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길버트 그레이프 본문

친구가 추천해줘서 넷플릭스에서 보게 된 영화다. 1993년에 개봉했으니 나온지 30년이 넘었다. 디카프리오가 10대 때 찍었으니 세월이 한참 흐른 걸 알 수 있다. 유명 배우들의 옛 모습과 함께 고전적인 향내가 나는 영화다.
'길버트 그레이프(What's Eating Gilbert Grape)'는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는 성장 영화라 할 수 있다. 주인공인 길버트의 집은 어두운 분위기에 갇혀 있다. 아버지가 자살한 후유증으로 어머니는 폭식으로 고도비만이 되어 집안에만 갇혀 지낸다. 길버트는 집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정신장애인인 동생(어니)까지 돌봐야 한다. 이때 캠핑카를 몰고 지나다가 마을에 우연히 머물게 된 베키로 인해 많은 것이 변하게 된다.
길버트와 베키가 풀밭에 앉아 석양을 보며 나누는 대화였던가. 베키가 묻는다.
"너는 바라는 게 뭐야?"
착한 길버트의 희망은 온통 가족에만 쏠려 있다. 어머니가 밖으로 나와 활동하게 되고, 동생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 등이다.
"그런 것들 말고, 너 자신을 위한 것은?"
아마 이 질문이 길버트의 마음을 흔들었을 것이다. 베키 역시 아픈 사연을 안고 있지만 할머니와 함께 캠핑카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유인으로 살아간다. 어린 나이지만 철이 든 소녀다. 베키는 길버트를 좋아하면서 길버트가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도록 자극을 준다.
어머니가 죽자 길버트는 어머니와 함께 집을 불태우고 자신을 가두었던 감옥에서 해방된다. 그리고 어니와 함께 긴 여정에 오른다. 영화를 보면서 이해가 안 된 부분은 아버지가 지하실에서 자살한 그 집에서 가족들이 계속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감옥에 갇히기를 자청한 셈이다. 어니의 특징적 행동 중 하나가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집에서는 나무에 올라가고, 밖에 나가면 가스탱크에 올라가서 여러 차례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을 벌인다. 이런 어니의 행동은 아버지가 자살한 지하실에서 도피하려는 무의식적인 반응이리라. 다른 가족들의 심리적 스트레스도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가족들은 무기력에 빠져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족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길버트 가정을 보며 굴레, 멍에, 구속, 희생, 상처, 이런 단어들이 떠올랐다. 과감히 깨치고 나아가야 할 무엇이 아니던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길버트가 집에 불을 지르고 모두 태워버릴 때 나도 무언가에서 벗어나는 기분이었다.
이 영화를 만난 데는 우연이 겹쳤다. 처음은 친구의 소개로 접했지만 며칠 전에 본 드라마인 '은중과 상연'이 이 영화와 연관되는 부분이 있어 놀랐다. 드라마에서 상학이 절망에 빠져 있던 상연에게 전자통신으로 이런 메시지를 보낸다.
"길버트 그레이프가 집을 불태우고 떠날 때 태운 건 삶을 짓누르던 과거일 뿐 자신은 함께 불타지 않았어. 새로운 곳으로 떠날 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였고. 누구도 버리거나 잃어버리지 않았어. 너를 태워버리지 마."
이 메시지를 받고 상연은 다시 살아낼 결심을 하고 일어선다. 여기 나오는 '길버트 그레이프'가 뭔지 궁금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고 난 뒤에는 잊어버렸는데 며칠 뒤에 친구가 영화를 소개해 준 것이다. 우연인 듯 신기한 연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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