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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에 도전하다

그동안 제대로 된 등산이 너무 뜸했다. 주로 뒷산길만 걸었지 500m가 넘는 산을 오른 기억이 까마득하다. 아마 2년 반 전의 월출산 등산이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체력 테스트 겸 도봉산을 한 번 올라보기로 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자가용을 몰고 가서 도봉산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주차료가 5분에 250원이다. 입구를 지나면 등산로는 여러 길로 갈라진다. 다락능선을 타고 포대정상으로 향하는 코스를 택했다. 다락능선을 걷다 보면 여러 조망 포인트가 나온다. 첫 번째 조망 포인트에서는 서울 동북부 지역과 그 뒤로 순하게 앉아 있는 불암산과 수락산을 볼 수 있다. 은석암을 지나고, 두 번째 조망 포인트에서는 포대능선과 망월사가 보인다. 도봉산은 평일인데도 등산객이 많다. 혼자 조용히 걷도록 놓아두지를..

사진속일상 2020.10.06

금강경[31]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누군가 '여래는 스스로 있는 나, 죽지 않는 나, 바뀌지 않는 나, 숨 쉬는 나, 이런 모든 나에 대한 견해를 가르친다'라고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내가 말하는 참뜻을 잘 알았다고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그런 사람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참뜻을 바르게 알았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 행복하신 분께서 말씀하시는 '스스로 있는 나', '죽지 않는 나', '바뀌지 않는 나', '숨 쉬는 나'는 참으로 그런 나가 아니라 그런 나라고 이름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위 없는 깨달음에 마음 낸 님들은 있고 없는 모든 것들을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믿고, 이와 같이 깨달아서 그것들에 대해 '그것은 어떤 것이다'라는 생각을 내어서는..

삶의나침반 2020.10.05

하이쿠로 본 노년

일본노인요양협회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이쿠를 모집해서 입상작을 뽑고 있다. 매년 여는 행사라고 한다. 아래는 올해의 수상작이다. 나도 이제 노년에 들고보니 남의 일 같지 않다. 세월을 이길 장사가 있는가. 몸과 정신이 쇠해지는 걸 지긋이 바라보며 살고 있다. 일본 노인의 심정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연상이 이상형인데 더 이상 없어 전철 개찰구 안 열려 봤더니 이거 진찰권 LED 전구 내 남은 수명으로는 다 쓰지도 못해 도쿄 올림픽 어디서 보려나 하늘인가 땅인가 이생의 미련 없다고 하지만 지진엔 도망가 주변 사람들이 칭찬하는 손글씨 사실은 손떨림 사랑인 줄 알았건만 부정맥 펜과 종이 찾는 도중에 쓸 문장 까먹어 세 시간 기다려 진찰받은 병명 노환 의사가 갑자기 상냥해지면 불안해 만보계 절반 이..

참살이의꿈 2020.10.04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박찬국 교수가 쉽게 풀이한 하이데거 철학의 해설서다. 하이데거 하면 실존철학자로만 알고 있지 그분의 사상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서양의 소로우나 동양의 선불교, 노장사상과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는 전체가 10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각 장과 그 장의 내용을 요약한 문장을 보면 하이데거 철학의 대체적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장 하나하나가 모두 묵직한 주제들이다. 1장, 고향 상실의 시대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대도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곳에서는 시기와 질시 그리고 경쟁이 은밀하게 혹은 공공연하게 사람들을 지배한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울지 몰라도 마음은 한없..

읽고본느낌 2020.10.03

코로나 추석

코로나로 이번 추석은 고향에서 모이지 않고 각자 지내기로 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추석 차례를 주관하며 지낸 게 40년이 넘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다. 누구도 하지 못한 새로운 역사를 쓰는 걸 보니 코로나가 대단하기는 하다. 할 일이 없어진 추석날은 길 걷기에 나섰다. 문득 난설헌이 생각났고, 그곳을 목표 지점으로 정했다.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난설헌 묘가 있다. 전날은 감정 낭비가 심했는데 황폐해진 속도 달랠 겸 느릿느릿 산천경개를 구경하며 걸어갔다. 난설헌과 두 자식의 묘를 내려다보며 오래 앉아 있었다. 난설헌의 가련한 생애가 떠올라 마음이 착잡했다. 자동차들의 굉음이 이어지던 중부고속도로는 얼마 되지 않아 상행선부터 정체가 시작됐다. 묘 옆에 있는 시비(詩碑)에는 난설헌 시..

사진속일상 2020.10.02

포천 나들이

가을 하늘이 좋은 날, 아내와 포천에 나들이를 다녀왔다. 먼저 들린 곳은 신북면에 있는 아트밸리였다. 버려져 있던 폐채석장을 미적으로 새롭게 재창조한 공간으로 알려진 곳이다. 포천화강암은 재질이 단단하고 무늬가 아름다워 건축 자재로 많이 쓰였다고 한다. 흉물스러웠을 장소가 예쁘게 변신한 모습이 보기 좋다. 주 진입로보다 산길 산책로를 걸어 들어가면 더 좋다. 다음으로 산정호수를 찾았다. 산정호수는 예전부터 관광지로 유명해서 여러 추억이 서린 곳이다. 학생들 데리고 극기훈련을 와서 며칠 머무르기도 했다. 이번에는 산정호수 둘레길을 걸었다. 산정호수 둘레길은 호수를 따라 걷는 3.2km 길이로 주로 나무데크로 되어 있다. 느긋하게 걸어도 한 시간이면 넉넉하다. 유원지의 소음만 없다면 호젓하게 산책할 수 있는..

사진속일상 2020.09.30

가을의 소원 / 안도현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 가을의 소원 / 안도현 자리에서 일어나면 싸늘한 기운이 적당히 기분 좋다. 자동으로 창문을 열던 손길도 멈추었다. 창 곁에 다가와 있던 안개가 천천히 물러가고 있다. 그 빈 자리를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채우기 시작하는 아침이다. 시인을 따라 내 가을의 소원은 뭐가 있을까를 들여다본다. '소원 없음'으로 소원을 삼는 게 제일 낫지 않을까, 라는 건방진 생각도 해 본다. 쉼 없이 생기고 사라지는 가운데 자연은 그대로 여여(如如)하거늘...

시읽는기쁨 2020.09.28

석수암 향나무

석수암(石水庵)은 안동시 안기동에 있는 작은 사찰인데 경내에 오래 된 향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향나무의 일종으로 옆으로 비스듬히 퍼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가지를 받쳐주는 쇠기둥의 도움이 필요하다. 의상대사가 이 절을 건립할 때 심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전설은 전설로 알아들어야 할 것 같다. 전설대로라면 나무의 수령은1,400년이 되어야 한다. 그에는 못 미치더라도 상당한 연륜을 보여주는 석수암 향나무다.

천년의나무 2020.09.27

웅부공원 느티나무

안동시 동부동에 있는 웅부공원(雄府公園)은 옛날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와 안동군청이 있던 자리다. 공원 안에 안동 사람들이 '부신목(府神木)'이라 부르는 느티나무가 있다. 부신목은 '부(府)를 지켜주는 신을 모시는 나무'라는 뜻이다. 안동부사가 부임해 오면 먼저 이 나무에 신고했고, 또 제관으로 매년 정월 열나흗날 자정에 부의 안녕과 백성의 복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 한다. 현재는 시장이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나무는 가지가 여럿 잘리고 상한 모습이어서 이름에 어울리는 위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느티나무의 높이는 10m, 줄기 둘레는 1.5m, 수령은 약 800년으로 추정한다.

천년의나무 2020.09.27

한밤중의 전화벨 소리

한밤중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무섭다. 누구나 급한 일이 아니고서야 잠잘 시간에 전화를 걸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밤에 머리맡에 있던 휴대폰이 부르르 떨었다. 화면을 보니 동생 이름이 떴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입원하셨다는 연락이었다. 다음 날 내려가서 닷새 동안 병실 지킴이를 했다. 다행히 심각한 병은 아니어서 일주일 정도의 입원으로 퇴원이 가능했다. 어머니는 아흔이 되실 때까지 한 번도 입원해서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을 정도로 강건하신 분이다. 퇴원 날짜를 받아 놓고 나는 농담 삼아 말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입원해 보는 경험도 했으니 감사하세요." 2인실에 있었는데 막바지에 옆 침대에 천하무적 환자가 들어왔다. 80대 할머니였는데 호통을 치면 간호사들이 꼼짝 못 했..

사진속일상 2020.09.26

다읽(5) - 조화로운 삶

내 밤골 생활의 모델이 되었던 책이다.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 부부는 1932년에 뉴욕을 떠나 버몬트 산골에서 20년 동안 현대 문명을 벗어난 대안적 삶을 살았다. 이 책 은 그들의 꿈과 이상을 실천해 나간 삶에 대한 성실한 기록이다. 단순함, 고요한 생활, 가치 있는 일, 조화로움이 그들이 추구한 삶의 기본 가치였다. 화폐에 의존하지 않는 자급자족의 삶을 도시에서 이룰 수 없다는 것은 자명했고, 해답은 자연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버려진 농장에서 새로운 삶을 실험했고, 생각과 생활이 일치하는 조화로운 삶을 살았다. 두 사람은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한 원칙을 세운다. -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은 적어도 절반 넘게 자급자족한다. - 스스로 땀 흘려 집을 짓고, 땅을 일구어 양식을 장만..

읽고본느낌 2020.09.20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M 중학교에 근무할 때였으니 1980년대 초반이었다. 일과가 끝나고 퇴근하는 길에는 그냥 집으로 가는 날이 드물었다. 학교 앞에 있는 동그랑땡 집에서 소주를 적당히 마신 뒤, 대개 입가심으로 한 잔 더 하자면서 호프집으로 가는 게 정해진 코스였다. 호프집 안주는 보통 노가리와 마른안주였다. 그날은 교감이 동행했고 역시 순서대로 이차 호프집에 자리를 잡았다. 교감은 일본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근무하다가 귀국해서 M 중학교에 부임해 왔다. 교감과 함께 있으면 술자리의 화제는 자연히 일본 얘기가 많았다. 교감은 일본으로부터는 배울 게 많다는 걸 늘 강조하는 지일파였고, 일본에 대단히 우호적이었다. 그날은 일본 문화 얘기를 하다가 흥이 났는지 일본 노래를 불렀다. 당신이 일제 강점기 때 학교에서 배웠던 노래로 ..

길위의단상 2020.09.18

길들이기 / 방주현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면 꼬리를 흔들며 달려가 반겨 줘 너를 쓰다듬을 때는 웃으면서 머리를 대 주고 간식을 들고 부를 땐 가서 안겨도 돼 빈손으로 부를 땐 가끔 가지 말고 불러도 못 들은 척 보아도 못 본 척하는 날도 있어야 해 주인이 기운 없이 앉아 있을 땐 손을 핥아주고 무릎에 올라가 눈을 맞춰 줘 그러면 주인은 점점 길이 들어서 너를 찾게 될 거야 너만 찾게 될 거야 - 길들이기 / 방주현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개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성향이 싫다. 반면에 고양이는 좋다. 차갑게 보이는 냉정함, 사람에 집착하지 않는 독립성이 마음에 든다. 고양이의 눈에서는 살아 있는 야성이 보인다.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할 정도면 갯과는 아니고 적어도 고양잇과에 속하는 사람이리라. 뒤..

시읽는기쁨 2020.09.17

호로고루 해바라기

연천 호로고루에 있는 해바라기밭이다. 평일인데도 해바라기를 보러 온 사람들로 주차장이 가득했다. 이 시기에는 호로고루보다 해바라기를 목적으로 온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꽃밭에는 예쁜 사진을 남기기 위해 한껏 단장한 여인네들의 웃음소리가 파란 가을 하늘로 퍼져나간다. 해바라기를 보면 일제히 해가 있는 남쪽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다. '해바라기'라는 이름 그대로다. 그렇다고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고개를 돌리는 건 아니다. 노란색 해바라기 물결이 흰 구름 뜬 초가을 하늘과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꽃들의향기 2020.09.16

연천 나들이

연천에 하루 나들이를 다녀왔다. 코로나가 약간 주춤해져서 조심스런 외출은 괜찮을 것 같아서다. 밖에 나갈 때면 대개 아내와 동행하지만 어쩌다 보니 이번에는 나 홀로 나들이가 되었다. 같이 가면 같이 가는 대로, 혼자면 혼자인 대로 좋다. 경기도 북부에 있는 연천은 휴전선에 접한 지역이다. 군대 있을 때 완전군장으로 휴전선 철책선까지 100리 행군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우리 사단 관할 지역이었던 연천을 지나갔다. 그 뒤로 하루를 온전히 시간 내서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먼저 찾은 곳은 임진강 절벽 위에 있는 고구려성인 '호로고루'다. 이름이 낯설며 발음하기 어렵다. 자연히 무슨 뜻인가 궁금해진다. 임진강을 옛날에는 호로하(瓠蘆河)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임진강가의 옛 성'이라는 뜻의 호로고루(瓠..

사진속일상 2020.09.16

숭의전 느티나무

경기도 연천에 있는 숭의전(崇義殿)은 고려시대 왕들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1397년(조선 태조 6년)에 만들어졌다. 바로 앞에 임진강이 흐른다. 숭의전과 강 사이에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수령이 550년 정도 된 나무로, 조선 문종 2년에 왕씨 자손이 심었다고 한다. 고려 왕실을 지키는 나무다. 이 나무가 철따라 웅웅 소리를 내며 울면 비나 눈이 많이 오고, 이 나무에 까치가 모여들면 마을에 경사가 나며, 까마귀가 모여들면 초상이 난다는 속설이 있다. 두 나무의 높이는 20m, 줄기 둘레는 4m 가량 된다.

천년의나무 2020.09.15

금강경[30]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십억이나 되는 가없는 우주를 다 부수어 더 나눌 수 없는 작은 먼지로 만든다면 이 먼지들이 많지 않겠습니까?" "행복하신 분이시여, 참으로 많겠습니다. 저 먼지들이 참으로 '나'가 있는 먼지라면 부처님께서는 먼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먼지는 먼지가 아니라 다만 먼지라 이름할 뿐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십억이나 되는 가없는 우주란 곧 우주가 아니라 우주라 이름할 뿐이겠습니다. 우주가 참으로 '나'가 있는 우주라면 그것은 곧 길이 바뀌지 않는 한 덩어리의 우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래께서는 '한 덩어리의 우주는 곧 한 덩어리의 우주가 아니라 한 덩어리의 우주라고 이름할 뿐이다'라..

삶의나침반 2020.09.14

물멍과 불멍

친구가 한탄강에 다녀온 사진을 보내주며 '물멍'을 즐기고 왔다고 전해왔다. 처음에는 물멍이 뭔가 싶었으나 '물 보며 멍때리기'라는 걸 금방 알아챘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쓰는 조어가 재치 있고 재미있다. 물멍은 흘러가는 강물이 제일이다. 흐르는 물소리의 음향효과가 더해지면 귀와 마음이 맑아진다. 강물은 흘러가는 세월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하염없이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무상한 세월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물가에 너무 오래 있으면 우울해질 위험이 있다. 특히 노인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물멍은 적당히 즐기는 게 중요하다. '불멍'이란 말도 있다. 코로나의 영향인지 가족끼리 가는 캠핑이 인기라고 한다. 야외에서 독립적으로 지내니 감염 걱정이 줄어든다. 옛날에는 가족보다 친구끼리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캠핑..

참살이의꿈 2020.09.13

이집트 사자의 서

고대 이집트는 신의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수천의 신이 있었다. 그중에서 태양신 '라'가 제일 유명하고, 다음으로는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오시리스'다. 이집트인들은 육신의 부활을 믿었기에 미라를 만들고 오시리스를 경배했다. 오시리스 신화는 드라마틱하기에 잠깐 소개하면, 오시리스에게는 동생인 세트(악의 신)가 있고 부인은 이시스다. 세트의 부인은 네프티스인데 이시스와 네프티스는 자매 사이다. 세트는 이시스를 좋아하고, 네프티스는 오시리스를 좋아한다. 여기서 갈등과 투쟁이 벌어진다. 결국 세트는 오시리스를 죽이고 시신을 나일강에 버린다. 이시스는 우여곡절 끝에 시신을 찾아내 부활시키고, 오시리스는 지하를 다스리는 신이 되었다. BC 20세기부터 시작된 오시리스 축제는 이런 과정을 재현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

읽고본느낌 2020.09.12

폭신한 뒷산

열흘 사이에 태풍 세 개(8호 바비, 9호 마이삭, 10호 하이선)가 지나갔다. 세 태풍은 한반도를 북진해서 통과했다. 기상청 설명으로는 북태평양고기압 세력이 강해서 일본쪽으로 휘지 못했다고 한다. 오래 비를 맞아서 뒷산길은 폭신했다. 드디어 산길 걷기 좋은 때가 찾아왔다. 여름보다 습도가 낮아 상쾌하고, 산모기와 날벌레가 없어 깨끗하다. 오늘 산길에서는 두 시간 정도 걷는 동안 예닐곱 명과 마주쳤다. 코로나로 산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 코로나 전이었다면 한두 명 마주치는 게 고작이었다. 평균 20분에 한 명씩 만나는 꼴이니 마스크를 안 써도 괜찮다. 그래도 좁은 산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서로가 조심하며 멀리 떨어져 지나친다. 태풍에 부러진 나무도 보였다. 이 나무는 줄기에 비해 키가 너무 웃자랐다. 나..

사진속일상 2020.09.11

독말풀

독말풀은 이름 그대로 독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약초로 사용한다. 독(毒)과 약(藥)은 상반되는 것 같지만 실은 다르지 않다. 식물의 독성을 이용해서 치료하는 것이 약이다. 이 독말풀은 잎이나 열매에 환각 작용이 있어, 옛날에는 마취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독말풀은 독이 있는 말풀이라는 의미일까. 꽃이 말풀과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지 않나 싶다. 열대 지방이 원산지인데 우리나라에는 약초로 들어왔다가 민간으로 퍼져 나갔다. 화단에서 가끔 만나는데, 내가 본 것은 독말풀 중에서 흰독말풀인 것 같다. 꽃은 나팔 모양이지만 꽃이나 잎이 큼지막해서 나팔꽃이나 메꽃처럼 귀여운 맛은 없다. 독말풀이라는 이름을 모르더라도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원래 꽃은 위를 향해 피지만 계속 내리는..

꽃들의향기 2020.09.10

게으름을 자랑한다

나는 천성이 게으르고 행동이 굼뜨다. 어려서부터 빠릿빠릿하지 못하다고 부모님이 걱정했는데, 학교생활이야 그럭저럭했지만 군대에 가서는 고생 좀 했다. 훈련받을 때 선착순에서는 맨날 꼴찌여서 기합은 도맡아 받았고, 자대에 가서도 고참한테 어지간히 잔소리를 들었다. 나 같은 졸병을 둔 고참도 무척 답답했을 것이다. 다행히 행정병이라서 그나마 군대 3년을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타고난 성격이 그렇다 보니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활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가만히 혼자 있는 게 특기다. 책 한 권만 던져주면 종일을 심심치 않게 보낸다. 바깥출입 없이 몇 달이라도 혼자서 재미나게 지낼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는 단점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남이 갖지 못한 장점이기도 하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있다. ..

참살이의꿈 2020.09.09

여름휴가 / 신미나

불이 잘 안 붙네 형부는 번개탄 피우느라 눈이 맵고 오빠는 솥뚜껑 뒤집어 철수세미로 문지르고 고기 더 없냐 쌈장 어딨냐 돗자리 깔아라 상추 씻고 마늘 까고 기름장 내올 때 핏물이 살짝 밸 때 뒤집어야 안 질기지 그럼 잘하는 사람이 굽든가 언니가 소리 나게 집게를 내려놓을 때 장모님도 얼른 드세요 차돌박이에서 기름 뚝뚝 떨어질 때 소주 없냐 글라스 내와라 아버지가 소리칠 때 이 집 잔치한댜 미희 엄마가 머릿수건으로 탑새기를 탁탁 털며 마당에 들어설 때 달아오른 솥뚜껑 위로 치익 떨어지는 빗방울 비 온다 - 여름휴가 / 손미나 여름휴가를 잃어버린 2020년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서 아쉬워 말자. 모든 관계를 재점검하라고 코로나가 준 선물인지 모른다. 우리가 과연 제대로 살아왔던가? 사람과 일, 자연과의 ..

시읽는기쁨 2020.09.08

다읽(4) - 유쾌한 행복론

사는 일이 납덩이를 안고 있는 듯 무거울 때 꺼내 보는 책이다.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답답한 가슴이 풀어진다. 인생이란 무거운 것도 가벼운 것도 아니다. 살아가는 사람이 만들어낸 관념이며 망상일 뿐이다. 누가 납덩이를 들고 있으라 한 적이 없다. 한두 꼭지만 읽어도 글쓴이의 생활 속 유쾌한 인생 철학이 나에게로 번져온다. 전체 제목은 이다. 글쓴이는 생활 속의 철학자요, 세계 동포주의자를 자처하는 전시륜(1932~1998) 선생이다. 서울공대 재학 6.25로 학업을 중단하고 도미해서 철학과 물리학을 전공했다. 이후 미국에서 직장 생활과 글쓰기를 하며 살았던 분이다. 선생이 모국어로 쓴 유일한 책이 이 이다. "사람은 왜 사냐? 살라고 태어났기 때문에 산다. 어떻게 살면 좋을까? 행복하게 살면 된다." ..

읽고본느낌 2020.09.07

금란교회의 추억

금란교회 하면 개신교 신자든 비신자든 한 번은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등록된 교인 수가 14만 명이 되는 감리교회 중에서는 세계 최대의 교회다. 또, 워낙 유명세를 탄 김홍도 목사가 시무한 교회로 보수 반공 이념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지난 2일에 김홍도 목사가 별세했는데, 전광훈을 길러낸 스승이었다는 보도가 지면에 실렸다. 나도 금란교회와 김홍도 목사와의 짧은 인연이 있으므로, 그분의 부고에 잠시 숙연해지며 거의 50년 전 옛일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나는 1970년대 초중반에 금란교회 신자였다. 1972년, 대학교 2학년생일 때 금란교회에 처음 나갔다. 같은 과 친구가 소개해 주면서 담임목사의 영적 능력이 굉장하다고 말했다. 그때는 김홍도 목사가 금란교회에 막 부임했을 때였다. 처음 교회를 나가..

길위의단상 2020.09.06

금강경[29]

"수보리여, 어떤 사람이 '여래가 온다,' '여래가 간다,' '여래가 앉는다,' '여래가 눕는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내가 말하는 뜻을 바르게 알지 못한 사람입니다. 어디로 감도 없고 어디에서 옴도 없는 님, 그런 님을 '여래'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 금강경 29('지금 여기'에 사는 삶, 威儀寂靜分) '여래'는 한자로 '如來'다. 잘은 모르지만 '(세상을 구하러) 오시는 분' 정도쯤 될까. 그렇지만 여래 자신은 옴도 감도 없다고 한다. 여래는 따로 바깥에 있는 분이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 오셔서 나와 하나가 되었으니 이제는 너와 나가 구분되지 않는다. 그분이 오시면 '나'는 사라지고 그분의 빛으로 환해진다. 기독교에서도 예수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은 내 안에 계신 예수를 보지 못한 탓이 아닐까. 하늘..

삶의나침반 2020.09.05

태풍 지난 하늘

9호 태풍 마이삭이 지나가고 파란 하늘이 열렸다. 하늘 좋고 바람 서늘해 경안천에 나갔다. 해는 숨바꼭질하듯 구름 뒤로 들락날락하는 걷기 좋은 날이었다. 이런 날은 하늘 구경만으로도 본전을 뽑는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 2.5단계가 실시중이어선지 밖에 나온 사람은 생각보다 적었다. 구름만 보면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다. 올여름은 8월 중순까지도 장마 속에 갇혀 있었으니 더위를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지나갔다. 유별난 2020년인데 올가을은 어떤 걸 선물할지 기대 반 두려움 반이다. 요즘 같으면 나라나 개인이나 그저 별 탈 없기를 바랄 뿐이다. 경안천에서는 아내, 손주와 차례로 합류했다. 손주가 유치원에 못 가게 되니 다시 야외에서 손주 얼굴을 보게 된다. 봄보다 마음의 키가 훌쩍 큰 것 같다. 아이들..

사진속일상 2020.09.04

소의 무심

지난달에는 긴 장마와 폭우로 비 피해가 컸다. 그때 떠내려간 소가 20일 만에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며칠 전에 있었다. 뒷산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 올라가 보니 멀리 합천에서 기르던 소였다고 한다. 어떤 소는 1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바다 가운데 무인도에서 찾아낸 소도 있었다. 소는 몸 구조상 부력이 커서 물에 잘 뜬다고 한다. 그리고 성질이 공격적이지 않아 물살에 순응하며 떠내려가기 때문에 오래 생존할 수 있는 반면, 말은 물살을 거슬려 오르려 발버둥치다가 힘이 빠져 빨리 죽는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제 성질을 못 이겨 수명을 재촉한다. 소의 생존 비결에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다. 어릴 때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소를 한 마리씩 키웠다. 농기계가 없던 때라 농사를 짓기 위..

참살이의꿈 2020.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