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624

내 마음의 땅 끝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이 예수의 메시지만큼 기독교인들을 선교 열정으로 가득하게 하는 구절도 없다. 그것은 지상의 예수가 제자들에게 내린 마지막 말로서, 기독교인들에는 거의 절대적인 명령으로까지 받아들여진다. 내 대학교 때 동기 하나도 이미 30년 전에 아프리카로 선교를 위해 떠났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종교적 열정을 가진 적이 있었을 것이다. 지난 번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 의한 인질 사태에서 드러났듯 특히 우리나라의 선교 열정은·세계 제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불타는 열정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마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안타까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얼마 ..

참살이의꿈 2007.09.10

무언가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

루이스에 심취해 있는 H가 '영광의 무게(The Weight of Glory)'라는 10여 쪽 되는 글을 보내주었다. 이 글은 1941년에 루이스가 어느 교회에서 한 설교라고 한다. 이 글에서 루이스는 인간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어떤 갈망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일생동안 우리를 따라다니는 노스탤지어(nostalgia), 즉 우주의 무언가로부터 자신이 떨어져 나왔다고 느끼고 그것과 다시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갈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볼 때 그것은 근원적인 쓸쓸함이고 외로움이며 그리움이다. 모든 인간 활동이나 예술의 근저에는 이 갈망이 주된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갈망의 정체에 대하여 무수한 종교적, 철학적 논의가 있어 왔고 예술적 해석 또한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루이스는 기독교적..

참살이의꿈 2007.09.04

집이 뭐길래

집 없는 설움보다 큰 설움은 없다는 말이 있다. 특히 한국 사람이 땅이나 집에 집착하는 이유도 돈이 된다는 것과 함께 없을 때의서러움을 알기 때문이다. 아직도 전체 세대의 40%가 무주택가구라는데, 땅 투기와 아파트 투기로 인해 그들이 받는 상처는 집 있는 사람들은 종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도 셋방살이를 전전한지 어느덧 7년 째가 되어간다. 그동안에 서울의 집값은 서너 배씩 뛰어올라 가만히 앉아서 재산가치가 반의 반 토막으로 줄어드는 것을 경험했다. 이제 집 한 채 장만하기도 어려운 처지가 되어 버렸다. 아무래도 그런 상실감을 가장 심하게 느끼는 것은 아내다. 최근의 부부갈등의 원인도 거기서 출발하고 있다. 집이 있든 없든살림에 무관심한 남편이 밉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참살이의꿈 2007.08.24

불만에 찬 물고기

약 4억년 전 바다에 살던 물고기가 최초로 육지에 발을 디뎠다. 그 물고기가 바로 우리들의 직계 조상이 되었다. 물 속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세계로 눈을 돌린 그 물고기의 한 걸음이야말로 육상 생물의 진화에 결정적인 전기가 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달 착륙 이상의 위대한 한 걸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물고기는 어째서 자신의 세계를 벗어날 시도를 할 수 있었을까? 무슨 까닭이 바깥 세계를 넘보게 했을까? 유전자에 내재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확장욕 때문이었을까? 냉혹한 수중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추측하지 못하는어떤 불만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수중 세계를 벗어나려고 한 그 최초의 물고기를 '불만에 찬 물고기'로 부르고 싶다. 뭔가 새로운 것은 '불만'..

참살이의꿈 2007.08.17

청계수 침례

한 달 전에 부끄러운 경험을 했다. 직장 동료 몇이서 함께 한 술자리에서 대취하여 청계천에 나갔다가 발을 헛디뎌 청계천 물에 빠진 것이다. 물은 얕았지만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큰대자로 엎어졌으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 잠수를 해버렸다. 당시는 한밤중이었지만 도심이라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 주변에 있었는데, 물에 빠지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창피해서 어서 자리를 뜨고 싶다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어디를 가겠는가, 한참을 앉아서 옷을 대략 말리고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술에 취했는지 그 전부터 필름이 끊어졌고, 지금도 물에 빠진 후의 상황만 조금 기억 날 뿐이다. 아마 그때 옆에 K가 없었다면 더 추한 꼴을 보였을지 모른다. 그 뒤에는 웃으며 ..

참살이의꿈 2007.08.13

죄는 씻으면 되지요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기 위해 신애는 교도소에 찾아간다. 그런데 대면한 범인은 너무나 태연하고 천연덕스럽다. "하나님을 만나고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그래서 늘 감사하고 평화롭습니다." 기독교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던 신애는 그 모습에 충격을 받고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킨다. 영화 '밀양'에 나오는 장면이다. 4년 전, 20대 아버지가 아들 둘을 동작대교에서 한강 아래로 던져 죽인 충격적 사건이 있었다. 뒤에 범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왜 죽였어요?" "살기 힘들어서요." "그럼 왜 같이 죽지 않았나요?" "기독교인이라 자살은 안되요." "자식은 죽여도 되나요?" "큰 죄를 지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기독교인이면 자식은 죽여도 되나요?" "죄는 씻으면 되지요!" 산 아들을 던진 것도 충격적..

참살이의꿈 2007.08.04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

'역사는 발전하는가' 또는 '역사는 진보하는가'라는 질문을 흔히 하게 된다. 이때 질문을 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발전이나 진보의 개념이 무엇인지가 우선 명확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의미 없는 논쟁만 남을 뿐이다. 후배 K와의 대화에서는 늘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자기 나름대로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고 있지만 결코 독단적이지도 불편부당하지도 않다. 그것은 그의 폭넓고 깊은 인문학적인 소양 때문일 것이다. 그는 진보의 기준을 인간이 얼마나 지혜로워졌느냐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런 관점에서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어떻게 보면 인간 역사는 쉼없는 과오의 반복이다. 지난 역사에서 배우고 깨우친 것이 있을진대 미련스럽게도 똑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인간들이다. 지식의 양은 엄청나게..

참살이의꿈 2007.08.03

다른 생각

화학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농부들에게 비료를 주러 왔다. 농부들은 그 비료를 밭에 뿌렸다. 그리고 매우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래서 농부들은 그 부족에서 가장 지혜로운, 나이 들고 눈이 먼 추장을 찾아가 말했다. "우리는 작년보다 두 배나 많은 양을 생산했어요." 추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농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아이들아, 매우 좋은 일이다. 내년에는 절반 크기의 밭에만 농사를 지어라."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그곳에 도착한 미국인들은 인디언들이 사소한 일 때문에 애쓰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인디언들은 보잘것 없는 도구로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그것을 본 미국인들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불쌍한 사람들 같으니! 우리가 이들을 구해..

참살이의꿈 2007.07.29

가난해지기

-아무도 부유해지려고 하지 않으면 모두가 부유해질 것이다. -모두가 가난해지려고 하면 아무도 가난해지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의미나 신념을 전달하는데 글이 길어야 할 필요는 없다. 길고 지리한 글은 도리어 읽는 사람의 정신을 산만하게 하고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짧고 간명한 글이 사람들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고 감동을 안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짧은 시의 형태로 쓰여진 피터 모린의 글은 인상적이다. 자발적 가난과 자기희생 같은 새로운 가톨릭적 가치관을 주장한 그는 안정과 물질적 자기만족을 최고로 여기는 부르조아 문화와 종교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런 생각과 비전들이 '쉬운 글들'이라는 이름으로 그 특유의 짧은 문장에 잘 나타나 있다. 잠언시로 불러도 좋을 그의 글 몇 편을 읽어본다. < 계급과 충돌 ..

참살이의꿈 2007.07.14

[펌] 떠남

“그리고 예수가 갈릴리 호숫가를 지나가다가 보니, 시몬과 시몬의 형제 안드레아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 그들은 어부들이었다. 예수는 그들에게 "내 뒤를 따르시오. 당신들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소" 하고 말했다. 그러자 즉시 그들은 그물을 버려두고 그를 따랐다.” 성서에서 예수가 첫 제자를 구하는 장면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장면이 예수의 신비능력을 드러내는 장면이라고도 하지만 예수와 두 사람이 전혀 알지 못하던 사이라고 적혀있진 않다. 말하자면 이 장면은 마치 영화처럼 앞의 여러 장면이 생략되어 있다. 세례요한이 체포되고 예수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시몬(베드로)과 안드레아 형제는 예수가 고심 끝에 고른 첫 동지들이다. 갈릴리의 수많은 청년들 가운데 유력한 메시아 감으로 지목되던 예수..

참살이의꿈 2007.07.10

따스한 결핍

요사이 들어 자주 생각나는 단어는 ‘절제’다.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이 누군들 없으랴마는 어느 정도 선에서 참고 만족하는 미덕이 자꾸만 그리워진다. 그것은 돈이고, 사람이고 마찬가지다. 욕망의 충족이 기쁨을 주는 게 사실이지만, 욕망의 절제는 더 속 깊은 행복으로 연결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 욕망의 충족과 절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야말로 인생살이의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은 더 많은 돈을 원하고, 사랑은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그러나 탐욕과 탐애는 늘 뒤탈을 남긴다. 그때 자제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일이 터진 다음에야 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인간의 기본 욕구를 사회적 제도나 가치관으로 억압하는 것에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

참살이의꿈 2007.07.06

순수에의 열정

내 젊은 날의 노트를 보면 '순수'와 '진리'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씌어 있다. 그때는 그만큼 삶의 뜻에 몰두했고, 순수에의 열정으로 가득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 시절이 결코 낭만적으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엄청난 내적 고통과 정신적 방황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열정은 무엇이든 불살라 버리는 뜨거움이 있다. 사랑의 열정에 휩싸인 사람을 상상해 보면 알 수 있듯열정은 맹목적이고 저돌적이어서 그 안에는 위험한 화약고가들어있다. 젊었을 때의 열정과 비슷한 경험을 40대 후반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겪었다. 인생 사추기(思秋期)의 통과의례를 진하게 경험한 것이다. 수 년간 지속되었던 그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역시 현실적으로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인생 공부의 수업료 치고는 너무나 값이 비쌌다. 나..

참살이의꿈 2007.06.25

자유와 자유인이라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자유인이란 상식적 규범의 틀에서 벗어날 줄 아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자유인을 꿈꾸지 않을 사람은 없겠지만, 우리를 옭아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틀을 직시하고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실제 그리 많지 않다. 보통 사람들의 자유란 안온한 그 틀 안에서의 자유를 가리키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 식의 자유란 사실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할 뿐이다. 세상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추종하는 무리를 우중(愚衆)이라고 불러도 괜찮다면, 우중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사니까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별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이다. 안 된 말이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런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있다. 그들에게는 상식의 틀을 깰 자의식도 용기..

참살이의꿈 2007.06.15

아득한 그리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사람 속에서 샘솟아 나오는 그리움으로 산다. 이그리움은 시원도 모르고 깊이 또한 측량할 길 없어, '아득한 그리움'이라 나는 부른다. 사막으로산속으로 세상을 피해 참살이를 찾아가는 발걸음도 이 그리움 때문이다. 무대에서 춤추는 광대의 신바람도 이 그리움 때문이다. 때가 되면 짝을 찾고,이성의 향기를 연모하는 것도 이 그리움 때문이다. 직장에 나가고, 돈을 벌고, 가족을 지키고 부양하는 것도 이 그리움 때문이다. 이 그리움이 없으면 사람은 죽는다. 모든 생명의 힘과 에너지의 근원이야말로 이 그리움이다. 모든 존재들은 이 그리움으로 인하여 살아간다. 저 작은 풀꽃도 그리움으로 인하여 싹이 트고 잎을 내고 열매를 맺는다. 밤하늘의 달도 그리움으로 인하여 지구 둘레를 떠나지 못하..

참살이의꿈 2007.06.10

신비한 힘

세상을 살다 보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기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오감으로 드러난 세계 외에 또 다른 세계의 존재를 어렴풋이나마 감지하게 된다. 그런 것들 중에 심리학에서 동시성(Synchronicity), 또는 감응이라 불리는 현상이 있다. 이 신비한 현상을 최초로 규명한 심리학자는 칼 융(Carl Jung)이었다. 융은 어느 환자의 꿈에서 왕쇠똥구리 딱정벌레가 나오는 얘기를 듣던 중 창문을 두드리는 이상한 소리에 밖을 보니 그 지역에서 드문 왕쇠똥구리가 유리창에 붙어 있었다. 이 사건이 융을 기묘한 일치 현상에 대한 연구로 이끌었다고 한다. 이런 우연의 일치 현상은 누구나 일상에서 가끔씩 경험한다. 문득 옛 친구가 떠올랐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거나, 아니면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참살이의꿈 2007.05.30

묵가 공동체

춘추전국시대에 유가(儒家)와 함께 쌍벽을 이룬 것이 묵가(墨家)였다. 그러나 묵자(墨子)의 사상은 평민 중심의 사상이었으므로 지배층에 의해 배척되고 결국 역사에서 사라졌다. 근래에 와서 다시 새롭게 조명되고 있지만 역시 주류사상으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묵자가 선택한 길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만들어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공동체의 기본 이념은 겸애(兼愛)와 교리(交利)라고 할 수 있다. 겸애(兼愛)는 말 그대로 무차별적인 사랑을 뜻한다. 부모나 자식이라고 하여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랑하지 않고, 친척 사이가 아니라고 하여 다른 이를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공자도 인(仁)을 강조했지만 묵자의 겸애와는 차이가 있다. 묵자의 겸애는 문외한인 내가 볼 때는 예수의 사랑과 닮은 데..

참살이의꿈 2007.05.11

제 2의 인생

아이들이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 KFC다. KFC 치킨 가게 앞에 서있는 할아버지와 내가 비슷하다고 이놈들이 생각한 모양인데 한 아이에게 물어보니 인자하게 웃는 모습이 닮아서 그렇다고 한다.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은 유감이지만 기분 나쁜 별명은 아니다. 아이들의 보는 눈은 정확하다고 믿는 편이고, 다른 사람이 보는 내 이미지가 긍정적인 데 일단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근래 사람들이 내 인상에 대해 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대체로 부드럽다거나 여유가 있어 보인다, 또는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는 말을 듣는 편이다. 물론 거기에는 외교적 언사도 있겠지만 그렇게 비호감인 사람은 아니다라는 정도는 확실히 알 수 있다. 얼마 전에는 동료들로부터 피부 얼짱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리고 흰머리만 아니면 훨씬 젊어..

참살이의꿈 2007.05.06

귀연(歸然)

7년 전 시골로 내려가기로 결심했을 때 어떤 명칭을 붙일지 고민을 했다. 내가 도시를 떠나 시골로 들어가려는 목적이 있었으므로 거기에 맞는 적당한 이름을 부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말하는 귀농과는 성격이 달랐으므로, 뭔가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귀본(歸本)’이었다. 귀본은 ‘근본(根本)으로 돌아가기’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나름대로 해석하고, 내포하고 있는 철학적 의미가 좋아 내 자신만의 용어로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중에 사전에서 찾아보니 ‘귀본’은 불교 용어로 사람이 죽는 것을 의미했다. 아무리 내 식대로 쓴다고는 하지만 별로 좋은 말이 아닌 것 같아 그 뒤로는 잘 사용하지 않았다. 이제 내 삶의 방식을 나타낼 나의 용어를 다시 만들 필요를 느낀다. 그것은 현대인이 잃어버..

참살이의꿈 2007.05.04

이 시대에서 가난의 가치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무슨 살림이 이렇게 많이 필요한지 다시금 놀라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에 걸쳐 쓰지 않는 물건들을 버렸는데 그 양 또한 만만치 않았다. 현대의 도시에서의 삶은 쓰레기를 만드는 노릇에 다름 아닌 것 같았다. 사실 대부분이 쓰레기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인데, 예전 같으면 고치고 손을 봐서 충분히 사용할 것들이 단지 쓰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이다. 특히 옷 종류는 단지 유행에 뒤지고 싫증난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것들이 태반이었다. 솔직히 버리면서도 뭔가 죄를 짓는 느낌 때문에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공부는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지만, 물건을 버린다는 것은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것은 같이 생활한 물건과의 정서적 교감 때문일..

참살이의꿈 2007.04.27

[펌] 내 하느님이 계시는 곳

우리는 흔히 예수님을 만나러 교회나 성당에 간다. 성당에 가면 제대 위에 커다란 십자고상이 있고 벽에는 다양한 성화나 14처를 걸어 둔다. 그리고 안벽 감실에는 성체가 모셔져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평일에도 성당에 가면 저절로 머리가 조아려진다. 미사가 거행되면 그 분위기가 더욱 고조된다. 참례자 모두 지난 주간 자신이 저지른 죄를 고백하고 주님의 은총 속에 새롭게 거듭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미사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매일의 삶을 지배하는 ‘아집과 탐욕’에 사로잡혀 정신 없이 하루를 보낸다. 교회는 이를 일러 ‘악’이라고 부른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일주일 가운데 6일을 악의 지배 아래 있다가 겨우 하루 성당에 나가 자신의 게으름과 나약함을 탓하며 다시는 그..

참살이의꿈 2007.04.22

내 탓이오

나는 겉보기와는 달리 치밀하지 못하다. 일을 대충대충 해버리는 것이 단점이다. 다른 사람들은 무척 꼼꼼하고 자상한 성격일것이라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번에 터를 정리하면서 그런 나의 성격 때문에 안 해도 될 고생을 하고 있다. 자신이 사서 형질 변경 시키고 수 년간 살았던 땅이 몇 필지인지도 모르고, 조금만 신경을 썼어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을 서류상의 오류를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터를 넘겨주면서 자기 땅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으니 할 말이 없다. 덕분에 처리기간도 늘어나고서류 준비나일의 양도 몇 배로 늘어났다. 경비가 많이 들어간 것도 물론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도 괜한 수고를 끼치는 폐를 입혔다. 삽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을 중장비가 동원되어야했던 것이다. 이것이 다 일을 얼렁뚱..

참살이의꿈 2007.04.18

부활의 삶

이번 부활절은 새로 옮긴 성당에서 맞이했습니다. 워낙 경황없이 맞은 부활절이라 낯선 분위기와 더해져 마음이 어수선한 가운데 미사를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선지 나에게 있어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지, 또 부활의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부활이 단순한 육신의 되살아남이 아니라 보다 깊은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보 신자가 그 깊은 의미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단지 우리가 죽은 뒤 언젠가는 예수님을 따라 부활해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것으로 믿는 그 이상의 차원이라는 것은 알 것 같습니다. 기독교 신자가 부활을 믿는다는 것이 현세에서 예수 잘 믿어 복 받고 잘 산 다음에 죽어서도 영생을 약속 받으려는 마음에 그쳐서는 안 될..

참살이의꿈 2007.04.11

부탄의 행복 실험

부탄이라는 나라를 처음 접한 것은 재작년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제목의 부탄 여행기를 읽었을 때였습니다. 책을 통해 아름다운 풍광과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에 반했었는데 비록 단편적이지만 그 뒤에 알게된 부탄의 모습은 저에게는 무척 경이롭게 느껴졌습니다. 알다시피 부탄은 1인당 연간소득이 1200달러에 불과한 빈국입니다. 인구도 70만 정도에 불과한데 가끔씩 발표되는 행복지수를 보면 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불가사의한 나라입니다. 정치 형태로는 왕권국가로 불교가 생활의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군주의 왕권이 아니라 국민 중심의 왕권이라는 것은 "국민의 행복이 왕보다 더 중요하다"는 국왕의 선언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왕이 도입한 GNH[Gross National Happ..

참살이의꿈 2007.03.28

삶의 전환기에서

살다 보면 인생에도 매듭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인생 역시 비연속적인 단위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대개는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런 매듭을 분별해 내지만 어떤 때는 인생의 흐름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채기도 한다. 특히 한 매듭에서 다음 매듭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에서 사람은 지나온 삶과 현재를 비교하며뭔가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예감과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변화란 새로움과 성숙의 조건이지만 동시에 두려움과 불안의 원인이기도 하다. 패러다임의 전환기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내적 갈등이다. 기존의 삶의 태도를 수정한다는 것은 한 세계에 대한 포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내용이 어떠하든 간에 그것은 번민과 고통을 수반한다. 새로 얻게 될 것의 의미는 불확실한 상태에서 자신의 삶을 지탱해 주던 기..

참살이의꿈 2007.03.25

그런데 왜 행복하지 않지?

초심을 지키고 사는 이들은 드물다. 일에 파묻히면 잊어 버린다.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도 까먹는다. 잊고 살다보면 가려던 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불행한 이들이 많다. 그때부터 스스로 최면을 건다. 내가 젊어서, 철이 없어서, 세상을 몰라서 그랬어. 지금 가는이 길이 옳아. 저기 봐.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길을 가잖아. 그런데, 그런데 왜 행복하지 않지?

참살이의꿈 2007.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