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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과 동박새

어머니를 모시고 고흥에 다녀왔다. 고향에서 고흥까지 가는 데만 일곱 시간이 걸리는 긴 길이었다. 동생이 고흥에서 농장을 시작했는데 동백나무가 많다. 꽃이 피었다고 해서 꽃구경 겸 어머니와 함께 내려갔다. 개량 동백이라 수형은 정돈되고 멋진데 꽃은 토종만 못하다. 지금이 한창이니 춘백(春栢)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첫 번째 목표는 동박새를 보는 것이었는데 마지막 날 겨우 소원을 이루었다. 농장 주변의 동백꽃 풍경이다. 동백나무에는 직박구리, 박새, 곤줄박이가 주로 찾아왔다. 그중 열에 하나 동박새가 끼여 있다. 동박새는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카메라를 가져가면 이미 사라지고 없다. 한 곳에 1초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 사흘간 있는 동안 끝날에 겨우 몇 장 사진을 찍었다. 나에게는 그만큼 귀한 사진이다. ..

사진속일상 2021.03.19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작은 책이지만 내용은 알차다. 프랑스의 조류학자인 뒤부아(P. J. Dubois)와 철학자인 루소(E. Rousseau)가 함께 썼다. 새는 1억 5천만 년 전에 공룡에서 생겨난 아주 오래된 생명체다. 저자들은 새를 '작은 철학자'라고 부른다. 가볍고 조용히 살아가는 새들에게서 그들이 가진 철학을 발견한 것이다. 은 새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나 가르침을 열린 마음으로 들으면서 전하고 있다. 이 책에는 오리를 비롯해 22종의 새가 등장한다. 사랑, 번식, 싸움, 절제, 열정 등 각각이 가진 특징이 재미있고 묘사되어 있다. 오리의 털갈이 이클립스(eclipse), 암탉이 모래 목욕을 할 때의 행복, 바위종다리 부부의 유별난 바람기, 새장 밖을 떠날 줄 모르는 카나리아, 거위의 정신적 젖떼기, 도요새의 신비한..

읽고본느낌 2021.03.14

새를 기다리는 사람

새를 사랑하는 김재환 화가의 이태 동안의 탐조 일기다. 책은 사진 대신 화가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되어 있다. 같은 대상이지만 사진보다 그림은 훨씬 더 감성적이고 따스하다. 그래선지 새와 자연을 아끼는 화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올해 들어 경안천에서 황새를 보면서부터 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새를 관찰하고 기록하는지도 궁금해졌다. 책 제목처럼 새를 보는 데는 무엇보다 기다림의 인내가 필요한 것 같다. 어떤 경우에는 종일 같은 장소를 지키기도 한다. 마치 낚시를 하듯 느긋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새를 관찰하는 데도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은 새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책이다. 되도록이면 새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애쓰는 마음이 느껴져서 좋다. ..

읽고본느낌 2021.03.08

봄 맞는 뒷산

두 달 만에 뒷산을 찾다. 명색이 산이랍시고 오랜만에 오르는 산길에 숨이 가쁘다. 이제 날이 풀렸으니 산과 다시 친해져야겠다. 마침 동서가 등산화 두 켤레를 선물해서 그 값을 하기 위해서라도 산길을 부지런히 다녀야겠다고 다짐한다. 산은 봄 기운이 넉넉히 느껴지지만 시각적으로는 별 변화가 없다. 오로지 생강나무가 병아리 색깔의 꽃봉오리을 내고 있다. 이제 폭발하듯 봄꽃들이 다투어 필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산길에서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무 사이를 두리번거린다. 귀를 쫑긋하니 여러 노래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작은 새를 시야에 넣기는 좀체 쉽지 않다. 오늘은 딱따구리를 만나는 걸 목표로 하고 조심스레 탐색한다. 올라가는 길에 쇠박새를 처음 만나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딱따구리가 나무를 파는 소리가 ..

사진속일상 2021.03.06

3월 팔당의 고니와 기러기

하남을 지나다가 보니 팔당대교 아래에 고니와 기러기가 많이 보였다. 급히 차를 세우고 강변으로 나가 보았다. 지난번과 달리 도로에 가까운 모래톱에 주로 모여 있다. 기러기는 대부분 휴식을 취하고 있고, 고니는 활동하는 개체가 많다. 정확히 말하면 큰고니와 큰부리큰기러기로 보인다. 얘네들도 이제 떠날 때가 다가왔다. 나무고아원에서는 노랑지빠귀와 오목눈이를 보았다. 순식간에 움직여서 사진 찍기가 무척 어렵다. 새를 보는 재미에 몸을 많이 움직이고 있다. 새가 아니었으면 그냥 집에서 죽치고 있었을 텐데, 새 모습이아른거려 카메라를 들고 어디든지 나가게 된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와 함께 부수적으로 얻는 즐거움이다.

사진속일상 2021.03.03

2월에 본 새

오늘 도서관에 다녀오면서 직박구리와 물까치를 많이 봤다. 이젠 새소리에도 유심히 귀를 기울인다. 갈 때 본 한 직박구리는 올 때도 같은 자리에서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마 짝을 찾는 애탄 지저귐이 아닌가 싶다. 새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내 눈 앞에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같다. 도감을 뒤적이며 새 이름을 배워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2월에 본 새들을 대충 추려 보았다.

사진속일상 2021.02.28

떠날 준비하는 고니

고니가 떠날 때가 며칠 안 남았다. 11월에 와서 우리나라에서 월동하고 3월 첫 주면 러시아의 번식지로 떠난다. 단체로 이동하는 얘들은 한 장소에 집결하는데 팔당도 그런 집합 장소 중 하나다. 어제 팔당에 나가 보았더니 고니와 기러기가 많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은 휴식하며 체력을 보충하는 듯하다. 자리를 옮기느라 날아가는 모습은 가끔 보인다. 일부는 아직 짝을 못 구했는지 단체 미팅을 하고 있다. 나중에 두 마리가 목을 서로 비비는 걸 보니 마음에 드는 짝을 찾았는가 보다. 고니는 3월 초에 우리나라를 떠나서 중국 경유지를 거쳐 6월에 러시아 번식지에 도착한다. 이동거리는 약 4,000km다. 먼 거리를 잘 다녀오고, 올 겨울에 다시 만나자~

사진속일상 2021.02.27

올림픽공원에서 새를 찾다

서울에 간 길에 짬을 내서 올림픽공원에 들렀다. 넓고 나무가 많으니 새를 볼 수 있을지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집 주변에서 만나는 백로나 황새 같은 큰 새는 잘 보이고 사진 찍기가 쉬웠는데 작은 새는 소리만 들릴 뿐 발견하는 것부터 힘들다. 봤다 해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금방 사라져 버린다. 휴일의 올림픽공원은 산책 나온 사람이 많았다. 기온도 15도를 넘어서며 봄날처럼 따뜻했다. 반팔 차림으로 다니는 젊은이도 자주 보였다. 처음 만난 새가 물까치였다. 파스텔 톤의 깃털 색깔이 예뻤는데 여러 마리가 어울려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 직박구리 ▽ 곤줄박이 ▽ 박새 삼각대에 대포를 걸어놓고 한곳에 집중하는 사진사들을 우연히 만났다. 먹이로 새를 유인하며 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주로 어치가 들락거렸는데 나도 곁..

사진속일상 2021.02.22

왕숙천 산책

손주를 서울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구리에 있는 왕숙천에 들렀다. 함흥에 갔던 이성계가 환궁하면서 머물렀던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이라고 해서 왕숙천(王宿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곳저곳에 이성계와 관련된 지명이 상당히 많다. 우리나라 어디나 하천 주위로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자전거 길도 사통팔달되는 것 같다. 휴일이라 걸으러 나온 사람이 많았지만 워낙 넓다 보니 북적이지는 않았다. 넓은 갈대밭도 있으면서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유심히 새를 살폈으나 그다지 눈에 많이 띄지는 않았다. 새가 깃들기에 좋은 환경은 아닌 것 같다. 왜가리, 흰뺨검둥오리, 물닭, 참새. 우리 마을 경안천에서 다시 황새를 만났다. 이 황새는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게 신기하다. 시베리아로 떠날 때가 차차 다가오..

사진속일상 2021.02.20

날아라 오리

다시 경안천에 나갔다. 며칠 전보다 고니가 두 배는 더 많이 모여 있다. 분주한 걸 보니 이제 길 떠날 채비를 하는가 보다. 고니 사이에 흰뺨검둥오리(?)가 섞여서 놀고 있다. 가끔 날아오르는 건 오리이고 고니는 소리만 지를 뿐 수면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은 오리만 찍었다. 그래, 훨훨 날아라, 오리야! 나란히 나란히~, 얘들은 줄 맞추기의 달인들이다. 다정해 보이다가도 먹이를 앞에 두고는 추호의 양보가 없다. 세상 어디서나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야생에서는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무리를 이루고 살아야 한다. 경쟁 가운데 공생의 원리가 없다면 그 종은 파멸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새들은 제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다른 걸 욕심 내지 않는다. 인간과 다른 점이다. 잠깐의 소동이..

사진속일상 2021.02.10

다시 만난 황새

어제 경안천에 나갔다가 허탕을 치고 오늘 다시 도전을 했다. 혹시 북쪽으로 떠난 게 아닌가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지금껏 본 중에 제일 가까운 거리에 황새가 있었다. 곁에 백로와 왜가리, 청둥오리가 친구를 하고 있었지만 서로 모른 척 무심한 게 얘들의 특징이다. 다른 위치에서 찍어보려고 자리를 옮겼더니 금방 알아채고 날아가 버린다. 미안해~ 다음에 또 만나자~ 황새에 이어 여러 새들의 멋진 비행을 보았다. 어쩜 저렇게 멋질 수가 있는 거지.... #1 #2 #3 #4 #5 #6 #7 #8 #9 두 시간 정도 새와 함께 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날아가는 새를 보고 있으면 찬탄과 함께 가슴이 두근거린다. 신의 피조물 중에 군더더기 없이 날렵한 몸매를 꼽으라면 단연 새다. 저들의 몸은 가벼우면서 공기 저항을 최..

사진속일상 2021.02.08

2월 경안천 풍경

황새를 보려고 경안천에 나갔지만 이번에는 만나지 못했다. 혹여나 이곳 생활을 끝내고 이미 북쪽 나라로 날아가지 않았을까 염려된다. 그렇다면 정말 서운할 것 같다. 주말 휴일이라 사람이 많아서 나오지 않았기를 바란다. 대신에 백로와 왜가리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둥지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낮에 먹이 활동을 할 때는 얘들은 철저히 독립적이다. 몇 시간이고 한 자리에서 가만히 있는 걸 보면 멍때리기의 달인들이다. 고독한 철학자의 고고한 모습도 연상된다. 이 두 마리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함께 움직이고 있다. 짝짓기 사전 단계가 아닐까. 백로가 날아가는 모습을 찍자면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백로보다는 왜가리에 더 정감이 간다. 약간은 슬퍼보이기도 하고.... 백로나 왜가리에 비하면 늘 바삐 움직..

사진속일상 2021.02.07

우리 고장에 찾아온 고니와 황새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고니는 세 종류가 있다. 고니, 큰고니, 흑고니인데 고니와 큰고니는 구분하기가 어렵다. 부리에 있는 노란색 무늬의 크기로 나누는데 명확하지 않다. 큰고니가 제일 많지만 편의상 그냥 고니라도 부른다. 겨울 철새인 고니류는 모두 천연기념물이다. 우리 고장 경안천에 고니의 월동지가 있다. 많이 모여 있을 때는 꽥꽥거리는 소리로 주위가 소란스럽다. 경안천습지생태공원 안팎에 있는 고니를 찍어 보았다. 고니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다른 새들보다 덜한 것 같다. 심지어는 사람한테 가까이 오기도 한다. 고니를 새롭게 바라본 날이었다. 경안천에는 진객인 황새 한 마리도 겨울을 나고 있다. 발에 가락지가 없는 걸로 보아 러시아에서 날아온 걸로 보인다. 황새의 수명은 20년 정도인데 이 새는 어려 ..

사진속일상 2021.01.26

경안천에서 황새를 보다

경안천에 새를 보러 나갔다가 운 좋게 황새를 만났다. 어렸을 때는 동네 앞 논에서 황새를 자주 봤는데 70년대에 들어서며 거의 멸종이 되었다. 20년 전부터 황새 복원 사업이 시작되었고, 2015년부터는 자연 적응 기간을 거쳐 방사를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우리나라에 사는 황새는 100마리가 안 된다. 일부는 겨울을 나기 위해 북쪽 지방에서 날아온다. 내가 본 황새도 발에 가락지가 없는 걸로 봐서 러시아 쪽에서 날아온 겨울 철새로 보인다. 황새는 몸길이가 1m, 몸무게는 4kg가량 되는 큰 새다. 그래서 '크다'는 뜻을 가진 '한'이 변해 황새가 되었다. '큰 수소'를 뜻하는 황소 이름과 비슷하다. 논이나 하천 등 습지에서 살며 잡식성이지만 주로 물고기가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다. 한 마리의 암컷이 한 마..

사진속일상 2021.01.15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 복효근

새들이 겨울 응달에 제 심장만 한 난로를 지핀다 두 마리 서너 마리 때로는 떼로 몰리다 보니 새의 난로는 사뭇 따습다 저 새들이 하는 일이란 너무 깊이 잠들어서 꽃눈 잎눈 만드는 것을 잊거나 두레박질을 게을리 하는 나무를 흔들어 깨우는 일, 너무 추워서 웅크리다가 눈꽃 얼음꽃이 제 꽃인 줄 알고 제 꽃의 향기와 색깔을 잊는 일 없도록 나무들의 잠속에 때맞춰 새소리를 섞어주는 일, 얼어붙은 것들의 이마를 한번씩 콕콕 부리로 건드려주는 일, 고드름 맺힌 나무들의 손목을 한번씩 잡아주는 일, 그래서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천지의 나뭇가지가 대들보며 서까래다 그러니 어디에 상량문을 쓰고 어디에 문패를 걸겠는가 순례지에서 만난 수녀들이 부르는 서로의 세례명처럼 새들은 서로의 소리가 제 둥지다 저 소리의 둥지..

시읽는기쁨 2011.02.27

새들을 날개 위에 올려라 / 임보

새는 날개로 허공을 받치고 떠오를 때 새다 새는 높은 나뭇가지 위에 올라 반짝이는 눈으로 지상을 응시할 때 새다 버려진 먹이를 찾아 인가의 주변을 서성거리거나 먹다 남은 먹이를 얻으려 육식동물의 곁을 어정거리는 놈들은 이미 새가 아니다 철원에 가서 겨울 독수리 떼를 보았는데 인간들이 던져둔 고기에 취해 검은 쉼표들처럼 빈 들판에 날개를 접고 있었다 상원사에 가서 고운 멧새들을 보았는데 방문객들의 손바닥에 올라 스스럼없이 모이를 쪼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새가 아니라 가금(家禽) 언젠가는 닭처럼 날개를 잃게 되리라 간악한 인간의 손들이여 새의 날개를 꺾지 말고 그들을 맑은 날개 위에 올려라 - 새들을 날개 위에 올려라 / 임보 지난 여름, 광릉수목원에서 기르던 늑대가 우리를 탈출했다. 그리고 다음 날 사살되..

시읽는기쁨 2009.10.14

홀딱 벗고

그저께 천마산에 갔을 때 숲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옆의 동행이그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하나는 벙어리뻐꾸기였고, 다른 하나는 검은등뻐꾸기였는데,우리가 보통 '홀딱벗고새'라고 부르는 새의 정식 이름이 검은등뻐꾸기라고 한다. '코 코 코 코'하며 네 음절로 노래하는데 그 소리에 '홀 딱 벗 고'를 대응시키니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새소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들린다고 하니까 다른 말로 대치시켜도 안 될 법은 없지만, 처음 '홀딱벗고'를 연상한 사람의 재치가 고마워서라도 그대로 불러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강원도에서는 아예 검은등뻐꾸기를 홀딱새로 부른다고 한다. 느낌으로는 홀딱새가 훨씬 더 친근감이 든다. 그런데 우리 같은 속인들이야 '홀딱벗고'라는 새소리에 엉큼한 연상을 하지만 스님들은 다른가 ..

길위의단상 2009.05.07

군무 / 도종환

우포늪에서 무리지어 내려앉는 새떼를 본 적이 있다 분홍빛 발갈퀴를 앞으로 뻗으며 물 위에 내리는 그들의 경쾌한 착지를 물방울들이 박수를 튀기며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노을 물든 하늘 한쪽에 점묘를 찍으며 고니떼가 함께 날아오르자 늪 위를 지나가던 바람과 낮은 하늘도 따라 올라가 몇 개의 커다란 곡선을 그리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먹고 사는 일이 멀리서 보는 것과 달라서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눈은 맹금류처럼 핏발 서 있지 않았다 솔개나 올빼미가 뜰 때는 주변의 공기도 팽팽하게 긴장을 하고 하늘도 일순 호흡을 멈추며 피 묻은 부리와 살 깊숙이 파고들어간 날카로운 발톱을 주시하는데 물가의 새들은 맹금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만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살아남고 ..

시읽는기쁨 2009.03.01

중랑천에서 철새를 보다

어느 탐조 모임을 따라가 중랑천에서 철새를 보았다. 유명 철새 도래지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도심에서도 이렇게 겨울 철새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한강이나 그 천변 어디를 가더라도 적어도 열 종류 정도는 볼 수가 있다. 이번에도 청둥오리, 논병아리, 넓적부리, 쇠오리, 고방오리, 흰죽지, 댕기흰죽지, 비오리, 재갈매기 등의 주로 오리류의 철새들을 만났다. 사진에 찍힌 것은 댕기흰죽지 무리들이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망원경으로 보는 새들은 귀엽고 예쁘다. 그들의 모양이나색깔, 행동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새들은 신의 걸작품 가운데 하나다. 오리는 먹이를 잡기 위해 물구나무 서듯 꼬리를 하늘로 치켜세우고 반은 물 속에 잠긴다. 논병아리는 완전히 잠수하는데 10초 ..

사진속일상 2007.01.13

가창오리의 비상

전주에 가는 길에 가창오리의 군무를 보기 위해 저녁 시간에 맞추어 금강에 들렀다. 그동안 여러 차례 금강과 서산 방조제를 찾았지만 한 번도 가창오리떼를 만나지 못했었다. 찾아간 장소가 잘못되었는지 때가 잘못되었는지 이유도 모른 채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선 것이 여러 번이었다. 이번에도 크게 기대는 하지 않고 나포들에 있는 철새관측소가 관찰의 적지라는 정보만 가지고 찾아갔다. 다행히 이번에는 관측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가창오리떼가 모여 있었다. 호수같이 넓은 강 하구에 검은 띠를 이루며 엄청난 숫자의 무리가 쉬고 있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이 정도면 도대체 몇 마리 쯤 되는 건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일부는 무리 위를 저공 비행하며 집단 비상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해가 지고 오후 5시 30분 ..

사진속일상 2007.01.03

집오리는 새다 / 정일근

왜 집오리는 날지 않을까, 기러기목에 속하는 우아하고 튼튼한 날개를 접어 퇴화시키며 저 넓고 푸른 하늘의 자유를 포기한 채 일용할 하루의 양식을 위해 도시의 더러운 시궁창에 거룩한 황금색 부리는 묻는 날지 않는 새, 집오리 시립 도서관의 먼지 쌓인 서가처럼 TV 앞에 침묵하는 우리들처럼 스포츠에 거세당한 이 시대처럼 날지 않는 집오리여, 너는 새다 길들여진 관습과 타성의 질긴 그물을 찢으며 빈 발목을 죄는 불안한 시대의 불안한 생존 사육의 쇠사슬을 풀고, 혁명하라 날아라 집오리여, 새여 달 밝은 우리나라의 가을밤 기역 자 시옷 자로 무리지어 힘차게 날아가는 쇠기러기, 청둥오리떼를 따라 우리 다 함께 무서운 무리의 힘으로 힘차게 날개짓 하며 산맥을 넘어 국경을 넘어 자유의 하늘로 푸른 하늘로 - 집오리는 ..

시읽는기쁨 2006.10.21

새들은 모이를 외면한다

마당과 밭에는 가끔씩 새들이 찾아옵니다. 특히 아침이나 저녁나절에 자주 볼 수 있는데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밖에서 들리는 맑은 새소리는 하루의 시작을 상쾌하게 해줍니다. 찾아오는 새는 대개 딱새와 박새, 산비둘기입니다. 예전에 우리가 클 때는 참새가 제일 많았는데 요사이는 참새를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새들은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부리로 무언가를 쪼아 먹기도 하고, 저희들끼리 장난을 치는지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즐겁게 놀기도 합니다. 오래된 쌀이 한 되 정도 남은게 있었는데 쌀벌레가 생기고 바게미(?)라고 부르는 날벌레들도 자꾸 생겨서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하다가 새들의 모이로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마당 가운데 있는 나무토막 위에다 쌀을 뿌려놓아 봤습니다. 이놈들이 떼로 몰려와 기꺼이 모이를 먹는..

참살이의꿈 2005.09.03

철새는 날아가고

‘천수만 지역 주민들이 관광단지 개발에 반대하는 평화적 시위를 했다. 정부는 이 지역에 복합레저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어제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농민이 대부분인 주민들은 충분한 보상을 해주겠다는 것도 거부하고 철새 도래지인 이곳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이다. 돈 보다는 환경이, 자연과의 공존이 더욱 중요함을 농민들은 보여 주었다.’ 이것은 머리 속으로 상상해 본 신문 기사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천수만 지역 주민들이 철새들을 내쫓는다고 갈대밭에 불을 지르고 폭죽을 터뜨리는 충격적인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환경부에서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인 이곳을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모든 개발이 금지되기 때문에 관광도시와 웰빙특구를 추진 중인 천수만..

길위의단상 2005.05.21

금강에는 철새가 없다

어제 몇이서 금강 하구로 철새를 보러 갔다. 혹시나 가창오리 떼의 저녁 군무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금강에서는 철새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숫자를 셀 수 있을 정도의 오리류들 만이 수면 위에 작은 점으로 떠있었다. 탐조대의 안내 데스크에 물으니 약 30만 마리가 와 있다고 하는데 다들 어디에 숨어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으나 오리 무리의 멋진 비행은 끝내 보지 못했다. 실망한 우리들 머리 위로 예닐곱 마리의 기러기 가족이 북쪽으로 날아갔다. 철새를 본다고 기대에 부풀어 따라나섰던한 사람은 아주 실망한 눈치다. 때를 잘못 선택했기도 있지만 이런 것은 TV를 통해 눈 맛을 버려놓은 탓도있지 않는가 싶다. 우리는화면을 통해 간접적으로 너무나 멋진 광경을 ..

사진속일상 2003.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