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624

서러운 날

오늘은 왜 이렇게 자꾸 서러운 마음이 일어날까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맥이 탁 풀립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오늘은 모두가 생기를 잃었습니다. 저 밝은 하늘 때문입니다. 시간이 나면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봅니다. 색깔이 어쩜 저리 선명할 수 있는지, 초록의 나무들과 파란 하늘의 조화에 넋을 잃습니다. 오늘은 하루 내내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것도 더 이상 맑고 투명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로 상상할 수 있는 그대로의 하늘이 열렸습니다. 탁한 도시의 하늘도 이런 기적을 연출할 줄 아네요. 오늘은 정말 일 년 중에서 며칠밖에 볼 수 없는 날씨일 겁니다. 오후에는 일찍 일을 접고 나왔습니다. 어디로든 걷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활짝 펴고 걸을 수가 없..

참살이의꿈 2005.08.23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 그냥 이대로 살고 싶어라.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잠자리에 드는 지금이 좋아라. TV도 컴퓨터도 없지만 대신에 자동차 소리나 문명의 소음도 없는 여기가 좋아라. 저녁이면 촛불을 켜놓고 거실에 누워 남쪽 하늘을 흘러가는 반달을 바라보는 여유와 낭만이 좋아라. 촛불은 따스한 빛이다. 달빛과 촛불은 기막힌 조화를 이루며 내 몸을 어루만진다. 그 빛과 어우러져 나신이 되어 한 판 춤이라도 추고 싶은 밤이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하루 종일 혼자 있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결코 외롭지 않아라. 아무런 하는 일이 없어도 결코 심심하지 않아라. 아침, 저녁 두 시간 정도씩 바깥일을 한다. 한낮에는 뜨거워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온 몸 가득 땀을 흘리고 들어와 찬물로 샤워를 할 ..

참살이의꿈 2005.08.18

일의 의미

조기 퇴직을 하고 시골로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십중팔구 사람들은 이렇게 되묻습니다. “내려가서는 무슨 일을 하면서 지낼 계획인가요?” 그러나 아직껏 묻는 사람이 만족할 만한 답변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뭔가 할 일이 없으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그냥 텃밭이나 가꾸며 지내겠다는 말로는 누구도 납득시킬 수 없습니다. 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이율배반적입니다. 조사에 의하면 직업으로서의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 사람은 소수일 뿐이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에 치여 못 살겠다고 불평을 합니다. 누구나 일에서 해방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에 대한 집착은 그 이상으로 강해 보입니다. 꼭 경제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사람들은 일이 없으면 삶 자체를 견뎌내지 못하는 것 같아 보입니..

참살이의꿈 2005.08.06

악마의 구름

언젠가 우체국에서 겪은 일이다. 우체국 창구에는 고객들에게 주려고 사탕을 담아놓은 그릇이 있었다. 한 젊은 아가씨가 직원에게 이 사탕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그래, 먹어도 되는 거야.”하고 직원에 앞서 말을 했다. 그러자 이 아가씨가 할아버지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의아한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쳐다보느냐고 물으니 화가 난 아가씨가 “왜 반말을 하는 거예요?”하면서 따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손녀 같은 나이인데 반말하면 어떠냐고 하고, 아가씨는 아가씨대로 당신을 알지도 못하는데 왜 반말을 하느냐며 대들었다. 나중에는 서로 반말에 험한 욕까지 나오는 싸움판으로 변해 버렸다. 요사이 우리 사회를 보면 사람들은 전부 무엇엔가 화가 나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가진 사람이나 못 ..

참살이의꿈 2005.08.04

건축일지

경기도 여주에 땅을 마련한 것이 1999년 7월이었다. 농촌 마을 가운데 있는 대지와 전으로 된 470평의 직사각형 땅인데, 아내나 나나 처음 보는 순간에 반해 버려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사버렸다. 결국 나중에는 찬찬히 살펴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제대로 땅을 볼 눈이 없었다고 해야겠다. 그 뒤에 컨테이너를 들여놓고 주말마다 다니는 생활을 하다가 2002년부터 집 지을 준비에 들어갔다. 원래는 직장을 여주로 옮긴 뒤에 집을 지을 계획이었으나 학교를 옮기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우선 집부터 짓기로 한 것이다. 얼마간 망설임의 시간을 겪었지만 당시만 해도 여주에서의 생활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앞으로의 생활 기반이 되는 집이 필요했다. 그러자니 우선 어떤 ..

참살이의꿈 2005.08.04

기심(機心)

작년과 달라진 점이 많습니다. 제 주변에 몇 가지의 기계가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에 휴대폰을 장만해서 이젠 늘 이놈이 옆에 따라 다닙니다. 심심해서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그러다가 무슨 소식이 없나 자주 들여다 보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는 이놈에게 콜라를 엎어버려서 먹통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걸 수리하느라 원주를 하루 내내 들락거리기도 했습니다. 편리함이 좋긴 하지만 그것에 마음 앗김이 보통이 아닙니다. 또 묵직한 카메라 가방이 있습니다. 거금을 들여 산 카메라를 묵히기도 그렇고 어디에 이동할 때마다 들고 다닙니다. 놓고 가면 아쉽고 또 누가 들고가지 않을까 근심이 되고, 가지고 다니면 별로 쓰지도 않으면서 무겁기만 하고, 어떨 때는 애물단지가 딴게 아닙니다. 이래서 또 하나 제 마음을 앗아가는..

참살이의꿈 2005.08.01

잠들고 싶지 않은 밤

잠들고 싶지 않은 여름밤이 있습니다. 불을 끄고 거실에 누우면 밤의 적막이 서늘한 바람을 몰고 집안으로 들어옵니다.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만이 잔잔히 들려오는 고요한 여름밤이 그렇습니다. 방에 누워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창문으로 작은 별 하나 반짝이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우주의 끝에서 수십만 광년을 날아와 지금 내 눈동자를 간지리는 빛의 신비에 전율하게 되는 여름밤이 그렇습니다. 불꽃놀이처럼 번갯불이 번쩍이며 천둥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천군만마의 발자국 소리로 소나기가 몰려옵니다. 비릿한 흙내음을 풍기며 한 줄기 세찬 바람이 지나갑니다. 와르르작작 통쾌한 여름밤이 그렇습니다. 존재의 충일함으로 행복한 여름밤입니다. 하는 일도없이, 별 생각도 없이, 그저 가만히 있는 것 만으로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기..

참살이의꿈 2005.07.26

친구의 터

전원생활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있는 터의 이웃에도 금년에만 외지에서 세 가구가 새로 들어왔습니다. 그 중에 두 집은 집을 지었거나 공사 중에 있습니다. 이때껏 지낸 중에서 올해가 제일 이동과 변화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개 완전한 귀농은 아니고 주말만 이곳에 내려와서 보내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도시와 시골의 이중생활입니다. 그러다가 더 나이가 들면 완전히 옮길 계획들인데, 시골의 빈터를 이용해서 텃밭을 가꾸며 자연과 가까이 하려는 그 마음은 보기에 좋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속적으로 그 생활을 지켜 나가는 사람은 보기가 어렵습니다. 대개 처음에는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에 빠지는데 현실을 극복할 에너지를 보충 받지 못하면 중도 포기를 하게 됩니다. 제 직장 ..

참살이의꿈 2005.07.10

감사의 식탁

텃밭에서 먹을거리를 따와 애호박으로 부침개를 부쳐 막거리를 한 잔 합니다. 비가 오니 이렇게 여유가 있습니다. 날씨가 좋다면 무슨 일거리든 찾아서 땀을 흘리고 있을 텐데 오늘은 하늘이 말리는 모양입니다. 밖에서 리드미컬하게 들려오는 낙수물 소리와 텁텁한 막걸리 맛이 어우러져 선경이 따로 없습니다. '꾸뻬씨의 행복 여행'이란 책에 보면행복이란작은 집과 텃밭을 갖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 이대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물론 더 이상 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만 하겠지요. 다른 데에 한 눈을 파는 순간 분명 내 처지는 초라해 보일 것이고, 나는 다시 비교와 소유의 갈증에 허덕일 것입니다. 밭에서 금방 따가지고 온 것입니다. 완두콩, 꽈리고추, 고추, 피망, 가지, 오이, 토마토, 방울토마토......

참살이의꿈 2005.07.03

밤나무꽃 향기

이곳은 밤나무가 무척 많습니다. 마을을 둘러싼 산의 중턱까지는 나무의 주종이 밤나무입니다. 그리고 마을 집들 사이에도 오래된 밤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당산나무라 칭할 수 있는 동네 한가운데 있는 고목도 여기는 밤나무입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밤나무골이라 불려야 제격일 것 같습니다. 가을이면 밤을 주으러 외지인들이 많이 찾아듭니다. 잠깐만 산에 올라도 한 베낭 가득 밤을 주어 내려올 수 있습니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별로 돌아다니지 않고도 가득 선물을 받습니다. 지금은 마을이 밤나무꽃 향기로 덮여 있습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밤나무꽃 향기는 참 특이합니다. 묵직하고 야릇한이 향기가 온 마을을 내리누르고 있는 느낌입니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밤나무꽃 향기에 취해서 몽롱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

참살이의꿈 2005.06.29

항복

풀과의 전쟁에서 마침내 두 손을 들었습니다. 터를 장만하고 작물을 심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농약은 사용하지 말자는 것으로, 그 중에서도 제초제는 절대로 쓰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풀도 뽑지 않고 그대로 두면서 자연에 가하는 인위적인 통제를 최소로 하면서 작물을 가꿔보고도 싶었지만 시골 마을 한가운데서 그렇게 했다가는 쫓겨나기 십상일 테니 그것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깔끔한 것이 보기에는 좋지만 뭔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시골에서는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합니다. 화단만 하더라도 적당히 풀과 어우러져서 꽃들이 피어있는 쪽이 저에게는 훨씬 더 보기에 편합니다. 이것도 풀이 적당히 나 있을 때 얘기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잠깐만 방심하면 풀은 온 터를 점령해 버립니다. ..

참살이의꿈 2005.06.22

감자꽃이 피었습니다

터에 심은 감자에 꽃이 피었습니다. 세 고랑에다 주로 흰감자를 심고, 한 쪽에 자주감자를 심었는데 거름기가 별로 없는 땅인데도 잘 자라주더니 예쁘게 꽃이 피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자주감자가 익숙치 않은지 크는 모습을 보더니 작약이 아니냐며 묻습니다. 자주감자는 꽃이 자주색깔이고, 줄기도 자주색깔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가만히 들여다 보니 줄기가 붉은 것만 아니라 잎도 작약을 닮기는 했습니다. 권태응님의 '감자꽃'이라는 재미있는 시가 있습니다.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감자 정말로 자주감자는 꽃도 줄기도 자주색깔입니다. 아직 캐보지는 않았지만 땅 속에서 크고 있는 감자도 자주색깔일 것입니다. 감자를 실제 기르며 눈으로 확인해 보니 그런 단순한..

참살이의꿈 2005.06.17

3년

3년이라는 기간을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일을 시작하고 그 맛에 빠져든다거나 또는 실망해서 포기해 버리기에는 충분한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작심3일'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걸 큰 규모로 확대시키면 '작심3년'이라는 말도 성립될 것 같습니다. 3년 동안 어느 일에 젖다 보면 그 일에 대해 품었던 환상이 벗겨지면서 어느 정도 실상이 드러날 테니까 말입니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그리고 첫발을 내디딘 사람일지라도 계속 꿈을 이루어가는 가는 사람은 또 드뭅니다. 주변을 살펴 보면 대체로 3년이 지나면서부터 활력을 잃으면서 포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기간이면 여러 가지 예기치 못했던 문제에 부딪쳐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의 경우 ..

참살이의꿈 2005.06.13

무지한 사람들

‘최근 송진이 몸에 좋다는 속설이 퍼지면서 남산 소나무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이 무분별하게 소나무 껍질을 도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새벽 남산을 오른다는 한 시민은 “얼마 전 한 부부가 칼로 소나무 껍질을 벗겨내고 있길래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송진향을 맡으면 건강에 좋다’고 대답해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말했다.‘ 오늘 아침 신문에 난 기사의 일부분입니다. 놀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원망스럽기조차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 속에 숨어있는 인간의 이기성과 잔인하고 천박한 속성이 무섭습니다. 그놈의 어두운 기운은 분명 전 생명체를 파괴시키고 말 것 같습니다. 터에 내려가면 가끔씩 뒷산에 오릅니다. 외딴 시골에 ..

참살이의꿈 2005.06.07

진보는 단순화입니다

5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세월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달력이 숨 가쁘게 휙휙 넘어갑니다.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싶으면 어느덧 주말이 다가와 있고, 월초다 싶은데 어느 순간 월말이 되어 있음에 놀랍니다. 며칠째 계속되는 초여름 날씨가 그런 느낌을 더해줍니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탁상 달력에는 간디가 물레를 돌리고 있는 그림과 함께 신영복님의 ‘진보는 단순화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매일 이 글을 보며 한 달을 지냈습니다. 짧은 한 줄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한 때 진보와 보수의 논쟁이 시끄러웠습니다만, 무엇이 진보이고 무엇이 보수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정치판에서 서로 싸우는 모습은 비슷한 도토리들이 서로 자기 키가 더 크다고 다투는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서울 시장이 대학 강연을 다니..

참살이의꿈 2005.05.31

나무에 약을 치다

분무기를 매고 처음으로 농약을 뿌렸습니다. 약은 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경계수로 심어놓은 회양목이 고사 직전 상태라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징그럽게 생긴 벌레는 떼어낼 수가 있다지만 새까맣게 붙어있는 알들은 어찌할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수 십 그루가 되는 회양목을 베어낼 수도 없었습니다. 회양목이 이렇게 벌레가 많이 끼는 나무인 줄 알았다면 심지 않았을 텐데 하고 지금은 후회를 합니다. 이왕 버린 몸이 되었다고 나머지 나무들에도 농약을 쳤습니다. 나무 중에서는 벚나무가 그 다음으로 벌레에 취약한 것 같습니다. 작년에 벚나무 한 그루에 연초록의 큼직한 벌레들이 달라붙어 나뭇잎을 갉아먹기에 모두 잡아주었더니 그 뒤로는 괜찮았습니다. 나무를 심고 길러보니 나무마다 성향이나 기질이 다 다름을 알 수 있..

참살이의꿈 2005.05.23

작물 심기를 마치다

어제로 텃밭에 작물 심기를 대락 끝냈습니다. 그동안 한 달여에 걸쳐 심은 작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옥수수 300포기 - 수확 시기를 다르게 하기 위하여 두 주 간격으로 세 번에 걸쳐 심음(4/17, 5/1, 5/.15). 빨간 씨앗 옥수수와 강원도 옥수수 두 종류. 감자 100포기 - 강원도에서구해온 감자씨를 심음(4/17).현재 잘 자라고 있음. 콩 160포기 - 강낭콩, 노란콩, 검정콩, 완두콩, 서리태 등 구할 수 있는 콩은 다 심어 봄4/24-5/15). 덩굴을 타고 올라가는 완두콩에 기대가 큼. 고구마 60포기 - 집에서 낸 고구마 싹을 심었으나(5/1) 절반이 말라 죽음. 이번 주말에 모종을 사서 다시 심을 예정임. 호박 12포기 - 작년에 비해서 수량이 줄어듬. 4/17에 심었는데 이제 떡잎..

참살이의꿈 2005.05.16

느리고 어수룩한

정화조가 고장난 것이 한 달여 전인데 기사분이 그저께야 찾아왔습니다. 수리 요청한지 6주 만에 응답을 한 것입니다.그동안 똑 같은 말이 저와시공자 사이에 오갔습니다. "이번 토요일에도 사람이 안 나왔어요." "아, 그래요. 죄송합니다. 다음 번에는 꼭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런 말을 여섯 번이나 반복하고서야 한 일이 끝난 것입니다. 저의 집을 지은Y건축회사 사장님은 재미있는 분이십니다. 늘 싱글벙글 웃으시면서 사업을 하시는 분 같지 않게 느릿느릿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사람이 좋다고 소문이 났는데, 단점이라면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화조 수리도 부탁한지 한 달이 지나서야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웃집의 경우는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해주지 않은 일도 있습니다. 그래도 밉지가 않습니다. 웃는 얼굴..

참살이의꿈 2005.05.09

새싹

콩, 고구마, 토마토, 그리고 다시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이곳 분들은 고구마를 꽂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감자도 놓는다고 하구요. 보통 우리는 나무고 작물이고 전부 심는다고 하지만 농민들에게는 종류에 따라 표현이 다른 게 재미있습니다. 사실 감자나 고구마를 심어 본 사람이라면 '감자를 놓는다' 그리고 '고구마를 꽂는다'라는 표현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와서 이런 것들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 고맙고도 재미있습니다. 산은 벌써 신록의 색깔을 입기 시작했지만, 밭에는 이제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두 주일 전에 심었던 옥수수는 5 cm 정도 키가 자랐고, 감자싹도 덮여있던 흙을 밀어내고 밖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옥수수는 얼마나 잘 자라는지 아침에 볼 때와 저녁에 볼 때가 다릅니다. 지금의..

참살이의꿈 2005.05.02

저 연초록 세상

지금 산야는 온통 연초록세상입니다. 겨울의 황량하던 풍경이 어느새 기적처럼 저렇게 변했습니다. 땅은 초록의 물감을 비밀스레 숨기고 있다가 어느 날 한 순간에 지상으로 쏟아낸 듯 합니다. 아직 신록에 들기 전이지요, 연두빛과 연초록이 뒤섞인저 찬란한 색깔의 향연에 초대받은 나는 행복합니다. 터에 오가는 길에 만나는 봄숲의 자태에 넋을 잃습니다. 저 빛은 병아리의 지저귐이고, 갓 태어난 송아지의 눈망울입니다. 갓난 아기의 해맑은 미소입니다. 누가 절망을 얘기하나요? 저 연초록 세상을 보게 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혁명을 꿈꿀 수가 있습니다. 터에 들어가는 입구에 작은 고개가 있습니다. 나는 잠시 차를 세우고 감사와 외경의 마음으로 저 연초록 세상을 바라봅니다.

참살이의꿈 2005.04.25

감자를 심다

밭에 감자와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옥수수는 몇 해째 심어 왔지만 감자는 처음입니다. 동생이 강원도 씨감자를 구해 주었고, 전주에서도 붉은 감자를 줘서 두 종류를네골에 심었습니다. 옥수수도 네 골 심었습니다. 경운기로 골을 만드는 것을 로타리를 친다고 하지요. 이 말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괭이로 골을 만들고 있는데 이웃집에서 보시고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드셨는지 경운기를 몰고 와서 이렇게 훤하게 일을 해 주셨습니다. 기계의 힘이란 역시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하루 종일 할 일을 30분 만에 마칠 수 있었으니까요. 하얀 싹이 나오기 시작하는 감자 눈을 따내서 그걸 흙에다 심는 작업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흙을 만지는 자체가 즐거운 일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 생명을 기르는 의미가 곁..

참살이의꿈 2005.04.18

행복한 나무 심기

나무를 심는 일은 행복합니다. 일년생 작물을 심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과 보람이 거기에는 있습니다. 십 년 앞을 내다보고 세운 계획을 십년지계(十年之計)라고 하는데 이는 곧 나무를 심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 됩니다. 이렇듯 나무심기는 당장의 이익이 아닌 먼 미래를 내다보고 하는 일입니다. 꿈을 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일은 멀리를 내다보는 마음이고, 눈 앞의 이(利)를 탐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봄을 맞아 터에다 나무를 심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매년 조금씩 심어나가자고 작정한 대로 올해도 읍내의 나무 시장에 가서 눈에 드는 것들을 사왔습니다. 땅을 파니 오랜만에 맡는 흙의 향기가 좋습니다. 부드러운 촉감도 새롭습니다. 봄비를 맞아가며 이번에 심은 나무는..

참살이의꿈 2005.04.11

고구마 싹

손이 덜 가면서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 무엇일까? 이웃에서 제일 많이 추천하는 것이 고구마였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터에다 고구마를 심을 생각으로 작은 스티로폼 상자를 구해 흙을 깔고 고구마 몇 개를 묻어 두었지요. 일부나마 내 집에서 싹을 낸 고구마를 키워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겨울에 따뜻한 방안에 둔 것 외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어느 날 싹이 나오더니 하루가 다르게 줄기가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너무 웃자라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는지 걱정입니다. 고구마 싹을 심자면 아직 한 달도 더 지나야 할 것 같은데 저것을 그대로 두고 기다려야 하나, 어쩌나요? 아내는 초록 잎이 좋다고 상자를 통째로 거실로 옮겨놓았습니다. 모종으로 사용하려던 것이 어느새 집안의 장식용으로 둔갑해 버렸습니다. 가만히..

참살이의꿈 2005.04.03

맑고 따스한

지난 겨울에 언 수도관이 아직 녹지 않았습니다. 수도 펌프에 전원을 넣으니 해소병 환자의 가래 끓는 소리가 납니다. 중간 어딘가에 관이 막혀 있어 물이 소통되지 못하니 펌프도 힘이 드는가 봅니다. 누런 황토물이 펌프의 이음새 사이로 줄줄 새나옵니다. 이것도 이젠 연례 행사가 되어 그런가 보다 싶습니다. 그러나 내주까지 이 지경이 될까 걱정입니다. 생활하는 것은 둘째치고 내주에는 꽃과 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물이 없으면 일에 지장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옆의 동료와 웃으며 얘기를 나누었지만 정말 '무자식이 상팔자'입니다. 뭔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터를 통해 실감하고 있습니다. 동료도 지리산 자락에 터가 있는데 이번 겨울에 상수도관이 터져서 그로 인한 누수로 수도비가 20..

참살이의꿈 2005.03.29

백점 인생의 조건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100점 인생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먼저 영어 알파벳에 차례로 점수를 부여합니다. A에 1점, B에 2점, C에 3점. D에는 4점, 이런 식으로 해서 Z에 26점까지 붙여주면 됩니다. 그런 다음 영어 단어를 점수로 환산해 봅니다. 돈이 많으면 될까요? MONEY는 72점이군요. 건강은 어떨까요? HEALTH는 54점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LOVE도 54점이네요. 세상 사는 것은 사랑 만으로는 되지 않나 봅니다. 행운이면 어떨까요? LUCK은 겨우 47점입니다. 지식이 많으면? KNOWLEDGE는 96점까지 되는군요. 열심히 일하면 될까요? HARD WORK은 98점입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합니다. 그럼 100점짜리는 무엇일까요? 정답은..

참살이의꿈 2005.03.19

GRUMPS

다시 3월이 찾아왔습니다. 밤부터내리기 시작한 눈이 오전까지 계속되더니 지금은 햇볕이 납니다. 땅에 쌓인 눈은 햇볕을 받더니 벌써 다 녹아 버렸습니다. 봄이 이미 가까이 와 있음을 실감합니다. 저에게 3월은 마치 새해의 시작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을 보냅니다. 곁들여 좀더 아름답고 멋있게 살자고 작은 다짐도 합니다. 이 지상에서 주어진 삶의 즐거움을 찾아내고 향유하지 못한다면 이곳에서의 삶을 마감할 때 조금은 억울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사람살이의 제일은 역시 행복입니다. 이 별에 와서 그래도 즐겁고 행복했었다고 마지막 독백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GRUMPS라는 말이 있습니다. Green(녹색의), Responsible(책임감 있는), Unassuming(겸손하고 욕심이..

참살이의꿈 2005.03.02

사인

오랜만에 터에 다녀왔습니다. 겨울이면 발걸음이 뜸해지는데 올해도 수도관이 어는 바람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이만하면 되겠지 하고 보온 준비를 단단히 했건만 지난 1월의 추위에 견디지 못한 모양입니다. 펌프가 마당에 노출되어 있고 사람이 상주하지 않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자위를 합니다. 사람이고 물건이고 정이 깊다면 자꾸만 만나고 싶고 보고 싶은 것이 당연하겠지요. 오랜만에 만난다면 반가움 더욱 클 것이고요.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아무리 정이 깊은 사이라도 자주 만나지 않으면 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봅니다. 부딪치며 쌓이는 고운 정 미운 정이야말로 단단하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기본일 것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덫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오랜만에 찾아..

참살이의꿈 2005.02.18

백색 마녀의 저주

백색 마녀는 천사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보통의 마녀는 검은 옷에 무시무시한 차림을 하고 있지만 그녀는 어린아이도 좋아할 정도로 밝은 외모의 마녀입니다. 그녀는 풍요와 행복의 미래를 약속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뒤를 따라 갑니다. 그리고 그녀의 주술에 빠져듭니다. 사람들은 마녀를 따라가는 자신의 발걸음이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매 순간 제공되는 달콤한 유혹에 넋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마녀의 무서운 저주가 숨어 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들려준 ‘백색 마녀의 저주’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백색 마녀란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친구가 설명했습니다. 그 말대로라면 우리 모두는 마녀의 주술에 걸려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일부는 주술의 효력이 미치지..

참살이의꿈 2005.02.03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KBS2 TV의 ‘인간극장’입니다. 지난 주 인간극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제목으로 산골에서 살고 있는 젊은 부부의 얘기를 다루었습니다. 명문대 출신의 30대 초반의 부부가 1년 전에 무주 산골로 내려갔습니다. 도시에서 잘 나가던 그들이 산 속 오지로 들어간 것은 자신들만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화려한 도시 생활이 결코 내적인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과감히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문명의 혜택이나 욕망을 따르는 삶을 거부하고 그들은 산 속에서 지금 두 번째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도시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생활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떨 때는 불안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참살이의꿈 2005.01.12

작고 단순하게

무료할 때는 무엇을 하시나요? 나는 백지 위에 낙서를 합니다. 특히 지리한 회의가 끝도 모르게 길어질 때면 나도 모르게 종이 위에 낙서를 하게 됩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회의에 열중하고 있다고 착각할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나는 귀로 몰려드는 소리들을 내쫓으며 하얀 백지의 유혹에 빠져듭니다. 그저 무의식중에 떠오르는 말들을 적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종이 위에는 의미 연결이 되지 않는 단어들이 가득 적혀 있습니다. 어떤 때는 한 단어만을 계속 적기도 하지요. 언제고 제일 많이 적혀있는 단어는 날 비[飛]자입니다. 마지막 획을 길게 내리뻗어 한껏 멋을 부리며 이 글자를 쉼 없이 쓰고 있는 자신을 볼 때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종이 한 면이 이 한 글자로만 가득 채워져 있기도 합니다. 아마도 내 무의식에는 ..

참살이의꿈 2005.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