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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 신동엽 본문

시읽는기쁨

고향 / 신동엽

샌. 2025. 10. 14. 09:53

하늘에 

흰 구름을 보고서

이 세상에 나온 것들의

고향을 생각했다

 

즐겁고저

입술을 나누고

아름답고저

화장칠해 보이고

 

우리, 돌아가야 할 고향은

딴 데 있었기 때문....

 

그렇지 않고서

이 세상이 이렇게

수선스럴

까닭이 없다

 

- 고향 / 신동엽

 

 

시인이 이 시에서 말하는 고향은 우리의 근원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고갱의 말이 떠오른다. 기독교에서 본향(本鄕)이라고 쓰는 그곳이다. 물론 이 시가 종교적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는 없을 터이다. 도리어 시인에게 종교는 수선스런 이 세상의 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나이가 들수록 유물론자로 변해가는 나를 본다. 인간이 죽은 뒤 간다는 천당이나 극락은 믿지 않는다. 호흡이 멈추고 생기가 사라지면 정신도 소멸한다고 생각한다. 불멸의 영혼이 별도로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인간의 지력이 닿지 않는 신비의 세계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 세계가 어떠한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나는 불가지론자이기도 하다.

 

시인이 말하는 '고향'에서 나는 무(無)와 적막(寂寞)의 세계를 상상했다. 세상의 수선스러움을 드러낸 시인의 표현이 그러하다고 말해준다. 무에서 와서 무로 돌아간다고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지상에 있는 모든 생명붙이들의 공통된 고향, 그걸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따스한 위안이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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