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향기

접시꽃

샌. 2005. 8. 25. 10:48


 

벌써 20년이 되었다. 암으로 아내를 떠나보낸 한 시인이 '접시꽃 당신'이라는 절절한 사부곡(思婦曲)을 내놓아 사람들을 감동시켰었다. 그때에 시집을 읽으며 눈물을 짓기도 했다. 그런데 아내와 사별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시인은 재혼을 했다. 지금은 그때의 뭔지 모르게 씁쓸하고 허전했던 기억도 남아있다.

 

또 최근에 경험한 일이다. 터의 이웃에서 정답게 살아가던 부부가 있었는데, 몇 달 전에 아내가 갑작스런 뇌출혈로 세상을 떴다. 40년 가까이 동고동락해 온 부부여서 남은 남편의 충격과 슬픔도 컸다. 그런데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새 여자가 생겼다는 소문이 마을에 돌고 있다. 같이 경운기를 타고 다닌다는 둥, 새 여자가 마음에 드냐고 물으면 예쁘다며 웃는다는 둥 마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생활이 불편해 졌기로서니 그럴 수 있느냐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부부간의 연(緣)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 유행가 가사처럼 점 하나면 찍으면 남이 되고 마는 법률적 계약관계에 불과한 것이나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자만 욕할 수 없는 것이 여자들이 재혼을 빨리 하지 않는 것은 정 때문이 아니라 생활에 불편함을 남자보다 덜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요사이 생활고 때문에 이혼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접시꽃을 보면 그런 생각들이 떠올라 조금은 씁쓸해진다.

 

그러나 접시꽃 자체는 수수하면서도 참 고운 꽃이다. 접시꽃은 중국 원산의 두해살이 풀이다. 꽃잎은 다섯 장이고 서로 겹쳐져 있다. 꽃이 지고 나면 접시 모양의 열매가 달린다는데 꽃이름은 열매의 모양에서 따왔다고 한다.

 

시골집 마당의 한 켠에서는 접시꽃 한 두 송이쯤 자라고 있다. 여름에 화사하게 피어난 꽃은 아름답게 살아가라고, 남편과 아내의 인연으로 만나 곱게 곱게 살아가라고 말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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