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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에서 보낸 하루

청소년과 함께 떠나는 경성 여행기다. 때는 일제 강점기인 1934년의 어느 봄날이다. 친일파 두취(頭取, 은행장)의 아들이 유학 중인 동경에서 귀국하여 하루 동안 경성을 둘러보는 내용이다. 사실적인 묘사가 실제로 당시 경성 시내를 거니는 듯하다. 1934년은 일제의 식민 통치 체제가 더욱 단단해지고 해방의 가능성이 거의 사라져 버린 시대였다. 1937년 중일전쟁을 앞두고 전시 체제로 돌입하기 직전의 비교적 안정된 시대였으며, 식민지의 그림자를 덮어버릴 정도로 경성은 화려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졌다. 그때 경성은 인구가 40만 정도 되었는데 일본인은 12만 정도였다. 경성은 북촌과 남촌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일본인은 주로 남촌에 거주했다. 백화점을 비롯한 상업 시설이나 유흥업소도 남촌에 주로 형성되었다...

읽고본느낌 2020.05.18

코로나19를 보는 글 두 편

코로나19를 대하는 글 두 편을 옮긴다. 첫 번째는 지난달 한겨레신문에 실린 김종철 선생의 칼럼이다. 제목이 '코로나 환란, 기로에 선 문명'이다. 코로나 환란, 기로에 선 문명 / 김종철 인류가 소위 문명생활을 시작한 이래, 역병은 인간 사회를 끊임없이 괴롭혀왔다. 세계의 역사는 어떤 점에서 전염병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때로는 국지적으로, 때로는 대륙 전체에 걸친 역병의 창궐과 그 후유증으로 세계사의 큰 흐름이 바뀌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놓고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결정적인 요인은 생산력의 발전이나 계급투쟁 혹은 전쟁이 아니라, 감염력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대표적인 예는 중세 말기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페스트일 것이다..

참살이의꿈 2020.05.17

붉은병꽃나무

우리 아파트 둘레에 붉은병꽃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5월이 되어 꽃이 피면 불타는 듯 아파트를 감싼다. 꽃 하나하나를 보면 그리 잘 생긴 꽃은 아니다. 오히려 억센 느낌을 받는다. 병꽃나무 자체가 본래 생명력이 강하다. 병꽃나무 중에서는 붉은병꽃나무 꽃이 제일 화려하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면서 이렇게 탐스러운 꽃을 피워주니 조경용으로는 최고다. 대신 깔끔하게 정돈되기보다는 자유분방한 편이다. 아파트 안을 산책할 때 자꾸 눈길이 간 붉은병꽃나무 꽃이다.

꽃들의향기 2020.05.16

지적 생명체 실험 실패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실제 주인은 유전자다. 유전자가 우주로 진출하기 위해 지적 존재인 인간을 이용할 뿐이다. 처음부터 지적 존재가 되도록 계획하고 유도한 주체는 유전자다. 인간은 오로지 '유전자 기계'에 불과하며, 유전자의 이기성이 제일 잘 발현된 존재가 호모 사피엔스다. 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내용이다. 지구는 살아 있다. 지구는 토양과 대기, 해양과 생물 생태계를 포함해서 조화롭게 작동하는 신성하고 지성적인 존재다. 지구는 유기체처럼 스스로 진화하고 발전해 나간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와 무기물은 생존에 적합한 방향으로 지구의 상태를 조절 유지해 왔다. 만약 지구 시스템을 파괴하는 요인이 생기면 지구는 그를 제거할 것이다. '가이아 이론'이다. 두 이론이 상충하는 듯 보이지만 지구의 위기 상황이..

길위의단상 2020.05.16

손주와 휴양림에서 놀다

손주를 데리고 유명산자연휴양림에 갔다. 코로나19 때문에 유치원에 가지 않는 손주를 데리고 바깥 나들이를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주일에 하루는 손주와 놀기로 했다. 지난주는 전주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건너뛰었다. 유명산자연휴양림은 경기도 가평의 유명산 자락에 있다. 휴양림 안에 자생식물원이 있어 숲 속에서 꽃 관찰하기에 적당하다. 휴양림을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있는데, 지금은 공사중이어서 통제 되고 있다. 다음에 다시 찾아올 명분이 생겼다. 발걸음은 먼저 자생식물원으로 향한다. 꽃 구경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풀밭에서 네잎클로버도 찾아보고... 에너지를 주체 못하는 아이는 잔디밭을 뒹굴고 뛰어다닌다. 우리는 신기하다는 듯 그 모습을 지켜본다. 평일의 식물원에는 우리 외에는 거의 사람이 없다...

사진속일상 2020.05.15

영국의 노동자들에게 / 셸리

영국의 노동자들아, 무엇 때문에 그대들을 업신여기는 지주들을 위해 밭을 가는가? 그대들의 폭군들이 입을 사치스런 옷을 무엇 때문에 힘들이고 근심하며 짜는가? 무엇 때문에 나서 죽을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지켜 주는가? 그대들의 땀을 짜내려 드는 아니 그대들의 피를 마시려 드는 저 배은망덕한 게으름뱅이들을 영국의 부지런한 자들아, 무엇 때문에 많은 무기와 사슬과 채찍을 만드는가? 고통을 모르는 이 게으름뱅이들은 그것으로 그대들의 강요된 노동의 생산물을 약탈할 텐데 그대들은 여가, 안락함, 평온, 피난처, 음식, 부드러운 연인의 향기를 누리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값비싼 고통과 근심으로 그대들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대들이 뿌린 씨를 다른 사람이 거둔다네 그대들이 찾아낸 재산을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네..

시읽는기쁨 2020.05.14

여산동헌 느티나무

전북 익산의 여산 동헌(東軒) 앞에 있는 느티나무다. 여산은 현이었다가 세종 18년(1436)에 원경왕후의 외가가 있는 곳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다. 아마 이 느티나무는 그 시기에 동헌이 설치되는 과정에서 심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령은 약 600년이다. 옆에도 다른 느티나무가 몇 그루 있다. 느티나무 아래엔 백지사 터가 있다. 백지사(白紙死)란 죄인의 얼굴을 백지로 덮고 물을 뿌려 질식사시키는 방법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인들이 이곳에서 백지사 처형을 당했다. 이 느티나무는 동헌 뜰에서 벌어진 잔인한 광경을 다 보았을 것이다. 150년 전의 상황이 아득하다. 세상은 일변했고, 느티나무만 그때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천년의나무 2020.05.13

공조팝나무

조팝나무에도 종류가 많다. 이름이 익은 것만도 조팝, 꼬리조팝, 당조팝, 일본조팝, 참조팝, 그리고 공조팝이 있다. 그중에서 공조팝나무꽃은 조팝나무꽃이 지고 난 뒤인 5월이 되어야 핀다. 조팝에 비해 꽃이 탐스럽고 우산 모양으로 둥글게 모여 있다. 계절의 여왕처럼 환하게 피어나는 꽃이다. 정원 울타리에 공조팝나무를 심으면 좋을 것 같다. 조팝나무, 이팝나무 같은 이름에는 배 곯은 민초들의 한숨이 스며있는 듯 해서 가슴이 아리다. 꽃이 피는 시기가 마침 보릿고개를 넘겨야 하는 때다. 요즘 사람이 꽃을 보며 조밥과 이밥을 연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조팝나무를 '눈버들(雪柳)이라 부른다. 조팝나무꽃을 멀리서 보면 버드나무 가지에 눈이 내린 것 같다. 우리 선조들은 이런 낭만적인 명칭을 붙일 여유조..

꽃들의향기 2020.05.13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코로나19로 인해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사람들이 인식하게 된 것 같다. 이런 방식으로 계속 살아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무한 생산과 무한 소비의 시스템은 지구를 병들게 하고 인류를 파멸시킬지 모른다. 코로나19를 자연계가 인간에게 주는 경고로 받아들여 본다. 는 리오 휴버먼(Leo Hubeman)이 쓴 책으로 1930년대에 나왔다. 90여 년 전에 쓰였지만 지금도 많이 읽히는 책이라고 추천받았다. 이 책은 나 같이 이과를 전공을 사람도 읽기 쉬우면서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발전해 간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중세 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경제적 관점에서 인류 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1부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이고, 2부는 '자본주의에서 ..

읽고본느낌 2020.05.12

내월리 느티나무

전북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명곡마을)에 있는 느티나무다. 옆으로 741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칠월 칠석에는 이 느티나무 밑에서 주민들이 음식을 차려놓고 마을의 화합을 다지며 행운을 비는 굿을 해왔다고 한다. 지금도 나무 둘레에는 주민의 기원이 적힌 종이가 달려 있다. 마을 주민과 함께 해 온 이 느티나무의 수령은 약 200년이고, 높이는 20m, 줄기 둘레는 4.6m다.

천년의나무 2020.05.11

성지(23) - 천호, 여산, 숲정이

34. 천호성지 천호(天呼)성지는 전북 완주군 비봉면 천호산(天壺山)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박해 시대에 다리실 교우촌을 비롯해 많은 신앙 마을과 공소가 있었다. 에 따르면 '산세가 험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고 말할 정도로 첩첩산중이었다. 천호성지에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명서 베드로 등 다섯 분과 다른 무명의 순교자들이 모셔져 있다. 2007년 준공된 부활성당으로 콘크리트 벽과 부정형의 외관이 특이한 성당이다. 예수가 묻힌 무덤의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기해박해 100주년 기념 순교자 현양비. 야외 제단. 성물박물관. 피정의 집. 아내와 장모님은 미사에 참예했지만, 나는 마스크를 지참하지 않아 성당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천호성지는 넓은 터에 잘 가꾸어진 성지다. 개인적으..

사진속일상 2020.05.11

5월의 전주수목원

코로나19로 전주수목원이 폐쇄되었다가 8일에 재개장했다. 전주에 내려간 길에 잠시 짬을 내 들렀다. 전주수목원은 한국도로공사에서 운영하는 비영리 수목원이다. 고속도로 건설시 불가피하게 훼손되는 자연환경을 복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1974년에 조성하였다. 처음에는 조경수의 포지로 시작하였으나 지금은 10만 평의 부지에 4천 종 가까운 다양한 식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종합 수목원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선지 조용한 분위기에 많은 식물이 전시된 알찬 수목원이라 할 수 있다. 공기업이 운영하지만 여느 수목원 못지 않은 정성이 느껴진다.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로 수목원에 들어왔다. 그런데 꽃 구경을 하며 녹색 숲을 걷다 보니 마음은 어느덧 무장해제가 되어 있다. 자연이 주는 치유 효과다. 오전 두 시간 정도를 천천..

사진속일상 2020.05.10

무도리 소나무

오랜만에 멋진 자태의 소나무를 만났다. 제천시 송학면 무도3리 마을 입구를 지키는 소나무다. 마을 주민이 이 소나무를 얼마나 아끼는지는 석비에 새긴 설명으로 알 수 있다. 오랜 옛적부터 이 소나무를 서낭당으로 모시면서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날 밤에 마을 주민이 모두 모여 마을의 평안과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서낭제사를 정성껏 올리고 있다 한다. 그리고 나무를 영원히 보호하는데 온 정성을 다할 것음을 밝히고 있다. 나무 밑에는 '성황신위(城隍神位)'라 쓰인 돌 비석이 있다. 나무는 원줄기 1m 정도 높이에서 줄기가 세 갈래로 갈라지며 부채살처럼 퍼져 나가고 있다. 균형 잡힌 몸매를 자랑하며 생육 상태가 좋다. 이 나무를 사랑하는 마을 주민의 정성이 느껴진다. 나무는 수령이 600년 정도며, 높이는 13m, ..

천년의나무 2020.05.06

금강경[20]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부처의 몸으로 부처를 볼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빛나는 부처님 몸만으로는 부처님을 뵐 수 없겠습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부처님 몸'이란 '부처님 몸'이 아니라 '부처님 몸'이라고 이름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래의 생김새로 여래를 볼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거룩한 여래의 생김새만으로는 여래를 뵐 수 없겠습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여래의 생김새'란 '여래의 생김새'가 아니라 '여래의 생김새'라 이름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 금강경 20(몸도 여의고 생김새도 여의고, 離色離相分) 불교에서 불상이나 부처님 유골을 신성시하는 것은 오히려 깨달음의 길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종교에서 거룩한 ..

삶의나침반 2020.05.06

도화리 버드나무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에 있는 버드나무다. 안내판에는 지명이 지곡마을이라 적혀 있다. 이 버드나무는 무도천과 2차선 도로 사이에 있다. 도로에 가깝지만 나무가 자라는 터가 넓어서 여유가 있다. 차를 타고 가다가 혼자 덩그마니 있는 모습에 잠시 내려 가까이 가 본 나무다. 이 버드나무 수령은 약 200년이고, 나무 높이는 14m, 줄기 둘레는 3.4m다.

천년의나무 2020.05.05

바느질 / 박경리

눈이 온전했던 시절에는 짜투리 시간 특히 잠 안 오는 밤이면 돋보기 쓰고 바느질을 했다 여행도 별로이고 노는 것에도 무취미 쇼핑도 재미없고 결국 시간 따라 쌓이는 것은 글줄이나 실린 책이다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개미 쳇바퀴 돌 듯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 - 바느질 / 박경리 바느질을 마지막으로 한 게 군대에서였던 것 같다. 그때는 군대 생활을 하자면 실과 바늘이 필수였다. 그전에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바늘귀에 실을 꿰 드리는 게 내 담당이었다. 지금은 아내한테서도 바느질하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한다. 꿰매야 할 정도로 해진 옷을 입지도 않거니와, 어지간하면 세탁소에 맡기기 때문이다. 어쩌다 돋보기를 쓰고 바느질하는 아내 모..

시읽는기쁨 2020.05.05

프로의 솜씨

어머니가 농사일을 놓으신지 서너 해가 되었다. 지금은 집 앞 텃밭만 가꾸신다. 한창 농사를 지을 때 어머니 별명이 '농사 9단'이었다. 동네 사람들조차 어머니한테 와서 조언을 구했다. 어머니가 작물을 키우면 다른 집에 비해 소출이 월등했다. 다른 사람이 말하길 "똑같이 농사짓는데 저 집은 왜 다를까?"라는데, 내가 볼 때 특별한 비결이 있기보다는 그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갔다. 고향 집에 갔더니 텃밭에 고추를 심어 놓으셨다. 일렬로 늘어선 고추가 해병대 줄보다 더 정확히 맞아 있었다. 줄을 긋고 심은 것도 아니고 대충 눈대중으로 했다는 게 이 정도다. 전에 산속에 있는 밭을 가꿀 때도 마찬가지였다. 뭘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정리를 하셨다. 살림살이나 다른 면은 그렇지 않은데 ..

사진속일상 2020.05.04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진작 이름은 알고 있었으나 이제야 읽어본다. 가벼운 단편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긴 장편소설이다. 분량이 5백 페이지가 넘는다. 나쓰메 소세키가 일본의 국민작가이고, 그의 대표작이 이 소설이라고 해서 기대가 있었는데 책을 읽고 난 느낌은 좀 실망이다. 장편으로 담기에는 지리해질 위험이 있는 이야기다. 라는 제목 그대로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 세상을 바라본 2년의 기록이다. 여기 등장하는 고양이는 사람의 말만 못 할 뿐 지력은 인간 이상이다. 주인공인 구샤미와 친구들이 고양이의 관심 대상이다. 고양이를 통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알 것 같다.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생각이 고양이를 통해 드러난다. 이 소설이 발표된 1905년은 일본이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하던 때였다. 그만큼 ..

읽고본느낌 2020.05.02

마장리 향나무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마장3리에 있는 향나무다. 마장리(馬場里)란 이름은 조선 연산군 때 이곳에서 말을 사육하고 군마 훈련을 시킨 데서 유래한다. 이 향나무는 조선 성종 때 공자 영정을 모신 성시영묘를 짓고 이를 기념하여 심었다고 전한다. 나무를 심은 뒤부터는 맑고 깨끗한 샘물이 솟아나왔다는데, 영험하다고 소문이 나서 마을 이름을 '샘골'로 불리기도 했다. 샘골 우물은 향나무 옆에 복원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향나무는 우람하면서 멋진 수형을 갖고 있다. 춤추듯 옆으로 뻗은 가지는 지지대에 의지하고 있지만 나무에 역동성을 더한다. 향나무 수령은 약 500년이고, 높이는 15m, 줄기 둘레는 3.4m다.

천년의나무 2020.05.01

노팅 힐

가끔 단것을 먹고 싶을 때가 있듯, 달콤한 이야기가 당기는 날이 있다. 그래서 찾아본 영화가 '노팅 힐(Notting Hill)'이다. '노팅 힐'은 영국 런던에 있는 동네 지명이다. 유명 할리우드 스타 여배우와 노팅 힐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평범한 남자가 우연히 만나고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극히 드물어야 환상을 충족시켜 주는 조건이 된다. 보통은 여자가 신분 상승을 하는 신데렐라 이야기지만 이 영화는 반대다. 남자의 욕구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줄리아 로버츠(안나 스콧 역)와 휴 그랜트(윌리엄 대커 역)가 두 주인공으로 나온다. 스타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인간성의 줄리아 로버츠가 매력적이다. 이 영화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명대사도 그녀의 입에서 나온다. "The fa..

읽고본느낌 2020.04.30

벽초지수목원과 마장호수

손주를 데리고 파주에 있는 벽초지수목원에 갔다. 정문에 들어서니 색색으로 고운 튤립이 활짝 피어 있었다. 혼자 뒤처져서 튤립 사진 삼매경에 빠졌다. "자연을 사랑하는 한 사람과, 예술을 자연으로 그려내는 한 화가가 만나 벽초지수목원의 기나긴 여정이 2005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안내 팸플랫에 나오는 설명이다. 벽초지수목원은 잘 가꾼 공원 같다. 설렘, 신화, 모험, 자유, 사색, 감동 등 여섯 개의 공간으로 되어 있다. 이번에는 제 엄마가 따라와서 우리 손이 줄었다. 대신 손주와 노는 재미도 같이 줄어 들었다. 코로나19 덕분에 손주와 노는 재미을 알게 되었다. 밖에 데리고 나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놀게 된다. 손주는 할머니를 잘 따르면서, 하는 말과 행동이 예뻐 귀염을 독차지한다. 다시 유치..

사진속일상 2020.04.29

동의나물(2)

동의나물의 '동의'라는 어감에서는 약초 같은 느낌이 난다. 실제로 한방에서는 마제초(馬蹄草)로 불리며 진통과 항균 작용이 있다고 한다. 동의나물 잎은 말 발굽과 닮았다. 이름은 '나물'이 붙어 있지만 독성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동의나물이라는 이름은 꽃이 피기 전 봉오리 모습이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을 닮아 붙여졌다는 재미있는 설이 있다. '동의'가 한자 이름은 아닌 것 같다. 동의나물은 밝고 화려한 색깔로 눈길을 끄는 꽃이다. 한택식물원에서 봤다.

꽃들의향기 2020.04.28

사회적 거리 두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처음에는 생경했으나 이제는 익숙한 말이 되었다. 코로나19가 바꾼 현실이다. 그러나 아슬아슬하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게 뻔하다. 얼마 전에 TV에서 가게가 북적대는 모습을 보여주며 '보복 쇼핑'이라는 표현을 써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참았던 쇼핑을 마치 보복하듯 해댄다는 뜻이다. 전혀 변한 게 없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이 전과는 달라지리라고 하지만 사실 얼마나 변할지는 의문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시적으로 물리적인 간격 두기에 불과하다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세상이 변하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우리들의 익숙한 사고나 습관과의 거리 두기로 연결되어야 한다. 억지로라도 달라질 세상..

참살이의꿈 2020.04.27

죽산리 느티나무

내비에 '죽산면사무소'를 치니 이 느티나무까지 데려다 준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에 있다. 수령이 450년인데 큰 가지가 여럿 잘려 나가서 우람한 줄기만 드러나 있다. 봄이 되었으나 새 잎을 내는 데도 벅차 보인다. 상대적으로 젊은 옆의 느티나무는 수세가 왕성하다. 안성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며, 나무 높이는 18m, 줄기 둘레는 4.3m다.

천년의나무 2020.04.26

2020 한택식물원의 봄

손주를 데리고 한택식물원에 갔다. 바람이 몹시 불어서 표를 끊을까 말까 고민을 했지만, 한 시간이나 달려온 시간이 아까워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거센 바람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꽃잔치에 흥겨웠다. 다양한 꽃들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튤립이 제일 눈에 들어왔다. 튤립은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는 꽃인 것 같다.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제 잘 난 척 튀지 않으면서 주위 풍경과 조화를 이룬다. 내가 꽃사진 찍는 게 부러웠는지 이번에는 저도 카메라를 들고 왔다. 사진을 찍고나서는 화면을 보여주며 자랑하느라 바쁘다. 사실 자세랑 결과물이랑 별로 나무랄 데 없다. 한택에 있는 내내 꽃에 관심을 보이고 집중하는 손주가 기특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한테 귀여움 받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 이해하지만, 그렇더라도 아직 ..

사진속일상 2020.04.25

체제에 관하여 / 유하

횟집 수족관 속 우글거리는 산낙지 푸른 바다 누비던 완강한 접착력의 빨판도 유리벽의 두루뭉술함에 부딪혀 전투력을 잊은 채 퍼질러 앉은 지 오래 가쁜 호흡의 나날을 흐물흐물 살아가는 산낙지 주인은 부지런히 고무호스로 뽀글뽀글 하루분의 산소를 불어넣어 준다 산낙지를 찾는 손님들이 들이닥칠 때 여기 쌩쌩한 놈들이 있는뎁쇼 히히 제발 그때까지만 살아 있어 달라고 살아 있어 달라고 그러나, 헉헉대는 그대들의 숨통 속으로 단비처럼 달콤히 스며드는 저 산소 방울들은 진정 생명을 구원하는 손길인가 투명한 수족관을 바라보며 나는 투명하게 깨닫는다 산소라고 다 산소는 아니구나 저 수족관이라는 틀의 공간 속에서는 생명의 산소도 아우슈비츠의 독가스보다 더 잔인하고 음흉한 의미로 뽀글거리고 있는 것 아니냐 - 체제에 관하여 /..

시읽는기쁨 2020.04.24

칠사산 트레킹

요 며칠 기상이 사나웠다. 어제 수도권에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늦은 눈이 내렸다. 113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바람 불고 황사도 몰려왔다. 봄 날씨가 원래 이렇게 어수선하다. 닷새만에 집을 나섰다. 아직 바람이 잦아지지는 않았지만 황사는 지나갔다. 칠사산 트레킹은 천변과 산을 함께 걷는 길이다. 늦은 아침을 먹고 아내와 같이 걷기 시작했다. 칠사산 입구까지는 경안천을 따라 가는 약 6km의 천변 길이다. 그동안에 경안천을 가로지르는 다섯 개의 징검다리를 건너야 한다. ▽ 첫 번째 징검다리 ▽ 두 번째 징검다리 메타세콰이어 숲 길을 지난다. 날씨 탓인지 오늘 천변에는 사람이 적다. ▽ 세 번째 징검다리 ▽ 네 번째 징검다리 네 번째 징검다리를 지나면 폭신한 흙길이 나온다. ▽ 다섯 번째 징검다리 천변..

사진속일상 2020.04.23

금강경[19]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떤 사람이 십억이나 되는 가없는 세계에 일곱 가지 보배를 가득 채워 이 보배를 부처님께 공양 올린다면 이 사람은 이와 같은 인연으로 많은 복을 얻겠습니까?" "그렇겠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이 사람은 그와 같은 인연으로 참으로 많은 복을 얻겠습니다." "수보리여, 만일 저 복과 덕이 참으로 '나'가 있는 복과 덕이라면 여래는 '복과 덕을 많이 받는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복과 덕은 결코 '나'가 있는 복과 덕이 아니기에 여래는 '복과 덕이 많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금강경 19(법계와 하나 된 삶, 法界通化分) 도올 선생은 21세기 인류의 과제를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가 자연과 인간의 슬기로운 공존, 둘째가 모든 종교와 이념간의 배타의 해소, 셋..

삶의나침반 2020.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