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624

참살이 공동체의 성공 조건

누구나 한 번씩은 이상적인 공동체에 대한 꿈을 꾸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유토피아적인 공상에 그치지만 극소수의 사람은 그 꿈을 현실로 옮기기도 한다. 그러나 공동체에 대한 시도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실패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는 것은 강력한 종교적 유대로 묶여진 공동체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아미쉬 공동체라 할 수 있다. 특수한 경우지만 수백 년간 지속되는 수도 공동체도 있고, 이스라엘의 키부츠 역시 유대교라는 신앙의 바탕에서 발전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순수한 종교적 목적이 아닌 보편적인 참살이를 위한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갈망도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를 뛰어넘는 제 3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대두된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의 ..

참살이의꿈 2008.11.05

웃음 90 초, 근심 3 시간

모 기업에서 한국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재미있는 설문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하루 평균 10 회를 웃는데, 한번에 평균 9 초를 웃는다고 한다. 대신에 걱정하고 근심하는 시간은 하루에 3 시간 6 분으로 나왔다. 즐거워하는 시간보다 근심에 잠긴 시간이 124 배나 되는 것이다. 일생을 80 년이라 가정하면 사람은 평생에 30 일을 웃는 반면, 10 년여는 근심 걱정에 싸여 살아간다는 얘기다.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말이 실감 난다. 잠자고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많은 시간을 근심과 걱정 속에서 살아가는 셈이다. 뭐 특별히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조사이지만 세상을 사는 일이 누구에게나 그렇게 녹녹치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근심 걱정의 양이 아니라 거기에 매몰되는 삶이 ..

참살이의꿈 2008.10.24

B 선배의 귀농

선배 B가 내 고향 가까이로 귀농을 했다. 내 고향집에서 약 4 km 정도 떨어져 있으니 멀다고는 할 수 없다. 벌써 3 년째가 되었다는데 이제야 소식을 듣고 만나볼 수 있었다. 소백산 자락에 3만여 평의 터를 마련하고 밭농사와 숲 가꾸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밭에는 주로 과수나무를 심었고, 산에도 유실수와 산나물을 중심으로 묘목을 심고 씨를 뿌리며 기초 터전을 닦고 있다고 했다. 선배는 인상이 이미 농군이 다 되어 있었다. 대학생이었을 때도 농촌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인연을 맺더니 직장도 농촌으로 돌아다니며 영 도시와는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여러 곳을 다니다가 이곳에 택지를 하고 정착하게 되었는데, 명예퇴직을 한 선배는 드디어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가족에 대해서 물어보니 아직은 본..

참살이의꿈 2008.10.15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예수는 말했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뺨을 때린다는 것은모욕적인 행위다. 더구나 오른손잡이가 상대방의오른뺨을 때리기 위해서는손등으로 쳐야 하는데 이는 더욱 모욕적이다. 이럴 때 왼뺨마저 돌려 대어준다는 것은 항복이나 복종이 아니라 저항의 표시다. 너의 부당한 행위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다. 네가 나를 수치스럽게 할 수 없다는 무언의 항의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주어라.”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라는 말도 같은 의미다. 그런 포기의 행위에는 내어주지만 꺾이지는 않는 저항 정신이 들어있다. 불의의 체제에 대한 도전이지만 폭력적 방법이 아니라 체제를 무시하고 참여하기를 포기하는 완전한 내어줌이다..

참살이의꿈 2008.09.15

은둔형 외톨이의 변명

컴퓨터나 인터넷의 발달이 도리어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불안을 야기한다는 주장이 있다. 익명의 사람들과 전지구적 규모로 연결이 되지만 온라인으로서의 한계와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과다한 숫자 탓이라고 한다. 인간은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공적 자아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데,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의 최대 인원은 약 150 명 정도라는 것이다. 정보화 및 세계화로의 이행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집단의 크기를 팽창시켰고 이전에 있었던 작은 공동체들이 해체되면서 개개인은 소외, 불안, 자존감 결핍에 시달리게 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사무실에 컴퓨터가 들어오면서 인간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컴퓨터 앞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컴퓨터는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참살이의꿈 2008.08.16

좀 덜 착하고 좀 더 솔직하기

좀 덜 착하게 살고 싶다. 물론 착함은 좋은 뜻을 가진 말이다. 허나 그것이 관습이나 전통에 충실하고 순종하는 의미를 가진 것이라면 조금은 거부하고 싶다. 난 어릴 때부터 착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으며 자랐다. 온순하고 얌전하며 어른들이 시키는 것에 고분고분 잘 따랐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의 마땅한 도리라고, 정도(正道)라고 배웠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아는 데에는 나로서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젠 좀 덜 착하게 살고 싶다. 그것은 사회적 규범이나 체면보다는나 자신에 더 충실하겠다는 의미다.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는 나의 내면에 더 귀를 기울이겠다는 뜻이다. '아니오'라고 분명한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불량스럽게 보일지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행동하겠다. 좀 더 솔직하게 살..

참살이의꿈 2008.07.24

흥부는 싫어요

“아이들에게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배역을 맡기려고 했더니 서로 흥부역을 맡으려고 하지 않아요. 이유를 물었더니 바보 같아서 싫다는 거예요.” 초등학교에 영어를 가르치러 온 외국인 원어민교사가 한 말이다. 역할놀이를 통해 영어를 가르치려 했는데 엉뚱한 데서 한국인의 의식의 한 단면을 보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아무리 도덕적 가치 기준이 매몰되고 배금주의가 팽배해 있다고 해도 어린이들의 의식에까지 이런 풍조가 물들어있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더구나 교사들 교재에는 그 단원의 결론이 ‘놀부를 닮자!’로 나와 있다고 한다. 나로서도 잘 믿겨지지 않는 얘기다. 자본주의의 원조인 나라 사람이 의아하게 여길 정도로 지금 우리의 의식은 너무나 물질만능주의에 젖어있다. 도덕과 정신적 가치를 무엇보다 높..

참살이의꿈 2008.06.13

먹고 살 만큼의 돈

부동산 쪽으로 재테크를 잘 해 부자가 된 친구에게 얼마큼 돈을 벌었느냐고 물었더니 먹고 살 만큼 모았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먹고 살 만큼’이란 얼마만한 돈일까? 예전에는 흔히 먹고 살 만큼의 돈만 벌면 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지금도 그런 말을 쓰긴 하지만 양이나 질에서 옛날의 어감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지금 사람들이 쓰는 ‘먹고 살 만큼’이라는 말에는 거의 한계가 없어 보인다. 10억을 가져도, 100억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시대가 불안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돈밖에 확실한 것이 없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직장에서 은퇴한 뒤에 내 생활비는 얼마쯤이면 될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과 세상에 부대끼는 노릇 그만두고 산 속에 숨어들어가서 살 때..

참살이의꿈 2008.05.22

꽃순이와 나무꾼

지난 주 KBS2 TV 에서는 '꽃순이와 나무꾼'이라는 제목으로 강원도 정선 산골에서 살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나는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그 프로를 보게 되었는데 그분들의 순박한 마음씨와 무욕의 삶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도시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매스컴에 자주 소개되기에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이분들의 모습은 뭔가 달랐다. 그것은 사람의 향기였다. 두 사람이 발하는 인간적인 순수함과 매력은 신선한 감동이었다. 나무꾼은 1967년에 휴전선을 넘어 귀순했다. 그런데 그 동기가 특이하다. 세계일주를 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강원도 산골로 들어가 20여 년간 혼자 살아간다. 꽃순이는 결혼 생활에 실패하고 세상을 등지고..

참살이의꿈 2008.04.03

은총의 감성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은총의 감성'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은총'이라는 말이 비종교인에게는 거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현재의 나를 이루는 것이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고 이웃이나 다른 외적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받아들이는마음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기독교인이든 불교도이든 종교인이란 은총을 믿는 사람들이다. 즉,대상이 누구든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 또는 최상의 것을 그로부터 거저 받았다는 감성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감성'도 내가 무척 좋아하고 아끼는 말이다. 감성은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마음에서 돋아나는 새싹이다. 사물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재의 본모양대로 볼 수 있는 눈이다. 감성은 여리고 여성적이며 수동적..

참살이의꿈 2008.03.10

동경

나는 '동경'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동경(憧憬)은희망이나 소망과는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동경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하며 그것만을 생각함'이라고 나와 있지만, 그리워하는 대상이희망이나 소망과는 다른 것으로 나에게는 생각된다. 희망이나 소망에는 바라는 모든 것이 포함되는데, 감각적이고 즉물적인 것도 그것들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동경이라고 하면 뭔가 정신적이며 영적인 것을 그리워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동경은 현실세계 뒤편에 있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며, 완전함에 대한 또는 절대에 대한 사모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영원 또는 신성과 하나 되려는 동경이 존재한다. 현실의 만족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영적인 갈증이며 갈망이다. 그것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나타내는 징표이기도 한데..

참살이의꿈 2008.03.03

한 사람의 혁명

‘한 사람의 혁명’(One-Man Revolution)은 미국의 평화운동가이며 기독교 아나키스트인 애먼 헤나시(1893-1970)가 제창한 개념이다.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대로 오늘 당장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바뀔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고, 세상이나 다른 사람 핑계를 댈 필요도 없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법은 우선 자기 자신이 변하는 것이고, 그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이것이 ‘한 사람의 혁명’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내용이다. 애먼 헤나시는 한 마디로 용기의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바를 그대로 실천했다. 불의에는 온몸으로 저항하며, 그의 아나키스트 철학을 실천하며 살다 죽었다. 젊었을 때 그는 징병을 거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동참을 권유하다가 교도소..

참살이의꿈 2008.02.12

내 인생의 나이테

사람에게도 지나온 흔적이 눈으로 보이게 남는다면 나무와 같은 나이테가 있을 것 같다. 나무의 나이테는 기온에 따라 세포의 성장 속도가 다르므로 세포 크기에 차이가 생겨 생긴다는데, 사람에게도 분명 그런 변화가 있을 법하기 때문이다. 일생을 여일하게 평탄하게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짧은 한평생을 살면서 누구나 시련과 고통을 겪는다. 시기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다. 그런 인생의 매듭이 한 인간의 나이테로 나타날 것 같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은 굵고 두꺼운 검은 줄이 많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나이테의 줄이 희미하게 나타날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이 느끼는 인생 짐의 무게는 주관적인 것이어서 우리가 겉으로 보는 그 사람의 모습과 실제 나이테의 모양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도 있다...

참살이의꿈 2008.01.27

조롱 속의 행복

새장의 새나 어항 속의 물고기를 볼 때마다 고개를 드는 의문이 있다. 저 새나 물고기는 과연 행복할까? 날지도 못하고 마음대로 헤엄을 치지도 못하는 상태는 야생의 본능을 가진 그들에게 분명 스트레스로 작용할 것이다. 그것이 동물원의 동물을 우리가 측은하게 바라보게 되는 이유다. 그러나 대신 먹이를 구하는 어려움도, 적으로부터 받는 위협도 없으니 어떤 면에서는 평화와 안온함을 누릴지도 모른다. 그런 갇힌 우리 속의 편안함이과연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롱 속의 행복이 참다운 의미의 행복이 되는가? 사람이 사는 목적이 행복에 있다고들 말한다. 행복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라고 누구나가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조롱 속의 행복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의심을 하는 사람은 적다. 문자적 정의로서의 행복은 ..

참살이의꿈 2008.01.22

누가 밀었어

옛날에 어느 나라의 왕이 하나뿐인 딸에게 좋은 배필을 구해주길 원했다. 딸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만큼 용기와 패기 있는 청년을 구하기 위해서 왕은 방을 내걸었다. "누구든지 0월 0일 시합에 나와 이기는 사람에게 내 딸을 주고 사위로 삼겠다!" 구름처럼 몰려든 청년들 앞에 주어진 시합의 내용은 악어가 가득찬 호수를 헤엄쳐 건너갔다 오는 것이었다. 아무도 감히 뛰어들 엄두를 못 내고 그저 물끄러미 호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한 쪽에서 첨벙하는 소리가 났다. 한 용감무쌍한 청년이 물에 뛰어 든 것이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호수 반대편을 향해 헤엄쳐 갔고 무사히 돌아왔다. 모두의 박수갈채와 환호를 한몸에 받으며 물 위로 올라온 이 청년에게 왕은 다가가 축하의 인사말을 전하려 했다. ..

참살이의꿈 2008.01.02

觀海難水

맹자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孔子登東山而小魯登太山而小天下 故觀於海者難爲水遊於聖人之門者難爲言 '공자는 동산에 올라서 노나라가 작다는 것을 알았고, 태산에 올라서는 천하가 작다고 느꼈다. 그러므로 바다를 본 사람에게는 물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고, 성인의 문하에서 노니는 사람에게는 말을 하기가 어렵다.' 여기서 관해난수(觀海難水)란'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안이 온 세상인 줄 안다. 그래서 쉽게 물을 말하고 세상을 말한다. 그러나 바다를 본 개구리는 할 말을 잊는다. 큰 것을 깨달은 사람은 무엇이든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법이다. '觀海難水'를 책상 위에 써붙이고 내 자경의 문구로 삼는다. 내가 서 있는 곳은 태산도 동산도 아닌 집 뒤의 작은 언..

참살이의꿈 2007.12.14

믿음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해 대단히 심한 가뭄이 들어서 각 성당마다 비를 기원하는 기도와 미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가뭄은 심해져갔다. 그런 어느 날 미사 중에 강론을 하던 신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 성당에 와서 아무리 기도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비를 내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신자들은 깜짝 놀랐다. "아니, 신부님께서 어떻게 저런 말씀을 하시는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로 성당 안은 금방 소란스러워졌다. 이런 신자들의 반응을 지켜본 신부님이 신자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정말 기도를 하면 비가 오리라고 믿습니까?" "믿습니다." 신자들이 입을 모아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면 지금 여러분 중에 우산을 가져오신 분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

참살이의꿈 2007.12.07

선생님도 스트레스 받나요

무슨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거나, 아니면 어제 밤에는 스트레스 풀려고 술을 마셨다고 하면 사람들은 날 보고 대개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이구동성으로 묻는다. "선생님도 스트레스 받으세요?" 이러면 대략 난감해지는데, 내가 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다. "나 같은 사람이 도리어 더 스트레스에 시달린답니다." 웃으며 하는 그 말 속에는 물론 여러 의미가 들어있다. 사람들은 내 겉모습을 보고 스트레스 같은 것은 받지 않을 것으로 보는 모양이다. 좋게 보아주는 것이 고맙기는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자신의 말 그대로 믿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대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각자가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는 다를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짐을 가장 무겁게 느끼..

참살이의꿈 2007.12.02

은둔을 꿈꾸다

정직하게 살고 싶다. 이것이 나로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다. 정직하다는 것은 우선 나 자신에게 진실된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은 내면의 목소리와 조화를 이루는 삶을 뜻한다. 복잡한 도시 생활은 내면의 목소리와 실제 삶이 늘 엇박자로 논다. 나로서는 위선과 거짓 없는 도시 생활은 상상할 수 없다. 바삐 움직이고 많은 일을 하지만 늘 허전한 것은 우리가 하는 일, 즉 삶의 질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내가 도시를 떠나 산골에 들고 싶은 것은 도시에서는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데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는 탓이다. 정직한 삶을 사는데 가장 적당한 직업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때 나는 그것이 농사짓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농부야말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답게 보인다는 어느 작가의 말에 공감..

참살이의꿈 2007.11.29

내 안의 짐승 소리

내 안에는 짐승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어떤 때는 조용하지만, 어떤 때는 사납게 날뛰며 울부짖는다. 짐승은 때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달 밝은 교교한 밤의 늑대 울음소리가 되었다가, 초원을 헤매는 허기진 하이에나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함정을 파놓고 먹이가 걸려들기는 기다리는 독거미의 음흉함이기도 하다. 그러나 짐승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 짐승은 내 피 속에 흐르는 야성의 에너지다. 이젠 다시 숲을 불태우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짐승을 잡기 위해....

참살이의꿈 2007.11.24

애꾸들 세상

한 눈만 가진 애꾸들의 세상이 있었다. 어느날 두 눈을 가진 사람이 들어왔다. 애꾸들은 이 사람을 자기들과 다르다고 병신이라고 놀렸다. 이 사람은 처음에는 개의치 않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외톨이가 되는 것을 견디기도 어려웠다. 결국 정상이었던 이 사람은 송곳으로 한 쪽 눈을 찔러 애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애꾸들 세상에서는 다수에 속하지 않으면 소외된다. 오직 다수가 진리이고 세상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 바른 길이다. 소수의 목소리나 삶의 태도는 용인되지 않는다. 마치 바이러스를 보듯 세상은 경계심을 품는다. 애꾸들 세상에서 소수를 배격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왕따를 시키고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다.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반체제 성향의소수를 만들지 않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참살이의꿈 2007.11.21

마르코 100번 읽기

존경했던 이현주 목사님의 강연을 찾아다니고, 목사님이 쓴 책들을 열심히 읽던 때가 있었다. 기독교를 통한 구원과 참살이에 온 맘을 바쳤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목사님의 어느 강연에서 성서읽기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목사님이 특이한 방법 한 가지를 소개해 주었다. 네 복음서 중에서 하나를 골라 100번을 읽으라는 것이었다. 조건은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복음서를 처음 읽는다는 자세로 100번을 계속 읽으면 아무리 우둔한 사람도 예수님의 가르침에 나름대로의 깨우침을 얻게 된다고 했다. 한 복음서를 100번 읽는다는 자체가 마치 불자가 부처님께 삼천 배를 올리는 것과 같은 정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옛말에 무슨 뜻인지 모르는 글도 자꾸 읽다가 보면 언젠가는 뜻을 터득하는 때가 온다고도 했다. 같은 복음..

참살이의꿈 2007.11.15

다시 잠들기 어렵다

한밤중에 잠에서 깬다. 싸늘하고 섬찟하다. 마치 누가 심장에다 얼음조각 하나 집어넣은 것 같다. 몰려온 찬 기운에 생명의 온기가 달아난다.꿈 탓일까? 남에게 한 못된 짓이 바위덩이처럼 커 보인다. 바위는 굴러내리며 또 다른 바위를 건드리고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내 삶은 온통 후회되는 짓 투성이다. 최후의 심판대에 선 것처럼 왜 이리 잘못한 일만 떠오르는가. 생이 허전하고 쓸쓸하다. 가슴으로 시베리아 찬바람이 지나간다. 가을 탓인가? 잠꾸러기인 나에게 이런 한밤중의 각성은 예전에 없던 일이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지만 쉽게 잠들지 못한다. 생각은 자꾸만 자책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내 삶은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처럼 가볍고 허망하다. 속에서 쓴물이 나온다. 환하게 웃는 웃음, 밝은 표정들은 모두가 가식이었다..

참살이의꿈 2007.11.12

잘 난 척 하더니

전에는 다른 사람들과 차별성을 두는 데서 내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다. 세상의 속물성을 비난했고, 그런 사람들과는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타인들에게 나의 그런 내심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부터는 잘 난 척 한다는 핀잔을 자주 들었다. 내 세계를 추구할 수록 갈등은 깊어졌다. 유아독존 식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옳은 것이 그른 것과 어울리지 못할 때 그 옳음은 옳음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선이 악을 감싸안지 못할 때 선은 결코 선이 될 수 없음을 배웠다. 물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경계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옳은 것은 그른 것이 있으므로 존재하고, 선과 악 또한 마찬가지다. 옳은 것에만 집착하는 것으로 구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

참살이의꿈 2007.11.07

7 Up

테니스 대회를 마치고 뒷풀이 자리에서 C가 노년의 지혜라면서 '7 Up'에 대해 말해 주었다. C의 구수한 입담 때문이기도 했지만 들어보니 그럴 듯 했다. 내용을 적어달라고 부탁했더니 다음 날 메일로 보내 주었다. 1. clean up 나이 들수록 집과 환경을 깨끗이 해야 한다. 분기별로 주변을 정리 정돈하고,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과감히 덜어 내야 한다. 귀중품이나 패물은 유산으로 남기기보다는 살아생전에 선물로 주는 것이 효과적이고 받는 이의 고마움도 배가 된다. 2. dress up 항상 용모를 단정히 해 구질구질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젊은 시절에는 아무 옷이나 입어도 괜찮지만 나이가 들면 비싼 옷을 입어도 좀처럼 태가 나지 않는 법이다. 3. shut up 말하기 보다는 듣기를..

참살이의꿈 2007.10.31

삶은 때론 갑자기 껄렁해지는 것이니

이 가을에 A씨가 봉화로 거처를 옮긴다고 한다. 10년 전에 A씨 부부는 도시생활을 접고 귀농을 했다. 그분들의 시골살이를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지만, 그 삶은 내가 귀농을 꿈꾸고 어설프게 실행하기까지 용기를 준 원천이 되었다. 그간 즐거움 보다는 어려움에 더 공감을 하며 마음 아프게 바라보았다.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에게 현실은 대개 가혹하다. 그들은 주어진 환경에 잘 길들여져 적당히 적응하며 사는 것이 잘 되지 않는다. 체질적으로 그런 삶에는 알레르기가 일어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부러 힘든 길을 찾아 나선다. '이건 아니야!'라는 내면의 소리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좋아서 선택한 길이지만 세상 안에서 사는 한 현실과의 갈등은 겪지 않을 수 없다. 때로 현실은 가혹할 정도로 시련을..

참살이의꿈 2007.10.19

그늘

나이가 들수록 그늘이 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그늘을 애써 피하지 않게 된다. 어렸을 때는 그저 밝은 것만 보려 했고, 밝은 세계로만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밝은 것이 있기 위해서는 그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인생은 그늘로 인하여 존재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삶의 그늘은 우리를 진중하게 만든다. 음식이 곰삭아야 제 맛을 내듯 그늘은 우리의 삶을 맛깔 나게 해준다. 그늘은 삶을 곰삭게 하는 장치다. 어느 시인의 글에서 ‘그늘 있는 맛’, ‘그늘 있는 삶’이라는 멋진 표현을 보았다. 제대로 된 맛은 그늘 있는 맛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뜻에서 성숙한 삶에는 그늘이 깃들어 있다. 그저 온실 속에서 자란 듯한 사람은 왠지 친근감이 들지 않는다. 경박한 밝음에는 인생의 깊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늘..

참살이의꿈 2007.10.11

아름답게 나이 들기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두 노인네 사이에 갑자기 육탄전이 벌어졌다. 내가 탔을 때는 경노석에 앉아 있던 두 사람 사이에 나이가 몇 살이나 처먹었느냐는 험한 말이 오가고 있었다. 한 사람은 일흔 몇이라고 했고, 더 젊게 보이는 다른 사람은 그보다 몇 살을 더 보태 형님 행세를 했다. 서로 반말과 쌍욕이 오가더니 결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다짐이 벌어지고 안경이 깨어지는 소동까지 일어났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더 큰 화가 생길 뻔 했다. 들어보니 소동의 발단은 사소한 것이었다. 다리를 꼬고 앉은 발이 옆 사람을 건드린 것이다. 복잡한 지하철에서 예의 없는 사람 때문에 짜증이 나는 경우는 흔히 있다. 이번 경우도 그랬을 것이다. 그것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서로간에 날이 선 말들이 오갔을 것이고, ..

참살이의꿈 2007.10.06

힘든 오늘은 행복입니다

'실패는 행복입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헤어짐은 행복입니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슬럼프는 행복입니다 천천히 스스로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힘든 오늘은 행복입니다 행복한 내일이 여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요사이는 기업 광고도 무척 세련되었다. 위의 글은 잡지에서 본 어느 대기업 광고 문안인데 한동안 눈길을 떼지 못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다시 읽어보아도 참 좋은 내용이다. 힘든 오늘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모든 사람들은 어깨에 진 짐이 크든 작든 다들 무겁게 느끼는 법이다. 당신 짐은 작으니 힘들지 않을 거라고 속단하지 말자. 짐의 크기는 달라도 사람이 느끼는 무게는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그 ..

참살이의꿈 2007.09.29

가치관의 반전

남자에게도 폐경기가 있다고 한다. 나이 50 전후로 해서 겪게되는 육체적, 정신적 급변 현상은 남녀에 공통인 것 같다. 이 시기는 육체적으로 노쇠 현상이 나타나고, 생리적으로도 호르몬의 분비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특히 남자에게 있어서는자녀의 성장과 독립, 안정된 일자리의 상실 위험, 가정에서 아내의 위상 증가 등의 요인이 겹쳐 이 시기는 정신적으로 좌절과 방황의 때이다. 그러나 다른 면으로 생각하면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는 희망의 시기라고도 할 수가 있다. 내 경우는 40대 후반부터 심각한 정신적 방황을 겪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우울증으로 시작되었으나 뒤에는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인생의 의미를 회의하고 묻게 되었다. 그때에 나는 가톨릭에 입교했고, 노자와 장자 철학에 빠져들었다..

참살이의꿈 2007.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