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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김성탄(金聖嘆, 1608~1661)은 중국 명말 청초에 살았던 문예평론가였다. 재주가 뛰어났고 활달한 성격에 전통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인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세상을 우습게 여기고 경멸하는 태도 때문에 공맹지도(孔孟之道)를 어겼다 해서 사형을 받았다. 그는 머리가 잘리기 전 이렇게 큰소리 쳤다고 한다. "머리가 잘리는 것은 아플 뿐이고, 가산을 몰수 당하는 것은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나 나 성탄이 뜻하지 않은 일로 그리된 것은 참으로 괴이하도다." 김성탄을 처음 안 것은 오래 전 임어당의 을 통해서였다. 이 책에서 임어당은 김성탄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에는 김성탄의 글 한 편이 나온다. '행복한 한때에 관한 김성탄의 33절'인데 절에 갔다가 장마로 열흘 동안 갇혀 있으면서 인생에서 유쾌한 순간..

참살이의꿈 2020.08.07

반짝 뒷산

장마 꼬리가 길다. 다음 주까지 비 예보가 나와 있으니, 잘 하면 장마 종료일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다. 장마가 가장 늦게 끝난 때는 1987년의 8월 10일이었다. 오후에 반짝, 하고 파란 하늘이 열렸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부리나케 배낭을 메고 뒷산에 올랐다. 많이 게을러졌지만 이만한 의욕이라도 남아 있으니 다행이 아니겠는가. 한밤중에 요란하게 비가 지나갔는가 보다. 산길에도 빗물이 흘러내린 흔적이 남아 있다. 목현천은 흙탕물이다. 하천 옆 길은 아직 통제할 정도는 아니다. 앞에 걸어가는 80대 노부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입성으로 봐서 교양 있고 세련된 분들 같다. 씩씩한 할머니는 여행용 가방을 밀면서 앞서고, 할아버지가 뒤따른다. 두 분 간격이 자꾸 벌어진다. 젊었을 때 모습과 반대로 되었다..

사진속일상 2020.08.06

흰배롱

배롱나무꽃은 한자로는 자미화(紫微花)다. 이름 그대로 붉은색 계열의 꽃이지만 가끔 흰색도 보인다. 흰배롱은 백미(白微)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여름에는 붉은색 자미가 어울리지만 흰배롱도 나름의 운치가 있다. 탈속한 듯 고결한 품성이 전해오는 꽃이다. 서원이나 양반가의 정원에 오래된 배롱나무가 있는 걸 보면, 배롱나무는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예년 이맘이면 장마가 끝나고 땡볕이 내리쬘 때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배롱나무꽃이 더욱 뜨거워지는 시기지만, 올해 중부 지방은 그렇지 못하다.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비에 젖는 배롱나무꽃이 생기를 잃고 축 처져 있다. 장마 끝 기약은 아직 먼데, 이 긴 비가 지나면 병산서원의 배롱나무를 보러 가야겠다.

꽃들의향기 2020.08.05

다읽(1) - 선의 황금시대

책장에서 잠자고 있는 옛 책을 다시 읽기로 한다. '다읽'은 '다시 읽기'의 줄임말이다. 코로나가 가르쳐 준 것 중 하나가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이다. 방안을 가득 채우던 많은 책을 버렸을 때, 차마 떠나보내기 아까운 일부 책은 남겨 두었다. 언젠가는 다시 한번 읽어야지, 했는데 그때가 지금인 것 같다. '다읽'의 첫 번째 책은 중국의 오경웅(吳經熊) 선생이 쓴 다. 선(禪)에 관한 안내서로 이만한 책이 없다고 생각한다.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라 선승의 생애와 일화 중심으로 쉽고 재미있게 선의 핵심을 풀이했다. 지은이인 오경웅 선생은 가톨릭 신자인 것이 특이하다. 1899년 중국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하고 바티칸 교황청 공사로도 근무했다. 특정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폭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런 책..

읽고본느낌 2020.08.04

수컷의 유효기간

동물 수컷은 나이 들고 힘이 떨어지면 쓸모가 없어진다. 생식 기능이 없고, 사냥도 못 하고, 무리를 지켜주지도 못한다면 수컷의 가치를 어디서 찾겠는가. 반면에 보살핌과 살림이 역할인 암컷은 늙어서도 효용가치가 남아 있다. 최소한 음식을 장만하고 손주를 봐줄 수는 있다. 그래서 암컷의 평균수명이 수컷보다 긴 것은 자연선택적으로 충분히 납득이 된다. 인간만 아니라 다른 동물도 대부분 암컷의 수명이 수컷보다 20% 정도 길다. 백수의 왕자라는 사자의 세계에서 늙은 수사자는 천덕꾸러기다. 힘에 부쳐서 젊은 수사자에게 패하면 무리에서 쫓겨나고 광야를 헤매다가 죽는다. 그나마 암사자가 사냥해 오는 먹이를 받아먹다가 졸지에 혼자가 되면 제 먹이조차 구하지 못한다. 무리의 생존에 방해가 되는 늙은 수사자는 가차 없이 ..

참살이의꿈 2020.08.03

오징어 / 유하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 오징어 / 유하 쥐약을 덥석 삼키듯이 불난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지도 모르고 파티를 즐기듯이 떼를 지어 절벽으로 내달리는 레밍처럼 집어등 불빛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오징어처럼 우리 역시 현란한 빛과 향기에 취해 떼거리로 달려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 방향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

시읽는기쁨 2020.08.02

땀 쏟으며 오른 백마산

올해는 장마가 길다. 중부지방은 다음 주가 지나야 끝난다는 예보다. 8월 초순까지도 장맛비가 오락가락할 모양이다. 구름이 잔뜩 끼었지만 비 멈춘 날, 백마산에 올랐다. 산행 장비를 꾸린 건 오랜만이다. 작년 10월이 마지막이었으니 아홉 달이 넘었다. 지금은 발바닥 통증이 많이 가라앉아서 가벼운 산행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습도 높은 눅눅한 날씨 때문에 땀을 엄청나게 흘렸다. 수건 두 개가 금방 축축해졌다. 산 입구에서는 산모기가 떼로 달려들더니 다행히 산속에 들어가니 덜해졌다. 산모기를 쉼 없이 괴롭히는 잡념과 망상으로 해석한다면, 산에 오르는 과정을 깨달음의 길로 비유해도 괜찮겠다. 번뇌의 바탕은 탐욕과 시기다. 높이 올라가면 보는 시야가 넓어지면서 지상의 집착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어쩌다 돌..

사진속일상 2020.08.01

양지리 향나무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향나무는 11개다. 그중 하나가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232호의 이 향나무다. 옆에 거창 신씨 선조를 모신 묘소와 건물이 있는데, 이 향나무는 묘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양지리 향나무는 굵은 줄기가 여러 개의 가지로 균형 잡히게 갈라져서 단정한 모양을 하고 있다. 용틀임하는 향나무와는 모양새가 다르다. 입구 쪽에서는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나비 같이 보인다.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전체적으로 품위 있고 늠름한 모습의 향나무다. 향나무는 마을 끝 막다른 곳에 있다. 나무를 보고 나가다가 해프닝이 있었다. 지나던 트럭이 도랑에 빠져서 나가는 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견인차가 와서 트럭을 끌어낼 때까지 꼼짝없이 갇혔다. 덕분에 1시간 가까이 향나무 아래서 시..

천년의나무 2020.07.31

책 읽는 소리

나는 할아버지로부터 유별난 사랑을 받았다. 그 시절에 일흔이 되어서 첫 손자를 봤으니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이 오죽했겠는가. 말 그대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였던 것 같다. 그래서 버릇없이 자랐다 해도 할 말이 없다. 할아버지 수염을 잡고 "이랴 이랴" 하면, 할아버지는 엉금엉금 기면서 내가 끄는 대로 따라다니셨다. 수염이 뽑혀도 그저 좋아라 하시며, 손자를 위해서라면 어떤 악역이라도 마다치 않으셨다. 동네 사람들이 희한한 구경거리가 났다고 모여들었다 한다. 사랑방에는 동네 할아버지들이 자주 놀러 오셨다.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한글을 깨우쳤을 때다. 할아버지는 사랑방으로 나를 부르시고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다. 또래보다 앞서 글자를 익힌 손자를 자랑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동갑내기보다 나는 먼저 학교에..

길위의단상 2020.07.30

광릉수목원 산책

아내와 봉선사 연꽃을 보고 인근의 광릉수목원을 산책했다. 수목원 안에서 제일 시원한 길은 전나무 숲길일 것이다. 이 길은 약 200m 길이로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길 중 하나다. 1920년대에 오대산에서 종자를 가져와 심은 것으로 수령은 100년 가까이 되었다. 전나무 숲길을 따라 수목원 한 바퀴 돌게 되어 있지만, 중간에 공사로 통제되어 되돌아 나왔다. 숲 사이로 난 아담한 길이 있다. 이름이 '숲 생태 관찰로'로 길이는 460m다. 데크로 되어 있는데 숲의 기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수목원 안에는 호수(육림호)가 있다. 초기에는 발전 시설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저장하고 있다. 호수 둘레를 따라 있는 산책로 역시 좋다. 수목원과 봉선사를 연결하는 길이 3km의 '광릉..

사진속일상 2020.07.29

봉선사 연꽃

작년 8월 초에 봉선사에 갔을 때는 연꽃이 져 버린 끝물이었다. 그래서 올해는 열흘 정도 빨리 찾아가 봤지만, 코로나 종식을 기원하는 연꽃 축제가 이미 25일에 끝나 있었다. 그래선지 피어 있는 연꽃이 듬성듬성했다. 다음에는 7월 중순으로 날짜를 잡아야 할 것 같다. 봉선사에는 다른 연밭에 비해 백련이 많다. 백련의 꽃말은 '순결하고 청초한 마음'이라고 한다. 홍련과 달리 순백의 색깔에서 순수하면서 고귀한 품성이 느껴지는 꽃이 백련이다. 찾아간 날은 장마 와중이라 비가 오락가락한 날씨였다. 우리나라에서 연꽃의 개화 시기는 장마와 겹친다. 연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목탁을 치는 듯 묘한 울림을 준다. 연(蓮)과 비는 서로 잘 어울리는 연분 같기도 하다.

꽃들의향기 2020.07.29

장미를 나눠주니 내 손에 장미향이 남았다

가뭄에 단비 같은 뉴스를 며칠 전에 봤다. 우리나라에서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을 소개하는 보도였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숨은 선행을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데 놀랐다. 보도만 보면 우리나라가 사람 살 곳이 못 되고 곧 망할 것 같지만 사실은 착한 사람도 많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다. 기자들이 훈훈한 미담 기사도 많이 발굴해 주면 좋겠다. 기업인 중에서 대표적인 기부왕은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회장이다. 그는 2000년에 사재 1조 원을 털어 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세계 100대 자선재단 순위에서 90위에 속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 장학재단이라고 한다. 100세를 눈앞에 둔 그는 '돈을 버는 데는 천사처럼 할 수 없어도, 돈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하겠다'는 기부 철학을 밝혔다고 한다. 조창걸 한샘 ..

참살이의꿈 2020.07.28

금강경[26]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래의 서른두 가지 몸 모습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습니까?" "그렇겠습니다. 여래의 서른두 가지 거룩한 몸 모습으로 여래를 뵐 수 있겠습니다." "수보리여, 만일 여래의 서른두 가지 몸 모습으로 여래를 볼 수 있다면 전륜성왕도 여래라 할 수 있겠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제가 이제 부처님 말씀을 이해하기로는 서른두 가지 거룩한 여래의 모습만으로는 여래를 뵐 수 없겠습니다." 이 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네. 모습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말씀으로 나를 찾으려 하면 이는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 끝내 여래를 볼 수 없으리. - 금강경 26(모습이 아닌 진리의 몸, 法身非相分) 수보리의 대답이 갑자기 엉뚱하다. 지금까지의 수보리를 볼 때 이런 대답이 나올 리 없다. 수보..

삶의나침반 2020.07.27

장마 사이 뒷산 한 바퀴

장마 사이에 푸른 하늘이 열렸다. 망설임 없이 배낭을 꺼내서 뒷산으로 나갔다. 요사이는 바깥 걸음이 많이 부족하다. 자꾸 게을러지는 걸 코로나 탓으로 돌리지만, 내심에는 좀 게으르게 산들 어떠랴 싶은 마음도 있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아보라고, 코로나가 강요하는 이때가 아니면 언제 엄두를 낼 수 있겠는가. 그저께 비바람이 심하게 친 탓인지 산길에는 나뭇잎이 많이 떨어져 있다. 산 정상에 정자가 새로 생겼다. 전에는 돌무더기가 있던 자리다. 뒷산에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바위 중 하나다. 뒷산과 접해 있는 마을은 텃밭에 둘러싸여 있다. 집도 4층으로 된 연립주택 형태다. 그리고 집 밖을 나오면 흙을 밟을 수 있다. 도시와 농촌의 중간 지대쯤 된다. 시멘트로 덮인 동네와는 공기의 내음부터 ..

사진속일상 2020.07.26

신의 진화

종교와 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해 왔는지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 책이다. 생물체가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하듯이, 신 개념도 사회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진화한다. 신은 고정된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변화하는 개념임을 아브라함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보여준다. 이 책 는 미국의 저술가인 로버트 라이트가 썼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는 과학자답게 종교 역시 그런 틀로 설명하고 있다. 상당히 방대한 내용이면서 종교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데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미신적인 신앙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원시인들은 두려움에서 신을 찾았을 것이다.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을 거쳐 고대 국가가 들어서면서 종교도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

읽고본느낌 2020.07.25

물안개공원 연꽃

장맛비 속에 탁구팀과 물안개공원을 찾았다. 코로나 때문에 여섯 달째 탁구를 쉬고 있다. 나는 고작 한 달에 한 번 나가는 정도였지만, 매일 운동하던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싶다. 과연 언제쯤 되어야 실내 운동을 할 수 있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기약이 없다. 물안개공원 입구에는 굉장히 넓은 연밭이 있다. 그런데 연꽃은 없다. 지금이 연꽃이 한창일 시기인데 여기는 침묵 속에 잠겨 있다. 그 연유가 궁금하다. 안에 들어가면 작은 연꽃밭이 있다. 이 연꽃이 없었다면 무척 서운할 뻔했다. 그리고, 연잎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홀리다.

꽃들의향기 2020.07.24

안산객사 느티나무

안산시 수암동 옛 관아터에 있는 느티나무다. 현재 성곽을 비롯한 정비 공사가 진행 중인데 객사만 복원되어 있다. 이곳 안산객사(安山客舍)는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러 갈 때 하룻밤 묵어갔다고 한다. 이 느티나무는 관아 안에 있던 나무였다. 가까이에 더 오래된 은행나무도 있지만 공사 중이라 울타리로 막혀 있어 가까이 갈 수 없었다. 뒤로 수암봉이 보이는 전망 좋은 터에 느티나무만이 옛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서 있다. 수령은 400여 년 정도로 추정한다.

천년의나무 2020.07.23

유언 / 류근

절대로 남에게 베푸는 사람 되지 말아라. 희생하는 사람 되지 말아라. 깨끗한 사람 되지 말아라. 마음이 따뜻해서 남보다 추워도 된다는 생각하지 말아라. 앞서 나가서 매맞지 말아라. 높은 데 우뚝 서서 조롱 당하지 말아라. 남이 욕하면 같이 욕하고 남이 때리면 같이 때려라. 더 욕하고 더 때려라. 남들에게 위로가 되기 위해 웃어주지 말아라. 실패하면 슬퍼하고 패배하면 분노해라. 빼앗기지 말아라. 빼앗기면 천배 백배로 복수하고 더 빼앗아라. 비겁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비겁해라.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하느님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큰 교회 다녀라. 세상에 나쁜 짓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부끄러운 짓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양심과 선의는 네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라. 네가 나서지 않아도..

시읽는기쁨 2020.07.22

관곡지 연꽃(2020)

11년 만에 찾아간 시흥 관곡지(官谷池) 연꽃... 관곡지는 역사가 오래된 연못이다. 조선 전기의 농학자인 강희맹이 세조 9년에 명나라에 다녀오면서 남경의 연꽃씨를 채취해 이곳 연못에 심었다고 한다. 관곡지는 아직 연꽃이 만개하지 않은 듯하다. 꽃보다는 봉오리 상태가 훨씬 많았다. 올 7월에는 양평 세미원, 전주 덕진공원, 부여 궁남지, 시흥 관곡지 등 연꽃으로 유명한 네 군데를 모두 다녀 보았다. 아기자기한 면에서는 궁남지 연꽃이 최고였다. 그에 비하면 관곡지는 좀 밋밋한 편이다.

꽃들의향기 2020.07.21

사소한 부탁

책을 덮고 제목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리고, '사소한 부탁', 여기에 담겨 있을 여러 의미를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나는 겸손의 마음을 읽는다. 내가 사유하고 주장하며, 글에 담은 내용이 '사소'하다는 걸 자각하는 건 얼마나 중요한가. 세상을 향한 의견 제시 또한 정중한 '부탁'이어야 한다. 요사이처럼 제 또는 진영의 목소리만 크게 난무하는 세태에서 더욱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황현산 선생의 은 선생이 쓴 칼럼을 모은 책이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발표한 글이 실려 있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말을 잘 듣는 사람이다.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다. 선생의 글에서는 지성인의 향기가 난다. 글이 깊이가 있으면서 담박하고 간결하다. 선생의 인품이 어떠할지 글로써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

읽고본느낌 2020.07.20

정림사지5층석탑

현존하는 백제의 석탑은 두 개인 걸로 알고 있다. 미륵사지와 정림사지에 있는 석탑이다. 정림사지석탑이 미륵사지보다 후대에 만들어졌고 크기도 적지만 미적인 면에서는 앞선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면서 예쁘다. 정림사(定林寺)는 백제의 사비 도읍기(538~660)에 건립된 사찰로 사비도성 내부의 중심지에 있다. 고려시대 때 제작된 기와 명문으로 정림사라 칭하고 있지만, 백제시대 때 절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절은 중문, 탑, 금당, 강당이 남북으로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고,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정림사지5층석탑은 국보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하는 과정의 시원양식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석탑이다. 이 석탑은 전에는 '평제..

사진속일상 2020.07.19

궁남지 연꽃(2020)

전주에서 올라오는 길에 연꽃을 보러 부여 궁남지에 들렀다. 3년 만이다. 며칠간 내리던 장맛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반가운 얼굴을 보여준 날이었다. 궁남지(宮南池)는 백제 사비시대에 만든 인공 연못이다. 에 보면 '궁성 남쪽에 연못을 파고 물을 20여 리나 되는 수로로 끌어들였으며, 물가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때에도 연꽃을 심었는지는 모르겠다. 궁남지 연꽃은 주변의 버드나무와 어울리면서 꽃밭 사이로 산책로가 잘 나 있어 연꽃을 즐기기에는 조건이 좋다. 연꽃 종류도 다양하다. 이번에는 똑딱이를 가지고 주로 하늘을 배경으로 해서 찍어 보았다.

꽃들의향기 2020.07.18

성지(26) - 초남이

41. 초남이 성지 전북 완주군 이서면에 있는 초남이 성지는 유항검(柳恒儉) 아우구스티노(1756~1801)가 나고 자란 곳으로, 그와 그의 가족이 복음을 몸소 실천한 삶의 현장이다. 일찍 천주교를 접한 유항검은 1784년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베풀었다. 주변 뿐만 아니라 멀리 고창과 영광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 호남 최고의 부자로 평소에 잘 베풀고 종들을 형제처럼 대한 덕행이 복음을 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장남인 유중철 요한이 몸과 마음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고자 하는 지향을 발하였을 때 이를 지켜주기로 결심하고 같은 뜻을 지닌 한양의 이순이 루갈다와 혼례를 치르게 했다. 동정부부는 이곳에서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

사진속일상 2020.07.17

덕진공원 연꽃(2020)

장마중에 전주 덕진공원을 찾았다. 계속 내리는 비로 개화한 연꽃은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게 드물었다. 새로 피어나는 꽃봉오리만 변함 없이 씩씩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에 호수 둘레를 한 바퀴 돌았다. 덕진공원 연꽃은 호수 전체를 뒤덮고 있다. 옛날에는 호수에서 보트놀이를 했는데 이제는 그럴 공간이 사라졌다. 그리고 또 하나 달라진 게 있다. 덕진공원 호수 가운데를 가르지르는 연화교가 철거되고 새 다리가 건설중이다. 옛 다리는 너무 노후해서 현대적 디자인의 새 다리를 만든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내년에는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꽃들의향기 2020.07.17

중은(中隱) / 백거이

大隱住朝市 小隱入久樊 丘樊太冷落 朝市太囂喧 不如作中隱 隱在留司官 似出服似出 非忙亦非閑 不勞心與力 又免饑與寒 終歲無公事 隨月有俸錢 君若好登臨 城南有秋山 君若愛游蕩 城東有春園 君若欲一醉 時出赴賓筵 洛中多君子 可以恣歡言 君子欲高臥 但自深俺關 亦無車馬客 造次到門前 人生處一世 其道難兩全 賤即苦凍餒 貴即多憂患 唯此中隱士 致身吉且安 窮通與豊約 正在四者間 제대로 된 은자는 조정과 저자에 있고 은자입네 하는 이들 산야로 들어가지만 산야는 고요하나 쓸쓸하기 짝이 없고 조정과 저자는 너무 소란스럽네 그 둘 모두 한직에 있는 것만 못하니 중은(中隱)이란 일 없는 직에 머무르는 것이라 출사한 것 같으면서 은거한 것 같고 바쁜 것도 그렇다고 한가한 것도 아니라네 몸과 마음 힘들어 할 까닭도 없고 추위와 주림도 면할 수가 있으며 ..

시읽는기쁨 2020.07.14

수박꽃

동네를 산책하던 중 안 다니던 길로 들어섰다가 수박밭을 만났다. 수박밭을 보는 게 오랜만이라 무척 반가웠다. 갑자기 유년의 한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요사이 수박은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 거로 아는데 여기는 옛 방식 그대로 노지였다. 달덩이만 한 수박이 군데군데 달려 있었고, 수박꽃도 피어 있었다. 덕분에 수박꽃을 유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수박꽃은 호박꽃과 흡사하다. 꽃 크기는 작지만 비슷한 덩굴식물로 공통점이 많은가 보다. 수박은 꽃잎이나 줄기에 털이 많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잎 생김새도 특이하다. 다행히 꽃 하나가 길 가까이 있어 찍을 수 있었다. 울타리가 없었다면 안에 들어가 더 예쁘게 생긴 꽃을 담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그랬다가는 수박서리로 오해받기 십상이었겠지만. 수박꽃에는 암꽃..

꽃들의향기 2020.07.13

금강경[25]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는 여래가 '나는 중생들을 괴로움에서 건진다'라는 생각을 한다고 생각합니까? 수보리여, 결코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러하겠습니까? 여래에게는 괴로움에서 건질 중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래에게 괴로움에서 건져야 할 중생이 있다면 여래는 '스스로 있는 나'라는 생각, '죽지 않는 나'라는 생각, '바뀌지 않는 나'라는 생각, '숨 쉬는 나'라는 생각이 있게 될 것입니다. 수보리여, 여래는 '스스로 있는 나'는 '스스로 있는 나'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밝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 있는 나'가 참으로 있다고 여깁니다. 수보리여, 저 밝지 못한 사람 또한 여래는 '밝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밝지 못한 사람이라 이름할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 금강경 25(교화할..

삶의나침반 2020.07.13

사마에게

시리아 내전의 중심지에서 전쟁의 참상과 복잡한 시리아 상황을 전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촉발된 시리아의 민주화 투쟁은 알아시드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내전으로 발전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민주화 운동으로 시작했으나 종파간 대립과 외세가 개입하면서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국제적 분쟁 지역이 되어 버렸다. 러시아와 이란이 정부군을 지원하고, 미국과 사우디 등의 연합군은 반군을 지원한다. 전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인과 어린아이 같은 약자들에게 돌아간다. 9년이 넘는 기간 동안 40만 명이 사망했고 천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다. 21세기 문명 세상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한반도 상황도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지 말라는 보장이 ..

읽고본느낌 2020.07.12

여유당

마음이 울적한 탓인지 '여유당'을 찾고 싶었다. '여유당(與猶堂)'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로 다산이 태어날 당시는 경기도 광주군 마현리(마재마을)였지만, 지금은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로 되어 있다. 선생이 형조참의로 있던 1799년(정조23년)에는 선생에 대한 노론의 공격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정조의 신임을 받고 있었지만 천주교와의 연루 등 정치적 비판을 견디지 못한 다산은 이듬해 모든 관직을 내려놓고 고향 마재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 '여유당'이라는 현판을 붙이고 은신했다. 선생은 이렇게 썼다. "나는 나의 약점을 스스로 알고 있다. 용기는 있으나 일을 처리하는 지모(智謨)가 없고, 착한 일을 좋아는 하나 선택하여 할 줄을 모르고, 정에 끌려서는 의심도 아니 하고 두려움도 없이 곧장 행동해 버리..

사진속일상 2020.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