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층나무꽃 층층나무는 숲의 친절한 신사다. 단정하고 깔끔한 나무다. '층층'이라는 이름 그대로 가지가 층층으로 달려 있어 다른 나무와 구별하기 쉽다. 봄에 산에 들면 하얗게 핀 층층나무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층층나무꽃 역시 탐스럽고 예쁘다. 멀리서 보면 멀리서 보는대로 가까이서 보면 가까이서 보는대로 나름의 매력이 있다. 정원수로 가꾸어도 손색이 없는 나무다. 이 사진은 찍은지 한 달 되었다. 늦게서야 올린다. 꽃들의향기 2020.06.11
별일 읍지 / 정수경 누구냐 니째여? 시째라고? 느덜은 목소리가 똑같어. 전화소리는 더 못 알아 보것어. 교회여. 목사님이 죽어도 교회 와서 죽으랴. 오는 길에 행사장 들러서 치료도 받았어. 당뇨에 좋다는디 댕긴지 얼마 안돼서 그란지, 당이 안 떨어져야. 자꾸 댕기믄 좋아 진당깨 빼먹지 말고 댕기야 긋어. 거기 가서 치료 받은깨 감기는 그만 한디, 인제 살만햐. 사람들이 가믄 기분 좋게 놀아줘. 젊은이들이 참 싹싹햐. 느들은 나 그렇게 기분 좋게 못해줘야. 미안 하니깨 치약 같은 거 하나씩 팔아줘. 어떤 이는 거그서 파는 약 먹고, 안마기 치료도 받고 했다는디 당이 그짓말처럼 떨어졌댜. 피도 맑아지고. 내가 무신 돈이 있간디. 비싼 약 같은 건 안 사니깨 걱정 말어. 야 근디 느 아들 잘 있다지야? 내가 새벽마둥 기도햐. 무.. 시읽는기쁨 2020.06.11
두 견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공평무사한 입장이 있을까? 나는 없다고 본다. 누구나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과 현상을 본다. 심하게 말하면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객관적이면서 공평한 잣대는 없다. 컵이라는 실체가 있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사각형으로 보이기도 하고 둥글게 보이기도 한다. 컵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컵을 둥글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사각형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중의 하나다. 작금의 윤미향 사태를 보면서 솔직히 뭐가 뭔지 헷갈린다. 보도를 보면 윤미향은 시민운동을 가장한 사기꾼 같아 보이다가도, 다른 편 말을 들어보면 의혹 제기가 마녀사냥식으로 너무 지나친 것 같다. 만약 사실이 왜곡되어 있다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검찰 수사가 들어갔으니 내가 여기서 왈가.. 길위의단상 2020.06.10
불쑥 다가온 여름 어제는 31도, 오늘은 33도까지 낮 기온이 올라서 때 이른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올해는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난데없이 불쑥 덮친 여름이 앞으로 석 달간 이 땅을 불가마니를 만들 모양이다. 여름에는 더운 게 당연하지만 때가 때인지라 계절의 변화조차 심상치 않게 여겨진다. 봄의 코로나와 여름의 더위, 가을에는 또 뭐가 찾아올까. 인류는 앞으로 단단히 시달려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지구에 대해 저지른 못된 행태에 대한 인과응보가 아닌가 싶다. 몸이 기온 변화에 쉬이 적응하지 못한다. 무겁고 무기력하다. 나이가 든 탓이리라. 이럴 때는 열심히 움직여야 할까, 가만히 쉬어야 할까. 어느 쪽이든 지나치면 안 하니만 못 할 것이다. 적절한 균형점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 양생(養生)의 기본이리라. 목현천을 한 시간.. 사진속일상 2020.06.09
우만리 느티나무 여주를 지나가는 여강의 우만리 나루터에 있는 느티나무다. 우만리 나루터는 우만리와 강 건너 강천면을 잇는 곳이었다. 우만리 사람들은 땔나무를 하러 갈 때, 강천면 사람들은 여주장이나 장호원장을 보러 갈 때 이 나루터를 이용했다. 우마차를 싣고 건너는 큰 나룻배도 있었다고 한다. 우만리 나루터는 50년 전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자연스레 사라졌다. 이 느티나무는 300년간 나루터에서 뭇 사람들의 애환을 보고 들었을 것이다. 오가는 사람들은 배를 기다리며 느티나무 아래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었을 것이고, 느티나무는 귀동냥으로 들은 사연들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이제는 나루터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적막한 땅이 되어 버렸다. 여강을 따라 트레킹 하는 사람들이 가끔 나무 밑을 지나갈 뿐이다, 천년의나무 2020.06.09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 이덕무 선생의 소품 글을 보다가 만난 구절이다. 에 실린 원문은 이렇다. 眉宇間 隱然帶出澹沱水平遠山氣色 方可與語雅致 而胷中無錢癖 얼굴에 은근하게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과는 더불어 고상하고 우아한 운치를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의 가슴 속에는 재물을 탐하는 속물근성이 없다.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 주변에서 과연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선비 정신이 살아 있던 옛날에는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각자의 욕망 충족을 위해 허기지듯 내달리는 현대 자본주의 인간 군상들에게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리라. 혹 있지만 내가 못 알아봤을 수도 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일 테니까. 선생은 재물을 탐하는 속물근성에서 벗어난 사람의 얼굴을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띠고 있다고 했다. .. 참살이의꿈 2020.06.08
여미리 소나무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소나무다. 늘씬하게 잘 생긴 미인송이다. 줄기가 2m 정도 높이에서 둘로 갈라져 위로 뻗어올랐다. 기품이 있는 소나무다. 옆에는 고려 때 만들어진 미륵입상이 서 있다. 땅에 묻혀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소나무의 수령은 약 300년이다. 천년의나무 2020.06.07
문장의 온도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선생은 별명이 간서치(看書痴)였다.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이다. 가난한 서얼 출신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학문을 갈고닦았다. 북학파 실학자로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활약한 최고의 독서가며 문장가였다. 그는 성리학적 글쓰기를 지양하고 소소한 일상과 주변에서 관찰되는 사물에 집중한다.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을 안에 숨은 아름다움을 서정적인 문장으로 그려낸다. 책을 좋아했지만 글자에만 매몰되지 않고 일상의 살아있는 현상들에서 세상의 원리를 발견한다. 는 이덕무의 와 에서 뽑은 글을 모은 책이다. 한정주 선생이 엮고 옮겼다. 두 책 모두 이덕무가 20대 때 쓴 글로 그만의 특유한 감성과 사유가 묻어 있다. 조선 시대 때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는지 신.. 읽고본느낌 2020.06.06
매괴장미 충북 음성군 감곡면에 있는 감곡매괴성당에서 피는 장미다. '매괴(玫瑰)'는 중국어로 장미꽃이라는 뜻이다. 천주교에서 매괴는 로사리오, 즉 묵주기도를 의미한다. 천주교 전래의 종교적 의미를 가진 매괴꽃이 감곡매괴성당에 있다. 어느 신부님이 정성들여 구해서 심어놓은 것이라 한다. 매괴는 덩굴장미로 분홍색 꽃이 소박하면서 복스러운 모양을 하고 있다. 화려한 다른 장미와는 느낌이 다르다. 중국에서는 흔히 보는 장미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번식이 잘 안 되는지 넓게 퍼지지는 못하고 있다. 매괴장미의 공식적인 품종 이름이 궁금하다. ▽ 매괴 옆에 있는 장미인데 품종이 다르다. ▽ 성당에는 매괴장미보다 이런 일반 장미가 많다. ▽ 감곡매괴성당은 1896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성당이다. 초대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소곡의 .. 꽃들의향기 2020.06.05
물의정원 꽃양귀비(2020) 코로나 와중에도 사람들은 많다. 평일이지만 주차장에는 차를 댈 곳이 없다. 예년에 볼 수 없던 모습이다. 물의정원이 알려진 탓도 있겠고, 코로나로 답답한 사람들이 야외를 더 자주 찾게 되는 원인도 있겠다. 양귀비(楊貴妃, 719~756), 본 이름은 양옥환(楊玉環)이다. 당 현종은 61세에 당시 27세인 며느리 양옥환을 자신의 귀비로 책봉한다. 양귀비에 빠진 현종은 환락에 젖어 정사를 돌보지 않은 채 환관과 외척이 득세한다. 결국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고 양귀비는 현종의 명에 의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뛰어난 미모와 임금의 총애는 결국 화(禍)의 씨앗이 되었다. 밧줄로 자신의 목을 맬 때 그녀는 귀비보다는 옥환으로 살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또한, 1천 년도 더 지나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부르며 꽃밭으로 .. 꽃들의향기 2020.06.05
프로레슬링은 쑈다 / 유하 박통 시절, 박통터지게 재미있었던 프로레슬링 김일의 미사일 박치기에 온국민이 들이받쳐서 박통터지게 티브이 앞에 몰려들던 프로레슬링 흡혈귀 브라쉬 인간산맥 압둘라 부처 전화번호부 찢기가 전매특허인 에이껭 하루까 필살의 십육문 킥 자이안트 바바 빽드롭의 명수 안토니오 이노끼 그 세계적인 레슬러들을 로프 반동 튕겨져 나오는 걸 박치기! 당수! 또는 코브라 트위스트, 혼줄을 내주던 김일 천규덕의 극동 태그매치 조 저녁 여덟시면 나를 어김없이 만화가게에 붙잡아 놓던 그 흥미진진한 프로레슬링이 어느 순간 시들해진 건 무슨 이유일까 왜 모두들 외면했던 것일까 프로레슬링 유혈 낭자극을 유난히 좋아했던 박통이 죽어서? 김일 같은 스타 레슬러가 안 나와서? 항간에 떠도는 루머 중 가장 유력한 설은 국내파 레슬러 장영철이 .. 시읽는기쁨 2020.06.04
성지(24) - 해미순교성지 37. 해미순교성지 대전교구에 속한 해미순교성지는 1797년(정사박해)부터 1872년까지 대략 1천 명 이상이 순교한 곳이다. 그중에서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는 132명이며, 인언민 마르티노, 이보현 프란치스코, 김진호 비우 세 분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 2014년에 시복 되었다. 순교자 중 대부분이 무명인 이유는 당시 해미현은 무관영장이 지역 통치를 하면서 권력을 남용하여 자유로이 박해를 하면서도 중앙에 보고하지 않았고 기록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명 순교자의 묘. 잡아온 천주교인을 죽이는 방법은 다양했다. 사약, 몰매, 참수, 생매장과 함께 물에 빠트려 처형하는 수장형이 있었다. '진둠벙(죄인둠벙)'이라 불리는 웅덩이가 남아 있다. 팔을 묶은 신자를 거꾸로 떨어뜨려서 이 둠벙 속에 쳐박혀 죽게.. 사진속일상 2020.06.03
운산초교 등나무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운산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등나무다. 수령이 150년인데 서로 얽힌 줄기 모양이 수십 마리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다. 잘 찾아보면 뱀 머리 모양도 보인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는 좀 무서워 보일 형상이다. 어쨌든 기괴하면서 오묘한 섭리를 보여주는 등나무다. 등나무꽃 피는 시기에 왔다면 훨씬 더 장관을 볼 것 같다. 등나무 그늘 밑에는 야외 수업용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운산초등 출신이라면 이 등나무와 관계된 추억 한두 가지는 갖고 있으리라. 등나무의 저 넓고도 질긴 생명력을 찬탄한다. 천년의나무 2020.06.02
꽃지와 운여해변 바람 쐬러 아내와 함께 안면도에 갔다. 안면도자연휴양림과 수목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첫 번째 계획이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양림은 매월 첫번째 월요일이 쉬는 날이었다.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 꽃지해변으로 향했다. 썰물이 되어 할미, 할아비 바위까지 걸어서 가기는 처음이었다. 멀리서만 보다가 가까이 가서 본 느낌이 색달랐다. 바위 주변 돌은 칼 같이 날카로웠다. '꽃지'는 바닷가를 따라 해당화가 많이 피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해수욕장도 공사를 하느라 어수선하다.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목책이 세워져 있고, 모래를 보충하려는 듯 흙을 쌓아 놓았다. 목책은 모래 유실을 방지하기 위한 시설로 생각된다. 두 번째 계획은 운여해변에서 낙조를 보는 것이었다. 운여해변 낙.. 사진속일상 2020.06.02
금강경[22] 수보리 장로가 부처님께 여쭈었네. "행복하신 분이시여, 부처님께서 얻으신 위 없이 바른 깨달음이란 얻을 것이 없는 깨달음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더 나아가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위 없이 바른 깨달음은 어떤 작은 법조차 얻을 것이 없는 그런 깨달음입니다. 위 없이 바른 깨달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 금강경 22(얻을 진리가 없는 진리, 無法可得分) 사월초파일이면 동네 할머니들은 깨끗이 빨아 준비한 하얀 옷으로 단장하고 청계사로 갔다. 그 뒤를 아이들이 따랐다. 나도 외할머니를 따라나섰다. 외할머니 머리 위에서는 부처님께 드릴 곡식을 싼 보퉁이도 흔들리고 있었다. 청계사는 이웃 마을을 지나 야트막한 산을 넘으면 나왔다. 할머니들이 법당 안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절에서 주는 음식을 얻.. 삶의나침반 2020.06.01
낮에 나온 반달 오후에 집 주변을 산책하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반달이 떠 있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반원 모양의 달이 또렷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떠올라 쓴웃음을 지었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에 나선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중학교에서 물상 과목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태양과 달의 운동 단원이었던 것 같다. 한 아이가 질문했다. "선생님, 달은 낮에 볼 수 없나요?" 나는 순간 멈칫했지만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럼 볼 수 없지. 낮에 달이 떠 있어도 하늘이 너무 밝기 때문에 달은 안 보이는 거란다." 이 대답이 잘못되었다는 걸 몇 년이 지나서야 눈치챘다. 명색이 과학을 전공한 선생이 낮에 뜬 달을 본 적이 없었다니. 아니, 봤더라도 그러려니 했지 앎과 연결되지는 않았다. 낮에는 해, 밤에는 달이라는.. 길위의단상 2020.05.31
미스김라일락 해방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47년에 미국 군정청 소속의 식물 채집가인 미더(E. M. Meader)가 도봉산에서 자라고 있던 털개회나무의 종자를 채취해서 미국으로 가져갔다. 향기가 진하고 병해에도 강한 나무의 특성을 알아챈 미더는 이 나무를 개량하여 이름을 '미스김라일락'이라 붙였다. 당시 사무실에서 식물 정리를 도와주던 한국 여자 호칭이 '미스김'이었다고 한다. 꽃이 많이 열리도록 개량한 미스김라일락은 우리의 털개회나무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세계인이 사랑하는 라일락이 되었다. 미스김라일락은 꽃이 맺힐 때는 진보라색이었다가 점점 라벤다색으로 변하며, 만개할 때에는 흰색으로 변하고 매혹적인 향을 발산한다. 라일락 중에서도 향기가 제일 강하지 않나 싶다. 매력적인 꽃이지만 '미스김'이라는 이름이 전하는 사.. 꽃들의향기 2020.05.30
경안천습지공원 금계국 경안천습지생태공원 둑에 금계국이 만발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멀리 노란색 띠가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더 장관이다. 이렇게 한 종류로 꽃밭을 넓게 조성하면 풍경이 단조로운 반면 스케일은 압도적이 된다. 지형에 따라 꽃을 선택하고 식재한다면 효과가 배가 될 것 같다. 공원 둑길은 공사중이다. 경기도 광주에서는 '그린 로드' 조성 사업이 여기저기서 진행되고 있다. 단편적으로 끊어져 있던 걷기 길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모양이다.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길만 아니라 주변 환경도 잘 정비해 주길 바란다. 각 구간을 상징하는 꽃길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광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꽃들의향기 2020.05.29
연필로 쓰기 최근 지인으로부터 일산 호수공원에서 김훈 작가를 봤다는 얘기를 들었다. 작가는 20년째 일산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호수공원이 즐겨 찾는 산책 코스다. 의 전반부는 호수공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물이 소재로 등장한다. 일산 호수공원에 나가면 벤치에 앉아 있는 작가를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처럼 김훈 작가는 글을 쓸 때 연필을 고집한다. 컴퓨터의 편리함을 알겠지만 연필이 주는 아날로그의 감성을 버리기 싫은가 보다. 글 쓰는 행위나 문체에서 작가 특유의 고집이 읽히기 때문에 작가를 좋아한다. 건조한 듯 담백한 듯하면서 의미의 정수를 캐내는 작가의 문체도 좋다. 는 작년에 나온 작가의 산문집이다. 공원 벤치에 앉아 세상을 관조하는 듯하지만 치열한 삶의 현장을 외면하지 않는다. 특히 신문에 발.. 읽고본느낌 2020.05.28
용인휴양림에서 놀다 이번주에는 손주와 용인자연휴양림에 갔다. 손주를 데리고 노는 데는 일반 공원보다 휴양림이나 산이 낫다. 손주도 자연 속에 들어가는 걸 더 좋아한다. 요즘 시국에는 사람이 적은 곳이라야 마음이 편하다. 용인자연휴양림은 다양한 시설과 즐길거리를 갖추고 있다. 등산로와 산책로를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고, 숲에는 짚라인 같은 어드벤처 기구도 있다. 아이들 놀이터나 휴식할 수 있는 시설도 넉넉하다. 가족 나들이 장소로 적당하다. 용인자연휴양림은 여러 차례 왔지만 손주와 함께는 처음이다. 산길은 잠깐 걷고 주로 놀이터 주위에서 놀았다. 조금만 산 속으로 들어가면 조용한 쉼터가 많다. 자리를 깔고 느긋하게 낮시간을 보낸다. 손주는 올챙이를 잡는다고 돌 위에 엎드려 일어날 줄을 모른다. 사내 아이들은 움직이는 생물.. 사진속일상 2020.05.27
백당나무꽃 꽃 모양은 산수국과 닮았다. 그러나 산수국은 색깔을 띠고 있는데(보라색이 흔하다), 백당나무꽃은 흰색이다. 산수국은 범의귀과, 백당나무는 인동과로 둘은 완전히 다른 나무다. 백당은 '백단(白壇)'이 변한 이름으로 짐작한다. 그보다는 북한에서 명명한 '접시꽃나무'가 더 어울린다. 흰 접시에 음식이 담긴 생김새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장자리에 있는 흰색 꽃은 수술이나 암술이 없는 가짜 꽃이다.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기 위한 전략으로 이런 가짜 꽃을 만든다. 이런 치장술은 자연계의 모든 생물에게 예외가 없다. 그러나 식물은 인간처럼 타자를 기망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식탁을 차려놓고 초대하니까. 꽃들의향기 2020.05.26
벌과 하느님 / 가네코 미스즈 벌은 꽃 속에, 꽃은 정원 속에, 정원은 토담 속에, 토담은 마을 속에, 마을은 나라 속에, 나라는 세계 속에, 세계는 하느님 속에, 그래서, 그래서, 하느님은, 작은 벌 속에. - 벌과 하느님 / 가네코 미스즈 "일본 센자키에서 외동딸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고 온순했다. 두 살 되던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가 재혼한 뒤 할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집안일을 돕다가 어른들이 정한 남자와 결혼했으나 남편은 그녀가 글 쓰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방탕한 남편과의 불화와 병으로 괴로워하다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가네코 미스즈(1903~1930), 짧은 약력과 시 몇 편으로 그녀를 얼마나 알 수 있겠냐마는 왠지 그 이름만 들어도 슬퍼진다.. 시읽는기쁨 2020.05.25
7년의 밤 정유정 작가의 스릴러 소설이다. 여성작가라는 선입견을 씻어줄 정도로 스케일이 크고 선이 굵다. 그러면서 상황이나 인간 내면의 심리 묘사는 아기자기하며 세밀하다. 불의의 사고로 낭떠러지로 내몰린 뒤 아들을 지키려는 남자(최현수)와, 딸의 복수를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는 다른 남자(오영제)의 대결 이야기가 숨 막히게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광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는데 범죄와 폭력 스토리는 빠질 수 없다. 작가가 이런 소설을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모두 개성이 뚜렷하다. 그중에서 제일 주목된 인물은 오영제다. 내가 아는 싸이코패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싸이코패스는 자기 것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특징이다. 자기 물건을 부순 고양이를 .. 읽고본느낌 2020.05.24
98일만에 모임 나가다 한 달에 두세 차례씩 만나는 당구 모임에 나갔다. 코로나19에 의한 사회적 거리 두기 이후로 외부 모임에 나간 게 98일만이다. 그간 가족끼리 바깥나들이는 했어도 친구 만남은 삼갔다(불가피하게 상가 조문과 치과 진료는 있었다). 대중교통도 98일만에 이용했다. 거리에 나가니 사람들이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신기했다. 착용률이 90%는 되는 것 같았다. 나로서는 몇 시간 계속 쓰고 있자니 너무 답답해서 사람이 적은 데서는 살짝 벗기도 했다.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마스크를 벗더니 재채기를 심하게 했다. 팔로 입을 가리기는 했지만 그러려면 왜 마스크를 쓰는지 모르겠다. 불안해서 다른 칸으로 옮겼다. 마스크를 펼치지 않고 쓴 사람도 있었다. 코와 입을 겨우 가릴 정도였는데 주위를 살펴보니 재미있는.. 사진속일상 2020.05.23
금강경[21] "'나에게는 가르칠 진리가 있다.' 수보리여, 그대는 여래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한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에게는 가르칠 진리가 있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곧 여래를 헐뜯는 일이 될 것이니 그것은 여래의 가르침을 바르게 깨쳐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진리를 말한다는 것은 말할 만한 진리가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수보리여, 진리를 말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이때 지혜의 아들 수보리 장로가 부처님께 여쭈었네. "행복하신 분이시여, 오는 세상에도 이와 같은 가르침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낼 중생들이 있겠습니까?" "수보리여, 저들은 중생이 아니고 중생이 아님도 아닙니다. 수보리여, '중생이란 중생이 아니라 중생이라고 말할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 삶의나침반 2020.05.22
장수동 은행나무(2)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에 있는 이 은행나무는 장수동만 아니라 인천시의 자랑이다. 이렇게 멋지고 우람한 은행나무를 본다는 게 영광이며 감사하다. 나이가 8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높이 30m, 둘레 8.6m에 이를 정도로 크면서, 5개의 가지가 균형을 이루며 뻗어 있어 형태가 매우 아름답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12호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내가 볼 때 우리나라 은행나무 중 '베스트 텐'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이 은행나무를 처음 만난 건 9년 전 겨울이었다. 봄에 초록 잎을 입은 모습을 보니 더 감탄이 나온다. 왕성한 수세로만 본다면 80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다. 예전에는 음력 7월과 10월에 마을 주민들이 제물을 차리고 풍년과 무사태평을 기원했다고 한다. 그런 전통은 이.. 천년의나무 2020.05.21
인천대공원 나들이 손주를 데리고 인천대공원에 나들이를 다녀왔다. 차로 약 50분이 걸리는 거리다. 비가 내린 뒤 맑고 청정한 날씨가 펼쳐졌다. 코로나로 답답한 마음을 풀어보려는지 공원에는 나들이 나온 사람이 많았다. 처음 가 본 인천대공원은 예상 외로 넓으면서 다양한 시설이 있었다. 두 시간이면 넉넉하리라고 여겼는데 세 시간 넘게 있으면서도 반밖에 둘러보지 못했다. 내 입장에서는 공원 안에 있는 8만 평의 수목원이 제일 좋았다. 인천 시민의 휴식과 힐링 공간의 역할을 하는 멋진 공원이다. 공원 중앙에 호수가 있고, 둘레에는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아이는 어쩔 수 없이 놀이터를 제일 좋아한다. 공원에는 아이를 유혹하는 요소가 많다. 산에 갔을 때는 한 눈 팔 여지가 없었는데 공원은 다르다. 그래서 좀 피곤했다. 호수를.. 사진속일상 2020.05.21
금낭화(2)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진빨이 잘 받는 꽃이 있다. 눈으로 보면 예쁜데 사진으로 찍으면 영 별로인 꽃이 있고, 아무렇게나 찍어도 보기 좋게 나오는 꽃이 있다. 금낭화는 후자에 속한다. 찍으면 작품이 된다. 금낭화의 '금낭(錦囊)'은 '비단 주머니'라는 뜻이다. 옛날에 아이들이 옷에 매달아 차고 다니던 복주머니 모양을 닮았다고 본 모양이다. 그보다는 금낭화를 볼 때마다 단발머리 소녀가 연상된다. 요사이는 신식이라서 빨간 염색을 했는가, 금낭화를 보면서 누구나 마음 속에 떠오르는 옛 동네의 소녀 하나쯤 있지 않을까. 꽃들의향기 2020.05.20
시인의 마을 베를린으로 가는 버스는 세 시간째 달리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넓은 평원의 단조로운 풍경이 질리도록 펼쳐졌다. 다들 눈을 감은 채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한국에서 가져온 테이프를 운전 기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플레이어에 꽂았다. 정겨운 우리 가요의 멜로디가 독일 버스 안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독일에 연수를 온 지 두 주일째, 뒤에서 소곤거리며 잡담이 들리던 버스 안이 숙연해졌다. 몇 곡의 트로트가 지나가고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이 나왔을 때 내 가슴은 떨리기 시작했다. 노래 분위기와 당시 상황이 어쩜 그리 절묘하게 맞았는지 모르겠다. 어울리지 않게 두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누가 내게 다가와서 말 건네주리오 내 작은 손 잡아주리오 누가 내 마음의 위안 돼주리오 .. 참살이의꿈 2020.05.19
경성에서 보낸 하루 청소년과 함께 떠나는 경성 여행기다. 때는 일제 강점기인 1934년의 어느 봄날이다. 친일파 두취(頭取, 은행장)의 아들이 유학 중인 동경에서 귀국하여 하루 동안 경성을 둘러보는 내용이다. 사실적인 묘사가 실제로 당시 경성 시내를 거니는 듯하다. 1934년은 일제의 식민 통치 체제가 더욱 단단해지고 해방의 가능성이 거의 사라져 버린 시대였다. 1937년 중일전쟁을 앞두고 전시 체제로 돌입하기 직전의 비교적 안정된 시대였으며, 식민지의 그림자를 덮어버릴 정도로 경성은 화려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졌다. 그때 경성은 인구가 40만 정도 되었는데 일본인은 12만 정도였다. 경성은 북촌과 남촌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일본인은 주로 남촌에 거주했다. 백화점을 비롯한 상업 시설이나 유흥업소도 남촌에 주로 형성되었다... 읽고본느낌 2020.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