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642

내 인생의 나이테

사람에게도 지나온 흔적이 눈으로 보이게 남는다면 나무와 같은 나이테가 있을 것 같다. 나무의 나이테는 기온에 따라 세포의 성장 속도가 다르므로 세포 크기에 차이가 생겨 생긴다는데, 사람에게도 분명 그런 변화가 있을 법하기 때문이다. 일생을 여일하게 평탄하게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짧은 한평생을 살면서 누구나 시련과 고통을 겪는다. 시기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다. 그런 인생의 매듭이 한 인간의 나이테로 나타날 것 같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은 굵고 두꺼운 검은 줄이 많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나이테의 줄이 희미하게 나타날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이 느끼는 인생 짐의 무게는 주관적인 것이어서 우리가 겉으로 보는 그 사람의 모습과 실제 나이테의 모양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도 있다...

참살이의꿈 2008.01.27

조롱 속의 행복

새장의 새나 어항 속의 물고기를 볼 때마다 고개를 드는 의문이 있다. 저 새나 물고기는 과연 행복할까? 날지도 못하고 마음대로 헤엄을 치지도 못하는 상태는 야생의 본능을 가진 그들에게 분명 스트레스로 작용할 것이다. 그것이 동물원의 동물을 우리가 측은하게 바라보게 되는 이유다. 그러나 대신 먹이를 구하는 어려움도, 적으로부터 받는 위협도 없으니 어떤 면에서는 평화와 안온함을 누릴지도 모른다. 그런 갇힌 우리 속의 편안함이과연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롱 속의 행복이 참다운 의미의 행복이 되는가? 사람이 사는 목적이 행복에 있다고들 말한다. 행복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라고 누구나가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조롱 속의 행복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의심을 하는 사람은 적다. 문자적 정의로서의 행복은 ..

참살이의꿈 2008.01.22

누가 밀었어

옛날에 어느 나라의 왕이 하나뿐인 딸에게 좋은 배필을 구해주길 원했다. 딸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만큼 용기와 패기 있는 청년을 구하기 위해서 왕은 방을 내걸었다. "누구든지 0월 0일 시합에 나와 이기는 사람에게 내 딸을 주고 사위로 삼겠다!" 구름처럼 몰려든 청년들 앞에 주어진 시합의 내용은 악어가 가득찬 호수를 헤엄쳐 건너갔다 오는 것이었다. 아무도 감히 뛰어들 엄두를 못 내고 그저 물끄러미 호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한 쪽에서 첨벙하는 소리가 났다. 한 용감무쌍한 청년이 물에 뛰어 든 것이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호수 반대편을 향해 헤엄쳐 갔고 무사히 돌아왔다. 모두의 박수갈채와 환호를 한몸에 받으며 물 위로 올라온 이 청년에게 왕은 다가가 축하의 인사말을 전하려 했다. ..

참살이의꿈 2008.01.02

觀海難水

맹자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孔子登東山而小魯登太山而小天下 故觀於海者難爲水遊於聖人之門者難爲言 '공자는 동산에 올라서 노나라가 작다는 것을 알았고, 태산에 올라서는 천하가 작다고 느꼈다. 그러므로 바다를 본 사람에게는 물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고, 성인의 문하에서 노니는 사람에게는 말을 하기가 어렵다.' 여기서 관해난수(觀海難水)란'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안이 온 세상인 줄 안다. 그래서 쉽게 물을 말하고 세상을 말한다. 그러나 바다를 본 개구리는 할 말을 잊는다. 큰 것을 깨달은 사람은 무엇이든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법이다. '觀海難水'를 책상 위에 써붙이고 내 자경의 문구로 삼는다. 내가 서 있는 곳은 태산도 동산도 아닌 집 뒤의 작은 언..

참살이의꿈 2007.12.14

믿음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해 대단히 심한 가뭄이 들어서 각 성당마다 비를 기원하는 기도와 미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가뭄은 심해져갔다. 그런 어느 날 미사 중에 강론을 하던 신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 성당에 와서 아무리 기도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비를 내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신자들은 깜짝 놀랐다. "아니, 신부님께서 어떻게 저런 말씀을 하시는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로 성당 안은 금방 소란스러워졌다. 이런 신자들의 반응을 지켜본 신부님이 신자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정말 기도를 하면 비가 오리라고 믿습니까?" "믿습니다." 신자들이 입을 모아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면 지금 여러분 중에 우산을 가져오신 분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

참살이의꿈 2007.12.07

선생님도 스트레스 받나요

무슨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거나, 아니면 어제 밤에는 스트레스 풀려고 술을 마셨다고 하면 사람들은 날 보고 대개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이구동성으로 묻는다. "선생님도 스트레스 받으세요?" 이러면 대략 난감해지는데, 내가 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다. "나 같은 사람이 도리어 더 스트레스에 시달린답니다." 웃으며 하는 그 말 속에는 물론 여러 의미가 들어있다. 사람들은 내 겉모습을 보고 스트레스 같은 것은 받지 않을 것으로 보는 모양이다. 좋게 보아주는 것이 고맙기는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자신의 말 그대로 믿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대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각자가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는 다를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짐을 가장 무겁게 느끼..

참살이의꿈 2007.12.02

은둔을 꿈꾸다

정직하게 살고 싶다. 이것이 나로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다. 정직하다는 것은 우선 나 자신에게 진실된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은 내면의 목소리와 조화를 이루는 삶을 뜻한다. 복잡한 도시 생활은 내면의 목소리와 실제 삶이 늘 엇박자로 논다. 나로서는 위선과 거짓 없는 도시 생활은 상상할 수 없다. 바삐 움직이고 많은 일을 하지만 늘 허전한 것은 우리가 하는 일, 즉 삶의 질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내가 도시를 떠나 산골에 들고 싶은 것은 도시에서는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데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는 탓이다. 정직한 삶을 사는데 가장 적당한 직업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때 나는 그것이 농사짓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농부야말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답게 보인다는 어느 작가의 말에 공감..

참살이의꿈 2007.11.29

내 안의 짐승 소리

내 안에는 짐승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어떤 때는 조용하지만, 어떤 때는 사납게 날뛰며 울부짖는다. 짐승은 때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달 밝은 교교한 밤의 늑대 울음소리가 되었다가, 초원을 헤매는 허기진 하이에나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함정을 파놓고 먹이가 걸려들기는 기다리는 독거미의 음흉함이기도 하다. 그러나 짐승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 짐승은 내 피 속에 흐르는 야성의 에너지다. 이젠 다시 숲을 불태우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짐승을 잡기 위해....

참살이의꿈 2007.11.24

애꾸들 세상

한 눈만 가진 애꾸들의 세상이 있었다. 어느날 두 눈을 가진 사람이 들어왔다. 애꾸들은 이 사람을 자기들과 다르다고 병신이라고 놀렸다. 이 사람은 처음에는 개의치 않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외톨이가 되는 것을 견디기도 어려웠다. 결국 정상이었던 이 사람은 송곳으로 한 쪽 눈을 찔러 애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애꾸들 세상에서는 다수에 속하지 않으면 소외된다. 오직 다수가 진리이고 세상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 바른 길이다. 소수의 목소리나 삶의 태도는 용인되지 않는다. 마치 바이러스를 보듯 세상은 경계심을 품는다. 애꾸들 세상에서 소수를 배격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왕따를 시키고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다.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반체제 성향의소수를 만들지 않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참살이의꿈 2007.11.21

마르코 100번 읽기

존경했던 이현주 목사님의 강연을 찾아다니고, 목사님이 쓴 책들을 열심히 읽던 때가 있었다. 기독교를 통한 구원과 참살이에 온 맘을 바쳤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목사님의 어느 강연에서 성서읽기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목사님이 특이한 방법 한 가지를 소개해 주었다. 네 복음서 중에서 하나를 골라 100번을 읽으라는 것이었다. 조건은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복음서를 처음 읽는다는 자세로 100번을 계속 읽으면 아무리 우둔한 사람도 예수님의 가르침에 나름대로의 깨우침을 얻게 된다고 했다. 한 복음서를 100번 읽는다는 자체가 마치 불자가 부처님께 삼천 배를 올리는 것과 같은 정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옛말에 무슨 뜻인지 모르는 글도 자꾸 읽다가 보면 언젠가는 뜻을 터득하는 때가 온다고도 했다. 같은 복음..

참살이의꿈 2007.11.15

다시 잠들기 어렵다

한밤중에 잠에서 깬다. 싸늘하고 섬찟하다. 마치 누가 심장에다 얼음조각 하나 집어넣은 것 같다. 몰려온 찬 기운에 생명의 온기가 달아난다.꿈 탓일까? 남에게 한 못된 짓이 바위덩이처럼 커 보인다. 바위는 굴러내리며 또 다른 바위를 건드리고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내 삶은 온통 후회되는 짓 투성이다. 최후의 심판대에 선 것처럼 왜 이리 잘못한 일만 떠오르는가. 생이 허전하고 쓸쓸하다. 가슴으로 시베리아 찬바람이 지나간다. 가을 탓인가? 잠꾸러기인 나에게 이런 한밤중의 각성은 예전에 없던 일이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지만 쉽게 잠들지 못한다. 생각은 자꾸만 자책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내 삶은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처럼 가볍고 허망하다. 속에서 쓴물이 나온다. 환하게 웃는 웃음, 밝은 표정들은 모두가 가식이었다..

참살이의꿈 2007.11.12

잘 난 척 하더니

전에는 다른 사람들과 차별성을 두는 데서 내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다. 세상의 속물성을 비난했고, 그런 사람들과는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타인들에게 나의 그런 내심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부터는 잘 난 척 한다는 핀잔을 자주 들었다. 내 세계를 추구할 수록 갈등은 깊어졌다. 유아독존 식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옳은 것이 그른 것과 어울리지 못할 때 그 옳음은 옳음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선이 악을 감싸안지 못할 때 선은 결코 선이 될 수 없음을 배웠다. 물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경계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옳은 것은 그른 것이 있으므로 존재하고, 선과 악 또한 마찬가지다. 옳은 것에만 집착하는 것으로 구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

참살이의꿈 2007.11.07

7 Up

테니스 대회를 마치고 뒷풀이 자리에서 C가 노년의 지혜라면서 '7 Up'에 대해 말해 주었다. C의 구수한 입담 때문이기도 했지만 들어보니 그럴 듯 했다. 내용을 적어달라고 부탁했더니 다음 날 메일로 보내 주었다. 1. clean up 나이 들수록 집과 환경을 깨끗이 해야 한다. 분기별로 주변을 정리 정돈하고,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과감히 덜어 내야 한다. 귀중품이나 패물은 유산으로 남기기보다는 살아생전에 선물로 주는 것이 효과적이고 받는 이의 고마움도 배가 된다. 2. dress up 항상 용모를 단정히 해 구질구질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젊은 시절에는 아무 옷이나 입어도 괜찮지만 나이가 들면 비싼 옷을 입어도 좀처럼 태가 나지 않는 법이다. 3. shut up 말하기 보다는 듣기를..

참살이의꿈 2007.10.31

삶은 때론 갑자기 껄렁해지는 것이니

이 가을에 A씨가 봉화로 거처를 옮긴다고 한다. 10년 전에 A씨 부부는 도시생활을 접고 귀농을 했다. 그분들의 시골살이를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지만, 그 삶은 내가 귀농을 꿈꾸고 어설프게 실행하기까지 용기를 준 원천이 되었다. 그간 즐거움 보다는 어려움에 더 공감을 하며 마음 아프게 바라보았다.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에게 현실은 대개 가혹하다. 그들은 주어진 환경에 잘 길들여져 적당히 적응하며 사는 것이 잘 되지 않는다. 체질적으로 그런 삶에는 알레르기가 일어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부러 힘든 길을 찾아 나선다. '이건 아니야!'라는 내면의 소리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좋아서 선택한 길이지만 세상 안에서 사는 한 현실과의 갈등은 겪지 않을 수 없다. 때로 현실은 가혹할 정도로 시련을..

참살이의꿈 2007.10.19

그늘

나이가 들수록 그늘이 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그늘을 애써 피하지 않게 된다. 어렸을 때는 그저 밝은 것만 보려 했고, 밝은 세계로만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밝은 것이 있기 위해서는 그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인생은 그늘로 인하여 존재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삶의 그늘은 우리를 진중하게 만든다. 음식이 곰삭아야 제 맛을 내듯 그늘은 우리의 삶을 맛깔 나게 해준다. 그늘은 삶을 곰삭게 하는 장치다. 어느 시인의 글에서 ‘그늘 있는 맛’, ‘그늘 있는 삶’이라는 멋진 표현을 보았다. 제대로 된 맛은 그늘 있는 맛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뜻에서 성숙한 삶에는 그늘이 깃들어 있다. 그저 온실 속에서 자란 듯한 사람은 왠지 친근감이 들지 않는다. 경박한 밝음에는 인생의 깊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늘..

참살이의꿈 2007.10.11

아름답게 나이 들기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두 노인네 사이에 갑자기 육탄전이 벌어졌다. 내가 탔을 때는 경노석에 앉아 있던 두 사람 사이에 나이가 몇 살이나 처먹었느냐는 험한 말이 오가고 있었다. 한 사람은 일흔 몇이라고 했고, 더 젊게 보이는 다른 사람은 그보다 몇 살을 더 보태 형님 행세를 했다. 서로 반말과 쌍욕이 오가더니 결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다짐이 벌어지고 안경이 깨어지는 소동까지 일어났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더 큰 화가 생길 뻔 했다. 들어보니 소동의 발단은 사소한 것이었다. 다리를 꼬고 앉은 발이 옆 사람을 건드린 것이다. 복잡한 지하철에서 예의 없는 사람 때문에 짜증이 나는 경우는 흔히 있다. 이번 경우도 그랬을 것이다. 그것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서로간에 날이 선 말들이 오갔을 것이고, ..

참살이의꿈 2007.10.06

힘든 오늘은 행복입니다

'실패는 행복입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헤어짐은 행복입니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슬럼프는 행복입니다 천천히 스스로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힘든 오늘은 행복입니다 행복한 내일이 여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요사이는 기업 광고도 무척 세련되었다. 위의 글은 잡지에서 본 어느 대기업 광고 문안인데 한동안 눈길을 떼지 못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다시 읽어보아도 참 좋은 내용이다. 힘든 오늘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모든 사람들은 어깨에 진 짐이 크든 작든 다들 무겁게 느끼는 법이다. 당신 짐은 작으니 힘들지 않을 거라고 속단하지 말자. 짐의 크기는 달라도 사람이 느끼는 무게는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그 ..

참살이의꿈 2007.09.29

가치관의 반전

남자에게도 폐경기가 있다고 한다. 나이 50 전후로 해서 겪게되는 육체적, 정신적 급변 현상은 남녀에 공통인 것 같다. 이 시기는 육체적으로 노쇠 현상이 나타나고, 생리적으로도 호르몬의 분비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특히 남자에게 있어서는자녀의 성장과 독립, 안정된 일자리의 상실 위험, 가정에서 아내의 위상 증가 등의 요인이 겹쳐 이 시기는 정신적으로 좌절과 방황의 때이다. 그러나 다른 면으로 생각하면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는 희망의 시기라고도 할 수가 있다. 내 경우는 40대 후반부터 심각한 정신적 방황을 겪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우울증으로 시작되었으나 뒤에는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인생의 의미를 회의하고 묻게 되었다. 그때에 나는 가톨릭에 입교했고, 노자와 장자 철학에 빠져들었다..

참살이의꿈 2007.09.19

내 마음의 땅 끝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이 예수의 메시지만큼 기독교인들을 선교 열정으로 가득하게 하는 구절도 없다. 그것은 지상의 예수가 제자들에게 내린 마지막 말로서, 기독교인들에는 거의 절대적인 명령으로까지 받아들여진다. 내 대학교 때 동기 하나도 이미 30년 전에 아프리카로 선교를 위해 떠났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종교적 열정을 가진 적이 있었을 것이다. 지난 번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 의한 인질 사태에서 드러났듯 특히 우리나라의 선교 열정은·세계 제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불타는 열정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마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안타까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얼마 ..

참살이의꿈 2007.09.10

무언가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

루이스에 심취해 있는 H가 '영광의 무게(The Weight of Glory)'라는 10여 쪽 되는 글을 보내주었다. 이 글은 1941년에 루이스가 어느 교회에서 한 설교라고 한다. 이 글에서 루이스는 인간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어떤 갈망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일생동안 우리를 따라다니는 노스탤지어(nostalgia), 즉 우주의 무언가로부터 자신이 떨어져 나왔다고 느끼고 그것과 다시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갈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볼 때 그것은 근원적인 쓸쓸함이고 외로움이며 그리움이다. 모든 인간 활동이나 예술의 근저에는 이 갈망이 주된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갈망의 정체에 대하여 무수한 종교적, 철학적 논의가 있어 왔고 예술적 해석 또한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루이스는 기독교적..

참살이의꿈 2007.09.04

집이 뭐길래

집 없는 설움보다 큰 설움은 없다는 말이 있다. 특히 한국 사람이 땅이나 집에 집착하는 이유도 돈이 된다는 것과 함께 없을 때의서러움을 알기 때문이다. 아직도 전체 세대의 40%가 무주택가구라는데, 땅 투기와 아파트 투기로 인해 그들이 받는 상처는 집 있는 사람들은 종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도 셋방살이를 전전한지 어느덧 7년 째가 되어간다. 그동안에 서울의 집값은 서너 배씩 뛰어올라 가만히 앉아서 재산가치가 반의 반 토막으로 줄어드는 것을 경험했다. 이제 집 한 채 장만하기도 어려운 처지가 되어 버렸다. 아무래도 그런 상실감을 가장 심하게 느끼는 것은 아내다. 최근의 부부갈등의 원인도 거기서 출발하고 있다. 집이 있든 없든살림에 무관심한 남편이 밉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참살이의꿈 2007.08.24

불만에 찬 물고기

약 4억년 전 바다에 살던 물고기가 최초로 육지에 발을 디뎠다. 그 물고기가 바로 우리들의 직계 조상이 되었다. 물 속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세계로 눈을 돌린 그 물고기의 한 걸음이야말로 육상 생물의 진화에 결정적인 전기가 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달 착륙 이상의 위대한 한 걸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물고기는 어째서 자신의 세계를 벗어날 시도를 할 수 있었을까? 무슨 까닭이 바깥 세계를 넘보게 했을까? 유전자에 내재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확장욕 때문이었을까? 냉혹한 수중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추측하지 못하는어떤 불만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수중 세계를 벗어나려고 한 그 최초의 물고기를 '불만에 찬 물고기'로 부르고 싶다. 뭔가 새로운 것은 '불만'..

참살이의꿈 2007.08.17

청계수 침례

한 달 전에 부끄러운 경험을 했다. 직장 동료 몇이서 함께 한 술자리에서 대취하여 청계천에 나갔다가 발을 헛디뎌 청계천 물에 빠진 것이다. 물은 얕았지만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큰대자로 엎어졌으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 잠수를 해버렸다. 당시는 한밤중이었지만 도심이라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 주변에 있었는데, 물에 빠지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창피해서 어서 자리를 뜨고 싶다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어디를 가겠는가, 한참을 앉아서 옷을 대략 말리고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술에 취했는지 그 전부터 필름이 끊어졌고, 지금도 물에 빠진 후의 상황만 조금 기억 날 뿐이다. 아마 그때 옆에 K가 없었다면 더 추한 꼴을 보였을지 모른다. 그 뒤에는 웃으며 ..

참살이의꿈 2007.08.13

죄는 씻으면 되지요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기 위해 신애는 교도소에 찾아간다. 그런데 대면한 범인은 너무나 태연하고 천연덕스럽다. "하나님을 만나고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그래서 늘 감사하고 평화롭습니다." 기독교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던 신애는 그 모습에 충격을 받고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킨다. 영화 '밀양'에 나오는 장면이다. 4년 전, 20대 아버지가 아들 둘을 동작대교에서 한강 아래로 던져 죽인 충격적 사건이 있었다. 뒤에 범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왜 죽였어요?" "살기 힘들어서요." "그럼 왜 같이 죽지 않았나요?" "기독교인이라 자살은 안되요." "자식은 죽여도 되나요?" "큰 죄를 지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기독교인이면 자식은 죽여도 되나요?" "죄는 씻으면 되지요!" 산 아들을 던진 것도 충격적..

참살이의꿈 2007.08.04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

'역사는 발전하는가' 또는 '역사는 진보하는가'라는 질문을 흔히 하게 된다. 이때 질문을 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발전이나 진보의 개념이 무엇인지가 우선 명확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의미 없는 논쟁만 남을 뿐이다. 후배 K와의 대화에서는 늘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자기 나름대로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고 있지만 결코 독단적이지도 불편부당하지도 않다. 그것은 그의 폭넓고 깊은 인문학적인 소양 때문일 것이다. 그는 진보의 기준을 인간이 얼마나 지혜로워졌느냐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런 관점에서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어떻게 보면 인간 역사는 쉼없는 과오의 반복이다. 지난 역사에서 배우고 깨우친 것이 있을진대 미련스럽게도 똑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인간들이다. 지식의 양은 엄청나게..

참살이의꿈 2007.08.03

다른 생각

화학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농부들에게 비료를 주러 왔다. 농부들은 그 비료를 밭에 뿌렸다. 그리고 매우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래서 농부들은 그 부족에서 가장 지혜로운, 나이 들고 눈이 먼 추장을 찾아가 말했다. "우리는 작년보다 두 배나 많은 양을 생산했어요." 추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농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아이들아, 매우 좋은 일이다. 내년에는 절반 크기의 밭에만 농사를 지어라."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그곳에 도착한 미국인들은 인디언들이 사소한 일 때문에 애쓰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인디언들은 보잘것 없는 도구로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그것을 본 미국인들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불쌍한 사람들 같으니! 우리가 이들을 구해..

참살이의꿈 2007.07.29

가난해지기

-아무도 부유해지려고 하지 않으면 모두가 부유해질 것이다. -모두가 가난해지려고 하면 아무도 가난해지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의미나 신념을 전달하는데 글이 길어야 할 필요는 없다. 길고 지리한 글은 도리어 읽는 사람의 정신을 산만하게 하고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짧고 간명한 글이 사람들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고 감동을 안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짧은 시의 형태로 쓰여진 피터 모린의 글은 인상적이다. 자발적 가난과 자기희생 같은 새로운 가톨릭적 가치관을 주장한 그는 안정과 물질적 자기만족을 최고로 여기는 부르조아 문화와 종교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런 생각과 비전들이 '쉬운 글들'이라는 이름으로 그 특유의 짧은 문장에 잘 나타나 있다. 잠언시로 불러도 좋을 그의 글 몇 편을 읽어본다. < 계급과 충돌 ..

참살이의꿈 2007.07.14

[펌] 떠남

“그리고 예수가 갈릴리 호숫가를 지나가다가 보니, 시몬과 시몬의 형제 안드레아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 그들은 어부들이었다. 예수는 그들에게 "내 뒤를 따르시오. 당신들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소" 하고 말했다. 그러자 즉시 그들은 그물을 버려두고 그를 따랐다.” 성서에서 예수가 첫 제자를 구하는 장면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장면이 예수의 신비능력을 드러내는 장면이라고도 하지만 예수와 두 사람이 전혀 알지 못하던 사이라고 적혀있진 않다. 말하자면 이 장면은 마치 영화처럼 앞의 여러 장면이 생략되어 있다. 세례요한이 체포되고 예수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시몬(베드로)과 안드레아 형제는 예수가 고심 끝에 고른 첫 동지들이다. 갈릴리의 수많은 청년들 가운데 유력한 메시아 감으로 지목되던 예수..

참살이의꿈 2007.07.10

따스한 결핍

요사이 들어 자주 생각나는 단어는 ‘절제’다.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이 누군들 없으랴마는 어느 정도 선에서 참고 만족하는 미덕이 자꾸만 그리워진다. 그것은 돈이고, 사람이고 마찬가지다. 욕망의 충족이 기쁨을 주는 게 사실이지만, 욕망의 절제는 더 속 깊은 행복으로 연결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 욕망의 충족과 절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야말로 인생살이의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은 더 많은 돈을 원하고, 사랑은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그러나 탐욕과 탐애는 늘 뒤탈을 남긴다. 그때 자제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일이 터진 다음에야 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인간의 기본 욕구를 사회적 제도나 가치관으로 억압하는 것에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

참살이의꿈 2007.07.06

순수에의 열정

내 젊은 날의 노트를 보면 '순수'와 '진리'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씌어 있다. 그때는 그만큼 삶의 뜻에 몰두했고, 순수에의 열정으로 가득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 시절이 결코 낭만적으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엄청난 내적 고통과 정신적 방황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열정은 무엇이든 불살라 버리는 뜨거움이 있다. 사랑의 열정에 휩싸인 사람을 상상해 보면 알 수 있듯열정은 맹목적이고 저돌적이어서 그 안에는 위험한 화약고가들어있다. 젊었을 때의 열정과 비슷한 경험을 40대 후반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겪었다. 인생 사추기(思秋期)의 통과의례를 진하게 경험한 것이다. 수 년간 지속되었던 그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역시 현실적으로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인생 공부의 수업료 치고는 너무나 값이 비쌌다. 나..

참살이의꿈 2007.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