약 50m는 따라왔으리라. 집요한 녀석이었다. 아마 외곽 경비를 책임지는 수컷이 아니었을까..

사진속일상 2021.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