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642

요즘 사람들은 욕망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인간의 욕망이란 게 뭔지 잘 모르게 된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한 가치관의 붕괴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더 이상 기름진 것을 즐기려 하지 않고, 집에 많은 물건을 쌓아두는 것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사람들의 소비 관념이 달라지면서 이제껏 유행했던 많은 상품들이 더 이상 팔리지 않게 되자 기업들이 망하는 사태가 속출했습니다. 상품시장 붕괴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나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동안 인기를 누려왔던 소비를 부추기는 직업군들이 사라졌습니다. 소비시장 붕괴는 생산 패러다임이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인간 욕망의 변화는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효과를 발휘하여 소비와 생산에 관한 근본적인 ..

참살이의꿈 2006.01.15

벌새의 우화

'초원에 불이 났다. 짐승들은 일제히 도망쳤다. 그런데 벌새 한 마리가 겁도 없이 진화에 나섰다.벌새는 그 조그만 입으로 강물을 물어 와 초원을 태우는 불길 위에 끼얹었다. 밑도 끝도 없이 그 짓을 했다. 큰 짐승들, 가령 사자나 코끼리나 얼룩말 같은 짐승들이 벌새를 비웃었다. "야, 그런다고 네가 불길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니?" 그러자 벌새가 대답했다. "불길을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그건 해보기 전에는 모르지. 나로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어느 글에서 본 우화입니다. 이 우화에 나오는 불길은 지구 환경의 위기를 비유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짐승들도 불이 난 사실을 알지만 벌새와 다른 점은 그들은 방관자였다는 것입니다. 모두 도망쳤습니다. 아마 강을 건너면 다른 초원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었..

참살이의꿈 2005.12.13

[펌] 두 생명공학자의 명암

지금 우리나라에는 전 국민이 나서서 전대미문의 물질적·정신적 지지를 아낌없이 퍼붓는 황우석 박사와, 농민 집회의 와중에 목숨을 잃고 그렇게 거리에서 죽어간 앞선 수많은 이름들 중의 하나로 잊혀져 가는 전용철씨라는 두 사람의 ‘생명 공학자’들이 있다. 돌아간 전용철씨를 ‘생명 공학자’라고 부른 의도는 아이러니를 노린 것이 아니다. 인간이 죽은 물질로서 자연이 아니라 식물과 동물 등의 생명체를 자신의 기호와 욕망에 적절한 형태로 변형시켜 전유하기 시작한 것이 농업의 기원이라면, 농업도 첨단 장비와 초고급 인력이 투입되는 현대의 그것과 다름없는 ‘가장 오래된 생명공학’이라고 볼 필요가 있다. 농업은 결코 씨앗이라는 투입물에다 물리적 노동을 투하하여 일정 배수의 산출을 끌어내는 기계적인 행위가 아니다. 하늘과 ..

참살이의꿈 2005.12.08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여러 해 전에 한 친구가 베트남 한인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 친구와 많은 메일을 주고받았는데 한 번은 본인이 교지에 쓴 글이라며 보내주었습니다. 제목이 '아침에'라는 글인데 시를 중간중간에 넣으며 주변의 몇 사람들 인상을 그린 것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편지보관함에서 다시 읽어보는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창 밖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문득 잠이 깹니다. 커튼이 드리워진 창 위로 야자수 잎의 그림자가 물결처럼 일렁거립니다. "아. 오늘은 일요일이지" 그냥 누운 채로 움직이지 않고 모처럼의 여유를 느껴봅니다. 「이곳이 어딜까? 물론 베트남이지.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모르지. 꿈일지도 몰라. 내가 지금 베트남에 있다는 것이.. 꿈을 깨면 아마 잠실의 아파트에서 예전처럼..

참살이의꿈 2005.12.08

지구의 밤

이것은 인공위성에서 지구의 밤을 찍은사진입니다. 잘 사는 나라들의 밤은 인공 불빛으로 환하고, 그렇지 않은 나라들은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깜깜합니다. 북아메리카와 서유럽,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이 눈에 띄게 환합니다. 부와 문명의 편중 현상이 한 눈에 드러나는 사진입니다. 아마 백 년 전이었다면 전 지구가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캄캄했을 것입니다. 지구 40여억 년의 역사동안 내내 그랬을 겁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전기 문명이 시작되면서 지구의 밤 풍경은 이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백 년 뒤에는 대륙 전체가 온통 빛으로 덮일 것 같습니다. 지구의 이름이 그때는 광구(光球)로 바뀔지 모릅니다. 이 사진은 한반도 주변을 찍은 것입니다. 남한과 북한이 극단적으로 대비되어 보입니다. 북쪽에..

참살이의꿈 2005.12.03

철수

밭의 비닐을 걷어내서 정리하고, 모아두었던 콩대를 불태우고, 추위에 약한 나무 줄기에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보일러와 수도 배관에 있던 물을 모두 빼냈습니다. 이것으로 올 한 해 터에서의 생활이 마감되었습니다. 특히 보일러와 수도관의 물을 빼내는 작업은 콤프레셔를 사용해서 인부 두 명이 거의 세 시간 가까이 일해야 할 정도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내년 봄에 다시 물을 채워주는 것까지 해서26만 원이 들었습니다. 지난 두 해는 내려가 있지 않더라도 보일러을 겨울 내내 가동시키며 동파를 방지했지만 마당에 노출되어 있는 수도 폄프는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보온을 해도 두 번 다 얼어터져서 봄에는 고생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아예 물을 모두 빼버린 것입니다. 이번 겨울은 완전히 터에서 철수를 하려..

참살이의꿈 2005.11.27

김장을 하다

김장을 했습니다. 터에 심은 배추가 백 포기가 넘어서 지지난 주에 반 정도를 하고 이번에 남아있던 배추를 마저 뽑아 김장을 끝냈습니다. 올해는 온전히 직접 가꾼 배추, 무, 파로 김장을 했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접이나 되는 배추로 김장을 담근 것도 아마 처음일 것입니다. 미리 했던 것은 이웃에 많이 나누어 주었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것이 김치냉장고로 하나 가득 찼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올해 산 김치냉장고 덕을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날씨 때문에 아직 김장을 못했을 것입니다. 또 어느 해는 땅에 묻었다가 늦게 꺼내는 바람에 너무 시어져서 제 맛을 즐기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김치냉장고는 그럴 걱정이 없어서 좋습니다. 문명의 이기의 편리함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작년까지는 고향에 내려가 ..

참살이의꿈 2005.11.15

빈 들

가을걷이가 끝난 농촌의 빈 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쓸쓸합니다. 논과 밭의 결실을 끝냈는데도 농촌에는 무기력과 한숨만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만나는 농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지치고 피곤한 모습입니다. 이것은 작금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런 농업 정책이 세계화의 흐름에서 어쩔 수 없다고도 하고, 이 방법이 농민을 위하는 유일한 거라면서 나라 살림 맡은 이들은 달래지만 살림살이는 해가 갈수록 어려워져만 갑니다. 몸이 부서져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우 받고 살 수 있는 세상은 점점 멀어집니다. 농사에 뜻을 두고 투자를 한 사람이라면 빚만 늘어나기 십상입니다. 농민들은 이것을 농업을 포기한 농정 정책 탓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반도체를 수출하는 대..

참살이의꿈 2005.11.14

똥과 땅

모양이 닮은 글자는 필시 서로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사람’과 ‘사랑’, ‘님’과 ‘남’, ‘배우다’와 ‘비우다’ 같은 글자가 그렇습니다. 그런 글자 중에 ‘똥’과 ‘땅’이 있습니다. 우연히 닮았을 수도 있지만 똥이란 땅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서로가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자연 듭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밥 먹고 똥 싸는 일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왕후장상도 하루 세 끼 밥을 먹어야 하고, 똥 싸고 뒤를 닦아야 하는 것은 시골 무지렁이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집어삼키기만 하고 내보내지를 못한다면 며칠을 못가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종내는 죽음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점에서는 탐욕스런 현대 문명을 닮았습니다. 끊임없이 먹어치우기만 하고 나눌 줄은 모르는 문명은 ..

참살이의꿈 2005.11.03

우리들의 호들갑

중국산 납 김치에 이어 이번에는 기생충 김치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얼마나 불안했으면 약국의 구충제가 다 동이 났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양식 어류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어 또 한 바탕 소동을 치루기도 했습니다. 어류건 가축이건 우리나라의 항생제 사용량은 위험 수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바로보는 세상에서 갈수록 제대로 된 먹을거리가 없어진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사실 이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공기와 물과 음식, 인간의 몸으로 출입하며 우리 몸을 구성하는이런 것들이 오염된다는 것은 인간 생존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무엇을 얻더라도 이것을 잃으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그러나 늘 이런 문제가 터지고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흥분하고 호들갑을 떨지만 진지하게 대..

참살이의꿈 2005.10.26

인간은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가?

인간은 왜 환경을 파괴할까? 최근에 읽은 ‘이타적 유전자’라는 책에서는 그 이유를 인간 본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이라는 한 생물학자에 의해 명명된 ‘공동 소유의 비극’ 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예를 들면 원시인들이 매머드를 거의 멸종시키게 되었을 때 올바르게 행동하는 바보가 있었다고 합시다. 그는 ‘아니야, 나는 새끼를 밴 매머드는 죽이지 않겠어. 임신한 짐승을 해치는 것은 나쁜 일이야.’ 하고 생각하겠지만 그 어미 매머드를 발견한 다른 원시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살려준 매머드를 다른 원시인이 잡아 포식하는 마당에, 배를 곯며 기다리고 있는 가족에게 빈손으로 돌아가는 그는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입니까? 어느 한쪽의 자제가 다른 ..

참살이의꿈 2005.10.21

가을걷이가 끝나다

고추, 피망, 꽈리고추, 토마토, 방울토마토, 아욱, 근대, 목화, 상추, 케일, 콩, 강낭콩, 서리태, 큰콩, 완두콩, 오이, 호박, 감자, 자주감자, 고구마, 옥수수, 머위, 취, 배추, 무우, 열무, 들깨, 더덕, 쑥갓, 가지, 파, 쪽파, 딸기.... 이것들은 올해 텃밭에 심었던 작물들입니다. 그 종류가 서른 가지가 넘습니다. 정말 농사라고 해야 할 정도로 종류로는 많이 심었습니다. 뭘 심어 놓고는 그렇게 열심히 다니느냐고 누가 묻길래 모든 것을 다 심어놓았다고 자신있게 대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것이나 이름을 대 보라고 했더니 정말 그 친구가 말하는 작물은 전부 제 밭에 있었습니다. 사실 이것들을 가꾸느라고 아내와 저는 주말이면 여기에 붙잡혀서 지냈습니다. 옆의 사람들이 너무 일만 ..

참살이의꿈 2005.10.16

네팔에서 살고 싶다

해외에서의 노후생활을 주제로 한 기사가 지난달에 동아일보에 연재되었습니다. 정년퇴직한 연금생활자들이 가서 살만한 태국, 필리핀 등 몇나라가 소개되었는데 대개 비슷했지만 그 중에서도 네팔에서의 생활에 대한 내용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들 나라들의 공통점은 생각을 바꾸면 적은 돈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팔, 티베트, 부탄 등의 지역은 평상시에도 관심이 많은 곳입니다. 그곳은 제가 해외여행을 간다면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히말라야산맥을 끼고 있는 원시의 대자연과 함께 아직 문명에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으로 얼마간은 낭만적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얼마 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책을 읽어보고 부탄이라는 나라를 새롭게 알게도 되었습니다..

참살이의꿈 2005.10.08

[펌] 거미의 일기장

내가 사는 곳은 여섯 평가량 되는 방이다. 이곳에는 20여 마리의 거미들이 집을 지어 살고 있으며, 개미들의 나라가 3개국이 있다. 남쪽 모서리에 있는 개미 제국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왕국이며, 북쪽 부엌 쪽으로 통하는 벽면에 있는 개미 제국은 최근에 건국되었다. 나는 이곳에서 6개월가량 살고 있으며, 다른 종류의 거미들과는 왕래를 하지 않는다. 발로 바닥을 딛고 다니는 우리와 달리 공중을 날아다니는 생명체들도 여럿이다. 여름에는 모기와 나방들이 수도 없이 날아 들어왔고, 요즘엔 파리들이 주로 날아다닌다. 우리는 서로 먹기 위해 싸우기도 하고, 덫을 놓기도 하지만, 먹지 않을 것을 죽이지는 않는다.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방문이 열리고, 암컷 사람 한 마리가 난데없이 나타났다. 나를 비롯한 우리 거미들..

참살이의꿈 2005.10.02

예초기로 잔디를 깎으며

지난달에 예초기를 샀습니다. 잔디를 깎기 위해서입니다. 집 주변에 심어놓은 잔디가 넓지도 않은데 낫으로 깎자면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걸립니다. 지난 초여름에는 일주일이 걸려도 다 깎지를 못했습니다. 물론 작업이 서툰 탓입니다. 그래도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고집으로 힘들지만 그럭저럭 견뎌냈습니다. 어느 날 이웃집에 놀러갔다가 예초기로 마당의 잔디를 깎는 것을 보고는 그만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낫으로 깎는 것에 비하면 순간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쉽고 빨리 일이 끝났습니다. 그분은 미련하게 살지 말라며 예초기를 사서 쓸 것을 권했습니다. 그래서 부탄가스로 작동되는 신형 예초기를 산 것입니다. 저는 기계치(機械痴)라고 할 정도로 기계나 도구를 만지는데 서투릅니다. 어쩌다 기계를 다루게 되면 꼭 무슨 ..

참살이의꿈 2005.09.27

땅의 옹호

'땅의 옹호'는 몇 해 전에 '녹색평론'에 실렸던 김종철님이 쓴 글입니다. 모니터로 이 글의 일부분을 본 옆의 동료가 글쓴이가 과격한 환경주의자인 모양이라고 말합니다. 환경을 대하는 각자의 태도에는 환경낙관론자에서부터 환경비관론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합니다. 마침 최근에 '환경 위기의 진실'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은 환경낙관론자가 쓴 것어어서 색달랐습니다. 그것은 환경 문제에 대한 경고의 소리는 쉼없이 듣고 있지만, 지구 환경을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자주 접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환경비관론자에 속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문명이나 과학 기술의 발전에 의해 환경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참살이의꿈 2005.09.22

새들은 모이를 외면한다

마당과 밭에는 가끔씩 새들이 찾아옵니다. 특히 아침이나 저녁나절에 자주 볼 수 있는데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밖에서 들리는 맑은 새소리는 하루의 시작을 상쾌하게 해줍니다. 찾아오는 새는 대개 딱새와 박새, 산비둘기입니다. 예전에 우리가 클 때는 참새가 제일 많았는데 요사이는 참새를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새들은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부리로 무언가를 쪼아 먹기도 하고, 저희들끼리 장난을 치는지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즐겁게 놀기도 합니다. 오래된 쌀이 한 되 정도 남은게 있었는데 쌀벌레가 생기고 바게미(?)라고 부르는 날벌레들도 자꾸 생겨서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하다가 새들의 모이로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마당 가운데 있는 나무토막 위에다 쌀을 뿌려놓아 봤습니다. 이놈들이 떼로 몰려와 기꺼이 모이를 먹는..

참살이의꿈 2005.09.03

배추와 호박

열흘 전에 감자를 캐낸 자리에 읍에서 사온 배추 모종 100 포기를 심었습니다. 그것이 이만큼 예쁘게 자랐습니다. 길을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이 배추가 잘 자랐다고 한 마디씩 칭찬을 해 줍니다. 그러나 그 말이 정말 농사를 잘 짓는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모르던 도시 사람이 하는 노릇 치고는 그래도 봐줄 만 하다고 하는 뜻임을 압니다. 그래도 기분 좋은 일입니다. 어설프게 심었던 작년에도 그런대로 배추는 잘 되었습니다. 이웃에서는 약을 쳐도 벌레가 먹는다는데, 우리는 약 한 번 치지 않았으면서 별로 흠집 없는 배추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웃에서 와서 보고 이 집은 물도 안 주고, 약도 안 치는데 어떻게 배추가 이렇게 잘 자랐느냐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아마도 새로 들여온산흙에서 키워서 병충해의 침입..

참살이의꿈 2005.08.28

서러운 날

오늘은 왜 이렇게 자꾸 서러운 마음이 일어날까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맥이 탁 풀립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오늘은 모두가 생기를 잃었습니다. 저 밝은 하늘 때문입니다. 시간이 나면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봅니다. 색깔이 어쩜 저리 선명할 수 있는지, 초록의 나무들과 파란 하늘의 조화에 넋을 잃습니다. 오늘은 하루 내내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것도 더 이상 맑고 투명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로 상상할 수 있는 그대로의 하늘이 열렸습니다. 탁한 도시의 하늘도 이런 기적을 연출할 줄 아네요. 오늘은 정말 일 년 중에서 며칠밖에 볼 수 없는 날씨일 겁니다. 오후에는 일찍 일을 접고 나왔습니다. 어디로든 걷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활짝 펴고 걸을 수가 없..

참살이의꿈 2005.08.23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 그냥 이대로 살고 싶어라.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잠자리에 드는 지금이 좋아라. TV도 컴퓨터도 없지만 대신에 자동차 소리나 문명의 소음도 없는 여기가 좋아라. 저녁이면 촛불을 켜놓고 거실에 누워 남쪽 하늘을 흘러가는 반달을 바라보는 여유와 낭만이 좋아라. 촛불은 따스한 빛이다. 달빛과 촛불은 기막힌 조화를 이루며 내 몸을 어루만진다. 그 빛과 어우러져 나신이 되어 한 판 춤이라도 추고 싶은 밤이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하루 종일 혼자 있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결코 외롭지 않아라. 아무런 하는 일이 없어도 결코 심심하지 않아라. 아침, 저녁 두 시간 정도씩 바깥일을 한다. 한낮에는 뜨거워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온 몸 가득 땀을 흘리고 들어와 찬물로 샤워를 할 ..

참살이의꿈 2005.08.18

일의 의미

조기 퇴직을 하고 시골로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십중팔구 사람들은 이렇게 되묻습니다. “내려가서는 무슨 일을 하면서 지낼 계획인가요?” 그러나 아직껏 묻는 사람이 만족할 만한 답변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뭔가 할 일이 없으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그냥 텃밭이나 가꾸며 지내겠다는 말로는 누구도 납득시킬 수 없습니다. 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이율배반적입니다. 조사에 의하면 직업으로서의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 사람은 소수일 뿐이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에 치여 못 살겠다고 불평을 합니다. 누구나 일에서 해방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에 대한 집착은 그 이상으로 강해 보입니다. 꼭 경제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사람들은 일이 없으면 삶 자체를 견뎌내지 못하는 것 같아 보입니..

참살이의꿈 2005.08.06

악마의 구름

언젠가 우체국에서 겪은 일이다. 우체국 창구에는 고객들에게 주려고 사탕을 담아놓은 그릇이 있었다. 한 젊은 아가씨가 직원에게 이 사탕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그래, 먹어도 되는 거야.”하고 직원에 앞서 말을 했다. 그러자 이 아가씨가 할아버지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의아한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쳐다보느냐고 물으니 화가 난 아가씨가 “왜 반말을 하는 거예요?”하면서 따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손녀 같은 나이인데 반말하면 어떠냐고 하고, 아가씨는 아가씨대로 당신을 알지도 못하는데 왜 반말을 하느냐며 대들었다. 나중에는 서로 반말에 험한 욕까지 나오는 싸움판으로 변해 버렸다. 요사이 우리 사회를 보면 사람들은 전부 무엇엔가 화가 나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가진 사람이나 못 ..

참살이의꿈 2005.08.04

건축일지

경기도 여주에 땅을 마련한 것이 1999년 7월이었다. 농촌 마을 가운데 있는 대지와 전으로 된 470평의 직사각형 땅인데, 아내나 나나 처음 보는 순간에 반해 버려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사버렸다. 결국 나중에는 찬찬히 살펴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제대로 땅을 볼 눈이 없었다고 해야겠다. 그 뒤에 컨테이너를 들여놓고 주말마다 다니는 생활을 하다가 2002년부터 집 지을 준비에 들어갔다. 원래는 직장을 여주로 옮긴 뒤에 집을 지을 계획이었으나 학교를 옮기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우선 집부터 짓기로 한 것이다. 얼마간 망설임의 시간을 겪었지만 당시만 해도 여주에서의 생활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앞으로의 생활 기반이 되는 집이 필요했다. 그러자니 우선 어떤 ..

참살이의꿈 2005.08.04

기심(機心)

작년과 달라진 점이 많습니다. 제 주변에 몇 가지의 기계가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에 휴대폰을 장만해서 이젠 늘 이놈이 옆에 따라 다닙니다. 심심해서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그러다가 무슨 소식이 없나 자주 들여다 보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는 이놈에게 콜라를 엎어버려서 먹통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걸 수리하느라 원주를 하루 내내 들락거리기도 했습니다. 편리함이 좋긴 하지만 그것에 마음 앗김이 보통이 아닙니다. 또 묵직한 카메라 가방이 있습니다. 거금을 들여 산 카메라를 묵히기도 그렇고 어디에 이동할 때마다 들고 다닙니다. 놓고 가면 아쉽고 또 누가 들고가지 않을까 근심이 되고, 가지고 다니면 별로 쓰지도 않으면서 무겁기만 하고, 어떨 때는 애물단지가 딴게 아닙니다. 이래서 또 하나 제 마음을 앗아가는..

참살이의꿈 2005.08.01

잠들고 싶지 않은 밤

잠들고 싶지 않은 여름밤이 있습니다. 불을 끄고 거실에 누우면 밤의 적막이 서늘한 바람을 몰고 집안으로 들어옵니다.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만이 잔잔히 들려오는 고요한 여름밤이 그렇습니다. 방에 누워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창문으로 작은 별 하나 반짝이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우주의 끝에서 수십만 광년을 날아와 지금 내 눈동자를 간지리는 빛의 신비에 전율하게 되는 여름밤이 그렇습니다. 불꽃놀이처럼 번갯불이 번쩍이며 천둥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천군만마의 발자국 소리로 소나기가 몰려옵니다. 비릿한 흙내음을 풍기며 한 줄기 세찬 바람이 지나갑니다. 와르르작작 통쾌한 여름밤이 그렇습니다. 존재의 충일함으로 행복한 여름밤입니다. 하는 일도없이, 별 생각도 없이, 그저 가만히 있는 것 만으로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기..

참살이의꿈 2005.07.26

친구의 터

전원생활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있는 터의 이웃에도 금년에만 외지에서 세 가구가 새로 들어왔습니다. 그 중에 두 집은 집을 지었거나 공사 중에 있습니다. 이때껏 지낸 중에서 올해가 제일 이동과 변화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개 완전한 귀농은 아니고 주말만 이곳에 내려와서 보내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도시와 시골의 이중생활입니다. 그러다가 더 나이가 들면 완전히 옮길 계획들인데, 시골의 빈터를 이용해서 텃밭을 가꾸며 자연과 가까이 하려는 그 마음은 보기에 좋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속적으로 그 생활을 지켜 나가는 사람은 보기가 어렵습니다. 대개 처음에는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에 빠지는데 현실을 극복할 에너지를 보충 받지 못하면 중도 포기를 하게 됩니다. 제 직장 ..

참살이의꿈 2005.07.10

감사의 식탁

텃밭에서 먹을거리를 따와 애호박으로 부침개를 부쳐 막거리를 한 잔 합니다. 비가 오니 이렇게 여유가 있습니다. 날씨가 좋다면 무슨 일거리든 찾아서 땀을 흘리고 있을 텐데 오늘은 하늘이 말리는 모양입니다. 밖에서 리드미컬하게 들려오는 낙수물 소리와 텁텁한 막걸리 맛이 어우러져 선경이 따로 없습니다. '꾸뻬씨의 행복 여행'이란 책에 보면행복이란작은 집과 텃밭을 갖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 이대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물론 더 이상 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만 하겠지요. 다른 데에 한 눈을 파는 순간 분명 내 처지는 초라해 보일 것이고, 나는 다시 비교와 소유의 갈증에 허덕일 것입니다. 밭에서 금방 따가지고 온 것입니다. 완두콩, 꽈리고추, 고추, 피망, 가지, 오이, 토마토, 방울토마토......

참살이의꿈 2005.07.03

밤나무꽃 향기

이곳은 밤나무가 무척 많습니다. 마을을 둘러싼 산의 중턱까지는 나무의 주종이 밤나무입니다. 그리고 마을 집들 사이에도 오래된 밤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당산나무라 칭할 수 있는 동네 한가운데 있는 고목도 여기는 밤나무입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밤나무골이라 불려야 제격일 것 같습니다. 가을이면 밤을 주으러 외지인들이 많이 찾아듭니다. 잠깐만 산에 올라도 한 베낭 가득 밤을 주어 내려올 수 있습니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별로 돌아다니지 않고도 가득 선물을 받습니다. 지금은 마을이 밤나무꽃 향기로 덮여 있습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밤나무꽃 향기는 참 특이합니다. 묵직하고 야릇한이 향기가 온 마을을 내리누르고 있는 느낌입니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밤나무꽃 향기에 취해서 몽롱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

참살이의꿈 2005.06.29

항복

풀과의 전쟁에서 마침내 두 손을 들었습니다. 터를 장만하고 작물을 심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농약은 사용하지 말자는 것으로, 그 중에서도 제초제는 절대로 쓰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풀도 뽑지 않고 그대로 두면서 자연에 가하는 인위적인 통제를 최소로 하면서 작물을 가꿔보고도 싶었지만 시골 마을 한가운데서 그렇게 했다가는 쫓겨나기 십상일 테니 그것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깔끔한 것이 보기에는 좋지만 뭔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시골에서는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합니다. 화단만 하더라도 적당히 풀과 어우러져서 꽃들이 피어있는 쪽이 저에게는 훨씬 더 보기에 편합니다. 이것도 풀이 적당히 나 있을 때 얘기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잠깐만 방심하면 풀은 온 터를 점령해 버립니다. ..

참살이의꿈 2005.06.22

감자꽃이 피었습니다

터에 심은 감자에 꽃이 피었습니다. 세 고랑에다 주로 흰감자를 심고, 한 쪽에 자주감자를 심었는데 거름기가 별로 없는 땅인데도 잘 자라주더니 예쁘게 꽃이 피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자주감자가 익숙치 않은지 크는 모습을 보더니 작약이 아니냐며 묻습니다. 자주감자는 꽃이 자주색깔이고, 줄기도 자주색깔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가만히 들여다 보니 줄기가 붉은 것만 아니라 잎도 작약을 닮기는 했습니다. 권태응님의 '감자꽃'이라는 재미있는 시가 있습니다.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감자 정말로 자주감자는 꽃도 줄기도 자주색깔입니다. 아직 캐보지는 않았지만 땅 속에서 크고 있는 감자도 자주색깔일 것입니다. 감자를 실제 기르며 눈으로 확인해 보니 그런 단순한..

참살이의꿈 2005.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