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죽음의 수용소에서 본문

읽고본느낌

죽음의 수용소에서

샌. 2025. 10. 3. 11:14

"인간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인간 존재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라도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이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지은이인 빅터 프랭클은 정신과 의사로서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을 가까이서 경험하며 인간을 살리는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의미라는 것을 절실히 체험했다. 그 결과물이 이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이다. 부제가 '죽음조차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간 존엄성의 승리'인데 위대한 한 인간의 정신 승리를 보여준다.

 

가혹한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가운데서도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는다. 수용소에서 생존 확률은 10%가 안 된다. 과연 무엇이 생사를 가르는가. 지은이는 생의 의미를 찾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결정적이라고 본다.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다. 정신은 육체에 영향을 주고 쉽사리 병에 걸리거나 쇠약하게 만든다. 지은이는 수용소에서 만난 여러 사람의 예를 들며 삶의 의미와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외부 환경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각자의 태도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 강제수용소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내면의 자유는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다.

 

지은이는 인간의 선의지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 글에는 신을 믿는 유대인으로서의 종교적 성향이 드러난다. 그는 다분히 종교적 개념인 '궁극적인 의미' '절대의미' '초의미'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실존철학자들이 가르친 대로 삶의 무의미함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절대적인 의미를 합리적으로 터득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로고스는 논리보다 심오하다."

 

종교에 의지하든 아니든 인간은 무엇이든 선택할 권리가 있다. 선택하고 실현함으로써 인생의 가능성이 열린다.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하느냐도 개인의 자유며 선택이다. 강제수용소에서 지은이는 인간 정신의 승리를 보여준 사람들을 만났다.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가면을 벗고, 돼지와 성자의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후자가 훨씬 적긴 하지만.

 

책 후반부에는 지은이가 만든 '로고테라피(logotherapy)'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다. 우리말로는 '의미치료'로 번역될 수 있다. 스스로 인생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심리치료 방법이다.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인간은 세 가지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세 번째의 삶의 태도에 관한 경우다. 아무리 절망스런 상황이나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중병에 걸리거나 시한부 삶을 맞이한 사람도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곤경을 인간적 성취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인간 정신의 위대함이다.

 

내 삶의 의미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을 때 집중해야 할 것은 주어진 구체적 상황 속에서 한 개인의 삶이 갖고 있는 고유한 의미다. 추상적인 삶의 의미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럴 때 삶에서 마주치는 각각의 상황이 한 인간에게는 도전이며 기회가 된다. 물론 이렇게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소수다. 그 때문에 소수의 반열에 합류하려는 도전의지가 생기지 않느냐고 지은이는 격려한다.

 

지은이는 수용소에서 고통의 극한까지 몰렸다. 책을 읽으며 인간에 주어지는 고통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통을 어떻게 해석하며,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를 계속 생각했다. 최근에 미국의 소설가인 루이즈 어드리치가 쓴 문장을 만났다. 가슴에 꼬옥 새겨두고 싶은 글이다. 

 

"우리는 삶의 고통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것이 우리를 빚어내고, 가르치고,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들도록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We are not meant to shield ourselves from the pain of life, but to embrace it fully, to let it shape us, to teach us, to make us more human."  - Louise Erdrich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벽한 생애  (0) 2025.10.10
다읽(31) - 좀머씨 이야기  (0) 2025.10.04
길버트 그레이프  (1) 2025.09.27
다읽(30) - 박하사탕  (0) 2025.09.26
은중과 상연  (0) 2025.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