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즐거운 공상

샌. 2008. 6. 20. 12:05

지난 주 로또에서 1등이 나오지 않아 금주의 당첨금이 250억이나 된다는 것이 사무실에서 화제가 되었다. A는 1만 원씩 돈을 모아 공동으로 로또를 사 보자고 제안을 했는데, 시큰둥해 하는 사람이 있어서 성사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로또에 당첨이 되고 거액이 손에 들어오면 무엇을 할까라는 공상으로 잠시 동안이나마 모두가 즐거웠다.


아마도 내가 1등 당첨이 되면 제일 먼저 사직서를 던질 수 있다는 게 가장 통쾌할 것 같다. B의 얘기로는 당첨된 사람들이 3, 4 년 정도 마음껏 놀다가는 무료함을 이기지 못해 다시 직장을 찾는다고 하지만 그건 차후의 일이다. 당첨금의 반 정도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기부를 하고, 또 일부는 친척이나 아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싶다. 공짜로 들어온 돈이니 별로 아깝지도 않을 것 같다. 내가 돈으로 생색을 낼 경우는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아니면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산속에 마음에 드는 터를 하나 구해 들어가고 싶다. 로또가 나에게 준 선물은 돈 걱정 없이 그런 장소를 고를 수 있다는 것과 실행 시기를 앞당긴 것, 그리고 미래의 생활에 대한 금전적인 걱정이 덜어졌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로또에 당첨되더라도 나로서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것 같다. 더 화려한 꿈을 꿔 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내 체질과는 맞지 않는다. 만약의 로또 당첨은 답답한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유쾌한 일이겠다. 그런 상상이 가장 나를 즐겁게 한다.


로또에 당첨되면 과연 행복해질까라는 얘기도 나왔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을 거라는 반응이 더 많았다. 거액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나면 실제로 귀찮고 신경 쓰이는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다. 돈은 늘 사람들 사이에 갈등과 시비를 생기게 하는 물건인데 이놈이 한 무더기를 지어 찾아왔으니 과연 반가워해야 할 일인지 슬퍼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현명하게 처신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로또 당첨은 그냥 공상 속에만 머물러 있는 게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공으로 들어온 억만 금보다는 내가 땀 흘려 번 한 푼의 돈이 훨씬 더 의미가 있음을 누구나 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일확천금의 꿈을 가지고 토요일을 기다린다. 아무리 그래도 돈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그런데 로또 당첨 확률은 얼마나 될까? 수학적인 계산에 따르면 당첨 확률은 8145060분의 1이다. 매주 10만 원씩 투자한다면 15년 동안 끊임없이 사야 확률이 겨우 1%가 된다. 벼락에 맞을 확률이 50만분의 1이라니 그보다도 더 어렵다. 그래도 일주일에 평균 세 사람씩, 일년이면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1등에 당첨된다. 로또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숫자상의 확률이 아니라 당첨 되느냐 안 되느냐의 반반의 심리적 확률이 작용하는 것 같다.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매번 당첨자가 나오니 본인에게도 그런 행운이 찾아오리라는 기대를 나무랄 수는 없다.


전에는 복권을 사는 사람들을 경멸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마음도 유연해져서 로또를 사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도 있게 되었다. 수백만 명이 푼돈을 모아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오락 정도로 가볍게 생각한다면 정신건강에 별로 영향을 끼칠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나 또한 이번처럼 200억 정도가 유혹한다면 난생 처음으로 사고 싶은 충동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로또판매소 앞에 서더라도 8백만 분의 1이라는 확률이 떠올라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영영 복권과는 인연을 맺지 못할 것이다.


로또에 당첨되어 엄청난 돈이 내 앞에 벼락처럼 쏟아지는 경우를 공상해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공상은 거품이 많이 낄수록 환상적이다. 로또에 당첨되면 마치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착하기 때문에 하늘이 복을 내리신 것이라고 나는 우쭐대겠다. 나를 개똥 취급했던 C도 그때는 나를 부러워할 것이다. 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꼬리를 치겠지. 그때는 한 1억 쯤 성큼 떼어주어야지.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돈만 많으면 세도와 위세를 맘껏 부릴 수 있지 않은가. 가진 것 없고 능력도 없는 소시민들이야 로또 돈벼락을 맞는 것 외에는 인생역전의 기회가 없다. 로또가 아니라면 어디서 그런 꿈이라도 꿀 수 있겠는가. 그저 밋밋하기만 한 인생에서 로또 당첨은 뭔가 특별하고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아 나도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잔뜩 주눅 든 내 인생에 활짝 꽃이 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도저히 실현 가능성이 없는 백일몽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멋대로의 공상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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