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사기[56] 본문
장건은 이어서 강력히 말하기를 대하는 한나라 서남쪽에 있어 중원을 흠모하고 있지만 흉노가 한나라로 통하는 길을 막고 있어 안타까워하고 있으니 만일 촉에서부터 신독국에 이르는 길을 개통하면 편리하고 가까워 이익이 있을 뿐 해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천자는 사자를 보내 서이의 서쪽으로 가서 신독국을 찾아보게 했다. 그들이 전에 이르자 전왕 상강은 그들을 붙잡아 두었다. 서쪽으로 신독국으로 통하는 길을 찾아 나선 10여 명도 한 해 남짓 곤명에 갇혀 신독국으로 가는 자가 없었다. 전왕은 한나라 사자에게 말했다.
"한나라와 우리나라 중 어느 쪽이 더 큰가?"
야랑후도 이와 같이 물어보았다. 길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저마다 한 주의 군주라고 여기고 한나라의 넓고 큼을 몰랐다. 사신들은 돌아와 전은 큰 나라로서 가까이하여 귀속시킬 만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천자는 그 말에 유의했다.
- 사기(史記) 56,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
서남이(西南夷)는 파, 촉 너머 서남쪽의 소수민족들이 사는 지역이다. 지금 중국으로 치면 운남성, 사천성, 귀주성에 해당한다. 중원과는 거리가 멀어 복속시키기에 힘든 곳이었다. 이들은 흉노와 달리 중국을 침입하는 일이 없었고, 각자의 고유 문화를 가진 채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서남이가 한나라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장건이 대하에 다녀온 뒤부터였다. 신독국과의 무역을 위해 흉노의 간섭이 없는 새로운 교역로를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교역로는 서남이 지역을 지나가야 했다. 그래서 한 무제는 서남이 중 한 부락 국가인 전에 사신을 보내 협력을 구했다. 일부는 곤명까지 내려갔다. 전왕이 한나라 사신에게 "한나라와 우리나라 중 어느 쪽이 더 큰가?"라고 물었다는 일화에서 보듯 둘 사이에는 교류가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신은 돌아와서 서남이를 중국으로 귀속시킬 필요가 있다고 보고했고, 곧 무제는 실천에 옮겼다. BC 109년에 무제는 파군과 촉군을 동원하여 서남이의 여러 나라를 멸망시키고 각 나라에 군을 설치하고 한나라로 편입했다. 조선에 한사군을 설치한 때와 비슷한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