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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읽(33) - 톰 소여의 모험

샌. 2025. 11. 8. 09:31

60여 년 전이다. 다니던 국민학교에 교실 반 칸 정도의 도서실이 있었다. 한 학년에 두 학급씩 있던 작은 시골 학교지만 명색이나마 도서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읽을 책은 많지 않았다. 선생님들이 보는 서적들이 다수여서 아이들이 도서실을 자주 이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서가에 꽂힌 책들 중에 동화 전집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검은색 표지로 되어 있고 <삼총사> <소공자> <소공녀> <톰 소여의 모험> 등의 제목이 황금색으로 적혀 있었다. <톰 소여의 모험>도 그때 도서실에서 읽었으리라.

 

그때 <톰 소여의 모험>을 읽고 어떤 느낌을 가졌는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돌아보면 외국 아이들의 모험담에 얼마나 공감을 했을지 의문이다. 그 시절의 느낌을 혹시라도 살려낼 수 있을까 싶어 할아버지가 되어 이 책을 다시 펼쳤다.

 

우선 <톰 소여의 모험>이 1876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19세기 중반의 미국 아이들 이야기였던 것이다. 아이들이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도 나온다. 서양 아이들의 모험과 호기심, 뛰어난 도전 정신을 보여주지만 어른들도 염두에 두고 썼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동심을 회복하기를 기대했던 게 아니었을까.

 

책을 통해 초창기 미국 사회의 문화와 사람들의 의식, 생활 양태를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150년 전이니까 인간 삶의 순수한 원형이 존재했던,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던 시대였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사람들의 행동이 터프하고 세련되지 못하지만 이웃간의 정과 정의를 우선순위에 놓았다. 악동들인 톰 소여와 헤클베리 핀은 어른들을 속이고 말썽을 부리면서, 동시에 어른들 세계의 위선과 치부를 드러낸다. <톰 소여의 모험>은 성장 소설이면서 사회 소설이기도 하다.

 

한 갑자가 지나 다시 옛 동화책을 읽으면서 두세 장면은 흐릿하게나마 기억이 떠오른다. 톰과 동무들이 배를 타고 무인도를 향해 가는 장면, 그리고 영리한 톰이 귀찮은 담장의 페인트 칠을 친구에게 시키는 장면이다. 부려먹으면서 더하여 친구로부터 선물까지 챙긴다. 톰은 친구들을 부려먹는 계락을 통해 인생의 철리를 깨닫는다. 책에 나오는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다.

 

"톰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행동 양식을 결정하는 위대한 법칙을 발견한 것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뭔가를 탐내게 만들려면 그것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라는 사실 말이다! 만약 이 책의 저자처럼 위대하고 현명한 철학자라면, '노동'은 의무적으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고 '놀이'는 꼭 해야 할 의무가 없는 것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왜 조화를 만들거나 연자방아를 돌리는 일은 지겨운 노동이지만, 볼링을 치거나 몽블랑 산을 등반하는 것은 오락인지도 이해할 것이다. 영국의 부자 신사들은 여름 내내 네 마리의 말이 모는 마차를 타고 매일 30~50킬로미터씩 달린다. 그것이 상당한 돈을 내야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만약 마차를 모든 대가로 봉급을 받는다면 그 일은 노동으로 전락하는 것이기에, 신사들은 당장 그 일에서 손을 뗄 것이다."

 

이렇듯 책을 통해 내 소년 시절을 회고해 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비록 짙은 안개 속에 가려져 있고 단편적인 일부분만 기억에 남아 있지만, 내게도 동심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아련하면서 달콤하다. 세상과 사람에 부대끼면서 여기까지 온 철없기는 마찬가지인 한 노인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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