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나폴리 4부작(1, 2) 본문
고향에 가 있는 동안 읽은 책이다. 흡인력이 높아서 닷새 동안은 독서에 몰입하며 보낼 수 있었다. 이탈리아 작가인 엘레나 페란테가 쓴 4권으로 된 장편소설인데 이번에 두 권을 읽었다. 1권은 '나의 눈부신 친구', 2권은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다.
소설은 1950년대 나폴리 외곽의 가난한 동네를 무대로 한다. 동갑내기 친구인 레누와 릴리의 어린 시절부터의 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1권은 10대 중반까지, 2권은 20대 중반까지의 사연들이 숨가쁘게 펼쳐진다. 둘만 아니라 가족, 이웃들과의 갈등을 겪으며 두 소녀는 성장해 나간다.
책을 읽으면서 지난 달에 본 드라마 '은중과 상연'이 떠올랐다. <나폴리 4부작>이 2017년에 나왔으니 드라마가 이 소설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졌지 않나 싶었다. 소녀의 성장 서사를 담은 틀이 서로 비슷했다. 둘은 애정과 증오, 선망과 질투, 경쟁과 의존이 뒤섞인 여성의 우정사라고 할 만하다.
화자로 나오는 레누보다 릴라가 훨씬 더 개성이 강하고 명석하다. 레누가 차분한 모범생이라면 릴라는 비범하고 도전적인 반항아 기질을 가졌다. 둘은 자석의 서로 다른 극처럼 서로에게 끌리면서 평생 동안 영향을 주고받는다. 나로서는 기존의 질서와 권위에 대항하는 릴라의 당당한 모습에 더 매료된다.
릴라가 '경계의 해체'를 경험하는 순간이 나온다. 새해를 맞는 날 밤 동네 사람들이 불꽃놀이를 하며 축제를 여는 소란스러운 속에서 릴라에게 사람이나 사물을 구성하는 윤곽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릴라가 가족, 또는 전형적인 삶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경험이기도 했다. 릴라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레누와 달리 릴라는 가정 환경 탓에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신발공인 아버지와 오빠를 도우며 살아간다. 아까운 재능이 묻힌 것이다. 속물적 가치관을 가진 남자와 결혼을 하지만 첫날밤부터 마찰이 생기고 결국은 파경에 이른다. 그러나 릴라는 망가질지 언정 굴복하지 않는다.
니노를 사이에 두고 둘은 경쟁 관계가 된다. 하지만 니노를 차지한 것은 소극적인 레누가 아니라 유부녀였던 릴라였다. 소설에 나오는 한 대목으로 레누와 릴라의 차이을 보여준다.
"위험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이들은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평생을 구석에 쳐박혀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 나는 감정에 몸을 내맡길 줄 모른다. 감정에 이끌려 틀을 깰 줄 모른다. 나는 항상 한 발짝 뒤에서 기다리기만 했다.
릴라는 그런 나와는 달리 진심으로 무언가를 갈망할 줄 알았다. 원하는 것은 망설임 없이 취할 줄 알았다. 열정을 다할 줄 알았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모멸감도 비웃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얼굴에 침을 뱉어도, 흠씬 두들겨 맞아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릴라에게 사랑은 상대방이 자기를 원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첫 두 권만 읽었지만 <나폴리 4부작>은 엄청난 소설이다. 7년 전 이탈리아 여행을 갔을 때 나폴리를 스쳐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이 소설을 알았더라면 다른 눈으로 나폴리를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5, 60년대 나폴리에서 벌어지는 두 소녀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3, 4권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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