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화인 / 도종환

샌. 2016. 4. 16. 15:52

비 올 바람이 숲을 훑고 지나가자

마른 아카시아 꽃잎이 하얗게 떨어져 내렸다

오후에는 먼저 온 빗줄기가

노랑붓꽃 꽃잎 위에 후두둑 떨어지고

검은등뻐꾸기는 진종일 울었다

사월에서 오월로 건너오는 동안 내내 아팠다

자식 잃은 많은 이들이 바닷가로 몰려가 쓰러지고

그것을 지켜보던 등대도

그들을 부축하던 이들도 슬피 울었다

슬픔에서 벗어나라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섬 사이를 건너다니던 새들의 울음소리에

찔레꽃도 멍이 들어 하나씩 고개를 떨구고

파도는 손바닥으로 바위를 때리며 슬퍼하였다

잊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

남쪽 바다에서 있던 일을 지켜본 바닷바람이

세상의 모든 숲과 나무와 강물에게 알려준 슬픔이었다

화인처럼 찍혀 평생 남을 아픔이었다

죽어서도 가지고 갈 이별이었다

 

- 화인(火印) / 도종환

 

 

아픈 상처로 남겨진 사월의 그날이 2년 전 오늘이었다. 작년에는 입원해 있었고, 올해도 여러 차례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건 그날의 비극과 무관치 않은지 모른다. 꽃구경을 나가도 심드렁한 이유도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 화인처럼 새겨진 4월의 슬픔을 안고 죄인의 심정으로 보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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