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노래방은 무서워

샌. 2008. 11. 20. 09:09

친구들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노래방에 갈 때가 있다. 나로서는 가장 괴로운 시간이다. 음치에다 몸치이다 보니 노래방은 애써 안 가려고 한다. 들어가 봐야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잔뜩 흥에 겨운 일행들의 분위기를 깨기가 일쑤다. 개중에는 악착같이 노래를 시키려는 원수가 있어 힘겹게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마이크를 잡고 남들을 웃겨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의리 없는 놈이라고 욕을 먹더라도 자리를 피해 버린다.


예로부터 음주가무라는 말이 있듯 술에는 춤과 노래가 따른다. 그러므로 1차 술자리를 파한 뒤 노래방을 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연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노래방 문화는 특이하다. 노래방 초창기에는 다들 조용히 앉아서 노래를 불렀는데 요사이는 무조건 서서 악 쓰고 흔들며 난리부르스를 친다. 아마 도우미가 등장하고부터 나타난 풍습이 아닌가 싶다. 관광버스 안처럼 광란의 수준에 가까울수록 잘 놀았다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적응하기가 힘들다.


그래도 노래방이 기여한 것 중 하나는 전 국민을 가수로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노래방 덕분에 하나같이 가수 뺨치게 노래를 잘 한다. 아마 우리만큼 노래하기를 좋아하고 잘 하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래방이 많을수록 나 같은 음치는 더욱 설 자리가 좁아진다. 예전에는 송별식 같은 자리에서나 어쩌다가 노래를 할 기회가 있었지만 노래방이 생긴 뒤부터는 술 마신 뒤의 정규 코스가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노래를 못 부르는 것만큼 서러운 일도 없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은 그런 비주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오죽했으면 음치클리닉까지 등장했겠는가. 거기서 양동이를 얼굴에 둘러쓰고 음치에서 탈출하려 악을 쓰는 모습은 처절할 정도다. 그렇게 해서라도 서러움의 질곡에서 해방되고 싶은 심정을 나는 안다.


너나없이 노래를 잘 하다보니 이제는 도리어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이 인기를 끌기도 한다. 음치도 희소성의 가치로 빛날 때가 있다. 음정이나 박자가 안 맞아도 안면몰수하고 부르는 노래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가 보다. 그러나 그것도 무대 위의 어릿광대가 될 정도의 강심장이 있어야지 나같이 소심한 사람은 그런 파격을 즐기지도 못한다. 더구나 한두 번은 즐거워하겠지만 나중에는 식상하게 되고 매번 되풀이한다면 다른 사람의 귀를 피곤하게 할 뿐이다.


그래도 노래방이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인정해 주어야겠다. 외국생활에 외로울 때면 혼자서 노래방에 들어가 몇 시간이고 한국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달랬다는 얘기를 들었다. 또한 누구나 한바탕 악쓰듯 노래를 부르고 나면 속이 시원해질 것 같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둘만의 밀회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 언젠가 노래방 창문으로 두 연인이 꼭 껴안은 채 같이 노래를 부르는 걸 보았다. 최진희의 ‘꼬마인형’이라는 노래였는데 두 사람이 이별을 앞두고 있는 듯 하여 더욱 애절하게 들렸다. 노래방도 이렇게 분위기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던 장면이었다.


이런 긍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노래방은 늘 나를 불편하게 한다. 술을 한 잔 하고나면 노래방 간판이 눈에 띄고 그러면 꼭 노래방행을 고집하는 미운 사람이 있다. 술꾼이라면 이제 술맛이 들기 시작할 때인데 참 고약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갈 때가 있는데 그랬다가는 1 시간 이상 좁은 밀실에서 고문을 당해야 한다. 끝난 뒤에 3차 술자리가 마련되더라도 이미 술맛을 잃은 뒤라 별로 기분이 나지 않는다. 앞으로 다시는 노래방에 따라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늘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노래방이 없었을 때는 2차, 3차는 대개 연속으로 술집을 순례하는 것이었다. 가끔 중간에 당구장을 들리기도 했지만 다른 오락거리는 별로 없었다. 아마 당시에는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무척 괴로웠을 것이다. 지금은 술을 강제로 권하지는 않지만 그때는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무슨 의무처럼 여겨졌었다. 마치 지금의 노래방에서 노래는 꼭 돌아가며 불러야 된다고 마이크를 돌리며 배려해주는 고마운 사람이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더 고맙고 친절한 사람은 가만 앉아있는 꼴을 보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춤까지 추게 만든다. 그러나 누구를 탓하랴. 이 모든 푸념이 노래와 원수가 된 내 탓인 것을! 이리저리 두루뭉술하게 어울리지 못하는 까칠한 내 성격 탓인 것을!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F90X  (4) 2008.11.29
한 장의 사진(12)  (0) 2008.11.25
걷기의 즐거움  (2) 2008.11.17
길동무 셋  (1) 2008.11.11
가가 가가가  (1) 2008.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