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76

버텨내기

겨우겨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기분이다. 요사이 사는 게 그렇다. 가르치는 일이 재미있었던 적은 없었지만 지금처럼 밍밍한 적도 없었다. 아니, 밍밍한 정도가 아니라 지겹고 싫다. 누구 말대로 수업종이 울리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늙은 소의 심정이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 두고 싶다. 왜 이렇게 되었나?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인 탓인가? 예전에 내가 군대생활 할 때는 제대 몇 개월 전부터는 일과에서 열외가 되는 게 관례였다. 군기가 빠진 정신 상태로 훈련을 받다가는 사고를 일으키기 십상이니 예방 차원도 있는 셈이었다. 군대건 사회건 마지막이 되면 일에 열정이 사라지는 건 공통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건 사람에 따라 다르기고 하다. 작년에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분은 나가는 날까지 자리를 지키며 열..

참살이의꿈 2010.05.26

3월의 떡 잔치

요사이 책상 위에는 거의 매일 떡 봉지가 놓여 있다. 새로 전입 오신 분들이 인사치레로 돌리는 것이다. 떡은 대개 전 직장의 동료들이 보내준다. 몇 년 전부터 한두 사람에게서 시작되더니 이젠 모두가 으레 해야 되는신고 의식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신규로 임용된 분들도 자신의 지갑을 열어 떡을 돌린다. 품목도 떡 뿐만 아니라 과자나 과일 등으로 다양화 되고 있다. 물론 처음의 뜻은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너나없이 당연히 하는 것으로 되어 버리면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다. 나 혼자만 빠지면 뭔가 왕따를 당하는 기분이다. 분명 누군가는 마음과 달리 억지로 해야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전출 가는 동료를 위해 전 직원이 돈을 모아 함께 떡을 맞추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떡집이 들으면..

길위의단상 2010.03.16

낙엽 여행

여기서는 퇴직을수 년 앞둔 사람들을종종 '낙엽'이라고 부른다. 좋게 말하면 원로지만 그 말보다는 낙엽이라는 말이 재미있어서 친근한 사이에서는 허물없이 쓴다.그 낙엽들끼리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잠 잘장소만 정했지 나머지는 그때그때 즉흥적으로선택하며 돌아다녔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광주 무등산을 염두에 두었으나 차 안에서 갑자기 목포 유달산으로 바뀌었다. 전의 여행 팀은 세밀하게 동선이 결정되어 움직였는데 이곳은 낙엽답게 분위기가 딴판이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식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그런대로 재미있는 일이었다. 덕분에 목포는 오랜만에 다시 들리게 되었다. 20여 년 전 남도 여행 중 세발낙지를 먹으러 목포항에 잠깐 머문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유달산에 오르기 위해 목포를 찾았다...

사진속일상 2010.02.25

끼니 / 고운기

멀쩡한 제집 두고 때 되어도 밖에서 끼니를 때우는 일은 다반사(茶飯事) 도대체 집은 뭐하러 있는 거야? 아침은 얻어먹고 사냐는 멍청한 질문도 굳이 마누라 타박할 문법은 아니지 차라리 못 살았다는 옛날 생각이 나는 거야 새벽밥 해먹고 들일 나가 날라 오는 새참이며 점심 바구니 끼니마다 집에서 만든 밥 먹던 생각 차라리 그것이 힘의 원천 저녁이면 큰 상 작은 상 각기 제 몫의 상에 앉아 제 밥그릇 찾아먹는 것이 좋았다는 생각 무슨 벼슬한다고 이 식당 저 식당 돌아다니며 제 그릇 하나 찾아먹지 못하고 사노 먹는 게 아니라 때우면서 만주벌판 독립운동이라도 하나 멀쩡한 제집 두고 밖으로만 나다니면서 - 끼니 / 고운기 전 직장의 동료 P는 술자리에서 늘 호기있게 말하며 우리를 웃겼다. 그중에 이런 말도 있었다. ..

시읽는기쁨 2010.02.19

예방접종 하는 날

학생들이 오늘 신종플루 예방접종을 받았다. 학생수가 적어선지 점심시간 전에 접종이 끝났다. 원님 행차 뒤에 나팔 분다고 신종플루의 기세가 꺾인 뒤라 이런 집단 접종의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래도 심리적 안정 효과는 있을지 모른다. 올해는 신종플루로 떠들썩한 한 해였다. 신종플루의 정식 명칭이 'Influenza A virus subtype H1N1'이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형 H1N1 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원인인 독감의 일종이다.가끔씩 이렇게 변이종의 바이러스가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런데 이번 신종플루는 일반 독감 이상으로 무서운 놈은 아니었다. 사망률은 도리어 독감보다 낮다. 그 실체에 비해 지나치게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

사진속일상 2009.12.07

순댓국집 햇빛촌

어제 저녁에는 순댓국집에서 뜨끈한 국물을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맛있는 집이라고 해서 발산동까지 찾아갔다. 허름한 건물에 '햇빛촌'이라는 상호가 예쁜 집이었다. 좀 시간이 지나니 밖에는 대기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그런데 순대보다는 모듬으로 나온 고기가 더 맛있었다. 적당히 취기가 오른 뒤 자리는 2차, 3차로 이어졌다. 덕분에 오늘은 머리가 아파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속은 예대로 짬뽕으로 달랬다. 그런데 함께 자리를 같이 했던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멀쩡하다. 하, 웬수가 따로 없다니까....

사진속일상 2009.11.27

절두산 성지에 가다

어제 오후에는 직장 가톨릭회 동료들과 절두산 성지에 갔다. 절두산이 한강 바로 맞은편에 있어 선유도를 거쳐 양화대교를 걸어서 건넜다. 맑았지만 황사가 약간 찾아왔고 바람 센 날이었다. 박물관 1층에는 새로운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순교성지에 들릴 때마다 마음은 착잡해진다. 목숨까지 버리며 지키려고 한 신앙의 본질은 무엇인가? 진리에 대한 확신에 과연 한 점의 의심도 없었을까? 천국에 대한 동경이 그토록 강렬했을까? 아니면 배교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던 것일까? 더구나 이분들은 가톨릭을 정통으로 배우지도 못한 사람들이다. 몇몇 지식인층 외에는 글도 못 읽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그 극심한 고통의 시간들을 이겨내게 했을까? 달콤한 회유를 물리칠 용기는 어..

사진속일상 2009.10.21

시월 하늘

직장 가톨릭회에서 사무실로 작은 국화 화분을 보내왔다. 가을이 함빡 다가왔다. 운동장에서는 직원들 운동 시합이 한창이다. 까르르르... 맑은 웃음소리가 시월의 하늘로 날아간다. 모처럼 여유롭고 따스한 가을 오후다.... 철새 돌아오는 때를 알아 누가 하늘 대문을 열어 놓았나 태풍에 허리를 다친 풀잎들은 시든 채 오솔길을 걷고 황홀했던 구름의 흰 궁전도 하나 둘 스러져 간 강변 시월 하늘 눈이 시리도록 너무 높고 맑고 푸르러 어디에 하늘 한 만 평쯤 장만할 수 있을지 주민등록증하고 인감도장을 챙겨 들고 나가봐야겠다 - 시월 하늘 / 김석규

사진속일상 2009.10.16

새 출퇴근길이 생기다

전철 9호선이 개통되면서 새 출퇴근길이 생겼다. 집과 동작역 사이의 산길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택가 골목길을 따라 사당역까지 걸어가던 길보다는 숲길을 지나가므로 훨씬 좋아졌다. 다만 정장 차림으로 걷기에는 마치 양복에 갓을 쓴 것처럼 어색하다. 아침 산책을 나온 등산객들 사이에서 구두를 신고 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내 모습은 별스럽게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둘째치고 걷고 나면 구두나 바지가 흙으로 지저분해지는 게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아침 출근길에 이런 산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 받은 일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아닌가. 전철을 이용하면 5 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이렇게 30 분이나 걸리면서도 일부러 걸어서 간다. 집에서 동작역으로 가든 사당역으로 가든 마찬..

사진속일상 2009.09.18

동료들과 미리내에 다녀오다

직장에 가톨릭 모임이 생겼다. 우선 눈에 띄는대로 일곱 명이 모였는데 열심한 사람에서 냉담자까지 일곱 빛깔 색깔의 구성원들이다.어제는 첫 나들이로 미리내성지에 다녀왔다. 마침 지나간 주일이 성 김대건 신부 순교자 대축일이었다. 미리내는 1800년대 박해 시기에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살던 비밀 교우촌이었다. 산골 깊은 골짜기에 밤이 되면 천주교인들 집의 호롱불과 하늘의 별빛이 개울에 비쳐 반짝이는 게 은하수와 같다고 해서 '미리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한자로는 미리천(美里川)이라고 쓰고, 현재 행정명은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에 속한다. 그런데 병오박해 때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뒤 새남처 백사장에 버려진 시신을 미리내의 한 청년이이곳으로 모셔오면서순교성지가 되었다. 당시 신부님의 나이는 25..

사진속일상 2009.07.07

사패산에 오르다

직장 동료들과 사패산(賜牌山, 552m)에 올랐다. 사패산은 북한산, 도봉산으로 연결되는 줄기의 맨 동쪽에 있는 산으로 두 산의 유명세에 밀려 홀대 받는 느낌이 든다. 나로서는 몇 년 전에 도봉산을 오른 뒤 이 산에 가까이 간 적이 있었으나 정상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는 회룡계곡을 따라 올랐는데 전체적으로 산은 아담하고 부드러웠다. 소나무가 많은 사패능선 길도 좋았고, 특히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품이었다. 넓고 평평한 암반으로 된 정상부는 도봉과 북한의 연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산길에서 만난 까치수영. 아래에서부터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사패능선의 산길은 부드럽고 포근했다. 이 산길에 반한 L은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회룡계곡은 차라리 규모가 작아서 조곤거리는 ..

사진속일상 2009.07.04

새 컴퓨터로 바뀌다

사무실 컴퓨터가 새 노트북으로 바뀌었다. LG XNOTE R510이다. 전의 H사 컴퓨터는 오래된 데다 프로그램 충돌이 자주 일어나 느리고 멈추기 일쑤였다. 모니터도 구형 브라운관이라 색깔도 선명하지 못하고 눈도 피곤했다. 바꿔줬으면 싶었는데 이번에 운좋게 교체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데스크탑이었으면 더 좋았겠다. 지금껏 계속 사용해 온 습관 탓인지 모르지만 노트북 자판은 손목에 힘이 들어가면서 왠지 어색하다. 또한 화면 크기의 한계도 있다. 그러나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고 하니까 기다려 볼 일이다. 새 것은신선한 맛이 있지만 대신 오래된 것이 주는 따스함과 푸근함이 없다. 특히 사람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정든 장소, 정든 사람과는 각별해진다. 물건도 오래 되면 정이 드는 건 ..

사진속일상 2009.05.21

빗속의 강원도 여행

방태산 트레킹을 하기 위해 지난 토요일에 8 명의 일행이 강원도로 떠났다. 홍천군 내면 월둔리에서 트레킹을 시작해서 아침가리골로 내려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틀 내내 비가 오는 통에 계획은 수정되었고 차로 방태산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곳을 가게된 즐거움도 컸다. 강원도로 가는 첫날에는 남양주 수석리에 들러서 조말생(曺末生) 선생 묘와 석실서원(石室書院)이 있던 자리를 찾아보았다. 그리고서종면에 있는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선생의 생가터도 찾아갔다. 지금은빈 터지만 곧 생가 복원 작업이 시작된다고 한다. 또 양평과 홍천을 지나 공작산에 있는 수타사(壽陀寺)에도 들렀다. 봄비 내리는절집 분위기가 고즈넉하고 좋았다. 저녁..

사진속일상 2009.05.18

북한산 대남문에 오르다

직장 등산 동호회를 따라 북한산 대남문에 올랐다. 그런데 이름만 등산 동호회지 양로원 나들이 수준의 산행이었다. 함께 간 여섯 명 중 네 명은 뒤에 처지고 고작 둘만 대남문까지 다녀왔다. 일행은 이북5도청에 차를 주차시키고 구기동 계곡을 따라 올랐다. 삼거리 쉼터와 문수사를 거쳐 대남문,청수동암문을 지나 비봉능선을 따라 걸었다. 사모바위에서 승가사로 내려가 다시 구기동입구로 원점회귀했다. 약 세 시간 정도 걸렸다. 북한산에서는 여러 종류의 제비꽃을 볼 수 있는데 특히 노랑제비꽃이 많다. 이때쯤의 북한산길은 온통 노랑제비꽃으로 환하다. 군데군데 흰제비꽃과 고깔제비꽃도 피었다. 흰민들레가 눈길을 끈다. 무슨 꽃이든지 흰색이 주는 느낌은 순결하고 깨끗하다. 능선길에서는 아직도 진달래를 볼 수 있었다. 아마 이..

사진속일상 2009.05.01

부장님과 선생님

몇 해 전에 부장이라는 직책을 맡은 적이 있었다. 한 해만 하고 그만 두었는데도 그 뒤에도 계속 “0 부장님”하며 부르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라는 좋은 호칭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부장이라고 직책을 붙이는 것은 나로서는 영 듣기가 거북했다. 몇 사람에게는 그렇게 부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잘 지켜지지는 않았다. 물론 그분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부장이라고 불렀다가 다시 선생님으로 바꾸게 되는 어색함도 있을 것이고, 또 상대에 대해서 예우를 갖춰준 의미임도 안다. 나 역시 보직을 맡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부장님’이라고 불러준다. 또 선생님보다는 부장님이라는 호칭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주임교사로 불리던 자리가 언젠가부터 부장교사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바뀐 호칭이 어색..

길위의단상 2009.04.16

신학기병

직장인들에게 월요병이 있듯이 나에게는 그와 비슷한 원인으로 생기는 신학기병도 있다. 둘다 정도의 차이만 있다 뿐이지 휴식 뒤에 찾아오는 후유증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월요병이나 신학기병이나 따분하고 지리한 일로 다시 돌아간다는 스트레스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지난 휴식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 다시 억지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데 대한 심리적 긴장감이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서 즐겁게 하는 일이라면 병이라는 이름이 붙을 리는 없을 것이다. 어른들만 아니라 아이들도 그런 스트레스를 받는다. 새로 만나야 되는 사람들, 새로 해야 되는 일이나 공부의 중압감이 두려움을 불러 일으킨다. 어떤 상황과 대면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은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젊었을 때는 그런 것을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

길위의단상 2009.03.02

좋아진 것 10가지

직장을 옮겼다. 비록 바라던 곳은 아니었으나 첫 인상이 아담하고 따스해서 좋았다. 처음에는 투덜거렸으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좋아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왕이면 밝고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운명에 거역하기보다는 순응하고 체념하는 데는 이제 도사가 되어가고 있다. 좋아진 것 10 가지를 나름대로 골라 보았다. 1. 더 많이 걷게 되다. 2. 한강 옆이라 한강과 더 가까워지다. 3. 혼자 있는 사무실이 생기다. 4. 직장이 작고 아담하다. 5. 입시경쟁에서 한 발 물러서게 되다. 6.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와 인연을 맺다. 7. 아이들 수준이 전에 비해 고르다. 8. 퇴직을 좀더 일찍 고려할 수 있게 되다. 9.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나를 발견하다. 10. 지금과 같이 어려운 시기..

길위의단상 2009.02.20

동료들과 예봉산에 오르다

직장 동료들과 예봉산에 올랐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였다. 벌써 12 월 중순으로 접어드는데 한 번의 추위를 제외하고는 봄처럼 따스한 날이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는 아마 '겨울답지 않게'라는 표현도 사라질지 모른다. 아니면 '겨울답지 않게 추웠다'라는 낯선 표현이 등장할지도... 예봉산은 서울 근교에 있는 산으로 처음 그 이름을 듣는 사람은 '날카로울 예'[銳]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예절 예'자를 쓰는 예봉산(禮峯山)이다. 산은 이름대로 부드럽고 넉넉하다. 경사가 완만해서 오르기도 그다지 힘들지 않고, 흙산이라 길은 부드럽다. 높이도 683 m로 가벼운 등산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일행은 승용차로 팔당역까지 가서 계곡을 따라 올랐다. 나는 여러 번 예봉산에 올랐지만 계곡길로 오르기는 처음이었다...

사진속일상 2008.12.11

한 장의 사진(12)

다음 달부터 기여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행정실에서 연락이 왔다. 33 년의 의무 납부기한을 이번 달로 다 채운 것이다. 1975년에 첫 발령을 받고 교직에 들어선 이래 꼭 33 년이 지났는데, 이런 매듭을 만나게 되면 더욱 지난 세월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33 년의 의미에 대해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내가 있었던 자리가 어디였고 지금의 자리가 어딘지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머리가 멍해진다. 옛 앨범에서 33 년 전의 내 모습을 보았다. 갓 스물세 살로 Y여중에 부임했을 때의 사진이다. 막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일과가 끝나면 운동장 한 편에 있던 테니스장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두 아이가 기다리고 있다가 사진을 같이..

길위의단상 2008.11.25

강원도로 떠난 가을여행

가을이 곁에 온지도 잘 모르고 지냈다. 눈을 돌리니 이미 가을이 떠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느릿느릿 하던 시간이 이때만 되면 쏜살같이 지나간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선 아쉬움에 가을 분위기가 상승작용을 하는 것 같다. 10월의 마지막 주말에 동료들과 강원도로 1박2일의 가을여행을 다녀왔다. 아홉 명의 일행은 아침 9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속초로 향했다. 오전인데도 길은 군데군데 막혀서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진부의 부일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길이 조금만 막혀도 참지 못하고 국도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도리어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차 안에서는 서로 자기가 생각하는 길이 낫다는 주장으로 큰소리가 나기도 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준경묘였다. 여기는 묘보다도 소나무로 유명하다. 이곳의 소..

사진속일상 2008.10.27

직장 탁구대회

어제는 탁구를 좋아하는 직장 동료 10 명이 서대문에 있는 탁구장을 빌려 대회를 열었다. 복식으로 다섯 팀을 만들고 풀리그로 시합을 했는데, 나는 P와 파트너가 되어 4전 전승으로 우승을 했다. 친목이었지만 시합은 시합인지라 역시 이기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상품으로 배낭도 받고, 즐거운 뒤풀이 자리도 가졌다. 예전에는 축구나 배구, 야구같은 구기운동도 가끔 했었지만 지금은 여교사가 많아지면서 시합을 위한 인원을 채우기가 어려워졌다. 축구동호회가 유지되고 있는 학교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이젠 탁구나 테니스 같은 적은 숫자로 할 수 있는 운동을 주로 한다. 그리고 인터넷이 들어오면서 직장 안의 바둑판도 사라졌고 바둑대회도 볼 수 없게 되었다. 대부분이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기 때문이다. 이런 것도 시..

사진속일상 2008.10.11

2008 여름 직원 여행

한 학기를 마치며 80 명의 직원들이 남원과 무주 지역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밥벌이의 일에서 벗어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겁고 홀가분한 것이리라. 얼굴 표정이 모두들 밝고 환했다. 7/18(금) 10:00 서울 출발 - 점심(이천 지원쌀밥집) - 이동(중부, 경부, 대진, 88고속도로 경유) - 16:00 실상사 - 18:00 광한루와 춘향테마파크 - 저녁(수목한우촌) 7/19(토) 09:00 아침(새집추어탕) - 11:00 무주리조트 향적봉 등반 - 점심(무주구천동 전주식당) - 14:30 출발(88, 대진, 경부고속도로 경유) - 18:00 서울 도착 내려가며 맨 처음찾은 곳이 실상사였다. 15 년 전에 당시 직장 동료들과 지리산 등반을 하고 이곳에 들린 적이 있었다. 절은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점이..

사진속일상 2008.07.20

광릉수목원에 가다

광릉수목원은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150만 평에 자리잡고 있다.역사적으로는세조의 묘로 결정된 뒤부터 이곳 주변의 삼림이 엄격하게보호되어 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임업시험장이 이곳에 세워졌으며, 1987년에 광릉수목원으로 개원하였다. 그러나 수도권에 있다 보니 워낙 입장객이 많아 지금은 인터넷으로 예약을 받고 입장 제한을 하고 있다. 분회원들과 같이 광릉수목원에 다녀왔다. 입장 제한이 된 뒤로는 처음 가는 길이었다. 미리 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는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탓인지그동안 쉽게 가보지를 못했다. 오랜만에 찾은 광릉수목원은 예전과 달라 길도 많이 생겼고인공적인 냄새도 많이 났다. 사람이 이용하는 편의성은 커졌으나 대신에 자연 그대로의 맛은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봄의 숲은 아름다웠다...

사진속일상 2008.04.29

2008년 2월 남도여행

고향은 아니지만 ‘남도’라고 하면 뭔가 아련한 그리움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작년에 이어 직장 동료들과 다시 남도로 여행을 떠났다. 이번에는 순천과 여수 지역을 2박3일 일정으로 찾아보았다. 2월 16일 오전 9시, 일행 일곱 명은 전철 한남역에서 만나 렌트한 카니발에 올랐다. 원래 일정은 곧바로 선암사로 이동할 예정이었으나, 누군가가 남원의 추어탕을 잘 하는 집을 안다고 해서 방향을 남원으로 돌렸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다보면 서로 생각이 다르다보니 이런저런 의견들이 나오는데, 어쩌면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데에 맛이 있는지 모른다. 극단적인 경우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발길 가는 데로 돌아다니는 걸음이 제대로 된 여행의 의미일 수도 있다. 하여튼 그렇게 찾아간 남원의 합리추어탕 집은 기대를 저버리..

사진속일상 2008.02.19

동료의 정년퇴임

동료의 정년퇴임식이 있었다. 이젠 퇴임식도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나에게도 먼 미래가 아닌 눈 앞으로 다가온 현실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에 있는 학교의 퇴임식 풍경은 많이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전체 학생들 앞에서 식을 거행했는데, 이젠 조촐한 교사들만의 모임으로 변했다. 세태도 그렇고, 또 너무 학교가 크다보니 교사와 학생간의 신뢰나 유대감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건 교사들 사이도 마찬가지다. 교직원이 100명이 넘으니 같이 근무하면서 서로 얘기를 나누어 보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서로간에 이름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정년퇴임식도 점차 형식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교사로서의 보람을 찾을 수 없으니 어떤 분은 쑥스럽다며 퇴임식을 거절하시기도 한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나 또한..

사진속일상 2008.02.01

인왕산과 안산 주변의 문화 답사

날 좋은 토요일 오후, 동료들과 인왕산과 안산을 등산하며 그주변의 문화 유적지를 둘러보는 답사길에 나섰다. 참가 인원은 13명, 근래에 드물게 많이 모였다. 이번에는 무속 방면에서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자랑하는 S선생님이 안내를 했다. 직장에서 인왕산 입구인 자하문 고개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이다. 자하문 고개에서 인왕산에 오르는 골목길에 들어서면 바로 현진건 집터가 나온다. 현진건(1900-1943)은 근대문학 초기 단편소설의 양식을 개척하고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소설가이다. 그분의 문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친일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빈곤한 삶을 살았고, 동아일보 기자였을 당시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에 관계되어 옥고를 치른 사실 등 올곧은 삶을 사셨다는 것을 ..

사진속일상 2007.11.04

가을비 내리는 안면도에서

직장 동료들과 안면도로 가을 나들이를 떠났다. 잔뜩 흐린 날씨가 홍성을 지날 때부터 가는 비로 변했다. 서해 석양을 볼 수 없게 된 아쉬움이 있지만, 대신가을비 내리는 바다의 낭만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안면도 초입에 있는 백사장항의 어느 횟집에서 대하와 꽃게탕을 주문했다. 백사장이라고 해서 모래를 연상했는데, 여기는 항구 이름이 백사장이었다. 차가 들어서면 이집 저집에서 부르는 부담스런 호객 행위가 여전했다. 자연산이라는 대하는 생각보다값이 비쌌다. 그래도 맛은 있었다. 아마 바닷가라는 분위기가 맛을 대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꽃게탕으로 점심을 먹고, 안면도 끝에 있는 영목항에 가서는 전어구이로 입가심을 했다. 전어 맛이 제일 좋은 때가 10월이라는데, 이 시기의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갔던 며..

사진속일상 2007.10.26

2007 직원 연수

금년도 직원 연수는 '강원도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정선과 평창 지역을 1박2일간 돌아보는 여정으로 짜여졌다. 동료들 중에여행 전문가가 있어 모두가 만족하는 내용의 알찬연수가 가능했다. 80여 명의 직원들이 3대의 버스에 분승해서 10:30에 서울을 출발했다. 도중에 구리 부근의 '고향 가는 집'에서 보리비빔밥으로 점심을 했다. 두꺼운 놋그릇에 온갖 나물을 넣고 비벼 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달려여량으로 향했다. 강원도 내륙 국도변은 작년도 수해 피해가 아직 남아있어 지금도 복구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여량(餘糧)은 강원도 좁은 산골에 그나마 농사 지을 평지가 있어만들어진 땅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곳은 골지천과 송천이 만나는 곳이다. 두 천이 합류하여 조양강이 되고 다시 동..

사진속일상 2007.07.22

평창 백운산과 육백마지기

직장 동료들과 같이 강원도 평창의 백운산과 육백마지기를 다녀왔다. 원래는 1박2일로 하여 다양한 코스로 계획되었으나 갑자기 당일 여정으로 변경되는 바람에 둘로 축소되었다. 백운산(白雲山, 882m)은 평창군 미탄면에 있는 산이다. 특히 동강이 이 산을 휘감아 돌기 때문에 더욱 유명한데, 동강의 풍경 중에서 이곳 백운산 지역이 가장 수려함을 자랑한다. 문희(文希)마을에서 등산을 시작했을 때는 잔뜩 흐린 날씨에 보슬비가 살짝 내렸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급경사로를 택한 탓인지 오르기에 무척 힘이 들었다. 가벼운 트레킹 정도로 생각하고 운동화를 신고 왔는데 결코 만만치 않은 산이었다. 백운산 정상에서는 동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나무들 때문에 시야가 완전히 열려있지 못하지만 S자의 곡류와 산이 멋진 풍경..

사진속일상 2007.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