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124

일 년 만의 일박 여행

누구나가 그러하겠지만 코로나는 많은 사람의 여행길을 막았다. 당일치기 나들이는 가끔 했어도 일박 이상의 여행을 다녀온 지가 일 년이 한참 넘었다. 해외는 엄두도 못 내고 국내 여행도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동해안으로 놀러 간 둘째가 합류하라고 연락이 왔다. 마침 정부에서도 가족끼리는 5인 이상 모임 금지를 해제한 터였다. 날씨가 나쁘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무시하고 떠났다. 먼저 양양성당에 들러서 성지 참배를 하고 낙산사를 찾았다. 워낙 오랜만에 와서인지 들머리부터 낯설었다. 보타전을 중심으로 해서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해수관음상 마당에서 보이는 바다 풍경이 시원했다. 오른쪽에 보이는 낙산해수욕장은 젊었을 때 단골 장소였다. 낙산사 경내의 양지바른 언덕에서 올해 첫 매화를 보았다. 지나는 사람들 ..

사진속일상 2021.02.17

비발디파크의 밤

비발디파크 눈썰매장에 놀러간 손주들과 늦게 합류하다. 눈밭에서 뛰노는 모습을 사진 찍어주고 싶었는데, 눈썰매장은 4만 원의 입장료를 낸 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야 해서 포기하다. 대신 스키장의 밤을 구경하다. 밤에 조명을 받은 슬로프는 눈이 부시도록 환하다. 지그재그로 활강해 내려오는 모습도 멋지다. 야간 스키장을 보니 스키를 배우지 못한 게 아쉽다. 스키와 골프는 아예 손을 대지 못했다. 제일 큰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공무원 월급만으로, 생활하고, 아이들 공부시키기에는 항상 빠듯했다. 빚을 지지 않고 살아온 것만도 다행이었지 싶다. 스키 인기도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 한겨울 휴일인데 그리 복잡하지 않다. 스키장 들어오는 길의 장비 렌트점도 썰렁하다. 더구나 날씨도 겨울이 없어지는 건 아닐지 걱정될..

사진속일상 2020.01.06

손주 따라 광릉수목원에

손주들 여름휴가 끝에 합류해서, 집으로 돌아오며 광릉수목원에 들렀다. 태풍이 지나간 뒤 습도 높은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아이들은 시원한 산림박물관에 들어가서 나올 줄을 모른다. 이 더위에도 제일 싱싱하고 화려한 꽃이 무궁화다. 시련이 닥칠 때 더 강해지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는 것 같다. 무궁화 정원에서는 다양한 품종을 볼 수 있다. 아이들 크는 건 말하는 데서 느낄 수 있다. 어른 투의 표현에 깜짝 놀란다. 우리 어릴 때는 아이들과 주로 어울려 지냈으니 대개 아이들 말투였다. 지금 아이들은 어른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어휘도 어른이 쓰는 걸 흉내 낸다. 그래서 더 성숙해져 보이는가 보다. "외할아버지, 행복하게 사세요." 첫째 손주가 헤어지며 진지하게 말한다. 여덟 살짜리가 '행복'이 무엇인지 알까?..

사진속일상 2019.08.09

세상에 이런 일이

콰당, 하는 소리와 함께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지진이 일어난 줄 알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고, 침대는 90도로 발딱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스페인 여행 중 새벽 3시에 어느 호텔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것이 그때의 황당한 상황이다. 아무리 가장자리에 누워 있다 하더라도 침대가 뒤집어질 수 있겠는가. 소리에 놀라 옆 침대에서 자던 아내도 일어났다. 둘 다 어이없어했다. 아내는 침대 다리가 부러진 게 아닌지 살펴봤지만 철제 다리는 이상 없었다. 설령 다리가 부러졌대도 한 편으로 무너지기만 하지 저렇게 발딱 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치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기며 침대를 바로 세워 놓고 다시 잠이 들었다. 해외여행이라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침대는 구조상 ..

길위의단상 2019.07.10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5) - 바르셀로나

여행 여덟째 날, 발렌시아에서 바르셀로나로 이동하다. 9시에 출발하니 아침 시간에 여유가 있다. 이번 여행은 바삐 시간에 쫓기지 않아 좋다. 숙소에서 본 발렌시아의 아침 주택가 풍경. 숙소는 대체로 이런 수준이다. 값싼 패키지니 숙소나 음식은 마음에 안 들어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고속도로와 휴게소.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니 건물 벽에 걸린 노란 리본이 자주 눈에 띈다. 카탈루냐 지역은 스페인과 문화나 언어가 다르다. 500년 전에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자 통합을 했지만 아직 융합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에는 독립을 위한 주민 투표를 실시하려고 했으나 중앙 정부의 강제 진압으로 실패했다. 독립 운동으로 수감된 사람의 석방을 기원하는 마음을 노란 리본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다. 바르셀로나는..

사진속일상 2019.07.07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4) - 론다, 미하스, 그라나다

여행 여섯째 날, 7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8시에 론다로 출발하다. 아침 식사 전 숙소 주변을 산책하다. 이른 시간이어선지 세비야 교외 주택가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조용하다. 집들은 거의 비슷한 모양이다. 숙소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일행. 론다로 가는 길에는 해바라기 밭이 많이 보인다. 꽃이 지고 있어 볼 품이 없어 차를 세우지는 않다. 스페인은 5월에 와야 많은 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론다(Ronda)는 절벽 위에 세워진 도시로 집은 하나 같이 하얗다. 파란 하늘과 어울려 이국적인 느낌이 확 풍긴다. 론다에는 데레사 수녀(1515~1582)가 설립한 맨발의 가르멜 수도원이 있다. 한 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나올 수 없는 봉쇄 수도원이다. 시원한 초록의 가로수 길을 걸어간다. 론다는 투..

사진속일상 2019.07.06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3) - 세비야

여행 다섯째 날, 세비야로 가다. 리스본에서 세비야까지 400km, 고속도로를 달려 4시간 30분이 걸리다. 세비야(Sevilla)는 여행 오기 전 스페인 역사를 읽으면서 책에 제일 자주 등장하는 도시였다. 신화적 요소가 있지만 헤라클레스가 세운 도시가 세비야이고, 여기서 스페인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뒤로도 세비야는 스페인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슬람 지배 시대는 물론이고 대항해 시대에는 신대륙과의 무역항으로 영화를 누렸다. 세비야 가로를 따라 대성당으로 가다. 세비야 대성당은 이슬람인이 자신들의 사원으로 처음 세웠고, 이슬람을 몰아낸 가톨릭 세력이 100여 년의 대공사 끝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했다. 폭이 넓은 모양은 원래 이슬람 사원이었기 때문이다. 세비야 대성당은 바티칸 성당, 런..

사진속일상 2019.07.05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2) - 포르투, 파티마, 리스본

여행 셋째 날, 포르투갈 포르투로 이동하다. 포르투(Portu)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로 오래전부터 항구도시로 번성한 지역이다. 대항해시대에는 해상 무역의 거점 도시였으며, 포트와인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포르투갈이라는 나라 이름도 '포르투'에서 나왔다. 수백 년 전 건축물이 남아 있는 히베리아 구역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포르투 역사 지구의 중심에 있는 리베르다드 광장이다. 보이는 사람 대부분이 관광객이다. 중앙에 동 페드로 1세의 기마상이 있다. 여기서 산티아고 길을 걷는 한국인 60대 부부를 만나다. 그 열정이 대단하다. 새까맣게 탄 얼굴로 환하게 웃는다. 타일 벽화로 유명한 포르투 기차역. 기차역 주변 풍경이 아름답다. 포르투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탑 3에 들어간다고 한다. 가이..

사진속일상 2019.07.04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1) - 마드리드, 톨레도, 살라망카

스페인으로 가는 길은 멀다. 인천공항에서 카타르 도하까지 10시간, 도하에서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8시간이 걸렸으니 비행 시간만 18시간이었다. 경유하면서 대기한 시간까지 합하면 가는 데만 꼬박 22시간이 걸린 긴 여정이었다. 미국과 이란의 분쟁 지역인 호르무즈 해협을 새벽에 건넜다. 며칠 전에는 미군 드론이 격추되어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가기도 했다. 트럼프가 공격 명령을 내렸다가 취소했다는 보도가 출발 직전에 있었다. 이번에 카타르 항공을 이용했는데 국가에서 지원을 많이 해 주는 것 같다. 도하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환승 공항으로 많이 활용된다. 고객은 항공료가 싼 카타르 항공을 선호한다. 카타르는 워낙 석유 부국이라 다른 민간 항공사가 경쟁할 수 없다. 도하에서 여행 팀원끼리 인사하다. 전체 23..

사진속일상 2019.07.03

곰배령과 불바라기약수

점봉산 일대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점봉산은 2026년까지 출입 통제이고, 곰배령도 하루 입장 인원을 450명으로 제한한다. 미리 예약하는 것이 필수다. 곰배령의 별칭이 '천상의 화원'이다. 여름 꽃밭이 유명하지만 사계절 어느 때나 야생화를 한껏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이번에 트레커 팀과 1박2일에 걸쳐 곰배령, 불바라기약수를 둘러보았다. 5월 중순이라 들꽃에는 어중간한 시기지만 역시 곰배령은 이름값을 했다. 얼레지를 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곰배령은 수도권 산보다 한 달 이상 계절이 늦다. 쥐오줌풀 참꽃마리 병꽃나무 졸방제비꽃 벌깨덩굴 미나리아재비 개별꽃 미나리냉이 피나물 현호색 줄딸기 홀아비바람꽃. 정상부에는 홀아비바람꽃 군락이 대단했다. 회리바람꽃 양지꽃 동의나물..

사진속일상 2019.05.19

남도 탐매 여행

경떠회 다섯 명이 산청과 구례 지역을 중심으로 탐매 여행을 다녀왔다. * 때: 3. 18 ~ 19(1박2일) * 곳: 단속사지 정당매 - 남사마을 원정매 - 산천재 남명매 - (지리산 더케이가족호텔) - 산수유마을 - 화엄사 흑매와 야매 - 백양사 고불매 같은 남도 지역이지만 산청에서는 매화가 거의 졌고, 고불매는 꽃봉오리 상태였다. 지금 이때, 구례 화엄사 흑매만이 한창이었다. 만개한 때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 마을 입구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라는 간판이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사마을. 옛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지만, 뭔가 부조화가 느껴진다. 마을길에 들어서도 높은 담장 때문에 답답하다. 안동 하회마을과 여러 면에서 비교된다. < 남..

사진속일상 2019.03.21

어쩌다 제주도 2박3일

여행 계획을 짠 첫째에게 갑자기 일이 생겨 우리 부부만 제주도에 다녀오게 되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쩌다 가게 된 제주도다. 일정도 2박3일로 단축되었다. 아침 7시에 집에서 출발해서 계양역 공영주차장에 차를 파킹했다. 김포공항 주차장 요금이 대폭 인상되어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약간의 불편을 감수한다면 5만 원 정도 절약할 수 있다. 제주도 하늘은 잔뜩 흐려 있다. 금방 비가 쏟아질 듯하다. 미세먼지 없는 공기가 제일 마음에 든다. 이번에는 무지개 렌트카를 이용했는데 무인 운영 시스템이 특이했다. 사무실에서 설명만 듣고 각자 지정된 차를 찾아가서 몰고 나가면 된다. 직원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제주도 렌트비는 사흘에 7만 원이니 너무 싸다. 이래..

사진속일상 2019.03.07

손주와 속초 피서

손주를 모시고(?) 2박3일 속초에 피서를 다녀왔다. 아내와 사위 없이, 딸 둘에 손주 둘과 함께였다. 나는 오로지 기사로 필요했다. 둘째가 운전을 시작했으니 이런 여행은 마지막이 될지 모르겠다. 한반도가 펄펄 끓고 있다. 앞으로 더위라는 말이 나오면 기억에서 끄집어내야 될 2018년이다. 마침 우리가 간 때에 속초와 강릉 지방에는 200mm의 폭우가 쏟아졌다. 덕분에 낮 기온도 20도 중반대로 떨어졌다. 피서를 제대로 한 셈이다. 첫날 저녁에는 봉포 해변으로 바다 구경을 나갔다. 구름이 잔뜩 몰려왔다. 밀려오는 파도를 피하며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둘째 날, 오전에는 세찬 비가 퍼부었다. 비가 잦아든 오후가 되어서야 아이들은 워터피아로 놀러갔다. 숙소는 한화 리조트였다. 마침 뽀로로 방이 배정되어 아이들..

사진속일상 2018.08.08

손주 따라 사이판(2)

사이판 셋째 날, 하늘이 활짝 개였다. 오늘 밤 별을 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에 젖는다. 개인적으로는 사이판의 별 사진을 찍어보는 게 제일 큰 바람이었다. 부피가 나가는 DSLR과 삼각대도 챙겼다. 구름 많은 날씨라는 예보를 들었지만 혹시나 해서 준비한 것이다. 아침 날씨가 지속되기를 빌었다. 오늘은 북쪽으로 올라가며 유명 관광지를 찾아보는 날이다. 혼자 아침 산책을 하는 길이 행복했다. 손주는 일어나나마자 할머니를 찾아왔다. 할머니는 모든 투정을 받아주고 시중을 들어준다. 아이는 엄마를 졸라 또 수영장에 들어갔다. 아침 시간이라 사람들은 없었다. 혼자서 물 미끄럼도 잘 탔다. 맨 처음 들린 곳은 사이판에서 제일 큰 마운트 카멜 성당이었다. 사이판은 스페인 통치를 받아서 가톨릭을 믿는 주민이 가장 많다. ..

사진속일상 2018.07.21

손주 따라 사이판(1)

손주 따라 3박4일로 사이판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아무 준비도 없이 따라나섰다. 둘째가 모든 계획을 짠 탓에 믿고 맡겼다. 해외여행 플랜에는 젊은이를 당할 수 없기에 간섭할 여지가 없었다. 여행의 중심은 당연히 손주였다. 따라서 오랜만에 바다에도 들어가고, 많이 웃었다. 아내는 질겁을 하지만 손주를 놀리는 재미는 모를 것이다. 사이판까지는 네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떠나기 전까지도 사이판의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아무 정보 없이 떠나자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일본과는 관계 없는 미국령인 것도 가서야 알았다. 크기도 자그마하다. 고구마 같이 생겼는데 길이가 긴 남북으로 종단하는 데도 30분이면 넉넉하다. 첫 이틀간의 숙소는 코아나 리조트였다. 바다에 연하고 있어 방에서 바로 열대 바다가 내려다 보..

사진속일상 2018.07.20

안면도 모임

지난 토요일에 장모님 생신을 맞아 처가집 형제 가족이 안면도에서 만났다. 황도펜션에서 일박한 뒤 꽃지, 안면암, 간월도를 둘러봤다. 3년 전 속리산 모임 때보다 장모님 보행이 나아져서 다행이었다. 그때는 휠체어를 이용했었다. 왠일로 일찍 눈이 떠져 숙소를 가만히 빠져 나와 황도를 한 바퀴 돌았다. 썰물로 물이 빠진 갯벌에는 바지락을 캐는 주민들이 손길이 분주했다. 안면암은 처음 가봤는데 바다 위에 떠 있는 부상탑(浮上塔)이 유명했다. 섬 외진 곳에 있는 데도 찾는 사람이 많았다. 마침 밀물이 들어와서 길이 끊어지고 우리가 마지막 관람객이 되었다. 세월이 야속하게도 흘러갔다. 눈 깜짝할 사이다. 인연이 처음 맺어진 것이 다들 20대 때였는데 어느덧 환갑이 지난 나이까지 되었다. 부축을 받고 계단을 내려가는..

사진속일상 2018.06.13

부부 여행

친구 A가 이렇게 투덜댄 적이 있다. "마누라와 다시는 같이 여행 가지 않을 거야!" 부부가 함께 유럽 여행을 하고 온 뒤에 한 말이다. 줄곧 티격태격하느라 볼썽사나운 여행이 되었다고 한다. 부부가 함께하는 여행에서 자주 있는 일이다. 여행하게 되면 하루 24시간 내내 붙어 있어야 한다. 부딪힐 일이 자주 생긴다. 더구나 패키지여행은 일정이 빠듯해서 몸은 피곤하고 짜증이 난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말다툼이 생긴다. 그래서 배우자보다는 친구가 편하고 좋다. 친구는 사소한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여행은 따로따로 다니는 부부가 많은 이유다. 그러나 반대인 경우도 가끔 있다. 늘 부부가 함께 해외여행을 나가는 친구 B가 있다. 한두 달씩 있다 오기도 한다. "넌 안 싸우니?" 물어보면, "왜 싸울 일이 생기는 ..

길위의단상 2018.03.27

이탈리아(7) - 로마

"마침내 나는 이 세계의 수도에 도달했다." 1786년 로마에 도착한 괴테는 기행문 첫머리를 이렇게 썼다. 그리고 이날이 자신이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감격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1년간 로마에 거주하며 보고, 배우고, 사람들과 교유를 했다. 수개월 동안 걷거나 마차를 타고 힘들게 로마에 도착한 괴테와 달리 나는 비행기를 타고 12시간 만에 로마에 내렸다. 그리고 일주일간 이탈리아 주요 지역을 분주히 돌아다녔다. 괴테가 봤다면 기가 찰 노릇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 역시 들뜨지 않을 수 없다. 드디어 로마에 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로마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걸린 시간은 다섯 시간에 불과했다. 슬프다. 바티칸 한 곳도 다섯 시간으로는 부족할 텐데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전차경기장, ..

사진속일상 2018.03.21

이탈리아(6) - 폼페이, 카프리

AD 79년 여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다. 용암과 함께 분출한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화산력이 폼페이를 덮쳤다. 폼페이 주민은 피할 겨를도 없이 20m가 넘는 두께의 화산재에 갇혔다. 도시 전체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폼페이는 잊혀졌다. 그로부터 1,600년이 지나서 폼페이 유적이 발굴되기 시작했다. 발굴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2천 년 전 로마 시대의 도시가 온전한 모습으로 지상에 드러나고 있다. 비극적인 참사가 도시를 원형 그대로 보존시킨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 일곱째 날, 새벽 6시에 로마를 출발해서 아침은 간편식으로 버스에서 먹는다. 로마에서 폼페이까지는 고속도로를 달려 세 시간 정도 걸린다. 폼페이에서 현지인 가이드가 한 명 더 합류한다. 오늘은 폼페이를 보고 카프리까지 갔다 와야 하므로 ..

사진속일상 2018.03.20

이탈리아(5) - 피렌체

패키지여행은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보는 장점이 있으나 겉핥기에 그치는 점이 아쉽다. 주마간산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명소에 가면 간단한 설명과 함께 자유시간이 주어지는데 대개 기념사진 몇 장 찍으면 끝난다. 유럽에는 예쁜 성당이 많다. 제대로 보자면 안에도 들어가 봐야 하는데 시간상 어림도 없다. 그저 성당 껍데기만 구경할 뿐이다. 여러 군데를 다니자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개인여행을 생각해 보지만 만만치 않다. 숙소를 정하는 것부터 모든 일정을 직접 짜야 한다. 제일 골칫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식 하나 먹는데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젊을 때야 패기로 부딪쳐 본다지만 나이 들어서는 너무 큰 장벽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패키지를 선택한다. 아무 신경 쓰지 않고 따라만 가 주..

사진속일상 2018.03.19

이탈리아(4) - 친퀘테레, 피사

어제 묵은 밀라노의 티파니 호텔은 시설이 안락해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중간에 잠을 깨지 않고 4시 30분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이탈리아 여행 다섯째 날이다. 호텔에서 보이는 이탈리아 아파트다. 이탈리아에는 아파트를 보기 어렵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파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마당이 있는 집을 선호한다. "사랑을 얻으면 한 달이 행복하고, 젖소를 얻으면 1년이 행복하고, 마당을 가꾸면 평생 행복하다"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말한다. 친퀘테레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걸어간다. 가로수인 오렌지나무가 정겹다. 친퀘테레행 기차를 타는 라스페지아 기차역이다. 숨가쁘게 달려갔지만 눈 앞에서 기차를 놓쳤다.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역 앞에서 비둘기와 놀다. 빵 부스러기를 주니 먹이 다툼이 치열하다. 친퀘테레(Ci..

사진속일상 2018.03.19

이탈리아(3) - 베로나, 밀라노

3월 11일 이탈리아 여행 넷째 날,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오늘은 여유 있는 일정이라 7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하고, 8시 30분에 숙소를 출발한다. 오전은 베로나, 오후는 밀라노 관광이다. 베로나(Verona)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가 된 도시다. 교황파와 황제파의 싸움을 배경으로 탄생한 사랑 이야기다. 관광객들은 줄리엣을 만나러 베로나로 몰려든다. 그러나 시대 배경은 맞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실재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소설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베로나 시에서는 건물을 사서 줄리엣의 집으로 꾸몄다. 사람들은 허구의 집인 이곳으로 끊임없이 찾아온다. 문화 컨텐츠가 성공한 예다. 또 다른 베로나의 자랑거리는 아레나 원형경기장이다. 현존하는 원형경기장 중 세 번째로 크다.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

사진속일상 2018.03.18

이탈리아(2) - 베네치아

3월 10일, 이탈리아 여행 셋째 날이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로 가는 날이어서인지 하늘은 잔뜩 흐리고 가랑비가 뿌린다. 비 오는 날 베네치아 관광은 최악이라는데 제발 많은 비만 내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베네치아(Venezia)는 바다 위에 세워진 경이로운 도시다. 베네치아의 역사는 6세기에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열두 개의 섬에 마을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그 뒤 베네치아는 해상 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번영을 누리게 된다. 10세기의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탈리아 도시 국가 중 가장 부강한 나라였다. 15세기까지 황금기를 구가하던 베네치아는 이후 쇠락해 간다. 지금은 110여개의 섬들이 400개가 넘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30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실제 베네치아에 가면 엄청난 규모에..

사진속일상 2018.03.18

이탈리아(1) - 아시시

2018년 3월 8일 오후 4시 40분에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낮 12시 4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까지 12시간이 걸렸다. 우리나라와 이탈리아는 8시간의 시차가 난다. 아내와 함께 하는 7박 9일의 이탈리아 여행이 시작되었다. 공항 밖에서 패키지여행 멤버들이 모였다. 총 27명인데 여자가 24명, 남자가 3명이다. 여자끼리 단체로 온 10명과 8명 그룹에 우리와 비슷한 나잇대의 부부, 그리고 자매와 모녀 팀, 혼자 온 남자가 한 명 있다. 여자들 틈새에서 어떻게 지낼까, 라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첫날은 다른 일정 없이 로마 시내에 있는 호텔에 가서 쉬었다. 저녁으로는 김밥이 나왔다. 호텔로 가는 길에 만난 이탈리아의 첫인상은 회색빛으로 우중충했다. 사람들도 무뚝뚝해 보..

사진속일상 2018.03.17

울릉도(2)

아침 9시에 강릉에서 출발한 배는 12시에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했다. 꼭 세 시간이 걸렸다. 양로원에서 단체로 온 노인들이 얼마나 배멀미를 하는지 세 시간이 고역이었다. 덩달아 아내도 막바지에는 여러 차례 토했다. 2박 3일의 울릉도 여행은 힘겹게 시작되었다. 지금은 쾌속선이기 망정이지 예전에는 10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는데, 울릉도 가기가 외국 나가기보다 더 힘들었을 게 짐작이 된다. 울릉도를 오가는 배 표만 예매를 했지 다른 것은 모두 현지에서 부딪치기로 했다. 먼저 숙소를 정하는 게 우선이었다. 터미널 안내소에서 조용하게 묵을 숙소에 대해 문의하니 '독도 호텔'을 추천해 주었다. 신축 건물에 시설도 만족스러웠다. 다만 일박에 8만 원으로 다른 데 비하면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편안한 잠자리가 우..

사진속일상 2017.11.05

울릉도(1) - 성인봉

울릉도 둘째 날, 천부로 가는 6시 45분 버스를 탔다.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을 올라 저동으로 내려갈 계획이었다. 일주도로를 시계 방향으로 달린 버스는 8시에 천부에 도착했다. 저동에서부터 1시간 10분이 걸렸다. 천부에서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갈아타니 20분 만에 나리분지에 닿았다. 나리분지에 있는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아침을 먹었다. 남은 밥은 비닐에 싸서 배낭에 챙겼다. 간단한 점심 요기로 유용했다. 9시부터 성인봉 등반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평탄하고 너른 길이 30분 정도 이어졌다. 나리분지는 그만큼 넓다. 화산 폭발 후 함몰된 칼데라 지형인데 만약 물이 찼다면 천지 같은 큰 호수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울릉도에서는 보기 어려운 평지다. 숲에는 너도밤나무가 많다. 천천히 걷고 싶은 아름다운 길이다...

사진속일상 2017.11.04

천불동과 선재길 단풍

가을 단풍을 보기 위해 아내와 함께 동쪽으로 떠났다. 1박2일로 잡았고, 설악산 천불동 계곡 외에 다른 곳은 미정이었다. 둘째 날 영동 지방은 비 예보가 있어 날씨에 따라 갈 장소가 변할 수 있었다. 첫째 날은 천불동으로 가기 위해 아침 여섯 시에 집에서 출발했다. 새로 생긴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따라 가다가 내린천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바로 설악동으로 들어갔다. 세 시간이 걸렸다. 새 길의 덕을 톡톡히 봤다. 이른 시간인데도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데 20여 분 대기해야 했다. 주차료 5천 원에 신흥사 입장료 7천 원(2인)이었다. 길은 복잡했지만 주차 안내는 친절하고 정확해서 혼잡은 없었다. 신흥사에서 천불동 계곡으로 가는 초입은 넓은 길이 한동안 계속 되었다. 숲의 아침 공기가 상쾌했다. 신흥사..

사진속일상 2017.10.19

동해는 비

고향에서 추석 차례를 지내고 올라와서는 손주와 동해로 여행을 떠났다. 올해 추석 연휴는 열흘이나 되어 전국이 사람 몸살을 앓았다. 11시에 출발했는데 저녁 7시에야 숙소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삼양목장에 들를 계획도 하염없는 거북이 도로 위에서 사라졌다. 다행히 아이는 차 안에서도 즐거워하며 잘 놀았다. 제 엄마와 같이 있는 게 마냥 좋을 뿐이었다. 어디 어디 좋은 데 돌아다닐 구상은 어른들 머릿속일 뿐 지금의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아이를 보며 부끄러웠다. 정체보다는 앞으로의 비 예보에 우울해 있던 참이었다. 둘째 날, 비 때문에 바깥나들이는 포기하고 삼척의 솔비치 리조트에 있는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항상 낮잠을 자는 아이는 차 안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식당 의자에서까지 한참을 이어지고서야 깼다...

사진속일상 2017.10.08

만해 길을 걷다

불교아카데미에서 주관한 금강산 건봉사의 불이분화제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틀간 진행되었는데, 첫날은 만해의 길을 탐방했다. 만해의 길은 한용운 스님이 백두대간을 넘어 백담사와 건봉사, 유점사 등을 왕래할 때 이용했던 길이다. 선유령과 흘리계곡을 잇는 옛길이다. 우리는 마산봉 임도 입구에서 소똥령을 거쳐 장신리까지 12km를 걸었다. 23일 아침 7시에 잠실운동장에서 버스 5대로 출발했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5시에 집을 나서야 했다. 이렇게 부지런을 떤 기억은 없다. 아침 식사는 김밥이었고, 점심은 주먹밥이 나왔다. 임도로 쓰기 위한 길은 널찍했다. 대신 아기자기한 산길의 맛은 없었다. 지루하게 여겨질 때쯤 장신리에 닿았다. 점심 포함 3시간 20분 가량 걸렸다. 건봉사를 둘러보고 절에서 저녁 공양을 했다..

사진속일상 2017.09.25

손주와 여름 휴가

손주 따라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나는 기사 역할을 맡았다. 장마의 막바지여서 여행 내내 햇빛을 보지 못했다. 가끔 소나기가 지나갔다. 부여 롯데리조트에서 2박을 했다. 부여 롯데리조트는 조형미가 아름다운 건물이다. 전통과 현대미의 조화에 신경을 쓴 것 같다. 현재를 살지만 우리도 과거의 씨줄과 얽히며 삶의 무늬를 그린다. 어떤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발목을 잡는 과거의 사연이 있다. 놀러 온 사람이 있고, 그걸 시중 드는 사람이 있다. 부모를 잘 만나 땀 흘리지 않고 호의호식 하는 사람이 있고, 평생 근면하게 노동을 해도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옆을 지나가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손주에게 부여를 설명하자면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오직 물놀이가 좋은 나이다. 가족이 아..

사진속일상 2017.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