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636

올 여름 피서법

올 여름은 유난히 덥습니다. 수치상으로 나타난 기온은 예년에 비해 특별히 높다고 할 수 없는데 체감으로 느껴지는 더위는 훨씬 더합니다. 이곳은 한여름에도 선풍기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서늘하지만 올해는 다릅니다. 소나기 한 줄기 없이 십여 일째 땡볕 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선풍기를 틀어놓고 지내야 했습니다. 이런 때는 바깥일도 아침 해 뜨기 전 잠깐 뿐입니다. 저녁에는 해가 떨어지더라도 남은 열기 때문에 밖에 나가기가 싫습니다. 반면에 빨래를 말리는 쨍쨍 햇볕은 고맙습니다. 아침에 빨래를 널어두면 햇볕에 익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저녁에 바짝 마른 빨래를 만지면 뽀송뽀송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덩달아 방안의 이불까지 꺼내 햇볕 구경을 시켜줍니다. 태양의 맑은 에너지..

참살이의꿈 2006.08.10

아름다운 저녁 시간

늦은 감자를 캐고 옥수수의 첫 수확을 했다. 감자고 옥수수고 올해는 결실이 영 시원찮다. 수 년 중 최악의 결과다. 이것은 주인장의 마음 탓이고, 중간 관리를 제대로 안해 준 탓이다. 초라한 수확물을 들여다보니 주인을 잘못 만나 제대로 영글지도 못했는가 싶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얘들아, 잘 돌봐주지 못해서 미안해!" 두 주 전에 밭고랑의 풀을 뽑고,뽑은 풀로 고랑을 덮어 두었다. 다른 풀들이 자라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풀들이 다시 뿌리를 내리며 살아나고 있다. 지난 번 막바지 장맛비에 힘을 얻었는가 보다. 그래서 다시 뒤집어 주어야 했다. 다행히 아직은 뿌리가 깊지 않아 땅에서 잘 떨어진다. 어찌 보면 잔인한 노릇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작물 가꾸기란 인간의 필요에..

참살이의꿈 2006.08.07

고난은 신의 선물

터에 자리를 잡은 뒤부터 세 개의 쓰나미를 연속으로 맞고 있습니다. 왜 불행이 찾아올 때는 한꺼번에 몰려서 올까요? 안 되는 집은 죽어라 해도 일이 안 풀리고, 잘 되는 집은 모든 일이 쉽게 뜻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이상하게 생각되는 그런 현상은 확률적으로 볼 때는 당연하다고 합니다. 동전을 수백 회 던지면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이 정확히 50%가 되지만, 실제 나오는 경우는 ‘앞뒤앞뒤앞뒤...’가 아니라 ‘앞앞앞뒤뒤앞뒤뒤앞앞....’ 이런 식이라는 거지요. 그러니 불행에 너무 속 상해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가 될까요? 개인이건, 민족이건, 국가건 역사는 고난의 연속입니다. 묘하게도 착한 사람이나 집단은 힘들게 살게 되고, 악한 사람이나 집단은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하는 게 세상사이기도 합니다. 뭔가 의미 ..

참살이의꿈 2006.07.29

회심

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7 년 전 겨울이었다. 그때는 40대 중반부터 시작된 정신적 방황이 절정에 달했었다. 왜 사는가에 대한 의문,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질문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제 2의 사춘기라고 불러도 좋을 시기였다. 가톨릭 신자였지만 종교의 틀에서는 안식을 얻지 못했고, 머릿속은 온갖 상념들로 복잡했다. 그해 겨울, 세상을 떠나 그저 푹 쉬고 싶은 마음밖에는 없었다. 산 속 절이든 어디든 인적이 끊긴 곳에 들어가 있고 싶었다. 마침 아내가 S 수녀원의 피정을 소개해 주었다. 개인 피정이어서 아무런 간섭 없이 지낼 수 있다는 말에 책 몇 권을 싸들고 집을 나섰다. 주소만 들고 물어 물어 찾아간 곳이 지금의 터였다. 그런데 피정 기간 중에 예상치 않게 종교적 회심의 체험을 하게 되..

참살이의꿈 2006.07.15

독백

내가있는 이곳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내가 왜 여기 있지? 마치 혈관 속에 모래가 들어간 듯 마음은 온통 서걱거린다. 내가 터를 정하고, 손수 집을 짓고, 땅과 혼이 들어간 곳인데, 사방을 둘러보면 내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없는데 마치 못 올 곳에 온 것처럼 서먹서먹하다. 밖은 장맛비가 내리는 저녁이다. 철수를 생각하니 더욱 허전해진다. 그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나에게는 내 전부를 걸었던 이상의 포기와 마찬가지다. 선전포고한 전쟁에서 항복의 의미이기도 하다. 단지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두려운 것이다. 슬픔에 빠지게 하는감정에는 집착이 들어있다. 애착, 비애, 고독, 쓸쓸함과 같은 진한 감정들도 마찬가지다. 인정하기 싫지만 버린다고 하면서 또 다른 집착에 매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상승할 때보다..

참살이의꿈 2006.07.03

밤꽃 향기에 젖다

여기는 밤꽃 향기에 젖어 있습니다. 산에서도 들에서도 어디서나 밤나무를 볼 수 있고, 마을의 정자나무도 밤나무입니다. 밤꽃 향기는 산과 들을 채우고는 넘쳐 흘러 마을로 밀려옵니다. 마을은 온통 야릇한 밤꽃 향기의 바다에 잠깁니다. 거실에 가만 누워 있으면 그 눅눅한 향기에 마취가 될 정도입니다. 향기를 무게로 잴 수 있다면 밤꽃 향기는 쇳덩이 마냥 무거운 것 같습니다. 그 향기에 취한 사람들의 발걸음 또한 무거워집니다. 그것은 뭔가 호기심을 일으키면서 무언가가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듯한 냄새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오전에 밭일을 하러 나갔지만 1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들어와 버렸습니다. 머리가몽롱해져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생겼습니다. 방에 들어와 피곤한 몸을 누이며 ..

참살이의꿈 2006.06.25

종교 신념 환자

이 시대의 가장 반종교적인 과학자라면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아닐까 싶다. 우리들에게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생물학자인데, 종교와 종교적 신념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며 과학적 사고로 세상을 보기를 강조하는 과학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종교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그러나 새겨들어야 할 부분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종교인들이면 그의 비판에 한 번쯤 귀를 기울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종교 교리를 정신 바이러스에 비유하고, 종교인을 잘못된 신념 환자들이라고 부른다. 그에게 있어 종교 활동이란 정신적 사기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미숙한 정신이며, 아직도 청동기 시대를 살고 있는 어리석은 정신이다. 그는 9. 11 테러로 상..

참살이의꿈 2006.06.22

뱀은 여전히 두렵다

풀을 베러 현관을 나서는데 바로 앞에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여기가 뱀이 많긴 하지만 한낮에 이렇게 집 앞에까지 나와있는 것은 처음이다. 갑자기 뱀을 맞닥뜨려서 깜짝 놀랐다. 뱀도 놀랐는지 처음에는 꼼짝도 안 하다가 소리를 지르니 스르르 도망을 간다. 길이가 거의 1 m나 되는 큰 뱀이다. 뒤따라가며 위협을 해서 쫓아내었다. 뱀은 생긴 모양 자체가 징그럽고 섬뜩하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괜히 기분이 좋지 않고 적대적인 느낌이 든다. 특히 길을 가다가 갑자기 발 밑에서 뱀을 만나게 되면 공포심은 극에 달한다. 아마 우리들 유전자에는 뱀에 대한 경계를 위해 공포심이 각인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선천적 본능이 아닐 수도 있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밭일을 하러 나간 여자가 있었다. 아이를 ..

참살이의꿈 2006.06.19

우리 텃밭

올해 텃밭 크기는 작년의 반으로 줄였습니다. 노동력을 줄이기 위해서였지만 그러나 일이 반으로 수월해지지는 않았습니다. 내려가면 해야 할 일이 언제나 잔뜩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어떨 때는 귀찮고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밭에 나가 땀을 흘리며 흙을 만지고 풀을 뽑고 작물을 거두는 기쁨은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습니다. 일 하는 동안은 세상의 시름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무엇엔가 몰두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 중에서도 흙을 만지고 생명을 돌보는 일만큼 가치 있는 일도 없다고 봅니다. 밭에 나가 땀을 흘리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 집니다. 다른 노동과는 또 다릅니다. 땅에서 나오는 생명의 기운이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앞의 네 줄은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두 주일 간격으로 ..

참살이의꿈 2006.06.11

희망의 언어 - 碩果不食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님이 정년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공개 강의를 했습니다. 그 강의 주제가 '희망의 언어 - 석과불식(碩果不食)'이었습니다. 직접 가 보지는 못했고 저는 인터넷으로 중계된 강의를 들었습니다. 석과불식은 주역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주역 64 괘 중제일 절망적인 괘가 박괘(剝卦)인데 그 박괘를 설명하는 말이 석과불식인가 봅니다. 해석하면 '씨과실은 먹지 않는다' 또는 '씨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라는 뜻이랍니다. 현재의 우리 상황이 박괘에 비유될 정도로 어려운 것으로 선생님은 보는 듯 합니다. 막무가내로 진행되는 세계화의 물결,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해 재편되는 새로운 세계 질서가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버리면 안되는데, 그 상징적인 구절이 바로 석과불식입니다. 그 ..

참살이의꿈 2006.06.09

개구리 소리

잠에서 깰 때마다 쉼 없이 개구리 소리가 들려옵니다. 한밤중이 되면 소리가 잦아드는 법인데 아직도 짝을 구하지 못했는지 숫 개구리들의 구애의 노래 소리는 밤을 새우고 있습니다. 개구리 소리를 노래라고 보든 울음이라고 보든 그것은 인간의 감정이입일 뿐이겠지요. 개구리는 그저 본능에 따라 울음주머니를 울릴 뿐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후손을 남기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릅니다. 사정이 어떠하든 우렁찬 개구리의 합창 소리는 봄을 대표하는 소리입니다. 저렇게 큰 소리가 결코 시끄럽게 들리지 않습니다. 개구리 소리는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한 봄의 교향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개구리 소리에 이끌려 논둑길을 논으로 나갔습니다. 모내기를 한 논마다 개구리들로 가득 찼는지 전후좌우 사방에서 들려오는 개구..

참살이의꿈 2006.05.22

뒷산 산책

두 주일 간격으로 옥수수를 심기로 했는데 어제 두 번째 고랑에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6월 말까지 계속 심을 계획입니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연속으로 옥수수 맛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그리고 부족한 채소 모종도 더 심고 부추씨도 뿌렸습니다. 꽃씨를 뿌린 꽃밭에서는 새싹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씨앗 모양이 다르듯 잎의 모양도 나오는 때도 다 각각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반 정도는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지난 주에 다시 심었던 고구마 모종은 다행히 착근이 잘 되어 싱싱하게 싹을 세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내와 같이 뒷산에 올랐습니다. 꼭 1년 만입니다. 작년에는 땅 일에 휘둘리느라 거의 여가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여유를 찾으려 합니다. 좀더 생활을 즐기도록 하겠습니다. 산길을 걷다..

참살이의꿈 2006.05.14

앉아서 유목하기

‘유목(遊牧)’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거처를 정하지 않고 물과 목초를 따라 소, 양, 말 등의 가축을 몰고 다니며 하는 목축이라 나와 있고, ‘유목민(遊牧民)’이란 유목을 하면서 이동생활을 하는 민족으로 되어 있습니다. 유목민은 한 곳에 머물지 않으면서 항상 새로운 삶의 조건을 찾아 움직이기 때문에 한 곳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정착민과 대비됩니다. 요즈음 유목(nomad)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나온 어떤 책 표지에는 ‘우리는 유목하는 행복 게릴라 부부’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는데, 유목이라는 말이 무척 낭만적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정착민과 유목민의 구분이 뚜렷했으나 정착민에 의해 현대문명이 건설된 후 유목민의 존재는 거의 잊혀졌습니다. 실제 사막이나 고산지대 등에 남아있는 유목민의 ..

참살이의꿈 2006.04.28

신비체험과 임사체험의 불가사의

인간의 신비한 정신 현상 중에서 특히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종교적 신비체험과 임사체험이 아닐까 싶다. 종교의 창시자들이나 성인들, 그리고 유명한 종교 지도자들에게서는 그들이 경험한 종교적 신비체험이 늘 따라다닌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하늘로부터 권위를 받은 것으로 암시되기도 한다. 불교에서 돈오(頓悟)라고 부르는 깨달음의 순간도 이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이런 종교적 체험은 모든 종교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힌두교의 요가 수행자들에게서는 이런 체험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도 한다. 오랜 침묵이나 기도, 또는 은둔과 고행을 통한 감각의 제어에서 그런 체험은 순간적으로 강력하게 찾아오는 것 같이 보인다. 이런 신비체험에서는 주로 빛과 소리를 통해 메시지가 전달된다. 이런 종교적 신비체험의 특징은 체험 후에 완전..

참살이의꿈 2006.04.27

꽃씨를 뿌리다

올해는 텃밭의 크기를 줄였습니다. 그리고 골과 골 사이도 넓게 해서심는 작물의 양도 작년의 절반 이하로 줄일 계획입니다.골을 만들고 비닐을 씌우는 작업도 이제는 숙달되어 혼자 해도모양이 멋지게 나옵니다. 작년에 밭으로 썼던 곳의 일부는 꽃밭으로 바꾸고 꽃씨를 심었습니다. 봉숭아, 채송화 등 꽃가게에서 사온 꽃씨가 열 종류 가까이 됩니다. 봉지에 들어있는 씨앗의 생김새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꽃의 모습에는 익숙하지만 씨앗은 오랜만에 서로 비교하며 만져볼 수 있었습니다. 이놈들이 제대로만 꽃을 피워준다면 예전 시골집 마당의 화단처럼 고전적인 화단으로 변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꽃잔디 씨를 많이 보내 주어서 둘레에 뿌렸습니다. 아무래도 봄의 마력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땅에서 초록 기운이 돋아나고, 나..

참살이의꿈 2006.04.23

창 밖에 살구꽃이 환하다

텃밭을 일부 정리하고 감자를 한 줄 놓았습니다. 지난주에 고향에 갔을 때 어머니로부터 알이 작은 씨감자를 받았는데 눈을 따지 않고 그냥 심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오랜만에 흙을 만지니 감회가 새롭고 기분도 무척 좋았습니다. 무겁던 몸과 마음이 새 기운으로 충전되는 것 같았습니다. 피곤하지만 뭔가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올해는 작은 묘목 몇 그루만 심었습니다. 앵두나무,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자귀나무. 여기는 이제야 산수유, 살구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벚꽃은 작은 봉오리가 겨우 보입니다. 그만큼 이 동네는 춥습니다. 제가 심었던 나무에서 파릇파릇 새싹이 나오는 모습을 보는 것은 행복합니다. 별로 거두지도 못했는데 나무들은 스스로 자리를 잡고 적응하며 커갑니다. 불평 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참살이의꿈 2006.04.17

물을 넣다

동파를 막기 위해 보일러의 물을 빼고 겨우내 비워두었던 터에 다시 물을 넣었다. 물 빼는 작업과 마찬가지로 물을 넣는 작업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해체한 보일러를 다시 연결하고 에어를 빼내기 위해 보일러관에 물이 꽉 차게 하는 일에거의 두 시간 정도걸렸다. 넉 달이 넘어서 다시 보일러가 돌고 바닥에 온기가 돌아오니 마치 냉동인간이 깨어나 몸에 따뜻한 피가 흐르게 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집도 정이 들면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아껴 주고 잘 관리해 주면 활기에 차 보이지만, 무관심하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왠지 쓸쓸해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보일러를 통해 물이 돌아가고 그래서 발바닥으로 따뜻한 기운이느껴질 때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드는 것이었다. 이젠 터에서 정을..

참살이의꿈 2006.04.05

베짜타 못

‘얼마 뒤에 유다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 가셨다. 예루살렘 양의 문 곁에는 히브리말로 베짜타라는 못이 있었고 그 둘레에는 행각 다섯이 서 있었다. 이 행각에는 소경과 절름발이와 중풍병자 등 수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는데 (그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님의 천사가 때때로 못에 내려와 물을 출렁거리게 했는데, 물이 출렁거린 맨 먼저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 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삼십팔 년이나 앓고 있는 병자도 있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이 거기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아주 오래된 병자라는 것을 아시고는 그에게 "낫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병자는 "선생님, 그렇지만 저에겐 물이 움직여도 물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가..

참살이의꿈 2006.03.04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오랜만에 한 후배에게 전화를 했더니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 나오는데 가슴이 짠해졌습니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김광석의 '일어나'가 벨소리로 녹음되어 있었습니다. 전에 수 년간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후배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에 후배가 선택한 이 노래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를 나름대로 짐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배는 자신의 일 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공이 생물이기에 환경 단체를 조직하고 꾸려나가면서 자연을 사랑하고 살리는 일에 온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 후배지만 그가 존경스러운 점은 생각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로 실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언행일치가 말은 쉽지만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은 보기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참살이의꿈 2006.02.28

길은 어둡고 멀다

내 안에 숨어있는 칼날이 날카롭습니다. 그 칼날이 나를 찌릅니다. 많이 아픕니다. 길이 어두울수록 칼은 더욱 시퍼렇게 날을 세웁니다. 제멋대로 내 안을 휘젓고, 밖을 돌아다니며 상채기를 냅니다. 상처에서 나오는 선혈이 낭자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그 길을 찾았다 싶으면 곧허방에 빠집니다. 다시 오리무중입니다. 환상에서 깨어나는 것은 고통입니다. 그러나 고통은 또 다른 달콤한 환상으로 이어집니다. 시지프스의 운명처럼 나는 늘 새로운 환상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끝없이 추락하는 바위를 지켜보아야만 합니다. 가야 할 길은 어둡고 멉니다.

참살이의꿈 2006.02.27

사랑의 유효기간 3년

사랑의 유효기간은 생리적으로 볼 때 길어야 3년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에 대해서호감과 애정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이 3년이 되면 거의 사라진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사랑에 빠진 애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 호르몬이 펑펑 솟아났는데시간이 지나고 항체가 생기면서 사랑의 화학물질이 끊어져 더 이상 시각적인 또는 후각적인 자극으로는 가슴 뛰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작심3일이라는 말도 있듯 이 3이라는 숫자에는 인간 마음의 변화를 나타내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일상의 작은 일들도 3일이 지나면 대개 시들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새해의 굳었던 결심도 사흘이 지나면 도루아미타불이 되고, 살면서 만나게 되는 기쁜 일, 슬픈 일도 사흘이 지나면 어느 정도 평상심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큰..

참살이의꿈 2006.02.20

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

며칠 전 KBS의 ‘TV 동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어느 날 왕이 보석 세공인을 불러 “반지를 만들되 거기에 내가 큰 승리를 거둬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감정을 조절할 수 있고, 동시에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는 다시 내게 기운을 북돋워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는 명령을 내렸다. 보석 세공인은 멋진 반지를 만들었으나 왕의 명령에 합당한 글귀가 아무리 해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웃 마을의 현인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현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반지에 ’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고 새겨 넣으시오. 왕이 승리감에 도취해 자만할 때, 또는 패배해서 낙담할 때 그 글귀를 보면 마음이 가라앉을 것이오.” 그렇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모든 것은 한..

참살이의꿈 2006.02.07

야무진 착각

우리 삶은 착각과 오해의 연속입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면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확인하는 일은 너무나 흔히 있습니다. 그때는 눈에 콩깍지가 끼였다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제한된 정보에 그것마저 주관적으로 가공해 버리니 어차피 두뇌의 판단 작용은 자기중심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가히 인간을 착각의 동물이라고 부를 만 합니다. 대부분의 착각은 현실과 잘 어우러지며 무리 없이 넘어갑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기도 합니다.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이 강하면 강할수록 부작용 또한 클 확률이 높습니다. 더 위험한 것은 집단적 착각입니다. 거기에 민족적, 종교적 색채가 더해지면 광신이라고 부르는 최면 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인류 역사를 피로 물들인 ..

참살이의꿈 2006.02.04

동심의 그늘

동심(童心)이라는 말만큼 향수를 자극하는 말도 없을 것입니다. 동심은 모든 그리움의 원형이며, 그 속에는 인간 존재의순수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어린 한 때 이 동심의 기간을 지나왔지만, 그러나 철이 들면서 동심은 이미 다다를 수 없는 세계로 멀어져 갔습니다. 그래서 더욱 신비한 동화의 세계로 남아있게 됩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은 아름답게 채색되어 나타납니다. 그것은 과거의 회상이 주는 필터링 효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들에게 있어 가혹했던 군대 시절마저 추억에서는 아름답고 멋진 기억으로 탈바꿈합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과거가 지나고 보면 아름답게 기억되기도 합니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내면 심리는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지워버리는 기법이 있는지 모릅니다. 아마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기..

참살이의꿈 2006.01.21

요즘 사람들은 욕망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인간의 욕망이란 게 뭔지 잘 모르게 된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한 가치관의 붕괴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더 이상 기름진 것을 즐기려 하지 않고, 집에 많은 물건을 쌓아두는 것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사람들의 소비 관념이 달라지면서 이제껏 유행했던 많은 상품들이 더 이상 팔리지 않게 되자 기업들이 망하는 사태가 속출했습니다. 상품시장 붕괴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나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동안 인기를 누려왔던 소비를 부추기는 직업군들이 사라졌습니다. 소비시장 붕괴는 생산 패러다임이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인간 욕망의 변화는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효과를 발휘하여 소비와 생산에 관한 근본적인 ..

참살이의꿈 2006.01.15

벌새의 우화

'초원에 불이 났다. 짐승들은 일제히 도망쳤다. 그런데 벌새 한 마리가 겁도 없이 진화에 나섰다.벌새는 그 조그만 입으로 강물을 물어 와 초원을 태우는 불길 위에 끼얹었다. 밑도 끝도 없이 그 짓을 했다. 큰 짐승들, 가령 사자나 코끼리나 얼룩말 같은 짐승들이 벌새를 비웃었다. "야, 그런다고 네가 불길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니?" 그러자 벌새가 대답했다. "불길을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그건 해보기 전에는 모르지. 나로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어느 글에서 본 우화입니다. 이 우화에 나오는 불길은 지구 환경의 위기를 비유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짐승들도 불이 난 사실을 알지만 벌새와 다른 점은 그들은 방관자였다는 것입니다. 모두 도망쳤습니다. 아마 강을 건너면 다른 초원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었..

참살이의꿈 2005.12.13

[펌] 두 생명공학자의 명암

지금 우리나라에는 전 국민이 나서서 전대미문의 물질적·정신적 지지를 아낌없이 퍼붓는 황우석 박사와, 농민 집회의 와중에 목숨을 잃고 그렇게 거리에서 죽어간 앞선 수많은 이름들 중의 하나로 잊혀져 가는 전용철씨라는 두 사람의 ‘생명 공학자’들이 있다. 돌아간 전용철씨를 ‘생명 공학자’라고 부른 의도는 아이러니를 노린 것이 아니다. 인간이 죽은 물질로서 자연이 아니라 식물과 동물 등의 생명체를 자신의 기호와 욕망에 적절한 형태로 변형시켜 전유하기 시작한 것이 농업의 기원이라면, 농업도 첨단 장비와 초고급 인력이 투입되는 현대의 그것과 다름없는 ‘가장 오래된 생명공학’이라고 볼 필요가 있다. 농업은 결코 씨앗이라는 투입물에다 물리적 노동을 투하하여 일정 배수의 산출을 끌어내는 기계적인 행위가 아니다. 하늘과 ..

참살이의꿈 2005.12.08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여러 해 전에 한 친구가 베트남 한인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 친구와 많은 메일을 주고받았는데 한 번은 본인이 교지에 쓴 글이라며 보내주었습니다. 제목이 '아침에'라는 글인데 시를 중간중간에 넣으며 주변의 몇 사람들 인상을 그린 것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편지보관함에서 다시 읽어보는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창 밖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문득 잠이 깹니다. 커튼이 드리워진 창 위로 야자수 잎의 그림자가 물결처럼 일렁거립니다. "아. 오늘은 일요일이지" 그냥 누운 채로 움직이지 않고 모처럼의 여유를 느껴봅니다. 「이곳이 어딜까? 물론 베트남이지.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모르지. 꿈일지도 몰라. 내가 지금 베트남에 있다는 것이.. 꿈을 깨면 아마 잠실의 아파트에서 예전처럼..

참살이의꿈 2005.12.08

지구의 밤

이것은 인공위성에서 지구의 밤을 찍은사진입니다. 잘 사는 나라들의 밤은 인공 불빛으로 환하고, 그렇지 않은 나라들은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깜깜합니다. 북아메리카와 서유럽,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이 눈에 띄게 환합니다. 부와 문명의 편중 현상이 한 눈에 드러나는 사진입니다. 아마 백 년 전이었다면 전 지구가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캄캄했을 것입니다. 지구 40여억 년의 역사동안 내내 그랬을 겁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전기 문명이 시작되면서 지구의 밤 풍경은 이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백 년 뒤에는 대륙 전체가 온통 빛으로 덮일 것 같습니다. 지구의 이름이 그때는 광구(光球)로 바뀔지 모릅니다. 이 사진은 한반도 주변을 찍은 것입니다. 남한과 북한이 극단적으로 대비되어 보입니다. 북쪽에..

참살이의꿈 2005.12.03

철수

밭의 비닐을 걷어내서 정리하고, 모아두었던 콩대를 불태우고, 추위에 약한 나무 줄기에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보일러와 수도 배관에 있던 물을 모두 빼냈습니다. 이것으로 올 한 해 터에서의 생활이 마감되었습니다. 특히 보일러와 수도관의 물을 빼내는 작업은 콤프레셔를 사용해서 인부 두 명이 거의 세 시간 가까이 일해야 할 정도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내년 봄에 다시 물을 채워주는 것까지 해서26만 원이 들었습니다. 지난 두 해는 내려가 있지 않더라도 보일러을 겨울 내내 가동시키며 동파를 방지했지만 마당에 노출되어 있는 수도 폄프는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보온을 해도 두 번 다 얼어터져서 봄에는 고생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아예 물을 모두 빼버린 것입니다. 이번 겨울은 완전히 터에서 철수를 하려..

참살이의꿈 2005.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