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33

은퇴자가 노는 법

단톡방에서 심심치 않게 보는 글이다. 잊을 만하면 누군가 올리는 걸 보면 다들 공감하는 부분이 많은가 보다. 내용은 이렇다. 보편적 대한민국 노인 백수의 노는 법은, 1. 주야장천 배낭에 막걸리 한 병 넣고 청계산에서 북한산으로 휴대폰에 미스트롯 뽕짝 백 곡 깔아 볼륨 맥스로 틀어 놓고 무릎 연골 남아 있을 때까지 심마니 흉내 내며 살아가기. 1. 손주가 좋아 죽겠다고 카톡 프로필까지 손주 사진으로 도배해 놓고 할아버지가 외계인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7살이 될 때까지 보육원장 놀이하기. 1. 허리가 온전한 그날까지 선블록 떡칠하여 전국 골프장 순회하며 나이스 샷에 중독되어 닐니리야 하다가 죽을 때도 호주머니에 티 넣고 화장터 가기. 1. 30만 원 들여 방통대 중국어과에 등록하여 뭔가 좀 남달리 학구적으로..

길위의단상 2021.09.26

수컷의 유효기간

동물 수컷은 나이 들고 힘이 떨어지면 쓸모가 없어진다. 생식 기능이 없고, 사냥도 못 하고, 무리를 지켜주지도 못한다면 수컷의 가치를 어디서 찾겠는가. 반면에 보살핌과 살림이 역할인 암컷은 늙어서도 효용가치가 남아 있다. 최소한 음식을 장만하고 손주를 봐줄 수는 있다. 그래서 암컷의 평균수명이 수컷보다 긴 것은 자연선택적으로 충분히 납득이 된다. 인간만 아니라 다른 동물도 대부분 암컷의 수명이 수컷보다 20% 정도 길다. 백수의 왕자라는 사자의 세계에서 늙은 수사자는 천덕꾸러기다. 힘에 부쳐서 젊은 수사자에게 패하면 무리에서 쫓겨나고 광야를 헤매다가 죽는다. 그나마 암사자가 사냥해 오는 먹이를 받아먹다가 졸지에 혼자가 되면 제 먹이조차 구하지 못한다. 무리의 생존에 방해가 되는 늙은 수사자는 가차 없이 ..

참살이의꿈 2020.08.03

낮술

낮술 맛을 알게 된 건 퇴직하고 난 뒤다. 직장에 다닐 때는 낮술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술은 퇴근한 뒤 저녁에 마시는 거였다. 여러 사람이 모여 왁자지껄한 가운데 직장 얘기를 안주 삼아 스트레스를 푸는 게 대부분이었다. 술맛을 음미하기에 적당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퇴직하고 나니 낮이 제일 한가한 시간이 되었다. 심심하다 보니 반주로 몇 잔 홀짝이게 된다. 집에서 마시는 낮술이 직장 다닐 때와 다른 점은 시간상의 차이와 함께 대작하는 사람의 유무다. 대개 혼자이고 가끔 아내가 앞에 앉기도 한다. 집에서 마시는 낮술은 조용한 가운데 술맛을 느끼면서 취해가는 과정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내 낮술을 방해하는 것은 바깥에 있지 않다. 기분 좋다고 연달아 낮술을 즐기다가는 이내 위..

길위의단상 2020.04.21

심심한 삶

은퇴한 이후 내 삶은 심심하게 되는 것이었다. 보통은 퇴직 이후에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한다. 심심한 삶은 기피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일을 만들지 않고 얼마나 충분히 심심해지느냐가 내 목표였다. 그러니 퇴직 이후의 삶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하루하루 빈둥거리며 놀겠다는데 미래에 대한 염려도 없다. 다행히 연금이 나오니 먹고사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만큼 팔자 좋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심심함이란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삶이다. 관계에서 기쁨을 찾는 게 아니라 홀로 자족하는 즐거움이다. 다른 사람 눈에는 지루해 보이겠지만 심심한 삶은 그리 못된 게 아니다. 나름대로 은근한 행복이 있다. 다만 사람들이 모를 뿐이다. 나는 단순함이 아름다운 삶이라고 믿는다. 노인이 ..

참살이의꿈 2016.08.23

퇴직하는 후배에게 주는 충고

퇴직 시즌이 다가왔다. 교육계는 학기제로 움직이므로 교사는 2월과 8월에 전근과 퇴직이 이루어진다. 내 주변에도 명퇴 신청을 한 사람이 몇 있다. 재수, 삼수까지 한 사람들인데 이번에는 무난히 커트라인 안에 들 것 같다. 정년 전에 그만두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자의로 나오지만 은퇴 후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가 보다. 얼마 전에 만난 후배도 일 없이 어떻게 인생을 재미있게 보낼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새로운 소일거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뭔가를 열심히 배우고 동호회에도 가입해 바쁘게 보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말한다. 지금껏 일에 매여 살았으니 이제는 나를 얽어매는 일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바쁘게 살았으니 게을러질 필요가 있다. 지금껏 재미있는 것만 찾..

참살이의꿈 2016.01.19

일은 언제까지 필요할까

퇴직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 살다가 갑자기 손을 놓게 되었을 때 대부분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을 버거워한다. 어딘가에 소속되고 주어진 일을 해야 편안하게 느끼는 게 습관이 되었다. 설사 일을 구하지 않더라도 규칙적인 일과를 가져야 제대로 사는 거라고 착각을 한다. 일없이 빈둥거린다는 건 뭔가 모자라는 것이라고 여긴다. 정시에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는 게 체질화가 되었다. 그런 사람에게 퇴직 후 자유 시간이란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인 것이다. 그래서 바쁘게 자신을 몰아붙인다. 취미 활동도 거의 전투 수준이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 거다. 이는 산업화된 사회에서 생기는 슬픈 자화상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그저 성..

참살이의꿈 2015.04.15

걱정하지 마

"어떻게 지내셔?" "집에서 빈둥거리며 놀지 뭐." "일산 킨텍스의 건축 박람회 보러 가자." "나가는 것도 귀찮다. 그냥 집에 있는 게 편타." "야, 너무 그러면 폐인 된다. 바깥바람도 쐬고 그래." "알겠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다." "뭣 하고 있어?" "똑같지 뭐. 집에 있어." "답답하지 않냐?" "답답하긴, 이게 편하고 좋은데." "집에만 있으면 생지옥이 따로 없는데, 하여튼 희한타." "......." 최근에 두 친구와 통화한 내용이다. 집에서 할 일 없이 논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긴다. 한 친구는 끔찍하게도 '생지옥'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사업하는 친구인데 그는 지금까지 일 없이 집에서 놀아본 적도 없다. 그런데 닥치지도 않은 것을 두려워한다. 남자가 집에서 빈둥거리면 왜 안 되는 ..

길위의단상 2013.09.03

은퇴 피로증

무슨 일이든 2, 3년이 지나면 고비를 맞는 것 같다. 사랑에만 유효기간이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신선하고 황홀한 것도 일상이 되어 버리면 무미건조해진다. 인간의 뇌는 늘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흥분 호르몬 효과는 길어야 3년이다. 은퇴한지 2년이 훌쩍 넘었다. 나의 은퇴 허니문 기간도 이제 끝나가는 것 같다. 짜증이 자꾸 늘어나는 게 그 증상이다. 삶의 만족도와 행복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권태기가 찾아온 것이다. 걷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전만큼 즐겁지가 않다. 나는 여기에 '은퇴 피로증'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다. 이렇게 되니 최근에는 아내와 마찰도 잦다. 서로 사소한 것으로 반응하고 부딪힌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게 이젠 눈에 거슬린다. 아내의 신경도 날카로워지..

참살이의꿈 2013.07.08

직업병

얼마 전부터 손목과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원인을 추리해보니 책 보는 습관 때문이 아닌가 판단된다. 게으르다 보니 책을 볼 때는 주로 누워서 두 손으로 떠받치고 본다. 팔과 손가락에 큰 힘이 들어가야 하는 자세다. 편한 것만 찾다 보니 팔이 고생을 한다. 그래서 요사이는 배 위에 베개 두 개를 올려놓고 그 위에 책을 놓고 본다. 그래선지 통증이 많이 완화되었다. 게으른 백수의 직업병이다. 또 손가락 중에서는 오른손 둘째 손가락이 제일 아프다. 이 원인도 추리해 보니 너무 자주 마우스를 클릭한 탓인 것 같다. 하루에 서너 시간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보고, 필요한 정보를 찾는데 그 정도 시간이 든다. 그러다 보니 손가락 한 개가 혹사를 당한 모양이다. 업무..

길위의단상 2013.05.17

사람은 왜 일을 하는가?

"다 먹고 살기 위해서지." "돈만 있으면 일 안 하고 놀 텐데." 농담하듯 흔히 내뱉는 이런 말들이 빈말이라는 건 퇴직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유유상종이라고 아무래도 현역에서 떠난 사람들과 자주 만나는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의 고민이 마땅한 일거리에 관한 것이다. 먹고 사는 것과는 별로 연관이 없는 사람들인데도 여전히 일을 찾는다. 여기서 일이란 어딘가에 소속되고 규칙적으로 출퇴근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로또에 당첨되면 사람들은 일을 안 할까? 그래도 대부분은 규칙적인 일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 역시 여유가 생긴다면 일없는 공허를 견디지 못 할 것이다. 평소에 열심히 일 한 사람들이 일의 관성에서 벗어나기는 더 어렵다. 노는..

참살이의꿈 2013.04.22

잠적

B 선배가 잠적했다. 두 달 전 학교에 명퇴 신청서를 낸 뒤부터 연락 두절이다. 풍문으로 들리는 소식에 마음이 아프다. 수업 시간에 학생과 마찰이 있었던 것 같다.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을 나무라는 과정에서 욕설을 한 모양이다. 모욕을 당했다며 학생의 부모가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고, 학교로 공문이 내려와서 그걸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많이 시달린 것 같다. 자랑할 일이 아니라 주변 사람도 쉬쉬하니 저간의 상세한 사정을 모르지만, 선배가 얼마나 모멸감을 느꼈을지는 짐작할 수 있다. 많이 자책도 할 것이다. 수학을 전공한 선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무척 열성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항상 문제를 풀며 교재 연구를 했다.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는다고 젊은 선생들 두세 배는 노력했다. 같이 근무했을 때 보면 ..

길위의단상 2012.08.19

혼자서도 잘 놀아요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새 학년이 되면 담임 선생님께 가정환경조사서를 적어냈다. 그중에서 '취미', '특기', '장래 희망' 같은 걸 적을 때면 항상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특별한 게 없었던 나로서는 그날 기분에 따라 적당한 말로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취미'를 적을 때 제일 많은 써먹은 것은 '독서'였다. 그러나 학생으로서 독서가 취미가 될 수 있느냐는 담임 선생님의 핀잔을 들은 뒤로는 그마저도 마음 놓고 적을 수 없었다. '특기'와 '장래 희망'은 더욱 난감했다. 언젠가는 '특기'도 독서로 써넣고는 실소하기도 했다. 지금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이젠 분명히 답할 수 있다. 만약 특기를 묻는다면 '혼자서도 잘 놀기'라고 당당히 대답하겠다. 젊었을 때는 비사교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이 싫었는데 나이가 들..

참살이의꿈 2012.04.04

퇴직하고 나서 사람들을 만날 때면 십중팔구 이런 질문을 받는다. "무슨 일 하며 지내?" 어떤 사람은 맨 첫 마디에 묻기도 하는데, 대개는 이런 질문이 나오는데 늦어도 30초가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특별한 사람이 있기도 하다. 얼마 전에 만난 친구는 이렇게 물어 나를 놀라게 했다. "요사이는 무슨 책을 읽고 있어?" 사람들은 일을 거의 자신과 동일시한다. 일이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하는 일을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한다. 문제는 일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것이라는 데 있다. 그저 일 속에 파묻혀 산다. 그런 사람에게 일은 진정한 삶으로부터의 도피밖에 되지 않는다. 퇴직 후의 취미생활도 마치 일하듯 전투적으로 한다. 그들은 고독한 시간이 두려운 것이다. 내면의 불안이 더욱 일로 내모..

참살이의꿈 2011.12.22

백수는 백수다

“백수는 백수다.” 아내가 날 놀릴 때 쓰는 말이다. 앞의 백수는 일 없는 ‘백수(白手)’이고, 뒤의 백수는 백 살까지 산다는 ‘백수(百壽)’다. 퇴직하고는 마음 편히 놀고먹는 한량 생활을 하고 있으니 오래 살 거라는 반 비아냥이다. 퇴직을 하고 보니 직장생활의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컸다. 교실에 들어가야 한다는 중압감에 늘 시달렸다.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도살장에 끌려 들어가는 소의 심정이 태반이었다. 이제 거기서 해방되니 마음은 날 듯 가볍다. 스트레스로 인한 과민성대장증상도 사라졌다. 학교 밖에서 교단 붕괴 소식을 들으니 더 착잡하다. 남아 있는 동료들이 겪을 심적 고통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어제도 지인으로부터 마음 아픈 얘기를 들었다. 요사이 아이들은 버릇이나 개념 없는 정도를 따질 단계도 ..

길위의단상 2011.07.02

화백이라 불러다오

교직을 퇴직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 ‘선생’이라고 부른다. 그것이 아마 어느 누구에게나 써도 무난한 호칭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선생이라는 호칭이 별로 달갑지 않다. 40년 가까이 들어왔으니 신물이 나기도 했지만 선생이라는 말에서 잊고 싶은 현장의 기억들이 되살아나 괴롭기 때문이다. 정말로 과거로 돌아가기는 싫다. 그래서 몇몇 친구들에게는 선생 대신 ‘화백’이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화백은 ‘화려한 백수’의 준말이다. 그랬더니 짓궂은 B는 화백이 당치않다며 ‘초백’이라 불러야 옳다고 대꾸했다. 초라한 백수라는 뜻이다. 별로 하는 일 없이 집에 있으니 그가 보기에는 화백이 아니라 초백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B는 ‘아무 하는 일이 없는 화려함’이 있는 줄은 모르는 것 같다. 세상에서 ..

참살이의꿈 2011.06.22

자유와 불안

얼마 전에 어느 보험회사에서 17개국을 대상으로 은퇴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 항목 중에 은퇴라고 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은 자유라는 답이 가장 많았는데 우리나라는 반 이상이 불안이라고 대답해 대조를 이루었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나 중국 같은 나라들도 은퇴라고 하면 자유와 행복, 만족이 우선 연상되었다. 비단 우리나라만 은퇴를 불안과 두려움, 외로움과 지루함 등의 부정적인 개념들과 연결시키고 있었다. 은퇴를 불안과 연관시키는 건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소득 수준이 훨씬 낮은 나라에서도 은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걸 보면 꼭 경제적인 문제만도 아닌 것 같다. 사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은퇴..

참살이의꿈 2011.06.13

633의 법칙

은퇴 이후의 삶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있다. 나에게 ‘은퇴생활백서’라는 책을 선물해준 친구다. 자신의 말로는 이미 10년 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친구가 자신의 은퇴 이후의 계획을 말하며 ‘633의 법칙’을 말해 주었다. 퇴직 이후의 즐거운 생활을 위해 만든 기준이라고 한다. ‘633의 법칙’이란 일 년 중에 집에서 6개월, 시골에서 3개월, 외국에서 3개월을 보내며 살겠다는 계획을 말한다. 집은 친구들과 만나고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도시에 둔다. 집에서는 일년에 6개월 정도만 지낸다. 3개월은 고향이나 시골에서, 또는 국내여행을 하며 보낸다. 나머지 3개월은 외국에서 지낸다. 친구는 외국에서 거주할 숙소를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는 듯하다. 일에서 떠나 인생을 즐기며 살고픈 친구의..

참살이의꿈 2011.04.29

뭘 하고 지내나요

은퇴전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이것이었다. “퇴직하면 무슨 일을 할 계획인가요?”은퇴 후에도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대동소이하다. “뭘 하고 지내나요?” 아무 일 하지 않으려고 일찍 퇴직을 했는데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니 대략 난감이다. 사람들은 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대해 못 미더워한다. 그래, 지금은 큰 소리 치지만 좀더 지내봐라, 남는 시간 못 견딜 걸, 대체로 그런 눈치다. 가끔은 산에 다니고 꽃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그건 일이 아니라 취미라고 한다. 매일 그렇게 보낼 수는 없으니 뭔가 규칙적으로 하는 일이 있어야 된다고 말한다. 일을 통해 먹고살아야 하는 경우라면 어쩔 수 없이 또 일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충분히 여유가 되는 사람도 관성에 의해 일에 매달리는 경우를 본다. 사람들..

참살이의꿈 2011.04.03

2011. 2. 28.

1975. 12. 1. ~ 2011. 2. 28.,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이력의 마지막 날이다. 2월 초에 퇴임인사를 했고 행정 절차도 모두 끝났기 때문에 이미 퇴직 이후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오늘이 공직생활의 종결일이다. 내일부터는 드디어 백수가 된다. 대학 동기들 몇이서 점심 먹으러 나오라는 걸 마다 했다. 왜 그런지 오늘은 그저 단촐하게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낮에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외출을 해서 아내와 함께 날씨에 어울리는 영화를 보고 외식을 했다. 퇴직에 대한 말은 서로 아꼈다. 찬 바람이 불고 금방 비라도 뿌릴 듯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었다. 동기들 홈피에 명퇴를 축하하는 글이 떴다. 짧은 답신을 올렸다. 원래 55세를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꽤 오래 버틴..

길위의단상 2011.02.28

퇴직 스트레스

소화기능이 약해져서 두 주 이상 술과 커피를 끊었다. 신경만 쓰면 생기는 과민성대장증상이 재발했다. 속이 부글거리고 소화가 잘 안 된다. 화장실을 들락거리지만 개운하지가 않다. 집에서 놀고 있는데도 몸무게는 줄어들고 있다. 요사이 이런저런 신경 쓸 일이 많지만 주 원인은 퇴직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의식은 퇴직을 반기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기지만 무의식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아닌 척 한다고 내적 상실감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퇴직이라는 충격파가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인 이상 이 정도의 심리적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며 자위한다. 시간이 지나면 새 생활에 안착할 것이다. 누군가가 사람이 겪는 스트레스를 수치로 나타낸 걸 보았다. 배우자 사망 100 이혼 7..

길위의단상 2011.02.21

빈 책상

사무실에 나가 마지막 짐을 쌌다. 4, 5년마다 한 번씩 이사를 다녔으나 이번은 완전철수다. 짐은 생각보다 가볍다. 텅 빈 책상이 쓸쓸하다. 너무 슬퍼하지 마. 찬 바람이 잠시 스쳐간다. 35년 세월의 문이천천히 닫힌다. 안녕~ 기쁨도, 슬픔도, 미련도, 아쉬움도, 모두에게 안녕~ 사랑하는 당신, 떠나는 나를 축복해 주오. 이제는 가야 할 때, 누구나가 다 그러했듯이.... 누구나가 다 그러하듯이....

사진속일상 2011.02.15

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아롱아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낙화 / 이형기 '이제 35년간의 교직생활을 마감합니다. 스스로 원한 것이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니 아쉽고 허전한 마음 역시 숨길 수 없습니다. 아이들과 웃고 떠들고 싸웠던 시간들, 보람도 있었지만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도 많았습니다. 뒤돌아보니 좋았던 일보다는 후회되고 자책되는 일들이 더 많이 떠오..

시읽는기쁨 2011.02.11

은퇴생활백서

며칠 전에 친구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보내줄 책이 있으니 집 주소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책인가 궁금했는데 다음 날 (어니. J. 젤린스키, 아이즈북)라는 책을 받았다. 이번에 명퇴를 한다고 했더니 마음에 새겨두었던 모양이다. 나는 처세술이나 자기계발서 같은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책은 삶의 기능적인 면만 강조해서 세상적으로 잘 사는 테크닉만 가르쳐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인생을 경박하게 바라보는 그런 관점이 싫다. 그래서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은퇴에 대한 안내서적에는 관심이 없었다. 읽어봐야 뻔한 내용일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이 책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친구가 강권하지 않았다면 책상 한 켠에 밀어놓았을 것이다. 서론이 이렇게 길어진 것은 예상외로 책 내용이 알차다는 것을 강..

읽고본느낌 2011.01.27

알람을 끄다

아침 6시면 단잠을 깨우던 휴대폰의 알람을 OFF 시켰다. 드디어 오늘부터 알람이 필요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밥벌이를 위해 살았던 시간표의 삶에서 떠났다. 아직 공식적으로 끝난 것은 아니지만 남은 기간은 미련 없이 휴가를 내고 쉬기로 했다. 알람을 끄고 넥타이를 벗어던질 날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그날이 결국은 찾아왔다. 일상의 짐을 벗어버린 지금은 홀가분하다. 사람들은 십중팔구 무슨 일을 할 거냐고 묻는데, 너무 자주 들어 이젠 대꾸하기도 지쳤다. 그저 허허 웃기만 한다. 당분간은 아무 일 없이 지낼 것이다. 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먹고 싶을 때 먹고, 걷고 싶을 때 걷는다. 책이 고프면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묻혀 지낸다. 그것 만으로도 행복하다. 짜증 가득한..

길위의단상 2010.12.20

사직서 쓰는 아침 / 전윤호

상기 본인은 일신상의 사정으로 인하여 이처럼 화창한 아침 사직코자 하오니 그간 볶아댄 정을 생각하여 재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머슴도 감정이 있어 걸핏하면 자해를 하고 산 채 잡혀 먹히기 싫은 심정으로 마지막엔 사직서를 쓰는 법 오늘 오후부터는 배가 고프더라도 내 맘대로 떠들고 가고픈 곳으로 가려 하오니 평소처럼 돌대가리 놈이라 생각하시고 뒤통수를 치진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 사직서 쓰는 아침 / 전윤호 드디어 오늘 명퇴원에 도장을 찍었다. 평생을 다닌 직장 그만 두는 게 무척 간단했다. 두 장의 종이에 인적사항 적고 도장을 누르면 그만이었다. 홀가분했다.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던 것이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다. 그리고 뒤통수 맞을 일도 없을 것 같다. 멋지게 사직서를 던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내 결단을..

시읽는기쁨 2010.12.02

떨어지는 낙엽도 피하라

아침에 H가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제대 말년엔 떨어지는 낙엽도 피하란 말도 있듯이 자기관리에 철저함도 필요할 것 같군요. 성향상 안공께서는 알아서 하시겠지만.... 혹시 과학실 실험시 학생안전 주의하시고 절대 음주운전하지 마시고 아침방송에서 "매일 밤 남편과 행복하소서!"라고 외치던 정00도 결국 땡중과의 섹스스캔들로 낙마했듯이 남녀관계는 동서고금 막론하고 모를 일이니 사모님이외는 12월까지 쳐다보지도 마시고 ㅋㅋ... 위의 사항을 참고하시면 인생2모작 진입도 무난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건조한 생활에서 이렇게라도 한 번 웃어보았다. 동료의 말대로 인생사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돌부리가 예고를 하고 발을 거는 것은 아니다. 어느 사람은 명퇴를 앞두고 있다가 음주운전에 적발돼 명퇴 자격을 잃어버린 ..

길위의단상 2010.11.09

나를 찾아가는 여행

은퇴를 대하는 관점이 변한다면 은퇴 후의 삶이 그리 두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도리어 축복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진다는 점을 제일 두려워한다. 또한 사회적 소속이 없어진 뒤의 소외감도 견디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은퇴는 상실이고 고통이다. 그러나 은퇴를 자신의 삶을 찾는 계기로 받아들인다면 은퇴는 새로운 삶의 출발이 된다. 은퇴를 기점으로 삶의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며칠 전에 전 직장의 K, M 두 선배와 우연히 통화를 했다. 두 분은 몇 년 전에 정년퇴임했다. 그분들은 내 계획에 대해 극구 만류를 했다. 끝까지 붙들고 견디라고 했다. 열에 아홉은 그렇게 말린다. 나오면 금방 늙어버린다는 말도 들었다. 선배의 말이 진심 어린 충고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말 그럴..

참살이의꿈 2010.09.18

D-50

아침이 찾아오는 것이 싫다. 출근할 생각을 하면 가슴이 납덩이를 안은 듯 무겁다.이증상은그만 둔다고 결심하고 나서부터 심해졌다. 여기 아이들이나 근무 여건은 좋은 편이다. 그러나 이미 마음을 뺏겼으니 나도 어찌할 수 없다. 평상심을 유지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날짜를 헤아려보니 이제 실제 수업해야 될 날짜가 50일밖에 남지 않았다. D-50! 일말의 아쉬움이 있을 만도 하건만 이상하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에 그만 두고 싶다. 오늘도, 이제 50번이야, 하고 주문을 걸고 있다. 며칠 전에는 L 선생님의 정년 퇴임식이 있었다. 정년까지 교단을 지킨다는 것,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이제 다음은 내 순서다. 나는 퇴임식 같은 것은 안 하고 조용히 사라지기로 마음먹었다. 만약에 퇴..

길위의단상 2010.09.01

조기은퇴의 꿈

사람들이 가진 은퇴에 관한 생각만큼 이율배반적인 것도 없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지겨운 밥벌이에서 벗어나기를 꿈꾼다. 그러나 직장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 또한 은퇴라는 말이다. 명퇴든 정퇴든 일 할 거리를 잃는다는 것은 두렵다. 일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또한 일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 도시 직장인들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퇴직을 결정하고 나니 너무 늦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원래 젊었을 때는 10년 정도 일찍 떠나고 싶었다. 말 그대로 조기은퇴를 꿈꿨다. 그런데 세상살이가 맘대로 되지는 않는다. 어쩌저찌하다 보니 5년 정도 남기고 떠나게 되었다. 다른 직장에 비하면 벌써 정년의 나이를 넘긴 셈이다. 마침 어느 분의 블로그에서 조기은퇴에 대한 글을 읽었다. 이분은 주로 노후에 관계된 경제적 문제에 관해서..

참살이의꿈 2010.04.28

은퇴하면 10년이 젊어진다

스웨덴의 어느대학에서 회사에서 은퇴한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그 연구에 의하면 은퇴하고 난 뒤평균적으로 10년 정도 젊어지고 건강해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상은 프랑스의 전기회사에 근무한 뒤 은퇴한 사람들 1만여 명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정반대여서 흥미롭다. 우리의 인식으로는 은퇴하고 일을 놓게 되면 빨리 늙게 된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다. 일이 없어진 공허감을 이기지 못해 심지어는 병까지 걸리는 경우도 보았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독특한 '일 중독'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번에 전주에 내려가서 친지들을 만난 자리에서 명퇴 문제가 화제로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만류했는데 그 이유가 일이 없어지면 사람 노릇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퇴임을..

길위의단상 2010.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