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55

홍세화 선생의 마지막 당부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이자 활동가였던 홍세화 선생이 지난 18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였다. 선생은 1970년대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프랑스에 망명했다가 라는 책을 내며 일반에 알려졌다. 내가 선생을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통해서였다. '똘레랑스'라는 말을 이때 처음 접했지 않나 싶다. 그 뒤 귀국해서 저술과 강연, 정치 등 너무 물질적으로 경도되는 우리 사회를 경고하며 다양한 활동을 했다. 20년 전 쯤 선생을 강연장에서 뵀던 기억이 난다. 전교조 서울지부에서 주최한 강연회였는데 잠실에 있는 여성회관에서였다. 교사들 대상이었으니 강연 주제는 한국 교육의 현실 진단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프랑스 교육 제도와 비교하면서 아동 학대에 다름없는 우리의 입시 체제를 비판하면서 교육 운동을 격려했다. 그때 ..

참살이의꿈 2024.04.21

축소되는 세계

2050년이 되면 세계 경제 성장은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2070년이 되면 세계 인구가 감소하는 변곡점에 도달한다. 거기에 기후 변화, 기술 발전, 정치 불안정 등의 요소가 더해진다. 가장 중요하면서 근본적인 변화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 현상일 것이다. 미국의 도시 계획 전문가인 앨런 말라흐가 쓴 는 줄어드는 인구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찰한 책이다. 도시 전문가여서 그런지 '축소도시' 문제에 많은 비중을 두고 설명한다. 이 책을 본 것은 우리의 근미래가 궁금해서였다. 인구 감소는 이미 어쩔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2020년부터 총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시차가 있을 뿐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로 인한 주..

읽고본느낌 2024.03.27

[펌] 도구적 영성

'영성'은 기독교와 함께 본격화했다. 예수가 떠난 후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하느님 뜻대로 살아가는 영적(spiritual) 삶을, 개인의 만족, 안락, 성공을 좇은 육적(fleshly) 삶과 대비했다. 자발적 가난, 사유 재산이 없는 평등한 공동체, 새로운 세상의 갈구, 인류에 대한 헌신 등은 그들이 구현한 영적 삶의 모습들이다. 예수는 하느님과 부(마몬)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고, 아예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부를 좇는 일을 죄악시했다기보다, 애초에 길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사실 그렇다. 물질적 풍요보다 영적 풍요를 중시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의 체제를 외면하지 않고 산다면 부자가 될 방법이 있는가. 1500년 후 예수의 메시지는 도래할 세상(자본주의)에 커다란 걸림돌이 ..

참살이의꿈 2024.01.04

다읽(20) - 로빈슨 크루소

이 책을 언제 읽었는지 까마득하다.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 생활을 할 때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다는 느낌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교회에 부지런히 다닐 때인 20대 초반이 아니었나 싶다. 이번에 완역본을 다시 읽어보니 같은 책이지만 새롭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진다. 디포가 를 영국에서 출간한 해는 1719년이다. 당시는 서구의 제국주의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식민지의 자원을 약탈하던 시기였다. 이 책에는 이런 시대적 배경이 깔려 있다. 크루소의 사고방식도 철저히 제국주의적 시각이다. 크루소의 사고나 행위를 보면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에 기독교 사상이 결합하여 자본주의가 태동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보인다. 크루소는 치밀하면서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도전하는 근대인의 모습 그대로다. 크루소는 노예로 쓸..

읽고본느낌 2023.10.19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당신을 무엇을 하고 있는가? 비닐봉지를 줄이려고 에코백을 샀는가? 페트병에 담긴 음료를 구입하지 않기 위해 텀블러를 갖고 다닐까?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구입했을까? 단언한다. 당신의 그런 선의만으로는 무의미할 뿐이다. 오히려 유해하기까지 하다. 왜 그럴까? 온난화 대책으로 스스로 무언가를 한다고 믿는 당신이 진정 필요한 더 대담한 활동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에코백과 텀블러 등을 구입하는 소비 행동은 양심의 가책을 벗게 해주며 현실의 위기에서 눈을 돌리는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되고 있다. 그런 소비 행동은 그린 워시(green wash), 즉 자본이 실제로는 환경에 유해한 행동을 하면서도 환경을 위하는 척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에 너무도 간단히 이용되고 만다." 의..

읽고본느낌 2023.09.26

소공녀

본 지 꽤 되었지만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마다 생각나는 영화다. '소공녀'의 주인공인 미소는 자신만의 삶의 스타일을 지켜나가는 젊은이다. 일당 45,000원의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욕심 없이 살아간다. 또래 젊은이들이 꿈꾸는 돈이나 성공에는 관심이 없다. 미소의 소확행이라면 일이 끝난 뒤의 위스키 한 잔, 담배, 그리고 미소만큼 착한 남자 친구다. 어느 날 거처하고 있던 단칸방의 오른 월세를 부담할 수 없어 미소는 홈리스가 된다. 미소는 아무렇지 않게 가방을 싸들고 나서며 길 위의 여행자로 살려고 한다. 그리고 옛날 밴드 활동을 함께 하던 멤버들을 찾아간다. 영화는 옛 멤버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함께 미소와의 교감이나 갈등을 다룬다. 집도 없으면서 위스키와 담배를 즐기는 미소를 보며 염..

읽고본느낌 2023.09.23

산업사회와 그 미래

지난달에 '유나바머(UNABOMBER)'가 미국 교도소에서 81세로 사망했다. 그의 본명은 테어도르 카진스키(T. J. Kaczynski)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우편물 폭탄 테러로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다. 오래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보도가 되며 화제가 되었던 사건으로 기억이 난다. 유나버머[UNABOMBER = University + Airline + Bomber]란 그가 주로 대학과 항공사에 소포로 포장된 폭탄을 보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열여섯 차례에 걸친 폭탄 테로로 3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다쳤다. 유나바머는 IQ 167의 천재였다. 16세에 하버드대학교에 들어가서 수학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교수가 되었다. 어떤 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20대 후반에 그는 갑자기 교..

읽고본느낌 2023.07.01

자본주의의 적

정지아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2014년에서 2020년 사이에 발표한 작품 아홉 편이 실려 있다. 작가의 단편은 처음 읽어보는데 빨치산이었던 부모가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는 생소했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작가의 이미지가 워낙 강한 탓이리라. 장편소설인 과 를 떠나서는 작가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이번 단편에서도 '검은 방'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문학박사 정지아의 집' '자본주의의 적' 등은 작가의 부모님과 연관된 자전적 스토리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친근하게 읽을 수 있었다. 반면에 다른 단편은 생경해서 전혀 다른 작가의 글을 읽는 듯했다. 책의 표제작인 '자본주의의 적'은 자본주의 체제에 길들여지지 않은 한 자폐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먹으며 번성한다. 아예 소비와 ..

읽고본느낌 2023.06.09

몰라서 못 먹는다

집에는 냉장고가 세 대 있다. 두 노인이 사는 집 치고 과하지만 전에 자식들과 같이 살 때 쓰던 냉장고가 고장 없이 작동하고 있으니 계속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아내에게 한 대를 없애자고 제안했지만 다 쓸모가 있다고 한다. 부엌 살림살이는 아내 소관이니 어찌할 수가 없다. 세 대의 냉장고는 어디를 열어봐도 빈틈없이 뭔가가 가득 들어 있다. 둘이 사는 살림에 무슨 먹을거리가 이토록 필요한지 모르겠다. 아내조차도 냉장고에 들어 있는 음식을 파악하고 있지 못할 것이다. 뭘 찾자면 이 냉장고 저 냉장고로 왔다갔다 한다. 냉장고만 아니라 옷장도 마찬가지다. 십 분의 일로 줄여도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것 같다. 냉장고 문을 열면서 아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부쩍 늘어난 말이다. "이런 게 있..

참살이의꿈 2023.05.25

사물들

프랑스 작가인 조르주 페렉의 장편소설이다. 1960년대 프랑스 파리가 배경으로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잘 들어 있다. 대신에 파리의 생소한 골목과 가게 등 다양한 지명이 나와서 파리 사람이 아니라면 어딘지 몰라 좀 혼란스럽다. 은 제롬과 실비라는 두 젊은이가 주인공으로, 오직 물질적으로 나은 삶을 꿈꾸며 살아간다. 이 작품의 의도가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부평초 같은 삶을 그리려는 것 같다. 제롬과 실비, 그리고 친구들은 상품들의 유혹과 현란한 광고의 공세에 덧없이 휩쓸려가는 군상들이다. 이 소설은 건조한 문체와 특이한 시제가 흥미롭다. 마치 사회과학자가 사회 현상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글 같다. 60년 전의 소설이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도 해당하는 경고로 읽힌다. 그저 주어진 일상에 매몰될 때, 아무런 철학과..

읽고본느낌 2022.10.10

부러진 사다리

불평등이 인간에게 끼치는 폐해를 보여주는 책이다. 불평등의 거시적 원인이나 경제적 영향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인간 심리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소들을 드러낸다. 부제가 '불평등은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이다. 인간은 절대적 가난보다 상대적 빈곤감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소유량보다는 남들과 비교했을 때의 내 위치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사다리는 길어지고 중간에 부러지기까지 한 상태다. 점점 심해지는 양극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지은이의 희망인 것 같다. 는 미국의 심리학자인 키스 페인(Keith Payne)이 썼다. 책은 많은 심리 실험 사례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불평등이 ..

읽고본느낌 2022.09.06

우아한 가난의 시대

'우아'와 '가난'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는 가난과 단순한 삶을 예찬하는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류의 책을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짚었다. 는 가난해도 멋있고 풍요롭게 살고 싶어 하는 MZ 세대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지은이는 자신이 소비하는 세대임을 당당하게 말한다. 부모 세대처럼 근검 절약만이 미덕이 아니다. 가난하지만 부유한 생활을 즐기고, 통장 잔고가 바닥을 쳐도 눈앞의 케이크를 황홀하게 탐닉하는 것이 이 세대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돈 버는 방법은 잘 몰라도 돈 쓰는 방법 하나는 귀신 같이 안다고 한다. 좋게 말하면 '카르페 디엠'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항상 가난할 것이다. 세상이 그렇다는 걸 이미 본능적으로 간파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를 즐기는 수밖에 ..

읽고본느낌 2022.07.24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호주 이주를 택한 한 젊은이의 이야기다. 호주 시민권을 얻기까지의 6년의 과정이 한국과 호주 생활을 대비하며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낸 장강명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 있는 거잖아.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이렇게 항변하는 주인공 계나는 자신을 톰슨가젤에 비유한다. 톰슨가젤은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서 사자한테 늘 잡아먹히는 동물이다. 사자가 다가올 때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가 있는데 자신이 꼭 그 꼴이었다는 것이다. 계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금융회사에 취직해 직장인이 되지만 살벌한 경쟁 사회..

읽고본느낌 2021.10.09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넷플릭스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드라마가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워낙 핫한 드라마라 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데스 서바이벌 게임이라 사람이 너무 많이 죽고 섬찟한 장면도 자주 나온다. 456명이 게임에 참가하여 마지막 승자가 456억을 가져간다. 누가 이런 잔인한 게임을 만들고 즐기는지는 드라마 끝에 나온다.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다음 회를 계속 보게 되는 마력이 있는 드라마다. 단순한 킬링 타임용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대의 빈부 문제를 다룬 주제 의식도 돋보인다. 천민자본주의가 극성을 부리는 우리나라라서 이런 드라마가 실감 나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 같다.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진 참가..

읽고본느낌 2021.09.28

이미 너무 많이 가졌다 / 이희중

1 젊은 날 녹음해서 듣고 다니던 카세트 테이프 를 꺼내 듣다가, 까맣게 잊었던 노래 그 노래를 좋아했던 시간까지 되찾고는 한다. 그러니 새 노래를 더 알아 무엇 하나, 이미 나는 너무 많은 노래를 좋아했고 그 노래들은 내 한 시절과 단단히 묶여 있는데 지금 들으면 간주마다 되새길 서사가 있어 귀에 더 두툼하고 묵직하니 이제, 모아둔 음반, 가려 녹음해둔 테이프 를 새겨듣기에도 내 세월이 넉넉하지 않음을 안다. 2 옷장을 열어보면, 기워 입지 않고 버리는 부유한 세상으로 건너오며 한 시절 내가 골라 입었던 적지 않은 옷들, 오늘 내 생애처럼 걸려 있거나 쌓여 있다. 다 아직 입을 수 있는 옷들, 반팔, 반바지는 헌 자리 하나 없다. 그러니 새 옷을 더 사 입어 무엇 하나, 문득 열 해, 스무 해 전 옷을..

시읽는기쁨 2021.09.19

노매드랜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다. '노매드랜드(Nomadland)'는 '유목민의 땅'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자본주의 미국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는 영화다. 여자 주인공인 펀은 석면 원료를 생산하는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수입이 끊기고 집까지 잃는다. 2008년 미국의 경제 위기는 우리나라 IMF처럼 많은 사람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밴에 살림살이를 싣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단기 일자리를 얻으면서 살아간다. 현대판 유목민의 삶이다. 그렇다고 펀이 절망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처지의 이웃들을 만나면서 서로 아픔을 공유하고 도와주며 꿋꿋하게 살아낸다. 무리를 이끌고 지도하는 밥 웰스를 비롯해 영화에 나오는 인물 다수는 배우가 아닌 실제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읽고본느낌 2021.05.23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20세기 말 미국의 대기업 엔론이 '등수 매겨 내쫓기'라는 모델을 도입했다. 직원의 성과를 경쟁의 잣대로 평가하여 상위 20%에게 보너스를 몽땅 몰아주고 하위 10%는 해고했다.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에서 능력에 따라 인간을 평가하는 '20/70/10 규칙'이 적용되는 사회를 '엔론 사회'라고 부른다. 이런 실적주의는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고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문장에서는 '빚으로 산 우울한 향락의 사회' '역사상 가장 잘 살지만 가장 기분이 나쁜 사람들' '우리의 가장 나쁜 측면을 장려하는 사회' 등으로 표현한다. 벨기에의 정신분석학자인 파울 페르하에허가 쓴 는 신자유주의 가치의 지배를 받는 현대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인간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길게 설명한..

읽고본느낌 2021.01.14

오징어 / 유하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 오징어 / 유하 쥐약을 덥석 삼키듯이 불난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지도 모르고 파티를 즐기듯이 떼를 지어 절벽으로 내달리는 레밍처럼 집어등 불빛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오징어처럼 우리 역시 현란한 빛과 향기에 취해 떼거리로 달려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 방향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

시읽는기쁨 2020.08.02

유언 / 류근

절대로 남에게 베푸는 사람 되지 말아라. 희생하는 사람 되지 말아라. 깨끗한 사람 되지 말아라. 마음이 따뜻해서 남보다 추워도 된다는 생각하지 말아라. 앞서 나가서 매맞지 말아라. 높은 데 우뚝 서서 조롱 당하지 말아라. 남이 욕하면 같이 욕하고 남이 때리면 같이 때려라. 더 욕하고 더 때려라. 남들에게 위로가 되기 위해 웃어주지 말아라. 실패하면 슬퍼하고 패배하면 분노해라. 빼앗기지 말아라. 빼앗기면 천배 백배로 복수하고 더 빼앗아라. 비겁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비겁해라.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하느님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큰 교회 다녀라. 세상에 나쁜 짓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부끄러운 짓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양심과 선의는 네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라. 네가 나서지 않아도..

시읽는기쁨 2020.07.22

서울 집값

노무현 정권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다. 진보 정권을 자칭하는 무리가 집권하면 부동산이 한바탕 춤을 춘다. 전국적인 현상은 아니고 주로 서울에 국한되지만, 서민을 위하겠다는 정부가 서민의 가슴에 허탈과 좌절의 대못을 박고 있다. 도대체 문재인 정권이 집값을 잡을 의지가 있는지가 의문이다. 집값을 잡겠다는 시늉만 하는 것 같아 더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 청와대 참모부터 다주택을 처분하겠다고 한 약속이 언젠데 아직도 눈치만 보고 있다. 그러다가 다급해지니 무슨 수석이라는 자는 두 채 중 강남 집은 그대로 두고 지방에 있는 집을 팔겠다고 한다. 눈속임도 격이 있어야지, 이런 질 낮은 코미디는 없다. 구중궁궐에 있는 몇 명이서 집이 한 채니 열 채니 싸우지 말고 정책이나 제대로 세워라. 국민은 속으로 비아냥거린다..

길위의단상 2020.07.06

코로나19를 보는 글 두 편

코로나19를 대하는 글 두 편을 옮긴다. 첫 번째는 지난달 한겨레신문에 실린 김종철 선생의 칼럼이다. 제목이 '코로나 환란, 기로에 선 문명'이다. 코로나 환란, 기로에 선 문명 / 김종철 인류가 소위 문명생활을 시작한 이래, 역병은 인간 사회를 끊임없이 괴롭혀왔다. 세계의 역사는 어떤 점에서 전염병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때로는 국지적으로, 때로는 대륙 전체에 걸친 역병의 창궐과 그 후유증으로 세계사의 큰 흐름이 바뀌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놓고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결정적인 요인은 생산력의 발전이나 계급투쟁 혹은 전쟁이 아니라, 감염력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대표적인 예는 중세 말기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페스트일 것이다..

참살이의꿈 2020.05.17

영국의 노동자들에게 / 셸리

영국의 노동자들아, 무엇 때문에 그대들을 업신여기는 지주들을 위해 밭을 가는가? 그대들의 폭군들이 입을 사치스런 옷을 무엇 때문에 힘들이고 근심하며 짜는가? 무엇 때문에 나서 죽을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지켜 주는가? 그대들의 땀을 짜내려 드는 아니 그대들의 피를 마시려 드는 저 배은망덕한 게으름뱅이들을 영국의 부지런한 자들아, 무엇 때문에 많은 무기와 사슬과 채찍을 만드는가? 고통을 모르는 이 게으름뱅이들은 그것으로 그대들의 강요된 노동의 생산물을 약탈할 텐데 그대들은 여가, 안락함, 평온, 피난처, 음식, 부드러운 연인의 향기를 누리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값비싼 고통과 근심으로 그대들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대들이 뿌린 씨를 다른 사람이 거둔다네 그대들이 찾아낸 재산을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네..

시읽는기쁨 2020.05.14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코로나19로 인해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사람들이 인식하게 된 것 같다. 이런 방식으로 계속 살아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무한 생산과 무한 소비의 시스템은 지구를 병들게 하고 인류를 파멸시킬지 모른다. 코로나19를 자연계가 인간에게 주는 경고로 받아들여 본다. 는 리오 휴버먼(Leo Hubeman)이 쓴 책으로 1930년대에 나왔다. 90여 년 전에 쓰였지만 지금도 많이 읽히는 책이라고 추천받았다. 이 책은 나 같이 이과를 전공을 사람도 읽기 쉬우면서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발전해 간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중세 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경제적 관점에서 인류 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1부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이고, 2부는 '자본주의에서 ..

읽고본느낌 2020.05.12

체제에 관하여 / 유하

횟집 수족관 속 우글거리는 산낙지 푸른 바다 누비던 완강한 접착력의 빨판도 유리벽의 두루뭉술함에 부딪혀 전투력을 잊은 채 퍼질러 앉은 지 오래 가쁜 호흡의 나날을 흐물흐물 살아가는 산낙지 주인은 부지런히 고무호스로 뽀글뽀글 하루분의 산소를 불어넣어 준다 산낙지를 찾는 손님들이 들이닥칠 때 여기 쌩쌩한 놈들이 있는뎁쇼 히히 제발 그때까지만 살아 있어 달라고 살아 있어 달라고 그러나, 헉헉대는 그대들의 숨통 속으로 단비처럼 달콤히 스며드는 저 산소 방울들은 진정 생명을 구원하는 손길인가 투명한 수족관을 바라보며 나는 투명하게 깨닫는다 산소라고 다 산소는 아니구나 저 수족관이라는 틀의 공간 속에서는 생명의 산소도 아우슈비츠의 독가스보다 더 잔인하고 음흉한 의미로 뽀글거리고 있는 것 아니냐 - 체제에 관하여 /..

시읽는기쁨 2020.04.24

상처받지 않을 권리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그는 우리 욕망의 대부분이 자신의 욕망이라기보다 타자의 욕망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 시대에 자본만큼 강하게 우리를 지배하는 타자도 없을 것입니다. 진정 무서운 일이 아닌가요? 자본은 마치 몸에 기생하는 암세포처럼 우리 내면의 욕망을 먹이삼아 번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욕망이 치열해질수록, 자본은 더욱 강해질 테고 우리 삶은 점차 병들어가겠지요. 자본이 남긴 뿌리 깊은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가 상처 받고 병들어 있다는 사실에 직면할 용기를 갖추는 일이 아닐까요? 숨겨진 상처를 상처 그대로 직시할 수 있을 때, 비로..

읽고본느낌 2020.04.21

코로나 이후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지금과 달라질 것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심지어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역사를 구분하자는 얘기도 한다. 과연 그 정도일까? 코로나 이후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궁금한 문제다. 과연 자본주의 체제에 균열이 생길까? 인류가 개과천선해서 더 나은 대안적 삶을 찾을까? 이 정도가 아니라면 코로나로 세상이 바뀐다고 큰소리를 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코로나 이후의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지 회의적이다. 코로나19가 올해 안에 진정되고 경제 회복이 이루어지면 코로나19는 표피에 상처에 남긴 채 사라질 수 있다. 다만 코로나19가 수년간 지속하며 우리를 괴롭히거나,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는다면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때는 정말..

참살이의꿈 2020.04.19

레드 로자

올해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학살당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로자라고 하면 지성, 용기와 더불어 혁명을 위해 자신을 불꽃으로 태웠던 여인으로 떠오른다. "혁명이 전부라고요! 다른 건 다 쓰레기예요."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이런 말들에 그녀의 생애가 들어 있다. 이 책 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일생을 만화로 그려냈다. 만든 이는 영국 만화가인 케이트 에번스다. 만화라고 해서 가볍게 읽히지는 않는다. 로자의 삶과 사상을 요약했지만 무게감이 있다. 중요한 부분에는 주석이 달려 있어 이해를 도와준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871년에 태어나 1919년에 세상을 떠난 폴란드의 사회주의자다. 누구보다도 자본주의의 모순을 직시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꿈꾼 이론가이면서 투사다.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에서 로자를 넘어설 사람은 없..

읽고본느낌 2019.12.20

조커

점점 고착화되어 가는 계급사회에 대한 경고로 읽은 영화다. 우리만 아니고 자본주의 사회 어디나 양극화 문제는 심각하다. 부는 소수에게 편중되고 다수는 점점 가난과 소외의 사각지대에 방치된다. 계층 사이의 이동이 불가능하면 계급사회가 되는 것이다. 계급 차이는 갈등을 낳고 결국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에 나오는 아서는 루저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병든 노모를 모시고 힘들게 살아간다. 영화는 그가 사회로부터 멸시와 조롱, 폭력까지 당할 때 '조커'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조커의 살인을 정당화하거나 동정하지는 않지만, 인간이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할 때 악마로 변하는 건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섬뜩하고 강렬하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도 묵직하다. '조커'는 영화 '기생충'과 닮..

읽고본느낌 2019.11.19

바다의 경고

인간종을 나타내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저 스스로 '지혜롭다'는 명칭을 부여했으니 이만저만 자가당착이 아니다. 까놓고 말해 '지혜롭다'고 하기보다는 '어리석다'라고 하는 게 더 옳다. 하는 짓을 보면 말이다. 일주일 전에 인도네시아 해안에서 죽은 향유고래가 발견되었다. 사인을 알아보기 위해 배를 해부해 보니 몸속은 온통 쓰레기 천지였다. 슬리퍼를 포함해서 플라스틱 컵만 115개가 나왔고, 비닐봉지와 플라스틱병을 합하니 6kg이 넘었다. 사흘 전에는 우리나라 부안 앞바다에서 잡은 아귀 뱃속에서 500ml 페트병이 나왔다. 죽은 물고기를 찍은 두 사진은 끔찍했다. 공기와 물을 더럽히더니 이제는 바다까지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게 인간이다. 제 살아갈 터전을..

참살이의꿈 2018.11.27

돈이 뭐길래

유럽의 중세는 종교에 미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유럽 여행을 할 때 미술관에 들러보면 대부분이 기독교와 관계된 그림이다. 중세 시대 작품은 백 퍼센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는 가치관이나 행동 양식이 오로지 종교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의 뜻을 따르면서 옳게 살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지배층은 이런 민중의 무지를 이용하면서 기득권을 마음껏 누렸는지 모른다. 얼마나 비인간적인 환경에 살고 있는지는 동시대에 사는 사람은 모른다. 숲을 벗어나야 전체적인 윤곽을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의 한복판에 살고 있다. 돈이 최고인 세상이다. 중세 사람들이 종교와 믿음을 위해 살았던 것처럼, 우리는 돈을 사람보다 더 중요시하며 그걸 당연시한다. 한 마디로 돈에 미쳐..

참살이의꿈 2018.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