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624

빈곤 사회

얼마 전에 두 가지 조사 결과가 신문에 보도되었다. 하나는 직장인들에게 가장 관심 있는 분야를 물었는데, 재테크가 1위를 차지했다. 두 번째가 건강이고, 세 번째가 가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것은 돈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자본주의 사회이니까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성공의 기준이 돈이고, 돈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에서는 그 구성원들의 선택이란 어쩔 수 없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두 번째 조사 결과였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앞으로 어떤 직업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이었는데, 대상자의 60%가 돈 잘 버는 직업을 고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결과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물신숭배(物神崇拜)에 젖어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젠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돈이 최..

참살이의꿈 2004.12.27

줄이면 얻는다(少則得)

이사를 할 때면 집안에 쌓여있는 물건들에 놀라게 된다. 살면서 무슨 물건을 그렇게 많이 모아 두었는지, 100kg도 안되는 몸뚱어리 하나 살아가는데 꼭 이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한지 새삼 놀랄 수밖에 없다. 장롱을 열어 보아도 들어있는 옷들이 엄청나게 많다. 사치를 부린 것도 아니고, 무슨 사교클럽에 가입한 것도 아닌데 일상에서 입고 다니는 옷들만 해도 꺼내놓고 보면 장난이 아니다. 곁가지들 다 쳐내 버리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너무 많은 물건들을 보면 짧은 인생을 살면서 좀더 간소하고 간단하게 살고 싶은 바람이 절로 일어난다. 올해는 그동안 당연시하며 사용해 오던 침대와 소파와 식탁을 없앴다. 처음에는 이런 것들 없이 불편해서 어떻..

참살이의꿈 2004.12.22

감자 먹는 사람들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다. 어두운 색조로 하루 일을 마치고 가난한 저녁 식탁에 앉은 한 가족을 그리고 있다. 삶의 신고(辛苦)가 잔뜩 묻어있는 그림이다. 고흐 자신이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농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릴려고 했으며, 그래서 겨울 내내 농민의 머리와 손 그리는 연습을 했다고 썼다. 고흐 자신은 이 그림에 굉장히 애착이 갔었는 듯 언젠가는 이 그림이 진정한 농촌 그림으로 평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 문명화된 사람들의 생활방식과는 다른 생활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아마 그것은 가난하지만 소박하고 정직한 생활일 것이다. ......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

참살이의꿈 2004.12.11

내 꿈

겨울비가 내린다. 가늘고 곱게 내린다. 닫힌 창문 사이로 낙숫물 소리가 똑 똑 여리게 들린다. 시골 마을 한가운데서 느끼는 이 계절은 방안의 기온만큼 썰렁하다. 초겨울의 빗소리를 들으며, 존경하는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읽는다. 선생님은 우리 글과 자연을 진정으로 사랑하신 참 교육자였고 시대의 예언자였다. '악마들이 하는 짓을 경고하고, 가엾게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겠다'고 말씀하신 선생님이 가신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 구름이 한 점도 보이지 않는 이런 맑은 날에도 하늘은 그 옛날의 하늘빛이 아니다. 흐릿한 잿빛이 좀 섞인 파란빛이다. 산을 보면 여름과 다름없이 흐릿하고, 먼 산은 잿빛으로 가려져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늘과 땅이 언제나 매연으로 덮여 있고..

참살이의꿈 2004.12.05

익숙한 것과의 결별

IMF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실직이나 파산을 당했다. 한 순간에 찾아온 낯선 환경에 사람들은 절망하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거리로 나섰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 이 말은 그 당시에 유행했던 말이 아니었던가 싶다. 익숙한 것에서 떠난다는 것은 가슴 쓰라린 일이지만 그런 결별이 없이는 새로운 역사가 씌어질 수 없다는 의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인에게 있어 어느 순간 불가항력적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고 그로 인해 많은 것이 변하지만 그것이 한 인간에게 있어 새로운 삶을 열어주는 도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말로 쓰이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은 어떻게 변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만약 내가 사회학자라면 조사, 연구해 보고 싶은 바램도 있다. 그런 외적인 충격이 한 개인..

참살이의꿈 2004.11.30

겨울 준비

오늘이 소설(小雪)이다. 어느새 벌써 겨울에 들어섰다. 곧 첫눈 소식도 찾아올 것이다. 가을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시간이 엄청 빨리 지나간다. 힘들었을 때는 일년이 휙 지나가 버렸으면 하고 바랐지만 이제 한 해의 끝자락이 바로 코 앞에 다가오니 아쉬운 맘이 크다. 예전에 겨울 준비로는 김장과 연탄이었다. 70년대에 서울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 때 몇 식구가 되지 않았는데도 김장을 한 접씩 담근 기억이 난다.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당시에는 김치를 엄청나게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이맘때가 되면 집집마다 서로 어울려 김장을 하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여러 집이 어울려 김장을 할 때는 마당이 좁아서 골목길이 작업장이 되곤 했다. 그때의 시끌벅적하던 겨울 준비가 그립기도 하다. 그리고 부엌 한 켠에다 연탄을 가..

참살이의꿈 2004.11.22

저녁

저녁 어스름이 좋다. 이때는 낮과 어둠의 경계선에 있는 짧은 순간이다. 서산으로 해가 저물면서 사물들은 시시각각 어둠 속에 잠긴다. 낮 동안 색깔을 현란하게 뽐내던 존재들이 이제는 자신의 숨결을 거두고 동일한 회색 톤으로 변해간다. 너와 나의 구별이 없이 똑같이 어둠 속으로 녹아든다. 이때는 돌아감의 시간이고 휴식의 시간이다. 세상의 일들로 소란스러웠던 내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는다. 점점 짙어지는 어둠을 보며 창 앞에 선다. 멀리 앞집에서 아까부터 저녁 연기가 피어오른다. 느릿느릿 흰색 연기가 처음에는 옆으로 퍼져 나가더니 지금은 곧장 위로 올라가며 십자 모양을 만든다. 아마도 김씨가 사랑방에 군불을 넣고 있을 것이다. 처음 터에 자리 잡았을 때 자주 찾아와서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주었는데 지금은 조금 ..

참살이의꿈 2004.11.09

대한민국은 공사중

대한민국은 공사중이다. 도시나 농촌 가리지 않고 어디에나 땅을 파고 산을 뚫고 시멘트 구조물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이젠 깊은 산 속 골짜기까지도 굴삭기가 들어가 길을 내고 터를 닦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조금이라도 경치가 좋은 곳이면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어떤 경우는 공사가 목적이 아니라 마치 건설 장비를 놀리지 않기 위하여 일을 꾸미고 있는 느낌마저 있다. 최근에 읽은 신문에서는 나라의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건설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제일 효과가 있다면서 대규모 공사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설 공사라는 것이 자연을 망치고 아름다움을 깨뜨리게 되니 문제가 있다. 애꿎은 산허리가 잘려나가고 들판이 시멘트로 덮혀진다. 조용하고 평화롭던 시골 마을이 자동..

참살이의꿈 2004.11.02

[펌] 저 황금빛 들녘의 비애

경남 밀양의 가을 들녘을 걸으며 눈이 시리다 못해 충혈이 되도록 안부를 묻는다. 청명한 가을 햇살과 찬 서리를 맞아 속살부터 단맛이 차오르는 얼음골 사과의 표정으로, 그리고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사자평 억새꽃의 이름으로 그대의 안부를 묻고 또 묻는다. 예사롭지 않은 세상, 그대는 정녕 이 가을에 행복하신가. 220일을 넘도록 걷고 걸으며 둘러보아도 세상은 온통 수상하고 수상할 뿐이다. 황금빛 출렁이는 저 들녘의 풍요는 어느새 풍요가 아니라 처절한 결핍이 되었다. 추수의 '감사'가 아니라 농산물 수입개방 문제 등으로 인해 생존권 사수의 '결사'가 되었다. 이따금 참새들이 날아와 벼이삭을 쪼더라도 화를 내는 척하지만 어느새 너털웃음을 터뜨리던 허수아비들의 여유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농자천하지대본'의 ..

참살이의꿈 2004.10.26

가을 들녘

새벽에 무서리가 내리다. 농사를 거두는 손길이 더 바빠진다. 겉으로 보이는 농촌의 가을 들녘은 풍요롭고 평화로워 보인다. 자가용을 타고일별하며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눈요기 감으로 좋은 아름다운 전원 풍경이리라. 올해도 양으로는 풍년이건만 그러나 누구의 얼굴에서도 풍년의 함박웃음은 보이지 않는다. '농사 잘 되었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어렵다. 분명 돌아오는 대답은 '풍년이면 뭐하게?'하는 식의 자조적인 반응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옛날에는 황금 들판을 바라보는 농부의 환한 미소가 있었다. 무엇이 농촌을 이토록 삭막하게 만들었는가? 농민에게도 책임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상대적 빈곤감인가? 이 사회 어디에서나 제 것과 제 몫 챙기기에 미쳐버렸는데 농민들도 마찬가지인가? 추수가 시작되었지만 우리 들..

참살이의꿈 2004.10.03

늙은 호박은 아름답다

올 봄에 앞 밭에다가 호박 10여 포기를 심었다. 호박을 얻는 목적보다는 긴 줄기를 뻗어서 맨 땅을 덮어달라고,그래서 풀이 좀 덜 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심은 것이었다. 거름과 비료를 한두 번 정도 준 외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그런대로 잘 자라주었다. 사람들이지나가면서 호박 참 잘 되었다고 하는 칭찬도 들었다. 올해 어떤 집은 호박이 거의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도 올해 심은 작물 중에서그런대로 만족하는 것이 이 호박이다. 그래서 호박잎도 따서 쪄먹고, 애호박도 눈에 띄는대로 따다가 맛있게 먹고 도시의 이웃에도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때가 지나서 못 딴 호박들은 군데 군데 늙은 호박으로 되어 누워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 모습이 편안하고 평화롭다. 가을의 풍요함이 저 누런 호박을 통해..

참살이의꿈 2004.09.18

200분의 1

올 봄에 목화씨를 우연히 얻게 되었다. 한 웅큼 정도 되었는데 까만 씨에는 하얀 솜털이 붙어있었다. 그 보드라운 촉감이 옛날 고향집 뒤의 목화밭을 떠올리게 했다. 다시 목화를 만날 수 있겠구나 하며 꿈과 기대를 모아 밭에다 씨를 뿌렸다. 이웃 분들도 목화씨를 심었다고 하니까 무척 반가워했다. 나뿐만 아니고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목화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아내게 한다는 것을 그때 확인했다. 길이가 20m 정도 되는 고랑 세 개에다가 한 구멍에 두세 개씩 심었으니까 땅으로 들어간 씨앗만도 200개는 넘을 것 같다. 그러나 땅이 척박해서였는지 근 한 달이 지나서야 잎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얼굴을 내미는 것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싹이 나온 목화는 캐내어서 좀더 거름진 땅으로 옮..

참살이의꿈 2004.09.12

배추를 심다

텃밭에 배추를 심었다. 이미 시들해진 오이와 토마토를 캐내고 거름을 약간 더 넣은 다음에 모종을 심었다. 읍내에서 배추 모종 한 판을 샀는데 120여 포기가 들어있고, 또 옆집에서 주는 모종까지 더해졌으니 약 150포기는 되는 것 같다. 우리 한 집 먹을거리로는 너무 많다는 생각도 들지만 잘 되면 도시의 주변 사람들과도 나누어 먹을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껏 작물을 가꾼 경험으로 볼 때 맛있는 배추로 자라줄 것으로는기대를 하지 않는다. 우선 시간적으로 정성이 모자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내려가서 물 주고 보살피는 것으로는 식물도 사랑 결핍증에 걸리는 것 같아 보인다. 일을 하는데 불현듯 작년의 일이 떠오른다. 작년에는 비가 오는 속에서 낙담한 가운데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배추를 심었다. 아마도 그날 찾..

참살이의꿈 2004.09.05

흔들리니까 사람이다

울지 마라 흔들리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아프게 흔들리는 일이다 영원히 빛나는 별을 꿈꾸지 마라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들판의 꽃들도 흔들리면서 피어나고 나침반의 바늘도 흔들리면서 제 자리를 찾아간다 별이 반짝이는 것도 흔들리기 때문이며 네가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아프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종소리도 자신을 때리며 온 마을로 퍼져 나간다 나무도 흔들리면서 자라난다

참살이의꿈 2004.08.27

후회하면 안 돼!

서울을 떠나 시골로 거처를 옮긴 후배와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후배는 탈서울한지 벌써 5년이 되니 이젠 안정 단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집에 가 보아도 모든 것이 틀이 잡혀 있어 부러울 때가 많다. 나무들도 언제 그렇게 컸는지 처음 심었을 때는 보잘 것이 없었는데 이젠 집을 가릴 정도의 탐스런 나무로 자라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고 멋진 전원 주택이지만 그만큼 가꾸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이 들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후배가 자리잡은 곳은 마석에 있는 전원 주택 단지이다. 20필지 정도의 규모로 업자가 개발해 놓은 것인데 땅을 구입해서 집을 지어 입주했다. 대부분 외지인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단지에 들어가는 것이 원주민들의 텃세나 생소한 환경..

참살이의꿈 2004.08.22

어느 날의 일기

두 차례 소나기가 지나갔다. 이불과 옷들을 잔뜩 널어놓고 외출을 했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오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아뿔싸, 큰 일 났구나. 부리나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누군가가 곱게 개어서 처마 아래에 모아 놓았다. 천둥이 치기 시작하니까이웃 분이 미리 챙겨놓은 것이 틀림없다. 옆집이리라 짐작하고 찾아가 인사를 드리려니 아니라고 한다. 그럼 누구인가? 감사의 말이라도 전해야 할텐데..... 저녁에 내린 소나기는 짧은 시간이지만 어찌나 세차게 퍼붓는지 도랑에는 순간에 불어난 물이 급류를 이루고 마당에는 흙이 패이면서 물고랑이 생겼다. 물길 정리를 하러 우의를 입고 밖에 나갔지만 이내 온 몸이 젖는다. 하늘이 심술을 부리는가 보다. 여기서 생활하면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물이다. 집 뒤의 공사한 ..

참살이의꿈 2004.08.09

마가리의 밤

산속의 밤은 깊어간다. 드문드문 보이던 농가의 불빛도 밤이 깊어가면서 대부분 꺼지고 인공적인 소리와 빛은 거의 다 사라진다. 다만 띄엄띄엄 있는 동네 보안등만이 여기가 사람 사는 마을임을 지켜내려는 듯 외롭게 빛을 뿜고 있다. 이 시간이 되면 완전한 어둠과 침묵이 동네를 감싼다. 도시의 밤에 익숙한 사람에게 이런 밤의 모습은 일견 두렵기까지 하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침묵의 밤은 다정한 친구처럼 다가온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다정했던 친구의 모습으로 말이다. 이런 때는 촛불이 어울린다. 정교한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굳이 전등이 필요하지 않다. 여름밤에 촛불 아래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가족의 모습, 창문에 어린 흐릿한 그림자는 너무나 정겹다. 창문을 열고 누워 있으면 서늘한 바람이 잔잔한 풀벌레..

참살이의꿈 2004.08.03

잔디 깎기

지난 여름과 올 봄 두 번에 걸쳐 잔디를 심었다. 대부분의 작업은 혼자의 힘으로 하지만 잔디를 심을 때는 가족이 도와 주어서 같이 땀을 흘리며 일을 했다. 내가 삽으로 잔디를자르면 아이들이 나르고, 아내가 심고하는 식으로 일을 분담하며 한 것이다. 그 여파로 다리가 약한 아내가 잔디를 심은 뒤에 너무 힘주어 밟은 관계로 몇 달간 고생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도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너무 힘이 들었다고 지금도 불평을 한다. 작년에 그렇게 공들여 심은 잔디였는데 그 뒤로는 전혀 돌보지 않아서 크는둥 마는둥 하더니 금년에 들어서는 비료도 주고 물도 주기적으로 뿌려 주었더니 쑥쑥 잘 자라 주었다. 길이가 20cm도 넘게 자란 것이다. 그러니 이미 깎아주어야 할 시기가 훨씬 지나 버렸는데 이제야 시간이 나서 며칠 ..

참살이의꿈 2004.07.24

장마의 끝

장마가 끝났다는데 아직 하늘은 흐리다. 가끔 햇살이 보이다가도 이내 구름으로 덮이고 짧게 비가 뿌리기도 한다. 그래도 장마가 끝났음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다. 이번 장마는 막바지에 폭우를 쏟아붓더니 여러 곳에 비 피해를 주고 물러났다. 이곳에 오는 날은 얼마나 비가 세차게 내리던지 운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도로는 흙탕물로 흘러넘치고 숨가쁘게 움직이는 브러쉬로도 차창의 빗물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퍼붓더니 언제 그랬냐느듯 순간에 잦아들었다. 다행히 터에 피해는 없었다. 아마 작년같았으면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로 또 한번 고생했을 것이다. 그동안 땅이 다져지고 풀이 덮혀서 흙쓸림이 훨씬 줄어들었다. 그러고 보면 그간에 땅도 몸살을 몹시 한 것 같다. 중장비가 들어와 끊고 파헤치고 했으니 땅..

참살이의꿈 2004.07.19

제초제는 싫어요

여름이 되니 풀이 엄청나게 빨리 자란다. 보통 잡초라고 부르는 것인데 터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그다지 많은 종류는 아니고 대략 예닐곱 종류쯤 되는 것 같다. 그 중에서 이름을 아는 것은 질경이와 비름, 두 종류뿐이다. 아마도 예쁜 꽃을 피우는 화초였다면 어떻게든 그 이름을 알아보았을 것인데 아무 쓸모없다고 여기는 잡초 신세라서 이름조차 불러주지 않으니 그 풀들에게는 미안한 생각도 든다. 그래서 여름이 되면서부터는 터에 내려가서 하는 주된 일이 풀을 뽑는 것이다. 그것도 집 주변의 풀을 뽑기만도 벅차다. 좀 떨어진 빈터에는 온갖 풀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신나게 자라고 있다. 키가 큰 것은 가끔씩 뽑아주지만 바닥에 기면서 자라는 것들은 손을 댈 엄두도 못 낸다. 저 놈들이 게으른 주인을 만나 이만큼이나 생..

참살이의꿈 2004.07.14

텃밭

집 앞에 작은 텃밭이 있다. 읍내에서 사오거나 또는 이웃에서 준 모종이나 씨를 심은 것인데 조금씩 심다보니 숫자는 많지 않지만 종류는 꽤 된다. 가지, 오이, 고추, 상추, 토마토, 방울토마토, 옥수수, 호박, 머위, 딸기, 쑥갓, 더덕, 열무, 들깨, 미나리 등등.... 그런데 텃밭 가꾸기는 아내의 몫이다. 서로가 할 일을 일부러 나눈 것은 아니고, 나는 주로 집 주변 정리 같은 힘쓰는 일을 맡다보니 작물 재배에는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관심도 멀어지고 밭에 무엇이 열렸다고 감탄하며 외치는 아내의 소리를 듣고서야 쳐다보게 된다. 아내는 심고 가꾸고, 그래서 채소가 쑥쑥 자라나 열매가 맺히고 하는 걸 신기하다며 굉장히 좋아한다. 그런 부지런함 덕분에 터에 내려가면 싱싱한 채소를 맛나게 먹는..

참살이의꿈 2004.06.30

모든 것이 꿈이었다

옆의 동료가 가평에다 자신의 전원생활을 위한 터를 구했다. 폐농가가 포함된 땅인데 은행나무, 전나무 등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너무 좋다고, 며칠 전에 등기까지 나왔다고 말하는 목소리에는 잔뜩 기쁨과 설레임이 들어 있었다. 그 말을 들으니 불현듯 수년 전의 내 경험이 떠올랐다. 터와 처음 만났을 때 한 마디로 뿅하고 갔기 때문이다. 지금의 동료와 마찬가지로 머릿 속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미래의 꿈으로 가슴이 벅찼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만남도 마찬가지이리라. 처음 만났을 때 쇠가 자석에 끌리듯 관심이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러 번 만나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관계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을 보통 인연이라고 얘기한다.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정말 이 사..

참살이의꿈 2004.06.22

배수로 작업

터의 뒤쪽에 작은 배수로가 있는데 비만 오면 흙이 쓸려 내려가서 성가시게 한다. 시멘트블록 50개를 사다가 한 줄로 쌓았다. 시멘트블록을 나르랴, 줄 맞추어 쌓으랴, 안 그래도 서툰 노동인데 혼자서 하는 작업이라 거의 하루가 걸린다. 줄도 삐툴삐툴, 높낮이도 들쭉날쭉, 다른 사람이 본다면 허허 하며 웃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마음은 뿌듯하다. 사람을 사서 할려니 요사이 인건비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돈보다도 더 소중한 것은 내 땀의 흔적을 보게 되는 보람일 것이다. 노동을 하는 것이 고단하기는 하지만 땀이 정신적 카타르시스 작용을 하는 것을 새롭게 경험한다. 육체적 노동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복잡한 세상사는 잊어버리게 된다. 내 일을 하면서 명상의 효과까지 덤으로 받고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그러..

참살이의꿈 2004.05.31

목화싹이 나오다

우리 처음 만난 곳도 목화밭이라네 우리 처음 사랑한 곳도 목화밭이라네 목화밭 목화밭..... 그 옛날 목화밭 목화밭........ 고향에 내려갔을 때 어머님이 목화씨를 구해 주셔서 세 고랑에 씨를 뿌린 것이 두 주전이었는데 드디어 싹이 돋아났다. 사진에 보이는 것이 흙을 뚫고 나온 목화의 싹이다. 우리 주위에서 사라진 것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 중의 하나가 목화밭이다. 하사와 병장이 노래한 목화밭을 이젠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어릴 때 우리 집 뒤에는 목화밭이 있었다.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희미하지만, 가을이면 하얀 솜 가득한 목화밭 풍경이며, 그리고 목화의 열매였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는지 따서 먹으면 달콤했던 맛의 느낌도 떠오른다. 또 목화 솜을 수확해서 마당에서 할머니가 흰 실을 뽑아내던 광경도 ..

참살이의꿈 2004.05.24

반가운 손님

빈 터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작년에 흙을 들여와깔아놓은 터에 봄이 되니 하나 둘씩 풀들이 나기 시작한다. 흙 속에 들어있던 씨들이었는가,아니면 바람을 타고 날아왔는가, 맨 땅이 초록 옷을 입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잡초라고 부른다. 사실 이름을 모르는 풀들도 많다. 그러나 그 중에는낯 익은 꽃을 피우고 미소짓는 것들도 있다. 대부분은 꽃이 아주 작아 허리를 굽히고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다. 척박한 땅에 터를 잡고 생명의 노래를 부르는 저것들이 귀엽고 반갑다.

참살이의꿈 2004.05.16

웰빙 유감

점심 식사 자리에서 마시는 물이 화제가 되었다. "서울 부자들은 새벽에 뜬 한라산 약수를 비행기로 공수해 와서 아침 식사를 하며 마신다고 해." "몸에 좋다고 바다의 심해수를 사다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그러니까 웰빙을 실천하자면 돈이 많아야 한다니까." 작년부터 불기 시작한 웰빙 바람이 식을 줄을 모른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듣고 보게되는 웰빙이란 무엇인가? 웰빙의 시초가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웰빙 바람은 변질되어 뭔가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것이 자본주의의 생리라지만, 웰빙도 몸과 건강에 대한 환상을 키우며 상품 판매와 소비에 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덩달아 매스컴이 부추기는 얼짱, 몸짱 신드롬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상의 바닥에는 우리 ..

참살이의꿈 2004.05.12

마가리의 선물

마가리에서 만난친구가있다. 만난지는 채 3년이 못되지만 지금은 어떤 사람보다도 더욱 소중한 친구이다. 만나게 된 계기도 재미있는데 하여튼 이 친구는 마가리가 나에게 준 귀한 선물 중의 하나이다. 그동안 메일을 많이도 주고 받았다. 지금은 뜸하지만 그간 오고간 메일이 4백통 가까이 되니 적은 양은 아니다. 그렇게 서로 통하는 얘기가 많았다는 뜻일 것이다.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이 메일이 나에게는 좋은 추억이며 자랑이다. 지금도 클릭해서 읽어보면 옛 생각이 나면서 힘을 얻게 된다. 이 친구는 나와는 성격이 정반대이다. 나는 내성적이지만 친구는 적극적이고 외향적이며 늘 에너지로 넘친다. 그의 곁에 있으면 내면에서 분출하는 기라고 할까 에너지라고 할까 뭔가가 꿈틀거리는 생기로 가득해진다. 의기소침해 있다가도 ..

참살이의꿈 2004.05.02

새 식구

터에 새 식구가 많이 늘어났다. 4월 들어서 주말마다 터에 내려가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심은 나무는 다음과 같다. 배롱나무 1, 살구나무 1, 라일락 1, 산수유 1, 사철나무 40 모과나무 1, 자작나무 10, 회양목 50 벚나무 1, 단풍나무 2, 오가피 10, 회양목 10, 연산홍 30 그런데 나무를 고르는 데서부터 어설프게 보였는가 보다. 나무를 배달해 온 분이 나무 모양을 보더니 혀를 끌끌 찬다. 수목전시장에서는 잘 몰랐는데 심어놓고 보니 몇 주는 수형이 마음에 안 든다. 특히 배롱나무가 심하다. 원줄기에서 갈라진 가지가 완전히 불균형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선택했어야 할 나무라는 생각이 드니 우리 마당에서나마 잘 자라 주었으면 좋겠다. ..

참살이의꿈 2004.04.20

나무를 심다

산림조합에서 직영하는 나무 전시장에 다시 들러 보았다. 3월 중순에갔을 때보다구경나온 사람들이 훨씬 적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무 심기를 마친 것 같았다. 그리고 작은 읍내의 길거리에서 임시로 열렸던 나무 시장도 벌써 사라졌다. 오늘이 식목일이건만 실제 나무 심는 시기는더 빨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벌써 대부분의 묘목이나 나무들이 잎과 꽃을 피우고 있었다. 담당자 말로는 4월 중순까지는 괜찮다고 하지만 늦어질수록 나무의 몸살은 더 커질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당에 심을 나무의 구체적인 밑그림도 없이 갔기에 이 나무 저 나무 구경하다가 눈에 띄는 것으로 몇 그루를 구입했다. 울타리 대용으로 쓸 사철나무 40주. 베롱나무, 살구나무, 라일락, 산수유 각 1주. 울타리로는 쥐똥나무를 예상했었지만 막상 가서..

참살이의꿈 2004.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