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단임골에서 꽃순이와 나무꾼을 만나다

샌. 2010. 4. 11. 20:51


리영광선생을 처음 본 건 10여 년 전 TV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2 년 전 KBS의 '인간극장'을 통해 단임골에서 살고 있는 꽃순이와 나무꾼 이야기가 방송되면서 두 분의 아름다운 삶에 감동을 받았었다. 40여 년 전리 선생은세계일주 여행을 하고 싶어 인민군 복무 중 휴전선을 넘어 월남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인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 끝에 강원도 정선의 깊은 산골로 숨어든다. 그뒤 혼자서 외롭게 살아가던 그에게 박안자 선생이 찾아와서 함께 살며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강원도의 첩첩산중 산골에서 자연 상태 그대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꽃순이와 나무꾼 부부의 삶은 TV로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이 부부의 오두막을 찾아 위로와 평안을 얻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나도 언젠가는 꼭 방문하고 싶었는데 마침 이번에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꽃순이와 나무꾼 부부를 잘 아는 분들이 있어서 함께 동행할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1박 2일로 강원도 단임골에 다녀왔다. 두 분의 모습과 삶은 TV에서 본 것과 완전히 똑 같았다. 두 분과 함께 있으면 행복 바이러스에 전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분들은 거의 무소유의 삶을 산다. 가진 것이 없어서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직접 삶으로 보여주시는 분들이시다. 두 분 다 자연을 닮아 순수하고 깨끗한데 성격 차이가 큼에도 불구하고 참 조화를 잘 이룬다. 특히 올해 회갑을 맞은 꽃순이의 소녀 같이 맑은 심성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도착하니 두분께서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리고 나무꾼께서 이 뚱딴지 열매를 권하셨다. 처음 먹어보는 뚱딴지는 맛이 담백하면서 깔끔했는데 나무꾼의 뚱딴지 예찬은 끝이 없었다. 나무꾼은말이 빠르고 많은 편이었는데 자연을 설명할 때는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이 가득했다.

 


야채로만 차려진 점심 밥상이 무척 맛났다. 다들 맛있게 먹으니 꽃순이가 무척 행복해 했다. 꽃순이는 마음씀이 시골다우면서도 주변은 늘 정갈하고 깔끔했다. 음식을 차린 그릇이나 설거지를 하는 모습에서도 정성이 넘쳐났다. 이런 궁벽한 산골에 살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 것이 어디에서 살든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하는 조건이 아닐까.

 


점심 후에는 나무꾼을 따라 뒷산으로 달래를 캐러 갔다. 급한 경사를 오르니 평평한 지대가 나타나는데 온통 푸른색 달래밭이었다. 나무꾼 말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야생 달래밭이란다. 달래를 캐면서 나무꾼과 한국의 현실과 교육 문제에 대해 공감을 나누었다. 그리고 오가면서 여러 종류의 나무 이름과 설명도 들었다. 나무꾼의 자연에 대한 지식과 사랑이 남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것이 여느 농부들과는 다른 점이다.

 

나무꾼의 삶은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도 있는 것 같다.집 둘레에는 잡초가 가득하고 자연 친화적인 생활을 고집한다. 또 그들에게는 할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게으름뱅이로 비쳐질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치 있는 삶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것을 생활로 실천한다는 점에서 나무꾼의 삶은 특별하며 의미가 있다. 아무나 살 수 있는 삶이 아니다.

 



나무꾼이 멋진 소나무를 보여주겠다고 해서 다시 뒤를 따라 이번에는 앞산으로 갔다. 길도 없는 길을 오르느라 무척 힘이 들었다. 산은 온통 아름다운 금강송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인적이 드무니 이렇게 큰 금강송들이 숲을 이룰 수 있는 것 같다.

 


하산길에 노루귀를 만났다. 나는 내려가느라 정신이 없는데 나무꾼은 작은 꽃까지 어김없이 찾아주었다. 올해는 반가운 노루귀를 이산저산에서 많이도 만난다.

 


나무꾼의 집 앞 개울은 몇 년 전 수해피해를 입고 나서 복구 공사를 했는데 이렇게 변했다. 나무꾼은 도로 쪽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반대쪽 산 아래까지 굳이 돌 축대를 쌓을 필요가 있느냐며 분개했다. 천변에 있던 버드나무들도 모드 사라졌다. 홍수도 자연에서 일어나는 한 현상이므로 자연이 스스로 복원하도록 놓아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여기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른 곳은 시멘트로 수직 벽을 만든 곳이 많았다. 보기에도 흉물스럽지만 강을 죽이는 짓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엄청난 돈을 들여 하는 짓거리들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에도 미치지 못하니 어찌 할 것인가.

 


우리가 사 가지고 간 고등어를 나무꾼이 정성들여 구워주었다.그러면서도 사내가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할 짓이 못 된다며 행복한 불평을 했다. 군불을 땐 열기로 굽는데 거의1 시간 가까이 걸렸다. 나무꾼은 청와대에 있는 사람도 이렇게는 못 먹는다며 맛 자랑이 대단했는데 고소한 맛은 역시 일품이었다. 고향집에서도 아궁이에 군불을 때는 탓에 가끔은 이런 고등어구이를 해 먹는다. 나로서는 익숙한 풍경이고 맛이었다.

 


저녁 식사 후 우리는 한 방에 모여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꽃순이와 나무꾼은 우스갯소리도 잘 하고 노래도 즐겨 불렀다. 가까이서 두 분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지켜보면서우리는 사람의 향기에 흠뻑 취했다.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이곳을 찾으며 위로와 평화를 얻는 모양이다. 이 터와 두 분에게서 발해지는 선한 기운의 영향임이틀림없다.

 

다들 나무꾼의 시 암송과 두 분의 노래에 빠졌다. 노래 부르기를 즐겨하는 것도 두 분의 공통점인데 주로 동요를 즐겨 부른다고 했다. 두 분이 노래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도 찍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옮길 수 없음이 유감이다. 두 분은 합창을 하면서 손을 꼭 맞잡고 있었는데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에 사랑의 감정이 묻어났다. 어쩌면 닭살 부부였다. 꽃순이는 나무꾼의 몸 하나하나가 사랑스럽다고 말해서 우리를 소름끼치게 했다. 아무튼 참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두 분이 부른 노래 중에 '심장 속에 남는 사람'도 있었다. 북한 영화의 주제가라는데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

 

인생의 길에 상봉과 리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여진대도 헤여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못 잊어~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기억 속에 없는 이 있고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귀중해~

 


두 분이 단조로운 일상을 이기는 힘은 무엇일까? 또한 365 일을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하는데 어찌 웃음만 있을 수 있겠는가. 이번에 느낀 것은 두 분이 함께 살지만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역은 서로가 침범하지 않는 것 같다. 나무꾼과 앞 산에 올라갔을 때 나무꾼은 그곳이 꽃순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자신만의 공간이라고 했다. 그건 꽃순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둘은 성격이나 취향이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아 보였다. 그런 다름에서 오는 조화가 삶을 더욱 생동있게 하는 건지도 모른다.

 

꽃순이는 어느 대화에서 자신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작은 일에도 감동하는 감성을 기르고, 나무꾼의 매력을 발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했다. 꽃순이의 말과 행동에서는 모든 일에 감사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묻어났다. 이젠 습관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우기 두 딸을 낳고 이혼한 아픈 상처가 있는 분이시다.

 


다음날 아침 산책길에서 바라본 꽃순이네 집의 군불 때는 연기가 정겨웠다. 전통 온돌 난방인데 한여름에도 불은 넣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니 땔감 나무 하는 것이 큰 일일 수밖에 없다. 더우기 겨울에는 영하 30 도까지 떨어지니 두 아궁이에 불을 때자면 나무가 얼마나 많이 들겠는가. 나무꾼 별명이 결코 예사스럽지 않았다. 다행히 요사이는 정선군청에서 간벌한 나무를 갖다주어 힘이 덜 든다고 했다. 집 앞에는 그런 굵은 소나무들이 있었고, 쪼갠 장작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전원생활을 꿈꾸지 않는 도시인이 있을까? 그러나 실행에 옮겼다가도 대부분이 실패하고 철수한다. 이곳 단임골도 마찬가지였다. 외지인이 지은 멋진 집들이 있지만 주인이 사는 경우는 없었다. 이삼 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흔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그곳이 마음에 들어도 우선은집을 세를 얻어살아볼 일이다. 소유한다는 것은 이미 매인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게 살다가 정착하는 것이 실패를 줄이는 길이다.

 

 

윗쪽으로 올라가니 손 대지 않은 개울 모습이 보였다. 이것이 단임골의 원래 개울 모습이었을 것이다.사람이 살기 위해 홍수 예방 공사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도리어 자연을 죽이는 결과가 된다. 인간이 자연에 대해 한 행위가 대개 그래 왔다. 지금 강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나라에서 하는 짓거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아침 식사 후 티 타임을 가졌다.옆에 앉은 꽃순이가 팔짱을 끼며 짖궂게 장난을 쳤다. 체면이나 의례를 따지지 않으면서 스스럼이 없는, 따스한 인간미가 아름다운 분이셨다.

 



나무꾼이 자신의 방을 구경시켜 주었다.동쪽으로 난 창호를 통해 비치는 햇살이 따스한 방이었다. 이 방에서 나무꾼은 책을 읽고 명상을 한다. 이 집은 화전민이 지은 집인데 100 년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거의 원형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30 년이 넘은 것으로 보이는 옛날 포스터까지 벽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다만 지붕만은 군청에서 슬레이트로 바꾸어 주었다고 한다. 이 방에서 뒤란으로 난 문을 여니 초봄의 밭과 뒷산이 아담하게 펼쳐졌다. 절로 마음이 가라앉은 풍경이었다.

 

이분들은 불편하지만 자신들이 물려받은 그대로를 지키며 살고 있었다. 옛날 화전민의 삶과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집이나 땅도 이분들 소유가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먹는 먹거리 외에 농사를 짓지 않으니 수입이 있지도 않다. 그것도 자연농법으로 가꾸니 수확물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여 우리들에게 생활비가 나올 방법에 대해서 묻기도 했다. 도기 그릇이나 장아찌 반찬 판매를 생각해 보는 것 같았다. 아무리 산골 생활이라지만 얼마간의 돈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무꾼에게 책을 하나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래서 판매가 잘 된다면 수입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무꾼은 마땅찮아 했다. 자신은 책의 내용보다는 책이 말하는대로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단임골을 떠나면서 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제 우리는 나무꾼이 농담처럼 말하던 지옥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러나 사는 곳이 어디든 중요한 것은 사람답게 사는 일이리라. 내가 단임골에서 받은 감동은 산골이라는 것도 이곳 풍경도 아니었다. 그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감동이었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단임골에서의 아름다웠던 시간을 추억하며 시 한 수를 읊어본다.

 

마음 지독히 흐린 날

누군가에게 받고 싶은

한 다발의 꽃처럼

목적 없이 떠난

시골 간이역에 내리면

손 흔들어 기다려 줄

한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 우체통같이

내 그리운 마음

언제나 담을 수 있는

흙내음 풀냄새가 아름다운 사람

그런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참 좋겠다.

하늘 지독히 젖는 날

출렁이는 와인처럼

투명한 소주처럼 취하고 싶은

오솔길을 들면 기다린 듯

마중하는 패랭이꽃 같은

제비꽃 같은 작은 미소를 가진

한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 빈 의자처럼

내 영혼의 허기 언제나 쉴 수 있는

등대 같은 섬 같은 가슴이 넉넉한 사람

그런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참 좋겠다.

 

- 사람이 그리운 날 / 강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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