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624

시장 사람과 마트형 인간

시장과 마트야말로 우리 시대를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일 것입니다. 재래시장이 사라지면서 대형 마트로 대체되는 현상은 도시화와 개인주의화 되는 우리 문명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외형적인 변화는 당연히 인간 생활을 변화시키고 의식을 지배하게 됩니다. 어느 분의 글에서 사람을 시장 사람과 마트형 인간으로 나눈 것에 공감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과거와 현대의 인간상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물건과 물건이 거래되는 장소가 시장이지만 그곳에는 인간의 체취가 묻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장터는 물건이 모이는 장소라기보다는 사람이 모이는, 특히 어른들에게는 사람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물건을 사고팔 때의 흥정이 그렇고,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축제 마당과 닮았습니다. 예를 들어 우시장에서 소를..

참살이의꿈 2007.03.14

참행복

얼마 전에 세계의 10개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도를 비교한 결과가 나왔다. 예상대로 북구에 있는 도시의행복도는 높았고, 서울은 꼴찌였다.국가별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도 우리나라는 늘 뒤쪽에 처져 있다. 대한민국과 행복은 아직까지는 영 인연이 없는가 보다. 참고로 작년에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이 발표한 행복지수에서 178개국 중 1위를 차지한 나라는 국내총생산(GDP)이 2900달러에 불과한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였다. 이름도 생소한 이 나라는 국민소득으로만 따지만 전세계 233개국에서 207위로 거의 꼴찌에 가까운 나라다. 행복도를 조사하는 기관에 따라 순위는 들쑥날쑥하지만 공통적으로 빈곤한 나라의 행복지수가 높게 나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조사에서 10위까지의 순서는 바..

참살이의꿈 2007.02.01

소식(小食)의 결심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새로운 목표를 세우거나 특별한 결심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올해는 우연히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되었다.연초의 어느 날이었는데 TV에서 반식(半食)을 통한 다이어트 강의를 들은 것이 계기였다. 내 자신이 다이어트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 강의를 통해 내 식사 습관을 고쳐야 되겠다고 느낀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삼복(三福)을 타고났다는 말을자주 듣는다. 예부터 쾌식(快食), 쾌변(快便), 쾌면(快眠)을 삼쾌(三快) 또는 삼복이라고 불렀다. 쉬운 말로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나는 타고난 행운아이다.아내는 변비와 불면증으로 심하게 고생하는데 옆에서 지켜보기에 무척 안스럽지만솔직히 그 심정을 헤아리지는 못한다. 내가 그 고통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기 때..

참살이의꿈 2007.01.25

짐을 정리하다

터에 내려가서 짐을 정리했습니다. 내외가 서로 안과 밖에서 말없이 일을 했지요. 예상 외로 일은 쉽게 끝났습니다. 살림살이가 그렇게 단촐했던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해서 어디 하나에 눈을 두지 못했습니다. 눈길 닿는 모든 것에 내 꿈과 땀과 눈물이 들어있으니까요.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옛 기억들이 마구 쏟아져나올 것 같았습니다. 지금 돌이키면 많은 기억들 중에서도 힘들고 어려운 것들만 떠오를 게 틀림없습니다. 이웃 아줌마가 찾아와서 "허전하겠네요"라며 말을 건넵니다.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리고 비 오는 날도 있고, 길을 걷다보면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듯 우리 인생길에도 영고성쇄의 부침이 반복됩니다. 다만 사람마다 주기와 진폭이 다를 뿐이지요. 그러니 일이 뜻대로 잘 풀린다고 지..

참살이의꿈 2007.01.19

아미쉬의 용서

K형! 새해 인사도 변변히 드리지 못했군요. 형에게는 왠지 진부한 새해 인사가 어울릴 것 같지 않네요. 여전히 잘 지내시겠지요? 미국에 있는 아미쉬 공동체를 요즈음 새롭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형은 그 종교적 공동체에 대하여 전에 별로 탐탁치 않게 말한 적이 있었지만요. 형이 그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지금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러나 공동체의 수명이 길어야 30년이라고 말을 하는데 그래도 아미쉬 공동체는 근 30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어떤 평가를 해 주어야 할 것 같아요. 그들은 미국이라는 자본주의의 중심지에서 가장 반문명적이고 반자본주의적 삶을 살고 있습니다. 현대 문명(전기, 전화, 자동차, TV)을 거부하는 그들은 겉모습만 보아도 구별이 됩니다. 그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

참살이의꿈 2007.01.09

원하지 않으면 부족하지 않다

연말이 될 수록 삶이 공허하고 허전하게 느껴지는 것은 채워지지 않은 바람이나 기대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해 동안 애쓰고 노력한 만큼 이루어지지 못하고 채워지지 않으니 불만족이 생기고 사는 게 힘들게 느껴지는 거지요. 거기에는 늘 욕심이라는 마음이 관계되어 있습니다. 욕(慾)은 생명체가 생존 번식하기 위하여 하늘이 주신 것이지만, 인간의 경우는 지능과 더불어 욕망이 고도로 진화 발전하여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욕망의 포로가 되어 버렸습니다. 동물의 기본적인 생존 욕망은 결코 그들을 불행으로 이끌지는 않습니다. 동물 욕망은 단순하고 자기 한계를 갖고 있어 자연 생태계와 조화를 이룹니다. 그에 비해 인간의 욕망은 쉼 없이 팽창하며 지배와 정복을 통해 욕망을 달성하려 합니다. 그 끝없는 자기 증식은 암..

참살이의꿈 2006.12.21

길을 잃어야 새로운 풍경을 만난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무언가를 상실한다는 것은 고통이며 아픔이다. 그러나, 길을 잃지 않으면 낯선 풍경을 만나지 못한다. 무언가를 떠나보내지 않으면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내꿈이었고 내 모든 것이었던 너! 나는 이제 너에게 미련없이 안녕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길 위의, 낯 설고 새로운 풍경과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참살이의꿈 2006.12.03

터의 새 임자가 결정되다

터의 임자는 제일 가까이에 있었다. 땅이나 집 임자는 따로 정해져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여러 사람들이 찾아와 보고 인연을 맺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가까운 이웃이 임자로 결정되었다. 이 분들은 우리가 처음시작할 때부터지금까지 어떻게 지냈는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다. 내 가슴 속에 들어있는 사연이 너무나 많아 지금은 아무 생각도 말도 나오지 않는다. 기쁨이나 슬픔이 한도를 넘으면 그것은 더 이상 기쁨이나 슬픔이 되지 못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한참 시간이 지나야 찬찬히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결정이 잘 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도 훗날이 되어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수 년간은 내 인생에서 거대한 쓰나미가 마음터와 생활을 뒤흔들어 놓았던 시기였다. 그 한 매듭이 이제 지어졌다.... 지금은..

참살이의꿈 2006.11.27

푸른 광장을 꿈꾸는 사람들

최인훈의 ‘광장’ 서문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이 땅 위에 사람들이 살기 비롯한 것도 오래 되거니와, 앞으로도 사람은 오래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살아가는 누구나, 이 세상을 살면서 무언가 저마다 짐작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 짐작이 얼마쯤 뚜렷한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때도 있다. 사람은 초목이나 짐승과는 달라서, 이 짐작이라는 것을 나면서 몸에 지니고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에 저편에서 가르쳐주고, 제가 깨달아간다는 것이 삶의 어려움이다. 그런데 그 삶의 짐작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고, 혼자 힘으로 깨닫기는, 혼자서 태어나기가 어려운 만큼이나 어려운 시대라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허둥지둥하게 된다. 짐작이 안 가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참살이의꿈 2006.11.09

우리 현실과 희망의 대안

교양강좌의 마지막 시간은 고려대 강수돌 선생님의 ‘우리 현실과 희망의 대안’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들었다. 강 선생님은 시골 마을에서 생태적 삶을 몸으로 실천하고 계시는 분이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돈의 학문 대신 삶의 학문을, 죽은 이론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실천을 추구하시는 분이다. 그래선지 강의 내용이 살아서 감명 깊게 전달되었다. 특히 그분의 온화한 말투, 평화스런 얼굴은 그분의 실제 삶이 어떠한지를 다른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생생하게 전해졌다. 강의 내용을정리해 보았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체제란 어떤 것이며, 그 체제 하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가정과 학교, 직장으로 나누어서 진단해 본다. 자본주의란 쉽게 말해 돈 놓고 돈 따먹는 경쟁의 체제다. ..

참살이의꿈 2006.10.27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

암 투병중인 친구와 통화를 했습니다. 어느 날 불현듯 암 선고를 받고 지금은 직장도 그만 두고 통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수술도 어렵다고 합니다. 그의 고통을 헤아리기 어려운 나는 전화 통화하기도 미안합니다. 그런데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가 예상외로 밝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명절 다음 날 친구들 몇이서 근교에 놀러갔다 왔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중병에 걸린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나 같으면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리고 숨었을 것입니다. 평소에 낙관적이고 밝은 성격의 친구다워서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도리어 친구는 내 처지를 걱정해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해 보지 못한 경험을 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야.” 한계 상황에 처한 친구가 아무 것도 아닌 일의 나를 위로해 주었습..

참살이의꿈 2006.10.10

쓸쓸하고 허전한

가을이 쓸쓸하다지만 터의 가을은 더욱 쓸쓸하고 허전하다. 일을 해도 신명이 나지 않는 것은 이미 마음이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가을이야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느낌이 이렇게 달라지는 것은내 마음이 변한 탓이리라. 마치 영혼이 떠난 육체처럼 터는 낯설게 누워있다. 이곳에 들어온지 7년 째, 내 인생에서 새로운 길을 걸어가며 세상이 주는 온갖 희노애락을 다 맛보았다. 지난 40여 년의 삶을 하나로 농축시키더라도 이 7년 간의 농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동안 잃은 것도 많았고 배운 것도 많았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에 한 발을 내디딘 순간 화들짝 알아 버렸다. 놀란 개구리는 흠찟 놀라 다시 발을 들여 놓는다. 잠시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그리고 ..

참살이의꿈 2006.09.18

깃털처럼 살기

마음공부란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아가는 공부입니다. 자신을 얽어매는 집착과 애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공부이지요. 잘 산다는 것은 제대로 자신을 알아가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종교를 갖고, 수도생활을 하는 목적이 여기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공부를 멀리 특별한 장소에 가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 여기가 바로 그런 수행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어느 분의 글에서 본 내용인데, 이분은 자신의 마음공부를 ‘깃털처럼 살기’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이분은 이걸 수첩에 적어두고 적어도 하루에 두서너 개씩은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

참살이의꿈 2006.09.12

반달과 반딧불이

반달이 떠있는 밤이다. 전깃불을 끄니 달빛이 살아나 방안으로 스며든다. 달빛에 온몸이 젖도록 자리를 잡고 눕는다. 창문 한 구석에 달이 걸려있다. 맑은 밤하늘에 떠있는 달은 밝지만 바로 쳐다보아도 눈부시지 않다. 같은 태양빛이건만 달에 머물다 온 빛은 달의 마술에라도 걸린 듯 은은하고 요염하다. 오늘 밤은 달도 무척 외롭게 보인다. 달은 무엇이 그리워서 저렇게 남의 빛을 빌려서까지 자신을 환하게 불 밝히고 있을까? 달이 서산으로 질 때까지 잠을 들지 못하다. 이곳에서의 생활도 이젠 안녕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방안으로 반딧불이 한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선지 방충망에 붙어 계속 깜박거린다. 그러나 나가는 길 찾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들어오기는 쉽지만 나가기는..

참살이의꿈 2006.09.04

다시 그리는 나의 꿈

외딴 산기슭 조용한 곳에 백여 평 정도 되는 땅을 얻고 싶습니다. 경치는 중요하지 않지만, 반드시 양지바르고 배수가 잘 되는 땅이어야 합니다. 사람 사는 동네에서는 적당히 떨어져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호기를 부리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지만 많은 비용을 들여서야 내 성격으로는 감당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주위에는 여러 가지 과일나무와 꽃나무들을 심겠습니다. 마당에는 황토를 깔고 한 귀퉁이에는 조그마한 텃밭을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 평 남짓 되는 흙집을 내 손으로 직접 지어보겠습니다. 이번에 짓는 집은 친환경적인 소재만 사용할 것입니다. 말 그대로 생태적인 삶을 실천하며 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측간 역시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 것입니다. 사람에서 나온 것이 땅으로 들어가고 다시 ..

참살이의꿈 2006.08.19

재미있는 라디오

여기는 일부러 TV를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인터넷도 되지 않습니다. TV를 안 보고 인터넷을 안 해도 별 아쉬움을 못 느끼니 다행히 저는 아직 문명에 덜 중독이 된 모양입니다. 대신에 세상과의 통로는 라디오입니다. 라디오는 하루에 두세 시간 정도 듣는 편인데, 다이얼은 MBC FM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아침에는 ‘여성시대’를 가끔 듣고, 저녁에는 8시에 시작되는 ‘재미있는 라디오’와 9시 뉴스를 듣습니다. 그 시간이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거나, 먹고 난 뒤의 휴식시간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낮의 열기도 식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거실에 누워 라디오를 듣는 재미가 무척 쏠쏠합니다. TV는 눈을 뜨고 집중해야 하지만 라디오는 눈을 감아야 도리어 제격입니다. 비슷한 정보를 전달받을 때 라디오가 훨씬..

참살이의꿈 2006.08.18

혼자 있는 즐거움

이곳에 내려와 혼자 생활한지 일주일째입니다. 혼자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우선 불편하지 않느냐고 걱정합니다.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상이 남자가 하기에 귀찮고 힘들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내 한 몸 살아가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은 사실 그다지 힘들지도 귀찮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주부가 하는 일과는 비교가 될 수가 없지요. 그것도 어쩌다가 하는 일이니까요. 사람들이 걱정해 주는 말에 그냥 괜찮다고 답해주지만 사실 내 마음은 얼마나 좋고 흡족한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좋은 마음을 드러내놓고 자랑할 수는 없지요. 내가 여기서 즐거운 이유는 일상적인 삶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누구의 간섭도 없이 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습니다. 출근시간을 알리는 벨소리도 없고, 싫어도 해야만..

참살이의꿈 2006.08.10

제대로 밥 먹기

‘작은 것이 아름답다’ 8월호에 황대권 님의 ‘션찮은 반찬으로 맛있게 밥 먹기’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습니다. 새겨들을 만한 내용이어서 글을 부분적으로 발췌, 요약해 봅니다. 음식점에서 정식을 시키면 한 상 가득 찬과 요리가 나오고 밥은 가장 나중에 나온다. 밥을 먹을 때쯤이면 이미 과식 상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인들은 밥 먹으러 가자 해 놓고는 밥은 조금 먹고 찬만 잔뜩 먹고 오는 게 당연한 일처럼 되어 버렸다. 이것이 육식은 일상화되면서 생긴 식습관이다. 고기에 야채를 곁들여 먹으면 곡기가 없어도 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이미 고기 맛에 길들여진 몸의 요구를 어쩌지 못한다. 그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상당한 결심과 의지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찬이 아니라 밥 위주로 식사를 하는 것이다. 반찬은 그저 그런..

참살이의꿈 2006.08.10

올 여름 피서법

올 여름은 유난히 덥습니다. 수치상으로 나타난 기온은 예년에 비해 특별히 높다고 할 수 없는데 체감으로 느껴지는 더위는 훨씬 더합니다. 이곳은 한여름에도 선풍기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서늘하지만 올해는 다릅니다. 소나기 한 줄기 없이 십여 일째 땡볕 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선풍기를 틀어놓고 지내야 했습니다. 이런 때는 바깥일도 아침 해 뜨기 전 잠깐 뿐입니다. 저녁에는 해가 떨어지더라도 남은 열기 때문에 밖에 나가기가 싫습니다. 반면에 빨래를 말리는 쨍쨍 햇볕은 고맙습니다. 아침에 빨래를 널어두면 햇볕에 익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저녁에 바짝 마른 빨래를 만지면 뽀송뽀송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덩달아 방안의 이불까지 꺼내 햇볕 구경을 시켜줍니다. 태양의 맑은 에너지..

참살이의꿈 2006.08.10

아름다운 저녁 시간

늦은 감자를 캐고 옥수수의 첫 수확을 했다. 감자고 옥수수고 올해는 결실이 영 시원찮다. 수 년 중 최악의 결과다. 이것은 주인장의 마음 탓이고, 중간 관리를 제대로 안해 준 탓이다. 초라한 수확물을 들여다보니 주인을 잘못 만나 제대로 영글지도 못했는가 싶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얘들아, 잘 돌봐주지 못해서 미안해!" 두 주 전에 밭고랑의 풀을 뽑고,뽑은 풀로 고랑을 덮어 두었다. 다른 풀들이 자라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풀들이 다시 뿌리를 내리며 살아나고 있다. 지난 번 막바지 장맛비에 힘을 얻었는가 보다. 그래서 다시 뒤집어 주어야 했다. 다행히 아직은 뿌리가 깊지 않아 땅에서 잘 떨어진다. 어찌 보면 잔인한 노릇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작물 가꾸기란 인간의 필요에..

참살이의꿈 2006.08.07

고난은 신의 선물

터에 자리를 잡은 뒤부터 세 개의 쓰나미를 연속으로 맞고 있습니다. 왜 불행이 찾아올 때는 한꺼번에 몰려서 올까요? 안 되는 집은 죽어라 해도 일이 안 풀리고, 잘 되는 집은 모든 일이 쉽게 뜻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이상하게 생각되는 그런 현상은 확률적으로 볼 때는 당연하다고 합니다. 동전을 수백 회 던지면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이 정확히 50%가 되지만, 실제 나오는 경우는 ‘앞뒤앞뒤앞뒤...’가 아니라 ‘앞앞앞뒤뒤앞뒤뒤앞앞....’ 이런 식이라는 거지요. 그러니 불행에 너무 속 상해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가 될까요? 개인이건, 민족이건, 국가건 역사는 고난의 연속입니다. 묘하게도 착한 사람이나 집단은 힘들게 살게 되고, 악한 사람이나 집단은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하는 게 세상사이기도 합니다. 뭔가 의미 ..

참살이의꿈 2006.07.29

회심

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7 년 전 겨울이었다. 그때는 40대 중반부터 시작된 정신적 방황이 절정에 달했었다. 왜 사는가에 대한 의문,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질문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제 2의 사춘기라고 불러도 좋을 시기였다. 가톨릭 신자였지만 종교의 틀에서는 안식을 얻지 못했고, 머릿속은 온갖 상념들로 복잡했다. 그해 겨울, 세상을 떠나 그저 푹 쉬고 싶은 마음밖에는 없었다. 산 속 절이든 어디든 인적이 끊긴 곳에 들어가 있고 싶었다. 마침 아내가 S 수녀원의 피정을 소개해 주었다. 개인 피정이어서 아무런 간섭 없이 지낼 수 있다는 말에 책 몇 권을 싸들고 집을 나섰다. 주소만 들고 물어 물어 찾아간 곳이 지금의 터였다. 그런데 피정 기간 중에 예상치 않게 종교적 회심의 체험을 하게 되..

참살이의꿈 2006.07.15

독백

내가있는 이곳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내가 왜 여기 있지? 마치 혈관 속에 모래가 들어간 듯 마음은 온통 서걱거린다. 내가 터를 정하고, 손수 집을 짓고, 땅과 혼이 들어간 곳인데, 사방을 둘러보면 내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없는데 마치 못 올 곳에 온 것처럼 서먹서먹하다. 밖은 장맛비가 내리는 저녁이다. 철수를 생각하니 더욱 허전해진다. 그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나에게는 내 전부를 걸었던 이상의 포기와 마찬가지다. 선전포고한 전쟁에서 항복의 의미이기도 하다. 단지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두려운 것이다. 슬픔에 빠지게 하는감정에는 집착이 들어있다. 애착, 비애, 고독, 쓸쓸함과 같은 진한 감정들도 마찬가지다. 인정하기 싫지만 버린다고 하면서 또 다른 집착에 매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상승할 때보다..

참살이의꿈 2006.07.03

밤꽃 향기에 젖다

여기는 밤꽃 향기에 젖어 있습니다. 산에서도 들에서도 어디서나 밤나무를 볼 수 있고, 마을의 정자나무도 밤나무입니다. 밤꽃 향기는 산과 들을 채우고는 넘쳐 흘러 마을로 밀려옵니다. 마을은 온통 야릇한 밤꽃 향기의 바다에 잠깁니다. 거실에 가만 누워 있으면 그 눅눅한 향기에 마취가 될 정도입니다. 향기를 무게로 잴 수 있다면 밤꽃 향기는 쇳덩이 마냥 무거운 것 같습니다. 그 향기에 취한 사람들의 발걸음 또한 무거워집니다. 그것은 뭔가 호기심을 일으키면서 무언가가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듯한 냄새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오전에 밭일을 하러 나갔지만 1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들어와 버렸습니다. 머리가몽롱해져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생겼습니다. 방에 들어와 피곤한 몸을 누이며 ..

참살이의꿈 2006.06.25

종교 신념 환자

이 시대의 가장 반종교적인 과학자라면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아닐까 싶다. 우리들에게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생물학자인데, 종교와 종교적 신념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며 과학적 사고로 세상을 보기를 강조하는 과학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종교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그러나 새겨들어야 할 부분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종교인들이면 그의 비판에 한 번쯤 귀를 기울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종교 교리를 정신 바이러스에 비유하고, 종교인을 잘못된 신념 환자들이라고 부른다. 그에게 있어 종교 활동이란 정신적 사기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미숙한 정신이며, 아직도 청동기 시대를 살고 있는 어리석은 정신이다. 그는 9. 11 테러로 상..

참살이의꿈 2006.06.22

뱀은 여전히 두렵다

풀을 베러 현관을 나서는데 바로 앞에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여기가 뱀이 많긴 하지만 한낮에 이렇게 집 앞에까지 나와있는 것은 처음이다. 갑자기 뱀을 맞닥뜨려서 깜짝 놀랐다. 뱀도 놀랐는지 처음에는 꼼짝도 안 하다가 소리를 지르니 스르르 도망을 간다. 길이가 거의 1 m나 되는 큰 뱀이다. 뒤따라가며 위협을 해서 쫓아내었다. 뱀은 생긴 모양 자체가 징그럽고 섬뜩하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괜히 기분이 좋지 않고 적대적인 느낌이 든다. 특히 길을 가다가 갑자기 발 밑에서 뱀을 만나게 되면 공포심은 극에 달한다. 아마 우리들 유전자에는 뱀에 대한 경계를 위해 공포심이 각인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선천적 본능이 아닐 수도 있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밭일을 하러 나간 여자가 있었다. 아이를 ..

참살이의꿈 2006.06.19

우리 텃밭

올해 텃밭 크기는 작년의 반으로 줄였습니다. 노동력을 줄이기 위해서였지만 그러나 일이 반으로 수월해지지는 않았습니다. 내려가면 해야 할 일이 언제나 잔뜩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어떨 때는 귀찮고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밭에 나가 땀을 흘리며 흙을 만지고 풀을 뽑고 작물을 거두는 기쁨은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습니다. 일 하는 동안은 세상의 시름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무엇엔가 몰두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 중에서도 흙을 만지고 생명을 돌보는 일만큼 가치 있는 일도 없다고 봅니다. 밭에 나가 땀을 흘리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 집니다. 다른 노동과는 또 다릅니다. 땅에서 나오는 생명의 기운이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앞의 네 줄은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두 주일 간격으로 ..

참살이의꿈 2006.06.11

희망의 언어 - 碩果不食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님이 정년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공개 강의를 했습니다. 그 강의 주제가 '희망의 언어 - 석과불식(碩果不食)'이었습니다. 직접 가 보지는 못했고 저는 인터넷으로 중계된 강의를 들었습니다. 석과불식은 주역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주역 64 괘 중제일 절망적인 괘가 박괘(剝卦)인데 그 박괘를 설명하는 말이 석과불식인가 봅니다. 해석하면 '씨과실은 먹지 않는다' 또는 '씨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라는 뜻이랍니다. 현재의 우리 상황이 박괘에 비유될 정도로 어려운 것으로 선생님은 보는 듯 합니다. 막무가내로 진행되는 세계화의 물결,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해 재편되는 새로운 세계 질서가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버리면 안되는데, 그 상징적인 구절이 바로 석과불식입니다. 그 ..

참살이의꿈 2006.06.09

개구리 소리

잠에서 깰 때마다 쉼 없이 개구리 소리가 들려옵니다. 한밤중이 되면 소리가 잦아드는 법인데 아직도 짝을 구하지 못했는지 숫 개구리들의 구애의 노래 소리는 밤을 새우고 있습니다. 개구리 소리를 노래라고 보든 울음이라고 보든 그것은 인간의 감정이입일 뿐이겠지요. 개구리는 그저 본능에 따라 울음주머니를 울릴 뿐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후손을 남기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릅니다. 사정이 어떠하든 우렁찬 개구리의 합창 소리는 봄을 대표하는 소리입니다. 저렇게 큰 소리가 결코 시끄럽게 들리지 않습니다. 개구리 소리는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한 봄의 교향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개구리 소리에 이끌려 논둑길을 논으로 나갔습니다. 모내기를 한 논마다 개구리들로 가득 찼는지 전후좌우 사방에서 들려오는 개구..

참살이의꿈 2006.05.22

뒷산 산책

두 주일 간격으로 옥수수를 심기로 했는데 어제 두 번째 고랑에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6월 말까지 계속 심을 계획입니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연속으로 옥수수 맛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그리고 부족한 채소 모종도 더 심고 부추씨도 뿌렸습니다. 꽃씨를 뿌린 꽃밭에서는 새싹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씨앗 모양이 다르듯 잎의 모양도 나오는 때도 다 각각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반 정도는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지난 주에 다시 심었던 고구마 모종은 다행히 착근이 잘 되어 싱싱하게 싹을 세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내와 같이 뒷산에 올랐습니다. 꼭 1년 만입니다. 작년에는 땅 일에 휘둘리느라 거의 여가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여유를 찾으려 합니다. 좀더 생활을 즐기도록 하겠습니다. 산길을 걷다..

참살이의꿈 2006.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