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거대한 뿌리 / 김수영

샌. 2008. 7. 3. 10:34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南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 때는 이 둘은 반드시

以北 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八一五 후에 김병욱이란 詩人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四年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强者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女史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3년 조선을 처음 방문한 英國王立地學協會 會員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世界로

화하는 劇的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無斷通行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外國人의 종놈, 官吏들뿐이었다 그리고

深夜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闊步하고 나선다고 이런 奇異한 慣習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天下를 호령한 閔妃는 한번도 장안 外出을 하지 못했다고....

 

傳統은 아무리 더러운 傳統이라도 좋다 나는 光化門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寅煥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埋立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女史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歷史는 아무리

더러운 歷史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追憶이

있는 한 人間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女史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進步主義者와

社會主義者는 네에미 씹이다 統一도 中立도 개좆이다

隱密도 深奧도 學究도 體面도 因習도 治安局

으로 가라 東洋拓植會社, 日本領事館, 大韓民國官吏,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種苗商,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無識쟁이,

이 모든 無數한 反動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 第三人道橋의 물 속에 박은 鐵筋 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怪奇映畵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想像을 못하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 거대한 뿌리 / 김수영

 

전통이나 민족만이 거대한 뿌리는 아닐 것이다. 경박하고 왜소한 인간들이 꾸미는 세상사에 환멸을 느낄 때면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뿌리를 상상하게 된다. 그 존재가 실재하든 않든 인간의 이념이나 욕구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우리를 이끌어가 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런 신뢰와 믿음이 연약한 우리들에게 힘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시를 다시 읽어보니 시인의 독설이 시원하다. 저런 욕 들어야 할 사람, 요사이 더 많아진 것 같다. 특히 개인이나 나라나 줏대를 잃어버리고도 철면피처럼 후안무치한 무리들에게는 시인의 입을 빌어 한 마디씩 해주고 싶다."가서 미국놈 ***이나 빨아라!" 그들은 강자 앞에 나아가 스스로 무릎을 꿇으며 권력과 부의 단맛에 탐닉하는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