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겨울비에 젖는 경안천

어제부터 겨울비가 내린다. 밤에 잠을 깼더니 양철 환기통으로 조잘거리며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정겨웠다. 한밤에도 눈이 아니라 비가 내리는 겨울이다. 하지만 이도 잠시일 뿐, 오늘 저녁부터는 기온이 떨어지고 밤에는 눈으로 변한다는 예보다. 경안천 둑에 서니 강변 풍경이 희뿌옇게 젖어 있다. 사선으로 긋는 빗줄기는 바지 아랫부분을 축축하게 적신다. 경안천에 나온 것은 고니가 얼마큼 와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고니는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상당한 숫자가 모여 있었다. 둑 위에는 늘 고니를 찍으려는 사진사들이 많은데 오늘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경안천 주변 도로를 따라 한 시간 정도 우중 드라이브를 즐겼다. 빗줄기를 헤치며 앞으로 달려나가는 기분은 드라이브의 백미다. 음악도 끄고 하늘에서 내려와 대지와 차체..

사진속일상 2023.12.15

반가운 봄비 속 벚꽃 드라이브

반가운 봄비가 내리고 있다. 어제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해 밤새 낙수물소리를 내더니 오늘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만하면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농사나 산불 예방에 큰 도움이 될 듯하다. 빗소리가 듣기 좋아서 집에서 가까운 남종면의 팔당호 벚꽃길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이곳 벚꽃은 인근 지역에 비해 일주일 정도 늦게 핀다. 예년 같으면 이제 봉오리가 맺히면서 피려고 할 때다. 그런데 이미 만개 상태를 지나서 지고 있다. 도로는 떨어진 꽃잎으로 덮여 있다. 여기가 이럴진대 다른 곳은 벌써 벚꽃 엔딩일 것이다. 올해는 꽃 개화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오래전부터 이런 추세가 계속되고 있어서 기후 변화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꽃을 보면서도 사실 마음이 편치 않다. 날씨가 맑았다면 차로 가득 찰 도로인데..

사진속일상 2023.04.05

겨울비 내리는 날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에 자다 깨다를 여러 차례 했다. 한겨울 새벽인데도 눈이 아닌 비가 내릴 정도로 날이 눅었다. 비는 낮까지 이어져 오다 그치다를 계속했다. 예보로는 앞으로 이틀 더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한다. 내리는 겨울비를 바라보다가 따끈한 수제비가 먹고 싶어졌다. 아내와 같이 드라이브 겸 하남에 있는 수제비집을 찾아갔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오랜만에 맛집의 맛을 보고 싶었다. 옛날 자주 찾아갔던 안국동의 수제비 맛이 떠올라서였다. 벌써 10여 년이 되었는데 그 뒤로는 제대로 된 수제비를 맛보지 못했다. 잔뜩 흐린 채 안개비가 보얗게 낀 날씨였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먼저 팔당 한강변에 나가 보았다. 고니를 보기 위해서였다. 고니는 70마리 정도가 있었는데 두 무리로 나누어 모래톱에서 쉬고 있었다...

사진속일상 2023.01.14

비 내린 경안천

두 태풍 송다와 트라세가 연이어 한반도로 접근했으나 일찍 열대저기압으로 변한 탓에 둘 다 잔잔한 태풍이 되었다. 오히려 7월 말과 8월 초의 뜨거운 대기를 식혀주는 반가운 태풍이었다. 지난밤에 비가 많이 내린 뒤 경안천에 나가 보았다. 경안천변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친척 형님과 점심을 하고 난 후였다. 경안천은 흙탕물로 가득했고 둔치까지 물이 잠긴 흔적이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천변을 따라 아내와 짧은 산책을 했다. 요사이 아내는 손발에 이상이 생겨 길게 걷지를 못한다. 집 거실은 물리치료실이 되었다. 점심에 만난 형님 부부네와도 대화의 대부분이 아픈 얘기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70줄을 넘고 있으니 몸에 탈이 생기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차례일 것이다. 이제는 병 자체보다도 병을 어떻게 받..

사진속일상 2022.08.04

비 오는 날 부침개

새벽 빗소리에 잠시 눈을 떴다가 다시 잠들었다. 가을비가 끊어질 듯 이어지며 내린다. 하늘은 짙은 먹구름으로 덮여 있고 밖은 어두침침하다. 열린 양쪽 창문으로 낙숫물 소리가 구슬픈 음악처럼 울린다. 지금 같은 초가을의 때, 가을비는 기분을 멜랑콜리하게 만든다. 누가 어깨를 툭 치면 찔끔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다. 아침에는 가까운 공원을 산책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낮이 되니 만사가 귀찮다. 이럴 때는 부침개와 막걸리 한 잔이 내 따스한 위로가 되어 준다. 아내와 마주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 손주 얘기, 이웃 얘기, 텃밭과 터 얘기 등이 또 다른 반찬이다. 과거 회상으로 접어들려는 아내를 나는 한사코 말린다.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고단한 일일 거라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도..

사진속일상 2021.09.29

빗속을 걷다

비 내리는 산길은 적막하다. 원래 뒷산을 찾는 사람이 드물기는 하지만 오늘은 완전히 인적이 끊겼다. 빗소리를 들으며 홀로 걷는 느낌도 괜찮다. 비가 오면 어지간해서는 바깥출입을 삼가는데 이젠 생각을 달리 해야겠다. 길에는 아까시 향기가 그윽하다. 비가 오니 더 진해진 것 같다. 비를 이기지 못해 떨어진 아까시꽃은 길을 덮고 있다. 자연의 순리에는 억지가 없다. 반면에 자연에 반하는 역리(逆理)는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나는 주문을 걸 듯 중얼거리며 걷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1시간 반 정도 마을과 뒷산 언저리를 산책한 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비에 흠뻑 젖은 운동화를 빨아서 베란다 창가에 세워두었다. 며칠 햇볕을 쬐고 나면 보송보송해진 운동화를 신을 수 있겠지.

사진속일상 2021.05.17

가을비 속 드라이브

밤과 아침 사이에 수도권에는 가을비가 사납게 내렸다. 뉴스를 보니 104년 만의 가을 폭우란다. 그래도 빗소리를 들으니 싱숭생숭해져서 차를 몰고 드라이브에 나섰다. 집 가까이에는 팔당호를 한 바퀴 도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가 있다. 퇴촌과 양평의 강하와 강상을 지나 양근대교를 건넌 뒤 6번 국도를 따라 북상해서 팔당대교를 건너 돌아오는 코스다. 집을 기점으로 할 때 약 100km가 되니 하루 드라이브 코스로 딱 알맞은 길이다. 비가 온다고 라디오에서는 달콤한 음악을 질리도록 선사해 준다. 아무래도 늦가을 비 속을 달리는 맛은 꽤나 쓸쓸하다. 이 길 위에서 만나고 떠나간 여러 인연이 떠오른다. 하지만 구름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지상에 왔다가 물러나는 것도 차 유리창에 ..

사진속일상 2020.11.19

물안개공원 연꽃

장맛비 속에 탁구팀과 물안개공원을 찾았다. 코로나 때문에 여섯 달째 탁구를 쉬고 있다. 나는 고작 한 달에 한 번 나가는 정도였지만, 매일 운동하던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싶다. 과연 언제쯤 되어야 실내 운동을 할 수 있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기약이 없다. 물안개공원 입구에는 굉장히 넓은 연밭이 있다. 그런데 연꽃은 없다. 지금이 연꽃이 한창일 시기인데 여기는 침묵 속에 잠겨 있다. 그 연유가 궁금하다. 안에 들어가면 작은 연꽃밭이 있다. 이 연꽃이 없었다면 무척 서운할 뻔했다. 그리고, 연잎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홀리다.

꽃들의향기 2020.07.24

비가 오신다 / 이대흠

서울이나 광주에서는 비가 온다는 말의 뜻을 알 수가 없다 비가 온다는 말은 장흥이나 강진 그도 아니면 구강포쯤 가야 이해가 된다 내리는 비야 내리는 비이지만 비가 걸어서 오거나 달려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어떨 때 비는 싸우러 오는 병사처럼 씩씩거리며 다가오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그 병사의 아내가 지아비를 전쟁터로 보내고 돌아서서 골목길을 걸어오는 그 터벅거림으로 온다 그리고 또 어떨 때는 새색시 기다리는 신랑처럼 풀 나무 입술이 보타 있을 때 산모롱이에 얼비치는 진달래 치마로 멀미나는 꽃내를 몰고 오시기도 하는 것이다 - 비가 오신다 / 이대흠 농경사회에서는 자연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비나 바람에 대한 표현이 발달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비 이름만 해도 수십 가지를 헤아린다. 실비 /..

시읽는기쁨 2020.06.25

비 가는 소리 / 유안진

비 가는 소리에 잠 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 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의 음정(音程) 밤비에도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 괜히 뒤돌아보는 실루엣, 수묵으로 번지는 뒷모습의 가고 있는 밤비 소리, 이 밤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하는 모양이다 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오는 줄은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어느새 가는 소리가 더 듣긴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 죄다 - 비 가는 소리 / 유안진 비 '오는' 소리만 알았지, '가는' 소리를 의식하지는 못했다. 오는 게 있으면, 응당 가는 것도 따른다. 삼라만상의 변화가 그러하다. 누구나 이 세상에 던져지듯 왔다가 불현듯 사라져 간다..

시읽는기쁨 2019.02.16

깨끗한 빗자루 / 박남준

세상의 묵은 때를 적시며 벗겨주려고 초롱초롱 환하다 봄비 너 지상의 맑고 깨끗한 빗자루 하나 - 깨끗한 빗자루 / 박남준 빗줄기를 빗자루와 연관시킨 시인의 눈이 색다르고 신선하다. 깨끗한 세상을 바라는 염원이 이런 눈을 트이게 한 것이리라. 도로 옆 텃밭을 가꾸는 분이 오토바이로 개울물을 실어 나르는 걸 보았다. 날이 가물어 큰일이라고 한다. 하늘에서 맑고 깨끗한 빗자루를 한나절이라도 내려 주셨으면 좋겠다.

시읽는기쁨 2015.05.26

비에 젖은 한 달

2011년 올해 장마는 이름 그대로 장마다웠다고 할 수 있다. 서울 지방을 기준으로 할 때 6월 22일에 시작해서 7월 17일에 끝났다. 시작과 끝도 분명했다. 기상청 자료를 찾아보니 그동안의 강수량이 아래와 같다. 6월 22일 비 16.0 mm 23일 비 41.0 mm 24일 비 10.5 mm 25일 비 37.0 mm 26일 비 40.0 mm 27일 비 11.5 mm 28일 비 0.5 mm 29일 비 177.0 mm 30일 비 46.0 mm 7월1일 흐림 2일 흐림 3일 비 115.0 mm 4일 갬 5일 갬 6일 흐림 7일 비 42.5 mm 8일 비 13.0 mm 9일 비 15.0 mm 10일 비 6.0 mm 11일 비 42.5 mm 12일 비 51.5 mm 13일 비 29.0 mm 14일 비 38.0..

길위의단상 2011.07.19

장마가 시작되다

중부 지방에도 장마가 시작되었다. 마른 땅을 해갈하는 반가운 비다. 집 앞 소나무는 단비를 맞으며 생기를 찾았다. 아파트 숲 가운데서 나도 두 팔 벌린 나무가 된다. 며칠간 밤낮 없이 준비를 하더니 단지내 상가의 파리 바게트가 오늘 개업을 했다. 손님을 끄는 스피커 소리가 요란하다. 어제는 문방구가 문을 열었는데 이곳은 지금 상점들의 오픈 시즌이다. 오늘 저녁 식탁에는 새 가게에서 나온 고소한 빵을올려야할까 보다.

사진속일상 2011.06.23

비도 무서워진 세상

봄비가 내린다. 그러나 옛날의 그 비가 아니다. 봄비를 맞으며 산책하던 낭만은 사라졌다. 소나기를 온몸에 맞으며 뛰어놀던 시절은 동화 속 이야기로 남았다. 황사비나 산성비는 차라리 애교다. 이름도 생소한 ‘방사능 비’라니 더 섬뜩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아직도 방사성물질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주변의 땅과 바다는 오염되었고 대기 중으로 퍼져나간 유출물은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농도가 적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원자력 사고는 양이나 확률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자력 발전소는 400개가 넘는다. 고의든 재앙이든 일본에서 일어난 사고가 다른 지역에서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방사능 공포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만약 중국 원전에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난다면 어..

길위의단상 2011.04.07

반가운 봄비

반가운 봄비가 내린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었다. 산행이 취소되었지만 그래도 반갑다. 빗물은 두터운 겨울 때를 벗겨내며 흐른다. 먼지 자욱한 뒷산길이 촉촉이 젖는다. 겨울나무의 꽃눈이 잠에서 깨는 소리가 들린다. 베란다의 수선화도 봄비의 속삭임에 흥겨워한다. 어두운 땅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오리라. 차가운 마음속에서도 꽃씨가 싹을 틔우리라. 너와 나, 우리는 다시 희망의 노래를 부르리라. 고맙다. 춘신(春信)을 전하는 비가 따스하게 내린다.

사진속일상 2011.02.27

겨울 빗속을 달리다

약속이 깨지고 헛물켠 날, 마침 겨울비가 내렸다. 이럴 때는 빗속 드라이브가 제격이지.... 외곽순환도로에 차를 올리고 액셀을 밟았다. 'Secret Garden'의 볼륨을 잔뜩 올렸다. 빗속을 달릴 때 습관 하나, 가능하면 와이퍼를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빗물이 흐르는 유리창으로 보이는, 세상은 기묘하게 굴절되어 형체를 잃는다. 마치 작은 잠수정을 타고 심해 속을 헤엄치는 것 같다. 그 깊은 고립이 좋다.... 외곽순환도로를 반 바퀴 돌아서 토평 강가에 섰다. 제 속의 온기를 못내 감춘 채, 강은 그렇게 거기에 있었다.

사진속일상 2010.02.10

비바람 속의 일요일

새벽 빗소리에 잠이 깨다. 빗소리는 어느 음악보다 감미롭다. 빗소리는 또한 이런저런 상념에 젖게 한다. 비가 들이치지 않게 창문을 조금 열고 잠자리에 그대로 누워 자연이 주는 운율을 감상한다. 출근할 걱정이 없는 비 오는 일요일은 행복하다. 비 내리는 휴일은 빈둥거리기 좋은 날이다. 책을 보다가 졸리면잔다. 비 오는 날은 커피도 더욱 제 맛이 난다. 오징어를 씹으며 멍하니 TV 앞에 앉아있기도 한다. 그러다가 출출하면 부침개를 부쳐 먹는다. 그러면서 오늘은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인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라는 SF 소설이었다. 오후에는 비가 잦아든 대신 바람이 요란하다. 20층 아파트의 유리창을 깨뜨릴 듯 포효하면 지나간다. 빗소리처럼 로맨틱하지는 않지만 자연의 위력을 느끼기에는 거센 바람만한 ..

사진속일상 2009.07.12

늦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다

가는 계절이 아쉬운 듯 늦가을비가 하루 종일 촉촉이 내린다. 지난 바람에도 떨어지지 않았던 단풍잎들이 이 비에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빗물에 젖은 단풍잎은 자신의 색깔을 되찾더니 무엇에 미련이 있는지 자동차에 찰싹 몸을 붙였다. 단풍나무 아래는 붉은 물감을 뿌린 것 같다. 아마 이것이 올해의 마지막 원색의 선물일 것이다. 저 붉고 찬란한 색깔과도 당분간 아듀... 곧 무채색의 계절이 찾아오리라. 해는 일찍 저무는데 비는 느리게 느리게 계속 내리고 있다.

사진속일상 2008.11.27

비는 내리는데 / 조병화

진종일을 비는 내리는데 비에 막혀 그대로 어둠이 되는 미도파 앞을 비는 내리는데 서울 시민들의 머리 위를 비는 내리는데 비에 젖은 그리운 얼굴들이 서울의 추녀 아래로 비를 멈추는데 진종일을 후줄근히 내 마음은 젖어내리는데 넓은 유리창으로 층층이 비는 흘러내리는데 아스팔트로 네거리로 빗물이 흘러내리는데 그대로 발들을 멈춘 채 밤은 내리는데 내 마음 속으로 내 마음 흘러내리는 마음 내 마음 밖으로 내 마음 흘러내리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막고 진종일을 비는 내리는데 가난한 방에 가난한 침대 위에 가난한 시인의 애인아.... 어두운 창을 닫고 쓸쓸한 인생을 그대로 비는 내리는데 아무런 기쁨도 없이 하는 일 없이 하루를 보내는데 하루가 오고 진종일을 비는 내리는데 비에 막혀 미도파 앞에 발을 멈춘 채 내 마음에..

시읽는기쁨 2008.06.18

폭우 속 출근길

밤새 천둥번개가 잇따르며 잠을 설치게 한 장맛비가 아침 출근길에는 폭우로 변했다. 앞 유리창을 흘러내리는 빗줄기와 자동차 철판을 때리는 빗소리가 어우러져 주술에 걸린 듯 잠시 황홀경에 빠진다. 운전이 좀 불편하면 어떠랴. 이런 날은 장대비를 뚫고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싶다. 장대비 속에서 해 보고 싶은 것도 많다. 빗속을 나체로 달려보는 것.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였던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두 팔을 벌리고 환호하는 주인공이 나도 되어보고 싶다. 그리고 한 바탕 크게 쏟아지는 비는 나에게 늘 성적인 그 무엇을 연상시킨다. 비는 하늘과 땅의 교합(交合)을 상징하기 때문일까, 넓은 유리창으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바닷가 아늑한 방에서그이와 사랑을 나누는 광경을 나는 문득 꿈꾸게 된다. 약해졌지만 비는 지금 ..

사진속일상 2007.07.02

비가 오면 우울해져요

나이가 들면 날씨 변화에 둔해지게 될까? 민감해지게 될까? 아니면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나는 걸까? 오늘 같이 차르륵거리며 비가 내리는 날은 나는 무척 우울해진다. 동시에 무기력증에 빠지면서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이것은 최근에 찾아온 회색 손님의 영향이 크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날씨에는 괜스레 안절부절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축 가라앉더니 오전에 천둥이 여러 차례 지나갔다. 그리고 오후부터 봄비가 내린다. 갈 곳을 잃은 내 마음은 이리저리 헤매이고 있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있건만 전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전에는 빗속을 달리는 드라이브가 좋았다. 그때는 그래도 뭔가 생기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지금은 아무 의욕도 없이 그저 멍하니 비 내리는 창 밖 풍경을 구경만 한다. 머릿속으로..

사진속일상 2007.05.16

비가 오려 할 때 / 문태준

비가 오려 할 때 그녀가 손등으로 눈을 꾹 눌러 닦아 울려고 할 때 바람의 살들이 청보리밭을 술렁이게 할 때 소심한 공증인처럼 굴던 까만 염소가 멀리서 이끌려 돌아올 때 절름발이 학수형님이 비료를 지고 열무밭으로 나갈 때 먼저 온 빗방울이 개울물 위에 둥근 우산을 펼 때 - 비가 오려 할 때 / 문태준 그녀가 뒤돌아 앉아 소리 없이 운다. 가끔씩 휴지통의 휴지만 조심스레 뽑혀나갈 뿐이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무척 서러운가 보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녀의 눈물이 비를 부른다. 그래서 비 오기 전의 수런거림으로 마음은 바빠진다. 산다는 건 이렇듯 어쩔 수 없이 수런거리는 것이다. 그녀가 소리도 없이 울고, 나는 뒤에서 아프게 지켜 보고, 어느새 먼저 온 빗방울들이 개울물 위에 둥근 우산을 만들고 ..

시읽는기쁨 2007.03.06

겨울비 내리는 북한강에서

겨울비 내리는 저녁에 북한강변에 서다. 비는 간지리듯 살포시 온 대지를 적신다. 바로 앞의 강과 그 너머 병풍같이 둘러싼 산들이 저녁 빗속에 고즈녁히 잠겨있다. 강의 물이 하늘의 물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정겹고 포근하다. 이곳은 이름은 북한강이지만 강이 아니라 호수다. 흐르지 않는 강은 강이 아니다. 그러니 북한강이 아니라 팔당호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댐이 만들어지고부터 한강은 거대한 호수 지대로 변하고 있다. 호수와 호수를 연결하는 군데군데 옛 강의 흔적이 남아있을 뿐이다. 풍경은 때로 새로운 욕망을 잉태하지만, 어떤 풍경은 들끓어오르는 욕망을 잠재우기도 한다. 오늘 내가 여기서 마주한 풍경이 그러하다. 보슬비 내리는 겨울 강변은 모든 것을 벗어버린 탈속의 미를 보여준다. 온갖 생각의 번잡함이랑 부딧돌..

사진속일상 2006.12.16

눈과 비를 나타내는 아름다운 우리말

새벽에 서울 지방에는 땅을 살짝 덮을 정도의 눈이 내렸다. 이런 눈을 순우리말로 '살눈'(살짝 얇게 내린 눈)이라고 부른다. 그 외에도 눈의 종류에 따라 재미있는 여러 이름들이 있다. 이런 아름다운 표현들을 보면 한글의 다양한 표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눈의 이름을 모아 보았다. 함박눈 - 굵고 탐스럽게 내리는 눈 가랑눈 - 가랑비 내리듯 잘게 내리는 눈 소낙눈(소나기눈) - 갑자기 많이 내리는 폭설 싸락눈(싸라기눈) - 얼어서 내리는 싸라기 같은 눈 눈발 - 발처럼 줄을 이어 죽죽 내리는 눈 누리 - 단단한 덩이로 내리는 우박 눈보라 - 바람에 날려 세차게 몰아치는 눈 눈갈기 - 쌓인 눈이 말의 갈기처럼 흩날리는 눈보라 눈안개 - 눈발이 자욱하여 안개가 낀 것처럼 희뿌옇게 보이는 상태 진눈깨비(..

길위의단상 2006.11.30

비에 젖은 늦가을의 교정

늦가을 비가 하루 종일 내린다. 참 곱게도 내린다. 교정의 나무들이 비에 촉촉이 젖는다. 비에 젖는 것이 밖의 나무들 만이랴, 사람들 가슴으로도 빗물이 흘러내린다. 회한이 많은 우리네 살림살이도 비에 젖는다. 이 비가 지나면 이제 겨울이 찾아오리라. 오늘 같은 날은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올해 단풍나무는 늦게까지 고운 색깔을 자랑한다.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로 변해가는 날씨 탓이라고 한다. 낙엽 지는 때도 점점 늦어지는 것이 사람들 감각으로도 완연히 느껴지는가 보다. 교정의 단풍나무는 며칠 전 바람에 낙엽이 되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비에 젖어 그 색깔이 더욱 곱고 선명하다. 그 나무 옆에서 모두의 발길이 멈춰진다. 식당 옆 정원에 있는 나무의자에도 고운 단풍이 내려앉았다. 오늘은 이곳..

사진속일상 2006.11.27

폭우가 쏟아지다

※ 중부지방에 폭우를 쏟은비구름의 위성사진 그저께부터 어제까지 중부지방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300 mm 이상의 비가 내렸고,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는 500 mm가 넘는 곳도 있었다.일 년동안 내릴 비의 거의 반 가까이가 이틀 동안에 쏟아진 것이다. 중부지방에 걸친 장마전선이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바람에 오랜 기간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또 시간당 100 mm에 달하기도 하는 집중호우여서 피해가 컸다. 이번 비로 사망자가 50 명 가까이에 달하고,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영동고속도로는 절반 가량이 불통되다가 근 40 시간 만인 오늘 새벽에야 통행이 재개되었다. 여러 하천들이 범람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물은 무섭다. 특히 요사이 기상은 게릴라성 집중호우라 불리는 좁은 지역..

사진속일상 2006.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