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624

앉아서 유목하기

‘유목(遊牧)’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거처를 정하지 않고 물과 목초를 따라 소, 양, 말 등의 가축을 몰고 다니며 하는 목축이라 나와 있고, ‘유목민(遊牧民)’이란 유목을 하면서 이동생활을 하는 민족으로 되어 있습니다. 유목민은 한 곳에 머물지 않으면서 항상 새로운 삶의 조건을 찾아 움직이기 때문에 한 곳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정착민과 대비됩니다. 요즈음 유목(nomad)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나온 어떤 책 표지에는 ‘우리는 유목하는 행복 게릴라 부부’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는데, 유목이라는 말이 무척 낭만적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정착민과 유목민의 구분이 뚜렷했으나 정착민에 의해 현대문명이 건설된 후 유목민의 존재는 거의 잊혀졌습니다. 실제 사막이나 고산지대 등에 남아있는 유목민의 ..

참살이의꿈 2006.04.28

신비체험과 임사체험의 불가사의

인간의 신비한 정신 현상 중에서 특히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종교적 신비체험과 임사체험이 아닐까 싶다. 종교의 창시자들이나 성인들, 그리고 유명한 종교 지도자들에게서는 그들이 경험한 종교적 신비체험이 늘 따라다닌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하늘로부터 권위를 받은 것으로 암시되기도 한다. 불교에서 돈오(頓悟)라고 부르는 깨달음의 순간도 이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이런 종교적 체험은 모든 종교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힌두교의 요가 수행자들에게서는 이런 체험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도 한다. 오랜 침묵이나 기도, 또는 은둔과 고행을 통한 감각의 제어에서 그런 체험은 순간적으로 강력하게 찾아오는 것 같이 보인다. 이런 신비체험에서는 주로 빛과 소리를 통해 메시지가 전달된다. 이런 종교적 신비체험의 특징은 체험 후에 완전..

참살이의꿈 2006.04.27

꽃씨를 뿌리다

올해는 텃밭의 크기를 줄였습니다. 그리고 골과 골 사이도 넓게 해서심는 작물의 양도 작년의 절반 이하로 줄일 계획입니다.골을 만들고 비닐을 씌우는 작업도 이제는 숙달되어 혼자 해도모양이 멋지게 나옵니다. 작년에 밭으로 썼던 곳의 일부는 꽃밭으로 바꾸고 꽃씨를 심었습니다. 봉숭아, 채송화 등 꽃가게에서 사온 꽃씨가 열 종류 가까이 됩니다. 봉지에 들어있는 씨앗의 생김새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꽃의 모습에는 익숙하지만 씨앗은 오랜만에 서로 비교하며 만져볼 수 있었습니다. 이놈들이 제대로만 꽃을 피워준다면 예전 시골집 마당의 화단처럼 고전적인 화단으로 변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꽃잔디 씨를 많이 보내 주어서 둘레에 뿌렸습니다. 아무래도 봄의 마력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땅에서 초록 기운이 돋아나고, 나..

참살이의꿈 2006.04.23

창 밖에 살구꽃이 환하다

텃밭을 일부 정리하고 감자를 한 줄 놓았습니다. 지난주에 고향에 갔을 때 어머니로부터 알이 작은 씨감자를 받았는데 눈을 따지 않고 그냥 심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오랜만에 흙을 만지니 감회가 새롭고 기분도 무척 좋았습니다. 무겁던 몸과 마음이 새 기운으로 충전되는 것 같았습니다. 피곤하지만 뭔가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올해는 작은 묘목 몇 그루만 심었습니다. 앵두나무,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자귀나무. 여기는 이제야 산수유, 살구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벚꽃은 작은 봉오리가 겨우 보입니다. 그만큼 이 동네는 춥습니다. 제가 심었던 나무에서 파릇파릇 새싹이 나오는 모습을 보는 것은 행복합니다. 별로 거두지도 못했는데 나무들은 스스로 자리를 잡고 적응하며 커갑니다. 불평 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참살이의꿈 2006.04.17

물을 넣다

동파를 막기 위해 보일러의 물을 빼고 겨우내 비워두었던 터에 다시 물을 넣었다. 물 빼는 작업과 마찬가지로 물을 넣는 작업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해체한 보일러를 다시 연결하고 에어를 빼내기 위해 보일러관에 물이 꽉 차게 하는 일에거의 두 시간 정도걸렸다. 넉 달이 넘어서 다시 보일러가 돌고 바닥에 온기가 돌아오니 마치 냉동인간이 깨어나 몸에 따뜻한 피가 흐르게 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집도 정이 들면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아껴 주고 잘 관리해 주면 활기에 차 보이지만, 무관심하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왠지 쓸쓸해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보일러를 통해 물이 돌아가고 그래서 발바닥으로 따뜻한 기운이느껴질 때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드는 것이었다. 이젠 터에서 정을..

참살이의꿈 2006.04.05

베짜타 못

‘얼마 뒤에 유다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 가셨다. 예루살렘 양의 문 곁에는 히브리말로 베짜타라는 못이 있었고 그 둘레에는 행각 다섯이 서 있었다. 이 행각에는 소경과 절름발이와 중풍병자 등 수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는데 (그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님의 천사가 때때로 못에 내려와 물을 출렁거리게 했는데, 물이 출렁거린 맨 먼저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 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삼십팔 년이나 앓고 있는 병자도 있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이 거기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아주 오래된 병자라는 것을 아시고는 그에게 "낫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병자는 "선생님, 그렇지만 저에겐 물이 움직여도 물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가..

참살이의꿈 2006.03.04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오랜만에 한 후배에게 전화를 했더니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 나오는데 가슴이 짠해졌습니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김광석의 '일어나'가 벨소리로 녹음되어 있었습니다. 전에 수 년간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후배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에 후배가 선택한 이 노래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를 나름대로 짐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배는 자신의 일 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공이 생물이기에 환경 단체를 조직하고 꾸려나가면서 자연을 사랑하고 살리는 일에 온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 후배지만 그가 존경스러운 점은 생각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로 실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언행일치가 말은 쉽지만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은 보기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참살이의꿈 2006.02.28

길은 어둡고 멀다

내 안에 숨어있는 칼날이 날카롭습니다. 그 칼날이 나를 찌릅니다. 많이 아픕니다. 길이 어두울수록 칼은 더욱 시퍼렇게 날을 세웁니다. 제멋대로 내 안을 휘젓고, 밖을 돌아다니며 상채기를 냅니다. 상처에서 나오는 선혈이 낭자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그 길을 찾았다 싶으면 곧허방에 빠집니다. 다시 오리무중입니다. 환상에서 깨어나는 것은 고통입니다. 그러나 고통은 또 다른 달콤한 환상으로 이어집니다. 시지프스의 운명처럼 나는 늘 새로운 환상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끝없이 추락하는 바위를 지켜보아야만 합니다. 가야 할 길은 어둡고 멉니다.

참살이의꿈 2006.02.27

사랑의 유효기간 3년

사랑의 유효기간은 생리적으로 볼 때 길어야 3년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에 대해서호감과 애정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이 3년이 되면 거의 사라진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사랑에 빠진 애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 호르몬이 펑펑 솟아났는데시간이 지나고 항체가 생기면서 사랑의 화학물질이 끊어져 더 이상 시각적인 또는 후각적인 자극으로는 가슴 뛰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작심3일이라는 말도 있듯 이 3이라는 숫자에는 인간 마음의 변화를 나타내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일상의 작은 일들도 3일이 지나면 대개 시들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새해의 굳었던 결심도 사흘이 지나면 도루아미타불이 되고, 살면서 만나게 되는 기쁜 일, 슬픈 일도 사흘이 지나면 어느 정도 평상심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큰..

참살이의꿈 2006.02.20

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

며칠 전 KBS의 ‘TV 동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어느 날 왕이 보석 세공인을 불러 “반지를 만들되 거기에 내가 큰 승리를 거둬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감정을 조절할 수 있고, 동시에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는 다시 내게 기운을 북돋워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는 명령을 내렸다. 보석 세공인은 멋진 반지를 만들었으나 왕의 명령에 합당한 글귀가 아무리 해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웃 마을의 현인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현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반지에 ’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고 새겨 넣으시오. 왕이 승리감에 도취해 자만할 때, 또는 패배해서 낙담할 때 그 글귀를 보면 마음이 가라앉을 것이오.” 그렇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모든 것은 한..

참살이의꿈 2006.02.07

야무진 착각

우리 삶은 착각과 오해의 연속입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면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확인하는 일은 너무나 흔히 있습니다. 그때는 눈에 콩깍지가 끼였다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제한된 정보에 그것마저 주관적으로 가공해 버리니 어차피 두뇌의 판단 작용은 자기중심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가히 인간을 착각의 동물이라고 부를 만 합니다. 대부분의 착각은 현실과 잘 어우러지며 무리 없이 넘어갑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기도 합니다.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이 강하면 강할수록 부작용 또한 클 확률이 높습니다. 더 위험한 것은 집단적 착각입니다. 거기에 민족적, 종교적 색채가 더해지면 광신이라고 부르는 최면 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인류 역사를 피로 물들인 ..

참살이의꿈 2006.02.04

동심의 그늘

동심(童心)이라는 말만큼 향수를 자극하는 말도 없을 것입니다. 동심은 모든 그리움의 원형이며, 그 속에는 인간 존재의순수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어린 한 때 이 동심의 기간을 지나왔지만, 그러나 철이 들면서 동심은 이미 다다를 수 없는 세계로 멀어져 갔습니다. 그래서 더욱 신비한 동화의 세계로 남아있게 됩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은 아름답게 채색되어 나타납니다. 그것은 과거의 회상이 주는 필터링 효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들에게 있어 가혹했던 군대 시절마저 추억에서는 아름답고 멋진 기억으로 탈바꿈합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과거가 지나고 보면 아름답게 기억되기도 합니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내면 심리는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지워버리는 기법이 있는지 모릅니다. 아마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기..

참살이의꿈 2006.01.21

요즘 사람들은 욕망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인간의 욕망이란 게 뭔지 잘 모르게 된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한 가치관의 붕괴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더 이상 기름진 것을 즐기려 하지 않고, 집에 많은 물건을 쌓아두는 것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사람들의 소비 관념이 달라지면서 이제껏 유행했던 많은 상품들이 더 이상 팔리지 않게 되자 기업들이 망하는 사태가 속출했습니다. 상품시장 붕괴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나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동안 인기를 누려왔던 소비를 부추기는 직업군들이 사라졌습니다. 소비시장 붕괴는 생산 패러다임이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인간 욕망의 변화는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효과를 발휘하여 소비와 생산에 관한 근본적인 ..

참살이의꿈 2006.01.15

벌새의 우화

'초원에 불이 났다. 짐승들은 일제히 도망쳤다. 그런데 벌새 한 마리가 겁도 없이 진화에 나섰다.벌새는 그 조그만 입으로 강물을 물어 와 초원을 태우는 불길 위에 끼얹었다. 밑도 끝도 없이 그 짓을 했다. 큰 짐승들, 가령 사자나 코끼리나 얼룩말 같은 짐승들이 벌새를 비웃었다. "야, 그런다고 네가 불길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니?" 그러자 벌새가 대답했다. "불길을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그건 해보기 전에는 모르지. 나로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어느 글에서 본 우화입니다. 이 우화에 나오는 불길은 지구 환경의 위기를 비유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짐승들도 불이 난 사실을 알지만 벌새와 다른 점은 그들은 방관자였다는 것입니다. 모두 도망쳤습니다. 아마 강을 건너면 다른 초원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었..

참살이의꿈 2005.12.13

[펌] 두 생명공학자의 명암

지금 우리나라에는 전 국민이 나서서 전대미문의 물질적·정신적 지지를 아낌없이 퍼붓는 황우석 박사와, 농민 집회의 와중에 목숨을 잃고 그렇게 거리에서 죽어간 앞선 수많은 이름들 중의 하나로 잊혀져 가는 전용철씨라는 두 사람의 ‘생명 공학자’들이 있다. 돌아간 전용철씨를 ‘생명 공학자’라고 부른 의도는 아이러니를 노린 것이 아니다. 인간이 죽은 물질로서 자연이 아니라 식물과 동물 등의 생명체를 자신의 기호와 욕망에 적절한 형태로 변형시켜 전유하기 시작한 것이 농업의 기원이라면, 농업도 첨단 장비와 초고급 인력이 투입되는 현대의 그것과 다름없는 ‘가장 오래된 생명공학’이라고 볼 필요가 있다. 농업은 결코 씨앗이라는 투입물에다 물리적 노동을 투하하여 일정 배수의 산출을 끌어내는 기계적인 행위가 아니다. 하늘과 ..

참살이의꿈 2005.12.08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여러 해 전에 한 친구가 베트남 한인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 친구와 많은 메일을 주고받았는데 한 번은 본인이 교지에 쓴 글이라며 보내주었습니다. 제목이 '아침에'라는 글인데 시를 중간중간에 넣으며 주변의 몇 사람들 인상을 그린 것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편지보관함에서 다시 읽어보는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창 밖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문득 잠이 깹니다. 커튼이 드리워진 창 위로 야자수 잎의 그림자가 물결처럼 일렁거립니다. "아. 오늘은 일요일이지" 그냥 누운 채로 움직이지 않고 모처럼의 여유를 느껴봅니다. 「이곳이 어딜까? 물론 베트남이지.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모르지. 꿈일지도 몰라. 내가 지금 베트남에 있다는 것이.. 꿈을 깨면 아마 잠실의 아파트에서 예전처럼..

참살이의꿈 2005.12.08

지구의 밤

이것은 인공위성에서 지구의 밤을 찍은사진입니다. 잘 사는 나라들의 밤은 인공 불빛으로 환하고, 그렇지 않은 나라들은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깜깜합니다. 북아메리카와 서유럽,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이 눈에 띄게 환합니다. 부와 문명의 편중 현상이 한 눈에 드러나는 사진입니다. 아마 백 년 전이었다면 전 지구가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캄캄했을 것입니다. 지구 40여억 년의 역사동안 내내 그랬을 겁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전기 문명이 시작되면서 지구의 밤 풍경은 이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백 년 뒤에는 대륙 전체가 온통 빛으로 덮일 것 같습니다. 지구의 이름이 그때는 광구(光球)로 바뀔지 모릅니다. 이 사진은 한반도 주변을 찍은 것입니다. 남한과 북한이 극단적으로 대비되어 보입니다. 북쪽에..

참살이의꿈 2005.12.03

철수

밭의 비닐을 걷어내서 정리하고, 모아두었던 콩대를 불태우고, 추위에 약한 나무 줄기에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보일러와 수도 배관에 있던 물을 모두 빼냈습니다. 이것으로 올 한 해 터에서의 생활이 마감되었습니다. 특히 보일러와 수도관의 물을 빼내는 작업은 콤프레셔를 사용해서 인부 두 명이 거의 세 시간 가까이 일해야 할 정도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내년 봄에 다시 물을 채워주는 것까지 해서26만 원이 들었습니다. 지난 두 해는 내려가 있지 않더라도 보일러을 겨울 내내 가동시키며 동파를 방지했지만 마당에 노출되어 있는 수도 폄프는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보온을 해도 두 번 다 얼어터져서 봄에는 고생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아예 물을 모두 빼버린 것입니다. 이번 겨울은 완전히 터에서 철수를 하려..

참살이의꿈 2005.11.27

김장을 하다

김장을 했습니다. 터에 심은 배추가 백 포기가 넘어서 지지난 주에 반 정도를 하고 이번에 남아있던 배추를 마저 뽑아 김장을 끝냈습니다. 올해는 온전히 직접 가꾼 배추, 무, 파로 김장을 했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접이나 되는 배추로 김장을 담근 것도 아마 처음일 것입니다. 미리 했던 것은 이웃에 많이 나누어 주었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것이 김치냉장고로 하나 가득 찼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올해 산 김치냉장고 덕을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날씨 때문에 아직 김장을 못했을 것입니다. 또 어느 해는 땅에 묻었다가 늦게 꺼내는 바람에 너무 시어져서 제 맛을 즐기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김치냉장고는 그럴 걱정이 없어서 좋습니다. 문명의 이기의 편리함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작년까지는 고향에 내려가 ..

참살이의꿈 2005.11.15

빈 들

가을걷이가 끝난 농촌의 빈 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쓸쓸합니다. 논과 밭의 결실을 끝냈는데도 농촌에는 무기력과 한숨만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만나는 농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지치고 피곤한 모습입니다. 이것은 작금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런 농업 정책이 세계화의 흐름에서 어쩔 수 없다고도 하고, 이 방법이 농민을 위하는 유일한 거라면서 나라 살림 맡은 이들은 달래지만 살림살이는 해가 갈수록 어려워져만 갑니다. 몸이 부서져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우 받고 살 수 있는 세상은 점점 멀어집니다. 농사에 뜻을 두고 투자를 한 사람이라면 빚만 늘어나기 십상입니다. 농민들은 이것을 농업을 포기한 농정 정책 탓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반도체를 수출하는 대..

참살이의꿈 2005.11.14

똥과 땅

모양이 닮은 글자는 필시 서로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사람’과 ‘사랑’, ‘님’과 ‘남’, ‘배우다’와 ‘비우다’ 같은 글자가 그렇습니다. 그런 글자 중에 ‘똥’과 ‘땅’이 있습니다. 우연히 닮았을 수도 있지만 똥이란 땅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서로가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자연 듭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밥 먹고 똥 싸는 일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왕후장상도 하루 세 끼 밥을 먹어야 하고, 똥 싸고 뒤를 닦아야 하는 것은 시골 무지렁이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집어삼키기만 하고 내보내지를 못한다면 며칠을 못가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종내는 죽음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점에서는 탐욕스런 현대 문명을 닮았습니다. 끊임없이 먹어치우기만 하고 나눌 줄은 모르는 문명은 ..

참살이의꿈 2005.11.03

우리들의 호들갑

중국산 납 김치에 이어 이번에는 기생충 김치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얼마나 불안했으면 약국의 구충제가 다 동이 났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양식 어류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어 또 한 바탕 소동을 치루기도 했습니다. 어류건 가축이건 우리나라의 항생제 사용량은 위험 수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바로보는 세상에서 갈수록 제대로 된 먹을거리가 없어진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사실 이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공기와 물과 음식, 인간의 몸으로 출입하며 우리 몸을 구성하는이런 것들이 오염된다는 것은 인간 생존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무엇을 얻더라도 이것을 잃으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그러나 늘 이런 문제가 터지고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흥분하고 호들갑을 떨지만 진지하게 대..

참살이의꿈 2005.10.26

인간은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가?

인간은 왜 환경을 파괴할까? 최근에 읽은 ‘이타적 유전자’라는 책에서는 그 이유를 인간 본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이라는 한 생물학자에 의해 명명된 ‘공동 소유의 비극’ 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예를 들면 원시인들이 매머드를 거의 멸종시키게 되었을 때 올바르게 행동하는 바보가 있었다고 합시다. 그는 ‘아니야, 나는 새끼를 밴 매머드는 죽이지 않겠어. 임신한 짐승을 해치는 것은 나쁜 일이야.’ 하고 생각하겠지만 그 어미 매머드를 발견한 다른 원시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살려준 매머드를 다른 원시인이 잡아 포식하는 마당에, 배를 곯며 기다리고 있는 가족에게 빈손으로 돌아가는 그는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입니까? 어느 한쪽의 자제가 다른 ..

참살이의꿈 2005.10.21

가을걷이가 끝나다

고추, 피망, 꽈리고추, 토마토, 방울토마토, 아욱, 근대, 목화, 상추, 케일, 콩, 강낭콩, 서리태, 큰콩, 완두콩, 오이, 호박, 감자, 자주감자, 고구마, 옥수수, 머위, 취, 배추, 무우, 열무, 들깨, 더덕, 쑥갓, 가지, 파, 쪽파, 딸기.... 이것들은 올해 텃밭에 심었던 작물들입니다. 그 종류가 서른 가지가 넘습니다. 정말 농사라고 해야 할 정도로 종류로는 많이 심었습니다. 뭘 심어 놓고는 그렇게 열심히 다니느냐고 누가 묻길래 모든 것을 다 심어놓았다고 자신있게 대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것이나 이름을 대 보라고 했더니 정말 그 친구가 말하는 작물은 전부 제 밭에 있었습니다. 사실 이것들을 가꾸느라고 아내와 저는 주말이면 여기에 붙잡혀서 지냈습니다. 옆의 사람들이 너무 일만 ..

참살이의꿈 2005.10.16

네팔에서 살고 싶다

해외에서의 노후생활을 주제로 한 기사가 지난달에 동아일보에 연재되었습니다. 정년퇴직한 연금생활자들이 가서 살만한 태국, 필리핀 등 몇나라가 소개되었는데 대개 비슷했지만 그 중에서도 네팔에서의 생활에 대한 내용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들 나라들의 공통점은 생각을 바꾸면 적은 돈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팔, 티베트, 부탄 등의 지역은 평상시에도 관심이 많은 곳입니다. 그곳은 제가 해외여행을 간다면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히말라야산맥을 끼고 있는 원시의 대자연과 함께 아직 문명에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으로 얼마간은 낭만적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얼마 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책을 읽어보고 부탄이라는 나라를 새롭게 알게도 되었습니다..

참살이의꿈 2005.10.08

[펌] 거미의 일기장

내가 사는 곳은 여섯 평가량 되는 방이다. 이곳에는 20여 마리의 거미들이 집을 지어 살고 있으며, 개미들의 나라가 3개국이 있다. 남쪽 모서리에 있는 개미 제국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왕국이며, 북쪽 부엌 쪽으로 통하는 벽면에 있는 개미 제국은 최근에 건국되었다. 나는 이곳에서 6개월가량 살고 있으며, 다른 종류의 거미들과는 왕래를 하지 않는다. 발로 바닥을 딛고 다니는 우리와 달리 공중을 날아다니는 생명체들도 여럿이다. 여름에는 모기와 나방들이 수도 없이 날아 들어왔고, 요즘엔 파리들이 주로 날아다닌다. 우리는 서로 먹기 위해 싸우기도 하고, 덫을 놓기도 하지만, 먹지 않을 것을 죽이지는 않는다.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방문이 열리고, 암컷 사람 한 마리가 난데없이 나타났다. 나를 비롯한 우리 거미들..

참살이의꿈 2005.10.02

예초기로 잔디를 깎으며

지난달에 예초기를 샀습니다. 잔디를 깎기 위해서입니다. 집 주변에 심어놓은 잔디가 넓지도 않은데 낫으로 깎자면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걸립니다. 지난 초여름에는 일주일이 걸려도 다 깎지를 못했습니다. 물론 작업이 서툰 탓입니다. 그래도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고집으로 힘들지만 그럭저럭 견뎌냈습니다. 어느 날 이웃집에 놀러갔다가 예초기로 마당의 잔디를 깎는 것을 보고는 그만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낫으로 깎는 것에 비하면 순간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쉽고 빨리 일이 끝났습니다. 그분은 미련하게 살지 말라며 예초기를 사서 쓸 것을 권했습니다. 그래서 부탄가스로 작동되는 신형 예초기를 산 것입니다. 저는 기계치(機械痴)라고 할 정도로 기계나 도구를 만지는데 서투릅니다. 어쩌다 기계를 다루게 되면 꼭 무슨 ..

참살이의꿈 2005.09.27

땅의 옹호

'땅의 옹호'는 몇 해 전에 '녹색평론'에 실렸던 김종철님이 쓴 글입니다. 모니터로 이 글의 일부분을 본 옆의 동료가 글쓴이가 과격한 환경주의자인 모양이라고 말합니다. 환경을 대하는 각자의 태도에는 환경낙관론자에서부터 환경비관론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합니다. 마침 최근에 '환경 위기의 진실'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은 환경낙관론자가 쓴 것어어서 색달랐습니다. 그것은 환경 문제에 대한 경고의 소리는 쉼없이 듣고 있지만, 지구 환경을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자주 접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환경비관론자에 속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문명이나 과학 기술의 발전에 의해 환경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참살이의꿈 2005.09.22

새들은 모이를 외면한다

마당과 밭에는 가끔씩 새들이 찾아옵니다. 특히 아침이나 저녁나절에 자주 볼 수 있는데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밖에서 들리는 맑은 새소리는 하루의 시작을 상쾌하게 해줍니다. 찾아오는 새는 대개 딱새와 박새, 산비둘기입니다. 예전에 우리가 클 때는 참새가 제일 많았는데 요사이는 참새를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새들은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부리로 무언가를 쪼아 먹기도 하고, 저희들끼리 장난을 치는지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즐겁게 놀기도 합니다. 오래된 쌀이 한 되 정도 남은게 있었는데 쌀벌레가 생기고 바게미(?)라고 부르는 날벌레들도 자꾸 생겨서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하다가 새들의 모이로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마당 가운데 있는 나무토막 위에다 쌀을 뿌려놓아 봤습니다. 이놈들이 떼로 몰려와 기꺼이 모이를 먹는..

참살이의꿈 2005.09.03

배추와 호박

열흘 전에 감자를 캐낸 자리에 읍에서 사온 배추 모종 100 포기를 심었습니다. 그것이 이만큼 예쁘게 자랐습니다. 길을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이 배추가 잘 자랐다고 한 마디씩 칭찬을 해 줍니다. 그러나 그 말이 정말 농사를 잘 짓는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모르던 도시 사람이 하는 노릇 치고는 그래도 봐줄 만 하다고 하는 뜻임을 압니다. 그래도 기분 좋은 일입니다. 어설프게 심었던 작년에도 그런대로 배추는 잘 되었습니다. 이웃에서는 약을 쳐도 벌레가 먹는다는데, 우리는 약 한 번 치지 않았으면서 별로 흠집 없는 배추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웃에서 와서 보고 이 집은 물도 안 주고, 약도 안 치는데 어떻게 배추가 이렇게 잘 자랐느냐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아마도 새로 들여온산흙에서 키워서 병충해의 침입..

참살이의꿈 2005.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