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당초 성질 까칠한 P의 차를 타는 게 잘못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의 시간이 가슴 졸이는 가시방석이었다. 차가 정체되어 짜증을 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제발 길이 막히지 않기만을 빌었고 다행히 길은 짧은 구간만 제외하고 소통이 잘 되었다. P는 다른 사람의 잘못하는 꼴을 보아 넘기지 못하는데 특히 운전 중에는 더 심하다. 다른 차가 무리하게 끼어들면 클랙슨을 울리고 전조등을 깜박이며 경고를 줘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그렇게 몇 번이나 충돌이 일어날 뻔한 아슬아슬한 경우가 있었다. 그러다 결국 사단이 벌어졌다. 앞의 차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푸른 신호등에서 정차를 했고 신호등은 이내 적색으로 바뀌었다. 네거리를 제때 통과하지 못해 화가 잔뜩 난 P는 연신 클랙슨을 눌러댔다. 내가 봐도 심할 정도로 계속 클랙슨을 울렸다. 놀란 그 차는 적색 신호등에서 출발했고 P도 뒤따라서는 이내 추월했다. 그 차는 전조등을 번쩍이며 따라왔고 옆에 와서는 온갖 욕을 하면서 차를 세우라고 요구했다. 무시하고 계속 가자 급기야는 앞길을 가로막고 차를 세웠다. 운전사가 내려왔고 목이 터져라 쌍욕을 하면서 왜 클랙슨을 울렸느냐고 대들었다. 자신은 적색 신호라서 섰다는 것이다. 젊은이였는데 그 성질도 P 못지않게 대단했다. 하는 모양새로는 칼이라도 있었다면 찌를 것만 같이 흥분했다. 마치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걸 몸소 실천하려고 작심한 것 같았다. 다행히도 멱살잡이까지는 벌어지지 않았다. 다른 차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나 하고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한 바탕 욕지거리를 배설하고 돌아가는 그에게 P의 “젊은 놈이 똑바로 살아.”라고 한 말이 또 불을 질렀다. 다시 길거리에서 추격전이 시작되었고 이번에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까지 앙칼진 소리를 질러댔다. 차로 그냥 들이받을 것만 같은 무서운 상황이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잘잘못을 떠나 사태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결국 그 사람들은 떠나갔으나 난 P한테서 지청구를 들었다. 먼저 잘못했다고 하면 저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깨닫게 하는 것도 좋지만 잘못 하다간 살인나게 생겼는데 어떡하겠는가.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너무나 조마조마했던 시간이었고 황당한 시추에이션이었다. 요사이는 젊은이고 늙은이고 사람들 성격이 여유나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다. 끼어들기도 잘못 하다간 금방 신경질적인 반응이 돌아온다. 길거리에서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고 봉변을 당하는 세상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사돈 남 말 하시네!”하며 비웃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나 역시 운전대만 잡으면 괜히 성질이 급해지고 무엇에 쫓기듯 조급해진다. 내 안에 감춰져 있던 야수본능이 얼굴을 드러내면서 보이지 않는 상대에 대해 욕도 서슴지 않는다. 차 안은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독립적인 공간이니 평상시의 가면이 벗겨지는 것 같다. 또 상습적으로 신호를 무시하는 나쁜 습관도 있다. 며칠 전 고향에 갈 때는 신호위반으로 교통경찰에게 적발되어 6만 원의 범칙금을 발부 받았다. 경찰관은 약 올리려는지 벌점 15점까지 부과된다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는 툴툴거리며 국도를 달리다가 다시 과속으로 이동식 카메라에 체크되었다. 20 km/h 정도 오버했으니 금주 안으로 고지서가 틀림없이 날아올 것이다. 재수 옴 붙은 날이었다. 생각으로야 법규를 지키며 얌전히 운전해야지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운전대만 잡으면 생기는 조급증과 지기 싫은 경쟁심 때문이다. 운전석에만 앉으면 감춰져 있던 내 본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어찌 보면 감사할 일이기는 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나의 인간됨을 누가 깨우쳐 주겠는가. P를 나무라기 전에 우선 나부터 좀더 여유있고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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