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230

장자[18]

만약 일월 곁에서 우주를 품고 다스림이 입술처럼 부합하고 혼돈에 맡겨두고, 노예를 돕고 존중한다면 어떻겠나? 세상은 모두가 안달인데 성인은 우둔하며 삼만세를 한결같이 순수를 이루어 만물은 모두 자연 그대로 감싸고 덮어준다면 어떻겠나? 奚旁日月挾宇宙 爲其문合 置其滑혼以隸相尊 衆人役役聖人愚芚 參萬歲而一成純 萬物盡然而以是相蘊 - 齊物論 11 구작자(瞿鵲子)의 질문에 대하여 장오자(長梧子)가 성인의 경지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다. 모든 종교나 가르침에서는 이상적으로 숭앙하는 인간형이 있다. 노장에서의 성인은 무위(無爲)가 내면화된 초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세상을 벗어나 있는 은둔자는 아니다. 세상 안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다. 단순히 세속에서 도피하여 힘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삶의나침반 2008.04.26

장자[17]

사람은 습한 데서 자면 허리 병이 걸려 죽을 수도 있으나 미꾸라지도 그런가? 사람은 나무 위에 오르면 무서워 벌벌 떨지만 원숭이도 그런가? 이 셋 중에서 누가 올바른 거처를 안다고 생각하는가? 民濕寢則腰疾偏死 鰍然乎哉 木處則췌慄恂懼 猿후然乎哉 三者孰知正處 - 齊物論 10 장자는 인간 중심의 시각에 의문을 제기한다. 모든 사물이나 현상에는 우열이 없다. 선악, 미추, 귀천의 구분은 인간이 자신들의 기준으로 나눈 것에 불과하다. 옛 사람들이 목숨까지 걸었던 도덕이니 인의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사회나 문화, 역사적 환경이 만든 임의적인 규범에 불과할 뿐이다. 장자의 관점은 철저히 상대적이며, 사물의 다원성과 다양성을 인정한다. 장자가 바른 거처, 바른 맛, 바른 아름다움에 대해서 예를 들며 사람..

삶의나침반 2008.04.22

장자[16]

큰 도는 일컬을 수 없고 큰 이론은 말할 수 없으며 큰 어짊은 어질다 하지 않으며 큰 고결함은 겸양이라 하지 않으며 큰 용기는 용감하다 하지 않는다. 大道不稱 大辯不言 大仁不仁 大廉不겸 大勇不기 - 齊物論 9 장자를 통해 진정한 표현, 사랑, 겸손, 용기에 대해 묵상하게 된다. 장자는 진리의 역설을 강조한다. 노자가 말한 '上德不德' '天地不仁'과 같은 의미다. 그러고 보니 나도 무척 말이 많아졌다. 말이 많아졌다는 것은 내 주장이나 고집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것은 내 내면의 허기짐이나 결핍, 또는 공허함이드러나는 것에다름 아니다. 드러나는 것은 좋지만 그걸 말로 위장하거나 가식하는 것이 문제다. 장자가 말하는 지인(至人)의 경지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내 생각이나 내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의..

삶의나침반 2008.04.13

장자[15]

천하는 가을철의 가늘어진 털끝보다 크지 않다고 생각하면 태산은 더욱 작은 것이며, 어려서 죽은 갓난아기보다 오래 산 자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백 살을 살았던 팽조도 일찍 죽은 것이다. 천지와 내가 함께 태어났다면 만물과 내가 하나가 된 것이다. 天下莫大於秋毫之末 而泰山爲小 莫壽於상子 而彭祖爲夭 天地與我竝生 而萬物與我爲一 - 齊物論 8 앞에서 장자는 옛사람의 지극한 지혜에 대하여 설명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분별과 선택을 초월하는 세계다.삶과 죽음, 낮과 밤, 좋음과 싫음, 취함과 버림이 반복되는 이분적 현상들에서 모든 것이 구별 없는 한 몸이라는 사실을 체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보는 관점에 따라서 사물이나 현상이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사물이 어떤 ..

삶의나침반 2008.04.06

장자[14]

옛사람들은 지혜가 지극한 데가 있었다. 어디까지 이르렀는가? 처음부터 사물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지극하고 극진하여 더 보탤 수가 없다. 그다음은 사물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처음부터 '너와 나'의 경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다음은 경계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처음부터 시비가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비가 밝아짐으로써 도가 훼손되었고 도가 훼손됨으로써 사랑(유묵의 仁義와 兼愛)이 생긴 것이다. 古之人其知有所至矣 惡乎至 有以爲未始有物者 至矣盡矣 不可以可矣 其次以爲有物矣 而未始有封也 其次以爲有封焉 而未始有是非也 是非之彰也 道之所以훼?也 道之所以? 愛之所以成 - 齊物論 7 우리들 대개는 시비와 분별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무엇을 바라고 구하면서, 그것을 얻으면 기뻐하고 잃으면 슬퍼..

삶의나침반 2008.03.30

장자[13]

원숭이 주인이 아침 먹이로 알밤을 주면서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모두 성을 냈다. 이에 주인은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말했다. 원숭이들은 모두 좋다고 했다. 狙公賦서 曰 朝三而暮四 衆狙皆怒 曰 然則 朝四而暮三 衆狙皆悅 - 齊物論 6 화 내는 원숭이를 보고 어리석다고 비웃지만 인간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인간이 더 심하다. 장자가 말하려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리라. 우리는 대개 눈 앞의 이해득실에 얽매여 사물의 깊은 측면을 보지 못하고 겉모습에 따라 일희일비한다. 분별과 시비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특정의 주의나 관념, 종교, 이데올로기에 편집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볼 때 그것은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보다, 아침에..

삶의나침반 2008.03.23

장자[12]

사물은 본래 그런 것이고, 본래 옳은 것이다. 사물은 그렇지 않은 것이 없고, 옳지 않은 것이 없다. 고의적인 인위로 대립시킨 것이 들보와 기둥, 문둥이와 서시의 경우다. 우원하고 괴이하지만 도는 통하여 하나가 된다. 그것을 나누어 분별하는 것은 다듬어 다스리는 것이고 그 다듬어 다스리는 것은 훼손하는 것이다. 무릇 사물은 다듬어 훼손함이 없으면 다시 통하여 하나가 된다. 오직 달인만이 통함을 알고 하나 되게 한다. 物固有所然 物固有所可 無物不然 無物不可 故爲是擧 정與楹 라與西施 恢궤휼怪 道通爲一 其分也 成也 其成也 毁也 凡物無成與毁 復通爲一 唯達者知通爲一 - 齊物論 5 '생활의 달인'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일 솜씨가 어느 경지에 다다른 사람을 소개하는 프로인데, 어떤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재주를 ..

삶의나침반 2008.03.16

장자[11]

저것과 이것을 패거리 짓지 않는 것이 도의 추뉴(樞紐)라고 말한다. 추뉴가 고리의 중앙을 잡기 시작하면 응변이 무궁하다. 옳다는 것도 하나같이 끝이 없고 그르다는 것도 하나같이 끝이 없다. 그러므로 자연의 명증함만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彼是莫得其偶 謂之道樞 樞始得其環中 以應無窮 是亦一無窮 非亦一無窮也 故曰 莫若以明 - 齊物論 4 세상을 사는 데 옳고 그름의 구별이 없을 수가 없지만 어느 한 쪽에 매이는 것이 늘 병폐다. 거기서 시비와 분별이 생기고, 너와 나의 구분이 일어난다. 성인이 보는 눈은 그렇지가 않다.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라, '이것'이면서 동시에 '저것'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이 도추(道樞)다. 앞에 나온 표현으로는 '성인은 따르는 것이 없으며'[聖人不由], '자연에 비추어 본다..

삶의나침반 2008.03.09

장자[10]

한번 육체를 받아 태어났으면 죽지 않는 한 다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물질과 서로 적대하고 또는 서로 따르면서 그칠 줄 모르고 달리는 말과 같으니 슬픈 일이 아닌가? 죽을 때까지 발버둥 치지만 공을 이루지 못하고 피로에 지쳐 늙어가면서 돌아갈 곳을 모른다면 슬픈 일이 아닌가? 一受其成形 不亡以待盡 與物相刃相靡 其行盡如馳 而莫之能止 不亦悲乎 終身役役 而不見其成功 날然疲役 而不知其所歸 可不哀邪 - 齊物論 3 장자의 이 부분을 읽다 보면 성경의 로마서 7장에 나오는 바오로의 탄식이 떠오른다.선을 바라는 마음과 악에 끌리는 경향 사이의 갈등을 설명하며 바오로는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습니까?"라고 탄식했다. 인간의 실존적 한계를 절절히 인식한 뒤라야 우리는 ..

삶의나침반 2008.02.21

장자[9]

이러한 정욕이 아니면 내가 없고 내가 아니면 정욕도 나올 곳이 없다. 이것은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시키는 자를 알지 못한다. 만약 진짜로 주재자가 있을 지라도 별다른 조짐을 알아차릴 수 없다. 非彼無我 非我無所取也 是亦近矣 而不知其所爲使 若有眞宰 而特不得其朕 - 齊物論 2 장자 사상이 여타 중국 철학과 다른 점이 제물론에 잘 나타나 있다. 장자는 현실 너머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세계에 이르도록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다.여기서 장자가 말하는 인간의 희노애락, 걱정과 한탄, 변덕과 공포, 아첨과 방종, 정욕과 교태 등은 당시 춘추전국 시대에 살았던 백성들의 고충으로 읽힌다.위정자들이 정치를 잘 함으로써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그 점이 유가와 도가가 갈라서는 지점인 것 ..

삶의나침반 2008.02.15

장자[8]

지금 나는 내 몸을 잃었다. 너는 그것을 아느냐? 아마 너는 사람의 음악은 듣지만 땅의 음악은 듣지 못하고 땅의 음악은 듣지만 하늘의 음악은 듣지 못하는 것 같다. 今者吾喪我 汝知之乎 汝聞人뢰 而未聞地뢰 汝聞地뢰 而未聞天뢰夫 - 齊物論 1 이것은 남곽(南郭)의 자기가 제자의 질문에 답한 말이다. 여기에 나오는 '吾喪我'는 장자 전체를 꿰뚫는 핵심 문장이다. 비단 장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나 깨달음의 가르침에서의 핵심 의미이기도 하다. 앞의 '吾'와 뒤의 '我'는 서로 다른 '나'이다. '吾'가 '나'라는 존재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라면, '我'는 그 중에서도 초월되어져야 할 부분이다. 기세춘 선생은 이 '我'를 '내 몸'이라고 번역했는데, 단순히 육체적인 나를 뜻하지는 않는 것이라 본다. 나는 이것을 육(..

삶의나침반 2008.02.10

장자[7]

어떤 인위도 없는 고장의 광막한 들에 심고 그 곁을 할 일 없이 노닐고 그 밑에 누워보기도 하면 어떻겠나? 도끼로 찍힐 염려도 없고 아무도 해치지 않을 것이니 쓸모없다고 어찌 괴로워한단 말인가? 何不樹之於 無何有之鄕 廣漠之野 彷徨乎無爲其側 逍遙乎寢臥其下 不夭斤斧 物無害者 無所可用 安所困苦哉 - 逍遙遊 6 장자의 메시지를 쓸모 없는 나무에 비유하여 현실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혜자(惠子)의 말에 대한 장자의 답이다. 나무를 재목으로만 보는 혜자의 시각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데에 묶여 있다.효용성과 능률만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실용주의자들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보는 시각을 바꾸면 세상에 쓸모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리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더 가치 있고 소중하다..

삶의나침반 2008.02.03

장자[6]

송나라 사람이 은나라의 모자를 팔러 월나라로 갔소. 그러나 월인은 단발에 문신을 하였으므로 모자가 소용없었소. 요임금은 천하 인민을 다스렸고, 천하의 정사를 통할했소. 멀리 고사산으로 가서 네 신인을 만나보고 분수 북쪽으로 돌아와서는 그만 멍하니 천하를 잊어버렸소. 宋人資章甫適諸越 越人短髮之身 無所用之 堯治天下之民 平海內之政 往見四子 邈姑射之山 汾水之陽 요然喪其天下焉 - 逍遙遊 5 은나라에서는 필요한 모자가 월나라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소용됨이란 것은 이와 같이 상대적일 뿐이다. 쓸모있다 없다는 이와 같이 사물이 유용함만을 따진다. 나라를 다스리는일 또한마찬가지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상대적 분별의 경지를 초월한 무차별의 세계다. 요임금은 고사산으로 신인을 찾아가 만나보고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여..

삶의나침반 2008.01.31

장자[5]

뱁새가 둥지를 트는 곳은 깊은 숲 속의 나뭇가지 하나에 불과하오. 들쥐가 황허의 물을 마시는 것은 제 양만큼에 불과하오. 초료巢於深林 不過一枝 偃鼠飮河不過滿腹 - 逍遙遊 4 요(堯) 임금이 허유(許由)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허유가 거절하며 한 유명한 말이다. 이 말에는 장자 사상의 핵심이 담겨있다고 나는 생각한다.노자 식으로 말하면 무욕(無欲), 자족(自足),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이다. 뱁새는 나뭇가지 하나에 만족하고, 들쥐 또한 한 모금의 물로 만족한다.왕위를 차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연의 이치에 맞는 자족의 삶이다. 허유는 천하를 맡아달라는 요 임금의 말을 듣고 귀가 더러워졌다며 강물에 귀를 씻었다고 한다. 그 뒤에는 이런 이야기도 전해진다. 마침 소를 몰고 지나가던 소부(巢父)가 왜..

삶의나침반 2008.01.25

장자[4]

그러므로 이르기를 지인은 내가 없고 신인은 공적이 없고, 성인은 이름이 없다고 한다. 故曰至人無己 神人無功聖人無名 - 逍遙遊 3 이 말에 앞서 장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 부류는, 소시민적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은 돈 벌고 출세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세상이 가리키는 가치관대로 땀 흘리며 살아간다. 보이는 세계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장자가 말하는 뱁새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다. 아마 세상 사람들의 99%가 이런 부류에 속할 것이다. 둘째는, 송영자(宋榮子)로 대표되는 세상적 명리를 넘어선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의 칭찬이나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영욕을 떠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도 분별하는 마음 조..

삶의나침반 2008.01.16

장자[3]

매미와 텃새가 대붕을 비웃으며 말했다. "내가 결심하고 한번 날면 느릅나무와 빗살나무까지 갈 수 있다. 어쩌다가 가끔 이르지 못하여 땅에 곤두박질할 때가 있지만 무엇 때문에 구만리 창공을 날아 남쪽으로 간단 말인가?" 조與學鳩笑之曰 我決起而飛 槍楡枋 時則不至 而控於地而已矣 奚以之九萬里 而南爲 - 逍遙遊 2 분별을 싫어하는 장자도 작은 지혜와 큰 지혜는 구별했다.그리고 작은 지혜의 특징은 비웃는 데에 있다. 노자도 말했다. 사람들이 비웃지 않으면 도(道)가 아니라고. 우리들 대부분은 사실 매미와 텃새들이다. 매미가 어찌 봄과 가을을 알 수 있겠는가. 구만리 창공을 날아가는 대붕을 이해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다만 크고 넓은 세계를 비웃지만 않아도 다행이겠다. 작은 지혜에서 큰 지혜로 넘어가는 데는 '아는 ..

삶의나침반 2008.01.09

장자[2]

북해에 한 물고기가 있는데 이름을 곤이라 한다. 곤은 그 크기가 몇천 리인지 알 수 없다. 이것이 변하여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붕이라 한다. 붕의 등 넓이도 몇천 리인지 알 수 없다. 한번 노하여 날면 그 날개가 하늘에 구름을 드리운 것 같았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남명으로 이사를 간다. 남명이란 천지다. 北冥有魚其名爲鯤 鯤之大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其名爲鵬 鵬之背不知其幾天里也 怒而飛其翼若垂天之雲 是鳥也海運則將徙於南冥 南冥者天池也 - 逍遙遊 1 장자는 첫머리부터 일견 황당해 보이는 얘기를 하며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이것은 일상에 매몰되어 작아진 인간의 마음에 가하는 일종의 쇼크요법처럼 보인다. 스케일의 크기는중국인의 과정법 이상의 차원인 것이다.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말은 변화[化]라고 할 수..

삶의나침반 2008.01.06

莊子의 행복론

莊子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옆의 동료가 이렇게 말했다. "그건 패자(敗者)의 철학이야." 그리고 부연 설명을 했다. 사회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이 정신적으로 위안을 찾는 도피처일 뿐이라고. 사실이 그러하든 아니든 莊子는 내가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시절 나를 구원해준 책이었다. 아직도 수박 겉핥기식 莊子 읽기에 그치고 있고,莊子가 담고 있는 거대한 지혜의 스케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멍해지지만그래도 지금껏 莊子는 내 삶을 지탱해주는 큰 기둥이 되고 있다. 莊子 철학의 특징은 현세 너머를 가리키는 초월성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신비적 경향이 가미된 종교적 색채를 띄기도 한다. 중국의 토양에서 자라난 사상으로는 독특하지 않나 싶다. 莊子는사회적 관습에 따라 생활하고, 아무 비판없이 세속의 전제 조건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길위의단상 2004.02.20

그림자

어제 밤, 퇴근하는 길 가로등 불빛을 받은 나무 그림자가 벽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물체의 그림자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길 위에 또는 벽에 드리운 그림자들, 특히 앙상한 나무 가지가 만드는 그림자 무늬에는 자주 발길을 멈추게 된다. 플라톤은 동굴 비유로 그림자 현실과 이데아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우리네 삶이란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더 높은 차원의 그림자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림자가 주는 이미지는 특별하다. 그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무언가를 말하는 듯 하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이다. 罔兩이 景에게 물었다. "당신이 조금 전에는 걸어가더니 지금은 멈추었고, 조금 전에는 앉았더니 지금은 일어섰으니, 왜 그렇게 줏대가 없소?" 景이 대답했다. "내가 딴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런 것 ..

사진속일상 2003.12.06

쓸쓸해서 아름다운 계절

터에 다녀오는 길에 영릉에 들리다. 쓸쓸해서 도리어 아름다운 계절..... 가을은 쓸쓸함과 아름다움이 기막히게 조화를 이루는 계절이다. 오늘은 눈물이 날 정도로 햇살이 눈부시다. 낙엽 지는 나무 아래서 어린 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푸르다. 옆의 한 아주머니 왈 "불경기라더니 그렇지도 않네." 그만큼 나들이 인파가 경내에 가득하다. 아무리 사는게 폭폭할지라도 이런 여유마저 없다면 삶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그런데 연못의 잉어는 전혀 딴 세상이다. 관람객들이 한 봉지에 천원씩 사서 던져주는 먹이가 계속 하늘에서 떨어진다. "와, 쟤들은 배 터져서 죽겠다." 그냥 이리저리 지느러미만 움직이면 된다. 먹이를 구하기 수월해서인가, 쉼없이 먹어대기만 한다. 그래서 길이가 3m나 되는 놈도 있다고 한다. 누군가 ..

사진속일상 2003.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