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우리를 지배하는 이즘

샌. 2007. 11. 11. 09:15

한 사람이 가지는 가치관은 시대와 환경의 산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단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그런 점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적 특성과 가치규범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나를 아는 것과 직결되는 문제다. 즉,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체화되어 저절로 표현되는 모든 삶의 양식을 어떤 분은 '문화적 문법'이라고 불렀다. 대화할 때 국어문법을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듯, 우리는 문화적 문법에 자연스레 젖어서 그 틀로 생각하고 결정하게 된다.

이 분은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크게는 두 카테고리로, 작게는 12가지로 분류했다.이런 분류가 현상을 단순화시키는 위험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는, 반만 년에 걸쳐 형성되어 역사가 길고 뿌리가 깊은 것으로근본적이며 심층적인 문법이다. 이것은 단군 시대 이후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내려온 것이므로 한국인의 유전자에 내재된 문법이라고 할 수 있다.

1. 물질주의 : 물질을 많이 갖고 잘 사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다. 한국전쟁 뒤로는 잘 먹고 잘 사는 게 더욱 인생의 최고 목표로 되었다.대부분 그런 걱정 안 해도 되는 오늘날에는 '더 잘 먹고 더 잘 살자'로 바뀌었다.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이 무엇을 최우선에 두는지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런 '걸인의 철학'의 원천은 샤머니즘과 유교다. 현실을 중시하던 무교와 유교가 이런 물질 중심의 가치관을 형성했다. 불교도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했지만, 현재에 집착하지 말라는 불교 이념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샤머니즘화 했다.

2. 감정우선주의 : 너와 나라는 개인보다는 우리라는 집단의식이 우선한다. 논리나 합리성, 설득력은 약하고, 기분, 정, 감정이 우선한다. 공적인 일에서도 개인적인 친분이나 정이 앞서 일이 틀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3. 가족주의 : 우리 가족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보편적 인류애는 희미할 수밖에 없다. 그 폐해는 교육현장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4. 연고주의 : 가족주의와 연결되어 있는 혈연, 학연, 지연 등이 강조되어, 기업의 감사도 동창 관계를 이용해 무마시킬 수 있는 사회다.

5. 권위주의 : 나이나 직급, 선후배 관계로 서열을 구분하여 윗사람 지시에 따라야 하는 사회, 그에 맞추어 행동하지 않으면 비난을 받는다. 내가 유럽에 연수 갔을 때 가장 문화적 충격을 받은 것도 이 부분이었다.

6. 갈등회피주의 :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사고방식으로 토론해서 합리적 결론을 이끌어내기보다는 갈등을 피하려고 한다. 식당에서의 주문도 통일을 권유하고, 질문을 꺼리는 습관이 그렇다.

둘째는, 파생적이며 표층적인 문화적 문법으로 약 130년 정도의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걸쳐 만들어졌다. 이 시기의 세계관은 사회진화론, 즉 약한 사회는 도태되고 강한 사회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시대적 영향하에서 만들어진 것이 파생적 문화적 문법이다.

1. 국가중심주의 : 강력한 국가의 필요성을 느끼고 사람과 물질 자원을 주도하는 구실을 국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 시민사회는 무시될 수밖에 없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를 바라는 마음과도 통한다.

2. 감상적 민족주의 : 우리는 순수한 단일민족이며, 신의 민족이라는 생각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유엔으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3. 낙관주의 : 능력은 고려하지 않은 채, 과도한 목표를 세운 뒤 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다.

4. 속도지상주의 : 약육강식 세상에서 도태되지 않고 뒤쳐진 현실을따라잡으려면 '빨리빨리'가 강조되어야 한다. 그 '빨리빨리'는 아직껏 멈출 줄을 모르고 있다.

5. 수단방법중심주의 : 목표의 적절성이나 의미를 고려하기보다는 목표 달성이 최우선시 된다. 어느 정도 부정직하더라도 잘 살게 해 준다는 공약에 사람들은 손을 들어준다.

6. 이중윤리주의 : 명분을 중요시하여 속은 곪아있지만 겉은 그럴듯하게 꾸민다. 겉과 속이 다른 경우는 개인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도 윤리와 도덕을 가볍게 여기고 결과만 중요시하는 풍토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부정적 가치관들은 우리가 앞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그 길은각자가 자기 인생의 주체가 되는 길밖에는 없다고 본다. 바른 역사와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판단하려는 의지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체득된 이런 문화적 문법을 고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 분은 그 방법으로 우리 생활에서의 네 가지 체험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는, 절대적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는 거룩한 세계에 대한 체험.

둘째는, 작은 생명 속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는 자연 체험.

셋째는, 문학이나 예술작품을 통해 현재와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심미적 체험.

넷째는, 가장 중요한 바른 인간 관계를 맺는 체험.

이 네 가지 체험이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 개인이 변하고 사회가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정신혁명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차가운 우리 사회가따스하게 변해 나가는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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