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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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기쁨

호수 / 정지용

샌. 2025. 11. 28. 09:47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 호수 / 정지용

 

 

이 나이가 되니 모든 게 퇴색되어 간다. 그리움도 예외가 아니다. 내 일생의 일관된 정서가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있게 '그리움'이라고 답할 수 있다. 젊었을 때는 진리에 대한 그리움/갈망이 나를 지탱해줬다. 이후에는 안갯속에 잠기듯 모호해졌으나 그리움이라는 정조만은 유지되었다. 막연하지만 그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블로그 이름인 '먼산바라기'도 그런 그리움의 표현이다. 굳이 드러내자면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까, 먼 이상향을 향한 아득한 그리움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 힘이었다.

 

피 끓는 시절에는 이 시처럼 그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든 추상적인 대상이든 인간은 그리움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리움이 없으면 세상은 무채색으로 변할 것 같다. 세월은 흘렀고 이젠 그리움을 그리워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움이라는 색깔이 빠진 세상도 뭐 그리 나쁘지는 않다. 눈 덮인 산야가 주는 단순과 고요에도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는 법이니까. 바라건대 '무지개를 보면 뛰는 가슴'은 잃지 않기를, 죽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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